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00원에 뒤틀리는 현실?
“안녕하세요, 이것 좀 받아가세요^^
앗, 이쁜 언니! 이거 한번만 읽어보세요!”
내가 지금 뭘하는지 궁금해? -_-
사실은 나도 나 자신을 납득시키지 못한채 몸을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타고난 천성이랄까, 유전이랄까.
무르익어가는 벼들 사이에서 열심히 땀흘려 일하시던
내 부모의 피가 너무 깊숙히도 베어있기에 그럴런지도 모르겠지만
난 타고난 악바리 체질이다, 제길-_-;;
열일곱의 나이에 학교까지 그만두고 서울로 혼자 상경하겠다는 나를
그 고지식한 형부와 언니가 결국 이해해 줄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나의 이 남다르다 못해 유별난 악바리 근성과 게으름 거부증때문이였다.
무인도에 던져놔도 끝까지 살아남을 사람, 나 마두설.
이런 나를 이미 두분 다 너무 잘 알고 계셨기에
차마 내 생각을 꺽지 못하고 내 의견을 받아들여주신 것이였다.
난 이런 갑작스런 상황에도 역시나
스스로의 특유체질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내 손에 떠맡겨진 전단지를 여지없이 몸을 불사르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중이였다.
그래, 이왕 떠맡은거 어차피 시작할 알바 전야제쯤으로 생각하자.
단! 보수는 받는다, 필히-_-
난 지나가는 사람들을 훑어보고 대충 사람들을 추려냈다.
내가 이 전단지를 쥐어줘서 쓸모가 있을 사람, 없을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다.
비록 내돈은 아니지만 이것도 찍으려면 다 돈이잖아.
…그래그래! 나 돈 젠장많이 원츄해-_-*
(마두설 = 열일곱에 겁도 없이 돈만 생각하고 혼자 덜렁덜렁 서울 상경한 여자.)
난 그렇게 사람을 봐가면서 전단지를
단 한번이라도 훑어볼 사람들에게만 나눠주고 있었지만
내 친구 주진이는 절대로 그럴리가 없었다.
주진이는 지금 7시를 기준으로 타임리미트를 세어가며
온 거리에 거의 전단지를 뿌리다시피 하고 있었다.
“얘들 댑따 잘생겼어요~ 거기 언니~ 한번 가봐요~
아, 귀찮아. 아직 7시 안됐나?”
“주진아, 좀 제대로 해라. 그게 뭐야, 아깝게.
그리고 너 시계 본지 1분도 안됐거든? 어련히 알아서 오려고-_-”
“뭐야, 마두설! 너 방금까지 투덜거리더니
역시 그놈들 인물엔 못베기겠나부지?”
“그게 아니야.”
“아니기는! 기집애, 내숭떨긴.”
내숭?
내가 내숭을 아예 안떠는 인간이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내가 그들에 대해서 더이상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은
주진이의 말처럼 그들의 인물때문이 아니였다.
돈 받아야 할 것 아냐, 돈!! -_-^
사람 일시켜놓고 도망가려 하기엔 전단지에
위치가 너무 상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도망은 못가겠지.
고로 내가 열심히 일한만큼 댓가를 지불받자고
마음을 고쳐먹은 것 뿐이였다.
난 결국 내 손에 들린 전단지를 모두 비워내고
주진이가 가지고 있던 전단지까지 떠맡아서 그걸 모두 돌렸다.
주진이가 무분별하게 뿌려대는 전단지는 내가 봐도 아까웠으니까-_-;;
“뭐야, 진짜로 돌렸네?”
…진짜로 돌렸네에?
몇장 안남은 마지막 전단지를 돌리고 있을 때즈음
해가 져무는 석양진 붉은 거리와 붉게 물드는 사람들 속에서 나타난 민소매 청년.
그래, 드디어 왔구나, 채무자-_-
“큭, 그 많던걸 다 돌렸냐? 요령없긴.”
“호호호~ 부탁 받았으니 해야죠^^*”
“너, 눈웃음 치지마. 꽃달지마. 역겨워.”
“뭐라구요??!!”
주진아, 사실 넌 뿌리기만 했잖아.
하지만 니몫까지 수당 챙겨받아야 하니까 그건 말 안할께.
(어쨌거나 내 몫에 더하면 두배가 되니까.)
헌데 주진아, 너 지금 평상시 표정으로 돌아와서
이미지 관리에 상당히 지장있어 보인다.
“아씨! 왜 소리는 지르고 지랄이야! 귀따갑게.
아무튼지간에 따라와라, 제기랄.”
주진이가 평소 습관을 숨기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자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목소리로 꽥 소리를 지르며 그에 응수한 민소매 청년은
우리를 보고 따라오라는 말만 덜렁 던져놓고는
먼저 휙 뒤돌아서서 사람들을 헤치고 거리를 빠져나갔다.
“…잘생겨서 봐준다. 성질 한번 드럽네.”
“…………-_-”
주진이는 민소매 청년에게 노골적인 말을 들은 것이 불쾌했던 모양이지만
(사실 나라도 상당히 불쾌했겠지만-_-;)
그의 잘생긴 외모를 면죄부로 그의 무례함을 용서한 모양이였다.
민소매 청년은 사람들을 한참 헤집고 다니더니
빨간 벽돌 건물 앞에서 옆으로 틀어
이번에는 골목을 사이사이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대체 어디까지 가는거람-_-;
어딘지도 모를 골목을 한참이나 누비고 다니다가
어느 검고 낡은 5층짜리 건물 앞에서 선 민소매 청년은
지하로 이어진 계단으로 내려가려다가 멈칫하고는
우리를 돌아보고 고개를 까닥이며 따라내려오라는 표현을 했다.
그 자세는 단언컨데 무척 시건방졌다.
그를 따라 내려간 어두운 지하실,
그가 이내 문앞에 멈춰서고 그 육중한 문이 열렸을 때,
나는 내게 쏟아지는 소리의 바다에 순간 몸이 굳었다.
우와… 여기 방음 진짜 잘된다-_-
“헉… 헉… 나 이제 드럼 안쳐.”
“균아, 니가 드럼 안치면 어쩌려고?”
“정이새끼 베이스 튕겨대는거 보니까 절라 멋지다.
나도 베이스할래-_-”
“그럼 드럼은 누가 해, 균아.”
“누가하긴 누가해, 정력제가 해야지.
야! 제갈정! 나랑 포지션 바꾸자, 유와 미 체인지 나우, 오케바리?
땡구. 유어 웰컴 베리베리. 어서 너의 베이스를 내게 넘겨라~ 캬캬캬~”
“……싫어.”
“이좌쉭이! 지금 이 내가 원하시는데 튕기는거냐? 앙?
넌 지금도 인기 많잖아! 내놔!”
“………내꺼야.”
“너! 리내쉑이랑 확 섞어버린다? 너도 까마귀 다리 건너고 싶지? 얼렁 안줘?!”
“바이러스!!!”
문을 열자마자 딱 걸린 그들의 실갱이가 또 뭔가 거슬렸는지
무서운 속도로 바이러스를 외치며 츄리닝 아저씨를 향해 달려가는 민소매 청년.
그런 남자를 본 츄리닝 아저씨는 질겁을 하며
아까까지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를 꽥꽥 지르던 검은 남자 뒤에 숨는다-_-
“으아아아악! 검은 별이 나타났쪄ㅠ_ㅠ”
“돌은놈! 니가 인기가 없는건 니놈이 맨날 그짓꺼릴 해대니 그런거 아냐!
썅! 이게 지금 누굴 갈아버린다고 나불대는거야!
사내새끼가 치사하게 사람 내보내놓고 뒤에서 씹어대?!
인기없는 니놈 팔자가 재수없거든 그 빌어먹을 머리통부터 갈아치우고 오던가!!”
“우엥~ 쩡아~ 쿨쩍… 리내 무서워냥ㅠ_ㅠ
이건… 개성이야-_-*”
“…(매달리는 츄리닝 아저씨를 밀쳐내며 옷을 툭툭 털고)균 옮아.”
“큭, 균아. 그건 아무나 써먹는게 아니야. 그나마 나정돈 되야 소화가 되지. 킥…”
“음가소!! 이 악의 집대성!! 내가 리내한테 죽쓰면 다 니탓인 줄 알아!!”
여전히 정신없는 황당한 네남자-_-
그들은 일단 멋대로 냅두고 주변 설명이나 하겠다.
그곳은 소위 연습실이라고 부르는 곳인것 같았다.
왠지 벽이 두터워 보이는 조명이 꽤 어두운 그 공간은 그다지 넓지는 않았지만
사방을 둘러싼 벽에는 페인트로 이해하기 힘든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사람이 손으로 그린 것 같긴 한데 굳이 구분을 짓자면 추상화인 듯-_-;
연습실의 한쪽에 계단 하나 높이정도 높은 곳에는
생전 처음보는 드럼이 셋팅되어 있었고
마치 카페처럼 설치된 조명은 무척 예뻐보였다.
단, 어두운 조명 덕에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이 뛰쳐나올 것 같아
엄청 괴기스럽기도 했지만-_-…
그들은 역시나 또 사람을 불러놓고 지들끼리 노는
특유의 소란스러운 기술을 보여줬는데
왠지 난 짧게나마 관찰한 그들의 행동패턴상
그건 그다지 별 일도 아닌 듯 싶다고 생각했다.
한참이나 자기들끼리 소리지르고 그 작은 비좁게도 느껴지는 공간에서
먼지나게 뛰어다닌 후에야 우리를 발견한 네 사람은
그제서야 자신들의 행동을 전혀 되돌아 보지 않았다-_-
“어? 왔네?”
…그게 다였다.
민소매 청년은 츄리닝 아저씨를 급기야 잡아다가 앞에 앉혀놓고
우리동네 욕쟁이 할머니 버금가는 엄청난 육두문자를 퍼붓고 있었으며,
자신의 악기를 지켜낸 것이 뿌듯한 듯 보이는 검은 남자는
그것을 마치 애보듬듯이 품에 꼭 끌어안고서 비춰질랑 말랑한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은 얼핏보면 상당히 음침하게 보이는 것이였다.
우리를 그나마 제일 먼저 알아챈 사람은
역시나 제일 처음 내게 사과란걸 했던 새하얀 아이같은 남자였는데
그는 주진이와 나를 보고는 다가와 자신이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서는
머리에다 던지듯이 덮어씌우며 싱긋 웃었다.
“추웠지? 이거입어. 내가 따뜻하게 덥혀뒀어. 착하지? 웅?”
“아니요, 별로-_-…”
“웅웅, 착해요^^*”
주진아, 너 저 사람이 마음에 드는가 보다.
적응 안돼, 지금의 넌-_-;;
또 다시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먼지 일으키는
츄리닝 남자와 민소매 청년은 마치 없는 것처럼 무시하기로 한 나는
하얀남자가 손을 잡고 이끄는대로
대충 치워진 의자에 살짝 엉덩이만 걸치며 앉았고
주진이는 대체 뭐가 그리도 좋은지 마냥 웃느라 바빠보였다.
“날씨 추운데 수고했어, 누나들. 많이 추웠쪄? ^^*”
“아니아니, 별로 안추웠쪄^^*”
“썅! 여자! 너 눈웃음치지 말라고 했어, 안했어?
넌 니 면상이 어떤 구조로 생겼는지도 까먹고 사냐?”
“뭐, 뭐라구요??!!!”
“누, 누나 진정해^^;
리내야, 내가 널 리내라고 부를 때 얌전히 있는게 좋아.”
츄리닝 아저씨로도 부족했는지 민소매 청년은
급기야 다시 이미지 관리 모드로 들어간 주진이에게 거침없는 태클을 날렸고
그 덕에 주진이는 또 다시 망가져야 했다-_-;
서둘러 대신 주진이에게 사과한 새하얀 남자는
우리에게 뜬금없는 자기 소개를 했다.
“아아, 맞다. 그러고 보니까 소개도 안했네? 그치?
나는 가소야, 음가소.
그리고 저기 저 성격 안좋은 애는 리내,
그리고오 또- 저기 구석에서 베이스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리는 애는 정이,
큭, 저 돈주고도 안할 것 같은 이상한 파마를 한 놈은 균이.”
뜬금없는 자기 소개 덕에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왜 츄리닝 아저씨는 바이러스여야 했는가.
이름이 균이라서 그랬던 모양이네-_-;
대충 자신들의 소개를 몽땅 마친 가소라는 사람은
그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이 고운 손을 포개어 우리 쪽으로 내밀며
우리에게도 소개를 하라는 듯한 행동을 해보였다.
“아, 난 주진이, 이주진이라고 하구요.
얘는 제 친구 두서예요, 마두서. 올해 17살이예요. 잘부탁해요^^*”
“공갈치고 앉았네, 저 면상에 어떻게 열일곱이라는 숫자가 나와?”
“뭐-”
“미리내, 내가 그만 하라고 했지?”
이번에도 주진이의 말에 태클을 거는 리내라는 청년-_-
급기야 또 다시 관리모드가 해제되어버린 주진이가 한마디 하기도 전에
그 말을 잘라 한마디로 압박하는 가소청년!
저 사람이 아까 그 사람인가 싶을만큼 얼굴에 표정이 없다.
근데 뭐야, 미리내?? 그게 이름이야??
“썅, 음가소. 누가 내 이름 말하랬어!!!!!!”
“그러게 내가 몇번이나 말했잖아, 그만하라구^^”
“풉… 미리내애…”
“…꼬질이, 너 지금 웃었어? 이름에 두서도 없는 주제에.”
…………-_-
내가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 당한 이후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저거였다.
그것 참 이름에 두서가 없구마이…
나도 모르게 욕쟁이 민소매 청년과 미리내라는 이름이 매치되지 않아
웃음을 터뜨린건 잘못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두서도 없는 주제에?
“이봐요, 미리내씨. 내 이름에 두서가 있는지 없는지 당신이 재봤어요?
차라리 두서없고 말겠네요, 미리내라니. 너무… 안어울려-_-”
“야! 이건 저거보다 한술 더 뜨네, 아주? 못생긴게!!!”
“그러는 댁은 얼마나 잘생겼다고?”
“우와~ 천하의 미리내, 여자한테 얼굴로 안먹힌건 처음이네? 큭…”
허리를 껄렁하게 숙이고 내 코 앞까지
자기의 얼굴을 들이밀고 죽일듯이 노려보는 리내청년,
이 사람 눈동자가 이제보니 회색이네-_-
깍아놓은 듯한 턱선과 날카롭진 않지만 오똑한 콧날은 분명 미끈해 보였고
가소라는 사람만큼 투명해 보이진 않았지만 하얗고 깨끗한 피부는
분명 여자피부보다 더 고와보였다.
절묘한 균형의 자연산 쌍커풀과 가로로 긴 눈은 섹시해 보였고
얇은 것 같지만 입술곡선이 그려놓은 것만 같은 그의 얼굴은 전체적으로
주진이가 그의 모난 성격을 용서할만큼이나 잘생기긴 했었지만
그래봤자 그게 뭐! 뭐! 얼굴이 돈주냐? -_-^
“부담스러운데 그 얼굴 좀 치워주지 않을래요?
계속 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간 당신 사시되요-_-”
“……진짜 콩알만한게.”
“큭, 리내야. 그만해라? 아, 미안. 이 녀석 성격이 원래 이래, 귀엽지? ^^
근데 진짜 둘다 열일곱살이야? 우리보다 어리잖아.
큭, 미안. 졸지에 할마씨 만들었네…”
…할마씨-_-;
대체 저 거친 성격 어디가 귀엽다는건지,
그게 어떻게 귀엽다는 표현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인지 혼자 되새김질 해보며
문득 주진이도 갑자기 말수가 줄어든 것 같아 걱정되어 옆을 돌아보자
이내 구석에서 베이스를 만지며 웅얼거리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는 주진이가 보였다.
그래, 바쁘구나-_-;
“저기요, 있잖아요. 이름이 정이예요? 네?”
“…(끄덕끄덕)”
“근데요, 있잖아요. 오빠는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끄덕끄덕)”
“근데요, 저기요, 오빠는 몇살이예요?”
“………(손가락으로 힘겹게 숫자를 표현해 보려 애쓰는-_-)”
주진이는 분명 처음에는 가소라는 사람이 마음에 있었던 것 같지만
이제는 또 검은남자, 정이라는 사람한테 마음이 옮겨간 모양이였다.
주진이는 긍정적, 부정적으로 구분짓는 의미가 아닌
그냥 단순하게 마음이 갈대같은 아이였다-_-
나는 그나마 정이라는 사람은 그렇다고 넘길 수 있었지만
계속 희귀한 동물을 구경하듯 내 주변을 빙빙돌며
나를 상당히 부담스럽게 노려보는 리내라는 사람의 시선과
벽을 보고 혼자 중얼거리며 이따금씩 괴성을 질러대는
균이라는 사람과 더 이상 그 비좁고 탁한 곳에 있고 싶진 않았다.
그들과 계속 같이 있다간 내 머릿 속도 굉장히 희안하게 물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_-
“저기요, 저희 이만 가볼께요. 그러니 알바비 챙겨주세요-_-”
“응? 뭐라구?”
“아르바이트비요, 전단지 돌렸잖아요.
시간당 싸게 2천원씩만 받을테니까 2시간치, 8천원 챙겨주세요.”
난 나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날 노려보는 리내라는 사람을 어렵게 띄어내고
그나마 가장 의사소통이 원할한 가소라는 사람에게 살짝 말을 걸어
허리에 손을 걸치고 다른 한손을 내밀며 돈을 달라는 몸짓을 해보였다.
천하의 마두서 사전에 무보상 노동이란 공식은
새겨졌다 하더라도 이미 박박 찢어 꿀떡 삼켰을 터!
…일한만큼 돈 내놔라, 채무자-_-
“푸핫, 너 지금 나한테 돈달라는거야? 알바비라구?”
“아르바이트 못구해서 그렇게 부탁하신거 아녜요?
안그랬음 저 절대로 안했어요, 얼른 줘요.”
지금 내 옆에 주진이가 있었다면 난리가 났겠지만
어느새 이젠 벽을 보며 괴성을 지르는 균이라는 사람에게로 옮겨간 주진이는
내가 가소라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든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래, 친구야. 계속 거기 있어주려무나.
내가 니 몫까지 챙겨 받을테니-_-
“흐응… 그랬단 말이지? 응?”
뭐야, 이 사람.
아까부터 느끼는거지만 처음에는
그렇게 세상물정 모르는 것 같은 표정만 짓더니
지금은 점점 표정이 옅어져간다.
이따금씩은 아예 표정이 사라지기도 할만큼.
가소라는 사람은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계속 내 눈동자를 곧게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야! 이중에 현금있는 놈들은 자진해서 까라. 얼른.”
“썅! 너 지금 내가 지갑 털린거 알고 그 지랄이냐?”
“리내 너한테는 바라지도 않아^^
정아, 균아. 둘 중 아무나 빨리 까봐. 나 지금 그지야.
아까 돌쇠 간식 사느라 다 털었어.”
“…(도리도리)”
“정이 없어? 그럼 균이.”
“캬캬캬! 난 불 좋아하잖냐. 부르저아~
카드밖에 없는데, 교통카드-_-”
모두 돈이 없다는 말을 확인한 가소라는 사람은
내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귓가에 대고 조용조용히 말했다.
“빈곤한 동생아, 미안한데 지금 우리가 이꼴이라서 말야.
어쩌지? 외상은 안될까? 응? 킥…
원한다면야… 몸으로도 때울 수 있고… 응?…”
난 순간 얼굴이 무섭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뭐야! 사람을 뭘로 보고!
난 그다지 흥분을 자주하는 성격은 아니였지만
이 사람들과 있으면 내가 조금씩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난 내가 무례한 말을 한 가소라는 사람을 확 밀쳐내고
의자 위에 놓아두었던 가방을 집어들며 말했다.
“됐어요, 사전쯤이야 하루만 고쳐쓰면 되니까.
주진아! 그만 가자!”
“뭐? 벌써?”
벌써라니-_-
그럼 너한테 지금 적절한 때는 언제쯤인데!
난 영문을 모르겠다는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주진이의 손목을 낚아채듯이 잡아끌고는
문을 향해 큰걸음으로 걸어갔다.
나가고 말겠어! 뭐야, 대체!
하지만 이런 내 의지는 문 손잡이를 막 잡으려는 순간
내 앞을 가로막은 가소라는 사람 때문에 잠시 멈춰야만 했다.
“아아~ 미안미안. 미안해, 응?
장난 좀 친건데 그렇게 화낼 줄 몰랐어, 미안^^*”
“됐으니까 좀 비켜줘요.”
“야, 가게 냅둬. 지 발로 나가준다는데 왜 말려? 가라그래.
너한테 말 싸가지 없이 하는거 보면 싹수 노랗네, 그냥 보내라.”
리내라는 사람이 하는 말은 여전히 내 말초신경을 자극했지만
어쨌거나 나가고 싶은 내 의지와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이니
내 그에 반응하진 않으리라. 이미 충분히 스팀 오르거든? -_-^
난 내 앞을 가로막은 가소라는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또박또박한 말투로 비켜달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미안해… 응?… 화내지마…”
“뭐, 뭐예요. 왜 울려고 그래-_-;;”
“있잖아, 우리 있잖아, 8시에 공연하거든?
거기서 공연하면 콧수염 아저씨가 끝나고 돈줘. 그거 줄께. 응?
공짜로 우리 공연도 보구 그러면 되잖아, 빈곤한 동생… 큭…”
…또 놀렸다-_-
순식간에 무슨 연예인마냥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얼굴로 사과를 하더니
끝마무리는 빈곤한 동생이란다.
너도 역시… 만만치 않은 놈이로구나아!!
“공연이요+_+??”
…실수했다.
내 손에 손목이 붙잡혀 있는 주진이의 눈이 반짝인다.
제길… 또 텄군-_-;
난 이미 주진이가 공짜공연이란 말을 듣고 그냥 넘어갈리는 없다는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하는 수 없이 가소라는 남자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돈 받는다, 액수가 중요한게 아니다.
성질나서 챙겨받고 말아야 그나마 이 기분이 풀리겠다.
내 그 지폐의 감촉을 손으로 확인하는 순간 그나마 이 굴욕이 씻겨질 것인즉!
“하… 알았어요. 끝나고 돈줘요-_-”
“큭, 너 사는거 진짜 빈곤한가부다.
아무튼 결정됐으면 이제 그만 가야지? 사실 우리 지각이거덩^^”
시간은 이미 8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 쓴 인간 : ruyan
… 쓴 인간한테 메일 보내기 : kasiruy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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