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을 하다 파산한 친척 때문에 권번기생 생활을 시작한 김한영님은 시인 백석의 연인 `자야(子夜)'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자야(子夜)는 백석 시인이 지어준 아호인데, 중국 동진 시절에 자야라는 한 여인이 변경으로 수자리 살러간 그녀의 낭군을 늘 못잊어하고 그리워 했다는 얘기를 이태백(두보)인가? 누가 시로 읇었는데, 아마 백석이 나타샤와 겹치는 이미지로 지어준 듯 합니다. 김진향(眞香)이란 이름도 쓰이는데, 한국 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이 '진수무향(眞水無香)'이란 글귀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어준 이름입니다.(권번이름?) 아녕은 1932년 김수정의 도움으로 조선 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는데, 금하 하규일 선생의 지도를 받아 여창 가곡, 궁중무 등 가무의 명인으로 성장했습니다. 백석의 시보다 세인이 관심을 갖는 것은 백석의 사랑 행적인데, 보기에 따라 여러 풀이가 나올 수 있어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우선 김한영님(아녕)이 함흥관에서 백석을 만나는 배경을 설명드리죠. 1935년 조선어학회 회원이던 해관 신윤국 선생의 후원으로 일본에 가서 공부하던 중, 해관의 투옥 소식을 듣고 면회차 귀국하여 함흥에 일시 머물렀다 들른 곳이 함흥관입니다. 1936년 함흥영생고보 영어교사이던 청년 시인 백석과 뜨거운 사랑에 빠진 것은 어찌 보면 운명의 만남 한-줄기 같습니다. (저는 운명이란 한 줄기가 아닌 여러 줄인데 그중 한줄기로 인생을 산다 생각하거든요) 아녕(김한영)이 펴낸 '내 사랑 백석' 이란 책에서는 백석(1938)이 함께 만주로 떠나자고 제의했으나 혼자 서울로 돌아왔다고 되있습니다.. 같은 해에 조선일보 기자로 다시 서울로 뒤따라온 백석과 재회하고, 청진동에다 살림을 차렸구요. 다음해인 1939년 백석이 만주의 신찡으로 떠나게 되면서 이별했습니다. 그것이 아녕과 백석 둘 사이, 살아서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며 살고 있으면서, 이처럼 살아서 다시 못 볼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아녕은 1953년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만학으로 졸업했고, (영문학을 택한 이유는 백석이 영문학을 전공한 것과도 조금 영향이 있을 듯) 1989(88년?)년 백석 시인에 대한 회고 기록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을 창작과 비평에 발표했습니다. 1990년 스승 하규일의 일대기와 가곡 악보를 채록한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을 출간하기도 했구요. 백석의 북한내 흐름이 알려진 것은 소설가 송준(40?42살?)이 중국과 일본을 돌아다니며 백석가족에게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것이 결정적 계기입니다. 우선 송준의 백석평을 들어보시죠. 이땅에서 가장 순수한 서정 시인이며 사상성을 詩에 훌륭하게 간직했던 시인으로 현학적이며 외래적인 시풍을 과감히 배격하여 관념적이고 공허한 동시대의 詩들을 부끄럽게 하였다. 백석은 릴케 보다도 더 감수성이 예민하고, 서민적이고, 솔찍한 시를 썼다. 푸시킨 보다도 더 쉽고 아름다운 시를 썼고, 도연명 보다도 더욱 진실하게 자연을 사랑하는 훌륭한 시를 썼다. 백석은 이태백의 현학적이고 화려함을 현실적으로도 능가한다. 그리고 백석은 이 모든 유명 시인들의 정치성을 배격하고, 외국의 들뜬 싸구려 감정의 낭만적인 시들을 거부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당대에 입방아만 찧던 싸구려 외국 시들을 부끄럽게 하는 유일한 시인이다. ㅡ 송 준 ㅡ *가족사진과 편지 모두 송준이 중국에서 구했습니다. 남편은 전처가 있었는데, 이름은 문경옥이고 그 때의 직업은 피아노를 배워주는 선생이었는데, 아이를 하나 임신했다가 ?달만에 유산시킨 것으로 하여 나의 남편 어머니와 사이가 틀어져 이혼을 하고 3년 후에 나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소. ...... 차별, 멸시 속에서 인생을 보내고, 나의 남편은 1995년에 사망하였소. 여기는 다른 나라와 다르기 때문에 모든 일을 조심스럽게 처리하여야지, 자칫하면은 모든 일이 끝장이요. ...... 2번째 부인 리윤희님의 편지 요즘와서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는 것은 백석의 나타샤가? 누구냐입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에 나오는... 백석이 24살때, 친구 허준의 결혼식에서 본 통영 태생의 란이라는 여성! 묘하게도 백석의 마음을 뺏아간 당시 이화여고 학생인 이 란이라는 여성이 백석 자필로 쓰여진 이 시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습니다. (박씨성을 가진 란이라는 여자는 백석이 잘아는 소설가와 결혼, 사랑은 불발됬음) 김한영과 이별후에 백석은 만주와 여러 곳을 떠돌다 해방후 국내로 돌아와 1946년 12월 당시 당시 평양 권번 동기 출신의 여성과 동거중이었다고 전해집니다. 38세인 49년에는 이화여전 출신의 아내가 있었으나 남편을 몹시 증오하여 외아들을 데리고 월남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미웠으면? 백석에게 만약 월남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위협했다고 전해집니다. ^_^ 1946년(35세) 고당 조만식 선생의 요청으로 평양으로 나와 고당 선생의 통역비서로서 조선 민주당의 일을 돌보고 1948년(37세) 김일성 대학에서 영어와 러시아어를 강의했다고 전하나 확실치 않습니다. 백석은 평생 공식적인 결혼(종이에 잉크)을 3번한 것으로 되있습니다. 위 사진의 부인 리윤희 씨에 따르면 백석과는 1945년말 북한에서 결혼했으며 슬하에 3남2녀를 두었다는 것. 리씨는 백석의 두 번째 부인이랍니다. 전체적으로 종합해보면, 24살 때 첫 연인인 박씨성 이화여고생 란과는 맺어지지 못했고, 조선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함흥으로 가서 영어교사를 할 때 만난 김한영님이 가장 가슴에 남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의 시 곳곳에 짐작할 수 있는 대목들이 나옵니다. 란과 아녕의 비중은 반반일 정도로 둘다 가장 사랑한 여인이었지만, 란은 짝사랑적인 성격이고 아녕과는 불같은 사랑을 나눴습니다. 쓰디쓴 사랑의 아픔도 세월이 지나면 갈라지는 프리즘 빛처럼 파스텔 톤처럼 아득하니 다~아 아름답고 그리워 할 만하게 느끼지게 되는 것은 여자나 남자나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세월의 바램이라고나 할까요. 백석의 시에서 사랑에 대한 후회나 자기 핍박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그이도 아마 만주 유랑시절이나 해방전후에 갈등을 겪은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김한영 대원각 쥔도 백석과의 헤어짐이, 못이룬 사랑의 에너지로 바껴 세상을 사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네요. 어찌 되었건 남북분단사로 증발했던 백석이 이제는 조지훈, 김소월, 윤동주, 서정주 시인등 많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시인으로 올라와 있음을 보고 아녕(자야)은 하늘꽃나라에서 자기 일처럼 기뻐하겠죠. 아녕과 백석이란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서뿔리 얘기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는데, 백석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여러 모습들 때문이죠. 각자 느낌대로 해석하면 되겠죠. ^_^ ★백석을 현재의 이 위치에 올려놓는데, 김한영여사와 백석문학상이 일조를 한 것은 당연하죠. 우리 현대 시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백석(白石)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백석문학상!! 자야(子夜, 金英韓) 여사가 내놓은 2억원의 기금으로 1997년 10월에 백석문학상을 제정하였습니다. (상금 1,000만냥) 매년 4월을 기준으로, 2년 내에 출간된 뛰어난 시집에 시상합니다. ★백석이 '사슴'이란 시집을 낼 당시, 말 한 필이 오원 이었는데 백석의 시집 '사슴'이 이원이었다고 합니다. |
여승(女僧)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가지취 :
참치나물.
금덤판 : 금을 캐거나 파는 산골의 장소 또는 그곳에서 간이 식료품 등 잡품을 파는 곳.
섶벌 : 울타리 옆에 놓아 친느
벌통에서 꿀을 따 모으려고 분주히 드나드는 재래종 꿀벌.
★제1연은 여승의 현재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제2,3,4연은
여승이 되기까지의 그녀의 삶의 궤적을 더듬어 보고 있습니다
한 여자의 일생을 보여 주고 있네요. 특히, 일제 강점기에 살았던 한
여인의 일생,
가족 구성원이 해체되고 일어나는 삶의 비애를 불교적인 감정으로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그 가족은 지아비와 지어미
그리고 딸아이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래 농삿일을 했을 듯한 지아비는 광부가 되어 집을 나가고,
아내는 남편을 찾아 금점판을 돌며
옥수수 행상을 하고,
그 고생에 못이기어 딸은 죽어 돌무덤에 묻히고,
자신은 산 속 절간에서 삭발을 하여 여승이 된 것을 짧게
몇줄에 나타냈습니다.
이 시는 사회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축약한 대표적인 리얼리즘 시의 대표작이라고
생각됩니다.
절망
북관(北關)에 계집은 튼튼하다
북관(北關)에 계집은
아름답다
아름답고 튼튼한 계집은 있어서
흰 저고리에 붉은 길동을 달어
검정치마에 받쳐입은 것은
나의 꼭 하나 즐거운
꿈이였드니
어늬 아침 계집은
머리에 무거운 동이를 이고
손에 어린것의 손을 끌고
가펴러운 언덕길을
숨이 차서
올라갔다
나는 한종일 서러웠다
*길동 : 저고리의 깃동.
가펴로운 :
가파른.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 인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을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삿 :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쥔 :
주인
딜옹배기 : 아주 작은 자배기
북덕불 : 짚북더기를 태운 불
나줏손 : 저녁 무렵
바우섶 :
바위옆
흰 밤
옛 성(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어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백화(白華)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山) 너머는 평안도(平安道) 땅도 뵈인다는 이 산(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천상의 사랑 / 니은
3:52
약속해 줄수없니
그대 다시 한번 나를 만나서 사랑하게 되는걸
세월에 가로막혀 뒤따라가는 나를
그대
못따라 올까 걱정은 되~지~만~
하늘이 허락 해 준다면
날 받아주겠니
그대 아직도 나를 사랑한다면~
또다른 이별~은
없겠지
그대 다시 만난다~면
가슴에 꼭 붙잡고 놓지~않을래
사랑~하는 사람이여 내게 와~
그대 슬픔 내가
만져줄께~
한번 더 내~사랑 그대 원한다면
나 물어물어 찾아갈~께
(간주중)
하늘이 허락~해
준다면
날 받아주겠니
그대 아직도 날 사랑한다면
또다른 이별~은 없겠지
그대 다시 만난다~면
가슴에
꼭 붙잡고 놓지~않을게
사랑~하는 사람이여 내게 와
그대슬픔 내가 만져줄게~
한번 더 내~사랑 그대 원한다면
나 물어물어 찾아갈~~~께
첫댓글 많은걸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