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야구 경기중에 잊지 못할 경기였고
20대의 젊은 각오가 보이는구먼.
( 91년 일기에서 발췌)
91년도 한국 시리즈를 보고서
코리안 시리즈가 열리는 10월 둘째 주간은 직장에 나가지 않고
새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이때는 철도청 시험에 합격하고 발령을 몇개월째 기다리고 있었음)
그래서 고스란히 집에서 T.V를 통해 한국 프로야구의 현주소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시즌 경기에서 1위를 차지한 “해태 타이거즈”와
2위를 차지한 “빙그레 이글스”가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다.
두 팀은 7차전 경기중 먼저 4승을 한 팀이 최고의 우승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무척 좋아했고, 야구와는 상당한 인연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스포츠를 다 좋아 하지만
야구만큼 즐기는 운동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시리즈 1차전이 빛 고을 광주 무등 경기장에서 있었다.
홈팀인 광주 해태와 대전 빙그레는 좋은 고장 역사의 함성이 들려 오는듯한
광주의 하늘에 축포를 쏘아 올렸다.
예상 밖으로 빙그레가 경기를 리드해 나갔으나, 시간이 흐르고 횟수가 거듭 될수록 해태쪽으로 경기가 기울더니, 결과는 해태의 역전승으로 끝나 버렸다.
2차전 광주 경기도 해태의 역전승으로 끝났다.
3차전은 대전부르스가 울려 퍼지는 한밭벌에서 열렸다.
소위 내놓으라는 선수가 다 모인 가운데
해태와 빙그레 선수들은 야구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빙그레 투수 송진우는 8회말 투아웃까지 단 한명의 주자도 루에
내보내지 않는 완벽한 퍼펙트게임을 이어 가고 있었고,
점수는 1:0으로 빙그레가 앞서고 있었다.
그런데 해태가 투아웃 이후 대타를 기용 했는데,
대타자가 평범한 파울 플라이를 쳐 올렸다.
파울 플라이만 잡으면 퍼펙트 경기를 바라 볼 수 있는 상황이었고,
승리가 눈 앞에 있었으나 빙그레 선수가 놓치고 말았다.
그 후 송진우는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대타자를 포볼로 루에 보내고,
계속 안타가 터져서 또 다시 뼈아픈 3연속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인간의 정신력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교훈적인 게임이었다.
계속 역전패를 당한 대전 팬들은
경기장을 별로 찾지 않은 가운데 4차전 경기가 열렸다.
빙그레 이글스는 7회까지 홈런도 치고, 안타도 쳐서,
2:0으로 여유있게 앞서고 있었다.
그런데 8회 초에 또 묘한 일이 일어났다.
해태가 3점을 빼서 3:2로 역전이 되었다.
그러자 해태 김응룡 감독은 즉시 선동열을 투입했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선수 선동열이다.
당연히 점수를 빼기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설가도 얘기하고,
나도 당연히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은 투런 홈런을
빙그레 이글스 강석천 선수에게 맞고 말았다.
스코어는 다시 4:3으로 역전이 됐다.
9회초만 잘 막으면 한국시리즈는 서울로 와서 5차전을 갖게 될 것이고
내일 신문에서는 홈런 기사로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러나 해태의 선수들은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9회에서 또 다시 5:4로 스코어를 뒤엎어 버리고 말았다.
해태의 질풍노도와 같은 4연속 역전극으로 91년 한국 시리즈는 막을 내렸다.
야구를 대개 인생으로 비교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투수가 수십구 투구 중에서 단 1구를 잘못 던져서 무너지는 것을
이번 한국 시리즈를 통해서 보았다.
그렇다 사람 생이 계속 이어져 가고 있는데, 단 하루쯤이야,
단 한 시간쯤이야, 하는 식의 삶이 내 인생의 커다란 함정,
커다란 실투를 남겨서 영원히 줍지 못할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되어 질 것이다.
나를 위해서라도, 내 이웃을 위해서라도 한 구 한 구에
혼이 들어가는 공을 뿌려가는 삶을 만들어 가야겠다.
첫댓글 201승의 금자탑을 세운 송진우선수도 이런 뼈아픈 기억이 있는데, 어제 한 경기에 아쉬워 할 필요가 있는가?
양수형만의 독특한 필력이 우연이 아니군요 일기의 내공이 있었음을 알겠네요, 참고로 그때 저는 초보 교도관으로 근무하면서 91년 경기를 보았습니다. 쌍방울 창단 첫해라서 기억이 남는해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