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옥황상제님과 후천 仙세계
옥황상제(玉皇上帝)란 말은 천상의 수도인 옥경에 계신(玉) 거룩하옵시며(皇) 가장
높으신(上) 하나님(帝)이라는 뜻이다. 증산상제님께서는 천지공사를 보시면서 자신께서
옥황상제임을 여러곳에서 말씀해 주셨다.
*증산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온 천하가 큰 병(大病)이 들었나니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선경(仙境)을 건설하려
하노라. 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 하시니라.(도전 2:12)
*상제님께서 그 곳 용궁으로 들어가시어 “옥황상제가 여기 계신다.” 하고 크게
호령하시니 온 바닷나라 안이 쩌렁쩌렁 울리거늘 이에 기치창검으로 무장한 장수가
갑옷을 입고 뚜벅뚜벅 나오더니 상제님께 절을 하며 예를 갖추니라.(도전 5:49)
*“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 나는 남방 삼이화(三離火)니라. 나는 마상(馬上)에서
득천하(得天下)하느니라.” 하시니라. (도전 6:8)
*증산 상제님께서 여러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옥황상제니라. 내가 三界大權을
주재하여 해원 상생의 도(道)로 병든 하늘과 땅을 바로잡아 억조창생을 건지리라.”
하시니라. (도전 6:21)
상제님께서는 말씀으로써 자신을 따르는 성도들에게 옥황상제라 말씀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실지로 체험을 통해서 인식을 시켜 주시기도 하셨다.
*김형렬이 일찍이 동학을 신봉한 이후로 항상 마음속으로 ‘하느님 뵙기를 원합니다.’
하고 소원하더니 상제님께서 하루는 형렬에게 안경을 주시면서 “이것을 쓰고 나를
따라오라.” 하시니라. 형렬이 따라가니 화려한 삼층 누각이 나타나거늘 자세히 보니
세상에서 이르는 천상의 옥경대(玉京臺)더라.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아래층에 있으라’ 하시고 상층으로 올라가시니 선관선녀(仙官仙女)와
만조백관(滿朝百官)들이 좌우에서 옹위하는지라. 상제님께서 좌정하신 후 백관에게
명하시기를 “위징(魏徵)을 데려오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대령한 위징을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너는 무슨 일로 두 마음을 품고
낮에는 당태종을 섬기고 밤에는 옥황상제를 섬겼느냐?” 하시니 위징이 크게 사죄하는지라.
형렬이 이 광경을 본 후로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선생님이 바로 한울님이시라.”고
하더라.
이 후로 성도들은 공사시에 늘 뇌성벽력과 풍운조화를 뜻하는 대로 쓰시는 것을 보고
하느님이 곧 증산이심을 깨닫게 되니 인간으로 오신 인존천주(人尊天主)님이심이
‘의심 없다’ 생각하니라. (도전 2:28)
*김경학(金京學)이 일찍이 동학에 가입하여 3개월 동안 시천주(侍天主)주문 수련을
하던 중에 어느 날 꿈에 천상에 올라가 상제님을 뵈온 일이 있었는데 하루는 상제님께서
이르시어 “네 평생에 제일 좋은 꿈을 꾼 것을 기억하느냐?”고 하시니
경학이 일찍이 상제님을 뵙던 꿈을 아뢰며 “선생님의 형모가 곧 그 때 뵙던 상제님의
형모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고 아뢰니라. 증산 상제님께서 여러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로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 하시니라(3:112)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당시에 상제님을 모신 성도들은 증산상제님을 분명히 옥황상제님으로
분명히 알고있었음을 확신할 수있다. 상제님께서 어천하신뒤에 상제님을 따르던 성도들은
어찌 할바를 모르다가 '상제님 당신께서 당신이 미륵불이라 말씀하셨고 또 어천하실때
금산사로 들어가리라 하셨으니 우리가 미륵전에 참배하면 감화가 있으리라' 여기고
1909년 8월 1일 금산사 미륵전에 가서 참배할 때 종이에 '옥황상제지위'라고 써서
미륵불상에 붙이고 치성을 올린 것과
상제님 어천후 차경석 성도가 비통함을 이기지 못하여 대흥리 남쪽 비룡산 상봉에
올라가 이레 동안 하늘을 우러러 "옥황상제님, 옥황상제님"하고 부르짖으며
대성통곡한 것 등으로 보아 증산상제님을 옥황상제님으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살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내용은 상제님께서 어천하시던 날 경석에게 명하시어
명정(銘旌)을 "옥황상제"라써서 불사르게 하신 일과 1908년 대흥리에 계실
때 옥황상제라 써서 붉은 주머니에 넣어 고수부님에게 주신 사건이다. 명정이란 사람이
죽은 뒤에 죽은 사람의 관직이나 성명을 쓰는 조기(弔旗)로 터럭만치도 잘못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하나의 사건만 보더라도 증산상제님께서 대우주의 33천을 주재하시는 옥황상제님이셨으며
天神, 地祗, 人鬼 뿐만 아니라 인간세계까지 통치하시는 최고의 주재자이셨음을 알
수 있다.
상제님께서 김형렬성도의 집에서 어천하신 뒤 대흥리에 계시던 고수부님께서는 상제님의
어천 사실을 알지 못하고 계셨다. 왜냐하면 당시의 성도들이 상제님의 어천을 숨기고
청국공사를 보시기 위해 남경(南京)에 가 계시다고 둘러 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 1910년 9월초에 수도를 통하여 상제님의 초빈을 확인한 고수부님께서
구릿골에 있는 상제님의 초빈을 찾아가 천개를 열고 한삼(汗衫)을 가슴에 덮어드린
다음 이전에 상제님께서 주셨던 옥황상제라고 쓴 글을 가슴 위에 덮어드린 역사적인
예식이 집행된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의식으로써 우리가 증산상제님을 미륵불,
삼신상제님, 한울님, 하느님, 천주님, 옥황상제님등의 여러가지 명칭으로 부를 수가
있지만 옥황상제님 또는 상제님으로 통일하여 부르도록 계시하여 주신 내용이다.
옥황상제란 명칭은 다른 어떤 명칭보다도 天, 地, 人 三界의 주재자로써 道格과 位格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상제님의 신원에 가장 부합되는 용어라고 사료되기 때문이다.
옥황상제께서 왜 반드시 인간세상에 강림하셔야만 하는가? 선도(仙道)의 목적은 성명쌍수(性命雙修)하여
육신을 가지고 장생불사하는 신선의 길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선천의 역사에서 수행을
통해 仙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많지가 않다.
상제님께서 지상의 인간을 구원하여 장생불사하는 신선의 太淸세계를 여시기 위하여
(我得長生飛太淸, 도전 4:93) 반드시 인간으로 강림하셔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말세의 개벽 세상을 당하여 앞으로 무극대운(無極大運)이 열리나니 모든 일에
조심하여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여 순결한 마음으로 정심 수도하여 천지공정(天地公庭)에
참여하라.
나는 조화로써 천지운로를 개조(改造)하여 불로장생의 선경(仙境)을 열고 고해에
빠진 중생을 널리 건지려 하노라.” (2:20)
*나의 얼굴을 잘 익혀 두라. 후일에 출세할 때에는 눈이 부시어 보기 어려우리라.
예로부터 신선이란 말은 전설로만 내려왔고 본 사람은 없었으나 오직 너희들은 신선을
보리라. (도전7:40)
증산상제님의 강림으로 인하여 선도(仙道)의 이상이었던 神仙이 되어 不老長生하고
이들이 모여사는 仙境의 세계가 인간 세계에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
*윤창렬: 대전대 한의학과 교수, 증산도 교수신도회 회장.
2...도교에서 말하는 옥황상제와 33천
중국에서 도교 및 민간에서 최고의 신으로 옥황상제 또는 옥황대제를 받들었다. 옥황대제의
완벽한 명칭은 "호천금궐지존옥황대제(昊天金闕至尊玉皇大帝)"이다.
옥황대제는 일, 월, 풍, 우 등의 자연현상과 인간들의 생사, 화복, 수 명, 길흉 등을
지배하는 최고의 신으로 인식되었는데 이 신앙은 수당 (隋唐)시대에 이르러 보편화
되었다.
또 도장경(道藏經)에서 옥제(玉帝-옥황대제의 간칭)는 삼계(三界) , 시방(十方),
사생(四生), 육도(六道)를 총괄적으로 주재한다 고 하였고 [옥황본행집경(玉皇本行集經)]에서는
옥황은 "諸天之主요 萬天之尊으로 우주의 일체를 주재하고 권위가 끝이 없다"고
하였으며,
명청(明淸)시대에 이르러서는 "천상에 玉皇이 있고, 지상에 皇帝가 있다"라는
말까지 유행하게 되었다.
송나라 진종 대중상부 7년(1014)에 玉帝에게 "태상개천집부어력함진 체도옥황대천제(太上開天執符御歷含眞體道玉皇大天帝)"한
존호를 올렸고 송나라 휘종은 다시 "太上開天執符御歷含眞體道昊天玉皇上帝"란
존호를 올렸다. 옥황상제란 호칭이 보편화된 것은 송 휘종 이후의 일이다.
중국에서 는 민간 각지에 수많은 옥황묘, 옥황관 등을 건립하여 옥황상제를 받들었다.
그리고 각 도관(道觀)마다 옥황상제를 모시는 별도의 건물을 건축하였다. 중국에서
천하제일산으로 받드는 태산의 최고봉의 명칭이 옥황정(玉皇頂)인데 이곳에 옥황상제에게
제사를 올리는 옥제관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명칭이 생기게 된 것이다.
특히 중국사람들은 음력 정월 初九일을 옥황대제성탄(天誕, 玉皇誕) 이라 하여 각
도관에서는 성대한 행사를 진행하여 옥황경을 읽고 옥황참이라하여 옥황상제 참회의
배례를 올리고 옥황표(우리의 소지식과 비슷하다)를 올렸으며 비와 바람이 화순하고,
오곡이 풍등하며,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고, 道門은 융성해지기를 기도하였다.
위에서 [옥황본행집경]에서 옥황은 제천지주요 만천지존이라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도교에서 하늘을 多天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도교에서는 동서남북에
각 8天씩 32天이 존재하고 있다고 하며 이는 또 4범32천(四梵三十二天)으로도 설명한다(욕계6천,
색계18천, 무색계4천, 4범천).
이는도교에서 불교의 영향을 받아 근세에 성립한 내용인 듯하나 증산 상제님께도
[백의군왕 백의장상 도수]를 보실 때 사람 수효를 33天數로 채우시어 우주가 33천으로
벌여져 있음을 나타내 주셨다.
도교에서의 33천은 4방의 8천을 합한 32천에다가 太空之上에서 諸天 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대라천(大羅天)을 포함하여 일컫는 명칭이다. 삼십삼천의
명칭도 道經에 따라 그 명칭이 각각 다르다.
3...후천선경 건설의 백의군왕 백의장상 도수
정미(丁未 : 道紀 37, 1907)년 12월에 상제님께서 고부 와룡리(臥龍里) 문공신의
집에 계시어 천지대신문을 열고 와룡리 문공신과 운산리 신경수 두 성도의 집에 왕래하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때 갑자기 천상에서 동서남북으로부터 중앙으로 향하여 천고성(天鼓聲)이 크게
일어나고 잠시 후에 온갖 음악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지니 흡사 인간세상의 천자(天子)가
묘당(廟堂)에 임어할 때 성대하게 음악을 연주하는 것과 같으니라.
상제님께서 밝게 새 옷을 차려 입으시고 단 위에 단정히 앉으시어 백의군왕 백의장상(白衣君王
白衣將相) 봉조공사(奉朝公事)를 집행하시니 의식이 엄연(儼然)하고 질서가 정연(整然)하여
완연히 천자가 묘당에 임어하는 모습과 같이 엄숙하니라.
이 일을 행하시기 한 달 전에 상제님께서 공신의 집에 이르시어 말씀하시기를 “쓸데가
있으니 돈 천 냥을 준비해 놓으라.” 하시매 공신이 돈을 준비하여 방 윗목에 쌓아
두니라. 이 때 김광찬과 박공우는 정읍 차경석의 집으로 보내시고 신원일은 태인
신경원의 집으로 보내시니 이는 공우가 여러 번 관재로 곤욕을 당했음을 아시고 그
화를 면케 하려 하심이요, 광찬과 원일은 그 성품이 너무 과격하여 불참케 하심이더라.
상제님께서 사람 수효를 삼십삼천수(三十三天數)로 채우신 뒤에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만일 순검이나 병정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겁을 내어 도망할 마음이 있는
자는 다 돌아가라.
열 사람이 있다가 한 사람만 도망하여도 아홉 사람은 그 해를 입어 죽게 되리니 그러므로
도망할 마음을 두는 자는 미리 돌아가고, 마음을 지켜 도망하지 않을 자는 굳은 다짐을
해 두라. 일을 하는 자는 화지진(火地晋)도 하느니라.” 하시니라.
성도들이 지금까지 상제님의 조화권능을 익히 알고 있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제각기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무슨 화란이 있으리요. 이것은 필시 우리들을 시험하시는
말씀일 것이라.’ 하면서 모두 답하기를 “삼가 마음을 굳게 지켜 변함이 없겠나이다.”
하고 다짐하니 이날은 음력 12월 25일이더라.
상제님께서 성도들에게 “경칩절(驚蟄節)이 언제냐?” 하고 물으시니 성도들이 “2월
초나흗날입니다.” 하고 아뢰거늘 “경칩절에 일을 알게 되리라.” 하시니라. [道典5:149~150]
4...유교 경전에 나타난 상제
유교는 요순시대 이후부터 중국에 전해오던 정치, 사회적 사상을 계승하여 공자에
의해 집대성 되었다. 유교는 修己治人의 道로써 개인윤리인 仁을 체득하여 예(禮)와
악(樂)이 조화된 질서있는 사회의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있으며 특히 그는 하늘의
존재를 인정하여 천명과 천도를 중시하였는데 이는 그 이전부터 인식하여 왔던 우주의
주재자 상제의 개념을 변형시킨데 불과하다.
증산상제님께서도 '受天地之以詔하여 儒之浴帶'라 하였는데 이는 천지의 작용(以)과
명령(詔)을 본받아 현실위주의 유교가 성립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다음으로 유교의 경전에 나타난 상제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1> 詩經
시경은 상나라시대의 이야기를 노래한 것이다. 당시에는 상제에 대한 믿음과 인식이
보편적이였으며 上帝, 帝, 天 등의 글이 함께 혼용되고 있음을 살펴 볼 수가 있다.
盛于豆하니 于豆于登이로다.
其香始升하니 上帝居歆이로다(大雅, 生民)
-제기에 제물을 담는데 접시며 대접이 있네
그향기 올라가니 상제님이 즐겨드시네.
商之孫子 其麗不億이나
上帝旣命이라 侯于周伏이로다.(大雅, 文王)
-상나라 자손들은 그 수가 헤이릴 수 없이 많지만
상제님이 명을 내리시어 주나라에 복종케 되었네.
維此文王이 小心翼翼하사
昭事上帝하사 聿懷多福하시니라.(大雅, 大明)
-문왕께서 삼가고 조심하여
상제님을 밝게 섬기고 많은 복을 누리시네.
皇矣上帝 臨下有赫하사
監觀 四方하사 救民之莫 하시니라(大雅.皇矣)
-위대하신 상제님께서 위엄있게 땅위에 임하시어
세상을 살펴 보시고 백성들의 아픔을 알아 보시네.
시경에는 이외에도 상제란 명칭이 수없이 보이고 있다. 위의 내용은 특히 周의 건국과
더불어 지어진 시들을 위주로 살펴 본 것이다. 주의 건국이 상제님의 명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상제님께 제사를 올리고 섬겨야함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에서 상제에 대한 인식과 신앙은 하,은,주의 삼대이전부터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살펴 볼 수 있으며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재하시는 일 뿐만 아니라 특히
왕조의 변천은 상제님의 천명에 의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확고 하였다.
2> 書經
서경의 요전(堯典)에 '순이 왕위에 오른뒤 제일 먼저 상제께 제사를 지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서경의 상제와 관련된 내용은 너무도 많기 때문에 몇가지만 추려서
살펴 보기로 하자.
禹曰安汝止하사 惟幾惟康하며 其弼直하면 惟動에 丕應계志하리니 以昭受上帝어든
天其申命用休하시리이다.(益稷)
-우가 이르기를 당신(舜)이 머문 곳을 편안히 여기시어 일의 기미를 잘 살피시며
나라를 편안하게 할 것을 살피시며 돕는 사람이 곧으면 그 동함이 크게 응하여 임금님의
뜻을 기다리니 상제님께서 밝게 받아 들여지거든 하늘이 거듭 명하사 축복할 것입니다.
惟聞汝衆言이나 夏氏有罪어늘 畏上帝라 不敢不正이니라(서경, 湯書)
-나는 여러분의 말을 듣고 있으나 하나라의 임금이 죄가 있거늘 나는 상제를 두려워
하는지라. 감히 바로잡지 아니치 못하노라.
이상에서의 상제는 의지를 가진 인격적 존재로써 최고의 권위를 가진 주재자이다.
모든 백성들을 살피시는 존재요, 덕있는 사람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리게
하는 天命이 나오는 근원처이다.
상제님의 의지적 표현이 천명이다. 모든 인간은 상제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 천명을 따르면 복을 내려주고 따르지 않으면 화를 내려준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天子는 모든 인간들 가운데 맏아들로써 상제님의 뜻을 대행하여
인간을 다스리는 덕이 있는 자이니 서경에서 말하는 天命有德의 의미이다.
3> 禮記
예기에서 언급되는 상제에 관한 내용은 책의 특성상 주로 제사와 관게 되어 있다.
天子將出할새 類于上帝하며 宣乎社라.(王制)
-천자가 장차 순수의 길을 떠나려할 때 상제에게 제사를 지내고 땅에게 제사를 지낸다.
是月也에 天子乃以元日로 祈穀于上帝라.(月今)
-이달에 천자는 원일에 상제께 오곡의 풍양을 빈다.
또 사기의 봉선서에 "周公이 旣相成王에 郊祀后稷以配天하고 宗祀文王於明堂할새
以配上帝라"하였다 이 말은 "주공이 성왕의 정치를 보필한 후에 남교에서
하늘에 제사 지낼 때 후직을 배위하고 문왕을 종묘의 명당에서 제사 지낼 때 상제와
함께 제사를 지냈다"는 뜻이다.
이상의 내용으로 볼 때 유교에서 상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공경이 있었으며 특히
상제에 대한 제사는 천자만이 지낼 수 있는 제사로 면면히 계승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상으로 유교의 경전에 나타난 상제와 관련된 내용을 마치도록 한다.
5...증산상제님은 어떤 분일까요?
* 상제님께서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내가 누구인가를 알기만
하여도 반도통은 되었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3:7:15)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증산도 치성석에서 읽는 심고문(心告文) 첫 구절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하늘 보좌에서 인간으로 오시어
우주 일가(一家)의 후천선경(後天仙境)을 열어주신
개벽장(開闢長) 하느님이시며, 미륵존불이시며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주재하옵신 증산상제님이시여
우리는 인간으로 온 강증산이 누구인지, 이 기도문을 통해 상제님의 신원(Identity)을
알 수 있어요. 자, 우리 함께 상제님의 신원을 더듬어 볼까요?
지난날 동서양의 성자들(공자, 석가, 예수)은 결국 상제님이 강세하실 것과, 상제님이
인간 세계에 오시어 이루실 대개벽 세계 건설의 장정(長程)을 전한 거예요. 그 성자들은
또 자기의 사명과 깨달음의 경계에 따라 각자 자신의 신원을 말했죠.
그런데 석가가 자신을 깨달은 자(붓다)라고 하든, 예수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든, 공자사 50세에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령을 깨달음)을 했든, 자신의 신권(神權)을
벗어난 그 이상의 신원으로 자기를 높여 말할 수는 없는 거예요. 상제님 말씀대로
"저도 모르는 놈이 남을 모아 수하중에 넣는 죄가 제일 큰 죄악(道典2:81:4)"이기
때문이죠.
상제님께서는 "내가 옥황상제이니라"고 자신의 신원을 밝히셨어요. 상제님은
천지간의 신명들과 만 백성 앞에서 자기 신원을 밝히신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 말씀을 진실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명나라 주장춘에 의하면 상제님은 선천 우주를 문 닫고 새 우주를 여는 궁극의 진인(眞人)이랍니다.
지난날 그 어떤 성자도 결코 꿈꿔 보지 못한 새 진리로 새 세상을 열어 주시는 새
인간 말입니다.
심고문을 보면, 상제님은 우주를 한 집안으로 개벽하여 후천선경 낙원을 열어 주시는
개벽장 하느님이죠. 또한 미륵존불이며, 삼계대권을 주재하시는 분이에요. 선천 성자들이
사용한 언어가 다를 뿐이지 그 대상은 우주의 절대자를 지칭한 것이죠.
그러면 상제님 자신은 스스로를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을 하나하나 깨
보도록 합시다.
첫째>, 증산 상제님은 자신을 무극신(無極神)이라고 하셨답니다.
* 無極神 大道德奉天命 奉神敎 大先生前如律令審行(道典 5:278:3)
무극신 대도덕봉천명 봉신교 대선생전여율령심행
이 말씀은 수운 최제우대신사가 무극신인 상제님이 내리신 대도(無極大道)의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받들었다는 말씀이죠.
그럼 먼저 무극이란 뭘까요? 이 우주와 인간과 만물이 태어나는 근원을 태극이라고
합니다. 만물 생성의 뿌리, 어머니를 말이에요. 그래서 거기서 태어나는 우주만유가
음양의 태극성을 때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바로 이 태극의 뿌리자리, 도의 본원(本源)을 무극이라고 한답니다. 상제님은
이 무극신의 자리에서 최수운 대신사에게 도통을 내려 주신 거예요.
하지만 상제님은 단순히 우주 변화의 뿌리자리인 무극의 경계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주의 공간과 시간의 질서 속에서 그것을 주재(主宰)하시는 분이지요.
또한 상제님이 이렇게 자신을 무극신(無極神)이라고 하신 건, 선천의 석가, 예수,
공자를 포함한 모든 성자들과 상제님의 관계를 단박에 깨칠 수 있는 중요한 말씀이에요.
곧 무극신은 우주조화의 궁극적 근원이므로, 상제님은 우주 만물과 신도(神道)와
인간세계와 모든 성자들의 도통의 근원자리에 계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둘째>, 상제님은 자신을 개벽장(開闢長) 하느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냥 하느님이라고 하지, 앞에다가 개벽장이라는 말을 붙였을까요? 이 말씀의
참뜻은 다음의 말씀으로 잘 알 수 있어요.
* 시속에 어런아이에게 개벽쟁이알고 희롱하나니 이는 '개벽장(開闢長)'이 날 것을
이름이라(道典 4:4:2)
* 내가 삼계대권을 맡아서 선천의 도수(度數)를 뜯어고치고 후천을 개벽하여 선경을
건설하리라.(道典 2:55:2)
이 말씀은 상제님이 이 세상에 내려 오신 목적에 대해 밝혀 주신 겁니다. 곧 상제님은
우주 개벽을 감독하고 직접 맡아 집행하기 위해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창초와 개벽으로 우주 만물은 끊임없이 생성 변화하여 나아가지요. 상제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직접 우주 개벽을 맡아서 동서양 모든 성자들의 진리의 한계와 그 벽을
부수고 신천지를 열어, 인간이 꿈꿔 보지 못한 새 세계, 즉 후천 오만년 선경세계를
열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즉 상제님은 이제까지 동서양에서 불러온 그런 상투적인
생명의 하느님이 아니라. 새 우주를 개벽하는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셋째>, 상제님은 스스로 불가(佛家)에서 삼천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석가모니와
깨달은 또 다른 부처들, 조사들, 그리고 민중들이 강세하시기를 간절히 염원해온
미륵부처님이라고 하셨어요.
이것은 상제님이 이 동방 땅에 미륵불 신앙의 새 장을 연 진표율사에게 성령으로
오시어 칭찬해 주시고(道典 1:6), 하늘 보좌에서 금산사 미륵불에 오시어 30년 동안
임어해 계시면서 최수운 대신사에게 천명 내리신(道典 2:27) 말씀에 잘 나타나 있죠.
* "내가 미륵이니라 금산사 미륵은 여의주를 손에 들었거니와 나는 입에 물었노라(道典
10:17:1)
하지만 이 땅의 불교 지도자나 수행자들이 증산 상제님을 미륵불로 쉽게 인정하려
들지를 않아요. 그들은 129년 전 이 땅에 미륵불로 강세하여 천지 운세를 돌려놓은
상제님 개벽공사를 전혀 모르고 있어요. 그러고는 이미 미륵불에 대해 낡은 문서가
돼 버린 불경만을 맹신하고 있지요.
넷째>, 증산 상제님은 자신을 삼계대권의 주재자라고 하셨어요.
*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해원 상생의 도(道)로 하늘과 땅을 바로잡아 억조창생을
건지리라(道典 6:21:2)
여기서 우리는 삼계대권(三界大權)과 주재자란 말을 깊이 있게 깨쳐야 합니다. 그냥
문자적 의미를 이해하는 정도로는 상제님을 깊이 체험할 수 없어요.
삼계대권은 대우주적인 절대 권능의 세계지요. 하늘 땅의 모든 변화와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다스리는 권능 말이에요. [계시록]에서 요한은 이렇게 전하고 있어요.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1:8)"
그리고 주재자란 말 역시, 우리에게 이 대우주의 주신(主神)인 경영자가 계심을 새롭게
인식케 해 주는 아주 중요한 말이죠. 제2의 공자라고 하는 주자는 주재자에 대해
한소식을 들은 인물이에요. 그의 말을 들어보면, 주재의 자리는 이론적 지식이나
학문의 경계에 머물러 있는 자는 죽을 때까지 파고 들어도 결코 알 수 없는 자리라고
합니다. 이는 성경신(誠敬信)이 지극히 사무치는 경계에서만 깨질 수 있는 자리라는
거예요.(도전1:5)
아무튼 이 '삼계대권의 주재자'는 단순히 서양 기독교문화에서 인식해 온 예수가
절규한 아버지 신과는 개념이 달라요. 역사의식과 우주 변화 질서에 대한 깨달음을
가져야 이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어요
주재자란, 우주 질서에 따라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우주의 창조와 개벽을 주재하여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을 말하는 것이니까요. 이것을 잊지 마세요.
다섯째>, 상제님은 서신사명(西神司命)으로 하늘 보좌에서 내려오셨다고 하셨어요.
* 나는 서신(西神)이니라.(道典 6:32:1)
서신이 무슨 뜻이냐구요?
이는 가을개벽때에 오시는 하늘의 주신인 상제님의 강세 의의를 함축하고 있는 말이죠.
곧 가을개벽 때에 땅의 인간과 하늘의 신명들의 생사(生死)를 심판하는 주관자로서
선천 문화의 정수를 거두어 가을열매의 후천선경을 여시는 주신(主神)이라는 뜻이에요.
가을 우주를 열기 위해 인간 역사 속에 내려오신 분! 서신! 그러니까 상제님은 무극신이면서
우주 시간 질서의 주신으로서는 서신으로 존재하시는 것이지요.
기독교의 [계시록]에서는 이 때 오시는 하늘의 아버지를 '백보좌 하느님'이라고 하죠.
서신은 다른 말로 금신(金神)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가을 기운이 오행으로 볼 때
금(金)이기 때문이에요. 또한 오행에서의 금(金)은 색깔로 보면 흰색에 해당하는
것 아닙니까? 이로써 볼 때 상제님은 가을 기운을 열기 위해 우주의 전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여섯째>, 상제님은 우주만유의 생명의 아버지로 오셨답니다. 군사부(君師父)일체
문화의 표상으로서 새 세계를 열어 주려고 말이에요.
요즘 흔히 말하는 새 천년의 문명이 어떤 것인지, 인류가 맞이하게 되는 개벽문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아세요? 이것은 상제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사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요. 인류의 새 문화는 바로 군사부(君師父)일체 문화에요.
태모님께서 상제님으로부터 도통을 받고 처음 이 땅에 도장 문화를 여신 해(신해년,
1911년)부터 태모님은 늘 상제님을 "너희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어요.
태모님의 말씀을 들어 보세요.
* "너희들의 아버지가 이 세상에 오시어 인간사업 하고 가셨느니라.(道典 11:43:5)"
* "내가 너희 아버지한테 빨리 가야 너희들이 잘 될 것이라.(道典 11:241:3)"
* "너희들의 아버지는 문장을 쓸 때 문장신(文章神)을 불러 쓰시고 영웅을 쓸
때 영웅신(英雄神)을 불러 쓰시어...(道典 11:167:6)
상제님은 바로 예수가 말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랍니다.
또한 요한이 뱃모스섬에서 귀양살이할 때, 다가오는 후천개벽 세계를 보고 기록한
[계시록]의 메시지에 나오는 것처럼 천상의 장엄한 흰 보좌에 앉으신 이에요.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Behold I renew all things)"라는 말씀을 보세요.
상제님은 이 우주 자체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고 인간의 영성과 가치관을 크게 깨어나게
하시는 인간과 신들의 큰 스승이란 말입니다.
또한 상제님은 '상제(上帝)'라는 용어가 말해주고 있듯이, 이 우주간의 만 백성을
통치하는 지존무상의 임금이에요. [화엄경]에 나오는 것처럼 모든 생명의 아픔을
씻어 주시는 대의왕(大醫王) 말이에요.
상제님은 통치자이자 위대한 스승, 사생(四生, 모든 생명)의 자부(慈父-자비로운
아버지)에요. 불가에서는 석가모니를 사생의 자부라고 하는데, 미륵불은 가을 대개벽기에
하늘 땅의 뭇 생명을 건져 주시는 생명의 자부(慈父)에요.
상제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 대해 상제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 "세상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만 알려 해도 반도통은 열려야 하느니라.(道典
6:17:11)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공부한 전공 분야 수준에서 상제님의 개벽세계나 신권(神權)세계,
상제님의 도통의 경지, 상제님의 대우주 개벽 공사를 제대로 이해한다는건 무리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수행을 통해 어느 정도 체험을 하지 않고 증산 상제님 도의 세계를
철저히 안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란 말입니다.
요컨대 우리는 언제나 선천 인류의 종교에서의 가르침과 문화의 결론으로서 증산
상제님이 그 중심에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상제님은 예수가 말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our father in Heaven)이며, 석가가 말한
미륵존불(석가 자신은 오직 먼저 눈 뜬 자(붓다)일 뿐이요, 부처의 모든 이상과 천지의
용화낙원 건설은 도솔천의 하늘에서 내려온 미륵불이 건설한다고 했죠)이고, 주자가
노래한 우주의 큰 주인 되시는 옥황대제(玉皇大帝)임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5...삼신상제님과 증산상제님과의 관계
삼신상제(三神上帝)와 증산상제(甑山上帝)님의 관계를 알려면 먼저 삼신상제(三神上帝)란
말의 뜻부터 알아야 합니다.
삼신상제(三神上帝)님!
이 말은 삼신(三神)과 상제(上帝)님이 복합어죠.
그러면 삼신(三神)이란 무엇일까요?
삼신이란 우리 한민족이 이 우주를 인식한 아주 멋진 체험적 언어죠. 삼신과 상제님의
관계, 이것은 다른 말로 우주와 상제님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삼신은 한민족 우주관의 상징어죠.
이 삼신관을 깨면 한민족의 뿌리문화(神敎)의 원형(archetype)을 확연히 깰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 민족은 이 우주를 어떻게 보았을까요?
우리 민족은 우주의 원래 모습을 신(神)이라고 했죠. 이를 원신(元神, primordial
spirit), 곧 우주의 근원 바탕이 되는 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원신(元神)이 현상 우주에서 작용할때는 세가지 변화 원리로 열려 나타나는데,
그 속성이 조금 전에 말한 군도(君道), 사도(師道), 부도(父道)의 삼도(三道)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인류의 태고 시대에는 *"성웅이 겸비하여 정치와 교화를 통제관장(統制管掌)하였다.(道典
4:32:1)"고 말씀하셨습니다.
군사부 일체 문화가 인류의 시원 문화임을 밝혀 주신 것이죠.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한다(History begins at sumer)]는 명저를 남긴 크메르 박사의 고고학적 증언을
살펴보면, 군사부 일체 문화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이 있습니다.
유럽, 중동 문화의 뿌리가 된 5,500여년 전의 수메르 문명에서는 오늘의 초등학교
선생님을 school father(학교 아버지)라 부르고, 학생들은 school son(학교 아들)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선생님과 학생을 부자(父子) 관계로 본 것이죠.
이런 사례 하나만으로도, 동양뿐 아니라 서양의 시원 문화 속에도 삼신 문화가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학자들에 의해 더 연구되겠지만 군사부
일체의 삼신 문화는 인류의 모태 문화이며 보편 문화임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유가(儒家)에서 이 삼신을 군사부의 문화로 쉽고 명쾌하게 정의한 분이 고려 공민왕
때의 행촌 이암 선생이죠. 최근에 그 분을 기리는 행촌 문화원이 개설됐습니다. 당태종에게
위징이 있듯 공민왕에게는 자신의 거울이라고 했던 행촌 선생이 있었어요. 그는 노년의
좌의정을 그만두고 강화도의 동굴에 들어가 우리 시원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생애를
바쳤죠.
그는 <삼신의 세가지 속성>을 만물을 짓고(造), 진리를 깨주고(敎), 우주의
이법으로 만물을 다스리는(治), 조화(造化), 교화(敎化), 치화(治化)의 삼덕(三德)이
있다고 삼신의 지극한 덕을 정의했습니다.
삼신(三神)은 우주의 신성(神性)을 현상적 삼도(三道) 원리로 표현한 말이에요. 세
분의 신이 따로 있다는 게 결코 아닙니다. 석 삼 자는 우주 신성의 중심 즉, 삼신의
본성에서 이 우주를 통치하는 인격신 하느님, 삼덕의 작용으로 우주를 다스리는 하나의
님을 말하죠. 그래서 삼신일체(三神一體)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주인(天主)을 중심으로 말하면, 우주 살림살이의 주신이 삼신상제(三神上帝)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삼신 상제님이 인간으로 강세하여 역사 속에 한 인간으로 사셨기 때문에,
인간세계의 존호(尊號)를 따서 삼신 상제의 삼신을 떼고 증산(甑山)을 붙여 증산
상제님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따라서 삼신상제님은 곧 증산상제님(三神상제 = 甑山상제)입니다
6...중통인의(中通人義)의 무상의 도통문을 여심
경자(1900)년 가을에 고향에 돌아오신 증산 상제님은 이듬해 31세 되시던 신축년에
“종전의 알며 행한 모든 법술(法術)로는 세상을 건질 수 없다”고 단안 내리시고,
모악산 아래 대원사의 유적(幽寂)한 칠성각(七星閣)에 홀로 계시며
무극대도의 도통문을 여셨다.
증산께서 여러 해 동안 각지를 유력하시며 많은 경험을 얻으신 후에
신축(辛丑 : 道紀 31, 1901)년에 이르러
‘이제 천하의 대세가 종전의 알며 행한 모든 법술로는 세상을 건질 수 없다.’고
생각하시고
비로소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할 조화권능이 아니고서는
광구천하의 뜻을 이루지 못할 줄을 깨달으시고 수도(修道)에 더욱 정진하시니라.
신축년 6월 초에 시루산에서 14일 동안 수도하시니 정씨 부인이 수종드니라.
정씨 부인이 하루에 세 번씩 진지를 올리는데, 매일 세 번씩 목욕하고
그 때마다 옷을 갈아입고 시봉하거늘 이 때 가세가 심히 어려워 옷이 한 벌뿐인지라.
단벌 의복을 하루에 세 번씩 빨아 입자니 홑치마를 입고 옷을 말려 입는데
비 오는 날은 화로에 말려 입고 시봉하니라.
하루는 진지를 챙겨 공부막(工夫幕)으로 출발할 무렵에
뇌성이 치고 큰비가 내려 촌보를 옮겨 디딜 수 없는지라.
주저하다가 시간을 어기지 않으려고 처마 끝에 나서는데,
눈을 꽉 감고 발을 내디디며 눈을 뜨니 문득 공부하시는 자리에 당도하여 있더라.
증산께서 “고생한다.”고 위로하시거늘
진지를 올리면서 보니 그릇이 조금도 비에 젖지 않고 청명한 때와 같으니라.
다 드신 후에 “즉시 돌아가라.” 하시매 역시 문밖에 나오니
어느덧 댁에 이르러 있더라.
이 때 정씨 부인의 시봉으로 공부를 마치시고, 그날로 대원사(大院寺)에 가시니라.
(도전 2:1)
하루는 밤에 증산께서 모악산 비장골의 냇가 바위에 앉아서 쉬시니
16세 된 금산사 중 오금해(吳錦海)가 옆에서 시중을 드니라.
증산께서 금해에게 “물 한 그릇 떠 오라.” 하시므로
금해가 명을 받고 물을 뜨러 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바위 위에 앉아 계시던 증산께서 태양과 같이 찬연한 불덩이로 빛나고 있는지라.
그 광명이 얼마나 밝던지 기어가는 개미까지도 보일 정도더라.
금해가 하도 눈이 부시어 감히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니라. (도전 2:7)
증산께서 대원사에 가신 6월 16일부터 스무하루 만인 신축년 음력 7월 7일에
천둥과 지진이 크게 일어나고 상서로운 큰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탐음진치(貪淫瞋癡)를
비롯한
모든 마(魔)를 굴복시키시고 무상의 대도로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을 여시니라.
이로부터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주재(主宰)하시고
우주의 조화권능을 뜻대로 행하시니라. (도전 2:10)
이로부터 천지의 주재자인 하느님의 자리에서
깊은 병독에 빠진 인간과 우주를 새롭게 건지기 위해 우주의 통치자로서
“삼계대권(三界大權)”을 발동하여 새 천지를 개벽하는 구원의 대공사를 처음으로
집행하셨다.
신축(辛丑)년 겨울 객망리 본댁에서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을 열고 천지공사를 행하시니라.
방에 불을 때지 않으시고 방문을 활짝 열어 놓으신 채
홑옷을 입고 식음을 폐하시며 아무 말씀 없이 단정히 앉아 계시니라.
이렇게 아흐레 동안 밤낮을 지새시며 신명들에게 칙령(勅令)을 내리시니라.
이 때에 바람은 고요히 나부끼고 흰 눈이 내리며 집으로부터 하늘로 서기(瑞氣)가
뻗쳐 있고
하늘에서는 천군만마(千軍萬馬)의 함성과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니라.
새들도 뜰에 내려앉지 않고 짐승들도 가까이 오지 않으며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은 두려움을 금치 못하니라. (도전 4:2)
이제 온 천하가 큰 병(大病)이 들었나니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선경(仙境)을 건설하려 하노라. 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運)이라.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하늘과 땅에 전란(戰亂)이 그칠 새 없었나니
그러므로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우므로 이제 이 상극의 운을 끝맺으려 하매
큰 화액(禍厄)이 함께 일어나서 인간세상이 멸망당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천지신명이 이를 근심하고 불쌍히 여겨 구원해 주고자 하였으되
아무 방책이 없으므로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호소하여 오므로
내가 이를 차마 물리치지 못하고 이 세상에 내려오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내가 큰 화를 작은 화로써 막아 다스리고 조화선경을 열려 하노라.
(도전 2:12)
이제 혼란키 짝이 없는 말대(末代)의 천지를 뜯어고쳐
새 세상을 열고 비겁(否劫)에 빠진 인간과 신명(神明)을 널리 건져 각기 안정을 누리게
하리니
이것이 곧 천지개벽(天地開闢)이라.
옛 일을 이음도 아니요, 세운(世運)에 매여 있는 일도 아니요,
오직 내가 처음 짓는 일이니라. (도전 2:24)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 신통한 재주만 있으면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거니와
이제는 판이 워낙 크고 복잡한 시대를 당하여
신통변화와 천지조화가 아니고서는 능히 난국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人尊時代)니라.
예로부터 상통천문(上通天文)과 하찰지리(下察地理)는 있었으나
중통인의(中通人義)는 없었나니 내가 비로소 인의(人義)를 통하였노라.
위징(魏徵)은 밤이면 상제를 섬기고, 낮이면 당태종을 도왔다 하나
나는 사람의 마음을 빼었다 찔렀다 하노라.(도전 2:13)
이 중통인의(中通人義)의 도통경지는
아직 미성숙되어 있는 천지와 인간과 인간으로 다녀간 천상의 신명들까지
개벽시켜 성숙케 할 수 있는 우주 가을철의 성숙한 도통, 즉 열매기 도통이다.
“나는 모든 일을 뜻대로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과 같이
선천의 분열 성장기에 단지 천지의 조화자리를 깨닫고 인생과 죄, 수행과 영생에
대한
인간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선천 종교와는 달리,
우주 삼계문명을 동시에 개벽하여 통일하는
가을(후천)의 무극대도 시대를 여는 전무후무한 새 진리이다.
예수께서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일을 하실 것이라”고 한 말씀처럼
더욱 스케일이 큰 구원의 길을 열기 위해 삼계대권의 권능을 필요로 하신 것이다.
7...우주 대권을 집행하심
신축(1901.7.5)년 이후
9년 동안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집행하며 행하신 기적을
체험하며 목격한 사람은 60여 명의 성도들과 가족, 일가 친척과 민중을 합쳐 수수
천명을 헤아린다.
“나는 죽고 살기를 뜻대로 하노라”는 말씀에서 보여주신 바와 같이 당시에 행하신
기적 내용은
① 죽은자를 자유자재로 명부로부터 끌러냄
상제님께서 구릿골에 계실 때
순일의 이웃에서 술장사하는 김사명의 아들 성옥이 어느 날 급증에 걸려서 죽거늘
한나절이 넘도록 살리려고 백방으로 주선하여도 회생할 여망이 없는지라.
할 수 없이 그 모친이 숨이 끊어진 아이를 안고 구릿골 약방에 다다르니
방문 앞에 당도할 때에 상제님께서 미리 아시고 문득 말씀하시기를
“약방이 안 되려니 송장을 안고 오는 자가 있도다.” 하시더라.
성옥의 모친이 성옥을 상제님 앞에 눕혀 놓고 애처로이 울면서 살려 주시기를 애걸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는 다시 살릴 수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이에 아이의 어머니가 더욱 슬피 울부짖으며
“죽은 이 아이는 외아들입니다. 아이가 살아날 수 없으면 저도 이 아이를 따라
죽어 버리렵니다. 가련한 이 모자의 형편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하고 애원하니
그 여인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하늘에 닿는 듯하더라.
상제님께서 차마 보지 못하시고 죽은 아이를 무릎 위에 올려 눕히시고 배를 만져
내리시며
허공을 향하여 큰 소리로 “미수 시켜 우암을 부르라.” 외치신 뒤에
침을 흘려서 죽은 아이의 입에 넣으시니 죽은 아이가 문득 항문으로 추깃물을 쏟으며
큰 소리를 치고 홀연히 살아나거늘 미음을 쑤어 먹이시고 걸어서 돌아가게 하시니라.
이에 아이의 어머니가 너무나 기쁨에 넘쳐 미친 듯 술취한 듯이 말하기를
“하느님이시여! 하느님이시여! 죽은 자식을 살려 주시니
이 큰 은혜 호천망극(昊天罔極)하옵니다.” 하고 감읍(感泣)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은 아이가 다행히 살아났으니 잘 가르쳐서 어진 사람을 만들라.” 하시니라.
(도전 2:90)
② 천체 운행을 뜻대로 조정하심
구릿골 약방에 계실 때, 하루는 아침 일찍이 해가 앞 제비산 봉우리에 반쯤 떠오르거늘
상제님께서 여러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러한 난국에 처하여 정세(靖世)의 뜻을 품은 자는 능히 가는 해를 멈추게 할
만한 권능을 가지지 못하면 불가할지니 내 이제 시험하여 보리라.” 하시고
축인 담배 세 대를 갈아 피우시니 해가 산꼭대기를 솟아오르지 못하다가
상제님께서 담뱃대를 떼어 땅에 터시니
눈 깜짝할 사이에 수장(數丈)을 솟아오르니라. (도전 2:94)
어느 날 아침에 대흥리를 떠나 태인 새올 최창조(崔昌祚)의 집으로 가실 때
공우는 해가 뜨면 길이 질어질 듯하여 진신발을 준비하였더니 상제님께서 보시고
“진신발을 하였느냐?” 하시며
손으로 동쪽 고개에 떠오르는 해를 향하여 세 번 누르시니 해가 더 이상 떠오르지
못하다가
살포정 주막에 들어 쉬시니 그제서야 해가 갑자기 높이 솟아오르더라.
공우가 여쭈기를 “이 곳에서 대흥리까지는 이삼십 리 길인데 오시는 동안에 아침해가
조금도 움직이지 아니하니 어찌 된 까닭입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해와 달의 운행이라도 내가 명만 내리면 운행을 멈추느니라.” 하시니라.(도전
3:183)
③ 천지 조화로 불가능한 일도 자유로 지으심
을사(乙巳 : 道紀 35, 1905)년 12월에 하루는
함열에서 구릿골로 가실 때 길이 매우 질어서 걸음 옮기기가 어려운지라.
상제님께서 “치도령을 놓아야겠다.” 하시고
勅令治道神將(칙령치도신장)하노니 御在咸羅山下(어재함라산하)하여
移於于全州銅谷(이어우전주동곡)이니라.
<치도신장에게 칙령을 내리노라. 내가 지금 함라산 아래에서 전주 동곡으로 가려
하노라.>
하고 써서 불사르시니 즉시 찬바람이 일어나고 날씨가 차지며 진 길이 곧 얼어붙어서
굳어지거늘 이에 마른 신발로 떠나시니라. (도전 2:61)
형렬의 큰며느리가 오랫동안 상제님을 모시면서 보니
상제님께서는 새벽에 아무리 풀밭을 갔다 오셔도 이슬 한 방울 묻지 않으시고
소나기가 내릴 때에 밖에 계셔도 비에 젖지 않으시더라. (도전 3:172)
④ 사람의 성품도 생명의 말씀을 내려 뜯어고침
대흥리에 계실 때 공우에게 물으시기를
“네가 남과 싸움을 많이 하였느냐?” 하시니 “그러합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다시 이르시기를
“표단(豹丹)이 들어서 싸움을 즐기는 것이니 이제 표단을 빼내고 인단(人丹)을 넣으리라.”
하시더니 이 뒤로는 공우의 성질이 온순하게 되어 싸움을 즐기지 않게 되고,
혹 싸우려는 사람이 있으면 두려운 마음이 생겨 곧 멀리 피하니라. (도전 3:169)
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심
하루는 부안 사람이 상제님께 감주를 올리니 물리치시며
“이것은 곧 구천하감주(九天下甘酒)거늘 네가 어찌 도적음식을 들이느냐?” 하시거늘
성도들이 그 사람에게 연고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아내가 듣지 않으므로 부득이 몰래 가져왔다.” 하더라. (도전 3:164)
⑥ 천지 자연을 꾸짖으심
하루는 신원일, 박공우 외 서너 사람을 데리고 태인 살포정에 이르시어 주막에 들어
쉬시던 중
갑자기 우레가 일어나고 번개가 크게 치며 집에 내리려 하매
방안에 있는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허둥지둥하고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도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모르니라.
상제님께서 공중을 향하여 큰 소리로 꾸짖으시기를
“이놈아, 즉시 어지러운 번개를 거두어라!” 하시니 번개가 바로 그치거늘
공우는 상제님께서 대흥리에서는 글을 써서 벽에 붙여 우레를 크게 일으키시더니
또 이번에는 우레와 번개를 꾸짖어 그치게 하심을 보고
비로소 상제님께서 천지조화를 마음대로 쓰시는 분인 줄 알고
이로부터 더욱 경외하니라. (도전 3:137)
하루는 정읍 수통점에서 유숙하실 때 공우가 모셨는데 이도삼(李道三)이 찾아와
“이웃 버들리에서 20세쯤 된 여자가 호랑이 밥이 되어 인근이 놀라고 있습니다.”
하고 아뢰니라. 상제님께서 마침 대청에 누워 계시다가 급히 일어나시어 공우에게
“하늘에 충성(蟲星)이 보이는가 보라.” 하시니
공우가 나가서 살펴보고 나타나 있음을 아뢰니 상제님께서 목침으로 마루를 치시며
“충성아, 어찌 사람을 해하느냐!” 하시니라.
이튿날 그 여자가 살아 돌아왔는데
의복은 찢겨졌으나 몸은 크게 다친 곳이 없더라. (도전 3:144)
⑦ 천지 신명을 수시로 부리심
하루는 한 성도가 여쭈기를
“올해는 여름 농사를 망치고 가을 농사마저 천재로 거둘 것이 없게 되어
가련한 창생들이 그저 빈 솥단지만 끌어안게 될 것 같습니다.
부디 이를 불쌍히 여기시어 하느님의 큰 은덕을 내려 주옵소서.” 하니라. 상제님께서
“네 말이 옳도다. 내가 이 땅에 있는데 어찌 이러한 민생의 고통을 차마 볼 수 있으리요.”
하시고 바로 우사(雨師)에게 명하시니 갑자기 검은 구름이 사방에서 일어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비를 내리라!” 명하시니 곧 비가 내리거늘
“이놈아, 이따위 새 눈물 같은 비로 먼지나 적시겠느냐. 큰 비를 내리라!” 하고
큰 소리로 꾸짖으시니 곧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지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뇌신(雷神)을 부르시어 “번개를 쳐라!” 명하시니
곧 번개와 천둥이 일어나거늘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꾸짖어 말씀하시되
“이놈아, 귀 어두운 놈은 듣지도 못하겠다. 크게 쳐라!” 하시니
사방에서 천둥소리가 크게 진동하니라.
이렇게 한동안 뇌성벽력이 일어나며 비가 크게 내리다가
상제님께서 “이제 그만 그치라.” 명하시니
비와 천둥 번개가 일시에 그치니라. (도전 5:33)
정미(丁未 : 道紀 37, 1907)년 6월 중복날 상제님께서
대흥리 부근의 접지리(接芝里) 주점에 가시어 경석을 비롯한 여러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오늘 번개가 일어나지 않으면 충재가 생겨서 농작물이 큰 해를 입으리니 잘 살피라.”
하시거늘 모두 주의하여 날이 저물도록 살피되 번개가 나지 아니하는지라.
상제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꾸짖으시기를
“천지가 어찌 생민의 재앙을 이렇듯 돌아보지 아니하느냐! 내가 이제 민록(民祿)을
내리리라.” 하시고 마른 짚 한 단을 무명지 길이로 끊어서 화로에 꽂아 불사르시니
별안간 북방에서 번개가 일어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북방 사람만 살고 다른 지방 사람은 다 죽어야 옳겠느냐!” 하시며
다시 하늘을 향하여 꾸짖으시니 사방에서 번개가 번쩍이더라.
한 식경(食頃)쯤 지나 상제님께서 “그치라!” 명하시니 사방의 번개가 곧 그치니라.
이에 말씀하시기를 “이제 충해는 없이하였으니 금년 농사는 풍년이 들어
만백성이 즐겁게 살리라.” 하시니라. (도전 4:63)
그리고 다음 말씀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인간 성숙의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
너희들도 잘 수련하면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리라. (도전 3:207)
오늘 지구촌의 종교의 실상은 어떠한가?
기성의 모든 종교의 도맥은 이미 오래 전에 단절되어 있는 상황이다.
무지한 종교지도자들의 세뇌에 의해
보통 인간은 석가 부처나 예수 이상은 결코 될 수 없는 줄로 아는 환상의 우상에
모두 신들려 있다.
때문에 교조들은 절대적으로 신격화되어 받들어지고 있고
일부 순진한 신자들은 고개도 못 드는 지경에 와 있다.
8...성도들이 성령으로 체험한 상제님
당시 9년(1901.7 ~ 1909.6) 동안
수종 든 60여명의 성도들은 20대로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수제자격으로 상제님을 가장 오랫동안(8년) 모시고 수종들었으며
강증산이 미륵불로 강세하셨음을 너무도 깊이 체험한 김형렬(金亨烈, 1932년 10월
별세)성도,
당대 조선 최대의 부호 전주의 백남신(白南信)성도,
천상신명계의 대학교(후천세계통일문명의 학문의 총본산) 총장으로 임명하신 김경학(金京學)성도,
철저히 배신할 줄 아시면서도 크게 쓰신
정읍 대흥리의 차경석 성도(일제 때 700만 신도를 거느린 보천교의 교주),
그리고 성도들 가운데 최고의 의객(義客)으로 상제님이 가장 아끼셨으며
후천개벽을 집행하는 천상 신명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신 박공우(1940년 별세) 성도
등이 있다.
여기서는
당시 성도들이 자신들이 모신 스승을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상제님을 모신 성도들은
천상에 올라가서 계시를 받고, 영적 체험을 하고, 또는 수도 생활을 통하여,
자신들이 모시고 있는 분이 우주의 대권자로서 천지의 주재자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선천종교의 어느 제자들이 그들 스승에 대해 영적 체험을 한 것보다도 더욱 생생하게
체험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명심할 점은 과거 어떤 성자들도
자신을 지칭할 때는 천상신명세계의 위계질서 이상의 칭호를 절대로 못 쓴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예수는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하고,
석가는 말법시대에 마침내 인간이 이를 수 있는 최상의 도법(道法)을 열어주는
미륵 천주의 강세사건을 말씀하신 것이다.
① 상제님으로 계시해 주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김형렬에게
“형렬아, 평소에 너의 지극한 소원이 천상에 올라가서 천조(天朝)를 보고자 하는
것이니
오늘은 이를 허락하리라.” 하시고 “내 뒤를 따르라.” 하고 말씀하시자
홀연히 천문(天門)이 널따랗게 열리며,
날개가 돋쳐 하늘을 나는 신선이 된 듯이 훨훨 날아 상제님을 모시고 따르니라.
천상에 다다르니 문무백관이 상제님의 영(令)을 받들기 위해 모여서 기다리고 있는데
하나같이 환한 관복으로 성장(盛裝)하였고 ........
어느 대전(大殿)에 이르니 큰 황금글씨로 요운전(曜雲殿)이라 쓴 액자가 걸려 있고
대전 안에는 용상이 있는데 또한 황금과 백옥으로 용이며 봉황이며 거북과 기린,
그리고 온갖 아름다운 짐승들을 새겼거늘 휘황찬란하여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더라.
상제님께서 용상에 앉으시니 만관이 모두 절을 드리니라.
잠시 후에 한 선관(仙官)이 들어와서 상제님 곁의 책상 앞에 앉는데,
백금 조각으로 비늘을 한 관을 쓰고 백금 조각으로 비늘을 한 옷을 입었으며
그 관과 옷이 햇빛에 반사되어 온갖 형태로 황홀하게 보이니라.
섬섬옥수(纖纖玉手)는 분가루보다 더 희고,
*그윽하고 서기 어린 얼굴은 흰 눈보다 더 맑으며, 붓놀림 또한 놀라우니라.
이 때에 죄수 한 명이 대전 아래에 불려왔는데 죄수가 고통을 절규하며
상제님께 살려 달라고 호소하나 신장(神將)이 여러 차례 죄를 묻는데 지극히 엄하더라.
조회가 끝나자 상제님께서 형렬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시기를
“네가 여기까지 왔으니 네 부친과 조부를 만나 보지 않겠느냐?” 하시므로
형렬이 “자손 된 도리로 진실로 그 이상의 소원이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니
잠시 후에 몇 계단 아래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문 하나가 저절로 열리며
형렬의 부친과 조부가 청수를 올리고 향을 사른 후에 정성스럽게 주문을 읽거늘
줄곧 얼굴에 매우 기쁜 빛을 띠고 있을 뿐이요 형렬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
형렬이 세상에 내려와서 기쁨을 말로 다할 수 없더니 하루는 상제님께
“천상에서 상제님 앞에 앉아서 흰옷을 입고 글씨 쓰던 선관은 누구입니까?” 하고
여쭈니
“석가불이니라.” 하시니라. 또 여쭈기를
“천상에서 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아무말이 없었는데 무슨 연고입니까?”하니
말씀하시기를“내가 가까이에 있으니 삼간 것이며 혹시 말을 했다가
망령되이 천기를 누설하면 죄가 되기 때문이니라.” 하시니라. 형렬이 다시
“대전(大殿)에 끌려와 있던 죄수는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그와 같이 엄하게 다스리는
것입니까?”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죄인은 안록산(安祿山)이니라.”
하거늘 형렬이 여쭈기를 “안록산이 배은망덕한 죄를 지은 것이 이미 천여 년 전의
일인데
지금까지도 미결수로 남아 있다는 말씀이옵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나라를 그르친 큰 죄인은 그 죄가 워낙 크기 때문에 백 년에 한 번씩도 신문(訊問)하게
되느니라.” 하시고 또 “천상의 칠성당(七星堂) 앞에 남새밭이 있으니
내 마음이 소박하고 담백함을 좋아함이 이와 같노라.” 하시니라. (도전 4:25,26)
김경학(金京學)이 일찍이 동학에 가입하여 3개월 동안 시천주(侍天主)주문 수련을
하던 중에
어느 날 꿈에 천상에 올라가 상제님을 뵈온 일이 있었는데
하루는 상제님께서 이르시어 “네 평생에 제일 좋은 꿈을 꾼 것을 기억하느냐?”고
하시니
경학이 일찍이 상제님을 뵙던 꿈을 아뢰며
“선생님의 형모가 곧 그 때 뵙던 상제님의 형모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고
아뢰니라.
증산 상제님께서 여러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로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 하시니라.(도전 3:122)
② 하느님으로 말씀하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오랫동안 식고(食告)를 잘하였으나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식고는 내게로 돌릴지어다.” 하시니 공우가 매우 기뻐하며 평생 소원을 이루었음을
깨닫고
“곧 그리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니라.
원래 공우는 동학 신도의 통례와 같이 ‘대신사응감(大神師應感)’이라는 식고를
하지 않고,
항상 “하느님 뵈여지이다.”라는 발원으로 식고를 하였는데
이제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듣건대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통찰하시고
또 천지조화를 마음대로 쓰시는 것을 볼진대
‘분명히 하느님께서 강림하셨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니라. (도전 3:137)
③ 천주(天主)님으로 말씀하심
동학에서 개벽소식과 더불어 전한 천주(天主)님이 곧
서구 기독교가 이제까지 2천년 동안 외쳐온 주 하느님과 동일한 분임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셨다.
성도 차경석과 박공우 두 분을 만나신 후(1907년)에 하신 말씀이다.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情神)이 나오니라.
나의 일은 비록 부모형제 처자라도 모르는 일이니 나는 서양 대법국 천개탑 천하대순이라.
동학주문에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라 하였으니 나의 일을 이름이라.
내가 천지를 개벽하고 조화정부를 열어
인간과 하늘의 혼란을 바로잡으려고 삼계를 둘러 살피다가 너의 동토에 그친 것은
잔피(殘疲)에 빠진 민중을 먼저 건져 만고에 쌓인 원한을 풀어 주려 함이니
나를 믿는 자는 무궁한 행복을 얻어 선경의 낙을 누리리니 이것이 참 동학이라.
궁을가(弓乙歌)에 ‘조선강산 명산이라 도통군자 다시 난다.’ 하였으니
또한 나의 일을 이름이니라.
동학신도간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하리라고 전하나 죽은 자가 다시 살아 오지는
못할 것이요
이는 ‘대선생(代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 내가 곧 대선생이로다. (도전 3:129)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동학 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 하여 따르리라.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느니라. (도전 2:43)
동학신도였던 이 두 성도에게 동학과 서학(기독교)의 성자들이
피흘리며 전한 하느님이 “동일한 한 분”이라는 사실을 친히 밝혀주신 것이다.
이것은 동서양 종교통일에 제1의 근본문제가 되고 있는
우주 통치자의 호칭문제에 대해 시원스런 마지막 해답을 내려주신 말씀이다.
④ 선천 부처를 해원시켜 주는 미륵부처님으로 말씀하심
내가 미륵이니라.
금산사 미륵은 여의주를 손에 들었거니와 나는 입에 물었노라.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 미륵불을 보라. (도전 10:17)
형렬의 집이 가난하여 보리밥으로 상제님을 공양하더니
8월 명절을 당하여 할 수 없이 밥솥을 팔아 상제님을 공양하려고 솥을 떼 내거늘
상제님께서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솥이 들썩이는 것을 보니 미륵불이 출세함이로다.” 하시니라. (도전 2:21)
하루는 장성 백양사(白羊寺)에 가시어 밤새도록 공사를 행하시니라.
그 절의 중들이 상제님의 명을 받들어 법당 문을 모두 열어 놓으니
상제님께서 담뱃대를 드시어 부처의 머리를 세 번 치시고 여러 보살들에게도 똑같이
하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사람들 사는 세상에서 아내 얻어 자식 낳고 즐겁게 살지어다.” 하시니
한 성도가 여쭙기를
이제 부처의 머리를 치시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라 명하시니 무슨 까닭이옵니까?
미륵은 온 세계를 다스리는 부처이니 모든 부처를 해원시키노라. (도전 5:169)
웬일로 도 닦는 자들이 아직도 부처 타령만 하느냐!(何事道人多佛歌) (도전 5:303)
내가 사람으로 이렇게 내려왔는데 왜 이를 볼 줄 모르고 앞으로 올 줄로만 알고 있는가.
어찌하여 변함없이 과거부처(석가불)에만 매달려
묵은 기운(한민족에게는 외래사상 외래종교)에 그토록 찌들어 있느냐는 탄식 어린
말씀이다.
9...천지공사(天地公事)를 집행하며 행하신 기적들
여기 소개하는 상제님의 도법의 세계는 상제님 천지공사 집행시 행하신 숱한 이적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내용들입니다.
진정한 상제님의 도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제님의 성구 말씀이 총집대성 되어있는
“도전(道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경자(庚子 : 道紀 30, 1900)년에 김제 반월리 김준희(金駿熙)의 집에 머무시다가
전주 이동면 전용리 이직부(李直夫)의 집으로 가시니 이는 직부의 아버지 치안이
증산의 신기하심을 흠모하여 자기 집으로 모셔 옴이더라.
치안의 아들 직부는 그 마을 이장이라. 마침 면사무소에서 호구조사가 나왔거늘 “당신이
아는 체를 잘하는데, 내가 지금 호구 조사를 하고 있으니 이 동네 인구가 몇인가
좀 봐 주시오. 남자는 몇이고 여자는 몇이오?” 하는지라. 증산께서 호수(戶數)와
남녀 인구 수를 자세히 일러 주시니 직부가 믿지 아니하고 새벽에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동네 인구를 낱낱이 조사하고 돌아오거늘 증산께서 말씀하신 여자 수는
맞으나 남자 수는 한 사람이 모자라는지라.
직부가 ‘한 명이 모자란다’고 하니 증산께서 말씀하시기를“금방 세상 떠날 사람을
숫자에 넣은들 무엇 하리요.” 하시더니 그 후 사흘 만에 동네에서 초상이 나더라.
직부가 비로소 증산의 신성하심에 감복하니라. (도전 1:33)
*태인 새올에 사는 최창조(崔昌祚)가 정미(丁未 : 道紀 37, 1907)년부터 상제님을
모셨는데 창조의 독자가 아홉 살 때 병이 들어 앓다가 백방으로 치료하였으나 별다른
차도를 못 보고 그대로 절명한지라. 창조 내외가 정신이 나가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증산 상제님께서 천의(天醫)로서 죽은 사람도 살려 내심’을 생각하고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더라. 상제님을 찾으러 이리저리 방황하다 6일이 지나도록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더니 그날 저녁에 문득 상제님께서 창조의 집에 오시는지라.
창조 내외가 미친 사람처럼 상제님 앞에 엎드려 “죽은 아들을 살려 주옵소서!”
하고 울면서 애걸하거늘 상제님께서 “죽은 사람을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며 “보자.”
하시고 시체를 보니 이미 눈알이 썩었더라. 이 때 황응종이 상제님을 뵈려고 창조의
집에 이르니 마침 곡성이 들리거늘 응종이 들어가지 않고 창조를 불러내어 왔음을
여쭈게 하니라.
창조가 들어가서 상제님께 아뢴 뒤에 나와서 말하기를 “선생님이 내 집에 계시나
지금 보시는 일이 있으니 좀 기다리라.” 하므로 응종이 그 앞 주막에 나가서 기다리려
하였더니 상제님께서 곧 부르시거늘 들어가서 상제님을 뵈니라. 상제님께서 “여물지
않은 보리를 잘라 오라.” 명하시어 잘라 온 보리의 즙을 내어 죽은 아이의 입안에
몇 방울 흘려 넣으시고 모두 방 밖으로 나오게 하시어 “두어 시간 후에 들어가 보라.”
하시니라.
두어 시간 후에 창조의 아내가 방안에 들어가니 잠시 후 아이가 숨을 크게 쉬며 몸을
움직이는지라. 상제님께서 손으로 아이의 배를 어루만지신 후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찌 어른 앞에 누워 있느냐.” 하시니 죽은 아이가 문득 눈을 뜨고 깨어나니라.
상제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사담(私談)을 금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아이가 머나먼
천리 길을 갔다 왔으니 고요히 있어야 할지라. 안방으로 옮겨 눕히고 미음을 쑤어
먹이라.” 하시니라. 이에 명하신 대로 미음을 쑤어 먹이니 아이가 항문으로 추깃물을
쏟아 내며 정신을 차리니라. (도전 2:106)
*황응종과 김갑칠을 데리고 원평 다리를 지나실 때 상제님께서 다리 한쪽 끝에서
발로 땅을 딱 누르고 서 계시니 이윽고 말 탄 일본 순사 세 명이 오다가 다리 저편에
이르러 말발굽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매 아무리 말 엉덩이를 때리고 하여도 움직이지
않거늘 건너편을 쳐다보니 상제님께서 서 계신지라.
모두 말에서 내려 고삐를 놓고 다리를 건너와서 상제님께 절하고 비켜 서시기를 간청하니
상제님께서 “내가 뭘 어쩌길래 그러느냐?” 하시고 웃으며 발을 떼고 돌아서시니
그제서야 비로소 말이 달려가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내 앞을 지남을
도로신장(道路神將)들이 불경히 여겨 꾸짖은 것이니라.” 하시니라. (도전 3:147)
*6월에 형렬을 데리고 태인 신배(新培)에 있는 김모의 집에 가실 때 그 마을 어떤
집에 불이 났는데 모진 바람을 타고 기세가 크게 일어나거늘 상제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며
“저 불을 그대로 두면 이 바람에 온 마을이 재가 되리니 맞불을 놓아 끄리라.”
하시고 형렬에게 명하시어 섶으로써 불을 피우게 하시니 그 마을의 불기가 금방 쇠하여지니라.
형렬이 여쭈기를 “이 곳에 섶을 쌓아 놓고 불을 붙였는데 저 마을의 불이 꺼지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화기(火氣)를 옮겼기 때문이니라.”
하시니라. (도전 2:51)
*원평에 사는 예수교 청년 목사 이자익(李自益)이 큰비로 냇물이 불어 옷을 벗고
강물을 건너려 할 때 상제님께서 다가와서 말씀하시기를 “이목사, 내가 강을 건네
주랴?” 하시니 자익이 황공하여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하고 벗던 옷을 다시
입으니라. 상제님께서 이목사를 한 손으로 옆구리에 끼시고 폭이 수백 보가 넘는
강을 한 걸음으로 뛰어넘으시니라. (도전 3:166)
*하루는 용화동 박봉민(朴奉敏)의 주막에 이르시어 술을 찾으시니 마침 ‘술이 떨어졌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술 빚어 넣었던 독을 가져오게 하신 후 그 독에 물을 채워 붓고
손으로 저으신 뒤에 먼저 잡수시고 성도들에게 나누어주시니 그 맛이 본래 빚었던
술맛과 똑같더라. (도전 5:75)
*하루는 김영학(金永學)이 경학의 인도로 와서 뵙거늘 7일이 지나도록 아무 말씀도
아니하시니 영학이 크게 분해하는지라. 공우와 원일이 이르기를 “성의를 다해 사사(師事)하기를
청하면 밝게 가르치실 것이라.”하니 영학이 그 말을 좇아 상제님께 사사하기를 청하거늘
상제님께서 허락하시더니 갑자기 “이놈을 참수할복(斬首割腹)하리라.” 하시며 크게
꾸짖으시니라. 영학이 상제님의 우레와 같은 목소리에 한편으로는 몹시 두렵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분하기도 하여 문밖으로 나가는지라. 상제님께서 영학을 불러
“나에게 사배(四拜)를 하라.” 하고 절을 받으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너를 꾸짖은
것은 네 몸에 있는 두 척신(戚神)을 물리치려 한 것이니 너는 불평히 생각지 말라.”
하시니라.
이에 영학이 “무슨 척신인지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네가 18세에 사람을 죽이고 금년에도 사람을 죽였나니 잘 생각하여 보라.” 하시니라.
영학이 생각하니 18세에 남원에서 전주 아전 김모와 대화하다가 그 무례한 말에 노하여
화로를 던져 그의 머리를 다치게 하였더니 그로부터 신음하다가 다음해 2월에 죽었고
금년 봄에 장성 맥동에 사는 외숙 김요선(金堯善)이 의병에게 약탈을 당한 고로 의병
대장 김영백(金永伯)을 장성 백양사로 찾아가 그 비행을 꾸짖었더니 영백이 사과하고
범인을 조사하여 포살한 일이 있으므로 비로소 황연히 깨달아 아뢰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정히 그러하다.” 하시니라. (도전 3:167)
*하루는 원일의 집에 이르시어 원일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내종(內腫)으로 죽게
되었으므로 살리러 왔노라.” 하시니 원일이 놀라 말하기를 “아무 병도 없습니다.”
하고 아뢰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지 않으니 국수를 사서 잘 말아 오라.”
하시거늘 원일이 명하신 대로 하여 국수를 말아 오니 한 그릇을 먹이신 후에 “속이
어떠하냐?” 하고 물으시니라.
원일이 대답하기를 “별다른 일이 없습니다.” 하니 다시 한 그릇을 먹이시고 또
물으시거늘 원일이 “속이 쓰립니다.” 하고 대답하니라. 이에 말씀하시기를 “대변을
보고 살펴보라.” 하시매 원일이 나가서 대변을 보니 대변이 전부 고름이더라. (도전
3:191)
*백양사에서 돌아오시는 길에 어떤 사람이 앞에서 걸어오거늘 그는 주위에서 정(鄭)선생으로
받드는 술객(術客)이더라. 그 사람이 앞에 가까이 이르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바치거라.” 하시니 그 사람이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며 땅바닥에 엎드려
명을 기다리니라. 조금 뒤에 상제님께서 다시 명하시기를 “나에게 바치라.” 하시니
그 술객이 두려워 꿇어 엎드리거늘 그 후에 상제님께서 다시 길을 가시니라.
이 뒤에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이상히 여겨 정선생이란 사람을 찾아가니 이미 폐인이
되었거늘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기를 “하느님이 아니라면 어찌 그러할 수가 있으리요.
처음에 그분이 명하시니 하늘에서 큰 천둥소리가 들리며 정신을 잃고, 다시 명하시니
하늘에서 번개가 치면서 혼(魂)이 달아나 버려 가지고 있는 재주가 모두 없어지고
정신과 혼이 어지럽게 흩어져 폐인이 되었소이다. 그 때 나에게 하명하시던 분이
누구이신지 성명도 모르지마는 하느님이 강세하시지 않고서야 어찌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하니라. (도전 5:170)
*형렬이 일찍이 동학을 신봉한 이후로 항상 마음속으로 ‘하느님 뵙기를 원합니다.’
하고 소원하더니 상제님께서 하루는 형렬에게 안경을 주시면서 “이것을 쓰고 나를
따라오라.” 하시니라. 형렬이 따라가니 화려한 삼층 누각이 나타나거늘 자세히 보니
세상에서 이르는 천상의 옥경대(玉京臺)더라.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아래층에 있으라’
하시고 상층으로 올라가시니 선관선녀(仙官仙女)와 만조백관(滿朝百官)들이 좌우에서
옹위하는지라.
상제님께서 좌정하신 후 백관에게 명하시기를 “위징(魏徵)을 데려오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대령한 위징을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너는 무슨 일로 두 마음을 품고
낮에는 당태종을 섬기고 밤에는 옥황상제를 섬겼느냐?”하시니 위징이 크게 사죄하는지라.
형렬이 이 광경을 본 후로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선생님이 바로 한울님이시라.”고
하더라.
이 후로 성도들은 공사시에 늘 뇌성벽력과 풍운조화를 뜻하는 대로 쓰시는 것을 보고
하느님이 곧 증산이심을 깨닫게 되니 인간으로 오신 인존천주(人尊天主)님이심이
‘의심 없다’ 생각하니라. (도전 2:28)
10...상제님은 어떤 분이신가 ?
우주의 도道의 주재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광대무변한 우주는, 쉬임없이 음양(태극)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변화 원리에 따라 끊임없이 생명을 낳으며,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궁극에는 변화를 주재하여 다스리는 통치자 하늘님(天帝)이 있습니다.
주자朱子는 그 분을 ‘옥황대제’곧 ‘옥황상제’라고 했습니다.
‘옥황’은 중국 송나라 때 도교에서 쓰인 말입니다. 또 ‘대제’는 유교에서 나온
말로서, ‘옥황대제’는 ‘옥황玉皇(Jade Emperor)’과 ‘대제大帝(Heavenly Emperor)’가
합쳐진 말입니다. 이 말은 상제님이 계시는 하늘의 수도인 옥경玉京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 곳은 북극 하늘에 있습니다.
이 ‘옥황대제’, ‘옥황상제’는, 서양 문화에서처럼 우주를 빚어내는 창조주가
아닙니다. 옥황대제는, 우주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생명의 변화 원리를 신도神道로써
다스리는 인격신입니다.
이 옥황대제, 곧 상제님의 화권으로 하늘의 신의 세계가 구체적인 조직과 질서를
갖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제님은 천상 신명 세계의 최고신(The High God)인
것입니다.
상제님은 인간과 신도神道 문명의 공덕을 성취하도록 우주 역사를 다스리는 인격신입니다.
천지의 근원 질서(생·장·염·장)를 다스려, 우주의 꿈과 우주의 궁극 목적을 실현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증산 상제님은 도통을 하시고 나서, ‘내가 옥황상제다’ 라고, 당신의 신원身元을
밝혀 주셨습니다. 『도전』2편 12장을 보세요.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의 선경 세계를 건설하려
하노라.
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 (道典 2:12:2∼3)
사실 이 ‘삼계 대권’과 ‘주재’란 말은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대우주 주재자인
상제님 세계는 주자가 얘기했듯이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 차원에서 이해되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체험해서 깨져야만 알 수 있는 신비롭고 오묘한 신의 세계이며, 우주 신도神道
세계의 최정상에 있는 통치자의 문제입니다.
이 증산 상제님의 세계를, 여러분 모두 상제님의 참 일꾼이 되어 직접 사무치게 체험해
보기 바랍니다.
증산 상제님은 우주의 최고신最高神
동과 서의 신의 가르침, 신의 세계란 결국 이 우주가 생겨난 시원始源, 내가 보는
저 아름다운 산과 들, 무한의 저 은하계 별들, 이 모든 것이 생겨난 어떤 근원이
있지 않느냐 하는 데 대한 인류의 신앙 고백이며, 체험입니다.
서양에서는 유일신 하나님을 외쳤습니다. 오직 한 분의 신이 있다는 것이죠. 그들의
신은 철저한 초월자입니다. 때문에 대단히 강력한 신입니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신이 많다고 합니다. 그 신들의 인격성도 각기 다릅니다. 신들이
독립하여 있는 하늘도 다천多天 구조이며, 그 많은 하늘을 다스리는 신들 또한 많습니다.
‘신은 무엇인가’에 대한 증산 상제님의 말씀을 읽어 봅시다. 『도전』2편 45장을
펴 보세요.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신神이니 신이 없는 곳이 없고 신이 하지 않는 일이 없느니라.
(道典 2:45:1)
신에 대한 가르침으로는 이 이상 명쾌한 게 없습니다. 이 말씀은 신에 대한 모든
문제의 근본을 깨칠 수 있는 도언道言입니다. 신도神道에 대해 도통이 나오는 깨달음의
말씀이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이 이 천지에 가득 들어 차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때, ‘신’은 어떤 신을 말하는 걸까요?
그것은 적어도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의 신은, 우리가 언어나 논리로써 말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텅 빈 이 시공간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체험의 문제입니다. 우주와 만물의 본성에
대한 문제죠. 우리가 수행 생활을 통해 신안이 열려서 보면, 우주는 ‘신적 존재’입니다.
이 때 신은 처음에 영기靈氣로 느껴집니다.
순수 인격을 갖고 있는 장엄한 기령氣靈, 성령입니다. 이 경우 신은 우주에, 만물
속에 꽉 들어 찬 살아있는 생령生靈입니다. 우리가 수행 중에 그것을 보면, 대광명으로
출몰하여 너무도 아름답고 신비스런 느낌을 줍니다.
두 번째 의미의 신은, 태초 이래 인간이 생명의 질서[生·長·斂·藏]를 마치고 죽은
사후적 존재로서의 영, 살아있는 영적 존재를 말합니다. 만물의 영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상제님은 파리 죽은 귀신의 존재도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두 가지 기본 뜻이 이 ‘신’에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영대가 크게 트이면 구체적인 ‘신’의 경계가 열릴 것입니다. 그
때 이 말씀의 참된 뜻을 전부 깨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수천 년 세월 동안, 모든 천지신명들을 받들고 그분들께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신들 가운데 지존의 최고신이 있다. 그 분이 상제님이다.” 이렇게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므로, 동서 신관의 궁극은, 서양도 유일신 문화이고, 동양도 유일신 문화입니다.
최고신의 관점에서 볼 땐 그렇습니다.
동양에서도 최고신은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 많은 신들 가운데 최고의 신, 지배자, 통치자, 그 분이 바로 증산 상제님입니다.
증산 상제님은 우주의 삼계 대권을 쓰시는 분입니다. 삼계 대권, 화권化權, 신권神權을
쓰시는, 그런 절대 권능을 가지신 신은 오직 주재자 한 분뿐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초월신인 기독교 창조주 하나님보다 더 절대적이죠. 상제님은 한량없는 자비의 하나님이지만,
천지의 기강을 잡으시는 위의威儀를 떨치실 땐 그 강력한 신권 때문에 천지와 만물이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상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천하에 예의상 둘째가 될 수 없느니라.
(道典 9:40:4)
『도전』에, 그것을 알려 주는 좋은 예화가 있죠.
증산 상제님이 도통하시고 나서, 개벽공사 보실 때였습니다. 상제님이 도통문을 여실
때(신축년, 道紀31, 1901), 그 기운을 받아 도통한 자가 몇 있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이가 전주의 고송암高松庵, 장흥의 안제암安濟庵, 함열의 함석태咸錫兌, 하동의
문화재文華齋 등 다섯 명이라고 전해집니다.
상제님께서 서양 열강에 떠넘어가던 동양 약소국을 건져 주시기 위해 서양 제국주의를
몰아내려고, 서양에 대전쟁을 일으키는 공사를 집행하시던 때였습니다.
고송암이란 사람이 도통을 하고는 상제님과는 정반대로 동양을 서양에 넘겨 새 세상을
꾸미려고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역적질을 한 거죠.
정미(1907)년 어느 날, 박공우 성도가 우연히 자기 친구집으로 상제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그 친구는 바로 고송암의 제자였습니다.
공우가 상제님께 점심상을 올렸더니, 상제님이 갑자기 젓가락으로 밥상을 탁 치시면서,
“서양 기운을 몰아내어도 다시 몰려드는 기미가 있음을 이상히 여겼더니 뒷골방에서
딴전 보는 자가 있는 것을 몰랐도다. (道典 5:135:3)”라고 하십니다. 그 순간 고송암이
죽습니다. 상제님께서 그의 명줄을 거두신 것이죠.
상제님은 박공우 성도에게 “고송암에게 가서 문상問喪하고 오라.”고 보내십니다.
그 이후 이 지구상에는 도통이란 없습니다. 상제님이 그 기운을 모두 거두셨기 때문입니다.
상제님께서 일찍이 정읍 통사동 이씨 재실에 행차하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허부虛符공사를 보노라.” 하시고 부符를 많이 그리신 후에 불사르시니라.
이 허부공사로 일체의 도통 기운을 거두시니라. (道典 11:45:1∼3)
최고신은 오직 증산 상제님 한 분뿐입니다. 상제님 행세를 하는 자는 천지에서 용서치
않습니다.
이 도권道權의 기강을 파괴하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대순진리회에서는 조철제가 옥황상제이고 강증산은 구천상제라고 합니다. 상제가
둘이라는 거죠. 참으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말이죠. 이것은 이 우주에 삼계대권의
주재자는 오직 한 분이라는 상제님 말씀을 거스르는 삿된 말입니다.
이 난도 난법자들에 대해 경고하신 공사 내용을 보십시오.
대흥리에 계실 때 하루는 상제님께서 양지 몇 조각에 각기 옥황상제玉皇上帝라 쓰시고
측간에 가시어 후지后紙로 사용하시니라.
한 성도가 여쭈기를 “지금 옥황상제라 쓰시어 후지后紙로 쓰시니 어인 연고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천지에 감히 누가 이와 같이 할 수 있겠느냐? 만일 옥황상제라
자칭하는 자가 나타나면 천지신명이 그 목을 베고 몸을 찢어 죽일 것이니라. 이 뒤에
대도를 거스르고 패역하는 자가 있어 세상을 그르치며 백성을 상하게 할 것을 경계하는
것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6:59)
최근에도 그들은 거리에서나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증산도에서 나왔다’고 증산도를
사칭하면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난 20여 년 동안, 내가
쓴 『이것이 개벽이다』, 『증산도의 진리』 등 우리 증산도 서적을 모두 가져다가
그들 신도용 교육 자료, 포교 자료로 사용해 왔습니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한때 그들은 내가 본래 대순에서 쫓겨난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닌
적도 있습니다. 또 상제님의 판은 음양판이 있는데, 대순은 음판, 증산도는 양판으로,
자기네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필요한 책을 증산도에서 다 써 주게 돼 있다고 별의별
고약한 말을 다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상제님 말씀의 핵심을 그릇되게 왜곡, 조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본래의 상제님 말씀과는 전혀 다르게 꾸며낸 상제관과 개벽관, 수행관, 대두목관,
엉터리 종통관을 가지고, 순진한 세상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전직 대통령의 딸이 그들로부터 당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루는 포천 지역 대순진리회의 간부가 찾아와서, 그녀의 남동생이 척에 걸려 이삼
개월 안으로 참혹하게 죽게 되어 있으니, 성금 사백만 원을 가져다 내고 치성을 드려야
한다고 하더랍니다. 크게 충격을 받은 그녀는 동생을 위하는 순수한 마음에 곧장
성금을 내고 치성을 모시려 하다가, 좀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 증산도 간부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켰죠. 그리고 서울에 있는 우리 간부들에게, 가서 그 마음을 위로해 주고 함께
치성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지금 전국 각지에서 날마다 벌이고 있는 일들이 다 이와 같은 일입니다. 치성이나
조상 천도를 빙자하여 돈을 뜯어냅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건물을 크게 지어 놓고
위세 자랑을 합니다. 상제님의 도법을 철저히 악용하고 있습니다. 상제님 말씀을
자기들의 삿된 생각에다 이리저리 짜 맞추어, 선량한 사람들을 난도 난법의 구렁으로
빠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가엾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개벽의 목줄로 들어서는 이 때, 이런 건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머지않아 모든
허구와 거짓이 다 도려내질 것입니다.
상제님은 오직 한 분뿐인 대우주 통치자 하나님
상제님은 대우주를 다스리는 분입니다.
상제님은 범어梵語로 지족천知足天이라 불리는 투시타(Tushita) 하늘, 도솔천兜率天에서
오셨습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도솔천의 ‘도兜’는 머리에 쓰는 ‘투구’란 뜻이고,
‘솔率’은 ‘거느린다’는 뜻입니다. 도솔천은 모든 것을 다스리는 통일의 하늘이란
뜻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이 도솔천의 ‘도솔’을 인류 문명의 대통일 논리로 쓰셨습니다.
수천지지허무 선지포태
受天地之虛無하여 仙之胞胎하고
수천지지적멸 불지양생
受天地之寂滅하여 佛之養生하고
수천지지이조 유지욕대
受天地之以詔하여 儒之浴帶하고
관왕
冠旺은
도솔 허무적멸이조
兜率 虛無寂滅以詔니라
천지의 허무의 도를 받아 선도가 포태되고, 천지의 적멸의 도를 받아 불도가 양생(낳고
기름)되고, 천지에서 인간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주는 이조의 도를 받아 유도가 욕대(목욕하고
띠를 두름)하니,
이제 인류가 맞이한 성숙의 관왕冠旺도수는 도솔천의 천주가 선(허무) 불(적멸) 유(이조)를
모두 통일하느니라. (道典 2:118:7∼11)
상제님은 하늘과 땅과 인간, 모든 것을 다스리는 통치자 하나님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동학 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
하여 따르리라. (道典 2:43:1∼4)
이 말씀에는 ‘그 한 분만 오시면, 각 종교에서 각기 달리 부르짖음으로써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근원적인 요소가 없어진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각 종교에서 부르짖는 구원의 메시아는 같은 분입니다. 그 분은 한 분입니다. 예수가
말한 아버지, 석가가 말한 미래의 부처 미륵불彌勒佛, 상제님으로부터 도통받은 최수운이
말한 대선생大先生은 같은 분을 가리킵니다. 그 분이 바로 상제님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다른 분으로 알고 서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말장난에 가려서
못 보는 거죠. 달은 못 보고 손가락을 쳐다보는 격입니다. 참 유치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장 참담한 비극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서 잠시 자기들이 섬기고 있는 신의 이름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인정 못
하고 싸우고 죽이는 종교 분쟁 문제를 깨부수기 위해, 우주의 주재자이신 상제님이
행하신 공사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하루는 상제님이 인삼으로 유명한 금산의, 한 예배당엘 가셨어요.
“전능하신 여호와 하느님이 진흙으로 아담을 빚어 입김을 불어넣으시고 아담의 갈빗대로
이브를 만들었으니 아담과 이브는 인류의 조상입니다.………자, 다 함께 따라 읽읍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이렇게 목사가 한참 설교하고 있는데 상제님께서
잠시 설교를 들으시더니 단상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추상같은 목소리로 “그렇게 가르쳐서는 안 되느니라.…… 올바른 길이
아니면 가르치지 말라.” 하시고, “목사가 믿는 하느님이나 중들이 가르치는 부처가
본래는 하나로되, 중생들을 그릇 인도하면 천지의 원 주인도 자리를 잡지 못하느니라.
(道典 5:10:4)” 하시며 냅다 벼락을 치십니다.
이 ‘천지의 원 주인도 자리를 못 잡는다’고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것은 목사나 중들이 중생을 잘못 인도하고 있으므로, 중생들이 천지의 원 주인인
상제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주재자인 상제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겁니다.
서양의 기독교는 예수를 아버지로만 보고, 동양의 불교도는 오직 ‘부처’ 논리에만
빠져 있어, 상제님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상제님이 천지의 주재자로서, 왜곡된 관념에 찌든 인간들을 응징하고,
인류 역사의 심장부에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새로운 신화가 필요한 때
지구촌의 각색 종교, 신화를 체계적으로 해석하여 인류에게 큰 지적 유산을 남겨
준 신화의 아버지 죠셉 켐벨(Joseph Campbell)이 있습니다. 그가 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Bill Moyers)와 대화한 것을 기록한 『신화의 힘 The Power of Myth』은
우리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해 줍니다.
여기서 그는 신에 대한 근본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인류가 갖고 있는 편협한 신관의
울타리를 깨고 나올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보는 새로운 눈을 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켐벨은 구약의 창조신이 어느 정도 모순이 있는 신인지를 꼬집고 있습니다. 십계를
내려줄 땐, 모세에게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해 놓고서, 그 다음 장에는 ‘가나안에
들어가면 모든 이들을 다 죽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또 그는 베이루트에서 서양의 3대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회교가 똑같은 신을 믿으면서
이름이 다르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서로를 못 받아들이고 대가리 터지도록 싸우고
있는 걸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지역, 하나의 부족이라는 경계 안에 갇힌 채, 단순히 자기들 신과 약속한
그들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다른 민족을 마구 죽이는, 이것이 선천 종교의 한계라는
겁니다.
여러분,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그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서로 화합을
못 하고 싸우고 죽이고 있는 뿌리 깊은 갈등 문제를 생각해 보십시오. 유일신 문화의
사고는 이토록 배타적 절대주의를 고집합니다.
일찍이 노벨상 수상자인 아이작 싱어는 “인류의 미래를 알고 싶거든 레바논의 거리를
걸어 보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폭탄 테러를 일삼고 있는 저들을 보십시오. 우리는
지금도 천추의 한을 남기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원한의 절규를 듣고 있습니다.
이렇게 독선적이며 서로를 배척하고 생명을 가차없이 죽이는 신화는 이제 버려야
합니다. 이제는 켐벨이 지적한 대로 사회주의자, 민주주의자, 기독교도, 회교도,
불교도, 무신론자 지구촌의 어느 누구에게도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새로운
신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증산 상제님이 인존시대의 인간으로 오시어 대개벽 세계를 여신 것, 이것이 바로
인류의 새로운 신화입니다.
상제님은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하여 내려 보냈노라. (道典 2:43:5)”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펄쩍 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륵이 석가모니의 제자였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예수님은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빛
속에서 스스로 오셨는데, 예수님 위에 또 누가 있느냐?’고 말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아버지의 온전한 실상을 못 보는 삼위일체三位一體설의
반쪽 논리 때문에, 예수가 하나님인 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체體·상相·용用의 논리로
볼 때, 성부(아버지)와 성자(아들)와 성령은 다릅니다. 다르지만 그 본질이 같고,
또한 일체됨의 관계에서 보면 하나이지만, 실제 변화 작용 역할이 각기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선천의 성장 시간대에서는 그 신권, 위격이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같다는 것만을 수용하고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본래 예수는 아버지에 대해 양면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며
구체적 개별적 형상이 없는 신적 존재로 아버지를 인식하고 있죠. 신약에서 아버지에
대한 모든 가르침이 사실 이런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전하는, 아버지에 대한 보다 결정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그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개벽하는 때 : 우주가 새로 태어나는 때)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마태복음 24:36)
이 때의 아버지는 성서 전체의 주제가 되는 음적 이미지의 아버지가 아닌, 우주 질서를
현실 역사 속에서 다스리는 인격신으로 인식하고 해석을 해도 전혀 무리가 아닙니다.
여기서 그 날 그 때를 모른다는 예수의 말은 그 말 그대로 가감없이, 선천 하늘 아래
그가 성취한 깨달음의 한계에 대한 그의 고백일 수도 있죠.
실제로 성서 전체 내용 가운데 새 우주로 태어나는 대개벽의 상황에 대해 실감나게
그려져 있는 곳은, 오직 <계시록> 한 편뿐입니다.
그것도 개벽을 극복하는 길이나 후천 선경의 신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과 생활상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이 없습니다.
구약의 <다니엘서>에도 개벽 상황에 대한 것이 있다고는 하지만 너무 단편적이고
상징적이죠.
나는 동서고금의 모든 성인과 영능력자들이 전한 내용을 오랫동안 구체적으로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 메시지의 공통점은, 개벽 후 전 지구촌에 펼쳐지는 21세기 신문명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의 시간대가 끊어져서, 새로운 시간대로 가는
가을 대개벽의 비밀을 그들이 인식할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우주의
참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직 상제님만의 소관입니다. 그것은 오직 이 땅에 인간으로 강세하신 상제님의
우주 개조, 우주 갱생의 9년 천지공사에서만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날’과 ‘그 때’는 바로 ‘개벽의 날’입니다. 하늘과 땅에 새 기운이 도는
날, 우주에 가을 시간대의 새 역사가 전개되는 그 날 그 때의 모든 변혁의 비밀은,
예수 자신도 모르고 하늘의 신명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이신 상제님만이 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이중적 존재 의미로 아버지를 인식하면서 성경의 이 구절을 제대로
읽어 보세요.
신이 보낸, 인간의 아들 예수
예수는 늘 자신이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임을 강조하고 있죠.
이 ‘인자’란 말은 예수의 복음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가장 강력한 호소력을 가진
말입니다.
그의 소박하고 진실한 가르침은 항상 ‘인자가 말하노니’ 곧 사무치게 깨어있는
인간이 되어 전하는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예수는 피와 살, 눈물과 웃음, 사랑과 슬픔을 가진 인간으로서 인간 생명의 근본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죠. 과연 인간의 삶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가 희생과 사랑의 실천을 통해 보여 준 인간이 가야 할 삶의 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입니다. 신과 하나 되는 신인합일의 길이죠.
예수의 가르침이 우리 가슴에 깊이 와 닿는 것은, 이처럼 그가 인간의 아들로서 영원한
생명의 근원인 아버지의 복음을 전하고, 온 인류가 머지않아 도래하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릴 것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그 상징의 이중성!! 우리는 언제나 아버지란 말이 가진 이중적
성격, 이중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는 아버지와 자기는 하나이지만 엄연히
다른 실존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다.”, “너희는 그를 모르나
나는 그를 안다. 그가 나를 보내셨다.”고.
상제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죠.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하여 내려 보냈노라.
(道典 2:43:5)”고.
그는 상제님의 천명을 받고 ‘아버지 나라’의 복음을 전하러 인간으로 온 것입니다.
이것이 성자 예수를 이해하는 가장 핵심되는 메시지입니다.
개벽장 하나님이신 상제님
상제님은 천지의 질서까지 만들어 낸 창조주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주의 근원 질서(로고스)는
본래 주어져 있는 겁니다. 상제님은 그 본성을 ‘생장염장’이라고 하셨죠.
상제님은 그 질서를 열어 가시는 개벽장 하나님입니다. 자, 『도전』4편 4장을 봅시다.
시속에 어린아이에게 개벽쟁이라고 희롱하나니 이는 ‘개벽장開闢長’이 날 것을
이름이라.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천지를 개벽하고 무궁한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라.
(道典 4:4:2∼3)
이 말씀을 우리가 좀더 쉽게 받아 들이기 위해, 이천 년 전 요한에 의해 선언된 개벽
소식을 들어 보겠습니다. <계시록> 20∼21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And I saw a great white throne, and him that sat on it, from whose face the
earth and the heaven fled away; and there was found no place for them. (Holy
bible, 계시록 20: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And I saw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for the first heaven and the first earth
were passed away; and there was no more sea. (계시록 21:1)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니라.
And he that sat upon the throne said, ‘Behold, I make all things new.’ (계시록
21:5)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한다.” 이것이 이천 년 전 요한을 통해 선언한 상제님의 개벽
메시지입니다. 개벽 상황이 전개될 때, 그 세계를 열어 주시는 ‘크고 흰 보좌 위에
앉으신 하나님’, 그 분이 상제님입니다.
예수가 말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분이 바로 기독교 탄생 이전 수천
년 전부터 동방 신교 문화에서 신앙해 온 호천금궐 상제님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 신도들은 조건반사적으로 예수를 아버지로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타성에 젖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곧 아버지’라는 삼위일체의 그릇된 해석
때문입니다.
하늘 궁궐에서 상제님을 친견한 요한조차도, 개벽 상황을 신교神敎, 신의 가르침대로
잘 받아쓰기 하다가, <계시록>의 마지막에 가서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예수 재림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삼천포로 빠진 겁니다. 한마디로 계시만 받았을
뿐, 우주의 통치자로서 하나님, 최고신이신 상제님에 대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못
한 것입니다.
이것은 신을 궁극의 실재로서만 인식하고 아버지 신의 이중성을 전혀 생각지 못하는
서구적 신관의 한계 때문이죠.
그는 명화明化된 순수의식으로, 직접 도통 차원에서 상제님을 본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에 취해 하늘에서 보여 준 것을 잠시 정성껏 본 겁니다. 계시를
받는 그의 의식이 미성숙하고 불완전하여, 판단의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다음 말씀을 들여다 보면, 개벽장 하나님(Renewing God)이신 상제님의 면모를 구체적으로
감 잡을 수 있습니다.
이제 혼란키 짝이 없는 말대의 천지를 뜯어고쳐 새 세상을 열고 비겁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널리 건져 각기 안정을 누리게 하리니 이것이 곧 천지개벽이라. (道典 2:24:1∼3)
증산 상제님은 개벽의 도로써 천지의 새 질서를 열어 인간과 신명을 함께 건져내십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는 하늘과 땅의 질서를, 선천의 상극 질서로부터 상생으로
바꾸십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우주 만물의 성장 시대에서 성숙의 계절로, 축원蓄寃의
운수를 해원解寃의 운수로 바꾸십니다.
지금은 하늘과 땅과 인간과 신명이 우주의 가을철을 맞이하여 상제님의 도道로써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만물이 가을의 생명으로 재탄생(rebirth)해야 합니다. 이
우주의 재조정(restructuring) 개조(reconstruction) 공사가 곧 9년 동안 상제님이
인간 세상에서 집행하신 천지공사입니다.
따라서 천지공사 도수의 줄기를 모르고는 결코 상제님을 알 수 없습니다.
증산 상제님은 “태초 이래 이것은 오직 내가 처음 짓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상제님은 한마디로 우주의 주재자요, 천상의 통치자요, 최고신이며, 개벽장 하나님이십니다.
선천 성자들 깨달음의 최종 결론은, 이 우주 질서가 근본적으로 새롭게 바뀌고, 개벽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개벽을 성취하는 분이 인간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늘의 최고신, 통치자로서, 이 우주의 궁극의 꿈을 성취하는 유일신을 말합니다.
어떤 종교든, 종교들 사이에 놓인 장벽을 허물어뜨리고 보면, 그들이 전하는 공통된
메시지는, 이 땅에 인간이 그토록 염원해 온 지상 천국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 대개벽이 있습니다. 상제님이 바로 그 주인공이십니다.
이 대개벽 상황에 대해서는 『이것이 개벽이다』를 2∼3회 정독해 보세요. 금년부터는
개벽 상황이 피부로 느껴지는 변혁의 시간대로 들어서기 때문에, 이 책에서 여러분은
동서 개벽에 대한 메시지를 새롭게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출처:증산도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