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나니와의 땅이었던 요도가와강 어귀의 나니와쓰는 아스카,나라,교토의 문호이자
대륙문화 전래의 항구도시인 오사카
일본 오사카부 중부 오사카만에 면한 상공업도시로 인구 250만으로 1889년 시가 되었다고 하는군요.
북부를 흐르는 요도가와강을 중심으로 삼각지를 개발 도심을 이루고 있는 오사카,
지금은 우에마치대지로 도심을 이루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그리고 전래에 의하면 오사카는 16세기, 이시야마 혼간지(石山本願寺)절의 신도들이 지나이마치(寺內町)인 상업지역을 형성하면서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전국시대에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천하를 통일하여 오사카성을 세우고 17세기경 에도시대에 제국물산유통의 중심으로서 시가지가 확대되었고 합니다.
그리고 1970년의 '일본만국박람회'와 1990년의 '국제꽃과 녹음의 박람회'이후 많은 외국인이 찾아오는 오사카가 되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
2008년 1월 16일
울산을 출발한 연수팀 13명은 24인승 승합차를 타고 김해공항에 도착합니다.
10시55분 비행기이라 아직 여유가 많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와 함께 탑승권을 가지고 올해 첫 해외 나들이를 떠납니다.
방학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외국으로 나가는 모습이 우리나라가 참으로 살기 좋아졌다는 이야기밖에 할게 없습니다.
많은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들 그리고 업무차, 연수차 떠나는 내국인은 출국 수속을 받느라 줄을 이어 있습니다.
잠시후 출국 수속을 하고 면세점 역시 더할나위 없이 많은 사람들의 가격문의 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
12시 55분
대한항공 732편은 김해공항을 이륙합니다.
좋은 날씨지만 밖으로 내려다볼 자리가 아니기에 그져 신문만 만지작 거리는게 하는 일입니다.
잠시후 승무원들의 기내식 제공이 손빠르게 움직입니다.
빵한조각의 과일 하나 그리고 음료수 전부입니다.
그리고는 먹은 기내식 회수 하는 시간과 일본 현지 도착시간이 채 20여분 남짓
정말 발빠른 모습입니다.
보고 있으니 제마음조차도 빨라지는듯한 느낌입니다.
잠시후 바다를 메립해서 만든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합니다.
그때시각이 아마도 12시 10분쯤 되었을겁니다.
이륙한지 1시간 조금더 소요된것으로 기억됩니다.
항공기에 내려 모노레일을 타고 입국 심사를 받는데 엄청난 인원이 대기 중입니다.
가이드 이야기로는 이만큼 많지 않았는데 아마도 이때시각이 가장 많은 항공기가 착륙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줄곧 잡아 아마도 한시간 정도는 소요 될것 같아 보입니다.
가이드는 늦을것 같은지 여기저기 전화하는 모습이 늦어 질것 같다는 애기인가 봅니다.
2007년11월20일부턴가 실시되는 지문채취와 사진찍는 시간과 더불어 늦어지는 입국심사
우리팀뿐만 아니라 여러곳곳에서 이런 일본에는 오지 않아야 한다는등 이야기가 오고 가지만 어찌할수 없는 일이지 싶습니다.
1시간여의 기나긴 지루함
순서대로 늘어선 입국심사
긴장감이 교차되는 순간 지문과 사진 찍는다고 입국 목적은 물을겨를이 없나 봅니다.
어째튼 통과 되고 세관 검색대를 지나 공항 밖으로 빠져 니옵니다.
14시 05분 고베로 가는 배편을 예약해놓은 상태라 점심은 배안에 먹기로 하고 잠시 공항밖에서의 첫방문지 오사카를 둘러 봅니다.
그렇지만 보이는건 공항 건물뿐입니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
오사카만(灣)을 가로지르는 3.75㎞의 연륙교를 지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인공섬 간사이 공항
간사이(關西) 지역의 30년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생활.산업 쓰레기 처리책이 1977년 쓰레기를 바다에 매립하자는
아이디어를 채택해 즉시 실행에 옮긴곳간사이 공항입니다.
1994년 문을 연 이곳은 오사카.교토(京都).고베(神戶)를 포함한 일본 2위의 경제권인 간사이 지방의 관문입니다.
막대한 공사비에 비해 활용도가 낮다는 지적을 받아온 간사이 공항
기존 부지 옆에 인공섬을 또 만들고 제2 활주로를 만들어 500m 더 긴 4㎞로 항공기 대형화를 이루었다는 이야깁니다.
그래서 인천공항에 물류만이라도 질수 없다는 간사이 공항 그래서 제2활주로등 대형화, 허브공항 하기에 이룬다고 합니다.
14시05분 버스가 도착한 공항 밖
5분여에 걸쳐 공항 주변으로 돌아 가더니 간사이 공항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고베행 고속선을 타고 고베으로 이동합니다.
물론 이동중에 도식을 먹는데 그야말로 소식입니다.
큰김밥 1개,작은 김밥2개, 누드김밥1개, 스씨 1개, 게란말이1개 찌, 그리고 오차가 전부입니다.
40분여에 걸치 이색적인 선상체험
잠깐 파도가 일렁이는 항해끝에 고베항 산노미아에 도착합니다.
고베
일본의 가장 아름다운 야경을 가진 고베항
고베는 역사적으로 외래문물이 유입된 항구로써 무역의 기지이며
서구열강과 강제 개항과 더불어 외향적인 성격이 강한 도시입니다.
국제적인 무역항인 고베는 다양한 페리와 제트셔틀들이 운항하며 또한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합니다.
인구 142만으로 일본본토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 롯코산(六甲山), 남쪽으로는 세토나이카이에 의해 둘러싸여 있습니다.
고베는 록코산 남쪽의 바다를 면한 동서로 길게 늘어선 한적한 어촌에서 출발했다는데요.
이곳에 살던 이들은 계속 협소한 도시를 확장하기 위하여 배후 산자락을 깎아서, 그 흙으로 바다를 매립하며 도시기반을 다졌습니다.
더우기 그 앞바다에 포토 아일랜드와 록코 아일랜드라고 하는 인공섬을 만들어 깎은 산자락은 평지가 되어 대규모 주택단지나 공업용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현재 포화상태인 간사이공항을 커버하기 위하여 포토 아일랜드의 앞바다에 공항을 건설하고 있는데요.
고베항은 옛적 부터 일본의 중심인 간사이 지역의 대문으로 바다를 통해 중국 대륙이나 한반도의 항구와 교류를 하였답니다.
헤이안 시대(794~1192)에는 항구시설을 확충하여 국제 무역의 거점으로서 발전했었고요.
무로마치 시대(1336~1573)나 에도시대(1603~1868)에는 [효고의 진]이라 불리며 국내 교통의 요충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완수했었고요.
1868년 개항 후에는 인적, 물적, 정보가 왕래하는 거점으로서 그리고 , 국제 무역항으로서 세계를 대표하는 항구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렇지만 1995년 1월17일 오전5시46분 진도 7.2의 직하형 지진이 고베지역을 덮쳐 한순간에 많은 인명이 죽거나 다치고 거리는 무참히 파괴되었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사망자 6,430명 , 행방불명자 3명, 부상자 2만 6804명, 이재민 약 20만명, 물적 피해규모 14조 1000억엔(미화 약 1400억 달러)....
처참한 피해를 받은 고베는 특유의 재생노력으로 불과 2년만에 도시 시설 복구를 완료하고...
현재는 지진 재해를 넘은 아시아의 마더 포토 만들기를 진행시키고 있는 고베시입니다.
다시 대기하고 있는 ASADA KANKO BUS에 올라
포트아일랜드를 뒤로 하고 버스는 아리마 온천쪽으로 방향을 잡고는 달리기 시작합니다.
육갑산의 긴터널도
시골길같은 길도
그러나 차폭이 정말 좁습니다.
그리고 그길에 맞게끔 차도 생산된다하고 또 안전운행은 일본인다운 습관이라는 이야기입니다.
1시간여를 달린 버스는 아리마 온천에 도착합니다.
아리마 온천
까마귀 세마리가 날마다 날아와 발을 담궈고 갔다는 지역에서 유래된 온천
아리마(有馬) 온천은 고베(神?)의 명소중 한 곳인 롯코산(六甲山)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온천 마을로
에히메현의 도고(道後)온천, 와카야마현의 시라하마(白浜)온천과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아리마(有馬) 온천은 일본서기(日本書記)에도 이름이 실려 있을 정도로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며,
나라(奈良) 시대 이전에는 천황도 이곳에서 온천을 즐겼다고 전해지는데요.
오래전부터 그 시대의 권력자들이 즐겨 이용했기에 아리마(有馬) 온천은 흔히 간사이의 별당이라 불러왔다고 합니다.
특히 임진왜란의 주역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도 무려 9번이나 아리마(有馬) 온천을 찾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라 합니다.
아리마(有馬) 온천의 수질은 철분이 많아 공기에 닿으면 붉게 산화하는 금천(金泉)과 탄산을 함유한 무색 투명한 은천(銀泉)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요.
작은 마을이라 아리마 온천에서는 노천탕을 구경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는 아리마 온천에서 사실 유서 깊게 유명한 온천탕은 긴노유(銀の湯)와 킨노유(金の湯)라고 하는데요
우리는 킨노유(金の湯)로 갑니다.
입구에는 식수체험을 할수 있는 조그만한 인형에서 흘러 내리는 물맞은 철분에서 나는 향입니다.
그리고 왼쪽 처마밑에는 족탕을 할수 있는 공간으로 연중 무료로 개방되는 곳이랍니다.
입장료는 대인 650엔/소인 340엔입니다.
중소도시 목욕탕수준 크기이지만 내부시설은 일본인 다운 깨끗한 모습입니다.
1층과 2층으로 구분된 탕은 남탕이 2층입니다.
그렇지만 요즘 일본에서는 욕탕이 하루새로 남여탕이 바뀐다는 이야기인데요, 물론 풍수에 의한 설입니다.
그래서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이지만 일본에는 무수한 신이 존재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종교가 없는 사람보고 종교가 뭐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무교라고 이야기 하지만 일본은 선뜻 대답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믿는 신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일본 곳곳에 가면 조그만한 사당과 함께 신사가 곳곳에 존재하는것이랍니다.
대업을 이룬(?)(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사람들을 기리는 신사도 있지만 신을 기리는 신사도 마을마다 있다는겁니다.
다시 금탕안입니다.
황토물같이 조그만한 탕에 서너사람 앉으니 곧 물이 넘쳐납니다.
철분이 많아서 인지 붉게 빛나는 금탕
둘레 둘레 앉아 물이 좋은지 안좋은지 시험삼아 앉아 있긴 하지만 별로 그런거 믿지 않은 스타일이라 장난삼아 수건에 물을 들여 보기도 합니다.
금새 붉은 물이 드는걸로 보아 철분 함량이 많은걸 느낍니다.
그리고 다시 나옵니다.
그리고 까마귀 전설이 어린 곳을 찾아 골목길을 찾아 올라섭니다.
온천사를 지나 은탕으로 가는길의 골목에 이러는데 까마귀 세마리와 스님한분의 동상을 한 길가 원탕에 세워져 있습니다.
카메라에 그림을 담고는 다시 극락사를 지나 은탕에 도착합니다.
몇몇의 사람들이 보이긴 하지만 어떤물인지 궁금하지만 돌아 나옵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이드한데 은탕이 뭐냐고 물으니 탄산수라는군요
동네어귀를 돌아 빵의 일종인 이지방의 명물을 먹어 보고는 히데요시 부인의 이름을 딴 "네네" 다리를 건너 다시 버스에 오름니다.
그리고는 아리마 온천을 벗어나 커버가 심한 육갑산을 오름니다.
비록 버스이긴 하지만 굽이 굽이 오르는 차량이 한없이 힘들어 보입니다.
육갑산(일본말로 롯코산입니다.)
루트 별로 셋으로 나뉜 롯코는 동쪽에서부터 롯코 케이블과 드라이브 웨이로 오르는 롯코산입니다.
낮과는 다른 고베의 야경을 볼수 있는 산으로 오사카만으로 펼쳐진 야경은 그네들이 자랑하는 백만불짜리 야경이라는데 좀 심합니다.
일본의 100대 명산 가운데 하나인 롯코산
효고 현 남부 오사카 만의 북안에 솟은 "롯코산"은 산지 전체가 "세토 내해 국립공원"에 속하며, 한신 지방 제일의 관광, 휴양지입니다.
최고봉은 표고 931미터로 고베시를 바라보는 야경은 「100만불의 야경」이라 불리어진답니다.
"롯코 산"은 19 세기말부터 외국인의 별장지역이 되어왔으며, 특히 "롯코 케이블"이 건설된 이래 휴양지로서 급속히 발달하였다고 합니다.
정상 부근을 거쳐 고베까지 내려서는데 내려오는길의 커버가 장난이 아닐정도로 교묘하게 만들어져 있어 일본인들의 면면을 엿볼수 있는 그런 케이스입니다.
그리고 롯코산 국립공원 입구에 내려서 로프웨이를 타고 야경을 보기 위해 다시한번더 롯코산을 오름니다.
홍콩의 빅토리아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오르는 로프웨이를 타듯이 이곳 롯코 로프웨이를 10여분 타고 오름니다.
그렇지만 이마져도 다음주부터는 정비로 인하여 운행을 금지한다고 하니 다음부주터는 버스로 오르는길밖에 없을듯 싶습니다.
정상에 올라서니 이정표에는 100만불의 야경보는 곳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 옵니다.
그리고 올라서는데 날씨가 좋아서 인지 항구를 주변으로 늘어선 오사카와 고베의 야경
제법 운치가 있어 보이지만 홍콩의 야경과는 비교할 정도는 아니라는것입니다.
10여분 카메라에 담고는 로프웨이 정류소로 내려섭니다.
날씨가 저녁이 되니 제법 추워짐을 느낌니다.
다시 10여분을 내려서서는 버스에 오름니다.
일본들어와서 첨 맞는 저녁입니다.
비록 3박 4일간이지만 어디를 가나 첫날이 중요 하잖아요
저녁식사정소가 고베에서 가장 괜찮은(?)지역이라지만 어딘질 모르잖아요
고베타워가 한눈에 보이고 오리엔탈호텔이 인접한 모자이크란 건물안으로 들어 섭니다.
그리고 현지식으로 식사후 포토 아일랜드 의 중심에 위치한 KOBE PORTOPIA HOTEL에 여장을 풉니다.
그리고 편의점에 둘러 오징어등 안주를 사서 호텔안에서 소주로 첫날밤을 보냄니다.
1월 17일
한산 대지진이 일어난지 13주변 되는 날입니다.
자료에 의하면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 46분, 고베 약진 발생 다섯번째 규모 7.2 의 지진이 일어난후 5시 47분 12초, 14초만에 지진이 진정되는데....
고베 시와 "한신 지역"이라고 불리는 니시노미야 시, 아시야 시), 다카라즈카 시 등 효고 현 남동부의 인구 밀집 지역과
아와지 섬의 일부에서 최대 진도 7도을 기록한 대지진, 특히 인구 약 150만명의 고베 시에서 피해가 특히 컸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최대의 인명 피해를 기록했다는데요. 6,434명이 사망, 3명 실종, 43,792명이 부상당했으며,
재산피해액만해도 10조엔에 달했다고 합니다.
08시30분
그때 그지진 현장에 서있습니다.
메모리얼 공원안입니다.
그당시 파괴되었던 현장 일부이지만 보유되어 있어 그때 그순간을 뒤돌아 볼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져 있습니다.
강진으로 인해 메리켄 파크의 40%정도가 가라앉고 바로옆의 고가도로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하는데요.
지진 발생 직후의 모습 그대로 기우뚱하게 기운 4개의 가로등과 처참하게 파괴된 부둣가의 모습에서 옛 참상을 읽을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주변으로 당시의 피해상황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 비디오등도 전시하고 있다.
다시 찹찹한 마음을 안고 버스에 오름니다,
다음 행선지는 교토입니다.
1시간간 30분여를 한신 고속도로를 통해 달리는데 교또에 도착할무렵 차창가에 눈이 부디치는걸 볼수 있습니다.
눈온다 라는 한마디입니다.
교토
교토(京都)는 도읍을 의미하는 경(京)과 도(都)를 두 번이나 겹쳐쓴 것처럼 794년부터 1868년까지 약 1,100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고,
오랜 세월 동안 일본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천년 고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교토는 나라와 함께 일본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라합니다.
시내 골목 어디에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찰과 사적이 옛스러운 풍경을 담고 있고요.
세계 유산에 선택된 17개 가운데 신사와 절, 성을 필두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역사적 건축물과 시가지는 오늘날도 아무런 위화감 없이 그곳에서 숨쉬고 있답니다.
그중에서 청수사는 많은 사람들의 관광코스인데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청수사, 일본어로 키요미즈테라 라고 하는데요. 오토바산(音羽山) 중턱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눈이 날리는 청수사 오르는길
골목길을 즐비하게 늘러선 일본 전통음식등을 뒤로 하고 올라섭니다.
780년에 나라에서 온승려 엔친이 세운 절로 알려져 있답니다.
그이후 163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원조를 받아 재건된 것인데요. 국보인 본당을 비롯하여 15개의 당탑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특히 본당 대들보 위에 있는 말 그림 가운데 몇몇은 일본의 무역사와 풍속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청수사의 무대는 본존 십일면관음상에 절하는 장소로, 139개의 기둥이 받쳐져서 벼랑 위에 서 있으며 히가시야마 (東山)의 36봉을 등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절지붕은 노송껍데기로 이어져 있는데요 알듯 모를듯해 보입니다.
또한 이 곳에서는 교토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그런 곳입니다.
상술또한 대단함을 느끼는데요
지주 신사라는곳에는 15M의 거리에 두개의 추돌을 놓고 눈감고 걸어 가서 얼마나 남느냐의 거리를 두고 인연이 멀리 혹은 가까이 있음을 알려준다는 지주신사
그리고 청수사는 일본말로 기요미즈데라로 기요미즈는 맑은 물이란 뜻인데요. 사람들이 줄서서 마시는 세줄기 폭포물은 오른쪽 순으로
총명, 건강, 사랑의 꿈이 이루어 진다는 전설이 있다는 설입니다.
줄을 길게 늘어서 있어도 어떤 욕심 많은 분들은 세가지 모드를 원해 다 받아먹고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답니다.
그렇지만 어느 하나 욕심낸다고 해서 얻어지는게 아니잖아요
세가지중 하는 골라야 하는데...
모든이들의 건강을 위해서 대부분 중간의 물을 바다먹는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다시 내려서는 길에 골목길에 늘어선 전통음식을 맞보고는 다시 버스에 오름니다.
귀무덤 즉 이총으로 가는길은 그다지 멀지는 않습니다.
가는 도중 붉은 벽돌로 지은 교토 박물관을 오른쪽에 두고 지나는데요 나라, 도쿄 발물관과 함께 일본 3대 박물관이라는 설명입니다.
여행일정이 포함되지 않은 관계로 볼수는 없어 그냥 그대로 앞을 지나 임진왜란의 주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도요쿠니신사 앞을 지나 이총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준비한 술한잔으로 수난의 역사앞에서 희생한 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묵념이 진행됩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않도록 기원을 하고 또 합니다.
초라하게 무덤형태로 덩그란히 남아 있는 귀무덤은 그동안 2대째 관리하는 시미즈씨(95세)라는 일본인이 조상들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씻기 위해 이곳을 관리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혹시나
있을지 궁금했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나오질않았다는 이야기이지만 그 나름대로 일본속에 일본을 배운 느낌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곳을 찾은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향을 피우고 참배를 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는데요 일본정부에서 이곳을 교토문화청이 관리하도록하고 하며
출입문을 봉쇄하고 열쇠를 가져가는 바람에 예전처럼 누구나 와서 향을 피우고 조문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맞은변 오른쪽 도요토미 히데요시신사를 쳐다보며 안내판을 읽어 봅니다.
한글로 또렷하게 새긴 안내판을 (귀 무덤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적군의 목대신 조선인의 코나 귀를 소금에 절여 일본으로 가져 가는데 이러한 전공품은
히데요시의 명에따라 공양의식이 거행되었다는 ...) 읽던 순간 가슴이 저리고 아프지만 어찌할수 없는일이라 우리가 이를 극복하는길은 국력을 키우는 길박에 없음을
느낌니다.
그리고 삼중스님께서 원혼을 달래는 재를 지냈다는 이야기와 함께 사천인근에 무덤을 만등어 그간의 수모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위로해준다는 이야기에
다시한번더 나라잃은 서러움에 마음을 저려 봅니다.
눈이 날리는 가운데 도심 근교에 있는 금각사로 가기 위해서 버스에 오름니다.
햇볕이 내려쬐는 가운에 굷은 눈이 쏟아지는 교토
길거리마다 자전게에 우산을 매달고 타는 그네들이 어쩐지 낭만스러워 보입니다.
그가운데 빨간 기노모을 입원 여자분이 빨간 우산을 쓰고는 뒤뚱뒤뚱 거리며 가는 모습에 색다르게 느껴지는데 카메라를 꺼집어 내어 찍어 보지만
달리는 차와의 간격으로 끝내 카메라에 담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잠시후 금각사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금각사
정식명칭은 로쿠온지 절입니다.
세계문화유산인 금각사 세계에서 금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는 금각사 일본 이름은 긴카쿠지입니다.
아시카가 요시마쓰 1397년부터 10년에 걸쳐 세운것으로 죽고 난후 유온에 의해 절로 바뀌게 되었다는 금각사,
1950년에 금각과 하나가 되고파 불태웠다는 하야시 쇼겐이라는 사미승에 의해 연소되고 1955년 다시 재건하였다고 하는데, 누각은 3층구조로 1층은 왕실침대 2층은 사무라이 침대
3층는 중국 선종 불전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누각은 1997년에 금박이 보수되어 옛날의 아름다움을 찾았으며 일년에 한번씩 금칠을 해서 관리도 잘 이루어 지고 있다고 합니다.
누각 주변은 연못인 경호지가 자리하고 있고 바닥면을 제외 하고는 모두 금부치라는 겁니다.
부시 미대통령이 일본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곳이라는 금각사, 일본방문때 고이즈미랑 같이 왔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금각사 뒷쪽을 지나 백사의 무덤앞을 나오는데 펑펑 쏟아지는 눈은 주차장으로 나설무렵은 그쳐 있습니다.
다시 버스를 타고 교토의 점심을 위해 금각사 앞 길가로 들어섭니다.
일본현지식의 돈까스
그런대로 먹을 만합니다.
눈오는 거리를 쳐다보면 먹는 점심 운치도 있고 .....
다시 버스르 타고 나라로 이동 합니다.
동대사
자료에 의하면 본존인 대불은 752년 4월 9일 개안 공양되는데 금동불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구리 74만 근이 들어갔으며,
대불전은 높이 48m, 가로 57m, 세로 50m의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로, 빌딩으로 치면 16층에 해당하는규모로 엄청난 크기의 불상입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을 거듭하여 현재의 것은 1709년에 재건된것입니다.
다이부쓰텐 중앙에 안치된 높이 16.2m, 얼굴 길이 4.8m, 손 길이 36m, 무게 452t의 보존 노사나불(盧舍那佛)을다이부쓰라고 라는데,
이 불상은 세계 최대의 금동불좌상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두 번의 전화를 입어 당초보다 작아진 것이라고 합니다. 다이부쓰의 북동쪽 구석 기둥에는 세로 36㎝가로30㎝의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 크기가 대불의 콧구멍 크기와 같아,이 구멍으로 빠져 나가면 행운을 얻는다고 합니다.
얼굴 길이가 5미터나 되어 속칭 대불이라는 이름이 붙여 졌는데,
원래의 이름은 ‘비로사나불(毘盧舍那佛)’이랍니다.
주차장에 버스를내려서 들어서니 길가에 온통 사슴들입니다.
새끼부터 뿔이 잘린 어미까지 전혀 사람들에서 겁내지 않고 달랴 드는것입니다.
물론 먹을것 달라는 이야깁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해탈한 뒤 처음 설법한 곳이 녹야원(사슴공원)이었다니, 그것에 착안하여 사슴을 방목한 게 아닐까 여겨집니다.
일본의 관광객 유치 작전이 엿보이는 모습입니다.
사슴들이 어슬렁 거리는 정문은(우리나라의 일주문)"대화엄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요. 우리나라의 지리산 화엄사가 생각나게 합니다.
아마도 통일 신라시대 원효와 의상의 화엄사상을 받아 들이지 않았나 생각되어 집니다.
남쪽 대문을 지나 중문을 만나는데 왼쪽으로 우회 하겠끔 만들어 놓았는데요
입장료를 받고 있습니다.
다시 중문앞으로 들어서면 전면에 보이는 동대사의 금당이 자리하고 있고요 노사나 부처님의 대불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출시 빛이나는 눈의 위치와 목조건물의 위치가 같은 위치에 놓이게 한 모습입니다.
대불전으로 들어서면 대불의 노사나불로 정말로 거대한데요.
그 큰 건물 중앙을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손바닥 위에만 사람 16명이 올라갈 수 있다고 하니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뒤돌아서 나가면 부처님의 코크기와 같다는 사각홀을 볼수 있는데요
이를 통하면 모든 근심 걱정거리를 두고 지난다는 의미로 많은 사람들이 통과 하거니 통과 하지 못하는모습입니다.
동대사를 나와 다시 차에 오름니다.
오사카를 들어 오는길에 내일 둘러볼 오사카성밑 NHK건불이 보이는 가운데 신사이바시내 오리엔탈 호텔에 여장을 풉니다.
그리고 저녁은 신사이 바시 내의 초밥집으로 예약이 되어 있답니다.
해서 호텔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고 해서 들어서는데 그야말로 오사카의 패션거리답습니다.
신사이바시
오사카의 대표적인 쇼핑 아케이트로 백화점에서 패션, 잡화, 레스토랑, 빠징코까지 상점들이 즐비하며 이곳를 통과하는 지하철 미도스지센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아메리카 무라(미국 수입의류를 취급하는 상점이 늘어서 있어 붙여진 이름)와
동쪽으로는 유럽 스트리트(유럽풍의 브띠크나 레스토랑이 즐비하여 붙여진 이름)가 있다는 가이드의 이야깁니다.
그리고 도톤보리로 들어서는데요
1615년 완성된 인공천
오사카 남쪽의 번화가를 동서로 흐르는 것이 도톤보리강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거리라고 불리는 도톤보리는 일본제일이라고 불리는 다코야키가게를 비롯해서 게요리점, 라면가게등으로
하루종일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그야말로 먹자골목입니다.
라면이나 오코노미야키등은 비교적 저렴한 먹거리이므로, 한번쯤 꼭 먹어보는것도 괜찮다는 이야기에 라면이 귀에 속 들어 옵니다.
그것도 킨류라멘(금룡라면) 느끼하지 않는 담백한 스프가 우리 한국사람 입맛에도 딱이랍니다.
그리고 각종 오락을 즐길 수 있으며, 거리 전체가 생동감에 넘치는 도톤보리는 오사카 유흥가의 중심지이며, 오사카다운 분위기가 넘치는 거리임에는 틀림없는듯 보입니다.
그리고 도톤보리강을 건널즈음 네온 간판을 볼 수 있는데요.
이것이 바로 도톤보리 3대 명물중의 하나인 "쿠리코 네온 간판" 이랍니다.
여기서 3대 명물은 쿠리코네온간판, 쿠이다오레따로인형,카니도라쿠의 움직이는 게 간판이라는데요
얼핏보면 촌스러운 간판이지만 그안에는 오사카의 명소들이 소개되어 있다지만 자세히는 알수없는게 안타까울뿐입니다.
회전식 초밥집에 들어서는데 언젠가 울산에도 이런 초밥집이 있다 사라진적이 있었는데...규모와 기다리는 손님들과의 차이는 여전합니다.
한접시당 1개와 2개씩 나오는 초밥, 김치와 더불어 먹으면 새로운 맞입니다.
쓰시와 김치 뭐 어울리기나 한 음식입니까..?
금새 10접시씩 비웁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불만이 쏟아집니다.
밥이 많다는등...회가 적다는등...어째튼 저녁해결후 신사이바시내의 백화점에 쇼핑에 나섭니다.
1월 18일
느긋한 시각입니다.
오늘 일정이 오사카성 방문과 NHK방문, 한인타운 등지를 다니며 오후 한류 특강이 있는 일정입니다.
오사카성
오사카성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운 일본 최대의 성입니다.
일본 전국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권력의 상징과도 같은 오사카성은 그의 사후 17년만인 1615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으킨 전투에서 파괴되지만
그 후 1620년 개축 공사를 시작하여 10년만에 재건하였으나 36년이 지난 후 불에 타게 된답니다.
그리고 후에 불탄 덴슈카쿠(천수각)는 새로 만들지 않았다는데 현재 있는 덴슈카쿠(천수각)는 1931년 오사카 시민들이 새로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입구에 내려서니 먼저 눈에 들어 오는게 해자입니다.
거대한 성축에 둘러있는 해자
침입자를 막기위한 그런 방법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하나의 해자도 모자라 밖과 안쪽의 구군데의 해자를 만들었다는데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협의에서 하나만 메우기로 했는데 이때
두곳을 동시에 매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했다는 설이기도 하답니다.
어째튼 그때의 성은 아니지만 일본인 다운 성축조에 다시한번 놀라움을 표합니다.
해자를 지나 오사카성안에 들어 서면 먼저 눈에 들어 오는게 10여M 나 되는 바위입니다.
정교하게 쌓아놓은 바위, 크기도 크기이거니와 어떻게 이곳까지 갔다놓았는지 의문시 될뿐입니다.
잠시후 타임캡술앞선 일행들은 단체사진을 찍으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습니다.
오사카의 역사와 문화, 관광의 상징이며 시민들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한 오사카성은 1931년에 재건되어
1997년 봄 새롭게 정비하여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하는군요
5층 8단의 덴슈카쿠(천수각)에는 야츠지모모야마시대에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목상을 비롯해서, 무구, 의상, 병풍등
귀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는데요 솔직히 별로 달겁지가 않는건 사실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누구입니까.?
'명을 치려고 하니 길을 비켜주시오!'라고 했던 그장본인
결국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 임진왜란의 주범이 아닌가요.
그이후 이순신장군의 활약등 일본군을 대파하여 왜군은 조선의 육·해군에 의하여 봉쇄되면서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사하자
이를 계기로 왜군이 총퇴각함으로써 1598년 12월에 7년 동안의 전란이 완전히 끝나는 그날까지 우리나라를 전란속에 넣었던 인물이 아닙니까,?
솔직히 가벼운 마음은 아닙니다.
가고싶지 않지만 그래도 적을 알아야 승리할수 있다는 지피지기며 백전백승이라고 아지 않았습니까?
관람들어 갑니다.
천수각으로 들어 가는길은 계단길과 더불어 왼쪽에 그당시에사용한 우물이 보존되어 있구요
입구부터는 사진을 찍지못한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특이한것은 여기저기 한글이 동시에 안내되어 있는걸로 보아 한국사람들이 많이 찾아 온다는 것입니다.
더구더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생을 설명하는 장소에는 한글이 번역되어 모니터에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잠시후 높이는 46m인 천수각 전망대까지는 5단이지만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운행되고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올라갈때는 엘레베이터를 이용하구요
내려오면서 각층을 구경할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지만 내려오는길에 일본 아이들을 한무리 만나는데 계단으로 올라가기도 하다라구요
전망대에서는 사방으로 도심빌딩을 구경할수 있도록 배려를 해놓았고요
각층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가족 애기와 생애 겪었던 이야기, 그리고 입었던 옷등이 전시 되어 있구요
1층까지 내려오는데 10여분이면 충분하더라구요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히데요시 일명 풍신수길이 3년의 공사를 걸쳐서 완성한 오사카성은 그 당시의 그의 권력을 한 눈에 느낄 수 있지만
일본사람들의 상업적이면서 관광자원을 여러모로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다시 나와 이제는 서쪽문으로 나갑니다.
다음 일정이 NHK참관 일정이라 곧장 나갑니다.
먼거리는 아니기에 공원지역을 둘러 횡단보도 하나면 모든게 해결될정도로 가까운 거리입니다.
1층에 오픈 스튜디오를 마련한 NHK, 생방을 할정도로 모든게 치안시설등 모든게 완벽하게 되어 있답니다.
마차 그날 11:30분부터 각지역을 연결하는 토크 프로그램을 생방하고 있어 지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관람이 되었리라 생각합니다.
뉴스를 만드는 오픈 스튜디오, 그리고 날씨를 만드는 스튜디오
8층까지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서는 복도세 바라보는 스튜디오는 제작하는 모습을 볼수 있는 직접볼수 있는 그런 공간이라 우리도 이런 공간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다시 나와서 일본 현지의 뷔페가 마련된 식당으로 이동합니다.
그리 넉넉한 식사는 아니지만 소량을 먹는 일본인들에게는 알맞은 식단입니다.
그리고 주변에는 봉지를 든 셀레리맨을 많이 볼수 있는데요
식당에서 도시락을 사서 근처 공원에서 먹는다는 애기입니다.
그러니까 먹는것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잠시 식사후 다음 투어에 포함되어 잇는 쯔루 하시 즉 한인타운의 시장을 방문 합니다.
즉 일반시장과 다를바 없지만 우리가 한국에서 보던 그식품들이 그자리에 전시 되는가 하면 한류 열풍이후 많은 일본인들이 찾아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고추가루부터 떡국, 족발,신라면,등등 많은 학국식품들이 한자리에 있는걸보니 새삼스럽습니다.
다시 나와 어제 못다한 쇼핑을 위해서 도톤버리에 내려 둘러 보지만 별 재미가 없는건 사실입니다.
16시30분 한류 특강이 준비 되어 있는 가정집
많은 일본인들이 찾아 와 한류에 대해서 논의하고 또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고..
겨울연가의 주인공인 배용준과 최지우에 관해서는 일거수 일투족 모두를 꽤하고 있다는데 대해서 놀라울 뿐입니다.
심져 DVD를 사서 40번까지 본사람도 있다니 가히 상상을 하고도 남을뿐입니다.
심져 서는 방향 대사까지 욀정도라니...
2002년전까지는 아주 무시하고 그러니까 우리가 무시했던것처름 행패부리고 했던 일본인들이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로 달라졌다는 이야기와
남대문이 문화란에 소개될정도였다니 해도 너무 한것 같습니다.
옛날에 우리조상들의 문물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지였던 건물들 뭐 자격지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여튼 그렇게 일본에 거주한 우리민족들이 멸시를 받아왔는데 한류 열풍이후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 나면서 새로게 받아 들인다니
매우 반가운 일이죠
우리나라에 돌아 다니는 외국인들을 보고 혹 한국말할줄 아시아요 하고 물으며 조금 한다는 이야기에 우리는 얼마나 고맙고 반갑기 그지 없잖아요
일본인 지네들고 어설프지만 일본말 조금씩 하면 반가울텐데...
안 반가운가 보죠
그만큼 경제력이 좋다는 뜻인가요
하여튼 그렇게 한류 특강은 끝나갑니다.
저넉식사는 영사관 뒷쪽 건물2층에 올라가면 한국민이 하는 한식당이 있습니다.
집떠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리운건 우리나라 김치와 된장찌개입니다.
어쩔수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먹는 고장에 와도 그날의 맞만 느낄분 우리의 고향맞은 어디를 가지 않나 싶습니다.
저녁 밤문화 체험에 이어 3박 4일간의 일본 체험 연수가 끝납니다.
1월 19일
9시30분 남바역에서 간사이 공항가는 라피도 특급열차를 탑니다.
그리고 몇곳의 정류소를 지난다음 40분에 걸쳐 간사이 공항에 도착합니다.
오사카 간사이공항
오사카가 있는 긴키지방은 일본의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이며 1400년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를 상업의 중심지로 삼으면서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현재 일본 제2의 도시로 나라, 교토에 비해 많은 유적지를 보유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상업이 발달한 도시답게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정신과 함께
첨단 도시로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오사카.
1994년 간사이 국제공항을 개항하였지만 막대한 공사비에 비해 활용도가 낮다는 지적을 받아온 간사이 공항
기존 부지 옆에 인공섬을 또 만들고 제2 활주로를 만들어 항공기 대형화를 이루었다는 이야깁니다.
12시 55분 김해공항행 대한항공은 대한해협을 남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