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 화요일. 가을장마답게 비가 또 쏟아질 것처럼 눅눅한 저녁이었다. 어느새 해가 짧아져 늘 모이던 같은 시간인데도 1학기 하고는 다르게 많이 어두웠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모두 모여 2학기 첫 번째 공부를 시작하였다. 9월 4일에 처음 모였을 때 2학기에 공부할 계획을 세웠다. 올해 안으로 이오덕 선생님의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2부까지는 마치고 2년째 보고 있는 탁정은 선생님의 ≪비교해 보는 재미, 그림책 이야기≫를 끝까지 보기로 하였다. 회보 공부도 계속하기로 하였다. 천천히 꼼꼼하게 공부하고 있어서 속도가 늦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목표를 세워 공부하기로 했다. 이 글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글 네 편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제일 먼저 본 것은 이부영 선생님이 쓰신 ‘초등미술교과서에 나타난 아름다운 우리 집, 아름다운 삶’이다. 교과서를 다시 보자는 큰 제목이 눈길을 끌기도 했지만 우리 집과 삶에 담긴 ‘아름다움’이 글쓰기 정신에 맞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어김없이 들었기 때문이다. 국어교과서가 아닌 미술교과서를 이야기 하신 것도 글쓰기 정신을 더 넓게 볼 수 있어서 새로웠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일들을 더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도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주변의 일을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고 했으면서 우리 자신은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부끄러웠다. 여기에 덧붙여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삶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풀과 나무를 어울리게 심은 집, 재활용품에 고이 심은 꽃이 늘어져 있는 집, 식구들과 친구들 사이에 그 동안 오갔던 따뜻한 쪽지가 한 쪽 벽을 차지하는 집 따위처럼 자신의 개성을 살린 집이나 식구들이 모여 함께 사는 따뜻함이나 식구들의 때 묻은 추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집의 크기가 중요한 세상이다. 이제는 자동차는 거의 모두가 갖고 있으니 있느냐, 없느냐 보다는 어떤 이름을 달고 있는 차를 갖고 있는지를 궁금해 한다. 그런데 이런 어른들의 생각이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 더 문제이다. 저희들끼리도 사는 수준에 따라 편을 갈라서 놀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들의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해주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두 번째로 강삼영 선생님의 ‘삶을 보아야 글이 보인다’를 살펴보았다. 글을 쓰는 것도 삶을 가꾸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글보다 먼저 삶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 삶을 알 수 있는 길이 점점 닫히고 있어서 답답한 마음을 풀어놓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일기 검사를 ‘문제’로 보고 있다는 것은 글을 통해 삶을 나누던 아이들과 선생님에게는 뜬금없이 이야기이다. 아이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해치는 일기 검사를 하고 있다는 것인데 과연 그런지, 그것이 일기 검사의 전부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학기 초에 하는 생활 기초 조사에서 부모님의 직업을 묻는 자리를 없애야 한다는 점도 그렇다. 부모들이 자신들의 직업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직업으로써 한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시대의 흐름 탓에 직업 조사를 안 좋게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 더 문제이다. 지난 3월 회보에 실린 글에서처럼 3월에 나, 우리 식구, 우리 집을 글로 써서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절로 아이들 사는 모습을 알 수 있지만 점점 더 닫히는 세상이 씁쓸하다.
세 번째로 최영숙 선생님의 ‘언니들이 때렸어요’를 살펴보았다. 요즘 아이들은 정말 무섭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이들과 선생님 사이에는 믿음과 사랑이 없어지고 점점 딱딱한 사이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 어느새 아이들에게 가까이 가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또 아이들 문제를 서툴게 보다가는 당하는 아이는 더 심하게 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에게 해를 입히는 아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아이들도 우리가 함께 데리고 가야할 아이들이니 말이다. 아이들끼리도 그렇고 아이들과 선생님 사이에 다정한 이야기가 줄어서 그렇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문제를 풀어가려면 말과 이해가 먼저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네 번째로 이오덕 선생님의 ‘누가 우리 말을 더럽히는가’를 살펴보았다. 그 동안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글 바로쓰기≫를 공부하고 있어서 더 가깝게 느껴지는 글이었다. 우리 말을 더럽히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것이 와 닿았다. 우리들 또한 그런 자리에 서있는데 중국글자말, 일본말에 익숙해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이들의 말을 망치고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는 말을 자꾸 되돌아봄으로써 고쳐가야 할 것은 서둘러 고쳐야 한다. 이오덕 선생님은 중국글자말도 우리 말로 본다는 것에서 출발하신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많이 쓰고 있기 때문에 우리 말로 쉽게 살려 쓸 수 있는 것은 기꺼이 바꾸어 가야 한다고 하셨다. 분명한 건 중국글자말이나 일본말을 많이 쓰다 보면 우리 말의 짜임 전체가 흔들리게 되고 쓸데없이, 말이 안 될 정도로 붙여쓰기를 자꾸 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글자말과 일본말은 우리 글자로 썼을 때와 입으로 말했을 때 알아듣기 힘든 말이 많다. 우리 말로 써도 될 것을 공연히 중국글자말로 쓰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아이들의 말은 중국글자말보다도 순 우리말에 더 맞닿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운동회이며 학예회가 아직 끝나지 않은 학교도 많다고 하는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삶을 가꾸는 교육을 생각했을 때 무엇이 옳은지를 많이 생각하게 되는 때이다. 비가 그치고 나면 가을이 훌쩍 옆에 와 있을 것 같다. 이름 없는 들풀이 길가 돌 틈에 겨우 피어있는데 그것을 지나치지 않고 눈과 마음에 꼭꼭 담아두려는 아이들이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