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 우익'의 평(評)/한동훈의 지나침 이낙연의 부족함 법치국가에서의 초법적 발언은 거짓말 되기가 열에 여덟 아홉…흙을 묻히지 않고 씨름하겠다는데 천하장사 되기는 난망. 무학산(회원)
'이상은 평화롭지만 역사는 폭력적이다'는 말이 있다. 역사를 개척한 승자는 도덕가가 아닌 폭력배였던 것이다. 승자인 폭력배가 역사를 만들고, 기록했기에 자기가 정의였을 뿐이다. 탈당한다, 탈당한다던 이낙연 씨가 마침내 탈당했다. 탈당하겠다, 하겠다, 할 때 알아봤지만 그의 탈당에 지축을 흔드는 지진도 없었고 세상을 흔드는 태풍도 없었다. 그럴 일이 없을 것이란 것을 본인은 알았기 때문에 일년이 넘도록 탈당하겠다는 엄포만 놓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탈당을 했으니 이제부터라도 옹골찬 기세로 치고 나아가야 했는데 역시 이낙연은 폭력배가 아닌 도덕가였다. 그가 탈당하면서 더민당에 전과자가 44%이다고 말했다. 며칠 후 더민당에서 44%가 아닌 41%라고 반박했다. 44명이나 41명이나 그게 그거다. 그렇건만 이낙연은 사과를 했고 구경꾼은 고개를 저었다. 흙을 묻히지 않고 씨름하겠다는데 천하장사 되기는 난망이다. 그저께 더민당이 “이낙연 전 대표의 지지자가 이(재명) 대표의 흉기 피습 정치테러 사건을 두고 ‘목에 칼빵을 맞았다’는 반인륜적 망언을 했다. 이 전 대표는 지지자들의 저질·혐오 발언에 엄정히 조치하기 바란다”고 했다. 그러자 이낙연은 또 넙죽 엎드려 사과했다 한갓 지지자의 발언에도 이랬으니 어떻게 더 큰 일을 하려 험난한 길을 걷겠으며 지지자는 또 어디서 불러 모을 것이며 울분 맺힌 지지자가 오려고는 하겠나. 작은 예절에 얽매이는 사람은 영화로운 이름을 얻을 수 없고, 작은 치욕을 마다하는 사람은 큰 공을 세울 수 없다-鬼谷子- 반면에 한동훈 씨는 독선적이지 않음이 없다. 한동훈은 인천시 의회 허식 의장이 스카이 데일리신문의 5·18특집판을 의원들에게 돌렸다고 하여 탈당과 의장직 사퇴를 요구했다. 정치는 총칼 대신 입으로 싸우는 전쟁이다. 싸우는 태양(態樣)이 자기 구미에 맞지 않더라도 아래 사람이 여러 수단으로 싸워줘야 국힘당도 승리하고 자기도 산다. 그러나 단칼에 수하의 목을 날려버렸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다고 해서 쫓아낸 것은 독선기신(獨善其身)이거나 자신만을 돋보이게 한 것이다. 나아가서는 선거를 앞둔 적전(敵前) 이적행위이다. 그는 또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는 각서를 받겠다 했고,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세비를 토해 내게 하겠다고 했다. 이런 문제는 법률을 개정하지 않는 한 이룩할 수 없다. 한동훈은 법률가 출신인 만큼 법률에 합당한 발언을 해야 믿음성을 더욱 얻을 수 있다. 그 뜻이야 아름답다 못해 숭고하기까지 하고 국민의 소원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법치국가에서의 초법적인 발언은 거짓말이 되기가 열에 여덟 아홉이다 더민당은 저 발언들을 이재명을 겨냥한 발언으로 받아들여 더욱 칼을 갈 것이다. 국힘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저렇게 추진하겠다고 약속한다는 정도로 말했으면 차라리 더민당이 할 말이 없을 것인데 도리어 원한만 깊어지게 하고 말았다. 그는 광주에 가서 5·18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겠다고 말했다. 이것만으로도 세상을 놀래키기에 부족함이 없는데 한발 더 나아가 5·18 헌법 수록을 반대할 국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군중의 환호 속에 붕 떠오르니 이쪽 국민은 눈에 안 보이는지 묻고 싶고, 그런 국민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노인은 투표하러 안 나와도 된다는 말과 다를 바 없겠는데 이 말은 자기편에 유리하기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한동훈은 자기편의 뜻을 등지면서 저렇게 말했다. 그런다고 해서 전라도가 찍어주지 않음은 이미 증명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발언을 한 것은 유권자의 생각보다 자기 신념을 더 높인 것이 어찌 아니겠나. 우리나라 정치의 불행은 '답지 않음'에 있다 말하자면 정치인이면 정치 언어를 말해야 할텐데 엉뚱하게 윤리·도덕을 논한다는 이야기이다. 운동권 출신 어떤 국무총리는 “미국이 세계에서 전쟁을 가장 많이 했다”는 말을 하였다. 미국은 지금도 지구 어느 구석에선 전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일등국가가 된 것 또한 사실이다. 국무총리가 국리민복을 바라기보다는 도덕을 더 추구했던 것이다. 이낙연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답지 않았거니와 탈당을 하고 신당을 만드는 정치인의 모습은 더더욱 아니었다. 신당을 만드는 사람이니 개척자의 자세를 갖고 웅걸(雄傑)한 면모로써 투사처럼 싸워야 했다. 그러나 자잘한 것에 벌써 두 번이나 머리를 숙였다. 시작부터 도덕가처럼 해서야 무슨 일을 하겠나. 꽤 되는 더민당 의원들이 이낙연에게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혁명아 같은 모습을 한껏 펴 보여야 할 때에 소심함을 감추지도 않았다. 거기에 어느 새가 찾아와 둥지를 틀겠나. 한동훈에 대해선 길게 썼으므로 더 할 말이 없다. 다만 저런 이가 무엇이 되었을 때 국민의 자유가 더 늘어날지 줄어들지는 자명하다. 이렇게 말했으니 혹자는 “설만들 한동훈이 독재를 하겠나” 할 것이고 혹자는 “그럼 이재명이가 좋단 말이냐?”고 반문할 것이다. 이재명에 대해선 세인들이 다 한마디씩 하고 있으니 내가 더 보탤 말은 없다. 다만 태양 아래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만은 하는데 어쩌면 이재명의 변화가 많은 이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사람도 변하되 기국(器局)이 클수록 크게 변한다. 박정희는 공산주의자였지만 군대라는 작은 집단을 벗어나 더 큰 집단의 우두머리가 됐을 땐 공산주의를 철저히 배격하였다. 히틀러는 아름다움을 소원한 미술학도였으나 큰 집단의 두령이 되어서는 살인마가 되었다. 이재명이 또한 변할지 누가 아나? 이는 다만 이낙연의 부족함과 한동훈의 지나침에 대한 염려에서 이런 생각도 들 수 있다는 말일 뿐이다. 자칭 골수 우익인 나도 이런데 중도파라면 저런 언행을 보고 어디에 투표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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