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지방출장으로 인한 과로와 스트레스가 간경변을 악화시켰다면 업무상 재해이다 (2004.12.10, 서울행법 2002구단 3211)
【요 지】원고는 입사 후 1996년 말 무렵까지 일하면서 먼 거리를 운전하면서 지방으로 자주 출장하여 보증 수리를 하였다고, 그 기간 중 원고의 간경변도 지속적으로 악화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만성 비형 간염 환자들의 모두가 간경변으로 진행하지는 않고 20년이 되어도 48% 정도 비율의 환자만이 간경변으로 진행한다는 점, 과로와 스트레스가 직접 의학적으로 만성 비형 간염의 악화와 간경변의 진행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인체 면역 기능을 저하시키고 비형 간염 바이러스를 활성화시켜 간손상에 이은 간경변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는 점 등을 함께 감안하여 보면, 원고의 이 사건 상병은 원고가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가졌던 과로와 스트레스가 이 사건 상병을 악화시키는 한 원인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근로복지공단 사건 * 사 건 / 2004.12.10 선고, 서울행법 2002구단3211 요양급여불승인처분취소 * 원 고 / 이○○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내일종합법률사무소 담당변호사 김진국 * 피 고 / 근로복지공단 대표자 이사장 방○○ 소송수행자 신오윤 * 변론종결 / 2004.10.15
[주 문]
1. 피고가 2001.5.24 원고에 대하여 한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 유]
1. 처분의 경위
가. 원고는 1986.8.4 서울 ○○구 ○○동 51-1에 본사가 있고, ○○시 □□구 □□동 630-1 ○○공단 607-11호 등에 공장이 있는 화학약품 이송용 펌프 등의 제작업체인 ○○산업 주식회사에 입사하여 근무하던 중, 1988.11.15‘만성 비형 간염’의 진단을 받은 이래, 1991.5.31‘간경변증’의 진단을 받고, 1993.6.18‘화학물질에 의한 화상 및 흡인성 후두염, 각결막염(양안), 각결막 산성화학상(양안, 의증)’의 진단을 받았으며, 1993.7.24에는‘급성 기관지염(추정)’의 진단을 받았다. 원고는 이에 대한 치료를 따로 받아오다 1998.1.31 위 회사를 퇴직한 후 2001.4.14 피고에게 위 질병들에 대하여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여 원고에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보험급여를 지급하여 달라는 취지의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나. 이에 대하여 피고는 2001.5.24, 위 상병 중 ‘만성 비형 간염, 간경변’은 비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성 질환이고, 비형 간염에서 간경변증으로 이환된 것은 자연스러운 경과에 따른 일시적 증상으로서 원고가 위 회사의 업무로 말미암아 발병하였다는 뚜렷한 근거가 없어, 업무와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의 요양을 승인하지 아니하고,‘화학물질에 의한 화상, 흡인성 후두염’은 업무수행 중 발생한 재해로 보여지나, 이 증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후 상당 기간이 경과하여 이에 대한 보험급여의 수급권이 시효로 소멸한 것으로 보이고,‘각결막염(양안), 각결막 산성화학상(양안, 의증), 급성 기관지염(추정)’들은 모두 의증 내지 추정되는 것에 불과한 상병으로서 확진이 되지 않아 요양판정대상에서 제외하고 한편으로는 역시 이 증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후 상당 기간이 경과하여 이에 대한 보험급여의 수급권이 시효로 소멸한 것으로 보여 보험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고 하였다.
다. 원고는 피고가 한 위와 같은‘만성 비형 간염, 간경변증’에 대한 요양불승인처분과 나머지 상병들에 대한 보험급여부지급처분 중 만성 비형 간염, 간경변증에 대한 요양불승인처분에 대하여 심사청구와 재심사청구를 하였으나, 모두 기각당하였다(이하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요양불승인처분을 한‘만성 비형 간염과 간경변증’의 상병을‘이 사건 상병’이라 하고, 이와 같이 이 사건 상병에 대하여 요양승인을 하지 아니한다고 한 처분을‘이 사건 처분’이라고 한다).
원고는 이 사건 청구 원인으로, 원고는 위 회사에 입사하여 보증 수리를 위하여 전국에 흩어진 제품 판매처에 계속하여 출장을 나가는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되었고, 이 때문에 만성 비형 간염이 자연적인 경과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되어 간경변증이 생겨 이 사건 상병은 업무와 상당 인과관계가 있음에도 피고가 이 사건 상병을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아니하고 이 사건 처분을 한 것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 판 단
(1) 인정사실
살피건대, 앞서 든 증거들과 갑6(제품목록), 갑9(자술서), 갑10-1~9(각 진술서), 을3(문답서), 을4(업무내용)의 각 기재, 증인 최○철의 증언, 이 법원이 ○○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구로병원장, 서울아산병원장에 대하여 한 감정촉탁결과, ○○산업 주식회사에 대하여 한 사실조회결과에 변론의 전체 취지를 보태어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가) 원고는 화학물질의 정확한 양을 주입하는 펌프 등을 생산하는 위 회사에 1986.8.4 입사한 이래 개발부에 소속되어 처음에는 탈수기 보증 수리(이른바 애프터 서비스, A/S)업무를 맡아 하다가 1989.12.5부터는 탈수기와 펌프의 보증 수리를 담당하였고, 1990.5.1부터는 펌프의 보증 수리를 담당하였다. 그때까지 원고는 보증 수리를 위하여 사무실 근무보다는 700여곳이 넘게 전국에 산재하고 있는 위 회사 제품이 설치된 공장이나 업체로부터 요청을 받아 그곳에 출장을 가서 고장난 제품을 수리하는 일을 하였다. 그러다가 1997년 무렵부터는 사무실 근무를 하다가 1998.1.31 퇴직하였다.
(나) 위 회사에서 보증 수리를 위한 출장을 나갈 때 원고는 하루에 300~400km가 되는 거리를 직접 운전하여 다니면서 위 회사 제품이 판매된 곳에 가서 시운전 또는 수리 업무를 보는 경우가 있었고, 그 업무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의 시간은 서울, 경기 지역으로 출장을 갔을 때는 19:00부터 20:00까지 사이가 대부분이었고, 다른 지방으로 갔을 때는 21:00부터 23:00까지 사이가 되었으며, 어떤 때는 1박을 하면서 2일 동안 출장 수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위 회사에서 1989년부터 지방영업소에도 보증 수리 담당 직원을 두기 시작하여 그 직후에는 원고의 출장 수리 업무가 반 정도로 줄어들었으나, 판매량이 늘면서 출장 수리 횟수도 늘어나 얼마 되지 않아 다시 1주일에 2~3회 정도의 지방출장을 가게 되었다. (다) 원고는 1988.11.15 초진을 받았을 때 이미 비형 간염 바이러스 항원 양성 반응을 보여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상태에 있었고, Child 분류 A급에 해당하는 가벼운 간경변증과 이로 인한 식도정맥류가 관찰되고 있었으며(고려대 구로병원 감정결과), 그 이후 비형 간염 바이러스가 계속 활동하면서 간경변이 진행되어, 1992.12.18에는 식도정맥류 출혈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간경변은 계속 진행되어 1999년에 와서는 Child 분류 C급의 간경변증과 이로 인한 식도정맥류 출혈, 복수, 세균성 복막염, 간성 뇌증 등의 증상을 보였다. 그 후 원고는 2001.1.14일에 간이식술을 받았다. (라) 만성 비형 간염 보균자는 의학적 처지와 건강 관리를 제대로 한다고 하여도 간경변증으로 진행하고 악화되는 것을 예방하는 방법은 없고, 과로나 스트레스가 만성 비형 간염에서 간경변증으로 악화되는 것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과학적이고 의학적 근거는 아직 없다. 하지만 만성 비형 간염 환자에 대한 의학적 처지와 건강 관리는 간경변으로 진행하고 악화되는 속도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면역 기능이 저하되는 경우에 비형 간염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활성화가 많이 되는 것을 고려하면, 면역 기능의 저하가 만성 비형 간염 보균환자의 증세를 악화시켜 바이러스의 증식과 활성화를 보이고 만성 간손상을 일으켜 간경변에 이를 수 있다. 그리고 면역 기능이 저하되는 상황인 심한 육체적 또는 정신적 노동 등을 피하는 것은 간경변의 악화를 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서울아산병원 감정촉탁결과).
(마) 만성 간염 환자가 간경변으로 진행하는 비율은 만성 비형 간염 진단을 받은 후 5년 후에 약 9%, 10년 후에 약 23%, 15년 후에 약 36%, 20년 후에 약 48% 정도라고 보고되어 있다.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성 여부
이와 같이 인정되는 사실관계를 종합하여 보면, 원고는 입사 후 1996년 말 무렵까지 위 회사에서 일하면서 먼 거리를 운전하면서 지방으로 자주 출장하여 보증 수리를 하였다고 보여지고, 그 기간 중 원고의 간경변도 지속적으로 악화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점에다가 만성 비형 간염 환자들의 모두가 간경변으로 진행하지는 않고 20년이 되어도 48% 정도 비율의 환자만이 간경변으로 진행한다는 점, 과로와 스트레스가 직접 의학적으로 만성 비형 간염의 악화와 간경변의 진행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인체 면역 기능을 저하시키고 비형 간염 바이러스를 활성화시켜 간손상에 이은 간경변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는 점 등을 함께 감안하여 보면, 원고의 이 사건 상병은 원고가 위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가졌던 과로와 스트레스가 이 사건 상병을 악화시키는 한 원인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원고의 이 사건 상병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고, 그러함에도 피고가 이 사건 상병을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보고 이 사건 요양불승인 처분을 한 것은 잘못된 것이어서 취소되어야 한다. 원고의 주장은 이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