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삶의 B.C.와 A.C.
사도 바울은 성경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믈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의 삶(B.C.)을 말하는 것이고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는 바로 이 순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 속에 들어와 우리들의 삶의 구주와 주님이
되심으로써 변화된 우리들의 삶, 이 새로운 삶이'A.D.'인 것입니다.
77. 누군가 해야 할 일
미국 켐브리지 대학에서 불이 났을 때의 일입니다.
불이 나자 학생들은 모두 불을 끄기 위해 릴레이식으로 줄을 서서 물을 날랐습니다. 추운
날씨였는데 헤어라는 학생이 물 속으로 들어가 물을 퍼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허약하고 건강하지 못한 그를 본 교수가 물었습니다.
"여보게 헤어, 자네는 허약한데 왜 이렇게 힘든 일을 자청하였나?"
헤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일은 분명 누군가가 해야만 할 일이기에 제가 먼저 맡았을 뿐입니다.
78. 생수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생수를 마시려면 바위를 깨뜨려야 합니다. 생수는 파야 나옵니다.
헌데 그리스도인의 약점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파헤치는 경험 없이 죄 지은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는 너무나
인간적인 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파고 또 파헤쳐서 깊은 곳까지 자신을 낮추지
않고서는 은혜의 생수가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79. 성도의 공동 생활
본 회퍼는 <성도의 공동 생활>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들어줄 귀를 찾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들어줄 귀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들어야 할 때에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더 이상 귀를 기울여 듣지 못하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도 귀를
닫아 버릴 것입니다.
오랫동안 인내로써 이웃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자들은 지금 이웃에게 웅변을 토한다 해도
빗나간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이웃에게 말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비록
그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해도 말입니다."
80. 제일 중요한 생각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요, 학자인 다니엘 웹스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한번은
국무 장관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뉴욕의 어떤 호텔에서 저명한 사람 약 20명과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웹스터만 가만히 머리를 숙이고 있더랍니다.
그때 옆에 있던 사람이 "웹스터 씨, 일생을 통해서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온 생각 가운데
제일 중요한 생각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내가 지금 하는 모든 일을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을 할 때 내 마음이 제일 엄숙해 집니다."
81. 성자의 단순한 이야기
중세의 한 성자의 이야기가 우리의 신앙을 일깨워 줍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새들에게 먹을 것을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 날은 찌푸린 하늘에 몹시
추운 날씨였고, 땅 위에는 하얀 눈이 덮여 있었습니다. 나는 문 밖에 나가 곡식을 한 움큼
쥐어서는 새들에게 뿌리고 새들이 와서 주워 먹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눈을
멀뚱멀뚱 뜨고 멀리 앉아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면서도 두려워 가까이 오지 않았습니다.
새들이 날 신뢰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나는 거기 앉아서 새들을 쳐다보며 기다리는 동안에 차츰 하나님의 마음을 전보다 더
분명히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여러 가지를 주시고, 계획을
세우시고, 기다리시며, 우리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계획과 사랑과 은혜와 능력과
영광과 기쁨들을 받아들이기를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말입니다.
82.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존경을 받으시고 사랑을 받으소서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보여지고 알려지고 들려지소서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모든 생각과 말 속에 계시옵소서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겸손하고도 조용한 노력 속에 계시고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겸허하고도 성실한 수고 속에 계시옵소서
과장도 아니고 허식도 아니며
오직 그리스도께서만이
버려진 자들을 불러 모으시나이다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께서만이
머지않아 내 꿈을 이루어 주시리라
곧 다가올 풍성한 영광, 완전한 영광을 내가 보리니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께서만이
내 모든 소원을 이루시며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께서만이
나의 전부가 되시리
83.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고 수많이 죄 없는 자유인들이 독일의 수용소(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가던 그 현장 속에서 유대인들이 눈물을 뿌리면서 외친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이 왜 이런 사건을 허용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연합군이 이 수용소를 탈환하고 이 수용소의 벽을 감시하다가 한쪽 벽에 씌여진
찬송가의 가사를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이 그의 신앙의 고백으로 기록해
놓았던 구절이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하나님의 사랑? 이 저주와 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하나님의 사랑이라니 웬 말입니까?
그러나 또 다른 곳에서는 이런 글자가 선명하게 씌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God is here)."
84. 주님이 우리를 택하신 목적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에 나타난 선택의 의미는 특권의식이 아닌 사명의식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과실을
맺기 위하여 나무가 존재하는 것이며 나무가 존재하는 보람은 열매에 있습니다. 농부가
무엇보다도 원하는 것은 열매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꽃과 열매에 대한 흥미있는 대조적
교훈을 볼 수 있습니다.
꽃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모두 37회 등장합니다. 그러나 열매라는 단어는 자그마치 2백회
이상이나 등장합니다. 또 의미상으로 보아도 꽃은 성경에서 순간적이고 허무한 인생의
일시적 가치만을 비유하고 있음에 반하여 열매는 궁극적이며 영원한 생의 가치를 교훈할 때
쓰여지고 있습니다.
85. 좌절할 때 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
캘리포니아 말리브에 있는 페퍼다 대학교의 졸업식날이었습니다. 그 날 1백명의 학생들이
학사학위를 받았는데 대학 졸업자의 평균연령이 40세 가까왔습니다.
고령의 졸업자 가운데 67세의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는 10명의 자녀와 27명의 손자 손녀를
가진 할머니였습니다. 그 할머니가 학사 학위를 받으려고 단상에 올라가자 한 백발의
노인과 여러 사람들이 앉았던 자리에서 환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드디어 해내셨군요. 할머니, 잘하셨어요. 드디어 성공하셨어요."
졸업식이 끝나고 그 할머니는 자기 목사님을 만나 격정에 못이겨 눈물을 흘리면서 목사님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에게 만약 믿음을 심어 주지 않았더라면 나의 하나님이 내가 좌절할 때마다
나에게 새 힘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시작하자마자 포기했을 것입니다."
86. 인간의 이상형
신학자 리처드 니버는 인간의 이상형으로 예수를 본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누구나가 닮고
따라야 할 인생의 정도가 곧 예수라는 것입니다. 또 그분의 전생에 속에서 두 가지를
본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신을 향한 절대 신앙이며, 또 하나는 인간을 향한 절대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인간을 사랑하면서 사는 길이 정도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겸허해지는 것입니다.
87.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믿음은 靜이 아닌 動입니다. 퇴보가 아닌 전진입니다. 바라는 실상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산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철저한 자기 부정입니다. 자신을 철저하게 부정하지
않은 이상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죽이고 자기 부족을
인정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이 시인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신뢰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의심없이 믿는 것입니다.
88. 예수 '한 고독한 생애'
그는 한 시골의 여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 곳에서 그는 30세가 될 때까지 목공수의
목수로 일했습니다. 그후 3년 동안 그는 떠돌이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았고, 그는 관직을 취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가정을 떠나서
가정을 소유한 일도 없습니다. 그는 큰 도시에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그가 태어난 곳으로부터 2백 마일 이상을 여행한 적도 없습니다. 그는 일반적으로
위대하다고 할 만한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임장이 없었고 단지 그 자신
홀로였습니다.
89. 사랑의 징계
어느날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에게 어떤 여자 교인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범죄해도 하나님은 저를 그대로 놔두시데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분이신 것이 분명해요."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무디는 부인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부인! 부인은 지금 부인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왜요? 제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출석했는데요" 라고 부인이 반문하자 무디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을 것이요."
그렇습니다. 징계는 자녀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의 잘못을 그대로 방관할 수 없어서
사랑하는 자녀를 향해서 사랑의 채찍과 매를 듭니다. 그처럼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그대로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징계가 올 때,
그것이 해석되고 징계로 확신될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90. 잃은 것과 가진 것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차대전중 헤롤드 럿셀이라는 공수부대원이
전투에 나갔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어 불구자가 됩니다. 그는 참혹한 좌절에
빠집니다. "나는 이제 쓸모 없는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었구나." 그런 가운데 그에게 차츰
진리의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다고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의사가 그에게 의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글을 쓰고 타이프도 치기
시작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화되어 직접 불구자의 모습으로 출연하게 됩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연기를 합니다. 그 해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탑니다. 그 상금은
상이용사를 위해 기부합니다. 어떤 기자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당신의 신체적인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는 결연히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나에게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남은 것을 사용할 때
잃은 것의 열 배를 보상받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만 눈을 돌릴 때 그곳에는 오직
절망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불가능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잃은 것을 넘어 가진 것을
세어 보면 더 많은 가능성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91. 부모 된 자의 기쁨처럼
언젠가 선교를 열심히 하는 젊은 청년들의 어떤 모임에서 어떤 사람이 점심식사를 잘 내고
식후에 과일까지 좋은 것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그중에 한 젊은 청년이 이렇게 저에게
반문했습니다. "목사님! 우리는 고기를 먹지 않아도 죽지는 않지 않습니까? 고기 먹지 말고
그 돈을 아끼고, 이 과일 먹지 말고 그 돈도 아껴서 선교해야지, 먹고 마시는 데에 다 쓰면
언제 선교합니까?" 이렇게 한 청년이 눈을 부릅뜨고 도전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 고기를 주시고 이 과일을 주시는 것은, 이것 없어도 하나님께서
선교를 충분히 하실 수 있으시며 우리가 어떤 기특한 마음을 가진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우리에게 지금 주신 상급이니까 감사함으로 먹으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녀에게 갖는 가장 큰 기대는 자녀가 훌륭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훌륭하게 된
것이 기쁜 것만큼 자녀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것을 먹이면서 기뻐하는 것을 보는 것도
부모된 자가 누리는 기쁨 중의 큰 기쁨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복의 전부라거나, 복의
첫번째, 두번째의 조건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도
우리를 기쁘게 해주십니다. 오늘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시면 감사하겠지만 좋은 것을 주지
않으신다 해도 그것이 우리가 받을 복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깊은 신앙으로 가는 길, 박영선
92. 갚을 수 없는 빚
오래 전 미국의 보스턴 시에 스트로사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돈이 없어서, 거부인 바턴 씨를 찾아가서 2천불을 꾸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자기에게 담보는 없지만 일에 대한 꿈과 용기가 있으니 믿고 대여해
주시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노라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바턴 씨의 주위 사람들은 경력도
없는 그에게 담보나 후원자도 없이 돈을 꾸어 주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바턴 씨는 웬지 그 청년의 용기가 마음에 들어 모험을 걸고 2천불을 주었습니다.
과연 스트로사는 얼마 되지 않아 그 돈을 갚았습니다. 이 일이 있은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대 경제공황이 일어나 바턴 씨는 완전히 파산이 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소문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스트로사는 바턴 씨를 찾아가 당신이 빚진 돈 7만 5천불을
내가 대신 갚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바턴 씨는 깜짝 놀라 "자네가 가져 갔던 돈은 이미
갚았는데 무슨 소리요?" 하고 의아해 했습니다. 이에 대한 스트로사의 대답은 멋진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빚진 돈 2천불은 옛날에 갚았지만 당신이 베풀어 준 은덕은 평생
갚지를 못합니다. 그때에 2천불로 장사를 해서 오늘 이렇게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돈으로 갚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은덕과 사랑은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93. 감사 주일의 유래
청교도들이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경건한 이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한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 사람이 이렇게 제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종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주일의 기본 동기인 것입니다.
고통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 옥한흠
94. 겸손의 일상 생활화
우리의 겸손한 마음과 온유한 심정은 사람과의 관계나 서로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겸손을 이웃에게 나타내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겸손이란
가치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위에서 본 모든 말씀에 비추어서 우리의 일상생활을
통해 겸손을 배우자. 겸손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하기를 힘쓴다.
즉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여 서로 종이되며 각각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며 서로
순복하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의 생활이다. 지혜에 있어서나 재능에 있어서나, 혹은 받은 바
신령한 은혜에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사람을 낫게 여길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 질문은 마음속의 참겸손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광명한 빛 가운데 자신은 진실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완전히 죽일 때까지 나타나는 것이
겸손이다. 이러한 사람은 오직 "오, 주여 당신을 찾으려고 나는 나 자신을 버렸사오니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케 마옵소서"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고서야 비로서
자기 중심의 모든 생각을 끊어 버리고 모든 사람앞에서 자기를 낮추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되고 , 또 자기를 위해서 구하지 않고 오직 자기를 하나님의 종으로 또는
모든 사람의 종으로 생각하게 된다.
어떤 신실한 종은 주인보다 더 지혜로울런지 모른다. 그러나 신실한 종이라면 역시
종으로서 마땅한 정신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가장 연약하고 가장 볼
것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오히려 우러러보며 그들을 존경하고 섬긴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던 그리스도의 정신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가장 작은 자 즉 다시 말하면, 피차의 종이
되는 것을 만족케 한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시기와 질투란 없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섬김과
존경 받음을 볼 때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다른 사람은 칭찬을 받고 자기는 오히려
천대받고 무시당해도 참을 수 있다. 이는 그가 마치 바울 사도와 같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그 정신을 배웠기 때문이다. 과연 이러한 사람은 마치 예수님께서 자기의
기쁨을 위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존귀를 구하지 않으신 그 마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동료들의 실수와 죄를 보고 날카로운 말로 책망하고픈 유혹을 받을 때에도 겸손한 사람은
"서로 참으며 서로 용서 하기를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해 주신 것같이 하라"고 여러 번
말씀하신 이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생활에 임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주 예수를
옷입어야만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
앤드류 머레이
95. 개는 개일 뿐입니다.
갑술년, 개의 해, 수 많은 견공들이 신문이나 TV에 버젓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진돗개 한 마리가 대구에서 고향집까지 찾아가 화제가 됐던 적도 있습니다.
연예인들과 함께 출연하여 재롱을 부리는 개, 사업가 모모씨 집에서 귀부인 못지 않게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는 개, 드라마나 퀴즈프로에 나와 사람 보다 뛰어난(?) 용모를
자랑하는 개...
개의 해이니 만큼 개를 강조하고 개의 특성을 알리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를 여러 마리 씩이나 데리고 나와 전국의 시청자가 보는 앞에서 마구 끌어안고
쓰다듬고 뽀뽀까지 하는 장면은 지나쳐도 한참이나 지나치다는 생각입니다. 아직 우리
주변에는 어려운 이웃들이 많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여럿입니다. 아프리카나
방글라데시같은 데서는 하루 한끼를 못먹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개는 개고 사람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충성심이 많고 아무리 귀여워도 사람이 다스리도록
지음 받은 가축에 불과할 뿐입니다.
개 미용실이 성행하고 개 먹이가 고급화되고 개 한 마리 값이 수백만원이나 된다는
기사내용보다 불우한 이웃돕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참하고 있는가를 보도해야 하는
기자정신이 아쉽기도 합니다.
개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입니다. 개와 인간의 역사는 오래되었고 다양합니다.
감동실화도 있고 감격적 사건도 많습니다.
그러나 개는 개이고 사람은 사람입니다. 우선 순위는 분명 사람이 먼저임을 잊지 맙시다.
낮은 울타리
96. 성 어거스틴의 말 중에서
사탄이 내게 오는 것을 환영한다. 내 믿음을 위해 나는 악마와의 대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사탄을 마음속에 계시는 그리스도에게 소개한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사탄에게 말씀하신다. "사탄아 어거스틴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좋다. 그러나 너와 싸울
상대는 나 예수이다 " 라고 하시며 못자국이 있는 손을 내밀어 보이신다.
97. 바꿔 쓴 고린도전서 13장
내가 다른 나라 말을 완전히 익히고 그 나라 사람처럼 얘기할 수 있어도,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익히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졸업증서와 학위증을 받고
모든 현대적 기술을 배웠다 하더라도, 주님의 사려 깊은 사랑을 받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과 당당히 싸워 이기고 그들을 조롱할 수 있어도,
주님의 호소하는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강한 신념과 위대한
이상, 그리고 거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땀흘리고 피 흘리고 울며 기도하고
애원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갖지 못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다른 이웃에게 옷과 돈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 내가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집과 친구를 떠나 전도 사업에 몸을 바친다 하더라도, 하루하루
번거로움과 전도 사업에 대한 경멸을 참지 못하여 참을성 없고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
버려서, 일상생활의 권리와 여가, 사소한 계획을 포기할 만한 사랑을 갖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그러면 내게서 미덕이 사라지는 것이라. 내가 모든 아픔과 질병을
치료한다고 하더라도, 친절한 주님의 사랑에 굶주려 상처받은 마음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어떤 기사를 쓰거나 책을 출판해서 갈채를 받는다고 해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뜻을 그의 사랑의 말로 전달할 수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
신앙 다이제스트
98. 재난을 통한 축복
배가 좌초되었다. 생존자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 사람은 파도에 밀려 인적없는 작은
섬에 당도했다. 궁지에 빠져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열심히 외쳤고 다른 배가 보이지 않을까
하고 날마다 지켜보았다. 어설픈 오두막을 하나 지어서 좌초된 배에서 건진 물건을 몇가지
들여다 놓았다.
어느날 먹을 것을 찾아다니다가 오두막이 불에 타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슬퍼서 어쩔줄
몰랐다. 오두막이 금새 재로 변했다.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왔다! 다음날 일찍 배 한 척이 다가왔다. 섬에 고립되었던
사람은 어떻게 자기를 구하러 왔는가 하고 물었다. 선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당신이 낸 연기를 보았읍니다."
99. 성령 충만
우리가 매일 수염을 깎아야 하듯 그 마음도 매일 다듬지 않으면 안된다. 한번 소제했다고
언제까지나 방안이 깨끗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마음도 한번 반성하고 좋은 뜻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늘 우리 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 먹은 뜻을 오늘 새롭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우리를 떠나고 만다.
마르틴 루터
100. 우리 역시 마찬가지
인간들의 사랑 속에는 언제나 사심이 있습니다. 인간들의 마음속에는 순수한 하얀 것,
순수한 까만 것, 순수 악과 순수 선이 사실 거의 없다시피 한 것입니다. 남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나의 행복을 구한다 든지, 그 사람에게서 존경과 사랑을 구합니다. 사랑을
주고받음에 있어서 우리는 무서운 착취를 하게 됩니다. 사랑과 애정과 인기와 존경을
수입하고 그 사람과 상하 관계를 만들어 버리거나 주종 관계를 만듭니다. 예를 들면 백원의
사랑을 주고는 자기 장부에는 받을 것을 천원이라 적어 놓습니다. 무의식중에 그렇게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조그만 사랑을 베푼 후에는 그 사람을 자기의 정신적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에게 짐지우고 또 그것이 세상에
선전되기를 바라며 그 보답이 어디선가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계산을 하고 타산을
합니다. 순수하고 사심 없이 사랑하기란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힘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하나님께 무슨 척도가 있어서 인간의 사랑을 시금석으로 분석해 보면 역사에 알려진
위대한 영웅적인 사랑의 행동에도 불순한 것이 30퍼센트, 어떤 것은 40퍼센트,어떤 것은
90퍼센트, 혹 어떤 것은 세상의 선전 효과를 노린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기심이 사라지고
있었던 것 외에도 여러 가지 것이 있을 줄로 생각됩니다. 위선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불완전하지만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심 없이 사랑했습니다.
순수했습니다. 제자들에게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한 사랑의
부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