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제왕 부활하다
2004.12.17 / 김영 기자
뮤지컬 한 편 본 적 없어도 <오페라의 유령> 타이틀은 안다. 1986년 런던 초연 이래 전세계를 순회하며 초대박 히트 뮤지컬 중 하나로 꼽혀온 <오페라의 유령>이 드디어 영화화됐다. 뮤지컬의 제왕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할리우드 토박이 감독 조엘 슈마커가 16년간 이 프로젝트를 물고 버텨온 결과다.
일요일이었다. 뉴욕의 거리를 산책하던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우연히 책 박람회장을 지나게 됐다. 쌓여 있는 책 중에서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이 눈에 띄었다. 작가나 소설에 대한 사전 지식은 전혀 없었다.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을 집어들고 벤치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곧 책 속에 빠져들었다.
첫눈에 그것은 오페라 하우스의 전설로 내려온 유령의 정체를 밝혀가는 미스터리였다. 읽어갈 수록 엇갈리는 사랑과 욕망을 다룬 멜로드라마였고 프랑스 혁명 직후 세워진 오페라 하우스를 무대로 한 역사극, 혹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을 더듬어가는 스릴러이기도 했다. 어느 한 가지 장르로 가늠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풀기 힘든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
로이드 웨버는 거기에 매료됐다. 그리고 비극적 로맨스라는 한 가닥의 실을 가장 길게 풀어냈다. “아름다운 하이 로맨스로 만들고 싶었다”고 그는 돌이켜 회상한다. 그의 뜻은 성공을 거뒀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탄생시킨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초연과 동시에 찬사를 받으며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 됐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로이드 웨버에게 무대는 좁았다. 뮤지컬을 다시 스크린으로 옮기길 원했다. <로스트 보이즈>로 네 번째 영화를 막 끝낸 조엘 슈마커에게 전화를 걸었다. 뮤지컬의 어마어마한 명성은 할리우드의 감독이라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 것이었다. 제의를 받고 극장을 찾은 슈마커 또한 뮤지컬의 화려함과 극적 이야기에 즉시 매료됐다. 사랑하고자 하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유령의 비극적 이야기가 먼저 그를 끌어당겼다. 극의 절정, 오페라의 유령이 주인공 크리스틴의 연인 라울 자작을 인질로 잡고 그녀의 사랑을 요구하는 장면에서 슈마커는 생각했다. “굉장한 영화적 순간이 되겠군.” 브로드웨이의 마제스틱 시어터에 앉아 있던 그 순간, 그는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깨닫게 됐다”고 회고한다.
소문과 불발, 뒷얘기만 무성
영화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계획이 물 위에 오른 건 1988년 뉴욕 공연이 시작될 무렵부터였다. 2년에 걸쳐 제작을 준비했고 1990년 촬영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뮤지컬의 프리마돈나이자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아내였던, 그리고 영화의 여주인공 크리스틴 역을 맡을 예정이었던 사라 브라이트만이 돌연 웨버와 이혼하면서 모든 계획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영화의 판권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워너브러더스로 넘어갔다.
이후 <오페라의 유령> 영화화 계획은 드문드문 불확실한 소식으로만 전해졌다. <에비타>로 뮤지컬영화를 경험한 안토니오 반데라스, 연극과 뮤지컬 배우로 출발했으며 최근까지도 브로드웨이 뮤지컬 등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약해온 <반 헬싱>의 휴 잭먼, <토요일 밤의 열기>로 일찌감치 노래 실력을 선보였던 존 트라볼타 등이 차례로 물망에 올랐다. 크리스틴 역에는 '천사의 목소리'로 불리는 열여덟의 소프라노 샬롯 처치, <슈팅 라이크 베컴>의 키이라 나이껴? <프린세스 다이어리>의 앤 해서웨이, TV 시리즈 <도슨의 청춘일기>로 10대 소녀의 우상이 된 케이티 홈즈 등이 거론되었다.
그러나 소문이 불발로 끝나면서 영화사는 시들해졌고 뮤지컬 제작사는 영화가 완성도를 갖추지 못할 경우 공연 수익에 악영향을 미칠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로이드 웨버의 <에비타>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오페라의 유령>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 사이 조엘 슈마커는 젊은 감독에서 할리우드의 손꼽히는 제작자로 위치를 바꿨다. <배트맨 포에버><배트맨과 로빈><의뢰인><폰 부스> 등의 감독으로도 경력을 쌓았다. <오페라의 유령> 당시에도 이미 뮤지컬계의 거장이었던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캣츠><선셋 대로> 등으로 7번의 토니상과 3번의 그래미상, 골든글러브와 아카데미상까지 섭렵한 절대 군주가 됐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800만 명의 관객을 모았고, 전세계 18개국에서 6만5천 회 공연됐다. 2002년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판권을 되사들일 때까지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갔다. <오페라의 유령>을 둘러싼 갖가지 소문은 무성한 뒷얘기를 남기면서 지나갔다. 조엘 슈마커는 <폰 부스> 촬영을 12일 만에 마쳤지만, <오페라의 유령>을 완성하는 데엔 16년을 보내야 했다.
소설과 뮤지컬의 후광을 넘어
과연 <오페라의 유령>은 그토록 긴 시간과 쟁쟁한 스타들, 능력 있는 제작진, 1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을 만큼 대단한 작품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세계 최고의 위대한 문학 작품이거나 다시 태어나지 못할 뮤지컬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순 없지만 <오페라의 유령>엔 어떤 작품보다 극적이고 화려한 결과물로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은 모두를 유혹한다. 추한 반쪽의 얼굴을 간직한 채 오페라 하우스 아래 컴컴한 카타콤에 유배되어 있는 유령은,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냉소를 모두 표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어디에도 제 이름을 내세우진 못하지만 뛰어난 건축가이자 작곡가, 가수, 그리고 연인으로서 전방위적 능력을 갖춘 위대한, 그리고 광기 어린 예술가의 표본이다. 가련한 운명에 휘말린 여인 크리스틴도 마찬가지다. 유령에게 두려움과 연민을, 젊고 부유한 연인에겐 추억과 애정을 느끼며 갈등하는 젊고 여린 소녀인 동시에 화려하고 찬란한 뮤지컬 스코어들을 맘껏 부를 수 있는 가수의 뜨거운 무대이기도 하다. 배우들에게만 열린 곳은 아니다.
갓 완성된 오페라 하우스, 가수와 귀족이 등장하는 19세기 말의 파리는 미술과 의상 면에서도 맘껏 호사스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다. 무엇보다 어둠과 빛, 지하와 지상을 넘나드는 오페라의 세계는 영화적 스펙터클이 가장 근사하게 포착할 수 있는 대상이다. 관심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일찍이 많은 이들이 <오페라의 유령>을 탐내왔다. 뮤지컬 이전부터 그랬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태어나기도 전, 1911년 출판된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1925년 첫 번째 영화가 완성됐다. 유니버설에서 제작한 흑백 무성영화의 유령은 이른바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로 알려진 론 채니. 1943년의 리메이크판에서 이 유령은 수줍은 바이올리니스트였으나 부당 해고에 원한을 품고 폭군으로 바뀐다는 새로운 역사를 갖게 된다. 이 때부터 영화는 원작 <오페라의 유령>과 다른 길을 간다. 1963년 영국의 공포영화 전문 해머 스튜디오에서 완성한 또 다른 버전에, 오페라 하우스를 할리우드로 대체한 진 레빗의 <팬텀 오프 할리우드>, 브라이언 드 팔마의 록 버전 오페라 <팬텀 오프 파라다이스>에 이르면 유령의 역사도 참으로 다채로워진다. 그리고 뮤지컬이 나온 것이다.
만들어진 순간부터 고전이었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그 사이 수백만 명의 관객과 그만큼의 열성팬을 낳았다. 원작 소설이 신비로운 고딕 미스터리에 유령의 정체를 밝혀가는 탐정 소설의 플롯을 지녔다면, 뮤지컬은 화려한 쇼맨십의 러브 스토리로 또 다른 명성을 쌓았다. 거기에 누가 누를 끼칠까, 감시받는 상황이니 어느 간 큰 감독과 배우가 그 짐을 쉽게 질 수 있을까.
젊고 섹시해진 유령과 소녀
그때 마침 할리우드엔 뮤지컬영화 바람이 불었다. 1940년대 이후로 사라진 줄만 알았던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노래와 춤이 막대한 자본과 막강한 비주얼로 되살아났다. 뮤지컬의 제왕 로이드 웨버의 <에비타>는 정작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2001년 바즈 루어만의 <물랑 루즈>가 지표를 세웠다. 이듬해 <시카고>가 1천7백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며 아카데미 6개 부문을 휩쓸었다.
연극 연출가 출신인 <아메리칸 뷰티>의 샘 멘더스 감독은 브로드웨이의 고전 <스위니 토드>를 영화화할 계획이고 <해리 포터> 1, 2편의 크리스 콜럼버스는 <렌트> 연출을 맡기로 결정됐다. <아가씨와 건달들><헤어 스프레이><피핀><봄베이 드림스> 등 영화화를 기다리고 있는 뮤지컬은 이미 줄지어 있다. “뮤지컬영화들은 오랫동안 유행에 뒤떨어진 것으로 취급됐다. 그러나 이 장르가 이제서야 되살아나고 있다.” 로이드 웨버와 슈마커에겐 더없는 기회였다.
그러나 니콜 키드먼, 르네 젤웨거, 리처드 기어 등 톱 클래스 스타를 기용했던 앞선 영화들과 달리 <오페라의 유령>은 새로운 얼굴을 모집했다. 행운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스타가 아니었다. 가녀린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역엔 열일곱의 신예 에이미 로섬이 낙점됐다. <미스틱 리버>와 <투모로우>로 차츰 얼굴을 알려가긴 했으나 이 거창한 프로젝트의 히로인으론 버거워 보였다. 어릴 적부터 오페라 훈련을 받아온 가수이긴 했으나 2시간 반에 가까운 극을 이끌기엔 너무 여린 얼굴이었다. 유령 역을 두고는 더욱 논란이 많았다.
처음 영화화가 계획됐던 1990년, 뮤지컬에서 사라 브라이트만과 한 쌍을 이루며 스타로 군림했던 마이클 크로포드 외엔 아무도 이 역을 맡을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2천년대를 맞으며 크로포드는 환갑을 넘겼다. 슈마커와 로이드 웨버는 더 젊고 섹시한 주인공을 원했다.
그 결과 <툼레이더 2: 판도라의 상자>에서 안젤리나 졸리의 연인이었던 제라드 버틀러에게 ‘팬텀’ 역이 맡겨졌다. 마이클 크로포드의 팬들은 로이드 웨버에게 격렬한 항의 서한을 보내고 웹 캠페인을 벌이며 끈질기게 저항했지만 젊고 싱싱한 피사체를 원하는 카메라를 위해선 피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이어 미니 드라이버, 미란다 리처드슨 등의 탄탄한 조연들이 뒤를 받치며 <오페라의 유령>은 힘을 얻었다.
원작에 충실하게, 크기는 더 크게
<오페라의 유령>이 높은 기대치의 위험을 헤쳐가는 방법은 정공법이다. 영화 버전은 뮤지컬의 원안에 더없이 충실하다. ‘오직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15분 분량의 신곡’이란 떠들썩한 소문만큼 두드러지지 않는다. 대신 뮤지컬 넘버들을 한 마디도 다르지 않게 그대로 옮겨온 ‘Think of Me’ ‘Angel of Music’ ‘The Phantom of the Opera’ ‘All I Ask of You’ 등의 익숙한 멜로디가 반복되면서 영화를 가득 메운다. 영화적 호흡보단 뮤지컬의 리듬을 따라 노래가 영화적 대사의 자리를 대신하고, 드문드문 짤막하게 삽입되는 대사까지도 대부분 토씨 하나 변하지 않는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대사를 모두 노래로 표현한다는 것의 타당성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고 토로하지만 결국 자기 뜻을 이뤘다. 원작의 팬들이라면 한숨 돌리며 안도할 만큼 충실한 번안이다. 조엘 슈마커는 “<물랑루즈>나 <시카고>처럼 작품의 진행을 멈추고 노래를 부르는 단순한 방식과는 다른” 진행 방식을 <오페라의 유령> 특징으로 자랑스레 꼽는다. 분초를 다투는 급박한 전개 속에서도 인물들은 여유롭게 노래를 부른다. 영화만의 속도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덕분에 영화 <오페라의 유령>은 <물랑루즈>와 같은 폭발적 흡인력이나 <시카고>와 같은 극적 절정에 쉽게 이르지 못하고 관객에게 한 발짝 떨어진 태도를 갖게 만든다.
조엘 슈마커는 “값비싼 공연료 때문에 뮤지컬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보여 주고 싶었다”는 것을 연출의 한 가지 동기로 꼽는다.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대작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이 어디에나 있는 건 아니다. 1회적 공연의 영향이 전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뿌려질 수 있는 영화의 파급력과 비교될 순 없다. 그렇다면 수백만의 뮤지컬 관객 외에, 뮤지컬을 보지 못한 수억 명의 잠재 관객들을 만족시킬 만한 건 과연 무얼까. 가장 먼저 기대할 수 있는 건 초대형 블록버스터급의 제작비를 잡아먹었다는 거창한 세트와 화려 찬란한 미술, 그리고 그것들을 집대성한 스펙터클이다.
제한된 무대 위에서부터 노저어 배를 탔던 솜씨다. 영화 세계에서 유령은 급기야 하늘로 솟고 땅을 파들어가면서 세계를 수직으로 오르내린다. 그의 어둠과 대비되듯 크리스틴의 오페라 하우스는 어느 때보다 호화롭다. 극중 극으로 삽입된 3번의 오페라 공연 장면에선 웬만한 뮤지컬 한 편쯤 실제로 제작할 만한 인원과 무대 장치가 동원됐다. 붉고 대담한 전쟁 이야기 <한니발>과 녹을 듯 사랑스럽게 유쾌한 <일 무토>, 유령과 오페라 하우스 사람들의 음모가 맞대결하는 장중한 오페라 <돈 후앙의 승리!>는 영화의 마디마다 배치되어 각각 다른 색깔로 확연히 대비된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한자리에 모이는 가면 무도회 장면에선 온통 번쩍거리는 무대와 휘황찬란한 옷자락, 일사분란한 군무로 시선을 잡아끈다.
영화관에서 만나는 오페라
영화로 옮겨진 <오페라의 유령>에서 뮤지컬의 후광을 걷어낸다면 과연 성공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앞서 만들어진 뮤지컬영화들이 연극적 장치와 영화적 테크닉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관객을 흡입했던 것에 비해, <오페라의 유령>은 분명 무대 공연에서 출발한 출신 성분을 뚜렷이 내세우고 있는 영화다. 무대의 제한을 벗어난 스펙터클은 화려하게 뻗어나가지만, 그 역시 뮤지컬의 문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덕에 영화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과 같이 속도감 있는 긴장을 만들어내진 못한다.
그러나 조엘 슈마커와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만만하다. 로이드 웨버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자 가장 개인적인 작품으로 꼽는 <오페라의 유령>이다.
지금도 그는 <오페라의 유령>을 장식하는 노래들을 “돌이켜 생각해 봐도 어떻게 그런 곡을 작곡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할 정도로 이 작품에 자족한다.
무성한 기대와 소문을 뚫고 <오페라의 유령>은 마침내 찾아왔다. 오페라 하우스가 없는 곳에서도 얼마든지 품평이 가능하게 됐다. 국내에선 전세계 최초 개봉, 미국 개봉일 12월 22일보다 2주 앞선다.
글출처: 필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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