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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사회 스크랩 한국현대가정과 할머니 가설(정규훈논문)
정규훈 추천 0 조회 162 15.11.25 10:5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국현대가정과 할머니

                                                           

                                                                   정 규 훈 (총신대학교 교수)

목 차

 

1. 현대사회와 할머니 담론

1) 현대사회와 노인문제

2) 모성이데올로기와 할머니

 

2. 할머니의 생물학적 의미

1) 할머니 가설: 할머니는 장수한다

2) 모성의 완성: 할머니는 최후보루다.

3) 존재의 원형: 할머니는 대지(大地)다.

 

3. 할머니의 사회적 의미

1) 초세대 교두보: 할머니는 동반자다.

2) 생명의 원천: 할머니는 열려있다.

3) 역사의 지표: 할머니는 영원하다.

 

4. 할머니의 가치론적 의미

1) 사랑의 완성: 할머니는 강하다.

2) 지혜의 표상: 할머니는 발명가다.

3) 정서적 고향: 할머니는 따뜻하다.

 

5. 한국사회에서 할머니의 의미와 역할

1) 한국사회의 할머니 가설

2) 현대가정과 할머니의 역할

 

 

1. 현대사회와 할머니 담론

 

1) 현대사회와 노인문제

 

대한민국의 가족이 바뀌고 있다. 전통적인 대가족 형태가 무너진 지 이미 오래인 데다, 최근에는 국제결혼으로 인한 결혼이민자가족, 할아버지·할머니가 손자·손녀를 맡아서 돌보는 조손(祖孫)가족, 엄마가 없는 부자가족, 10대 부모인 리틀맘·파파 등 갈수록 새로운 형태의 가정이 늘고 있다.

· 10쌍 중 1.3쌍이 국제결혼 : 국제결혼은 지난 15년간 10배 이상 폭증했다. 1990년 4710건으로 전체 결혼의 1%에 불과했던 국제결혼은 2005년 4만3121건으로 전체 결혼의 13.6%를 차지하고 있다. 결혼하는 10쌍 중 1.4쌍이 국제결혼인 셈이다.

· 부자가족 전년보다 30% 증가 : 자녀부모의 사망, 이혼,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조손가족 역시 증가하고 있다. 200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조손가족은 전체 1,598만8,274가구 중 5만8,101세대로 0.36%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4만5,000가구에서 5년 새 1만가구가 늘어난 것. [뉴시스 2006.11.15]

통계청이 발표한 ‘2007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노인들의 경제활동에 적지 않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 10명 중 1명은 노인 : 2007년 7월1일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은 481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9.9%였다. 남자 193만9000명, 여자 287만2,000명으로 여자 100명 당 남자는 67.5명꼴이었다. 14세 이하의 유년인구는 873만4,000명으로 노령화지수(유년인구 100명 당 노인인구)는 55.1이었다. 그러나 통계청은 노인인구가 2016년 유년인구를 추월하고 노령화지수는 2020년과 2030년에 각각 125.9, 213.8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표1:고령자인구수 및 비율>

1997년

2000년

2007년

2010년

2018년

2026년

총인구

4595만

40000명

4700만

8000명

4845만

6000명

4857만

5000명

4934만

4903만

9000명

65세이상

인구

292만

9000명

339만

5000명

481만명

535만

7000명

707만

5000명

1021만

8000명

비율

6.4%

7.2%

9.9%

11.0%

14.3%

20.8%

사회분류

고령화사회

고령화사회

고령화사회

고령화사회

초고령화사회

지난해 노인부부 가구 소득은 월평균 120만8,900원으로 집계됐다. 이중 연금·사회보장 등 이전소득이 56.9%였고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은 각각 9.9%, 7.1%에 불과했다.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은 30.5%(남자 42.0%, 여자 22.7%)였고 이 중 50.2%는 농림·어업에 종사했다. 도소매업·음식숙박업 종사자는 17.5%였다. 노인의 57.5%가 취업을 바라지만 임금근로자는 경제활동 노인 중 30.9%에 불과했고, 이들의 83.3%는 임시 또는 일용근로자였다.

· 증가하는 황혼 이혼과 황혼 재혼 : 황혼 이혼과 재혼은 크게 늘었다. 65세 이상 남자 이혼은 1996년 773건에서 지난해 3,087건으로 3.99배, 여자는 198건에서 1,251건으로 6.31배 증가했다. 재혼 역시 10년 전보다 남자와 여자가 각각 1.91배(922→1761건), 2.99배(170→509건) 많아졌다.

노인의 교제·여가활동 시간은 하루 평균 7시간2분이었다. 여가시간은 신문·잡지·TV 시청이 3시간49분으로 가장 많았다. 가족·친척과의 대화 55분, 인터넷 41분, 가족·친구와의 전화에 24분을 사용했고 자원봉사활동 2시간2분, 종교활동 2시간11분, 산책 1시간19분을 각각 보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게다가 핵가족화와 도시화로 세대 간의 분리가 가속화되고 있어 노인들과 손자녀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또한 경로의식의 약화와 개인주의 가치관의 팽배로 사회 전반적으로도 노인은 소외되어가고 있다. 사회의 급격한 발달은 노인의 지식이나 지혜를 무용화하여 노인의 지위를 약화시키고 있으며,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사회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어 노인에 대한 대부분의 편견이나 차별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노인이 과거 존경의 대상에서 부담의 대상으로 전락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령화 문제는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외와 고독 그리고 빈곤이나 건강의 문제까지도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겪고 극복해 나가야 하는 문제들이다. 노인 외에 고령화 문제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게 될 또 다른 세대는 바로 지금의 청소년 세대라 할 수 있다. 특히 고령화 문제에 대한 별다른 대책이 없이 고령사회로 진입해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미래 고령사회에서 팽창된 노인세대를 부양하고 책임져야 할 지금의 청소년들이 노인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떤 관계를 맺느냐는 향후 노인복지의 방향과 정책의 결정은 물론, 사회적 합의를 형성해 가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2) 모성이데올로기와 할머니

 

현대인들은 전통세계가 송두리째 부정되는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생활양식의 급진적 재구성이 요구되고, 그에 따라 가치관의 변혁도 불가피해지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거기에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불안의식과 상징체계상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인간의 근원적 보수성이 사회구성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여성으로 하여금 전통에 남아 있기를 갈망하게 된다. 호된 시집살이와 남편으로부터의 소외, 가난이라는 가혹한 시련을 견디며 내적 영역을 도맡아 가부장사회를 지속시켜온 전통적 어머니, ‘여장부’에 대한 남성들의 향수는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주도해온 산업화에 따른 전통적인 가족제도의 붕괴와 전형적인 어머니상의 변모, 남성 고유영역에의 여성침범 등은 성별분업을 약화시키게 되었으며, 남성의 이해관계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게 되었다. 여성에게 가정영역을 맡김으로 해서 바깥영역을 남성의 세계로 확보하고 집안일, 자녀양육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남성들에 대한 여성들의 도전은 남성의 권위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그 도전을 방어하려는 시도가 모성이데올로기의 발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모성이데올로기는 여성의 출산기능에 대한 남성지배에서 유래되며 여성의 주체적 신체관리권과 삶의 선택권을 박탈하여, 여자로 태어나면 반드시 결혼하여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까지 책임지는 것이 여성의 도리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가정에 머물면서 자녀양육에만 전념하는 핵가족의 주부의 갈등은 자녀양육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민주사회에 적합한 도덕적 개인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인간양성을 위해서도 우선 어머니 자신이 자녀나 남편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 인간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에 의해 사회적으로 의미가 부여된 모성역할은 재검토되어야 하며, 자녀․어머니․사회가 서로 배타적․갈등적이 아닌 상호보완적이며 조화로운 발전을 이룰 수 있는 모성개념의 정립이 필요하다.

모성은 (1) 임신․출산․수유의 생물학적 요소와 (2) 양육이라는 사회적 역할의 요소, 그리고 (3) 이미지 및 가치적 요소와 관련된다. 대다수의 사회에서 생물학적 요소와 역할부분은 직결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즉 아동에 대한 생물학적 밀착성 때문에 여성은 자연적으로 사회적․제도적으로 자녀에 대해 궁극적인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다. 이 책임은 점차로 가정/사회(Domestic/Public) 이분화와 연결되어 요리․가사노동․서비스직 등의 역할까지 여성에게 위임하는 체계적인 노동 분업의 근거가 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새로운 세대에게 젖과 사랑을 제공하고 사회규범을 주입시키는 양육자로서 존재하도록 규정할 뿐만 아니라, 모성의 생물학적 과정을 상징화하여 수유가 어린이를 키우듯 여성을 인류문화의 원초적 발생의 근원으로서 의미를 부여한다. [조성숙, 󰡔어머니라는 이데올로기󰡕, pp.107-113, 54-55]

이같이 가정의 사적영역과 사회의 공적 영역을 넘나들면서 어머니와 할머니의 역할이 계승 발전된다. 생식능력이 사라진 할머니의 존재의미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할머니 가설’이란 게 있다. 여성에게 폐경(閉經)이 있는 이유는 손주들을 돌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늙어서까지 자기가 직접 아기를 낳아 키우기보다는 손주를 돌보는 데 헌신하는 게 가족과 후손을 번성시킬 수 있는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어서 진화를 거치며 폐경이 생겨났다는 설명이다. 생물학적으로도 할머니와 손주는 그렇게 희생과 헌신으로 맺어지는 관계이다.

가정이 해체되어 간다는 얘기가 나온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1,400만 가정 중에서 100만 가구 정도는 편모(偏母)나 편부(偏父) 가정, 또는 가족 없이 혼자 사는 단독가구라는 조사결과가 있다. 그중에는 할머니·할아버지가 어린 손주들과 함께 사는 조손(祖孫) 가구도 3만이나 된다. 부모가 일찍 죽거나 이혼 등의 가정불화로 버려지는 아이가 많은 탓이다. 노인이나 어린이나 사회적 약자이긴 마찬가지이다. 양쪽 모두 보호와 부양이 필요한데 그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아이러니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캘리포니아대 이상희 교수는 “인류의 수명이 급증하면서 더 많은 자손을 낳을 수 있게 되고, 동시에 나이 든 세대가 직접 자신이 낳지 않더라도 자손들에게 생존의 지혜를 전해주고 손자들을 돌봄으로써 가족을 번창시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할머니 가설에 대한 증거는 원시부족이나 18~19세기 전통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번 연구는 그 증거를 현생 인류가 본격적으로 발달하던 시기에서 찾아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 교수는 “이때부터 폐경 후 장수하는 인류의 특성이 진화, 직접 아이를 낳는 부담에서 벗어난 할머니 세대가 손자나 다른 친척의 후손을 돌보는 데 집중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나이 든 세대는 인류 문화 발달에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나이 든 세대가 급증한 시기는, 인류가 장신구를 사용하고 동굴 벽화를 그렸으며 장례 행위를 시작했던 때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나이 든 세대의 지혜와 보살핌이 현생 인류를 양적인 면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발전시킨 것이다.

본 논문은 우선 세 가지 차원(생물학적․사회적․가치론적)에서 어머니가 할머니로의 전화과정과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홀어머니 외아들이 결혼기피의 대상에서 선호의 대상으로 바뀌는 것’은 한국가정에서 할머니(노인)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본보기라 하겠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형 할머니 가설’의 논의와 연구는 지속되어야 할 작업이라 하겠다.

2. 할머니의 생물학적 의미

 

1) 할머니 가설: 할머니는 장수한다

 

1976년 폐경을 주제로 개최된 최초의 국제회의에서 내린 정의에 따르면 ‘폐경’은 갱년기에 발생하는 마지막 월경주기를 의미한다. 갱년기는 여자의 생식능력이 상실되는 단계로 넘어가는 노화과정의 일정기간을 말한다. 폐경이 최후의 월경이라는 특정 사건이라면, 갱년기는 수년간에 걸쳐 진행되는 하나의 노화과정인 것이다.

여자들은 70살 이상 장수할 수 있다. 그럼에도 50살 전후에 폐경이 되어 생식능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이에 대해 생물학자들은 다양한 가설을 제시한다. 가장 단순한 이론은 수명연장 가설이다. 인류가 수렵·채집생활을 끝내고 농업 중심의 정착 생활을 하면서 수명이 연장됐고, 이에 따라 폐경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폐경을 수명 연장의 불가피한 부산물로 보는 견해다. 즉 인류의 수명은 증가했으나 40살에 기능을 멈추도록 설계된 여성의 생식기관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함에 따라 폐경이라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가설은 두 가지 측면을 무시하고 있다.

첫째, 40살 이후에 남성의 생식기능이 여성의 생식능력처럼 급속도로 없어지지 않고 점진적으로 감퇴하는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 둘째, 여성의 다른 신체기능은 나이가 들면서 천천히 저하되지만 오로지 생식기능이 갑자기 사라지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자연도태는 본질적으로 후손의 수를 증가시키는 형질을 가진 유전자를 선호함에도 후손을 낳는 여자의 생식능력을 억압하는 유전자가 도태되지 않고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이 실질적으로는 아이를 많이 낳는 것 못지않게 유리한 상황을 찾아내고 그 이유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가장 그럴 법한 설명은 ‘할머니 가설’이다. 여자가 늙게 되면 자신의 다른 아이를 낳을 때보다 이미 낳은 자식들, 그 자식들이 낳았거나 낳게 될 손자녀들, 가까운 혈족들에게 헌신할 때 훨씬 더 많이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후손의 수를 늘릴 수 있기 때문에 폐경이 진화됐다고 보는 이론이다. ‘할머니 가설’은 두 가지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 사람의 자식들은 다른 동물의 새끼들보다 더 오랫동안 부모의 신세를 진다. 침팬지 새끼는 젖을 떼는 즉시 스스로 먹이를 구한다. 그러나 인간은 20대 중반에 경제적으로 자립할 때까지 부모, 특히 어머니에게 의지한다. 따라서 가장 늦게 낳은 막둥이가 적어도 10대가 될 때까지 어머니가 살아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요컨대 늙어서 죽기 직전에 아이 낳는 일을 서둘러 그만 둘 필요가 있었으므로 폐경이 진화된 것이다.

둘째,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아이를 분만하는 도중에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 만일 60살에 아이를 낳다가 어머니가 죽어서 남은 자식들이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다면 어머니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수를 늘릴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기 때문에 나이 든 여자들이 폐경을 선호하게 됐다는 것이다.

‘할머니 가설’에서는 젊은 여자들보다 할머니들이 건강이나 재산관리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할머니들의 삶에 대한 지혜와 지식이 자식이나 손자들의 생존에 크게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할머니 가설’을 요약하자면 여자가 활동적인 시기에 자식을 돌보는 것이 유리하고, 출산 도중에 사망하는 위험을 줄일 수 있으며, 손자와 자식들의 생존에 필요한 지혜를 빌려줄 수 있으므로 폐경이 진화됐다는 것이다.

 

2) 모성의 완성: 할머니는 최후보루다.

 

[예화1] 부모 품에서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클 수 없는 조손(祖孫)가정 아이들

부모의 이혼, 행방불명, 사망 등으로 조부모가 손주들을 키우는 조손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은 턱없이 부족하다.

춘천시 효자1동에 사는 이모(71)할머니는 아들이 교통사고로 숨지고 며느리마저 집을 나간 3년 전부터 손녀 김모(16)양과 손자 김모(14)군을 홀로 키우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이 할머니는 춘천시로부터 매달 30여만 원 정도를 받고 있지만 이 돈으로 두 손주를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할머니는 손주들 학용품비라도 벌기 위해 매일 폐지와 빈병을 수집, 하루 평균 7,000~8,000원을 벌었으나 최근에는 관절염이 악화돼 걷기조차 힘들어지면서 수입이 거의 없는 상태다.

강원도에 따르면 조손가정(대리양육가정) 아동 수는 2004년 말 991명이었으나 2005년 말 1,267명으로 늘어났다. 이는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선정한 수치로 실제 조손가정은 이보다 더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교육당국조차 정확한 인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에서는 관내 조손가정 아이들에게 월 7만 원과 소년·소녀가장에 준하는 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성장기 아이들의 정서적 메마름을 채워주는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예화2] 동냥으로 아들·손주 책임지는 반신마비 할머니

마산시 회원동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8평 남짓한 낡은 집에서 투병 중인 아들과 손주녀석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올해 64세의 이순덕 할머니. 파출부로 생활하던 지난 83년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가봤다는 이 할머니. 그 때부터 할머니는 왼쪽 다리와 손을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할머니가 어시장에서 동냥으로 생계를 꾸리며 사선을 넘나들면서 구차한 삶을 연명하는 데에는 기구하고 눈물겨운 사연이 있다.

올해 34살된 아들은 허리디스크 3기, 퇴행성관절염, 위궤양, 화상으로 얼룩진 몸 때문에 경제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설상가상으로 며느리마저 이처럼 구차한 삶이 지겨웠던지 3살난 갓난 애기를 버려둔 채 가출해 여지껏 소식도 없다.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손주녀석은 벌써 8살.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할머니에겐 작은 소망이 있다. 남들처럼 손주녀석이 돈에 구애받지 않고 지금 다니는 학원을 계속 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정부 생활보조금 25만 원에 동냥으로 번 돈은 아들과 손주녀석 입으로 들어가면 남는 게 거의 없다. 그래서 월 4만 원이나 하는 학원비를 넉 달째 못 내고 있다고 한다.

“할매가 돈이 없어 학원비를 못낼 형편이니 학원 댕기지 마라.”

“할매 바보가, 학원 다니니까 100점 맞고 공부 잘한다 아이가….”

할머니의 눈에 금새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남이 볼새라 시장통에서 주워 쓴 모자를 벗어 얼른 눈물을 훔치는 모습에 기자도 감정에 북받친다.

“저는 커서 군인이 될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 안마해 드릴 거예요.”

아마도 하루 종일 시장통 거리를 헤매며 동냥을 하다 지친 할머니의 모습을 늘상 봐왔던 탓이리라. 어린 마음에 할머니의 피곤함을 풀어주는 것에는 안마가 제일 좋다고 여긴 모양이다.

“그래도 니 때문에 모진 목숨 포기 못한다”

구걸에 지친 할머니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는 손주녀석.

농촌에서 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 가정이 농촌의 신소외층이 되고 있다. 최근 들어 조부모 가정이 결손가정 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으나, 그 실태나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김혜선 교수(삼척대)가 한국노인복지학회 <노인복지 연구> 2005년 여름호에 발표한 조부모 가정 노인의 정서적 고통 연구 결과를 보면, 전남 고흥군 저소득층 조부모 가정 노인 70명 중 65.7%가 우울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자녀들의 이혼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손자손녀를 맡아 돌보면서 ‘자녀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감’이 겹쳐 심각한 화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 노인들이 손자녀 양육을 맡게 된 사유는 자녀의 이혼(71.4%)이 가장 많았고, 가출 및 생사불명(12.9%), 사망(10.0%) 등의 차례로 나타났다.

개인의 생존, 인간의 재생산, 사회의 기능유지 등을 담당하는 가족공동체의 모습은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어 왔다. 그러나 할머니는 생존의 최후 보루로서 가족의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모성이 자취를 감춘 뒤에도 조모성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정서적·경제적 기본 욕구가 충족되고, 가족구성원들 간의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가 유지되며, 공동체적 원리와 개인의 자율권이 보장되는 미래의 가정에 할머니담론은 영원한 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 존재의 원형: 할머니는 대지(大地)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란 책은 체로키족 인디언의 혈통을 이어받은 저자 포레스터 카터의 자전적 이야기다.

주인공은 다섯 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조부모와 함께 산 속의 외딴 오두막에서 살게 된다. 원제가 말해 주듯이 이 소설은 ‘작은 나무’ 라 불리는 주인공의 성장 기록이다.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인디언식 생활방식을 터득해 간다. 할아버지를 도와 사냥과 농사일, 위스키 제조 등을 하면서 자연과 교감하며 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을 자연에서 얻는 인디언식 생활 방식을 터득하게 된다.

체로키족들은 뛰어난 사냥꾼이지만 필요할 때만 동물을 죽일 뿐 결코 재미삼아 사냥을 하는 일이 없다. 그들은 가장 작고 약한 동물만을 죽인다. 그래야 크고 강한 동물들이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신은 작은 나무와 할아버지가 산에 갔을 때 덫에 걸린 칠면조를 잡고 나서 가장 작은 세 마리를 풀어준 사건에도 나타난다. 또한 작은 나무는 할머니로부터 영혼이 빠져나간 마른 통나무만을 땔감으로 쓰는 이유를 배우며 자란다. 이것은 숲과 산에도 생명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한 할머니의 뜻 깊은 가르침이다.

작은 나무는 할머니로부터는 읽기와 쓰기, 산수 등을 배우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셰익스피어나 워싱턴 전기 등의 책을 할머니가 낭독 해 주는 것을 들으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기도 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도시에서 학교생활을 하는 아이들과 할아버지에게는 자연을 배우고 인간적인 접촉과 함께 할머니에게 지식들을 배우는 작은 나무를 비교하게 되었다. 작은나무는 학교 갈 나이가 되자 조부모님이 부양할 수 없다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고아원으로 가야만 했다. 고아원에서 인디언의 혼혈 사생아라 하여 갖은 어려움을 겪는다. 고향을 떠나오던 날 할머니께서 서로 그리우면 “늑대별을 보면서 가족을 그리워하자”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저녁식사도 거르면서 늑대별을 보면서 고향을 그리워한다.

시인 고은은 조국을 묘사한 󰡔산하여 나의 산하여󰡕에서 민족이 뿌리를 내리는 땅과 강을 어머니라고 부르고, 그 대지는 엄연한 모성으로서 삶의 터전인 동시에 그 대지의 모성성은 역사의 향방을 좇아 피땀 흘려 지켜야 할 이념이라 규정하며, 이것을 다시 현세적인 어머니의 사랑으로 치환하여 기술하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많은 어머니의 위대성이 우리 역사의 모진 시련에 제공됨으로써 어머니야말로 조국의 얼굴임을 절감한다. 어머니는 무엇으로도 지워질 수 없는 원상의 진리이며 어떤 악한도 제 어미에게 돌아갈 권리가 있다. 그것은 연어나 가자미의 모천회귀의 본능과 같은 권리인 것이며, 그래서 인간의 가장 큰 축복은 어머니와 함께하는 삶의 영면성이다.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넉넉한 젖을 빨고 자라는 것을 인간의 첫 경제활동이라고 한다면 어머니란 인간에게 삶을 지탱하게 하는 경제적 기초 환경의 인격화이다. 어머니는 존재의 근거지이며 삶의 조건이고 가장 풍요한 객체이지만, 생물적인 본능 그 이상인 것이다. 어머니는 그 이름 없는 무아, 그 대지성과 그 무한성으로 해서 모든 아이들의 보편적 어머니로서 공적 모성의 표상이 된다. 거기에서 어머니는 역사로서의 어머니로 진화되고 어머니의 사랑이 빛나게 되는 것이다. 즉 대지에 비유되는 모성은 존재의 근원, 삶의 조건, 무아와 무한, 대지로 표현되는 포용성과 다산성, 고향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안식처, 회귀, 생명의 근원인 숭고한 역할, 그리고 역사의식, 휴식공간인 가정의 유지 등은 모두 비인간적인 사회를 인간적인 환경으로 조성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며 요소이다.

위 소설에서 대지의 생산력과 자연의 순리를 배움은 곧 조부모의 삶의 궁극적인 뿌리에 닿는 일이다. 현대사회의 기능적 합리주의․이중도덕․노동윤리 등 힘과 남성적 가치를 주축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사회가 드러내는 한계를 모성의 완성인 할머니가설로 극복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3.할머니의 사회적 의미

 

1) 초세대 교두보: 할머니는 동반자다.

 

[예화1] 꼬부랑 할미

꼬부랑 할미가/ 꼬부랑 지팽이를 짚고/ 꼬부랑 길을 가다가/ 꼬부랑 똥이 마려워서

꼬부랑 대추남게 올라가/ 꼬부랑 똥을 누다 가니/ 꼬부랑 강아지가 와서 먹자

꼬부랑 지팽이로 때리니까/ 꼬부랑 깽깽 꼬부랑 깽깽

니 똥 먹고 천년 살가/ 내 똥 먹고 만년 살지

대추나무의 꼬부랑 가지가 그늘을 드리운 마당귀의 거름더미 가에서 엉덩이를 까고 변을 보는 아이와 그 변을 먹으려고 꼬리를 살랑거리며 서성이는 강아지, 그리고 이를 지켜보며 아이를 격려하고 강아지를 쫓아대는 할머니가 있는 농촌의 모습을 연상시켜주는 동요이다.

배변 훈련, 즉 대소변 가리기를 가르칠 나이의 아기에게 불러주면서 즐겁고 재미있는 놀이를 연출한 노래였다. 아기의 배변 훈련을 어른들이 강요하는 성가신 것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로서 수행하도록 유도한 동요이다. 옛날 농촌의 모습이 잘 나타난 이 동요는 아이들에게 유머 감각, ‘꼬부랑’이라는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의 연습, 배변의 중요성 등을 가르치는 데 유익한 노래였다. 할머니, 지팡이, 개, 대추나무 등은 아이가 사는 집 주변의 친숙한 사물들로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하기에 좋은 가사 내용이라 할 수 있다.(유안진, 󰡔딸아 딸아 연지딸아󰡕, 문학동네, pp.214-215)

[예화2] 화투치며 놀아주는 할머니

어린 시절의 겨울방학, 전깃불도 없는 시골 할머니댁은 밤이 무척이나 길었다. 심심하다고 투정이라도 하면 슬그머니 아궁이 곁불더미에서 군고구마 몇 개를 끌어내어 방으로 들어오신 할머니는 포개진 이불 춤에서 화투장을 찾아 바닥에 깔아놓고 ‘민화투 짝 맞추기’ 레슨을 시작하셨다. …… 짐짓 손주에게 져 주시는 벌칙이라며 ‘발가락 집게’로 할머니를 꼬집으라 하시곤 익살로 손주를 웃기시던 할머니……. 지금도 그리운 우리 할머니 웃음소리……. [http://blog.naver.com/himammo]

인간은 태어난 이후 자신을 돌보는 사람과의 애착을 어떻게 형성했느냐에 따라 성격·언어·정서 발달에 영향을 받는다. 어렸을 때 누구에게서 어떻게 길러졌느냐에 따라 발달과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생물학자 포트먼(Portmann)에 의하면 인간은 동물에 비해 ‘생리적 조산아’로 태어난다. 따라서 인간은 태어난 이후 자신을 돌보는 사람과의 애착(attachment)을 어떻게 형성했느냐에 따라 성격·언어·정서 발달에 영향을 받는다. 어렸을 때 누구에게서 어떻게 길러졌느냐에 따라 발달과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양육 환경으로서 가정이라는 영역과 양육자로서 부모의 역할이 강조된다.

현대사회에서 가정 영역이 생리적 조산아로 태어난 아이들을 성숙한 인간으로 길러내는 일에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제기된다. 한 예로 준비되지 않은 부모들의 양육 문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성 간의 만남과 결합을 통해 사랑하고 결혼하는 문제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이며 어떠한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준비 없는 미숙한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정의 기본요건인 동거자의 부재는 어린이의 발달에 장애를 제공한다. 하지만 오늘의 어머니는 가사노동은 하찮은 것, 사회적 성취가 가치 있다는 메시지를 받고 성장한 전후세대로서, 일부는 사회에 진출하고 일부는 가정에 있으나 전통가치와 단절되어 있다. 전통적 어머니가 남편을 하늘같이 존경하는 데 반해 현대의 어머니들은 출세하지 못한 남편과 공부 못하는 자녀를 박대한다. 그리하여 가정의 따뜻함은 사라지고 전통적 의미의 가정은 해체되었다.

할머니는 함께 살며, 놀이하며, 공동체적인 문화를 공유하는 파트너이다.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의 줄로 이어질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안내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은의 행위가 효도이며, 사랑의 추억을 근거로 한 정서야말로 자녀의 올곧은 성장에 거름이 될 것이다.

 

2) 다원적 생명문화의 원천: 할머니는 열려 있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72만 2,000여 명으로, 전체 인구(4,909만여 명)의 1.5%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1.1%였던 작년보다 무려 35%나 급증한 수치이다. 한국에 연간 90일 이상 사실상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한 조사가 작년에 도입됐기 때문에 외국인 급증 추세가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외국인 근로자들과 농어촌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국제결혼이 늘면서부터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이에 대해 사회학자들은 한국이 이제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다문화 사회가 하나의 도전인 것은 그만큼 우리가 너무도 오랜 세월 유전 형질면에서나 언어, 문화면에서 균질적인 사회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2007.8.1]

이 세상에 잡종 아닌 민족은 없다. 타 인종 간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가장 순수하게 살아왔다는 우크라이나 사마리아인들의 경우, 그 숫자는 매년 급감해 현재는 701명만 남아 있고, 그 인원의 80%가 출생 결함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 외의 많은 순수 혈통주의자들이나 부족들은 이미 지구에서 사라졌다. 한국이 단일 민족 신화를 부둥켜안으면서, 이런 전철 밟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꿋꿋이 지난 5000년 역사의 맥을 이어온 한국은 앞으로 더욱 발전하고 성장해야 한다. 또한 그런 한국의 문화가 세상의 중심에 서려면,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더욱 섞여야 한다. 안으로는 전라도와 경상도가 섞이고, 밖으로는 한국과 외국이 섞여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길거리에서 외국인 남자와 팔짱 끼고 걸어가는 여성을 편안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소위 ‘왜놈’이니 ‘양놈’이니 하는 인종 차별적인 호칭들이 우리들의 입언저리에서 사라지게 되고, 외국인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반대로 특별히 과공(過恭)하지도 않은 공평한 문화를 지향하게 된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이 정신문화적으로 21세기에 진입할 거고, 구상 시인의 표현처럼 ‘인류는 한 가족’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 2007.11.02]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기초적인 우리말조차 제대로 못하는 현실은 심각한 문제다. 나라 전체가 이상교육 열기로 들떠 있는 가운데 유독 이들 가정의 자녀들은 무관심과 무대책 속에서 교육사각 지대로 방치돼 있어 안타깝다. 현재 같은 추세라면 오는 2020년쯤 다문화 가정 2세들은 전국적으로 167만 명(전국민의 3%)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농촌에선 초등학생의 4분의 1에 이를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들 2세들 대다수가 심각한 언어 장애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아주 일상적이고 간단한 대화조차 곤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리 만무하다. 언어는 사회적 관계 형성의 기본 요소다. 언어 장애는 곧 학습 장애, 정서 장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 엄마와의 의사소통 부재가 주원인이다. 가난으로 인한 자녀 교육 무관심, 그리고 매년 2배씩 늘어나는 높은 이혼율과 가출 등 가정 해체 현상 또한 문제 악화의 원인이다. [매일신문 2007.10.24]

한국문화는 모계적이다. 어머니란, 우주적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암컷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사회적으로 가장 짓밟히고 있는 여성의 지위를 근본적으로 개혁함에 의하여 역사 전체가 자체의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는 보편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심층심리적인 여자는 사람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대지와 풍요한 생산과 온갖 문화 창조의 표상이라 말할 수 있다.

어머니는 생명출산․양육․교육자이며, 가족성원간 유대의 매개자이고, 가족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수렴자일 뿐 아니라 가장의 수입이 충분치 않을 때 생계보조자, 나아가 가족부양자로서 살림살이의 전담자, 생명운동의 주체자이다. 그리하여 여자는 대지와 풍요한 생산과 온갖 문화 창조의 표상으로서 ‘생명’과 동의어이다.

우리문화의 근간인 농민과 노동자의 아내가 외국인으로 대체되면서 한국전통문화의 틀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불완전한 교육환경을 태생적으로 타고난 결혼이민 2세들이 있다. 외국신부에게 신랑 못지않게 중요한 존재가 시부모인 것처럼 2세 교육에 의미 있는 역할자는 할머니임을 더 이상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3) 역사의 지표: 할머니는 영원하다.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 한 시골마을에서 300여 평 남짓한 텃밭에 무, 배추, 호박, 가지, 고추 등 갖가지 농사를 지으며 사는 홍 할머니. 밭일을 하는 동안 그는 외롭지도 아프지도 않다. 자식 같은 농작물을 매만지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다. 잘 들리지 않아도 TV를 켜 놓으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6남매를 둔 홍 할머니는 혼자 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자식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가 혼자를 고집하는 이유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변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 자식들이 걱정하면 그는 “그렇게 죽는 게 복”이라고 대답하며 혼자이기를 고집한다. 헌 내복을 입고 밭일하는 홍 할머니. 홍 할머니는 새 내복보다 낡디 낡은 헌 내복을 더 좋아한다. 아들, 딸, 조카들이 사다 준 새 것을 마다하고 헌 내복을 입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내다 버리려고 했던 내복을 또 빨아 입었다 낡은 내복을 입는다고 딸들은 야단이다. 새 내복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딸․조카들이 사다 준 내복들이 상자에 담긴 채로 쌓여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 자꾸 새 것 입어 휘질러 놓으면 뭐하나 해서다, 그리고 새 옷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 보면 헌 옷을 입어도 뿌듯하다. 나 죽은 후에 다른 없는 이들 입게 주면 얼마나 좋으랴 싶다. 그런 에미 맘을 모르고 딸년들은 낡은 옷을 버리라고 야단이다.”

물끄러미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홍 할머니. 추수가 끝나면 홍 할머니는 씨앗 봉투마다 이름을 적어 놓는다, 몇 년째 이 일을 반복하는 그는 혹여 내년에 자신이 심지 못하게 되더라도 자식들이 씨앗을 심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손수 지은 농작물을 자식들 손에 들려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홍 할머니가 1994년 8월 18일에 쓴 일기 전문이다,

“내 글은 남들이 읽으려면 말을 만들어 가며 읽어야 한다. 공부를 못해서 아무 방식도 모르고 허방지방 순서도 없이 글귀가 엉망이다. 내 가슴 속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꽉 찼다, 그래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연필을 들면 가슴이 답답하다 말은 철철 넘치는데 연필 끝은 나가지지 않는다. 글씨 한 자 한 자를 꿰맞춰 쓰려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지 모른다.

그때마다 자식을 눈뜬장님으로 만들어 놓은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글 모르는 게, 내가 국민학교 문턱에라도 가 봤으면 글 쓰는 방식이라도 알았으련만 아주 일자무식이니 말이다. 엉터리로라도 쓰는 것은 아이(손주)들 학교 다닐 때 어깨 너머로 몇 자 익힌 덕분이다.

자식들이나 동생들한테 전화를 걸고 싶어도 못했다. 숫자는 더 깜깜이었으니까 70이 가까워서야 손자 놈 인성이한테 숫자 쓰는 걸 배웠다. 밤늦도록 공책에 써 보았고 내 힘으로 딸네 집에 전화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숫자를 누르고 신호가 가는 동안 가슴이 두근두근 터질 것만 같았다. 내가 건 전화로 통화를 하고 나니 장원급제한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너무 신기해서 동생네도 걸고 자식들한테도 자주 전화를 했다.

이젠 손주들이 보는 글씨 큰 동화책을 읽을 수도 있다. 인어 공주도 읽었고, 자크의 콩나무도 읽었다. 세상에 태어나 글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모른다, 이렇게나마 쓰게 되니까 잠 안 오는 밤에 끄적끄적 몇 마디나마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말벗이 없어도 공책에다 내 생각을 옮기니 너무 좋다. 자식을 낳으면 굶더라도 공부만은 꼭 시킬 일이다.”

가슴에 묻은 자식 생각에 눈물짓는 홍 할머니. 어린 자식이 숨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젊은 시절의 아픈 기억과 살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노년의 외로움이 절절이 담긴 그의 일기는 그만의 일기가 아니다. 배고프고 힘든 시절을 꾸역꾸역 참고 살아온 한 여인의 일기요. 우리네 어머니의 일기이며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일기다. [jgc0703]

전통사회에서 여성에게는 지식추구가 금지되었던 관습과 가정영역에만 유폐됨으로 해서 사회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던 여성에게 역사의식이 결여되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김구와 같은 영웅적인 아들의 역사적인 행위에 동물적 모성애를 초월하여 일체감을 형성함으로써 역사에 참여하게 되는 그의 어머니의 숭고한 정신은 찬양되어 마땅하다. 고은이 지적하듯이 민족사의 굽이굽이에서 위대성을 발휘한 어머니들의 행위가 역사의 일부를 형성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처럼 특출한 어머니의 행위만을 역사로 서술하고 언급함으로써 두 가지 측면에서 여성을 역사에서 소외시키게 된다. 첫째는 평범한 어머니들의 역사적 공헌이 간과되는 점이고, 둘째는 어머니로서의 여성의 역사참여의 문제이다.

첫째, 성별분업에 의해 모성역할만이 삶의 수단으로 주어진 여성들이 역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어머니로서밖에 없다. 둘째, 어머니로서 역사적 인물의 배출을 통한 역사참여를 찬양, 강조함으로써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여성은 역사에서 소외되고 ‘역사에 남는 어머니’만이 규범화된다.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함으로써 자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부지런히 배우고 움직이고 귀한 물건을 남기고자 하는 알뜰함이 자손들의 뇌리에 위대한 유산으로 기억될 것이다. 사려 깊은 부모는 자식에게 유형의 유산보다 무형의 유산을 남긴다. 역사는 자랑스런 부모의 유산과 명예로운 생활의 궤적으로 후손을 인도하는 일이다.

 

4.할머니의 가치론적 의미

1) 희생의 사랑: 할머니는 강하다.

[예화1] 말벌 떼 공격에서 손자들 구하려던 할머니 사망

말벌 떼의 공격으로부터 필사적으로 손자와 손녀를 구하려던 50대 할머니가 온 몸을 쏘여 숨졌다. 지난달 31일 오후 5시20분께 부산시 금정구 부곡초등학교에서 손자(2살)·손녀(5살)와 함께 산책을 하던 권모(59.여)씨가 말벌 떼에 쏘여 쓰러진 뒤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후 8시께 숨졌다.

권 씨는 이날 손주와 함께 학교 운동장에서 산책을 하다가 축구골대 뒤 나무 아래를 지나던 중 갑자기 말벌 떼가 달려들자 입고 있던 긴소매 옷을 급히 벗어 손자와 손녀를 필사적으로 감싸 안아 보호하는 사이 자신은 얼굴과 머리, 양팔 등에 80여 군데나 쏘여 결국 목숨을 잃었다.

경찰 관계자는 “권 씨의 몸을 살펴보니 맨 살이 노출된 곳은 빈 곳이 없을 정도로 쏘인 흔적이 있어 짧은 시간에 말벌 떼의 집중 공격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며 “손녀가 갑자기 말벌에 쏘이자 할머니가 필사적으로 손자와 손녀를 보호하려고 노력하다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07.9.1 연합뉴스]

[예화2]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할머니

“아가, 일어나야지. 6시가 훌쩍 넘었다.”

나는 그 말에 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화장실로 곧장 향했다.

“아가, 밥 어디에다 줄까?”

“그냥 대충해서 줘요. 바쁘니깐.”

대충대충. 그게 나의 방식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화장실을 나왔다. 씻으니 정신이 말끔히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시계를 쳐다보니, 6시 15분이었다.

“뭐가 6시가 훌쩍 넘어! 이제 15분이잖아!”

순간 화가 나서 크게 소리쳤다.

“네가 늦을까봐 그랬지…….”

“뭐가 늦어! 만날 일어나는 시간 뻔히 알면서 왜 그러는데! 그냥 밥이나 빨리 줘!”

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아침부터 괜한 짜증이 났다. 조금 더 잘 수 있었는데.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컴퓨터를 켰다. 날씨도 보고, 뉴스도 좀 볼려고. 좀 어처구니 없는 뉴스가 있었다.

‘용돈을 안 준다고 부모를 살해하다니…….’

정말로 세상은 요지경인가보다. 학교에 갈 준비를 하기 위해 교복을 입었다. 교복은 매일 다림질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좀 더 옷맵시가 나는 듯했다. 아니면 내 옷걸이가 좋던가.

“아가, 밥 먹어라.”

하루를 든든히 보내기 위해 밥을 먹으러 갔다. 그런데 밥은 없고, 반찬만 있었다.

“뭐야, 반찬만 있잖아. 밥은 어딨는데……?”

“조금만 더 기달려. 다 되어 가.”

순간 또 짜증이 났다.

“아니 그러면 다 되고 부르던가. 왜 미리 부르는데.”

“배고프면 와서 반찬이라도 먼저 집어 먹으라고…… 그래서 부른 거야.”

후, 더 이상 말하기도 싫었다. 아침부터 이런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기는 싫었다. 그래도 이건 뭐 대책이 없다. 기분이 이러니 밥이 넘어갈 리 없었다. 그냥 대충 깨작깨작 먹고 식사를 그만 뒀다. 가방을 대충 챙기고 거실로 나왔다. 신발을 신으려고 찾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내 신발 못 봤어?”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내 신발 못 봤냐고요~?”

“신발?”

“흰색 신발.”

“흰색 신발? 아, 그거, 빨았는데 할미가.”

“그걸 왜 빨어! 더럽지도 않는데.”

“흰색이라 때가 많이 타서…… 그래서 빤 거야. 저기 위에 신발 하나 더 있쟎냐.”

순간 욱 하고 올라왔다. 남이었다면 욕이라도 할 기분이었다. 그냥 빨리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대충 신고 나가려고 했다.

“아가, 여기 우아기하고 돈 가져가라.”

검은색 가디건과 500원짜리 동전 2개를 내밀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져 가래두.”

나는 묵묵히 신발 끈만 묶을 뿐이었다.

“아가, 어여…….”

“안 가져간다고. 사람이 그냥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아닌가 보다 하지. 왜 자꾸 귀찮게 하는데!”

나는 문을 박차며 열고 나갔다. 씩씩거리면서 나갔다. 정말 아침부터 되는 게 없었다. 조금 걷다보니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불어오니 짜증났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걸으면 걸을수록 바람은 더 세게 부는 듯했다. 시원했던 기분은 눈 녹듯 사라지고, 오히려 추워지기 시작했다. 학교까지는 한참 남았다. 윗옷을 입고 올걸 그랬다. 가을바람이 뼛속까지 스미는 듯했다. 우여곡절 끝에 학교에 도착했다. 오는 길이 너무 힘들었는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깨어나니 벌써 2교시가 지나있었다. 배가 고파왔다. 하지만 주머니에는 돈이 없었다. 후, 아침에 돈을 안 받은 게 후회됐다. 배고픔을 잊기 위해, 다시 잠을 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가 나를 깨웠다. 담임선생님이었다. 표정은 좋지 않아보였다.

“정국아, 너희 할머님이…… 할머님이…… 잠깐 나와 봐라.”

그렇게 복도로 나갔다.

“너희 할머님이 지금 교통사고가 났다. 병원에 계시는데, 위험하시단다. 어서 같이 가보자.”

순간 멍했다. 아직 잠이 덜 깬 듯했다. 아니 꿈인 거 같았다. 아직 방에서 잠을 자는 거 같았다. 조금 있으면 할머니가 나를 깨워주러 올 것 같았다. 아이들의 소리도, 나를 부르는 선생님의 소리도 아무 것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악몽임에 틀림없었다. 깨고 싶었다. 미치도록. 그러나 깨지지 않았다. 나는 정신없이 뛰었다. 할머니가 있는 병원으로 무작정 뛰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를 찾기 시작했다. 의외로 찾기 쉬웠다. 할머니만이 내 눈에 금방 들어왔다.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할머니!!!”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할머니, 나 왔어. 할머니 애기 왔다고…….”

“저, 이런 말 드리기 죄송합니다만…… 이미 늦었습니다.”

의사가 와서 내게 말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고 얼굴에 죽을상을 하며 말했다. 내가 더 죽을 거 같은데 말이다. 순간 내 눈에 쇼핑백이 들어왔다.

“할머님이 실려 오실 때, 이 쇼핑백을 들고 있었습니다.”

쇼핑백을 열었다. 내 체육복이 있었다.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왜! 또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냐고…… 체육복 같은 거 그냥 애들한테 빌리면 된단 말이야.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냔 말이냐고. 그냥 아무 것도 안 해 줘도 됐잖아. 그럼 이러지도 않잖아.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 나 아침마다 깨워줘야 되잖아! 나 아침마다 밥 차려줘야 될 거 아냐! 아침에 조그만 돈도 주고, 또 내 교복도 매일 다림질 해줘야 될 거 아니냐고! 왜! 누가 체육복 가져다 달라 그랬어?”

<이하생략> [2007.10.14/http://cafe.naver.com/truthnovel]

슈퍼우먼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여성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에게 부과된 현모양처 역할 덕목들이 서로 모순적이어서 한 사람이 수행하기가 쉽지 않은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집안일의 성취에 대한 기대수준을 가족이나 자신의 형편에 따라 하향조정한다. 자신이나 가족이 갖고 있는 집안일의 성취에 대한 기대수준이 전업주부를 기준으로 한 사회적인 것이라고 간파한다. 또한 취업으로 인하여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자녀양육역할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 버리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현모양처 역할은 여성으로 하여금 항상 헌신적이고 다른 가족구성원의 감정의 흐름이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타자지향적이고 희생적인 삶을 살도록 강요한다. 이러한 삶은 여성 자신의 욕망이나 기획을 고려하지 않고 항상 자녀들이나 남편의 욕구나 기획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므로, 여성은 그들의 욕구에 항상 대기하는 상태로 마음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때로 먹고 싶고 입고 싶은 것이 있어도 자식이나 남편들을 위해 자신의 것은 순위가 맨 뒤이거나 아예 억압한다.

모성의 완성으로서의 할머니는 사랑의 본질인 희생을 체현하고 있다. 현대적 모성이 실종된 자리에 조모성은 특유의 감수성과 깊은 배려로 현대사회가 결핍하기 쉬운 사랑의 비타민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2) 지혜의 표상: 할머니는 발명가다.

 

[예화] 할머니의 손자사랑이 발명한 삼각팬티

손자와 씨름하는 게 유일한 낙, 가난하기만 하던 사람들, 굶주림에 지쳐 살던 사람들, 배운 것이 없어 땅만 파먹고 살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시골 마을에 김순덕 여사가 시집온 것은 열아홉 살 때였다. 장티푸스에 걸린 남편이 불귀의 객이 되자 코흘리개 아들딸과 함께 괴나리봇짐을 지고 무작정 상경한 것은 스물여덟 살 때였다.

청상과부가 되어 코딱지만한 논밭을 팔아 서울로 왔으니 방 한 칸을 얻고 난 뒤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돈 많은 홀아비 하나가 집요하게 접근하기도 했지만 아이들 때문에 재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식모살이부터 시작했고 행상, 노점상, 포장마차를 거쳐 작은 식당을 열었다. 한글을 겨우 깨친 처지일지라도 자식들만큼은 훌륭하게 키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벌었다.

이 세상의 온갖 험난한 일을 골고루 경험하며 아들 하나, 딸 하나를 장가들이고 출가시키자 어느덧 김순덕 여사는 50대 중반을 넘어선 할머니가 되었다. 더구나 생계 수단이던 식당을 처분하고 아들네 집에 들어앉은 뒤부터 젊은 할머니 김 여사의 유일한 낙은 손자들과 씨름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아이들이 걸핏하면 넘어지기 일쑤였으므로 김순덕 여사는 속이 상했다. 무릎까지 닿는 긴 속옷을 걸치고 뛰노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는 동양과 서양 모두 반바지에 가까운 속옷만 존재했기 때문에 겉옷을 입기도 불편했고 땀이 많이 나는 여름이 되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김 여사는 손자들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속옷의 용도는 단지 중요한 곳을 가리는 것으로 족하다. 쓸데없이 길게 늘어뜨려서 옷감을 낭비하고 행동을 불편하게 할 이유가 없다. 가능한 한 작고 짧게 만들면 그뿐이다.’

아주 앙증맞고 짧은 팬티가 머릿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데드론’으로 만든 헌 자루가 눈에 뜨이자 그걸 싹둑싹둑 잘라서 두 다리가 들어갈 만한 구멍을 냈다. 이른바 삼각팬티가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김순덕 여사는 손자들을 모델로 삼아 그 미완성 삼각팬티를 입혀 보았다. 가볍고 편리한데다가 그 모양도 산뜻하기 그지없었다. 선(線) 하나 더 만들어도 발명이다.

“어머니, 놀라운 발명예요!”

그 날 저녁, 귀가한 아들이 어머니가 고안한 팬티를 발견하자마자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처럼 외쳤다.

“당장 특허를 냅시다!”

“아범아, 팬티가 뭐 대단한 발명품이라고 특허를 낸단 말이냐?”

“두고 보세요. 멋진 작품이 탄생될 테니까.”

아들의 예언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실용신안 특허를 출원한 뒤 로열티를 받고 유명 의류 회사에 특허 실시권을 주었더니 단숨에 시장을 석권해 버렸던 것이다. 남녀노소 경쟁하듯 삼각팬티로 갈아입는 팬티 교체 신드롬에 편승하여 김순덕 여사의 작품이 대히트를 쳤으니 그 때 나이가 예순이었다. 위대한 발명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손주에 대한 사랑이 낳은 열매인 것이다.

인류역사를 통해 출산은 원시 경작사회, 농경사회, 그리고 초기산업사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회에서 노동력 재생산이라는 의미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아왔고, 여성의 삶은 출산과 양육과 관련된 활동을 중심으로 주로 이루어져왔다. 산업화에 따른 일터와 가정의 분리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여성의 노동이 그 사회의 핵심적 생산 활동에서 소외되지 않았으며, 아동양육도 대가족의 여러 성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산업화의 초기만 해도 노동력의 수요 증대는 여성의 생산 활동 참여보다는 노동력 재생산에 더 의미가 주어졌었다. 그러나 산업화의 진전과 더불어 인구조절의 과제를 안게 된 사회에서 소수 자녀출산이 장려됨에 따라 여성의 생리적 의미의 진가가 발휘될 영역과 기간이 극히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므로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서 여성이 평생 집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하게 되었다.

반면에, 개인의 사회적 지위는 가장의 지위 성취에 의해 결정되고 그 지위는 가족집단에 의해 공유되는 초기산업사회에 남편을 보좌하고, 소수자녀이기 때문에 더 잘 키우고 교육시켜야 한다는 과제가 새롭게 여성의 임무로 등장하게 되었다. 도시화 핵가족화로 여성은 더욱 가정에 머물면서 양육에 전념해야 하게 되었다. 한편 한국 여성은 그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가부장적 가족의 혈통유지와 가족지위 향상을 위해 능력을 발휘해왔다. 그러나 어머니 중심의 가족운영은 어머니에게 벅찬 부담이며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통한 자아실현과 인간화를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조성숙, pp.52-53]

요즘 어머니들은 옛날 어머니들이 지녔던 예의범절이나 생활규범의 틀이 잡혀 있지 않다. 배운 것도 많고 똑똑한데 매사에 이기적이고 은근한 데가 없고 깊이가 없다. 남편, 시부모, 아이들에게 각각 대하는 태도에 때로는 모자라고 때로는 지나치다. 가정을 착실히 돌보지 않고 자기만 바삐 뛰는 여자, 조리식품으로 가족의 식사를 대신하는 등 식구들이 먹고 입고 자는 일에 무관심한 어머니들이 늘고 있다.

자녀양육에 지식보다 지혜가 필요하다. 할머니의 사랑에서 출발한 지혜는 철학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이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할머니는 자식과 손주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루고 얻은 삶의 지혜를 전수해 줄 기회를 찾고 있다. 진정 창조적인 것은 사랑의 통로를 타고 세대의 벽을 넘는 것이 아닐까 싶다.

 

3) 정서적 고향: 할머니는 따뜻하다.

 

[예화1] 성균관대 울린 ‘토스트 할머니’의 죽음

‘토스트 할머니’ 조화순(향년 77세) 할머니가 성균관대 앞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시작한 건 1992년 10월 말. 할머니는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학생에게 보통 토스트의 두 배만한 두툼한 토스트를 공짜로 나눠주면서 “학생들이 모두 손자 손녀 같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었다고 한다. 1천500원짜리 토스트를 파는 가게주인이 아니라 ‘인정(人情)’을 퍼주는 사람이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오후 3시면 어김없이 리어카를 끌고 학교 앞에 나와 포장을 치고 밤을 새워가며 새벽 5시까지 토스트와 어묵을 파는 할머니의 운명은 얄궂었다. 작년 4월 뇌종양에 걸린 딸(37)과 백혈병에 걸린 손녀(11)를 돌보며 어렵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성대생들은 할머니를 도와 학교 안에서 토스트를 함께 팔았고 헌혈증을 모아 기증하기도 했다. 이 사연이 동문들 사이에 퍼지면서 네덜란드와 캐나다 등 해외에 있는 동문들도 ‘할머니를 위해 써달라’며 성금을 보내왔다.

하지만 학생들은 작년 말부터 토스트 할머니를 더 이상 학교 앞에서 만날 수 없다. 할머니는 지난해 9월 배가 아파 동네병원을 찾았다. 담낭에 암이 생긴 것을 알게 된 할머니가 수술을 포기하고 평소 다니던 성당의 소개로 꽃동네가 운영하는 병원에 입원했다가 지난 11일 끝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말기 암으로 고통받던 할머니는 “학생들이 보고 싶다”며 병원을 뛰쳐나와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 와 성대 앞을 서성이기도 했다. 조 할머니의 딸은 “그러다 쓰러진다고 몇 번이나 말렸는데도 학생들한테 토스트를 만들어줘야 한다며 혼자 병원을 뛰쳐나가신 적이 있어요. 돌아가신 뒤 어머니 일기장을 보니 ‘학생들하고 같이 했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적혀 있었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빈소를 찾은 동문 등을 통해 할머니의 부고가 전해지자 성균관대 인터넷 커뮤니티인 ‘성대사랑’에는 학생들의 추모글이 이어지고 있다. “아, 할머니. 많이 그리울 겁니다. 하늘에서 편히 쉬세요. 당신의 토스트는 최고였습니다.” “할머니 더 이상 힘든 일도 그리고 편찮으신 곳도 없으시길 빕니다.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사세요.”

성균관대 총학생회장은 “작년 이맘 때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뒤 학교 안에서 토스트를 팔아 수익금을 드리려고 하는데 끝까지 안 받으시려던 모습이 생생하다”며 “할머니가 부쳐주는 큼지막한 토스트를 먹을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7.4.18]

[예화2] “하버드대 교수 돼, 할머니 잘 모실 거예요”

“책장 가져오셨다고예? 어서 오이소!”

쪽문을 연 황칠선(72) 할머니가 활짝 웃었다. 8일 밤 대구 대신동. 신축 아파트 아래 철거 예정 건물이 다닥다닥 엎드려 있다. 슬레이트 지붕을 인 방 두 칸짜리 사글세(12만 원) 집에서 황 할머니와 배진영(12)군은 3년째 오순도순 살고 있다. 둘은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다. 황 할머니는 네댓 살에 남의 집 수양딸이 됐고, 그 집 집안일을 거들며 쉰을 넘겼다. 양모가 숨진 뒤엔 식당에서 일해 연명했다.

진영이는 부모 얼굴을 잊었다. 일곱 살 때 아버지 사업이 망하자 부모가 각자 가출했다. 아홉 살 때까지 외갓집에 살았다. 어느 날 외할머니 친구가 생판 남인 황 할머니에게 진영이를 데려왔다.

“외갓집에서 더는 못 키운다 한다꼬, 내보고 한번 키워보라 카데요. 그러마고 했어요.”

모르는 아이를 왜 선뜻 맡았을까. 할머니 대답은 간명했다. “지나 나나 외로우니까예.” 그렇게 두 외톨이는 가족이 됐다. 매달 두 사람 앞으로 나오는 각종 지원금은 모두 합쳐 70만 원. 할머니가 이 돈으로 둘이 먹을 식량과 죽순처럼 쑥쑥 크는 진영이의 새 옷을 산다.

‘거실을 서재로’ 캠페인은 가정의 달을 맞아 진영이처럼 부모가 아닌 어른과 함께 사는 청소년들에게 보급형 책장과 책을 선물한다. 셋방에 책장이 들어선 날, 책장에 책과 학용품을 채우며 진영이는 씩 웃었다.

진영이처럼 부모 대신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과 함께 사는 18세 미만 청소년은 전국에 1000여 명이다. 조부모·친척과 사는 아이는 1만1500여 명, 어른 없이 자기네끼리 사는 아이는 3000여 명이다.(복지부 통계) 이 중 600명이 ‘거실을 서재로’ 캠페인 혜택을 받게 됐다. 진영이는 매일 아침 1시간 동안 유도를 하고 방과후엔 복지관에서 과학책을 읽는다. 꿈은 하버드대학 교수. 가수가 되고 싶었는데, 할머니가 “많이 배워야 아버지를 찾는다”고 해서 꿈을 바꿨다. 아버지는 진영이가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유일한 혈육이다.

간혹 진영이가 말썽을 부리면 할머니가 꽥 하고 소리 지른다. “내 죽으면 니는 우짤래?” 진영이는 그 소리면 질색한다. “겁나는 소리 좀 하지 마이소. 군대는 어떻게 가는지, 대학은 어떻게 가는지 하나또 모르는데…….”

이 기사에 나오는 할머니와 진영은 참으로 가슴 찡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혈육관계가 아닌 상황에 의해 엮어진 가족이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함부로 자식을 낳아 버리는 경우도 눈에 보이지 않게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진영이의 가족 같은 경우는 살기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황이 이렇게 된 경우라 더욱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를 고향에 비유하는 것은 어머니를 동경하는 보편적 감정의 일반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어머니나 고향 얘기를 할 때마다 누구나 마음이 포근해지고 착한 마음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하나는 자기가 자라나던 산천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자아내주는 고향이요, 또 하나는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주던 마음의 고향인 어머니이기 때문이다”(조성숙 p.105)

고향은 따뜻한 사랑의 기억을 남긴다.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을 있게 하는 가능성의 보고이다. 고향에서 비롯되는 정체성은 종착지가 있기 때문에 유리방황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나의 존재근거와 맞닿아 있어서이다. 어린이가 엄마와 아빠를 좋아하는 것은 그들이 ‘나’의 엄마요 ‘나’의 아빠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조부모의 경우도 ‘나의 할아버지’와 ‘나의 할머니’라는 의식이 뚜렷할 때 그들을 좋아하게 된다. 어린이에게 부모와 조부모는 자아의 연장이다. 연장된 자아 즉 ‘우리’도 자아의 일부임에 틀림이 없으니, 부모와 조부모에 대한 사랑도 확대된 자아에 대한 사랑이므로, 그것 역시 ‘나’에 대한 사랑의 연장이다.

어린이가 자라고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자아 즉 ‘우리’의 범위는 점점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 친구들도 ‘우리’의 범위 안에 포함되고, 이웃도 ‘우리’의 범위 안에 포함될 수 있으며, 더욱 자라면 국가 또는 민족 전체가 ‘우리’로서 의식되기도 한다. 인격이 성숙할수록 ‘우리’로서 의식되는 것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다. ‘우리’로 의식되는 것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은 자아 즉 넓은 의미의 ‘나’의 범위가 커짐을 의미한다. ‘나’라는 것은 물질의 체계가 아니라 의식의 체계인 것이다. 의식은 일정한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고 부단히 흐른다. 나의 핵심에는 변동이 없지만, 그 핵심을 중심으로 하고 나선형 모양으로 신축하는 자아의식의 체계는 수시로 변동하는 것이다.

 

5. 한국사회에서 할머니의 의미와 역할

 

1) 한국사회의 할머니 가설

 

어머니는 자식 키워 결혼시키면 한시름 놓는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제 ‘손주 키워 초등학교 보내야’ 한시름 놓는 시대가 된 것 같다.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손주 육아를 전담하느라 환갑 전후에 다시 엄마 역할로 복귀하는 할머니가 늘고 있다.

2005년 4월 노동부가 산전후 휴가급여 수급자 1,5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일하는 엄마의 영아보육 실태조사’(신뢰수준 95%, 오차범위 ±1.3%P)는 ‘손주 키우는 할머니’ 실태를 잘 보여준다. 직장생활을 하는 응답자의 70.9%는 아이를 ‘부모님 혹은 친인척이 키운다’고 답했다. ‘보육시설에 보낸다’는 응답은 15.3%, ‘가사대리인에게 맡긴다’는 9.4%였다. 가사대리인이나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이유도 대부분 가족 중 맡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또 전체 응답자의 12.9%는 아이를 낳고 난 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거나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했다.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아이를 키우는 데 애로가 있어서’가 68%로 가장 높았고, ‘회사에서 묵시적으로 퇴직을 종용해서’가 14.2%로 뒤를 이었다. ‘상사·동료 등 회사에 눈치가 보여서’라는 대답도 8.1%였다. 아이를 키우는 데 애로가 있어 회사를 그만뒀다고 답한 사람의 37.3%는 ‘아이를 믿고 맡길 만한 곳이 없다’고 답했다. ‘직장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34.3%,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다’19.4%,‘아이를 맡길 경우 비용이 비싸다’ 9% 등이었다. [쿠키뉴스 2006-11-01]

충북지역 초․중학생 10명 중 6명 정도는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살고 싶다는 의견을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충북도교육청에 따르면 가정의 달을 맞아 도내 초·중학생 1천641명(초등생 776명, 중학생 865명)을 대상으로 ‘효 의식’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조부모와의 동거 희망 여부에 대해 60.2%(988명)가 함께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동거 희망 비율은 초등생(64.3%)이 중학생(56.5%)보다 약간 높았다. 전체 응답자 중 실제 조부모와 살고 있는 학생은 350명(21.3%)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신이 효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29.1%)’는 대답이 ‘그렇지 않다(24.0%)’는 응답보다 많았으며 46.9%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부모가 효자인지 여부에 대한 항목에서는 50.6%의 학생이 부모님을 효자라고 여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조부모 중 적어도 한 분은 살아 계시다는 전제 아래 설문을 했다”며 “핵가족화, 부모의 직장 등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아본 적이 없다는 학생이 절반을 넘었으나 60% 정도가 ‘조부모와 함께 살고 싶다’고 대답한 것은 학교별 효도교육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같이 조부모와 조손간에 긍정적인 지향이 있지만 세대를 뛰어 넘는 차이는 다음과 같이 엄연히 있게 마련이다.

<표2:조부모와 손주 세대의 문화의식 차이>

조부모세대

손주세대

의생활

직접 생산, 전통의상 중심, 실용주의적, 수선사용, 대물림

서구식의상 중심, 한복 퇴조, 구입, 디자인중심의 구입, 과시형(고가 의류 등)소비행태 발생

식생활

직접생산, 유통망 한계 및 구매력 부족으로 영양결핍 사례(보릿고개)

대량유통에 의한 다양한 식품구입 용이, 가공식품 출현, 냉장고 보급, 영양의 중요성 강조, 웰빙요법 발생, 영양이론 발전, 서구식 식습관 등장, 외식의 발달

가족형태

대가족, 생산과 소비의 주체, 생활의 터전, 일종의 교육기관(어른들로부터 배움)

핵가족, 자녀수 감소, 이혼 등으로 한부모(편부모) 가정 발생 및 증가

성역할

엄격한 역할 분리, 남녀칠세부동석

여성경제활동 참가 증가, 여성의 직업 역할은 변화했으나 가족 역할에 대한 인식은 변화하지 않음.

소비형태

근검, 절약 미덕, 5일장 또는 떠돌이 장수, 실용주의적 소비행태

대형 상점의 등장, 과시형 소비 발생, 구매력 증대

가족공유

시간

공동 생산, 가족 놀이 공유, 여유시간 공유

경제활동 참여에 따른 급감, 대리양육 증가, TV, PC 의 보급으로 가족간 대화시간 급감

그러나 차이가 조화를 형성한다는 원론적 시각으로 볼 때 1세대와 3세대 사이의 간극은 매우 고무적인 요소라고 하겠다. 부부의 문제도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무리하게 동화하려는[同而不和] 데서 기인한다고 하겠다. 한국형 할머니 가설은 특유한 대가족사회에서 형성된 할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의 이미지를 위주로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2) 현대가정과 할머니의 역할

 

회사원 A씨는 최근 시집살이를 자청했다. 올해 유치원에 들어가는 아이를 아침저녁으로 돌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 지난해까지 다닌 어린이놀이방은 오전 7∼8시부터 열었지만 유치원 수업은 오전 10시30분부터 시작되기에 9시에 출근하는 A씨와 직장 생활을 하는 친정어머니로선 대책을 세울 길 없었다. “출퇴근이 가능한 수도권에 시댁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저와 비슷한 처지인 친구는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거든요.”

30, 40대 직장인에게 물어보면 신대가족이 늘어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육아 문제를 지목하는 답변이 많다. A씨도 마찬가지. ‘신대가족’ 대열에 이미 합류한 A씨는 주변 사람들의 격려에 힘을 얻었다. 시부모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은 거북스러웠지만, 아이 성격이 밝아졌고 부부관계가 좋아진 데다 경제적 이익은 말할 수 없이 컸다는 등의 긍정적인 경험담이 많이 들왔기 때문이다.

신대가족의 장점으로 ‘아이의 정서적 안정’이 많이 꼽힌다.

남편과 맞벌이하는 C씨는 남편, 세 살 아들, 시어머니와 시외할아버지까지 5명이 한 집에 산다. 결혼과 함께 분가했던 C씨는 아이를 가지면서부터 시어머니, 시외할아버지와 합치기로 했다. 이후 거동이 불편한 시외할아버지 부양과 육아 문제가 해결됐다. “집에 사람이 많으니까 아기 정서가 안정되고 좋아요. 성격도 밝고 어린이집에서도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선생님들이 입을 모으시네요.” [세계일보 2007.1.1]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우리는 색다른 경험을 한 바 있다. 시청 앞 광장, 학교 운동장, 집 앞 공원에서 집단 응원을 통해 축구 경기가 주는 재미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부딪치고 함께 웃고 울면서 너무나 즐거운 경험을 했다. 처음에는 집 안에서 혼자 또는 가족끼리 한국 축구가 이기기만을 기원하던 사람들이 점차 길거리로 나가 축구 경기의 승패와 상관없이 즐기면서 함께하는 문화를 경험한 것이다. 이것이 체험을 통한 만족이라고 본다면, 서로가 함께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수 있다. 흔히 운동경기를 인생의 한 면으로 비유하지 않던가. 마찬가지로 우리의 가족도 서로 부딪치고 함께하는 아날로그 체험을 통해 행복한 생활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본다.

요즘 웰빙의 한 모습으로 ‘천천히 살기’를 제시하는 이론이 있다. 최근 ‘생활의 속도를 저속 기어로 두는’ 다운시프트(Downshift)족이 늘어나고, 먹는 음식에서도 패스트푸드(fast food)에 대응된 슬로푸드(slow food)가 뜨고 있다고 한다. 건강에 좋고 장수하는 방법으로 웰빙 라이프(wellbeing life)에 관심을 가지지만, 이러한 경향의 기저에는 체험을 중시하고 생활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고자 하는 바쁜 현대인들의 심리가 포함된 것이다. 할머니는 여유와 느림의 상징이다. 한국의 속도문화가 주는 부작용을 극복하는 책임 있는 ‘느림의 미학’은 할머니에게 농축된 지혜인 것이다.

초·중·고교생 10명 중 3명은 최근 3년 간 자살 충동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교육연구회가 전국 초중고교생 1천62명(초 344명ㆍ중 391명ㆍ고 32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7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3년 간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29.4%가 ‘그렇다’고 답했다.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는 응답자 가운데 중학생이 34.1%로 가장 많았으며 고등학생 33.7%, 초등학생도 19.9%나 됐다.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응답자(29.4%) 중 12.4%는 실제 자살을 시도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그 이유로 ‘가족과의 갈등’(44.1%), ‘성적부진’(19.5%), ‘이성교제’(5.5%), ‘따돌림’(4.2%), ‘외모ㆍ건강문제’(1.6%), ‘학교폭력’(1.4%) 등을 들었다.

심각하게 우울한 마음이 들 때 ‘주로 혼자서 해결한다’는 학생이 42.8%로 나타나 상당수 학생들이 외부의 도움을 별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반인데도 한 번도 말을 하지 않은 친구가 있다는 학생은 14.0%, 최근 3년 간 ‘왕따’를 경험한 학생은 6.2%였다.

특히 가족과 하루 중 한 끼라도 함께 식사하는 횟수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일주일에 1~2일’ 26.9%, ‘거의 없다’ 16.9%, 가족의 대화 시간은 ‘하루 30분 이하’가 52%로 나타나 가족과의 교류도 매우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연합뉴스 2007.6.13]

“학원가라” “공부하라”는 잔소리와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빈집이 일수이고 왕따까지 당하면 어디 한군데 마음 붙일 곳이 없다보면 불상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경제도 경제지만 가정회복이 중요한 시점이다. 몇 푼 벌러 엄마까지 집을 비우지 말고 조부모와 함께한다면 노인과 아이문제가 모두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손주가 있음으로 조부모가 존재한다. 문화는 언제나 전후 연결고리가 단단할 때 건실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 참고자료

광진구는 구청대강당에서 “할머니가 전해주는 아기발달 전래놀이”를 개최했다.

쭈까쭈까, 둥개~둥개, 어~부~바, 꼬노꼬노, 짝~짜~꿍, 죔죔~, 도리도리, 곤지곤지, 방아야~ 방아야~, 소리개 떴다, 독~사~려…… 모두가 우리 귀에 익은 노랫말이다.

어릴 적 우리의 할머니 무릎에 누워, 우리의 어머니 등에 업혀, 혹은 우리의 아버지 한 손 위에 서서 다리를 꼿꼿이 세우며 듣던 친근한 노랫말을 한자리에서 들어보는 시간이 광진구청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TV, 비디오, 게임 등 전자화로 인한 영상물의 확산과 할머니, 할아버지 없는 핵가족화로 인해 우리주변에서 점차 잊혀져가는 자장가나 전래놀이, 노랫말을 되살려 부모와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촉진하기 위해 개최됐다.

생후 2개월에서 15개월까지의 영유아 100명을 대상으로 열리는 이번 행사에서 유아들에게 전래놀이를 들려줄 주인공은 우리 이웃에 사는 평범한 할머니. 머리가 하얗고 손도 거친 할머니로 전래놀이를 통해 아이들과 손주들을 키워온 우리 이웃의 보통 할머니이다.

이날 할머니는 한복을 곱게 입고 나와 매트에 앉아서 쭈까쭈까(2개월 무렵), 어부바(3개월), 꼬노꼬노(4~6개월) 등 시범을 보이고 참가자들은 연령별 전래놀이를 실습하며 아기와 엄마가 눈도 맞추고 “까꿍”놀이도 한다. 지역별로 전해오는 자장가를 배우는 시간을 갖고 엄마의 사랑을 가득히 담은 사랑의 아기마사지교실도 함께 하였다.

행사를 준비 중인 지역보건과 양정옥 팀장은 “전래놀이는 대부분 아이와 눈을 맞추며 진행되어 아이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고 리듬감 있는 노랫말들은 청각발달을 도와준다.”며 “두 손을 폈다 오므렸다 하는 동작을 통해 손힘이 오르고 장 기능을 좋게 하는 등 그 어떤 놀이보다 아이들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장시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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