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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삼척시 미로면, 두타산(頭陀山;1353m) 베틀바위 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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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산(頭陀山;1353m)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삼척시 미로면,
특징, 볼거리
두타산은 청옥산과 한 산맥으로 산수가 아름다운 명산으로 사계절 등산 코스로 이름이 높아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깎아지른 암벽이 노송과 어울려 금세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물과 어울린 무릉계곡의 절경 골짜기는 비경이다.동해와 불과 30리 거리에 있어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기려는 피서객들에게는 이상적인 산이다.
산이름인 두타는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뜻이다. 두타산에는 두타산성, 사원터, 오십정 등이 있으며 계곡에는 수백 명이 함께 놀 수 있는 단석이 많아 별유천지를 이루고 있다. 두타산의 중심계곡인 무릉반석을 비롯, 금란정, 삼화사, 광음사, 학소대, 광음폭포, 옥류동, 두타산성, 쌍폭, 용추폭포 등의 아름다운 명소와 유서어린 고적이 많다.
동북능 하산길 678고지 부분에 있는 이 오십정은 둥글게 패인 바위 위에 크고 작은 50개의 구멍이 있는데 이를 쉰우물, 오십정이라 한다.
두타산(1,352)과 4km 거리를 두고 청옥산(1,404)과 이어져 있어 두 산을 합쳐 두타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두 산을 연계하여 종주 산행을 할 수도 있다.
주변 볼거리
무릉반석, 삼화사, 두타산성, 학소대, 쌍폭포, 용추폭포, 추암해수욕장, 천곡천연동굴
인기명산 [22위]
두타산은 무릉계곡의 쌍폭, 광음폭포, 용추폭포, 무릉반석 등의 아름다운 절경으로 7-8월에 많이 찾는 여름 산행지이다. 무릉계곡의 계곡산행과 주변의 동해바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바다산행으로 인기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무릉계곡 등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삼화사(三和寺), 관음암(觀音庵), 두타산성(頭陀山城)이 있다. 바위에 50여개의 크고 작은 구멍이 패여 산이름이 붙여졌으며, 예로부터 기우제를 지내는 등 토속신앙의 기도처인 쉰움산(五十井山)이 유명하다
산행 코스
매표소-(1.6km)-두타산성입구-(0.5km)-두타산성-(2.2km?)-대궐터삼거리-(1.0km)-쉰음산갈림길-(0.8km)-두타산정상-(1.3km)-1560봉-(0.9km)-박달령-(3.1km)-선녀탕-(0.15km)-쌍폭-용추폭포중간전망대-(2.57km)-매표소(7시간)
매표소(2.5km 40분) - 산성갈림길(10분) - 두타산성(1km 40분) -787고지-(1.4km 50분) -산성터(0.6km 30분) - 분기점(1km 45분) -정상(2.5km -1시간) - 박달재(4km 2시간 30분) - 쌍폭(3km 50분) - 매표소 (16.5km 8시간)
주차장-무릉반석-삼화사-하늘문-문간재-신선봉-쌍폭포-용추폭포 -선녀탕-학소대-주차장 (4시간)
댓재(810m) ~ 두타산(1,353m) ~ 두타산성 ~ 산성터 ~ 무릉계곡 ~ 삼화사 (12.5km, 6시간)
댓재-(6.3km)두타산-(3.0km)청옥산-(1.6km)고적대-(3.0km)사원터-(3.9km)주차장(7시간)
천은사-쉰움산(오십정산)-두타산-두타산성-무릉계곡-삼화사
산행 길잡이
산행기점은 무릉계곡, 댓재, 천은사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무릉계곡 나들이시는 무룡계곡을 기점으로하고, 단체 산행의 경우 댓재나 천은사를 산행기점으로 하여 무릉계곡으로 하산한다.
무릉계곡은 100명은 앉아서 쉴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무릉반석과 왕바위를 지나면 계곡 왼쪽으로 두타산성 갈림길이다. 가파른 길을 30분쯤 올라야 산성터가 나오는데 임진왜란 때 삼척 의병들이 이곳에서 끝까지 항전하다가 모두 죽임을 당한 역사의 현장이다.
산성터에서 등선길 따라 계속 오르면 작은 햇대등과 햇대등, 서장대 지나 삼거리에 이르며 왼쪽 갈림길은 오십정으로 유명한 「쉰움산」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정상에 오르면 짙푸른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산 소개...두타산(頭陀山;1353m) (베틀바위봉 ; 787m )
-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하장면, 동해시 삼화동
두타산은 박달령을 사이에 두고 청옥산과 마주하고 있는데 그 형상이 마치 부처가 누워있는 모습이다. 수령을 자랑할 만한 수림들이 울창한 데다 갖가지형상의 기암절벽, 그리고 노송이 한데 어우러져 정취를 자아내는 두타산은 산세가 수려하다.
두타산의 '두타(頭陀)'란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를 닦는 수행'을 말한다. 이름만으로도 두타산이 불교와 인연이 깊은 불교의 도량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예전에는 10여개의 사찰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이곳이 불교가 크게 번성했던 두타의 도량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삼화사,관음암,천은사가 남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 수많은 기암괴석과 절경이 어우려진 신선이 노닐었다는...무릉계곡 명승지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에 있는 무릉계곡의 용추폭포는 3단으로 되어 있고 무릉계곡에는 무릉반(武陵盤)으로 불리는 거대한 반석이 있어 예로부터 많은 풍류객이 찾던 곳이며, 부근에는 삼화사(三和寺)가 있다. 1977년 국민관광지 제1호(강원도 고시 제77호)로 지정되었고, 2002년 산림청에서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지정되었다.
2008년 2월 5일에 호암소에서 용추폭포가 있는 곳까지 약 4㎞달하는 ‘동해무릉계곡’ 1.5㎢는 명승 제37호로 지정되었다. 동해무릉계곡에 조선 중기의 서예가 봉래 양사언의 석각과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시가 새겨져 있어 역사·문화적 가치가 뛰어나다. 또한 폭포 및 기암절벽들이 뚜렷한 절리 등 단열에 의해 형성되고 있고 쌍폭은 절리들이 교차하며 만들어지는 등 하천경관이 다양하고 특이하다.
산행은 무릉계곡 입구의 삼화사쪽에서 시작한다. 무릉교 위쪽 두갈래 길중 금란정입구로 향한다.100여 미터 걸으면 이고향 시인 최인희 시비詩碑가 있다. 고개를 들면 베틀바위가 다소곳하고 겹겹이 가린 골짜기에 서있다. 전망대 등을 지나는 동안 계곡은 원시적인 생태계 모습이 그윽하다.
무릉계곡 초입에는 수백 명이 쉴 수 있는 넓은 반석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반석이 <무릉반>이다. 무릉계곡에는 무릉반석과 더불어 호암, 베틀바위, 학소대, 벼락바위, 병풍바위, 대궐터, 문바위 같은 이름난 바위가 많다.
청학이 깃들였으리 만큼 서기가 감도는 학소대는 하늘 높이 치솟아 있고 그 아래로 신선의 옷자락처럼 휘늘어지며 떨어지는 비단폭포는 마음을 깨끗이 씻어준다. 계곡을 가로질러 철사다리를 건너면 옥류동. 집채만한 바위가 수없이 널려있고 그 사이로 옥같은 물이 넘실 거린다.
그 밖에도 청옥∙두타산 주변에 접어들면 삼단으로 떨어지는 용추폭포와 쌍폭, 칠성폭포, 박달폭포 ,상폭, 관음폭포가 계곡의 비경을 더해준다. 안평대군, 한석봉, 김구와 함께 조선의 4대 명필로 꼽히는 양사언은 청주 출신으로 조선 명종때 강릉부사를 지냈다. 산을 좋아한 그는 두타산의 무릉반석에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이라는 예찬의 글을 친필로 새겼다. 두타산은 중국 진나라때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에서 따온 말로 '세상과 따로 떨어져 별천지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청옥∙두타를 가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계곡을 건너면 문간재고 왼쪽길로 가면 박달골이다. 온통 땅을 울리며 쏟아지는 쌍폭을 지나면 용추폭포. 무릉반과 함께 무릉계를 대표하는 명물이다.
▶ 베틀바위
무릉도원명승지내 능선과 계곡을 사이에 두고 양지쪽은 학소대, 음지쪽은 베틀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베틀바위는 높은 산에 가리어 음산한 음지에 기암절벽형이 마치 베틀같아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하늘나라 질서를 위반한 선녀가 벌을받아 하강하여 이곳 무릉도원명승지 소금강골에서 삼베 세필을 짜고 개과한 후 승천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 백곰바위
백곰은 권력과 재물을 상징한다. 두타산성 정상에 위치하며 뒤에서 본 형상이 백곰의 형상을 닮아서 백곰바위라 한다.
▶ 무릉중대반석(약칭 : 무릉반석)
옛 풍월객들이 수도 없이 이곳을 찾았으며, 이름을 천추에 남기려는 선비들은 반석에 이름을 새겼다. 그리고 옥호거사가 쓴 초서 12자는 명작으로 남아있다. 1958년 세워진 금란정에는 계원들의 시구 현판이 걸려있고, 북쪽 삼화사의 풍경소리 은은하다.
▶ 무릉중대계곡
별유천지를 방불케 하는 중대 계곡, 두타산과 청옥산을 사이에 둔 [제2의 금강산]이라 불리우는 무릉계곡명승지는 용추폭포의 맑은물과 병풍 같은 기암괴석이 한데 어우러져 눈내린 비경을 한층 더 연출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 두타산성
두타산 아래쪽에 있는 산성. 무릉계곡의 학소대를 지나 철다리를 건너 두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 있다. 신라 파사왕 23년(102)에 신라가 실직국을 병합한 뒤 처음 성을 쌓았다고 하며, 방어와 통치의 거점으로 잡았으며 식량의 저장고 역할도 하였다. 조선조 태종 14년(1414)에 삼척부사 김맹손이 축조한 성이다. 높이 1.5m 길이가 약 2.5㎞에 이른 것으로 기록되었는데 현재는 부분적으로만 성벽이 남아 있다.
이 성은 자연지세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산의 돌을 그대로 이용해 쌓았기 때문에 그다지 견고하지는 않으나 천연의 요새지라 할 만하다. 임진왜란 때 함경도 안변에서 후퇴하는 왜병의 주력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3일간의 혈전 끝에 함락되어 생존한 의병과 노약자들마저 살육되는 만행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 금란정
한말까지 유림들은 향교 명륜당에 모여 유학강론에 전념하였으나 한일합병을 당하여 폐강하기에 이르자 이에 분개하여 우의를 다지는 금란계를 결성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정자를 건립하기를 결의하였다. 그러나 일본 관헌들에 의해 제지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뒤 1945년 해방을 맞이하자 금란계원과 그 후손들이 선인의 뜻을 계승하여 정자를 짓기로 합의하고 1949년 봄에 건립하였고 1956년 9월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 호암소
무릉계곡명승지관리사무소 아래쪽으로 205m쯤 아래 계곡에 있는 소(沼). 소양옆이 절벽으로 되어 있는데, 옛날 호랑이가 건너뛰다가 빠져 죽은 소라는 데에서 유래한다. 호암소는 김효원(金孝元)이 임경대(臨鏡臺)로 개명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전설ㆍ옛날 도술에 능한 고승이 이 곳을 지나다가 호랑이가 해치려 하여, 고승은 신통력을 발휘하여 소를 훌쩍 건너 뛰었는데 호랑이가 뒤따라 건너뛰다가 고승의 발길에 채여 소(沼)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소 옆의 암벽에 虎岩(호암)이라 새겨 놓은 글씨가 남아 있어 흔히 호암소 대신 호암으로 통칭하기도 한다. 이 글씨는 삼척부사로 왔던 미수 허목(許穆)의 글씨라고 전하는데, 호암은 김효원의 두타산일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3~4m 위에 中臺洞門(중대동문)이란 글씨도 새겨져 있다.
♣ 두타산(頭陀山;1353m)
동해시 삼화동에서 서남쪽으로 약 10.2km 떨어진 두타산은 높이 1,353m로 북쪽으로 무릉계곡, 동쪽으로 고천계곡, 남쪽으로는 태백산군, 서쪽으로는 중봉산 12당골을 품은 산이다.
이 두타산은 많은 전설과 역사를 간직한 유서깊은 산이며, 두타산에서 삼화사에 이르는 3.1km의 계곡에는 무릉계곡을 비롯하여 두타산성, 금란정, 용추폭포, 쌍폭포와 삼척쪽으로 오십천, 천은사 등의 수많은 관광명소가 있어 등산객의 발길을 쉬어 가게 한다.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두타산(1,353m)과 청옥산(1,404m) 사이에 이어진 맵시 있는 골짜기가 무릉계곡이다.
두타산 무릉계곡은 수백명이 앉을 만한 무릉반석을 시작으로 계곡미가 두드러진다. 학소대, 옥류동, 선녀탕 등을 지나 쌍폭과 용추폭포에 이르면 아름다움의 절정에 오른다.
쌍폭은 각각 20여m의 거대한 물줄기가 좌우에서 굉음을 토하며 쏟아져 내려 장관이다. 왼쪽 반달계곡에서 떨어지는 3단폭포와 오른쪽 용추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만나 절경을 연출하는 것이다. 다만 밑으로 내려가 보기는 위험하고 위에서 내려다보아야 한다는 점이 아쉽다.
용추폭포는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멋진 폭포다. 3단의 폭포와 담(潭)이 연이어서 매끈한 암벽을 타고 떨어져내리는 자태가 신비스럽다. 항아리 모양의 못인 상담과 중담을 거친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하담으로 미끄러져 내린다.
두타산 산행은 일반적으로 청옥산과 연계해서 산행을 한다 약 8 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해발높이가 낮은 동해시 삼화리에서 올라가므로 서쪽 백두대간의 서쪽에서 올라가는 것보다 힘이 드는 것도 두타산 산행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두타산과 청옥산을 등산하고 내려오면 산의 모든 것을 섭렵한 것 같은, 산이 가지고 있는 진수를 다 경험한 듯한 느낌을 갖게 할 정도이다.
계곡은 무릉계요, 폭포는 용추폭포와 쌍폭이다. 천하에 둘도 없는 암반계곡과 희한의 극치인 폭포이다. 거기다 암릉이 있고 협로가 있고, 암봉이 있고, 좋은 전망대가 있고, 울창한 송림이 있고, 고산을 연결하는 보기엔 유장하나 너무 길어서 힘든 능선이 있다.
고원지대가 있고 아슬아슬한 슬랩지대가 있고, 무릉계를 내려다보는시원한 암릉이 있고 두타에서 고적대까지의 장쾌한 스카이라인이 있고, 청옥에서 두타로 내려올 때의 빽빽한 활엽수림대가 있고 저지에서는 보기 힘든 거목 활엽수가 무성한 고개가 있다.
정상(청옥산과 두타산 두곳)가까운 곳에 샘이 있고 여름이면 무성한 초본류의 고산식물이 있고, 무엇보다도 고산을 정복하고 내려올 때 성취감이 각별하고 너무도 맑고 아름다운 우리의 자연을 마음껏 숨쉰 청량감이 가슴에 뿌듯하게 남는 산행이 두타산 - 청옥산 코스이다. 두타산,청옥산코스는 매우 아름답고 장쾌한 산행코스이다.
두타산성 : 동북쪽 산허리 험준한 곳에 둘레 8607척의 석성이 있어 이것을 두타산성이라고 한다.
천은사와 이승휴 유허지 : 고려 충열왕 때에 이승휴가 전중시어의 벼슬에 있으면서 정사를 말하다가 임금의 뜻을 거스르게 되어 파직 당하였다. 이승휴는 이 산밑에 터를 잡고 은거하면서 스스로 두타산거사라는 호를 지어 부르면서 제왕운기를 저술하였으니 지금의 천은사터가 그 유적지이다.
추암촛대바위, 망상해수욕장, 천곡동굴
《동해시 두타산 頭陀山 1,353m》
<댓재;竹峙·810m>두타산 능선의 초입의 재로 댓재와 명주목재 통곡목재을 지나 두타산에 오른다, 정상까지는 약 2시간 30분 거리다.
백두대간은 오대산을 지나 백복령을 넘고 고적대에 이르러 동해시와 삼척시에 자리 잡은 산이 바로 청옥(靑玉)과 두타(頭陀)다. 두타는 ‘골(骨)산’, 청옥은 ‘육(肉)산’이다.
어느 방향에서 보나 두타산은 피라미드 꼴을 이루고 청옥산은 둥글고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 . 두타와 청옥은 약 4㎞ 거리를 두고 이어져 있어 한 봉우리 같다.
큰 산줄기를 넘어가는 고개의 의미인 “대고개”가 변음 되었다. 고지도에는 “죽치(竹峙)“로 표기되어 있다.
이 것은 ”대“를 대나무를 뜻하는 ”竹“의 훈(訓)을 빌려 쓴 것으로 보인다. 대동여지도 등에 댓재의 서쪽에 죽현전, 죽령현이 표기되어 있고,
고구려 때는 죽현현으로 불리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때 “죽령현”으로 개칭 되었다. 기록으로 보아 고려시대 까지는
죽현~죽령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는 “죽치”로 불렸고 구전으로 전해 져 온 우리말은 "대고개→댓재"로 불려 온 것으로 보인다.
<두타산;頭陀山>은 삼척과 동해시의 분수령으로 이 두 고장을 대표하는 산이다. 산어귀의 삼화사와 천은사의 모산이며, 두타산 * 청옥산 * 고적대를 해동 삼봉이라 한다.
소금강(小金剛)이라고도 한다. 두타산 정상에서 보면 쉰움산·덕항산·상월산 등 백두대간 준령이 한 줄기로 뻗어있고, 청옥산과 고적대가 장쾌한 능선을 자랑하고 있다.
<두타라> 함은 인간사의 모든 번뇌를 털어 없애고 물질을 탐착하지 않는 맑고 깨끗한 불도를 수행하는 것이다. 두타삼선이 이산에서 중생을 제도한 두타산 이다.
<두타삼선>신라 경덕왕 17년(758년), 서국에서 돌배을 타고 건너온 두타삼선(頭陀三仙)이 이산의 세 곳에 연꽃(蓮花)으로 표식을 남겼는데,
이 표식을 좇아 남쪽에는 금련대(金蓮臺/현 영은사), 북쪽에는 흑련대(黑蓮臺/현 삼화사), 서쪽에는 지금의 천은사인 백련대(白蓮臺)를 창건한데서 두타산의 유래다
두타삼선은 인도에서 온 3명의 승려를 말하는데, 용 또는 돌배를 타고 불래진(佛來津)에 도착하였다고
전해진다.
<두타행;頭陀行> 불교의 승려가 닦는 수행법중 하나. 범어 ‘dhu-ta’를 음역한 것으로 ‘버린다· 떨어버린다· 씻는다· 닦는다’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출가수행자가 세속의 모든 욕심이나 속성을 떨쳐버리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닦으며, 참기 어려운 고행을 능히 참고 행하는 것을 두타 또는 고행자(苦行者)라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를 두타행 또는 두타행자라고 하였다. 두타행으로는 12두타행·13두타행·16두타행·25두타행법이 있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12두타행법을 많이 하고 있다.
석가모니의 제자 중에서는 대가섭(大迦葉)이 두타행을 가장 충실하게 닦았다고 한다.
두타제일의 가섭존자라 한다.
<두타산성> 1414년(태종 14)에 축성된 것으로 천연적으로 험준한 산의 지형을 이용하여 지어진 산성이다.
산돌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약간 다듬어 사용하여 견고하지는 않으나 산의 지형이 험준하여 천연의 요새이다. 현재는 두타산 중턱에 부분적으로 성벽이 남아 있다.
<무릉계곡> 청옥산과 고적대 두타산 사이에 형성된 이른바 무릉계곡(武陵溪谷)이다. 무릉계곡은 약2-3km
계곡으로
산수의 풍경이 중국 고사에 나오는 무릉도원과 같다 하여 무릉계곡이라 부르며, 주변에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그림 같은 절경 이다.
학소대(鶴巢臺)· 관음사(觀音寺)· 삼화사(三和寺)· 무릉반석(武陵盤石) 금란정(金蘭亭) 호암소(虎巖沼) 등 있다.
<무릉반석> 무릉계곡 안에 있는 커다란 반석. 어른 1000명 이상이 동시에 앉을 수 있을 만큼 큰 반석이다. 암반에는 많은 시인 묵객이 남긴 글씨가 빼곡히 새겨져 있다
이 반석 바위에 명필로 새겨 놓은 <武陵桃源 中台泉石 頭陀洞天>강릉부사를 지낸 봉래 양사헌(1517-1584年)의 친필이 4-500年 지난 지금도 무릉골에 있다.
<삼화사;三和寺>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三和洞) 두타산(頭陀山)에 있는 절이다. 642년(선덕여왕 11) 신라 자장(慈藏)이 당(唐)나라에서 귀국하여 이 곳에 절을 짓고 흑련대(黑蓮臺)라 하였다.
864년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절을 다시 지어 삼공암(三公庵)이라 하였다가, 고려 태조때 삼화사라고 개칭하였으며, 많은 부속 암자를 지었다.
1369년 절을 크게 확장하였는데,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고 중건하였으며, 의병(義兵)이 이곳을 근거지로 활약하다가 1907년 왜병의 공격으로 또다시 소실된 것을 이듬해 중건하였다.
1977년 이 일대가 시멘트 공장의 채광지로 들어가자 중대사(中臺寺) 옛터인 무릉계곡의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삼화사 일주문의 편액은 탄허 선사가 쓴 편액이다
경내에는 대웅전·약사전(藥師殿)을 비롯하여, 문화재로 신라시대의 철불(鐵佛), 3층석탑 및 대사들의 비(碑)와 부도(浮屠)가 있다.
<철불노사나불> 삼화사 고금사적은 철불의 조성유래로 아주 옛날 두타산에는 사찰이 없었다. 어느 날 삼척의 한 포구에 석주가 한 척 정박했는데
얼굴과 몸에 금빛으로 빛나고 몸에는 가사를 걸치고 손에는 연꽃 한송이식을 든 약사여래 삼형제불이 두탄산에 내렸다
큰형이 머루렸든 흑련대에는 삼화사가 둘째가 머물든 청련대는 지상사가 셋째가 머물든 금년대는 영은사가 창건 되었다.
삼형제 약사여래는 각기 대에서 불법을 전하고 다른곳으로 가며 변하지 않는 철로된 등신불 남기고 떠났다.
삼화사가 기도처로 알려진 것은 철불 노사나불의 위용 때문이다.
골동품 상인이 이 철불을 훔쳐 갔다가 어느 기자의 꿈에 나타나 되찾은 실화는 부처님의 영험을 보여준다.
<천은사;天恩寺>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 두타산(頭陀山)에 있는 절. 758년(경덕왕 17)에 두타삼선(頭陀三仙)이 백련(白蓮)을 가지고 이곳으로 와서 절을 창건 백련(白蓮臺)라고 하였다.
1899년에는 이성계(李成桂)의 4대 조인 목조(穆祖)의 능(陵)을 수축하고 이 절을 목조의 원당으로 삼았는데, 이때부터 천은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 두타행 頭陀行 12행
① 고요한 곳에 머무르면서 세속을 멀리한다(在阿蘭若處).
② 언제나 걸식하여 신도나 국왕 등의 공양을 따로 받지 않는다(常行乞食).
③ 걸식할 때는 마을의 일곱 집을 차례로 찾아가서 빈부를 따지지 않고 걸식하며, 일곱 집에서 밥을 얻지
못하면 그날은 먹지 않는다(次第乞食).
④ 하루에 한 차례를 한자리에서 먹고 거듭 먹지 않는다(受一食法).
⑤ 항상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만 먹고 발우 안에 든 음식만으로 만족한다(節量食).
⑥ 정오가 지나면 과일즙·석밀(石蜜:사탕) 따위도 마시지 않는다(中後不得飮漿).
⑦ 좋은 옷을 입지 않고 헌옷을 빨아 기워서 입는다(著弊衲衣).
⑧ 내의(內衣)·상의(上衣)·중의(重衣) 등 세 가지 옷만을 가진다(但三衣).
⑨ 무덤 곁에 머물면서 무상관(無常觀)을 닦는다(塚間住).
⑩ 쉴 때에는 정자나 집을 택하지 않고 나무 밑에서 쉰다(樹下止).
⑪ 나무 아래에서 자면 습기·독충·새똥등의 피해를 입을 수있으므로 한데에 앉는다(露止坐).
♣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삼척시 미로면, 두타산(頭陀山;1353m)
두타산군은 강원도 정선군과 동해시 삼척군에 걸쳐 있으며 1352.7m의 두타산과 1403.7m의 청옥산 그리고 1000m 이상의 중봉산과 망지봉 고적대 등이 하나의 산군을 형성한다. 청옥산(1,404m)이라면 바늘에 실 가듯이 빼놓을 수 없는 동지가 있다. 다름 아닌 두타산(1,353m)이다. 백두대간상에 약 4km 거리를 두고 있는 청옥산과 두타산은 동해시 삼화동과 삼척시 하장면 경계를 이루고 있다.
등산로는 삼척시 하장면과 미로면 경계를 이루는 댓재에서 오르는 코스와 하장면 번천리 코스 외에는 동해시 중심가에서 14km 거리인 삼화동에서 오르고 내리는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무릉계곡에 들어서면 누구나 신선이 된다 신선의 세계인 이상향 무릉도원. 무릉계곡에서 신선의 세계를 느낄 수 있다. 무릉계곡은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여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인간의 세계를 넘어 신선이 거니는 선계로 느낄만큼 아름다움의 극치를 나타낸다.
바른골의 반석을 따라 소와 담을 그리고 폭포를 이루던 맑은 계곡물은 신선봉 밑에서 무릉계곡을 대표하는 용추폭포를 이루어 낸다. 박달골을 흐르던 물은 박달폭포를 만들면서 아래로 향하고 두 골 물이 합쳐지면서 물의 흐름은 무릉반석으로 이어진다.
학이 살았던 바위인 학소대와 그 옆의 벼랑으로는 4단폭포가 또 하나의 볼거리다. 이런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어 마침내 여기에 들어선 사람들을 신선의 세계로 인도한다.
높고 깊은 산을 보려면 두타산(頭陀山·1353m)~청옥산(靑玉山·1403.7m)으로 가라.
신비로운 산세에 멋진 조망까지 더해지니 명산의 덕목을 이보다 더 갖춘 산이 또 어디 있겠는가. 동해 해수면보다 조금 높은 180m 저지대에서 1400m 안팎 높이 산정까지 올라야 하는 산행이 쉬울 리 없지만, 땀을 흘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산정에 오른 뒤에 오는 쾌감은 웬만한 산에서 맛볼 수 없는 것이다.
강원 내륙의 명봉 명산은 물론, 동해의 푸른 바다를 발 아래 두고 일망무제의 그 산정에 서 보시라.
피서 막바지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서도 무릉계는 빛을 발했다. 겉에서는 두루뭉실한 평범한 산이건만 안으로 들어서자 곧 달라졌다. 속옷은 화려했다.
무릉계 너래 반석에는 옥빛 물줄기가 흐르고, 숲 짙은 산사면 곳곳에 기암절벽과 암봉 암릉이 솟구쳐 반짝였다. 옛 사람들도 흥을 이겨낼 수 없었나 보다. 이런 무릉도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반석을 쪼아 자기 이름 새겨 넣은 것을 보면―. 어린아이들도 산수(山水)를 즐길 줄 아는지 반석 옆 야트막한 소는 아이들이 덤벙대는 소리에 소란스럽다
파고들수록 점입가경. 커다란 바윗덩이는 골짜기를 메우고, 물줄기는 바위 사이사이를 빠져나가 흐른다. 커다란 바위 사이에 와폭도 숨어 있고, 이무기라도 숨어 있음직한 짙은 소도 나타난다. 그러다 골이 갈라지면서 신비감은 더해간다. 좌측 박달골과 우측 바른골 초입은 ‘더 이상 올라오지 말라’는 뜻인양 위협적인 폭포를 일으켜 세우고, 그에 주눅들지 않고 한 걸음 더 들어서자 이번에는 거대한 협곡 아래 폭포가 또 다시 길을 끊어 버렸다. 여기서도 옛 사람들은 풍류를 버리지 않았다. 용추폭이라 이름짓고, 그 폭포 암벽에 또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놓았던 것이다.
◐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頭陀山;1353m)
두타산군은 강원도 정선군과 동해시 삼척군에 걸쳐 있으며 1352.7m의 두타산과 1403.7m의 청옥산 그리고 1000m 이상의 중봉산과 망지봉 고적대 등이 하나의 산군을 형성한다. 청옥산(1,404m)이라면 바늘에 실 가듯이 빼놓을 수 없는 동지가 있다. 다름 아닌 두타산(1,353m)이다. 백두대간상에 약 4km 거리를 두고 있는 청옥산과 두타산은 동해시 삼화동과 삼척시 하장면 경계를 이루고 있다.
등산로는 삼척시 하장면과 미로면 경계를 이루는 댓재에서 오르는 코스와 하장면 번천리 코스 외에는 동해시 중심가에서 14km 거리인 삼화동에서 오르고 내리는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무릉계곡에 들어서면 누구나 신선이 된다 신선의 세계인 이상향 무릉도원. 무릉계곡에서 신선의 세계를 느낄 수 있다. 무릉계곡은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여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인간의 세계를 넘어 신선이 거니는 선계로 느낄만큼 아름다움의 극치를 나타낸다.
바른골의 반석을 따라 소와 담을 그리고 폭포를 이루던 맑은 계곡물은 신선봉 밑에서 무릉계곡을 대표하는 용추폭포를 이루어 낸다. 박달골을 흐르던 물은 박달폭포를 만들면서 아래로 향하고 두 골 물이 합쳐지면서 물의 흐름은 무릉반석으로 이어진다.
학이 살았던 바위인 학소대와 그 옆의 벼랑으로는 4단폭포가 또 하나의 볼거리다. 이런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어 마침내 여기에 들어선 사람들을 신선의 세계로 인도한다.
두타산의 무릉계곡의 입구에 위치한 무릉반석에는 이 신선경에 감탄한 선인들의 감흥이 싯구로 남아 있다. 무릉계곡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조선조 명필 양사언이 이곳의 절경에 감탄해 무릉반석에 "武陵仙院 中坮泉石 頭陀洞天(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 )" 이라고 쓰면서부터 무릉계곡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청옥산과 두타산 북쪽 아래로 깊게 패어져 내린 협곡인 삼화동 무릉계곡 일원은 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명소로, 피서철에는 동해안 해수욕장에서 시원함을 만끽하지 못한 피서객들까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다.
그러나 피서객들은 대개 접근이 쉬운 용추폭과 쌍폭까지만 다녀간다. 용추폭과 쌍폭을 벗어나 산위로 오르면, 폭포 아래보다 한층 더 시원하고 조용해서 잘 찾아 왔다는 보람을 느끼게 된다.
청옥.두타산 일원은 궁예시대부터 새 세상을 그리워하던 이들이 몸을 숨긴 채 때를 기다렸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 정선의 임계를 거쳐 서울로 가던 옛길이었던 이곳에 6.25때는 인민군 피복창이 들어섰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쟁중에는 인민군 병참기지였던 이곳에 미공군의 융단폭격이 있기도 했다.
무릉반석서부터 시작되는 비경지대는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가 중국의 무릉도원과 같은 선경이라고 하여 '무릉계'라 처음으로 이름지었다 전해진다. 일설에는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 김효원이 지었다고도 한다.
무릉계곡의 첫번째 단추에 해당되는 무릉반석 암반에는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남긴 글자들이 새겨져 있는데, 그 중에는 조선 선조 때 4대 명필로 손꼽혔던 양봉래의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 이란 열두 자가 가장 시선을 끈다.
○ 백두대간 종주구간 안내 (댓재 - 두타산 - 청옥산 - 연칠성령-고적대 - 백봉령)
▶ 댓재 - 백봉령 구간은 마루금을 중시으로 동저서고의 형태가 뚜렷한 종주길로서, 동쪽은 수직벽에 가까운 곳도 많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최근 포장된 댓재(810m)를 넘는 424번 지방도로가 백봉령과 함께 안개 상습 도로로 부각되고 있으므로 차량으로 고갯마루에 접근할 때 운전에도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댓재는 동해 삼척쪽에서 올라가는 허리 부분에 골재 채취 광산이 있어 조금씩 훼손되고 있는 상태지만 대체로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특히 이곳에서의 일출과 운무는 일품이다. 맑은 날에는 동해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여 사진가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두타산 - 고적대 구간에서는 동쪽으로 강원도 국민관광지 제1호이자 조만간 도립공원으로 지정될 무릉계곡의 절경이 펼쳐진다.
무릉계곡 입구 양쪽으로 산자락이 훼손된 것은 쌍용자원개발(주)가 석회석을 채취하기 때문이다. 국립지리원 발행 지형도에 '백복령'이라 표기 되어 있는 백봉령(780m)은42번 국도가 포장되면서 위치가 변경되었다.
20여년 전의 지도에는 백복령(百伏嶺. 百伏은 온갖 것에 수그린다는 뜻이다)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85년에 간행된<삼척군지에는 '백복령(百福嶺. 옛 명칭은 희복현(希福峴), 일명 백복(百茯) 또는 백봉(百鳳)이라고도 하는데..(중략).. 높고 험악하며 해발 922m이다' 라고 되어 있다.
어쨋든 백두대간보존회는 어감에도 좋지 않은 '백복령' 보다는 주민 정서에도 좋고 "택리지"에 근거가 있는 흰 봉황의 뜻인 백봉령(百鳳嶺)으로 부르기를 홍보하고 있다. 백봉령의 이정표에 '780m'라는 높이는 42번 국도가 새로 포장되면서 정정한 것이다.
댓재 - 두타산 - 청옥산 - 고적대 구간은 삼척시가 등산로를 1.2~1.5 폭으로 나무 가지치기를 해서 다니기가 수월하다. 1,243m봉을 내려선 후 두타산 정상까지 1시간 거리의 오르막이 가장 힘든 구간. 고적대 암릉지대도 조금 힘든 부분이다.
고적대에서 백봉령까지는 덩굴과 산죽 지대가 많고 등산인이 적어 운행시간이 많이 걸린다. 총 연장 약 31.45km로서, 단번에 종주할 경우 14시간 정도 걸린다.
청옥산 정상에서 남사면으로 50m정도 내려가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는데 이곳에서 반드시 식수를 보충해야 한다. 다음에 보충할 수 있는 곳은 고적대 북사면 골짜기와 이기령, 원방재에 있다.
두타산 정상에서 고적대 사이 구간에서는 위급할 때 동해산악구조대(0394-34-9119)에 구조를 요청하면 대원들이 출동한다. 아울러 무릉계곡 관리사무소(0394-34-8222) 또는 햄동우회(주파수 144.840)와 삼척경찰서(주파수 145.120)를 통해서도 동해산악구조대 및 119구조대에 연락을 취할 수 있다.
▶ 댓재 - 두타산 - 청옥산 - 연칠성령
이 구간 출발점은 삼척시 미로면과 하장면을 넘나드는 424번 지방도로의 댓재 고개마루다. 국립지리원 1:50,000 지형도에는 비포장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포장이 완료된 상태다. 삼척 - 태백간 38번 국도는 동해시 단봉에서 삼척시 미로면 도경역 아래까지 포장되었다.
자가용 승용차로 접근할 때는 동해시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삼척 방면으로 가다가 동해시 단봉동에서 태백 방면으로 새로 뚫은 38번 국도를 따른다. 댓재 직전 마지막 주유소인 데성주유소에서 800m쯤 지나면 삼척시 미로면 소재 미로중학교 바로 위에 있는 하거노1교를 만난다. 여기서 오른쪽 포장도로가 댓재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서 고천 삼거리(지형도 상으로는 삼거리 저수지 아래임)까지는 2.6km. 고천 삼거리에서 댓재 마루까지는 12.18km 다.
삼척에서 개인 차량으로 댓재에 올라갈 때는 38번 국도로 가다가 앞에서 언급한 대성주유소부터 찾아가면 된다. 댓재 고갯마루에는 자연석으로 된 '댓재공원' 이라는 기념비와 댓재 이정표가 있고, 대형버스 여러 대가 주차할 수 있다.백봉령도 사정은 비슷하다.
식사 준비를 위해선 댓재 고갯마루에서 서쪽 하장 방향으로 1km 지점에 위치한 식당인 댓재산방(0395-53-1695)을 이용한다. 홀에서는 30명이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고, 백반 1인분이 4,000원이다. 주인 아주머니 마음씨가 좋아서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이들에겐 말만 잘하면 안주로 오이정도는 그냥 썰어 주신다.
삼척시가 '등산로' 라는 안내표지판을 세워 놓은 곳에서 오른쪽으로 10m 지점에 마루금이 있다. '등산로' 안내판을 따라 가면 934m봉 아래까지 임도를 타고 가게되지만 주마루금은 아니다. 댓재마루에서 북쪽으로 30m 전방에 '두타영산지신'을 모신 산신각이 있고, 서낭당 앞쪽으로 오르는 표지기가 있다. 이 구역은 백두대간 보전회에서 지속적으로 답사하는 곳이므로 표지기를 잘 확인하면 접근로 찾기에는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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