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시민사회와 한국 NGO
강사 : 조효제 (성공회대학교 NGO학과 교수)
국제NGO 활동의 현실
우리가 국제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진부한 화두이다. 정치ㆍ경제ㆍ문화적 의미의 국제화와 함께 국제NGO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국제NGO에 대한 강의를 하고 나면 흔히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다. “내용이 재미있긴 한데 우리 실정과 너무 먼 이야기 같아요”, “국제NGO활동을 하고 싶지만 영어를 잘 못하는데...”, “우리 문제만 해도 많은데 국제적인 이슈까지 다뤄야 하나요”, “국제기관으로 진출하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이런 질문들을 배경으로 현실을 분석해 보면 국제NGO에 관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패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국제NGO 활동을 해외교류를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국제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소수의 단체를 빼고, 각 단체들의 국제 파트는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다른 부서의 해외연락을 매개하는 “국제 대서소” 정도의 위상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국제사업은 주로 선진국 단체와의 연대, 아니면 아시아권 일부에 국한되어 있고 진정 글로벌한 관점은 결여되어 있다. 또한 해외 진출의 붐을 타고 국제NGO 활동을 자기 경력추구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 시민활동의 경험도 없으면서 해외에 진출하기 위해 국제NGO를 선망하는 사례이다.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그리고 외국어를 무기로 국제회의나 모임에 단골로 파견되어 “국제통”으로 자처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업무가 중첩되어 자신의 고유영역은 없으면서 “국제적” 이슈를 모두 맡게 된다. 국내활동과 내용적으로 크게 연관이 없고, 타 부서에서는 잘 이해하지도 못하며, 국제 회의와 인적인 접촉을 위주로 한 단편적인 업무가 지속되는 경향이 생긴다. 이 글은 이 같은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국제NGO의 의미와 활동, 그리고 주체적인 관점에서 조망하는 국제NGO의 방향을 간략하게 다룰 것이다.
국제NGO의 의미
“국제(international)”란 말은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덤이 18세기 말에 만든 신조어이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용어였다. 왜? 단순히 국내문제를 다루는 국가법이 아닌 “국가들의 법(ius gentium)”, 즉 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기 위한 국제법을 표현하는 용어였기 때문이다. 주권국가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질서라는 개념으로 생겨난 표현인 것이다. 그러므로 말 그대로 해석하면 국제NGO는 2개국 이상이 참가하는 NGO라 볼 수 있다. 참가한다는 말이 반드시 회원일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한국의 NGO가 베트남 활동가와 사업을 벌이는 경우 국제NGO적 활동을 하는 것이 된다(예: 나와우리). 또한 매매춘 문제를 다루는 단체가 우리나라에 유입되는 외국인력의 문제를 다룰 경우 국제NGO적 측면이 포함된 활동을 하는 것이다(예: 새움터).
그런데 아무래도 “국제”라는 말은 국가체제를 전제로 한 용어라서 오늘날의 상황을 담아내기에 진부한 느낌이 든다. 예컨대 국가를 전제로 하지 않고 사이버 상에서 벌어지는 각국 활동가들의 운동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이 맥락에서 “국제” 대신 “지구적(global)”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2001년 세네갈에서 열린 국제대의원총회에서 새로운 수임사항을 채택했다. 여기에는 최초로 “지구적” 인권운동이라는 말이 여러 번 등장하며, 단순히 주권국가들이 만들어놓은 기존의 국가체제적 세계질서의 일부가 되지 않겠다는 새로운 방향설정이 엿보인다.
지구적 차원의 시민사회운동
지구적 차원의 시민사회운동이 가능하며 또한 모든 국내운동이 지구적 측면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핵심 주장중 하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지구적 운동의 핵심은 외국어도 아니요 외국단체와의 접촉도 아니요 반드시 해외의 의제를 정면으로 다룰 필요도 없다. 국제NGO운동의 핵심은 한 마디로 “지구적 안목 또는 지구적 의식(global consciousness)”이다. 나는 주장한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몰라도 지구적 시민사회운동을 벌일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우리 현실이 얼마나 전세계적 조건과 맞물려 있는지, 우리의 행동이 이웃나라와 해외의 민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의 환경의식이 지구적 환경문제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등등을 자각하는 것이 지구적 차원의 시민사회운동의 핵심전제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커피 한잔에서도 제3세계 환금작물의 경제학을 읽어낼 수 있는 사회학적 상상력ㆍ감수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외국어와 외국경험은 지구적 시민사회운동의 하나의 도구일 뿐, 그것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될 수 없다.
또 하나의 전제조건은 우리의 경제력과 국력에 걸맞게 국제적 공동선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생각할 때에는 미흡한 점이 많지만 해외에서 우리를 보는 눈은 경제적 선진국임을 직시해야 한다. 국제적 공동선이라는 면에서 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해외로부터 두 가지 큰 빚을 졌다. 경제적으로 엄청난 해외원조를 받았고 정치적으로 민주화와 인권투쟁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 이제 우리도 갚을 때가 되었다. 일본이 우리 수준의 경제규모였을 때 이미 활발한 해외협력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몇 년 전 어느 저명한 정치학 교수가 우리 시민사회의 대외적 기여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평가한 적이 있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시기상조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언제나 같은 주장을 되풀이할 것이다.
마지막 전제조건은 지구적 운동이 반드시 대외적 지향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지구적 운동은 국내운동의 연장이다. 존 킨 같은 학자는 아예 국내 시민사회와 지구 시민사회를 나눌 수 없다고 단언한다. 따라서 지구적 운동은 우리 시민사회운동의 기반을 단단하게 하고 외연을 넓히며 의제를 다양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이렇게 지구적 감수성이 높아진 국내운동은 현재 태동 중인 “지구시민사회”의 각국별 정박지(national anchorage)가 될 수 있다.
지구화와 지구적 NGO 활동
지구화는 공급적 측면과 수요적 측면이 있다. 헬드와 맥그류가 분류한 지구화의 4대 유형 중 “밀집형(thick) 지구화”와 지구시민사회의 등장은 상관관계가 있다. 지구시민사회 건설에 필요한 인프라 중 특히 기술ㆍ통신 수단, 지구적 의식 등을 지구화가 공급해 준다는 것이다. 반대로 지구화에 수반된 갖가지 부작용과 결핍사항으로 인해 지구시민사회가 개입해야 하는 수요가 발생한다. 이렇게 봤을 때 지구시민사회가 개입한 반지구화 운동이, 서구 주도적 지구화 과정, 인간의 모든 영역에 침투한 시장화의 논리와 그 배후세력(다국적 기업), 그리고 전세계적 불평등에 주의를 환기한 것은 타당한 문제제기였다. 따라서 반지구화운동은 궁극적으로 지구적 차원의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봤을 때 지구시민사회는 1) 담론과 문제제기 차원을 넘어서 현 지구화 국면을 타개할 구체적 방법의 모색, 2) 세계체제의 민주화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의무, 3) 반지구화 투쟁 후에도 남아있을 세계적 이슈들의 장기적 고민, 이 세 가지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문제제기를 넘어 구체적 모색으로
몇 달 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 폭격이 가해지던 때에 반전평화를 주장하는 학생들이 모금을 해서 신문에 반전광고를 내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그 돈으로 신문광고를 사는 것과 아프간 난민을 실제로 돕는 것의 차이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구적 빈곤타파 또는 난민문제는 어느 모로 보나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의 모순이 응축된 지점인데 진보진영의 대응이 너무 담론차원에 머물러 있어 아쉬웠다. 우리는 반지구화를 주장하면서 그것의 해결책은 항상 국내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가? 또한 한국정부의 해외원조에 대해 시민사회진영에서 적극적인 개입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현재 한국의 해외원조는 유엔이 장려하는 GNP의 0.7퍼센트 수준은커녕, 0.047퍼센트에 불과하다. 지난 3월 멕시코에서 열린 유엔개발재원 회의에서도 이런 문제를 다루었다. 필자가 전부터 주장해왔고 최근 박노자교수가 말하듯 해외원조와 인도주의적 국제지원을 둘러싼 논의가 우리 사회의 일대 쟁점으로 부각되어야 한다. 현재 단기성 구호사업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해외원조와 빈곤타파 사업에 한국의 NGO들이 좀더 깊게 개입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지구시민사회의 건설에 일조하는 길이다.
또한 아시아권에 대한 관심과 연대를 현 단계에서 궁극적 지구시민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겠다. 여기서 우리가 잊어선 안 되는 점이 있다. 아시아 제3세계 각국의 시민사회는 한국을 사회운동, 노동운동이 왕성한 나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비교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 나라는 사회운동형 정치가 제도권 정치와 병존하며, 정치과정과 비제도권의 압력이 비교적 높은 수준에서 상호작용하는, 몇 안 되는 국가에 속한다. 오랜 투쟁과정을 통해 우리도 모르는 새 제도권-비제도권 간의 행동적 동형화(behavioral isomorphism)가 진행되어온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경제적 선진국임을 자주 망각하듯 이 점도 우리가 자주 망각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우리의 민주화 경험, 인권투쟁 경험, 사회운동에서 우러나온 한국형 운동경험을 아시아의 제3세계 국가들과 나누어야 할 당위성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영어를 매개로 한 NGO운동을 더 이상 금과옥조처럼 여길게 아니라 한국어를 매개로 한 한국형 국제연대의 “수출”을 모색해 봐야 할 것이다. 이 점은 한국이 이미 해외 이주노동자들의 주요 귀착지가 된 사실을 감안하면 여러 모로 생각해 봐야할 부분이다. 미국의 평화봉사단 또는 영국의 VSO와 같은 해외협력 기구에 동참하는 뜻 있는 젊은이들이 영어교습을 통해 개발도상국을 돕겠다는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브루스 커밍스 교수도 한국에서 활동한 평화봉사단원이었다. 필자가 한국어를 매개로 한 한국형 시민사회운동의 수출을 주장하는 데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 그것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통해 한국 사회를 노출ㆍ개방시킴으로써 우리 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간주관적 (inter-subjective)으로 외부와 소통시키며, 그것이 역으로 우리 시민사회가 스스로를 상대화해서 이해하고, 보편적 운동으로 나아가는 데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생각해보기>
- 전세계 최빈국 또는 악성 외채국 중 아시아에 위치한 나라를 열거하고 이들과 한국과의 수교/통상 현황을 조사하라.
-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 커피원두의 가격을 조사하고 한국에서 제3세계 커피 생산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라.
- 한국에서 혼수품으로 흔히 쓰이는 다이아몬드의 주 원산지가 어디인지 조사하고, 다이아몬드가 현재 국제인권 NGO에서 왜 문제가
되 고 있는지 설명하라(“blood diamond”). -1992년 리우환경회의 이후에 개최된 지구시민사회의 병행회의들을 열거하고, 시애틀 사건
이후 동향의 특징을 설명하라.
- 지구화로 인해 전세계적 차원에서의 불평등, 각국 내에서의 불평등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전세계적 차원에서 20:80
중 어느 진영에 속하는가? 또한 현재 OECD국가는 몇 개국인가?
<참고문헌>
구갑우 (2000) 「지구적 통치와 국가형태: 시민사회의 전망」, 『경제와 사회』, 45: 8-35.
박경태 (2001) 「누가 이들을 밀어내는가」, 『황해문화』, 33: 20-33.
이정옥 (1999) 「세계화와 대안운동의 전개: ‘생산참여형 소비자 운동’ 사례를 중심으로」, 『사회와 역사』, 56: 11-43.
조효제 (2000) 『NGO의 시대: 지구시민사회를 향하여』, 창작과비평사.
조효제 (2002) 『지구시민사회 연감』, 아르케 [근간].
주성수ㆍ서영진 (2000) 『UN, NGO, 글로벌 시민사회』, 한양대학교 출판부.
<인터넷 자료>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유엔
Action Without Borders
One World 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