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건 맞는 말인데,
거의 아는게 없다보니 단순히 자연 풍광을
즐기는 관광 여행이 되었삐맀다.
생각해보면,
필리핀은 6.25 때 연합군의 일원이였고,
막사이사이란 국제적 인물도 생각키고,
그리고 농구를 잘 했고,
60년대는 우리 보다 잘 살았던 나라로
소생은 기억하고 있다.
그 필리핀이 지금 왜 저리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미국의 식민지였던 나라 치고
하나 같이 잘 된 나라는 없다.’는
말이 있다는디,,,,,
마젤란 침략 이후 오랜 세월
스페인의 식민지였고
그 후 구미 열강 영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지배를 받았단다.
팔라완(Palawan)은 스페인어로
우산이란 뜻이란디,
섬 모양이 긴 막대 모양이여서 그럴 듯하다.
우얐튼 ‘리키’ 교수는 자랑했다.
동서양의 화개장터인 필리핀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는 섬이
자신의 고향 팔라완이란다.
아시아나 OZ 701호 마닐라행을 탔다.
중국어 간체로 마닐라를 저리 쓰는구나!
마닐라 착.
마중나왔던 리키 교수의 안내에 따라
호텔로 가서 행장을 풀고,,,
마닐라 시내 귀경을 나갔다.
마닐라 시내의 대표적 국제적 관광지는
인트라무로스(Intramuros, 성벽도시)와
리잘(Lizal)공원이다.
오트바이 옆에 승객석을 붙인
대중교통 수단인
트라이시클(Trycysle)을 타고
우선
인트라무로스(INTRAMUROS)로
출입구.
인트라무로스(Intramuros)는 스페인어로
'성벽 안'이라는 뜻을가진 5각형 성벽이다.
7개의 출입문으로 된 성곽 도시로
스페인의 정복자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가
파시그 강 어귀에 요새도시를
건설한데서 비롯되었단다.
마닐라 대성당, 산티아고 요새,
마닐라시립대학교 등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인트라무로스는
거의가 파괴되었다고.
성벽 안에 그래도 제대로 남은 건물은
성 어거스틴 교회와
산티아고 요새로, 스페인 통치에
대한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이 박물관에는 처형되기 전에 이 요새에 갇혔던
필리핀 민족주의자요, 독립 영웅인
호세 리갈을 기리는 전시물이 있었다.
파시그 강을 끼고 세운 완벽한 방어요새인
인트라무로스의 성벽.
인트라무로스(Intramuros) 성벽 외곽 도로?
마닐라 대성당 (Cathedral of Manila).
스페인의 오랜 통치로 카톨릭 신자가
인구 83%인 이 나라의대표적 성당이라는데,
1600년대부터 지진, 전쟁 등으로 여러 번
무너지고 다시 짖고를 반복하여
현재에 이르게 됐단다.
교황청에 '小 바실리카'로 지정된 곳이란다.
바실리카(basilica)라는 이름이 붙은 교회는
특별한 권한을 가지며, 특히 교황·추기경·
대주교를 위해 대제단을 보유할 수
있는 권리와 특별사면권이
부여되며 이러한 특권들 때문에 바실리카는
지역 관할권을 넘어 국제적 지위를 갖는다고.
조심스레 정문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밖에서 보는것 보다
거대했고 아름다웠다.
성당 내부의 피에타 상(사진은 인터넷에서).
'피에타(Piet, 슬픔,비탄)'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맞은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나타낸다고.,
으째 어머니인 마라아가 아들인 예수의
딸과 같이 묘사된 게 무신 오묘한
종교적 의미가 있는 것인가?
아님 미켈란젤로가 르네상스의 사상을
표현한 것인가?
마닐라 시 청사(우측 시계탑 건물)
1892년 ‘필리핀 민족동맹 (La Liga Filipina)’이
조직되면서 비밀 결사 조직
KKK ‘카티푸난 (Katipunan)’이
스페인 지배에 대한 최초의
무장봉기를 일으켰단다.
마닐라 시 청사 앞 광장에
필리핀의 자주 독립을 상징하는
이 카티푸난(Katipunan) KKK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서구의 힘 센 자들이
우리나라를 비롯 동남 아시아,
멀리는 미대륙 까지 마구 집어 삼킨
야만의 시대 흔적이로고...
성 어거스틴 교회.
수차례 지진, 인트라무로스에의 폭격에도
마닐라 대성당과 달리 온전하게 남아 있어
‘기적의 성당’으로 추앙받는다고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 된 석조 건물 교회란다.
외부만 본 겉핧기 귀경이다.
1762년 영국군이 사용한 대형 대포의 포대?
산티아고 요새 입장 매표소 앞.
인트라무로스 전체가 오래전에 세워진
성곽도시이기 때문에,
즉 그 안에 있는 모든 장소가 유적이긴 하지만
그중에서 산티아고 요새는 잘
보존돼있어 유료 입장이다.
필리핀이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독립운동가 호세 리잘이
스페인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곳이라고....
요새 안에는 스페인 통치 시절의
감옥과 호세 리잘의 박물관이 있다.
요새 안에 연못과 피크닉 장소가 있어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고 있었다.
인트라무로스 북쪽에 위치한
산디아고 요새다.
예전 스페인 군대의 본부였고,
앞에서 언급한 리잘이 수감되었던 곳.
일제 강점기 때에는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수감되어 죽기도 한 비극의 역사를
지닌 곳이란다.
아취 바로 위에 스페인 국기의 왕실 문양이
조각되어 있어 묘한 기분이 들었는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하는 것도
후세에 산 역사 교육이 되겠다 싶었다.
우리의 중앙청이였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없앴지.,,
산디아고 요새내 공원에
전시된 옛날 대포와 포탄
호세 리잘 박사 박물관이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그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기 산티아고 요새에서 가까운
리잘 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는 길에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 추도식 준비를 하고있었다.
공원은 아름답고 정결하게
그러나 경건한 맴이 들도록
꾸며 놓고 관리도 깔끔하게 하는 것 같았다.
중앙에 기념비 양옆은 24시간
근위병이 정자세로
도열하고 있었다.
안과 의사이자 시인이기도 했던
리잘을 기리는 벽조각
사형장으로 가는 걸음, 걸음을
놋쇠로 재현해놨다.
사형 집행 조각상.
스페인은 필리핀 원주민도 사격병에
참여하도록 했다고.
‘나의 마지막 인사(Mi Ultimo Adios)’라는
리잘의 긴 절명시는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여운을 남긴다.
세계 주요 언어로 번역돼 있어 인너넷에서
찾아보기 쉽다.
나의 마지막 작별 인사
-호세 리잘-
............(전략)
나의 슬프고 눈물진 이 생명을
조국을 위해 바치리니
..........(중략)
어두운 밤 지나고동녘에서 붉은 해 떠오를 때
그 여명 속에 나는 이 생명 마치리라.
그 새벽 희미한 어둠 속 작은
불빛이라도 있어야 한다면,
나의 피를 흩뿌려 어둔 새벽 더욱 밝히리라.
..........(중략)
작은 새 한 마리내 무덤 십자가에 날아와 앉으면
내 영혼 위해 평화의 노래를 부르게 해다오.
불타는 태양으로 빗방울 증발시켜 나의 함성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게 해다오.
너무 이른 내 죽음을 슬퍼해다오.
어느 한가한 오후
저 먼 저승의 나 위해 기도해다오.
아 ~ 나의 조국 내 편히 하늘나라에
쉬도록 기도해다오.
불행히 죽어간 형제들을 위해
기도해다오.
견디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죽어간
이들을 위해 기도해다오.
고난 속에 눈물짓는 어머니들을
위해기도해다오.
감옥에서 고문으로 뒹구는 형제들,
남편을 잃은 여인들과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다오.
……(중략)
잘있거라, 서러움 남아 있는 나의 조국이여.
사랑하는 여인이여, 어릴 적 친구들이여,
이 괴로운 삶에서 벗어나는 안식에 감사하노라.
잘있거라 내게 다정했던 나그네여,
즐거움 함께했던 친구들이여.
잘있거라 내 사랑하는 아들이여.
아~ 죽음은 곧 안식이니
……(후략)
기념비의 총 높이는 12m에 이른다.
기념비 전면에는
호세 리잘을 섬세하게 표현한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평소 손에 책을 들고 다니던 리잘의
모습을 재현하였으며,
리잘 동상 옆에는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와
책을 읽는 2명의 소년을 조각해두었는데,
이는 가족, 교육, 계몽을 뜻하는 것으로
필리핀의 희망과 미래를 상징한다고.
뒤로 세워진 석탑(obelisk)은 석공이었던
리잘의 어린 시절을 의미한단다.
공원을 나와 식사를 하러
몰 오브 아시아로 들어섰다
아이스링크가 있는 등,
마닐라 최대 위락시설로
고급 상점과 식당이 밀집되어
있었다.
몰 안에는 안경원이 두 셋 몰려 있었다.
고급 상가에 앵경이 빠질 수 없지.
인공적 거대 아시아 몰은
시끌벅쩍 요란해서 젊은이들 한티는
인기가 있을찌 모르나
소생에겐 편하지 않아
바로 앞 마닐만의 해변 둑에 누웠다.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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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은 팔라완의 아볼란(Avorlan).
리키 교수의 고향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