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 강좌 제7강-3
-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9. 15 -
3 인욕의 옷을 입는 까닭
我等敬佛故(아등경불고)로 悉忍是諸惡(실인시제악)하며
爲斯所輕言(위사소경언)하대 汝等皆是佛(여등개시불)이라도
如此輕慢言(여차경만언)을 皆當忍受之(개당인수지)하며
濁劫惡世中(탁겁악세중)에 多有諸恐怖(다유제공포)하며
惡鬼入其身(악귀입기신)하야 罵詈毁辱我(매리훼욕아)라도
我等敬信佛(아등경신불)하야 當著忍辱鎧(당착인욕개)하고
爲說是經故(위설시경고)로 忍此諸難事(인차제난사)하며
我不愛身命(아불애신명)하고 但惜無上道(단석무상도)하야
我等於來世(아등어래세)에 護持佛所囑(호지불소촉)호리다
世尊自當知(세존자당지)시라 濁世惡比丘(탁세악비구)는
不知佛方便(부지불방편)의 隨宜所說法(수의소설법)하고
惡口而嚬蹙(악구이빈축)하며 數數見擯出(삭삭견빈출)하대
遠離於塔寺(원리어탑사)케하거든 如是等衆惡(여시등중악)을
念佛告勅故(념불고칙고)로 皆當忍是事(개당인시사)호리다
諸聚落城邑(제취락성읍)에 其有求法者(기유구법자)면
我皆到其所(아개도기소)하야 說佛所囑法(설불소촉법)호리니
我等敬佛故(아등경불고)로, 우리들은 부처님을 공경하는 까닭에
悉忍是諸惡(실인시제악)하며, 다 이 모든 악을 참으며
爲斯所輕言(위사소경언)하대, 이들이 비난조로, 輕言. 가볍게 말하는 바를 汝等皆是佛(여등개시불). “오냐, 너희들이 다 부처다.” 비난조로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인불사상에서 말하면 좋은데, 이 말만 보더라도 ‘아~, 법화경은 인불사상이구나! 바로 사람이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이구나!’ 이런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법화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법화경 설하는 사람을 보고, 가벼이 여기면서 비난조로 하는 말이 汝等皆是佛. “오냐, 너희는 다 부처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럼 법화경을 제대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다 부처님이다.” 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그 내용을 듣고는 “오냐, 너희는 다 부처다.” 이렇게 비난하는 겁니다. 이 비난하는 말 속에서 법화경의 진실을 또 우리가 눈치 챌 수가 있습니다. 아시겠지요? 비난하는 사람들이 가만히 듣고는 ‘저것들이 법화경가지고 이야기하면서 계속 “사람이 부처님이다.” “사람이 부처님이다.”하는 그 내용이거든요. 전부 그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비난해서 말하기를 汝等皆是佛이다. “너희들은 오냐 다 부처다 그래. 너희말 대로 다 부처다 그래 잘 먹고 잘 살아 봐라.” 이런 식으로 비난하는 겁니다.
如此輕慢言(여차경만언)을. 이와 같이 가벼이 여기고 업신여기는 말을 皆當忍受之(개당인수지)하며, 다~ 다, 마땅히 참고 받아들이며
濁劫惡世中(탁겁악세중)에, 탁한 세상, 악한 세상 가운데에
多有諸恐怖(다유제공포)하며, 두렵고 두려운 것이 너무너무 많으며
惡鬼入其身(악귀입기신)하사, 악한 귀신이 그 몸에 들어가서
罵詈毁辱我(매리훼욕아)라도, 우리들을 꾸짖고 헐고 욕하고 헐뜯고 한다하더라도, 我等敬信佛(아등경신불)하야, 우리들은 다 부처님을 믿고 공경해서 當著忍辱鎧(당착인욕개)하고, 마땅히 인욕의 갑옷을 쓰고, 인욕의 갑옷. 忍辱鎧. 또 투구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인욕의 갑옷을 입고,
爲說是經故(위설시경고)로, 이 경전을 설하기 위한 까닭에
忍此諸難事(인차제난사)하며, 이 모든 어려운 일들을 참으며
我不愛身命(아불애신명)하고, 우리들은 이 몸과 목숨을 애착하지 아니하고 但惜無上道(단석무상도)하며, 다만 無上道. 최상의 도를 아껴서
我等於來世(아등어래세)에, 우리들은 내세에
護持佛所囑(호지불소촉)호리다. 부처님이 부촉한 바를 護持호리다.
世尊自當知(세존자당지)시라. 세존이 스스로 마땅히 아시리라.
濁世惡比丘(탁세악비구). 나쁜 세상 악한 비구들은
不知佛方便(부지불방편)의, 부처님이 방편으로 하신
隨宜所說法(수의소설법)을 알지를 못하고,
惡口로써 而嚬蹙(악구이빈축)하며, 찡그리고 비웃는다 이 말입니다.
惡口로써, 악한 말로써 욕하고 찡그리고 비난해서
數數見擯出(삭삭견빈출)이라. 자주자주 사원에서 쫓아내. 쫓아냄을 당해요. 見자는 당한다는 뜻이지요. 자주자주 사원에서 쫓겨남을 당하되,
遠離於塔寺(원리어탑사)하야, 멀리 저 탑 있는데서 멀리 떠나가지고서
如是等衆惡(여시등중악)을, 이와 같은 여러 자지 좋지 아니한 그런 악조건들을 念佛告勅故(념불고칙고)로, 부처님의 告勅. 부처님의 분부를 생각하는 까닭에 皆當忍是事(개당인시사)호리다. 다 마땅히 이 일을 참으리다.
諸聚落城邑(제취락성읍)에, 취락과 성읍에
其有求法者(기유구법자)면, 그 법을 구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으면
我皆到其所(아개도기소)하야, 우리들이 다 그 처소에 이르러서
說佛所囑法(설불소촉법)호리니, 부처님이 부촉한바의 법을 설해줄 것입니다.
4 세존의 사자(使者)
我是世尊使(아시세존사)라 處衆無所畏(처중무소외)하며
我當善說法(아당선설법)호리니 願佛安穩住(원불안온주)하소서
我於世尊前(아어세존전)과 諸來十方佛(제래시방불)에
發如是誓言(발여시서언)호니 佛自知我心(불자지아심)하시리다
我是世尊使(아시세존사)라. 우리들은 세존의 使者(사자)라. 심부름꾼이다 말입니다. 處衆無所畏(처중무소외)하며, 대중에게 처해서 아무 것도 두려울 바 없이 당당하며, 我當善說法(아당선설법)호리니,
우리들은 마땅히 법을 잘 설법할 것이니 願佛安穩住(원불안온주)하소서.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편안히 계십시오.
我於世尊前(아어세존전)과, 우리는 세존 앞에서, 그리고
諸來十方佛(제래시방불)에, 모든 시방에서 온 화신 부처님에게
發如是誓言(발여시서언)호니, 이와 같은 맹서의 말을 하노니
佛自知我心(불자지아심)호리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勸持品이 끝났습니다.
권지품도 내용이 두 분의 수기도 있었고, 또 이것은 법화경을 맹세코,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부처님의 正法(정법)을 널리 전하겠습니다. 하는 그런 서원이 아주 잘 나타나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勸持品 終
그 다음 안락행품 이것은 역시 법화경을 전하는 데는 첫째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야 돼요. 기분 나쁜 어떤 조건과 어떤 상황들, 그리고 사람들과의 기분 나쁜 인연들이 맺어지면 이것은 안락행이 못 되는 것이지요.
편안한 행이 못 되는 것이지요. 편안하고 즐거운 일이 못 되는 겁니다.
이것은 佛事中(불사중)의 佛事거든요. 경전을 전하는 것은 이것은 정말 큰 불사이고 제일 불사입니다. 이 경전에서 불사라는 말이 잘 나옵니다.
나오는데 부처님 법을 펴는 것을 불사라고 했지, 무슨 불상 만들고ㆍ탑 세우고ㆍ절 짓고ㆍ법당 만들고ㆍ이것을 불사라고 하는 대목은 한 곳도 없어요.
한 곳도... 그것도 우리가,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딱 설정해 놓고 우리는 거기에 못 미치게 살더라도 가끔가끔 그 기준을 우리가 생각 하면서 그 기준에 맞추려고 하는 그런 노력. 그런 어떤 생각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어떤 코스를 딱 정해 놓고 길을 가는데 자꾸 그 정해진 코스에서 빗나갈 수가 있거든요. 그렇지만 그 코스를 자꾸 잃지 않고 그 코스를 따라가고, 또 빗나갔다 또 따라가고, 빗나갔다 또 따라가고, 외국 여행가면 그래도 결국은 그 버스를 타야 되고, 그 종착점에 이르게 되고, 그 호텔에 같이 들어가야 되고, 그래서 일어나야할 시간에 또 같이 일어나서 그 다음 여행지로 또 가게 되고, 그러면서 계속 한 번씩 옆길로 나가기도 하고, 개인 볼 일을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다시 들어오고, 우리 불자가 불교의 신행생활도 그렇게 돼야 됩니다. 그런 어떤 정해진 코스가 딱 있는데 그 코스에서 간혹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있지만 또 다시 코스에 맞추어서 같이 걸어가야 된다고 하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 기준은 뭡니까? 경전이라고요. 부처님이 말씀하신 이 경전이 기준입니다. 중간에 만든 것은 아닙니다. 전통 경전, 이것이 기준이라고요. 그리고 이 기준인 경전을 또 바르게 해석해야 되고요. 바르게 해석해야지 해석을 또 잘못하면 그것이 또 안 되는 것이지요.
안락행품. 목차를 잠깐 볼까요?
이것은 四安樂行(사안락행)입니다. 네 가진데요?
1 몸의 안락행. 2 입의 안락행. 3 마음의 안락행. ☜身口意(신구의)지요? 그리고 중요한 것이 4 誓願(서원) 안락행입니다. 서원이 있어야 돼요. 원력이 있어야 되고요. 불교를 꽃에다가 비유를 하면 불교의 네 가지 강령이 智慧ㆍ慈悲ㆍ敎化ㆍ願力(지혜ㆍ자비ㆍ교화ㆍ원력). 이것이 불교의 4대 강령이거든요. 꽃에다 비유하면
智慧 = 아주 밝고 화사한 꽃입니다.
慈悲 = 아주 아름다운 꽃입니다. 밝고 화사하면서도 또 아름답지 못할 수가 있는 겁니다. 아름답기는 한데 밝지가 못한 그런 꽃도 있을 수가 있어요.
敎化 = 교화가 사실은 결실이거든요. 열매입니다. 그러면 꽃에는 뭐가 있어야 돼요? 향기가 있어야 됩니다. 香氣(향기). 향기 없는 꽃은 참 재미없다고요. 아무리 밝고 화사하더라도 향기가 있어야 돼요.
그런데 또 밝고ㆍ화사하고ㆍ아름답고ㆍ향기가 있어도 생기가 없을 수가 있어요. 生氣(생기). 시들시들하고 그냥 바로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싶을 정도로 다 시들어 버린 듯한 그런 꽃도 있을 수가 있어요.
願力 = 생기 넘치는 것은 말하자면 원력입니다. 그러니까 원력은 아주 기대감ㆍ희망감ㆍ어떤 성취감ㆍ어떤 원력ㆍ서원. 이런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지혜의 종교라고도 하지요. 또 자비의 종교라고도합니다.
智慧ㆍ慈悲 중요해요. 그렇지만 사람을 교화해야 돼요. 진리의 가르침을 가지고 교화해야 돼요. 교화하려면 용기 넘치는 아주 싱싱한 그런 생명력. 다시 말해서 원력이 넘쳐나야 됩니다. 원력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거든요. 그것이 사람이 살아있는 모습입니다. 생동감이거든요.
끊임없이 우리가 공부하고, 또 공부한 것을 전하고, 좋은 것은 이것은 참 좋다 싶으면 나누고, 그랬을 때 아주 밝고ㆍ화사하고ㆍ아름답고ㆍ향기도 나고ㆍ그리고 아주 생기가... 그냥 그 빛을 보면 생기가 넘쳐나서 옆의 사람도 괜히 덩달아서 신이 나고 힘이 솟고요.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럼 우리 불자들은 나이가 많고 적고 간에 항상 어떤 꿈과 희망과 기대감을 가지고 늘 뭔가 새로운 어떤 공부. 공부의 어떤 진척. 이런데 대해서 희망 감을 가지고 있으면 집에 가서도 아주 생기 넘치고, 뭔가 휘파람이 절로 나오고, 그러면 가족들도 덩달아서 신이 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가정에 한 사람만 생기 넘치고 희망 감에 늘 들떠 있을 것 같으면 그 집안사람들이 전부 생기가 나고 기분이 좋고 명랑해지는 것이지요. 한 사람이 축~ 쳐져 있어 봐요. 고개 턱 터래 물고 축~ 쳐져가지고 뭔가 근심걱정이 있는 것 같고, 세상에 대한 아무 희망과 기대감이 없는 그런 모습을 취하면 전 가족이 전부 힘이 다 빠지는 겁니다. 이 원력이라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기도 身ㆍ口ㆍ意ㆍ그 다음에 誓願(신구의서원). 서원이 딱 이렇게 마지막에 자리매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4안락행 해놨잖아요? 身ㆍ口ㆍ意ㆍ誓願. 이렇게 해서 네 가지거든요. 네 가지가 다 제자리에 딱 딱 맞아 떨어지고, 모양새가 좋아야 되고 품위가 있어야 되고요. 이것이 그런 내용입니다. 그래 이것을 일일이 다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보살의 行處(행처)니 보살의 遠離處(원리처)니 하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로 우리 법화행자는, 법화수행자는 아니, 불교인은, 불교인은 가서 만나는 사람들, 또 상대하는 사람들. 뭐 이해관계로 아니면 높은 벼슬. 이런 것 그냥 눈에 드러나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추해 보이잖아요. 그런 조건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 여기서는 그런 것 다 피하라고 그랬어요. 그런 것 다 피하라고... 그리고 또 너무 험하게 사는 사람도 피해라. 험하게 사는 사람도... 예를 들어서 종합격투기를 한다든지, 사냥을 한다든지 아니면, 전문적으로 배를 타고 어업에 종사한다든지, 어업에 열심히 종사하는 사람하고... 물론 보살이 못 갈 곳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여기서는 어떤 품격과 모양새를 제대로 갖추고 법을 설할 때, 그 때 말하자면 법화경이 살아난다 하는 뜻입니다.
법화경이 살아난다.
제가 그전에 걸망지고 다닐 때, 저~기 월내 묘관음사 향곡스님이 건강하고 살아계실 땐데 거기서 한 철을 지내는데 마침 여름을 지냈어요.
두 철이나 여름을 지냈는데요. 한 철 여름을 지내는데 그 한참 여름에 더울 때 멸치를 건져 올릴 계절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멸치를...
그때는 그 좋은 해수욕장에 해수욕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때는 우리밖에 없었어요. 한 40년 훨씬 전이니까요.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멸치를 막 잡아 올리는데 중이 거기 가가지고 멸치를 같이 끌어올리는 겁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됩니까? 하하하하하하하하 마을 사람들 일을 돕는다고 가서 봉사활동 하는 택이지요.
지금으로 치면 봉사활동인데 그런데 멸치를 잡아 올려...
살생하는데 가서 같이 거든다? 이것은 모양이 아니잖아요.
아무리 봉사활동이라 하더라도 가려가면서 해야지요. 해야 할 곳이 있는 겁니다. 그것은 모양이 아니더라고요. 멸치를 잡아 올리는데 중이 거기 가서 발 벗고 막 그냥... 파도가 출렁출렁하는데 거기 가서 다리 걷고 그냥 “영차, 영차”하고 걷어 올리는 것을 제가 봤어요. 어릴 때, 그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제 그런 이야기들이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이런 저런 답지 못한 사람들과 가까이 하지 말라.
그러면 품격이 떨어지고 모양새가 아니니까요.
법화수행자로서 누가 따라 주겠나? 누가 그 사람 말이 먹히겠는가?
이런 것들입니다. 그런 내용들이 몸의 안락행.
제14 안락행품(安樂行品)
一 사안락행(四安樂行)
1 몸의 안락행(安樂行)
(1) 보살의 행처(行處)
爾時文殊師利法王子菩薩摩訶薩(이시문수사리법왕자보살마하살)
이 白佛言(백불언)하사대 世尊하(세존) 是諸菩薩(시제보살)이
甚爲難有(심위난유)라 敬順佛故(경순불고)로
發大誓願(발대서원)하대 於後惡世(어후악세)에
護持讀說是法華經(호지독설시법화경)하려하나이다
世尊(세존)하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이 於後惡世(어후악세)에
云何能說是經(운하능설시경)이닛고
佛告文殊師利(불고문수사리)하사대
若菩薩摩訶薩(약보살마하살)이 於後惡世(어후악세)에
欲說是經(욕설시경)인댄 當安住四法(당안주사법)이니라
一者(일자)는 安住菩薩行處(안주보살행처)와
及親近處(급친근처)라사 能爲衆生(능위중생)하야
演說是經(연설시경)이니라 文殊師利(문수사리)야
云何名菩薩摩訶薩行處(운하명보살마하살행처)오
若菩薩摩訶薩(약보살마하살)이 住忍辱地(주인욕지)하야
柔和善順(유화선순)하대 而不卒暴(이부졸폭)하고
心亦不驚(심역불경)하며 又復於法(우부어법)에
無所行(무소행)하야 而觀諸法如實相(이관제법여실상)하며
亦不行不分別(역불행불분별)이
是名菩薩摩訶薩行處(시명보살마하살행처)니라
(2) 보살의 원리처(遠離處)
云何名菩薩摩訶薩親近處(운하명보살마가살친근처)오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이 不親近國王王子(불친근국왕왕자)와
大臣官長(대신관장)하며 不親近諸外道梵志(불친근제외도범지)와
尼犍子等(니건자등)과 及造世俗文筆(급조세속문필)과
讚詠外書(찬영외서)와 及路伽耶陀(급로가야타)와
逆路伽耶陀者(역로가야타자)하며
亦不親近諸有兇戲(역불친근제유흉희)와 相扠相撲(상차상박)과
及那羅等(급나라등)의 種種變現之戲(종종변현지희)하며
又不親近旃陀羅(우불친근전다라)와
及畜猪羊雞狗(급축저양계구)와 畋獵漁捕(전렵어포)의
諸惡律儀(제악율의)니 如是人等(여시인등)이
或時來者(혹시래자)어든 則爲說法(즉위설법)하대
無所希望(무소희망)하며
又不親近求聲聞比丘比丘尼(우불친근구성문비구비구니)와
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바이)하고 亦不問訊(역불문신)하며
若於房中(약어방중)이나 若經行處(약경행처)나
若在講堂中(약재강당중)하야 不共住止(불공주지)하고
或時來者(혹시래자)면 隨宜說法(수의설법)하대
無所希求(무소희구)니라
文殊師利(문수사리)야 又菩薩摩訶薩(우보살마하살)이
不應於女人身(불응어녀인신)에 取能生欲想相(취능생욕상상)하야
而爲說法(이위설법)하고 亦不樂見(역불낙견)하며
若入他家(약입타가)어든
不與少女處女寡女等共語(불여소녀처녀과녀등공어)하며
亦復不近五種不男之人(역부불근오종불남지인)하야
以爲親厚(이위친후)하며 不獨入他家(불독입타가)하고
若有因緣(약유인연)하여 須獨入時(수독입시)어든
但一心念佛(단일심념불)하며 若爲女人說法(약위여인설법)이어든
不露齒笑(불로치소)하고 不現胸臆(불현흉억)하며
乃至爲法(내지위법)하야도 猶不親厚(유불친후)어든
況復餘事(황부여사)리요 不樂畜年少弟子(불낙축년소제자)와
沙彌小兒(사미소아)하고 亦不樂與同師(역불락여동사)니라
(3) 보살의 친근처(親近處)
常好坐禪(상호좌선)하대 在於閑處(재어한처)하야
修攝其心(수섭기심)이니 文殊師利(문수사리)야
是名初親近處(시명초친근처)니라
復次菩薩摩訶薩(부차보살마하살)이
觀一切法空如實相(관일체법공여실상)하야 不顚倒(부전도)하며
不動不退不轉(부동불퇴부전)하대 如虛空(여허공)하야
無所有性(무소유성)이라 一切語言道斷(일체어언도단)하야
不生不出不起(불생불출불기)하며 無名無相(무명무상)하야
實無所有(실무소유)라 無量無邊(무량무변)하고
無礙無障(무애무장)이언만 但以因緣有(단이인연유)하고
從顚倒生故說(종전도생고설)이니
常樂觀如是法相(상락관여시법상)이면
是名菩薩摩訶薩(시명보살마하살)의 第二親近處(제이친근처)니라
(4)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1> 보살의 행처와 친근처
爾時世尊(이시세존)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若有菩薩(약유보살)이 於後惡世(어후악세)에
無怖畏心(무포외심)으로 欲說是經(욕설시경)인댄
應入行處(응입행처)와 及親近處(급친근처)니
常離國王(상리국왕)과 及國王子(급국왕자)와
大臣官長(대신관장)과 兇險戱者(흉험희자)와
及栴陀羅(급전다라)와 外道梵志(외도범지)하며
亦不親近(역불친근) 增上慢人(증상만인)과
貪著小乘(탐착소승)하는 三藏學者(삼장학자)하며
破戒比丘(파계비구)와 名字羅漢(명자나한)과
及比丘尼(급비구니)의 好戱笑者(호희소자)와
深着五欲(심착오욕)과 求現滅度(구현멸도)하난
諸優婆夷(제우바이)를 皆勿親近(개물친근)이니라
若是人等(약시인등)이 以好心來(이호심래)하야
到菩薩所(도보살소)하야 爲聞佛道(위문불도)어든
菩薩則以(보살칙이) 無所畏心(무소외심)으로
不懷希望(불회희망)하고 而爲說法(이위설법)하며
寡女處女(과녀처녀)와 及諸不男(급제불남)을
皆勿親近(개물친근)하야 以爲親厚(이위친후)하며
亦莫親近(역막친근) 屠兒魁膾(도아괴회)와
畋獵漁捕(전렵어포)하여 爲利殺害(위리살해)하며
販肉自活(판육자활)과 衒賣女色(현매여색)하난
如是之人(여시지인)을 皆勿親近(개물친근)하며
兇險相撲(흉험상박)과 種種嬉戱(종종희희)와
諸婬女等(제음녀등)을 盡勿親近(진물친근)하며
莫獨屛處(막독병처)하야 爲女說法(위여설법)하고
若說法時(약설법시)어든 無得戱笑(무득희소)하며
入里乞食(입리걸식)에는 將一比丘(장일비구)요
若無比丘(약무비구)어든 一心念佛(일심염불)하며
是則名爲(시즉명위) 行處近處(행처근처)니
以此二處(이차이처)로 能安樂說(능안락설)이니라
<2> 진리는 원근(遠近)이 없다
又復不行(우부불행) 上中下法(상중하법)과
有爲無爲(유위무위)와 實不實法(실불실법)하며
亦不分別(역불분별) 是男是女(시남시녀)하며
不得諸法(부득제법)하고 不知不見(부지불견)일새
是則名爲(시즉명위) 菩薩行處(보살행처)니라
一切諸法(일체제법)이 空無所有(공무소유)라
無有常住(무유상주)하고 亦無起滅(역무기멸)이니
是名智者(시명지자)의 所親近處(소친근처)라
顚倒分別(전도분별)은 諸法有無(제법유무)와
是實非實(시실비실)과 是生非生(시생비생)이니
在於閑處(재어한처)하야 修攝其心(수섭기심)하대
安住不動(안주부동)을 如須彌山(여수미산)하며
觀一切法(관일체법)이 皆無所有(개무소유)라
猶如虛空(유여허공)하야 無有堅固(무유견고)하며
不生不出(불생불출)하고 不動不退(부동불퇴)하야
常住一相(상주일상)이 是名近處(시명근처)니라
<3> 제일행법의 성취
若有比丘(약유비구)이 於我滅後(어아멸후)에
入是行處(입시행처)와 及親近處(급친근처)하면
說斯經時( 설사경시)에 無有劫弱(무유겁약)이니라
菩薩有時(보살유시)에 入於靜室(입어정실)하야
以正憶念(이정억념)으로 隨義觀法(수의관법)하고
從禪定起(종선정기)하야 爲諸國王(위제국왕)과
王子臣民(왕자신민)과 婆羅門等(바라문등)하야
開化演暢(개화연창)하야 說斯經典(설사경전)하면
其心安隱(기심안은)하야 無有怯弱(무유겁약)이니
文殊師利(문수사리)야 是名菩薩(시명보살)이
安住初法(안주초법)하야 能於後世(능어후세)에
說法華經(설법화경)이니라
2 입의 안락행
(1) 입의 안락행의 행법
又文殊師利(우문수사리)야
如來滅後於末法中(여래멸후어말법중)에 欲說是經(욕설시경)인댄
應住安樂行(응주안락행)이니라 若口宣說(약구선설)하며
若讀經時(약독경시)엔 不樂說人及經典過(불락설인급경전과)하고
亦不輕慢諸餘法師(역불경만제여법사)하며
不說他人好惡長短(불설타인호오장단)하며 於聲聞人(어성문인)에
亦不稱名(역불칭명)하야 說其過惡(설기과악)하고
亦不稱名(역불칭명)하야 讚歎其美(찬탄기미)하며
又亦不生怨嫌之心(우역불생원혐지심)이니라
善修如是安樂心故(선수여시안락심고)로 諸有聽者(제유청자)에
不逆其意(불역기의)하며 有所難問(유소난문)이면
不以小乘法答(불이소승법답)하고 但以大乘(단이대승)으로
而爲解說(이위해설)하야 令得一切種智(영득일체종지)니라
입의 안락행 - 입의 안락행의 행법 : 이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 그런 뜻이고요. 또 다른 어떤 소승경전 같은 것을 가지고 말하지 말라. 그것 한 번 잠깐 보겠습니다.
又文殊師利(우문수사리)야, 또 문수사리야
如來가 滅後에 於末法中(여래멸후어말법중)에 欲說是經(욕설시경)인댄, 이 경전을 설하고자 할진댄 應住安樂行(응주안락행)이니라.
응당히 안락행에 머물지니라. 若口宣說(약구선설), 만약 입으로써 宣說하며 若讀經時(약독경시)엔, 만약에 독경할 때엔
不樂說人及經典過(불락설인급경전과). 사람과 그리고 경전에 대한 허물을 즐겨 말하지 말고, 亦不輕慢諸餘法師(역불경만제여법사)하여,
다른 나머지 법사들을 가벼이 하거나 업신여기지 말며,
不說他人好ㆍ惡ㆍ長ㆍ短(불설타인호오장단)하며.
다른 사람의 좋고 나쁘고 장점과 단점. 이런 것들도 말하지 말며,
於聲聞人(어성문인)에, 성문인에 대해서
亦不稱名(역불칭명)하야, 또한 이름을 일컬어서 말하지 말라.
그래서 제가 아까 실명을 말하지 않았잖아요. 허허허허허허
亦不稱名해서, 이름을 일컬어가지고서 說其過惡(설기과악)하고,
그의 過惡을 말하지 말라 그랬어요. 그 사람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실명을 이야기했다면 앞뒤가 안 맞네요.
亦不稱名(역불칭명)하야 讚歎其美(찬탄기미). 또 좋은 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 어떤 사람” 이렇게 말할 것이지 실명을 들먹거려가면서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일컬어서 말하지 말라. 又亦不生怨嫌之心(우역불생원혐지심)이니라. 또 亦不生怨嫌之心. 원망하거나 혐오하는, 싫어하는 그런 마음도 내지 말지니라. 善修如是安樂心故(선수여시안락심고)로,
이와 같은 안락한 마음을 잘 수행한 까닭으로 諸有聽者(제유청자)에,
모든 법문을 듣는 사람에게 不逆其意(불역기의)라. 그 뜻을 거스르지 아니한다. 그랬어요.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품격ㆍ그 사람의 생활ㆍ그 사람의 말씨ㆍ또 태도ㆍ평소에 어떤 사람하고 가까이...
그 전에 저하고 좀 가까이 살던 사람이, 그 사람은 계속 크게 친하지도 않은데 지가 누구 장관, 누구 국회의원 아주 친한 것같이 늘 말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 더러 보면 있지요? 실지로 친하지도 않으면서 어쩌다가 한 번 스치고 지나간 인연을 가지고 평생 우려먹는 겁니다. 그걸 가지고 아~ 친한 것같이 그렇게... 참, 모자란 사람이지요. 사실 그것 참 모자란 사람입니다.
특히 수행자가 돼가지고 아니 부처님, 이 세상에서 최고의 스승을 모시고 있고, 최고의 수준 높은 인생의 교훈들을 부처님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 무슨 정치인알고, 무슨 장관알고 어쩌고 그것이 자랑꺼리가 된다니 제가 지금 생각해도 그런 것 참 부끄러워요.
그것은 참 모양새가 아닙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법화경이 아니라,
又 법화경을 설하더라도 별로 신임이 안 가지요.
여기 안락행은 그런 이야기들을 해놨어요. 그 다음에 중요합니다.
선 그어야 됩니다.
有所難問(유소난문)이면 不以小乘法答(불이소승법답)하고
但以大乘(단이대승)으로 而爲解說(이위해설)하야
令得一切種智(영득일체종지)니라.
어떤 이가 질문을 한다 이 겁니다. 인생에 대해서, 아니 불법에 대해서 질문하면 소승 법으로써 답하지 말라. 소승 법으로써... 다만 대승으로써 그를 위해서 해설해주고 一切種智를 얻도록 해야 된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인간의 그 위대한 본성에 대해서 자꾸 이야기를 해야지, 그것이 대승이거든요. 그래야지 사람이 업이 어떻다ㆍ무슨 죄업이 어떻다ㆍ참회를 어떻게 해야 된다. 계속 그런 식으로 몰고 가면요?
사람을 어떤 하나님의 종이라고 가르치는 종교하고 하나도 다를 바 없어요.
사람을, 왜 멀쩡한 사람을 종이라고 그래요?
왜 멀쩡한 사람을 죄업이 많다고 그러고, 참회를 해야 된다고 그러고,
하~~, 사람을 그런 식으로 유도하면 그것은 올바른 종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말 제대로 안목이 갖춰진 성인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물론 방편으로 그런 말은 할 수가 있습니다. 법화경에는 무슨 죄업을 참회해야 된다. 그런 말 없어요. 오로지 우리 인간이 갖추고 있는 그 궁극적 차원의 본래인의 위대한 내용을 한껏 들추어내는 겁니다.
잘 이해해서 그것을 들추어내서 서로 찬양해주고 서로 존경해주고 서로 받들어주고, 그런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굶고 있으면, 부처님이 굶고 있다고 생각하고 가서 밥을 대접하고, 그 사람이 아프면 부처님이 아프다고 생각하고 가서 보살필 줄 아는 그런 마음이 말하자면 법화경의 마음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돼요. 그것이 대승입니다.
그 다음에 게송으로 하는 것은 넘기고요.
마음의 안락행 잠깐 볼까요?
(2)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1> 입의 안락행의 행법
爾時世尊(이시세존)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菩薩常樂(보살상락) 安隱說法(안은설법)하대
於淸淨地(어청정지)에 爾時牀座(이시상좌)하며
以油塗身(이유도신)하야 澡浴塵穢(조욕진예)하며
著新淨衣(착신정의)하야 內外俱淨(내외구정)하고
安處法座(안처법좌)하야 隨問爲說(수문위설)하며
若有比丘(약유비구) 及比丘尼(급비구니)와
諸優婆塞(제우바새) 及優婆夷(급우바이)와
國王王子(국왕왕자)와 羣臣士民(군신사민)이어든
以微妙義(이미묘의)로 和顔爲說(화안위설)하며
若有難問(약유난문)이면 隨義而答(수의이답)하대
因緣譬喩(인연비유)로 敷演分別(부연분별)하야
以是方便(이시방편)으로 皆使發心(개사발심)하고
漸漸增益(점점증익)하야 入於佛道(입어불도)하며
除懶惰意(제나타의)와 及懈怠想(급해태상)하고
離諸憂惱(이제우뇌)하야 慈心說法(자심설법)하며
晝夜常說(주야상설) 無上道敎(무상도교)하대
以諸因緣(이제인연)과 無量譬喩(무량비유)로
開示衆生(개시중생)하야 咸令歡喜(함령환희)하며
衣服臥具( 의복와구)와 飮食醫藥(음식의약)으로
而於其中(이어기중)에 無所希望(무소희망)하고
但一心念(단일심념) 說法因緣(설법인연)하야
願成佛道(원성불도)하대 令衆亦爾(영중역이)하면
是則大利(시즉대리)라 安樂供養(안락공양)이니라
<2> 제이행법의 성취
我滅度後(아멸도후)에 若有比丘(약유비구)가
能演說斯(능연설사) 妙法華經(묘법화경)하대
心無嫉恚(심무질에)와 諸惱障礙(제뇌장애)하고
亦無憂愁(역무우수)와 及罵詈者(급매리자)하며
又無怖畏(우무포외)와 加刀杖等(가도장등)하고
亦無擯出(역무빈출)은 安住忍故(안주인고)니라
智者如是(지자여시) 善修其心(선수기심)하야
能住安樂(능주안락)하대 如我上說(여아상설)이면
其人功德(기인공덕)은 千萬億劫(천만억겁)에
算數譬喩(산수비유)로 說不能盡(설불능진)이니라
3 마음의 안락행
(1) 마음 안락행의 행법
又文殊師利(우문수사리)야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이
於後末世法欲滅時(어후말세법욕멸시)에
受持讀誦斯經典者(수지독송사경전자)는
無懷嫉妬諂誑之心(무회질투첨광지심)하고
亦勿輕罵學佛道者(역물경매학불도자)하야
求其長短(구기장단)하며 若比丘比丘尼(약비구비구니)와
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바이)의 求聲聞者(구성문자)와
求辟支佛者(구벽지불자)와 求菩薩道者(구보살도자)에
無得惱之(무득뇌지)하야 令其疑悔(영기의회)니
語其人言(어기인언)하대 汝等去道甚遠(여등거도심원)이라
終不能得一切種智(종불능득일체종지)리니
所以者何(소이자하)오 汝是放逸之人(여시방일지인)이라
於道懈怠故(어도해태고)라하며
又亦不應戱論諸法(우역불응희론제법)하야
有所諍競(유소쟁경)이니라
當於一切衆生(당어일체중생)에 起大悲想(기대비상)하고
於諸如來(어제여래)에 起慈父想(기자부상)하며
於諸菩薩(어제보살)에 起大師想(기대사상)하고
於十方諸大菩薩(어시방제대보살)에 常應深心(상응심심)으로
恭敬禮拜(공경예배)하며 於一切衆生(어일체중생)에
平等說法(평등설법)하대 以順法故(이순법고)로
不多不少(불다불소)하며 乃至深愛法者(내지심애법자)에
亦不爲多說(역불위다설)이니라
又文殊師利(우문수사리)야, 또 문수사리야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이 於後末世에 法欲滅時(어후말세법욕멸시)에, 말세에 법이 멸하려고 할 때에 受持讀誦斯經典者(수지독송사경전자)는. 이 경전을 수지하고 독송 하는 사람은 無懷嫉妬諂誑之心(무회질투첨광지심)하고, 질투하거나 꼬부라진 마음. 좀 비뚤어진 그런 마음을 품지를 말고, 亦勿輕罵學佛道者(역물경매학불도자). 불도 배우는 사람을 가벼이 꾸짖지도 말라. 求其長短(구기장단)하며, 또 그 사람의 장단점도 구하지 말라.
사람이 개인적으로 능력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을 수도 있지요. 그런 데에 초점을 맞춰가지고 거기에 관심쓰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그야말로 딴 사람 손가락질 하나하면 나한테 로는 손가락이 세 개가 향한다고 하듯이 사람은 다 거기 거기지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그저 앉기만 하면 남의 단점만 이야기하는 그런 악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적지가 않아요. 그런 것들도 말하자면 법화행자로서ㆍ수행자로서ㆍ스님으로서ㆍ불자로서 모양새가 아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참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요.
若比丘比丘尼(약비구비구니)와, 만약 비구ㆍ비구니와
優婆塞ㆍ優婆夷(우바새우바이)와 求聲聞者(구성문자)와, 성문을 구하는 자와 求辟支佛者(구벽지불자)와, 벽지불을 구하는 자와 求菩薩道者(구보살도자)에, 보살도를 구하는 자에 無得惱之(무득뇌지)하야,
그 사람들을, 어떤 경우의 사람이라도 그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라 이 말입니다. 令其疑悔(영기의회). 그들로 하여금 의혹 품고 뉘우치게 하지 말지니
語其人言(어기인언)하대, 그 사람을 향해서 말하되
汝等去道甚遠(여등거도심원)이라. “너는 도하고는 10만 8천리야.” 이런 소리나 하고... 終不能得一切種智(종불능득일체종지)니라. “그래 가지고는 마침내 너는 一切種智 를 못 얻는다.” 이런 소리를 하지 말라 말입니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汝是放逸之人(여시방일지인)지니라.
“너는 게으른 놈이야. 於道懈怠故(어도해태고). 도에 있어서 너무 게을러. 그래서 내가 욕한다.” 이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 이것이지요.
又亦不應戱論諸法(우역불응희론제법)하야, 제법을 희론해 가지고서
有所諍競(유소쟁경). 諍競 = 競諍. 같은 뜻이지요. 다투고 하지 말라 말입니다. 요즘 신문에 보니까, 불설. 大乘非佛說(대승비불설)이니, 또 무슨 아함부도 불설이 아니니, 또 남방불교 공부해온 사람하고 이쪽에서 대승불교 공부한 사람인가? 그 사람하고 같이 남방불교 공부하긴 했는데 이 사람은 대승 쪽입니다. 그래 그 사람하고 법보 신문에 보면 끊임없이 그것이 지금 서로 옳고 그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쭉~ 나옵니다.
법보 신문에요.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상당히 발전적이기도 하고, 또 거기서 공부 할 수도 있는데요. 그래도 끝없이 평행선을 가지 “아 제가 그거 몰랐습니다. 그렇게 이해하겠습니다.” 라고 결론을 내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어요. 끝까지 평행선을 가다가 그만 안 하지요 그냥...
상대를 안 할 뿐이지 “아 내가 잘 못 알았다. 앞으로는 선생님 말씀을 잘 이해하고 나도 그렇게 알겠습니다.” 라고 그렇게 답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그만치 말세중생들은 증상만이라고 아까 나왔는데 잘 난체 하는 마음. 지가 잘 났다고 하는 그런... 그래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그런 자세가 근래에 아주 심합니다.
競諍하지 말라. 當於一切衆生(당어일체중생)에, 마땅히 일체중생에게
起大悲想(기대비상)하고, 大悲想을 내서, 연민히 여기는, 대자상보다도 대비상이 더 좋아요. 연민히 여기는 마음을 내라. 연민히 여기는 생각을 일으키고 於諸如來(어제여래)에 起慈父想(기자부상)하며, 모든 여래에게는
慈父想을 일으키라. 아주 자비스러운 아버지라고 하는 그런 생각을 일으키며, 於諸菩薩(어제보살)에 起大師想(기대사상)하고,
모든 보살에게는 大師想. 큰 스승이라고 하는 생각을 일으키고,
於十方諸大菩薩(어시방제대보살)에 常應深心(상응심심)으로,
시방제대보살에게는 항상 응당히 깊은 마음으로 恭敬禮拜(공경예배)하며,
於一切衆生(어일체중생)에게는 平等하게 說法(평등설법)하대 以順法故(이순법고)로, 법을 순하는 까닭으로 不多不少(불다불소)하며, 많게도 하지 않고 적게도 하지 아니해. 적당하게 乃至深愛法者(내지심애법자)에, 깊이 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亦不爲多說(역불위다설)이니라. 또한 너무 많이 설하지도 말라. 알맞게 설하라 이런 말이지요.
제삼행법의 성취 이것은 다 같은 내용이고요. 그 다음에
(2) 제삼행법의 성취
文殊師利(문수사리)야 是菩薩摩訶薩(시보살마하살)이
於後末世法欲滅時(어후말세법욕멸시)에
有成就是第三安樂行者(유성취시제삼안락행자)는
說是法時(설시법시)에 無能惱亂(무능뇌란)하며
得好同學(득호동학)하야 共讀誦是經(공독송시경)하고
亦得大衆(역득대중)이 而來聽受(이래청수)하며
聽已能持(청이능지)하고 持已能誦(지이능송)하며
誦已能說(송이능설)하고 說已能書(설이능서)하며
若使人書(약사인서)하야 供養經卷(공양경권)하고
恭敬尊重讚歎(공경존중찬탄)이니라
(3)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1> 마음 안락행의 행법
爾時世尊(이시세존)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사대
若欲說是經(약욕설시경)인댄 當捨嫉恚慢(당사질에만)과
諂誑邪僞心(첨광사위심)하고 常修質直行상수질직행()하며
不輕蔑於人(불경멸어인)하고 亦不戱論法(역불희론법)하며
不令他疑悔(불령타의회)하대 云汝不得佛(운여부득불)하며
是佛子說法(시불자설법)하대 常柔和能忍(상유화능인)하고
慈悲於一切(자비어일체)하야 不生懈怠心(불생해태심)하며
十方大菩薩(시방대보살)이 愍衆故行道(민중고행도)어든
應生恭敬心(응생공경심)하대 是則我大師(시즉아대사)라하며
於諸佛世尊(어제불세존)에 生無上父想(생무상부상)하며
破於憍慢心(파어교만심)하고 說法無障礙(설법무장애)니
<2> 제삼행법의 성취
第三法如是(제삼법여시)라 智者應守護(지자응수호)하야
一心安樂行(일심안락행)이며 無量衆所敬(무량중소경)이니라
4 서원 안락행
(1) 서원 안락행의 행법
又文殊師利(우문수사리)야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이
於後末世法欲滅時(어후말세법욕멸시)에
有持是法華經者(유지시법화경자)는
於在家出家人中(어재가출가인중)에 生大慈心(생대자심)하고
於非菩薩人中(어비보살인중)에 生大悲心(생대비심)이니라
應作是念(응작시념)하대 如是之人(여시지인)은
則爲大失(즉위대실)이라 如來方便(여래방편)으로
隨宜說法(수의설법)을 不聞不知(불문부지)하며
不覺不問(불각불문)하며 不信不解(불신불해)로다
其人(기인)이 雖不問不信(수불문불신)하며
不解是經(불해시경)이나
我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아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시)에
隨在何地(수재하지)하야
以神通力智慧力引之(이신통력지혜력인지)하야
令得住是法中(영득주시법중)호리라하라
(2) 제사행법의 성취
文殊師利(문수사리)야 是菩薩摩訶薩(시보살마하살)이
於如來滅後(어여래멸후)에 有成就此第四法者(유성취차제사법자)
는 說是法時(설시법시)에 無有過失(무유과실)이니라
常爲比丘比丘尼(상위비구비구니)와
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바이)와 國王王子(국왕왕자)와
大臣人民(대신인민)과 婆羅門居士等(바라문거사등)의
供養恭敬(공양공경)하고 尊重讚歎(존중찬탄)하며
虛空諸天(허공제천)은 爲聽法故(위청법고)로
亦常隨侍(역상수시)하나니라
若在聚落城邑(약재취락성읍)과 空閑林中(공한림중)하야
有人來欲難問者(유인내욕난문자)면 諸天晝夜(제천주야)에
常爲法故(상위법고)로 而衛護之(이위호지)하야
能令聽者(능령청자)로 皆得歡喜(개득환희)니
所以者何(소이자하)오
此經是一切過去未來現在諸佛(차경시일체과거미래현재제불)의
神力所護故(신력소호고)니라
4 서원 안락행. 아까 智慧ㆍ慈悲ㆍ敎化ㆍ願力(지혜자비교화원력). 이것은 서원 때문에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서원을 세우다.” 서원이 없으면 말하자면 “죽은 존재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넘겨서
二 법화경의 덕을 찬탄하다 하고 또 비유가 하나 나와요.
이것 중요한 비유입니다.
二 법화경의 덕을 찬탄함
1 법을 설하다
文殊師利(문수사리)야 是法華經(시법화경)은
於無量國中(어무량국중)에 乃至名字(내지명자)라도
不可得聞(불가득문)이어던 何況得見(하황득견)하고
受持讀誦(수지독송)이리요
文殊師利(문수사리)야 是法華經(시법화경)은, 이 법화경은
於無量國中(어무량국중)에, 무량한 나라 가운데 乃至名字(내지명자)만이라도 不可得聞(불가득문)이어던, 그 나무묘법화경. 아니면 묘법연화경. 법화경. 이 제목. 이것도 듣기가 어렵다 이 겁니다. 그런데
何況得見(하황득견)하고, 어찌 하물며 전체를 다 얻어 보고, 또
受持讀誦(수지독송)이리요. 받아가지고 읽고 외우는 일이겠는가?
아주 어렵다. 그런 말을 하면서 그 다음에
2 계명주의 비유라. 해가지고 이것은 천자가 머리위에 올려놓는 아주 값진 구슬, 밝은 구슬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로가 큰 사람. 그리고 마지막, 예를 들어서 죽음에 임박해서 나라를 물려줄 때, 그 구슬까지 물려주는 그와 같이 소중한 구슬이듯이 “이 법화경도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이런 내용입니다. 법화경이 부처님의 마지막 재산입니다. 마지막 재산이라고요. 최후로 우리에게 전해주는 그런 내용으로써 계명주의 비유가 있습니다.
2 계명주(髻明珠)의 비유
文殊師利(문수사리)야 譬如强力轉輪聖王(비여강력전륜성왕)이
欲以威勢(욕이위세)로 降伏諸國(항복제국)에
而諸小王(이제소왕)이 不順其命(불순기명)이면
時轉輪王(시전륜왕)이 起種種兵(기종종병)하야
而往討伐(이왕토벌)하대 王見兵衆(왕견병중)에
戰有功者(전유공자)하고 卽大歡喜(즉대환희)하야
隨功賞賜(수공상사)하대
或與田宅聚落城邑(혹여전택취락성읍)하며
或與衣服嚴身之具(혹여의복엄신지구)하며
或與種種珍寶(혹여종종진보)인
金銀瑠璃硨磲瑪瑙珊瑚琥珀象馬車乘奴婢人民(금은유리자거마노
산호호박상마거승노비인민)하대 唯髻中明珠(유계중명주)는
不以與之(불이여지)니 所以者何(소이자하)오
獨王頂上(독왕정상)에 有此一珠(유차일주)하니
若以與之(약이여지)면 王諸眷屬(왕제권속)이
必大驚怪(필대경괴)니라
文殊師利(문수사리)야 譬如强力轉輪聖王(비여강력전륜성왕)이,
비유컨대 강력한 전륜성왕이 있어. 欲以威勢(욕이위세)로, 위세를 쓴 고로, 위세를 떨치기 위해서 降伏諸國(항복제국)에, 여러 나라를 항복받아. 而諸小王(이제소왕)이 그리고 모든 小王에게 不順其命(불순기명)이면, 그 명을 따르지 아니할 것 같으면 時轉輪王(시전륜왕)이,
그 때 轉輪王이 起種種兵(기종종병)하야, 가지가지 병력을 일으켜 가지고서, 공군ㆍ해군ㆍ육군ㆍ해병대 다 일으켜 가지고서 而往討伐(이왕토벌)이여. 가서 討伐하는 것이지요.
王見兵衆(왕견병중)에, 왕이 이렇게 볼 때, 여러 병사들 중에서
戰有功者(전유공자)하고, 싸워서 功이있고 卽大歡喜(즉대환희)하야,
또 그것을 보고는 크게 歡喜해. 그래서 隨功賞賜(수공상사)여, 공을 따라서 상을 주는 겁니다. 하사 하는 것이지요. 유공자에게 상을 주잖아요. 그러면 비단도 한필 주기도하고, 술도 한 말 내리기도하고, 고기도 잡아 주기도하고, 어떤 때는 땅도 이만치, 면소재지만한 땅을 베가지고 평생 대대로 관리해라. 그리고 세금 받아서 네가 가지라. 이런 식으로 상을 주는 것이지요.
或與田宅ㆍ또는 聚落ㆍ城邑(혹여전택취락성읍)하며, 或與衣服ㆍ嚴身之具(혹여의복엄신지구)하며, 의복을 주기도 하고 몸을 장엄하는 그런 여러 가지 장엄꺼리를 주기도해. 或與種種珍寶(혹여종종진보)인 金ㆍ銀ㆍ琉璃ㆍ硨磲ㆍ瑪瑙ㆍ珊瑚ㆍ琥珀ㆍ象ㆍ馬ㆍ車乘ㆍ奴婢ㆍ人民(금 은 유리 자거 마노 산호 호박 상 마 거승 노비 인민). 이런 것을 다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라를 평정 했으니까 정말 논공행상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唯髻中明珠(유계중명주)는, 오직 상투가운데 있는 밝은 구슬은 不以與之(불이여지)라. 결코 주지 않는다. 다른 것 다 줘도 상투위에 있는 그 밝은 구슬만 주지 않는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獨王頂上(독왕정상)에, 홀로 왕의 이마위에
有此一珠(유차일주)하니, 이 한 개의 구슬이 있기 때문이다.
若以與之(약이여지)면, 만약 그것을 줘 버릴 것 같으면
王諸眷屬(왕제권속)이 必大驚怪(필대경괴)니라. 왕이 그것을 줘 버릴 것 같으면 왕위를 상실하는 것이 돼. 왕을 포기 하는 것이 돼. 그러면 다른 권속들이 반드시 크게 놀라고 괴이하게 여길 것이다.
‘저 왕이 돌았나? 어쨌나? 이제 죽으려고 그러는가?’ 이렇게까지 생각 하는 그런 중요한 구슬이다 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삼보에 귀의합니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