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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터미널에서 찐빵과 캔커피를 사서 맨 먼저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다. 행선지를 정한 게 아니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표를 산 것이다. 바로 버스는 대구 방면 고속도로에 올라 쭉 달리다가 언양에 들러 내릴 사람은 내리고 탈 사람은 탔다. 닦지 않아 먼지가 낀 유리는 안팎의 온도 차이로 성에가 녹아 축축하다. 또렷하지 않은 밖의 풍경을 보며 먹는 아침밥이 썩 훌륭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과 따끈한 캔커피를 다 비우기 전에 버스는 경주에 도착했다. 거리에서 눈에 띄는 게 찰보리빵을 파는 가게들이다. 집집이 원조 또는 최고라는 걸 과시하는데,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3대째 업을 잇는다는 집도 수두룩하다. 시내를 벗어난 버스는 국도를 이용해 동으로 달린다. 겨울 여행을 나설 때는 이쪽을 원하지 않았다. 소백에서도, 의성에서도, 영천에서도, 눈에 실증을 느껴 남으로 가고자 한 내 생각은 어느 순간부터 글러 버스를 바로 갈아타는 재미에 빠졌다. 그 바람에 길 나서고서 간밤 눈을 붙인 것 외는 거의 버스에서 지내다시피 했고, 지금도 그렇다. 포항 터미널에 내려서자 찬바람이 칼날처럼 볼을 때린다. 이번 겨울 여행에서 내가 절실히 느낀 건 끽연이다. 자주 돌아다니지 않으므로 이제는 움직이는궁전이란 말에서 움직이는 말이 무색해 올해는 '궁전'이라 들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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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으로 겨울 여행에 나섰다면 맘껏 끽연을 즐겼을 것이다. 오른손가락에 한라산을 끼우고 왼손으로 여유롭게 핸들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경우 눈은 전방에 집중할 수밖에 없으므로 좌우로 돌릴 겨를이 없다. 오로지 안전 운전을 위해 전방에 시선을 두어야 하므로, 결코 창밖 풍경을 여행의 묘미로 즐길 수는 없어도, 담배가 당기면 피우면 그만이다. 대중교통 여행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내게는 큰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버스 안에서는 피우지 못한다는 게 머릿속에 박혔으므로 포기했으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터미널 안뿐 아니라 승차 홈을 비롯한 바깥도 금연이 나붙은 건 어디건 같았다.
뚜렷한 여행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버스를 갈아타는 것에 재미를 붙인 여행은 그로 하여 한라산을 맘껏 피울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습관적으로 나는 담배를 꺼내기도 했다. 그간 탄 버스는 빈자리가 더 많았고 뒤에서 몰래 피우고 싶은 충동마저 일었다. 끽연하고픈 걸 꾹 누르고 갈아타려고 잠시 내린 터미널에서 한 개비 물면 처음 담배를 배울 때처럼 핑 돌며 현기증이 일기도 했다. 이로 말미암아 버스 여행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찬바람이 볼을 때리지만 피우는 게 우선이다. 여기까지 오는 두 시간 동안 어렵사리 참았으니 깊이 들이마셨다 길게 내뱉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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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시린 건 별것 아니다. 느긋하게 다 피우고 건물 안에 들어가 여태껏 한대로 바로 출발하는 버스를 찾았는데, 공교롭게 영천이다. 그저께 아침 거기서 시작한 올겨울 여행이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런데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 시간이 못 되어 포항에서 출발한 완행버스는 영천터미널에 도착했다. 이틀이 지났는데도 구석구석 녹지 않은 눈이 그대로다. 내려서 마찬가지로 끽연부터 했다. 묵직한 배낭을 멘 채로 한 개비 피우고서 자잘한 글씨가 써진 벽을 올려보니 바로 이어지는 버스가 없다. 그나마 배차 간격이 짧은 게 부산, 포항, 대구, 경주다.
이 중 대구를 빼고는 이틀 만에 모두 잠시 스친 곳이므로 도로 갈 필요가 없다. 이때 한 생각이 났다. '비해당을 비운 지 며칠 되었어!' 이로 말미암아 의성행을 보니 3시간쯤 남았다. 영천은 내 고향이므로 뒷골목까지 기억을 더듬으면 찾을 수 있다. 영천에서 대중교통으로 의성에 가는 다른 방법이 있단 게 퍼뜩 생각이 났다. 미끌미끌한 빙판길을 뒤뚱거리며 영천역에 갔다. 상, 하행선 어디에도 의성이란 지명이 없다.
"의성은 어떻게 가요?"
"북영천역에 가야 합니다."
"어딘데요?"
"무인역으로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밖에 안 나와요."
북영천역에서 의성으로 가는 기차가 오후 4시 10분에 있다는 말과 함께 그녀는 택시 요금정보까지 말해주었다. 1시간 이상 남았으므로 걷기로 했다. 바람을 피울 수 있는 상설시장과 금호강을 낀 된바람을 조금이라도 적게 맞는 뒷골목을 택했다. 도중에 북영천역에 대해 몇 번이나 물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 고향에 그런 역이 어디에 있단 게 기억에 저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문 오거리에서 28번 국도 의성방면으로 방향을 잡아, 간식거리부터 챙겼다. 시원한 캔맥주와 새우깡 값을 계산하며 주인에게 북영천역에 대해 물었다.
거기서 몇백 미터 앞에서 반대로 걷는 사람에게 또 물었다.
"부근에 역이 있다고 하던데요?"
"저기 있잖는교."
투박한 사투리로 말하는 사람이 가리키는 곳을 얼른 보아도 건물이 없다.
"안 보이는 데요?"
"아, 저기 들어가는 곳이라고 쓰였잖는교."
철망 친 길목에 들어서니. 저 앞에 '타는 곳!'이라 쓰였다. 거기서 몇 미터 앞에 작은 건물이 있는데 그게 북영천역이었다. 무인 간이역 안에는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여섯이 양쪽 긴 나무의자에 앉았다. 위는 검게 반지르르하고 옆은 녹슬어 검붉은 선로만 빠끔하고 무인 간이역은 온통 하얗다. 가고자 하는 방향 저 먼 산도 눈에 덮였다. 열차가 들어오는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하나 둘 사람이 늘었다. 역사 안에 있던 사람들이 열차가 곧 들어온다는 안내방송을 듣고는 서둘러 나온다. 멈춘 열차의 옆구리가 볼만하다. 그림으로 도배한 몇 칸 안 되는 낭만 열차, 끝 칸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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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세요?" 출발하고서 승무원이 다가왔다.
"영주요!" 서슴없이 내가 대답했다.
무인이므로 열차를 타고 요금을 계산하면 된다는 영천역에서 들은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목적지를 말한 건 의성이 아닌, '영주'다. 비해당 가려면 의성에 내려야 마땅하거늘 지나치겠다는 뜻이다.
첫댓글 기차를 타본지 얼마나되었는지 까마득합니다. 예전에 기차로 여행할때 기차안에서 파는 군것질거리는 여행중에 빠질수 없는 재미였는데 요즘은 기차에서 군것질거리를 팔지 않는다하니 여행의 묘미중 하나가 빠지는것 같습니다.
<요즘은 기차에서 군것질거리를 팔지 않는다하니 여행의 묘미중 하나가 빠지는것 같습니다. > 따라서 미리 준비해서 타면 되요, 예전의 낭만은 없어도 열차안에는 요즘 노래방 시설까지 있더라고요. 기차 여행을 자주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