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변을 둘러보면 내색은 않지만 우울증 환자가 참으로 많다. 희한한 것은 잘 나가는 사람, 못 나가는 사람, 직업의 귀천, 빈부격차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많다. 내가 과문한 탓인가?
요즘 정신과를 찾는 이들의 대부분은 우울증환자라고 말하는 김창윤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사진= 이신영 조선영상기자
어느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30대 후반 싱글여성. 내 친지의 딸이다. 그녀는 주말에는 자기 방 창문에 커튼을 치고 가족들의 출입도 막은 채 홀로 컴컴하게 지낸다. 그러나 겉으로는 멀쩡하고 회사생활도 무리 없이 해 주변에선 그녀가 환자임을 모른다.
며칠전 만난 50대 대기업 중역. 거의 매일 술을 먹어야 잠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경미한 우울증에 수면장애가 온 것 같은데 이런 식의 음주 습관이 계속되면 불면증에 알코올중독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물론 우울증은 더 악화될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인터넷신문의 기사를 읽고 찾아온 40대 후반 직장인. 전형적인 무기력증을 동반한 우울증 환자였다. 적성에 안맞는 회사생활 20여년. 거의 소진상태(burnout)가 됐지만 아직 중학교 다니는 아들을 비롯 가정을 뒷바라지하려면 앞으로 달려야 할 길이 한창 남았다. 매일 그 중압감과 불안에 짓눌려 산다고 호소했다.
그들의 걱정거리들을 따져보면 일반사람들과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삶의 이력에서 어떤 트라우마나 인생 역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가족・인간관계의 힘듦, ▲직장・생계 불안, ▲자기 내면의 갈등 등 3가지에서 비롯되고 있다. 나 역시 10여년전 비슷한 시기를 겪은 터라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해가 된다.
# 서울아산병원에서 30년 넘게 일하고 올해 정년퇴직한 뒤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병원을 개원한 김창윤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환자의 70~80%가 우울증 환자”라고 한다.
불안장애, 강박장애, 불면증, 공황장애, ADHD, 조현병 등 다양한 병명으로 찾아오지만 찬찬히 상담해보면 대부분 그 기저에는 우울증이 잠복해 있다고 한다. 물론 우울증을 일으킨 원인들은 각양각색이다.
그가 최근 치료하고 있는 30대 초반 여성. 시내 유명대학병원에서 조현병으로 진단받고 치료를 받아왔으나 효과가 없어 찾아왔다. 진단을 해보니 조현병이 아니라 조금 심한 우울증 환자였다.
삶의 이력을 종적(縱的)으로 파악해본 결과 바라는 대학을 가지 못했고, 이후 제대로 취업을 못했으며, 집에 있으면서 생긴 부모와의 갈등, 대인관계의 기피 등으로 우울증이 발전한 것이다.
사실 이런 유의 우울증 환자는 도처에 너무나 많다. 다만 이 환자의 경우 오래 방치하다보니 증세가 악화돼 가끔 망상과 환청 증상까지 생겨났고, 이를 진찰한 대학병원 의사가 쉽게 조현병이라 진단한 것이다. 조현병의 특징이 망상과 환청이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를 조현병으로 진단하면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조현병은 예전에 정신분열증이라고 불린 대표적인 정신병이다. 조현병에 걸렸다고 하면 당사자나 주변사람들의 인식도 매우 부정적이 되고, 회복의지도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 약 부작용은 말할 나위가 없다.
다행히 이 여성의 경우는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안심했으며, 이후 치료 상태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김창윤원장은 올해 정년퇴직 후 자신의 집에 병원을 차렸다. 임대료와 인건비 걱정 없이 환자를 보니 보다 환자에 집중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진= 이신영 조선영상기자
# 가벼운 우울증의 경우 보통 항우울제, 신경안정제 등을 증상에 따라 처방한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될 때 알맞은 운동, 명상, 인지행동치료, 심리 상담 등을 곁들이면 아주 좋다. 나도 그렇게 극복했다.
중요한 것은 의사가 우울증의 다양한 원인과 상태 등을 정확히 구별하고 판단해서 딱 거기에 맞는 약물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앞에 예처럼 우울증을 ADHD나 조현병으로 진단하고 치료한다면 환자 상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다면 약으로도 잘 치료가 안되는 심한 우울증의 경우는 어떠한가?
최근 이런 중증의 주요 우울장애(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들을 겨냥해 서울 강남 등 일부 병원에서 ‘스프라바토’라 불리는 신약을 치료제로 사용하고 있다. 코에 뿌리는 비강 스프레이인데 비보험으로 1회 80만원 상당이며 주 2회 한 달 이상 치료받아야 하는데 최소 수백만원이 든다.
김 원장은 “너무 비싼데다가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도 많고 심각한 부작용도 있을 수 있어, 신뢰할만한 정신과 의사와 다른 대안은 없는지 충분히 상의 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말했다.
주성분인 케타민은 과거 동물마취제로 사용된 것으로 예전 기침감기약으로 시판됐던 러미나(덱스트로메토르판)와 약리작용(NMDA 수용체 길항제)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러미나는 이후 청소년들의 환각제로 남용돼 2003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됐으며 이 과정에 당시 식약처 중앙약사 심의위원이었던 김원장도 참여했었다. 작용 기전 면에서 볼 때 스프라바토 역시 남용 우려가 있고 환각을 일으킬 수 있다.
스프라바토 대신 치료 효과가 확실하고 안전한 치료 방법으로 권하는 것이 ECT(전기경련치료・Electro Convulsive Therapy). 머리에 전류를 흘려보내어 경련발작(convulsive seizure)을 유발하는 것으로 효과가 드라마틱할 정도로 좋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도 적극 권장하는 요법이며 비용도 저렴하다.
문제라면 잠깐이지만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기억이 일시 떨어지는 부작용이 있다는 점이나 자살 우려가 있어 빠른 치료 효과를 기대하거나 정말 힘든 사람들에게는 적극 권장한다고 했다.
부부 의사이자 방송인으로 유명한 홍혜걸-여에스더 커플 중 여에스더 박사는 최근 자신의 유트브 채널 ‘여에스더의 에스더TV’를 통해 자신이 평생 우울증으로 고생해 왔는데 최근 전기경련치료를 받고 매우 상황이 좋아졌다고 그 과정을 자세히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