(39) 나폴리 NAPOLI - 여전히 아름다운 태양의 항구

[오르리]

나폴리 NAPOLI

여전히 아름다운 태양의 항구

산타 루치아 항

저녁에 석양이 드리울 때의 아름다움이란!

  자동차는 뱅뱅 돌고 있다. 아까부터 한참이나 거의 같은 지역을 맴도는 것 같다. 많은 고층 빌딩 사이에서 저만치 목표점이 보이건만, 수많은 공사구간 때문에 길이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계속 나타나는 무책임한 일방통행 표지 때문에 나는 같은 블록을 뱅뱅 돌 뿐이었다. 들고 있던 자동차 지도는 이미 무용지물이 된 지 30분이 지났다. 지도와는 무관하게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많은 지형지물과 방해물들을 극복하지 않는다면, 언제 바다에 닿을 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지금 로마에서 나폴리로 진입하는 고속도로에서, 나폴리의 중심가를 찾아가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비교적 운전은 잘하는 편이고, 지도도 아주 잘 보며, 이탈리아에 익숙하다고 여겼다. 이곳 나폴리에서는 이 모든 능력이 소용없어 보인다. 지금 나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인내심과 체력,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가호뿐인 것만 같다. 적어도 이곳은 나폴리인 것이다. 

앙주 가문이 건설한 대규모의 카스텔 누오보 Castel Nuovo.

나중에는 감옥으로 쓰여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실제 모델이었던 체사레 보르자가 갇히기도 했다. 

  천신만고 끝에 차가 드디어 부두가로 빠져나왔다. 보아하니 이 부두가로 난 길로 곧장 질러간다면 원하는 산타 루치아 항구에 도착할 것만 같다. 그러나 차는 연안 부두 앞에서 또다시 막혔고, 차를 떡하니 가로막는 거대한 카스텔 누오보 앞에서 또 좌절해야 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도착하였다. 산타 루치아 항구...

  그 많은 노래 속에서 무수히 들어왔던 그 이름 나폴리. 그곳의 핵심은 바로 산타 루치아 항구다. 너무나 작고 쇠락한 곳이지만 정말 정감이 깊은 곳이다. <산타 루치아>, <먼 산타 루치아>, <잘 있거라, 나폴리> <마레키아레> 등의 노래에, 주세페 디 스테파노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음성 속에서... 그 숱한 테너들이 수많은 사연과 아름다운 경치를 절절히 외쳤던 곳, 산타 루치아. 

  중학생 시절, 방과 후 음악실에서 놀고 있는데 뚱뚱한 생물 선생님이 다른 학교 선생님 한 분과 음악실로 들어왔다. 두 분은 피아노 뚜껑을 열고 음악 교과서를 펼치더니 한 곡을 멋지게 불러 젖혔다. 그것이 <산타 루치아>였다. 두 분은 아주 멋을 내면서 이제는 이탈리아말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그 맛이란...

  그 가사에 나오는 '산타 루치아'가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어른들에게 여쭈어도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음악책이나 사전에도 그냥 '성 루치아'라는 말은 성녀라는 말로만 나올 뿐이었다. 왜 그들이 그토록 그 루치아란 성녀를 외치는지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성녀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나폴리 구항구의 이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다. 산타 루치아는 그곳에 있는 성당의 이름을 딴 항구를 지칭하는 것이다. 작은 고깃배를 타고 나가서 어업을 하는 어부들은 12세기에 지어진 이 해안가의 거대한 요새형 성채인 카스텔 델로보, 즉 '달걀 성' 주변을 자신들의 근거지로 삼고 있다. 그래서 이 지역에는 아침마다 작은 생선 시장이 선다. 고기보다는 조개가 더 많은 아주 작은 어물전이다. 그리고 주변 성채 옆을 따라 나 있는 예쁜 길을 따라서 해산물 레스토랑들이 늘어서 있다. 

카스텔 델로보 Castel dell'Ovo 

  이 일대를 산타 루치아 항구라고 부른다. 지금 나폴리는 대규모의 첨단 하역 시설을 갖춘 국제항으로 발전해서, 산타 루치아 항구는 그야말로 조각배들과 요트들이나 모여드는 아주 작은 항구에 불과하다. 그리나 정말 이곳의 풍광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특히 아침에 햇살이 비추거나 저녁에 석양이 드리울 때의 아름다움은 과연 장관이다. 이곳이야말로 나폴리 중의 나폴리인 것이다. 

나폴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타 루치아 항구. 

지금도 나그네의 시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폴리를 지칭하는 많은 말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나폴리를 보기 전에는 죽지 말라"는 격언이다. 하지만 지금 이 말은 나폴리를 찬양하기 위하여 인용되기보다는 "과거에 나폴리는 이렇게 유명했지만, 지금은 전혀 볼 것이 없습니다"는 말로 더 자주 인용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산타 루치아 항구 앞의 해안도로에는 대형 관광버스가 지나간다. 그 안에는 분명 마이크를 들고 이쪽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설명하는 듯한 가이드와 그의 말을 믿는 광광객들이 타고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태운 버스는 이곳 산타 루치아 항에 내려보지도 않은 채, 그냥 줄줄이 지나쳐간다. 그들 대부분은 카프로로 가기 위한 부두로 가거나 아니면 소렌토 또는 폼페이로 갈 뿐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런 그들이 안타깝고 가엾을 뿐이다. 모르면 보이지 않는 법...

비아 파르테노페 Via Partenope 

  나는 해안 도로인 비아 파르테노페를 따라서 걷는다. 이 바닷가의 멋진 산책로에는 100년이 넘은 유서 깊고 호화로운 호텔들이 즐비하다. 바닷가의 멋진 카페들과 세련된 레스토랑들 또한 명물이다. 나는 그 중 한 카페를 찾는다. 

  이탈리아 먹거리로 가장 유명한 것이 피자일 것이다. 이탈리아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피자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여러 피자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마르게리타 피자일 것이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소박한 것을 마르게르타 피자라고 부른다. 이것은 빵 위에 기름을 두르고 토마토 페이스트와 치즈만을 얹어서 화덕에 구운 것이다. 토핑이 거의 없는 데, 있다면 루콜라, 엔초비, 바질 등을 조금 얹을 뿐이다. 요즘 미국식 피자에서는 다양한 토핑들이 엄청나게 올라간다. 즉 소시지, 베이컨, 올리브, 부로콜리, 심지어 새우나 닭고기 같은 것까지 올라가는데, 나폴리에서는 눈씻고 봐도 그런 것들을 찾을 수가 없다. 즉 가장 단순하고 얇으며 더불어 가장 싸구려 피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마르게리타 피자가 바로 나폴리에서 시작된 나폴리를 대표하는 음식인 것이다. 

  옛날 나폴리 왕국에서는 어느 피자가 가장 맛있는지 겨루는 대회가 열렸다. 그런데 참석한 나폴리 왕국의 마르게리타 여왕이 직접 이 피자가 맛있다고 고른 것이다. 이런 단순한 피자를 여왕이 맛있다고 생각했을 리는 만무하지만 서민들에게 이 피자라도 배부르게 먹게 하기 위해서 여왕이 일부러 기지를 발휘했다는 뒷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이곳 산타 루치아 항에서 마르게르타 피자를 직접 먹어본다면, 누구라도 이 피자에 가장 많은 점수를 주고 싶게 될지도 모른다. 이곳의 마르게리타 피자는 정말 이 바다와 어울린다. 앞에는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햇살을 받아서 마치 고기 비늘처럼 반짝이고, 바다 위로 불어오는 해풍은 이곳까지 오느라 지친 나그네의 뺨을 어루만지고, 싱그러운 바다냄새는 코를 자극한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절묘한 배합으로 이루어지는 피자의 맛, 빵과 치즈와 토마토의 조합은 마치 황금분할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여기에 한 잔의 비노 와인(백포도주)를 곁들이고 잘생긴 나폴리 웨이터들의 미소까지 곁들인다면, 이곳이 바로 무릉도원이고 천국인 것이다. 

  와인의 취기가 기분 좋게 올라오니 태양이 서쪽으로 넘어갈 준비를 한다. 이쪽 해안은 서쪽을 바라보고 있으니, 가장 절묘한 시간은 바로 석양 무렵이다. 지중해는 내일도 맑을 것임을 약속하듯이 서편 하늘을 발갛게 물들인다. 그러면 나그네의 뺨도 함께 같은 색으로 물들어간다. 저녁이 되어 해안의 카페와 가로등에 하나둘씩 노란 등불이 켜지면, 아, 이곳이 바로 나폴리구나 하는 생각이 전해진다. 문득 등에서부터 전율이 일어난다. 

당신이 나폴리를 보지 않고 죽는다 해도

전혀 미련이 없겠지만, 

당신에게 만일 나폴리에 올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다면 

당신의 인생은 분명 한 번 더 아름다운 저녁과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가지게 될 것이다. 

(계속) 

[짝지]

정말 아름다운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