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부산웰다잉문화연구소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유익한 자료 스크랩 웰다잉(Well-Dying)과 죽음교육(Death Education)에 대한 바른 이해
김동환(밝은동녘) 추천 0 조회 96 12.05.07 10: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웰다잉(Well-Dying)과 죽음교육(Death Education)에 대한 바른 이해

 근년에 이르러 웰다잉과 죽음교육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관련된 사회교육 프로그램들도 많아졌고 전문 강사를 교육하는 곳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죽음문화 선진국들의 지난 추이를 고려해 볼 때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불을 넘으며 발생하는 자연스런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척박한 죽음문화를 고려해 보면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다. 다만 몇몇 문제점이나 우려되는 부분들도 나타나고 있기는 하다.

 먼저 짚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용어에 관한 문제이다. 죽음(Death)에 이르는 과정이 곧 다잉(Dying; 죽어감)이다. 웰다잉은 말 그대로 잘 죽기이다. 하지만 영어로 표현하면 다잉이 동사이고 웰이 부사이기 때문에 다잉 웰(Dying well)이 된다. 굳이 웰다잉이라 표현하려면 영어로는 Well-Dying이라 표기해야 한다. 실제 영어로 웰다잉(Well Dying)을 검색해 보면 그런 단어는 찾을 수 없고 다잉 웰(Dying well)로 나온다. 아마도 국내에서 웰빙과 견주어 웰다잉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낸 것 같은데 웰빙(Wellbeing)은 복합어가 아니라 한 단어(명사)이다. 어떻든 굳이 많은 사람들이 웰다잉이라 쓰고 이해하고 있는 것을 굳이 잘못이라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알고 쓰고 이해하잔 이야기다.

 용어에 있어 보다 심각한 것이 죽음준비교육이란 말이다. 죽음준비교육이란 용어는 Death Education을 한국 실정에 맞게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죽음교육을 웰다잉과 연계시켜 죽을 나이나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죽음을 제대로 준비하게 하는 것이라 이해한 탓이다. 하지만 본래 Death Education, 즉 죽음교육은 전생애주기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일컫는다. 어르신이나 임종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들도 있으나 꼭 죽음을 목전에 두고 하는 교육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삶을 보다 건강하게, 의미있게 받아들이라는 삶에 대한 교육이 바로 죽음교육이다. 죽음교육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 죽음교육의 주된 대상은 오히려 삶을 준비하는 유아부터 초중고생들이다. 죽음을 제대로 알아야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죽음이나 죽음 경험에 대한 참다운 이해는 살면서 맞는 자살과 같은 죽음의 유혹을 물리치게 하고 죽음경험으로 인한 상처를 건강한 삶의 에너지로 바뀌게 한다. 자살, 생명경시, 죽음혐오 등 우리 사회의 온갖 죽음 관련 부조리들을 볼 때 죽음교육을 본래의 의미대로 쓰고 본래의 목적대로 실천해야 함은 자명하다. 따라서 죽음교육은 웰다잉교육(죽음준비교육)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굳이 죽음준비교육이란 말을 쓰려면 웰다잉과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으로 한정해야 한다. 한창 삶을 준비해야 하는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 죽음준비교육을 한다는 건 본말이 전도된 이야기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경우 죽음준비교육이란 용어로 번역되어 쓰이고 있는 건 아이들이나 청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죽음교육이 전무하고 죽음교육이란 게 죽음에 이른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들만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인 듯하다.

 두 번째로 우려되는 것이 죽음교육, 웰다잉 교육의 내용이다. 우리 웰다잉 교육의 핵심 프로그램 중 하나가 바로 입관체험이다.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 3분여 정도 누워있다 나오는 체험이다. 죽음교육이 대중화되어 있고 초중고대학 교육 프로그램에 죽음교육이 상설화되어 있는 미국 죽음교육엔 입관체험이란 게 없다. 우리 문화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 무덤과 수의이고 미국에선 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죽음교육엔 관에 들어가 보는 프로그램이 없다. 이는 미국 사람들이 소심해서가 아니다. 입관체험이 교육적 효과보다 오히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상 연로하신 어르신들이나 죽음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경우 심장쇼크 등이 올 개연성도 높다. 죽으면 관을 사용하는 것이 범문화적 장법인데 외국의 입관체험 사례를 들어 본 것은 소련에서 이색심리치료법 중 하나로 소개된 것이 전부다.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공포증을 치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필자가 대학원에서 죽음교육론을 강의하는 교수로서 외국의 어떤 죽음교육 프로그램들을 살펴봐도 입관체험이 들어간 사례는 찾을 수 없었다. 또 필자가 3년 전 대학 축제 때 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입관체험 전후의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변화를 측정해 본 결과 교육적 효과를 발견할 수 없었다. 또한 모 복지관에서 시행하는 입관체험교육에 참가한 어르신들을 심층 인터뷰해 본 결과도 동일했다. 오히려 이들은 입관체험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입관체험의 교육적 효과를 논증한 논문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죽음교육(웰다잉교육 포함)에서 입관체험이 주된 프로그램으로 활용되는 것은 교육주관자의 죽음교육에 대한 오해와 무지의 소치이다. 내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나치게 용감해서 그런 것이거나 아니면 신기하고 선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언론에 소개되기를 원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실상 죽음교육이 국내 처음 소개될 즈음, 일부 기관에서 한 입관체험이 언론에 소개되면서부터 입관체험이 죽음교육의 주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측면도 있다. 죽음학자의 한 사람으로 외국 사이트에 한국의 웰다잉, 입관체험이 종종 해외토픽으로 소개되는 걸 보면 종종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죽음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은 유언장쓰기, 지난 삶을 회고하기, 장사시설 방문하고 토론하기, 죽음을 다른 문학작품이나 동영상 감상하고 토론하기, 최근 이슈가 된 관련사건 토론하기, 자신의 죽음 설계하기, 리빙윌(존엄사선언서 등) 작성하기 등등이다.

 세 번째로 들 수 있는 문제가 교육시스템이 체계화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교육내용은 물론 교육 대상, 시기, 시수, 강사 등이 즉흥적이거나 일회적이며 일부 프로그램은 상업적이다. 교육대상별 프로그램이 적합하게 짜여 있지 못하고 획일적이다. 교육시간도 2시간 강좌를 2~3회 하는 선에서 끝난다. 일부 프로그램은 기업이나 단체의 사원연수 프로그램의 일부로 운용되고 있기도 하다. 강사들은 호스피스에서부터 사회복지사, 장례지도사 등이며 교육기관은 사단법인에서부터 영리법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몇몇 기관들은 단기간의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웰다잉지도사, 죽음교육지도사 등등의 이름으로 자격증을 교부하여 강사를 배출하고 이들이 또 다른 죽음교육을 맡는다.

 미국의 경우 ADEC(미국죽음교육및상담협회)이란 비영리법인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죽음교육사(Death Educator)란 국가공인 민간자격자를 배출한다. 자격증 소지자들은 지역사회에서 죽음교육을 담당하거나 사별상담사, 초중고 특수교사로 활동한다.

 죽음이나 죽어감은 우리 누구나가 한번쯤은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예외가 없다. 우리 삶에서 죽음이 주는 파괴성은 실로 막대하다. 또 특정 시점의 죽음경험이나 인식이 남은 삶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크다. 그러면서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따라서 누구나 얕은 지식으로 죽음을 교육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더욱 우리 사회엔 죽음과 관련된 문제들, 이를테면 자살, 낙태, 각종 사고사,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 연명치료 여부, 고독사, 안락사, 존엄사, 리빙윌, 장사시설에 대한 님비현상, 임종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격리, 호스피스 등등이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죽음교육은 책임 있는 교육기관에서 검증된 강사가 교육대상별로 적합하고 충실한 내용으로 국민들에 대한 평생교육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그것도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2012. 1. 27일)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