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여행기.
21일 아침.
아침 6시 30분 기상.
전날 밤부터 날씨 때문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고속도로는 괜찮은지...비행기가 뜰 수 있을지...
우선 공항에 전화를 해보니 정상대로 비행기는 운항한다고 해서 다행이다. 대충 아침을 챙겨 먹고
아내가 꾸려놓은 짐들 중에 빠진게 있나 없나 확인하여 챙길건 챙기고 뺄 건 빼고 하여 마냥 들뜬 아들녀석을 태우고 청주로 향했다.
비행기가 마냥 신기한 아들 녀석...
좌석을 찾아 앉자 어젯밤부터 밀린 잠에 졸음이 쏟아진다....잠들었다 싶었는데 벌써 제주다.
처음에 계획을 잡을 땐 렌트니 뭐니 다 귀찮아서 한라산만 다녀오고 그냥 한군데 명도암에만 푸욱 눌러 있다 올 참이었다.
그러나...
명도암에 가려고 프런트에 알아보니 거기 가는 택시비만 '만오천원'이랜다. 당근 명도암 다니는 차들이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천상 렌트 아니면 택시를 탈 판인데...
렌탈비를 따져보니 48시간이면 9만 7천원. 돌아오는 비행기가 저녁 7시 50분이니 7시까지면 13만 6천원.. 결국 렌트카를 쓰기로 했다. 요금을 치르고 아반떼를 받아 제주시를 벗어났다. 지난 여름 신나게 놀았던 곽지 해수욕장에 들러 아내와 애는 바닷가에서 두어시간 놀고 나는 차안에서 밀린 잠을 청했다.
여기저기 명소마다 다니는 여행은 이젠 질색이므로 애월에서 "성x식당"에 들러 해물탕으로 점심을 먹고 아들에 대한 마땅한 배려라 생각하여 한림공원엘 갔다. 그새 입장료가 5백원 올랐구나. 제주에 있는 시설지 중에 가꾸고 운영하는 이의 정성이 보이는 곳 중에 하나이다. 아이들과 제대로 보자면 한나절은 꼬박 걸릴 것 같다. 물론 아직도 개선해야할 여지는 많지만...
한림공원을 둘러보고 나니 벌써 네시다. 숙소인 명도암을 찾아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그냥 편하게 왔던 길로 가서 제주시를 거쳐 가면 그만이지만 시간도 넉넉하겠다 여기저기 볼 거리가 없나 하여 지도를 보고 1116번 도로-이시돌 목장-서부 산업도로-1117번 산록도로-5.16도로를 따라 가기로 결정. 이시돌 목장 길로 들어 갔는데 이건 정말 미로같다. 가다 보면 길이 끝나고...그 길이 그 길 같고...여하튼 이시돌 목장에서 좀 헤맸다. 관음사 매표소 앞을 지나는데 눈이 전혀 녹지 않아 별천지 같다. 성판악으로 이어지는 5.16도로에서 명도암 관광목장으로 가는 길도 볼만 하였다. 삼나무... 제주에 삼나무가 그렇게 많다는 걸 거기서 알았다. 도로 양 옆을 꽉 메운 삼나무 가로수 길이 2Km 정도 이어졌다. 가로수 길에서 명도암 가는 길로 들어서 절물 휴양림을 지나자 오른편에 말끔한 학교 같은 건물이 보이길래 간판을 보니 명도암 유스호스텔이다. 여긴가 싶어 들어갔다가 웬 군인아저씨가 들락 거리므로 아닌갑다 하고는 다시 나와서 제주시 쪽으로 가다보니 커다란 풍차와 '산양가든'이란 간판이 보인다. 여기가 명도암 관광목장. 놀라워라...이렇게 후미진 곳에 제각각 특색있는 식당과 온통 유리로 된 양식당과 커피가게와 승마장 등을 갖춘 농원이 있을 줄이야...
숙소를 확인하고 식당에서 제주 통돼지(원래는 똥돼지다)에 밥을 먹고 숙소로 향했다. 방갈로는 다섯채인데 집마다 2개의 숙소가 있다. 처음에 예약한 방은 침대가 있는 방이었는데 다른 쪽 방을 보니 씽크대가 있지 않은가... 취사도구를 챙겨간 참이라 주인에게 말해 방을 바꾸고 짐을 풀었다. 이렇게 되면 잠자리 정하는 것도 고민이요 먹거리 챙기기도 번거로운데 다음 날도 다른 곳에서 묵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다음날까지 묵기로 했다.
오오~ 장 볼 일이 생겼구나. 대충 씻은 후 제주시에 있는 이마트로 향했다. 제주에 자주 가곤 하지만 신제주와 구제주 길이 항상 헤깔린다. 이마트에서 해물탕 꺼리와 간단한 반찬과 과일을 사고 명도암으로 돌아왔다. 구들장이 따스해서인지 피로가 쌓여서인지 6시에 알람을 듣고도 다시 잠을 청했다. 결국 7시 반에 일어났고 배낭을 꾸려 어찌저찌...성판악에 도착하니 8시 반이다.
벌써 3년전의 일이다... 아내와 함께 이 길을 따라 오르던 기억. 새벽 잠을 설치고 나와 올라가다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에 치여 진달래 밭 대피소에서 통제에 걸려 하염없이 아쉬움을 달래다 되돌아 와야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때...산정동 사람들도 만났었다.
휴게소에서 파는 김밥을 먹고 커피 한잔을 시켜 마신 후 아이젠을 묶고 매표소를 출발한 시각은 9시. 성판악 매표소에서는 9시부터 통제를 하므로 9시 이후에는 입산이 안되거나 진달래 밭까지만 등산을 허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는 9.6Km. 안내서에 의하면 오르는데 4시간 30분 내려오는데 4시간 가량 걸린다고 되어 있다. 4.5Km 지점에는 사라악 대피소(화장실만 운영중)가, 7.5Km지점에는 진달래 밭 대피소(매점, 산장 이용가능)가 있다. 근간에 눈이 자주 왔음에도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인지 등산로는 러셀이 잘 되어 있었다. 간간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표정들도 모두 여유로워 보였다. 고요한 산 길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3.5Km 지점에서 다시 한번 빽빽한 삼나무 숲을 만나 신비한 정취를 느끼도다.
열시 십분.
사라악 대피소에 도착하여 초코바를 먹고 목을 축인후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리는 눈이 건설도 아니고 다니기 불편하게 떡이 되는 눈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저 밟으면 뽀득 거릴 정도의 눈이어서 눈길임에도 참 편한 길이었다. 다시 느낀 점이지만 성판악 길은 표지판이 아주 잘 되어 있다. 구간 거리표시는 물론이고 해발고도까지 거의 100미터마다 표시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아직 어린 주목나무 숲을 지나 초라하고 열악한 진달래밭 대피소에 들렀다. 매점 아저씨(공단 직원)에게 관음사 길이 요즘 어떤지를 물으니 통제중이라고 한다. 매점에서 커피를 한잔 사다가 준비한 떡과 과일로 배를 채우고 정상으로 향했다. 한라산처럼 까마귀가 많은 산도 아마 드믈 것이다. 가는 곳마다 까마귀가 까악까악...~ 그럼에도 별로 재수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오히려 생명체의 친근함이 느껴지는 것은 눈 밭에서 다른 산짐승들을 보기 드믈어서 그런 모양이다. 해발 1800미터의 표식을 지나면 주목 나무 숲도 끝이 나고 침목으로 만든 계단이 시작 된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 정상이 있고 거기에 백록담이 있다. 높아진 고도 때문인지 바람막이를 하던 숲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날씨가 갑작스레 그렇게 변해서인지 계단길에 들어서면서 찬바람이 거세진다.
콧물이 줄줄~ 귀가 얼얼한게 정말 춥다. 그런 와중에도 날이 흐려 제주 전역을 볼 수 없음이 어찌나 억울하고 안타깝던지...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다시올 빌미를 남기는도다.
정상에 도착하니 11시 50분.
한편으로는 썰렁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감회가 남다르기도 하지만...뭐니뭐니해도 춥다는 생각이 으뜸이다. 더 아쉬운 것은 날이 흐려 제주 전역은 고사하고 백록담 건너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백록담이 생각보다 그렇게 큰 것도 한 몫 거들었다. 추운 날씨에도 정상을 지키느라 수고 많으신 공원 관리공단 아저씨(이 사람들은 1박 2일씩 교대근무를 하며 정상을 지킨다) 왈... 그래뵈도 남한 최고봉에 백록담은 둘레가 2Km랜다. 아쉽고도 혹시나 하는 맘으로 확인하는 차원에서 '관음사 길은 어떤가요?' 하고 물었더니 "간 사람도 없고 온 사람도 없으니 가지 마시죠" 차를 성판악에 두고 온 걸 생각해보면 차라리 잘 됐다 싶은 생각도 들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고 생각해보면 첨부터 계획한 관음사 길을 가야겠는데... 이젠 나도 나이가 드나보다. 점잖게..~ "네 알겠습니다" 하고는 잘 나오지도 않을 어두운 사진을 몇장 찍는 걸로도 부족해서 첨 보는 사람 사진까지 찍어주고 명함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산에 오른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 정말 푹 눌러 있다 내려오고 싶었다. 시간이 남아도는지라 서두를 필요가 없으므로... 근데 바람이 지독하게 춥다. 참으로 오랫만에 맛보는 매서운 바람이다. 결국 목출모를 꺼내 쓰는데도 그새 눈이 한바가지 배낭안에 쌓인다. 정상에 오르면 친구들에게 전화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 친구들이 많이 줄었다...아쉽다.
그렇게 다시 올 여지를 남겨두고 정상을 떠난 시간은 12시 30분...
내려와서 성판악에 도착하니 세시다. 국립공원 관리 공단에서 마련한 한라산 사진전을 관람하고 "참 좋은 산행이었노라"고 방명록을 적다.
산 아래.
명도암에서는 비가 내렸음에도 아들녀석이 말을 타고, 어른 양에 새끼양 할 것 없이 양떼를 몰고 괴롭히느라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우산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하지 말랜다고 안할 놈인가... 옷은 흙탕물에 걸래가 되고 암튼 신났던 모양이다.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데 오랫만의 산행에 근육들이 놀랐던 모양이다. 그래도 뜻뜻한 구들장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명도암이 좋은 점 중에 하나다.
돌아오는 날.
아침을 차려 먹고 명도암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막판 아들녀석 말 한차례 더 태워주고...명도암을 나섰다. 말 타기는 11,000원. 명도암 숙박자는 30% 할인. 삼나무 숲이 절경인 절물 휴양림(제주도민은 주차료만 받는다)에 들러 역시 신나게 노닐다가 절물오름(650m)을 아쉬워 하며 5.16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돈내코 유원지에 들렀다가 중문으로 향했다. 여미지 식물원을 관광하고 나니 네시다. 비행기 시간이 다가오므로 서부 산업도로를 따라 제주시에 돌아왔다. "제주 늘봄"에서 저녁을 먹고 공항에서 차를 반납하고 청주행 비행기를 탔다. 청주 공항에 도착하니 9시. 서울 집으로 향했다.
서울 집에서도 푹~ 잘 쉬고 대전 집에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