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 마우스' 입김으로 불고 빨아 08년 3월 4일 오후 1시 서울대 자연대 강의실에 전동휠체어를 탄 중년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의 몸은 벨트로 휠체어에 고정돼 있었고 팔과 다리 역시 끈으로 묶인 채였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머리뿐이었다.
그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46) 교수였다. 그의 올 첫 번째 강의였다. 이 교수는 휠체어에 연결된 ‘입김으로 작동되는 마우스’에 입을 갖다 댔다. 프로젝터를 통해 보이는 컴퓨터 화면의 커서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클릭, 더블 클릭, 드래그를 자유로이 하며 강의를 진행해 갔다. 마우스의 끝을 빨면 ‘왼쪽 클릭’, 불면 ‘오른쪽 클릭’, 두 번 빨면 ‘더블 클릭’이 됐다. 그의 입은 '손'이자 '다리'였다. 전동휠체어를 움직이는 것도, 컴퓨터 파일과 인터넷 창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도 모두 입으로 했다.
글도 입으로 쓴다. 윈도우 비스타 프로그램에 음성인식 장치가 있어 컴퓨터에 연결된 소형 마이크를 통해 말하면 컴퓨터에 그 내용이 글로 작성된다. 이날 해양지질학을 소개하는 '바다의 탐구'라는 강의를 위해 그는 9시간 동안 수업 준비에 매달렸다. 음성을 문자로 바꿔주는 '음성 인식 프로그램'을 통해 문장을 만들고 다듬었다.
MIT에서 보낸 전쟁 같은 유학생활,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천재들의 게임
인도네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어릴 적부터 꿈꾸어온 해양학자가 되기 위해 서울대 해양학과에 진학한다. 졸업 후 그는 보다 넓은 학문의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MIT 대학원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천재들이 집결한 그 치열한 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천재들의 게임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상묵 교수는 이 천재들의 틈새에서 좌충우돌하며 9년 동안의 연구를 이어 간다. 그리고 드디어 MIT를 떠나는 날, 감격에 사로잡힌 채 앞으로 시작될 희망찬 미래를 꿈꾼다.
세계적인 대규모의 탐사활동을 펼친 과학자, 해양학의 불모지인 조국의 부름을 받다
1997년 당시 한국 해양연구소장의 강력한 권유로 한국에 들어온 이상묵 교수는 해양학의 불모지인 한국의 대양탐사를 진두지휘하며 한국 해양학의 지평을 넓혀 나간다. 이와 함께 과학 외교를 통해 선진국 일색의 과학계에서 한국의 입지를 굳히고 새로운 학문적 연구업적도 쌓아 나간다. 한국해양연구소에서 5년 동안 선임연구원으로 일한 그는 새로운 도전을 찾아 21년 만에 자리가 난 서울대 해양지질학 전공 교수로 임용된다.
하늘은 나에게서 모든 것을 가져가시고, 희망이라는 단 하나를 남겨 주셨다.
평소 관찰과 실험을 중요시한 이상묵 교수는 학생들을 이끌고 미국 야외지질조사에 나선다. 그는 이 연구조사에서 사고를 당하고 전신마비 척수장애를 입지만 불굴의 의지로 재기하여 6개월 만에 강단에 복귀하는 기적을 이룬다. 새로운 삶을 얻은 이상묵 교수는 IT기술에 힘입어 보다 의욕적으로 연구활동을 펼치고 장애인의 재활과 복지를 돕는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MIT 해양학 박사, 첨단 해양탐사선의 수석과학자, 서울대 교수, 멈춤없이 질주하던 그의 삶에 커다란 불행이 닥쳤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서울대가 공동으로 미국에서 진행한 지질야외조사의 마지막 코스인 데스밸리(Death Valley)로 향하던 중 이상묵 교수가 운전하던 밴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차 지붕이 그의 목을 짓눌렀다. 사고 3일 만에 깨어난 그는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사지가 마비된 것이다. '내 인생도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에게 놀라운 재기의 기회가 주어졌다. 같은 해 8월 이 교수는 LA에 있는 ‘컴퓨터를 활용한 재활센터’로 이송되었다.
센터에서 그는 3주간의 피나는 훈련으로 입과 눈으로 작동할 수 있는 수십 가지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배운 후 그 해 가을 한국으로 돌아와 머리만으로 예전처럼 연구와 강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서울대 측에 증명해 보였다. 그는 지난해 가을학기부터 강단에 다시 섰다.
그는 사고의 희생자가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의 안정을 위해 모두가 숨겨 온 사실이 있었다. 넉 달이 지난 뒤에야 이 교수는 자신이 아끼던 제자가 사고 당시 즉사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전 언론이 주목한 인간 의지의 승리 드라마
제자의 죽음 때문에 한동안 자신을 숨기고 살았던 그의 삶이 한 기자의 눈에 포착되어 2008년 3월 5일자 신문에 대서특필된다. 뒤를 이어 우리나라 거의 모든 언론이 이 교수를 찾아 서울대로 모여든다. 그들은 이상묵 교수와의 인터뷰를 하기 위해 가바위보로 순서를 정하기도 했다.
그의 감동적인 인생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정부의 복지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뉴욕타임스>에도 특집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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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도서관에서 예약한 도서를 찾아왔어요. 이상묵교수의 '0.1그램의 희망'이라는 책인데 고을님들도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나도 읽고 딸아이한테 권해 보렵니다.
감동 또 감동! 참으로 훌륭한 분이십니다.
의지의 한국인이십니다. 교수님에게 희망의 박수을 보냅니다.ㅉ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