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우리 인생의 생활이 관혼상제(冠婚喪祭)속에서 살아왔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네 가지 의례는 중시되어 왔고, 특히 상례와 제례는 그대로 우리의 일상 생활이었다. 인간이 동물의 생활과 차이점은 윤리, 도덕의 법칙에 따라 인간의 예의 범절을 지키는 일이고, 일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날을 기해 행하여지는 갖가지의 통과 의례들은 어느 민족, 국가, 사회에서나, 어느 개인에게 있어서나 성대히 시행하고 엄숙하게 거행되기 마련이다. 베트남 사람들도 이러한 통과 의례에 관한 한 예외일 수는 없다. 북속(北屬)시대 이래 베트남은 이러한 갖가지 통과 의례에 중국의 영향을 심대하게 받았는데, 이는 예(禮)를 실천 윤리로 여기는 중국의 유교(儒敎) 문화가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깊이 스며들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쭈레(Chu Le-朱禮), 응이레(Nghi Le-儀禮), 레끼(Le Ky-禮記) 3권의 책을 근간으로 하여 의례의 기본으로 삼았고, 그 내용은 주로 조정의 크고 작은 의례에 관련된 것이었다. 후대에 이르러 베트남 상류 사회의 선비들이 일반 백성을 위한 예의 범절에 관한 책을 편찬하였는데, 주요한 4가지 분야가 꽌(Quan-冠), 혼(Hon-婚), 땅(Tang-喪), 떼(Te-祭)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베트남은 54개 종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민족마다 각기 독특한 통과 의례들이 있어 개별 소수 민족들의 통과 의례를 연구하는 것도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과학의 발달로 인해 어느 나라든지 고유의 전통 문화가 사라지거나 간소화됨으로써 고유의 전통성을 점차 잃어가고 있지만, 베트남에서 가장 보편적이고도 중요한 통과 의례를 통하여 일상에 나타난 희비애락을 중심으로 베트남인들의 삶과 의식의 편린이나마 이해할 수 있으리라 판단되어, 꽌(Quan-冠), 혼(Hon-婚), 땅(Tang-喪), 떼(Te-祭)에 관한 의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꽌 레(Quan Le-冠禮)
꽌레(Quan Le-冠禮)는 사내아이에게 20세가 되면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게 하는 의식이다. 즉, 관(冠)을 머리에 얹어 주는 의례를 행함으로써 어른이 되었음을 알리고 비로소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어른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의례이다. 성인이 되면 거기에 따르는 권리가 부여되나, 책임도 지워진다는 사실을 당사자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꽌레(Quan Le-冠禮)의 본 뜻이다. 베트남에서의 꽌레는 북속 시대에 중국의 영향으로 일부분의 계층에 적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나마도 후(後) 레(黎)조 말에 와서부터 차차 사라지기 시작하여 현재 베트남 풍습에서는 완전히 사라진 의례이다.
Ⅲ. 혼 레(Hon Le-婚禮)
혼인이란 이성(二姓)의 결합이요 백복의 근원이라고 한다. 남녀 두 사람이 서로 만나서 백년해로하여 평생을 함께 살고 고락을 같이 할 관계를 맺는 것이다. 혼인제도의 기원은 원시시대의 습관에서 발달한 것인데 원시시대에는 남녀가 공동으로 생활하고, 공동 자손을 가지게 되어 육체적으로 강하고 민첩한 남자는 가족의 보호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근본적 방안을 담당하고, 여자는 육체적으로 유약하고 생리적인 선천성에 의하여 자식을 낳고 그 양육을 맡는 것이 오랜 습관이 되어 공동의 목적을 위하거나 공동의 자유를 위해서 질서의 필요성을 인식 규율화하여 혼인이라는 제도로 발전하였다. 베트남에 있어서 혼인의 변천도 인류 혼인사의 테두리 안에서 변천하였는데, 문헌에 의하면 베트남 최초의 고대 왕국 반랑(Van Lang-文郞)국에서는 수혼(嫂婚)의 풍습 및 다부일처(多夫一妻)의 혼인 풍습이 있었으나(유인선 1991), 기원전 111년 중국의 북속시대 이래부터 중국의 풍습에 따라 육례(六禮)로 혼례를 거행하였다. 북속(北屬)시대에 베트남 사람들은 중국 송나라 주문공(朱文公)의 가례(家禮)를 근본으로 하여 중국 한(漢)족의 풍습에 따라 의례를 진행하였다. 쩐(Tran)조에 와서야 호시즈엉(Ho Si Duong)이 자신의 호를 따라 토마이지아레(Tho Mai Gia Le)라는 가례집을 편찬하자 비로서 베트남 풍습에 따라 혼례와 장례를 치르게 되었고 레(Le)조에 와서는 레 뀌 돈(Le Qui Don)이 타인 투언 지아레(Thanh Thuan Gia Le)라는 가례집을 편찬하였는데, 이 책은 장례와 제례만을 다루고 관례와 혼례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때문에 베트남에서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의례준칙은 없다고 할 수 있고, 명문가에서는 주문공의 '가례(家禮)'와 호시즈엉(Ho Si Duong)의 '토마이지아레(Tho Mai Gia Le)'를 모두 참고하여 지방의 관례와 풍습을 상호 비교 응용하여 가례를 진행하였다. 따라서 지방마다 가문마다 의례 절차가 서로 상이하였고 지방과 가문에 따라 특이한 의례가 생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가례집은 조정이나 조정 대신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어서 일반 백성들이 이러한 가례집을 따라 의례를 진행하기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이리하여 일반 백성들은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맞춰서 가정의 각종 의례를 점점 간소화시켰으며, 중국의 지배시기에는 중국의 습속에 따라 관례를 치르기도 하였으나 허우레(Hau Le-後黎)朝 말부터 꽌레(Quan Le-冠禮)는 사라지기 시작하여 현재 베트남에 꽌레(Quan Le-冠禮)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전해지고 있는 가례로는 혼(Hon-婚)례, 땅(Tang-喪)례, 떼(Te-祭)례 3가지 뿐이다. 그 가운데 육례에 의한 혼례 절차를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납타이(Nap Thai-納采)
혼인은 중매쟁이의 중매 역할로부터 시작되는데 중매쟁이가 신랑과 신부집을 오가면서 양가의 가교 역할을 하고 나면 어느 정도 의사를 타진하게 되고 서로 긍정적인 결과가 예상되면, 신랑 측에서 첫 번째 혼서와 함께 기러기를(또는 거위) 신부 측에 보내어 혼인 의사를 공식 전달하는데 이를 납타이(nap thai-納采)라고 한다. 이 때 사용되는 기러기는 서양에서의 비둘기처럼 소식을 전하는 의미를 갖는다. 기러기는 신랑 측에서 귀댁의 규수를 신부로 맞이할 의사가 있음을 전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혼약을 청하는 데 사용된다. 주문공(朱文公) 가례(家禮)에는 "살아있는 기러기(生雁)를 사용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살아있는 기러기가 없을 때에는 나무로 만든 기러기(木雁)을 사용한다"라고 되어있다. 기러기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①기러기는 음양을 따라서 남북으로 왕래하기에 음양에 순응하는 습성을 따서 기러기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설 ②기러기는 두번 짝을 짓지 아니하기에 기러기를 혼례에 사용하였다는 설 ③소식을 전하는 전령조(傳令鳥)로서 기러기를 혼례에 사용하였다는 설이 있다.
2. 번자인(Van Danh-問名)
납타이(nap thai-納采)가 끝나면 신랑 측에서는 택일을 하고 중매쟁이를 통해 두 번째 혼서와 함께 쩌우까우와 술을 보내면서 신부의 생년월일을 묻는다. 베트남의 한(漢)학자 떠이호부이떤니엔(Tay Ho Bui Tan Nien)에 의하면 번자인(Van Danh-問名)의 바른 뜻은 신랑 측에서 신부와 신부를 낳은 어머니의 이름과 나이를 확실히 묻는다는 것인데 이는 이들의 신분과 교육정도를 분명히 알기 위함이다. 이는 어머니의 자녀 양육방식이 딸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도덕한 어머니나 무식한 여자의 딸을 부인으로 맞는 것을 극히 꺼렸기 때문이다.
3. 납깟(Nap Cat-納吉)
신부와 신부 어머니의 이름과 나이를 받아 점을 쳐서 혼인의 점괘가 좋으면 두 남녀가 혼인이 적합함을 조상의 영정이나 위패가 모셔진 반터(ban tho-祭臺床) 또는 사당에 고하고, 신랑 측에서는 신부 측에 예물을 보내면서 점괘의 결과를 통보하는데, 이를 납깟(nap cat-納吉)이라고 한다. 이 때 정혼의 조건을 서로 상의한다.
4. 팅끼(Thinh Ky-請期)
팅끼(thinh ky-請期)예는 납깟(nap cat-納吉)이 끝난 후 신랑 측이 신부측에 세 번째이자 마지막 혼서를 보내 성혼 날짜를 청하는 것을 말한다. 이 세 번째 혼서에서는 신랑측에서 택일한 서너 개를 통보하여 그 중에서 적합한 혼인 날짜를 택하도록 신부측의 의견을 묻는 것이다. 신부측 아버지는 신부 어머니를 통하여 신부에게 택일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은밀히 타진하는데, 이는 딸의 신체 상태를 물어 생리일을 피하도록 함으로써 가장 깨끗한 날을 택하기 위함이며, 동방화촉(洞房華燭)을 밝히는 첫 날 밤을 불편하지 않게 하고, 여성의 정절을 대단히 중요시 여겼던 시대에 순결하였음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함이었다. 이는 중국의 예에 따른 것이며 베트남에서는 정절의 문제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5. 납떼(Nap Te-納幣)
신부집에 혼수와 혼수함을 보내어 혼인의 증명으로 삼는데 이를 납떼(nap te-納幣)라고 한다. 이 때 예물로는 쩌우까우(trau cau), 차(茶). 술, 반(banh)떡, 장신구, 붉은 양초와 약간의 현금이 주종을 이룬다.
6. 턴잉(Than Nghinh-親迎)
턴잉(than nghinh-親迎)은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혼례를 치르고 신부를 맞이하여 오는 예로서 오늘날의 결혼식에 해당한다. 육례에 따른 베트남의 혼례 절차와 현재의 일반적인 혼례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전 통 혼 례
혼 례 절 차
현 재
1.납타이
Nap Thai(納采)
혼담시작. 중매장이를 통해 기러기를 보내면서 혼인 신청
(첫 번째 혼서)
레 잠
(청혼)
2. 번자인
Van Danh(問名)
신부와 신부 어머니 나이와 이름을 물음(두 번째 혼서)
레호이
(약혼식)
3. 납깟
Nap Cat(納吉)
신부와 신부 어머니 나이, 이름을 점쳐서 길함을 얻으면 통보하고, 정혼의 조건 상의
4.팅끼
Thinh Ky(請期)
혼례의 택일을 청함. 男家에서 택한 길일 가운데 女家에 혼인 날짜에 대한 의사를 타진하러 가는 예(세 번째 혼서)
5. 납떼
Nap Te(納幣)
혼담이 이루어지면 혼약의 결정 완료를 위해, 정혼의 징표로 신부집에 혼수함을 보내는 의례.
6. 턴잉
Than Nghinh(親迎)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예를 올리고 신부를 맞아서 돌아오는 예
레르웈 저우
(결혼식)
이러한 육례에 따른 혼례는 베트남 사회제도의 변천으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일정한 절차나 정해진 의례는 아직 없기 때문에 혼사가 있을 때마다 전례를 참고하거나 이웃과 상의하여 편리한 방법대로 혼례를 치른다. 그래서 지방마다 집안마다 풍습이 약간씩 상이하나 대체로 다음과 같은 3가지 절차로 간소화되어 혼례가 진행되고 있다.
가. 레 잠(Le Dam)-청혼
잠응어(Dam Ngo)또는 짬응어(Cham Ngo)라고 하는데 신부집에 사람을 보내 혼인의 의사를 전달하는데, 이는 육례 가운데 납타이(nap thai) 예를 대신하는 예로서 신랑측에서 보낸 혼인의 의사를 신부측에서 수락하면 혼인을 약속하는 것으로 하는 청혼을 하는 절차이다. 만약 부모가 정혼을 해둔 경우에는 두 남녀가 서로 얼굴을 모르므로 처음으로 배우자의 얼굴을 대면하는 '맞선'이기도하다.
나. 레 호이(Le Hoi)-약혼식
레호이(Le Hoi)는 육례중 번자인(Van Danh), 납깟(Nap Cat), 팅끼(Thinh Ky)와 납떼(Nap Te)가 혼합된 예로서, 납떼(Nap Te)에서처럼 레호이에서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예물을 보낸다. 예물에는 쩌우까오(Trau Cau), 차(茶), 술, 반(Banh) 떡과 약간의 돈과 귀걸이, 장신구와 붉은 양초를 예물로 보내는데, 이 가운데 쩌우까우(Trau Cau), 차(茶). 술, 반(Banh) 떡은 필수 예물로서 결코 빠트릴수 없는 예물이다. 쩌우까우(Trau Cau)는 쩌우(Trau)와 까우(Cau)의 통칭으로서 쩌우(Trau)는 쩌우콤(Trau Khong)이란 식물 이름의 약칭으로 일반적으로 쩌우(Trau)로 칭한다. 쩌우까우(Trau Cau)를 예물에 빠트리지 않는 것은 쩌우(Trau)라는 식물은 담쟁이처럼 그 줄기를 나무나 어떤 것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습성이 있는 식물로 대개 까우(Cau)나무에 붙어 덩굴이 기어올라가는 식물이다. 그래서 쩌우까우처럼 부부가 서로 의지하며 백년해로하라는 의미를 담고있어 결혼 예물에 빠질 수 없는 예물이 되고 있다. 여기에 얽힌 설화는 다음과 같다.
훙브엉 시대(B.C 2879-B.C 258)의 4대 왕인 훙비엡(Hung Viep)이 제위시 떤(Tan)과 랑(Lang)이라는 형제가 살았는데, 두 형제는 미남인데다가 얼굴이 쌍둥이처럼 아주 닮았다. 어렸을 때 부모를 여윈 이들은 이웃의 학자 집안인 르우(Luu)씨로부터 도움을 받아 성장하였다. 르우 선생은 이 두 형제와 동갑 나기의 딸이 하나 있었다. 이 아가씨는 아주 아름다웠기에 두 형제는 모두 이 아가씨에 반하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이 아가씨는 이들 형제 가운데 나이가 많은 청년과 결혼키로 마음을 먹었으나, 쌍둥이처럼 닮은 형제 가운데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안이 밥을 먹을 때 지켜보다가 누가 먼저 젓가락을 상대방에게 건네주는 가를 보기로 하였다. 젓가락을 건네 받는 쪽이 형이고, 젓가락을 건네주는 쪽이 동생일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아가씨는 젓가락을 건네 받은 떤(Tan)과 결혼하여 시동생인 랑(Lang)과 함께 한 집에서 같이 살게되었다. 한편, 들에서 일을 일찍 마치고 저녁나절 어둑어둑한 집에 들어온 동생 랑을 보고 형수는 자기의 남편인 떤으로 착각 시동생인 랑을 힘껏 껴안았다. 그 때 마침 집에 돌아온 떤이 이를 목격하게 되었고, 형수의 실수였지만 결국 동생은 집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을 떠난 동생 랑은 이곳 저곳을 방황하다가 어느 강가에 다다르게 되었는 데, 배도 고프고 몸도 지치고, 또한 의지하며 살던 형과 헤어져 집을 떠나게 된 마음의 충격으로 땅에 쓰러져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리고 죽은 동생 랑은 그 자리에서 커다란 바위로 변하였다. 한편, 동생이 떠나자 형 떤은 동생을 떠나게 한 자신을 후회하면서 동생을 잊지 못해 동생 랑을 찾으러 집을 나서게 되었다. 부인을 버리고 집을 떠나 동생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우연히 이 바위에 이르렀고, 바위를 발견한 순간 좀 더 먼 곳을 바라보면서 동생을 찾아보기 위하여 이 바위 위로 올라갔다. 동생의 화신인 이 바위는 따뜻하게 그를 맞이하였고 피곤에 지친 형은 결국 이 바위에서 쉬다가 바위를 껴안고 죽었다. 그리고 형은 죽어서 바위 옆에 커다란 까우(Cau) 나무로 변하였다. 한편, 남편을 떠나보낸 부인은 오랫동안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이제는 부인이 직접 남편을 찾아 나서기로 하였다. 부인은 기약도 없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남편을 찾아 헤매던 어느 날 저녁, 무서운 짐승을 피해 다다른 곳이 우연하게도 이 커다란 까우(Cau) 나무가 서 있는 바위 옆이었고, 배고픔과 피곤에 지친 부인은 커다란 까우(Cau) 나무에 기대어 쉬다가 그녀 역시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떤의 부인은 죽어서 쩌우(Trau)라는 식물로 변하였다. 이 쩌우(Trau)의 덩굴은 까우(Cau) 나무에 덩굴을 타고 올라가면서 사는 식물이다. 이 사실을 알게된 마을 사람들은 그 곳에 사당을 짓고 형제간의 우애와 부부애를 널리 기렸다. 어느 해 극심한 가뭄이 들자 세상의 온갖 초목들은 다 말라죽었지만, 이상하게도 오직 까우 나무와 쩌우 덩굴만은 생생히 살아 있었다. 그래서 가뭄으로 굶주린 사람들은 쩌우(Trau) 잎과 까우(Cau) 나무 열매 그리고 불볕 같은 가뭄으로 불에 탄 바위 가루를 섞어서 허기를 잊고자 우연히 먹어보니 신기하게도 상쾌한 맛을 내면서 색이 빨간색의 즙으로 변하였다. 그래서 이 쩌우까우가 우애와 변함없는 부부애의 상징으로 베트남의 구정 때 가장 보편적인 선물이자, 결혼식에 빼놓을 수 없는 예물이 된 것이다. 요즈음에도 베트남 할머니들이 이빨이 까만 것은 이 쩌우까우를 씹어서 흑치(黑齒)로 색깔이 변한 것이다.
또한, 예물중 차(茶)를 필수 품목으로 꼽는 것은 차(茶)는 씨를 심으면 옮겨 심을 수 없고 옮겨 심으면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하여 차(茶)는 오직 한 사람 만을 따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신랑측이 신부에게 오직 자신만을 믿고 따르라는 희망 사항을 신부측에 전하는 의미가 있으며, 이를 절대 어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레호이(Le Hoi) 날에 신랑측에서는 빨간색의 양초를 두 개 가져가는데 보통 용(龍)과 봉황(鳳凰)이 조각된 양초로서 신부 측 조상의 영정이나 위패가 모셔진 반터(ban tho-祭臺床)에 촛불을 점화하고 자신의 목적을 신부 조상에게 보고하는 예를 갖춘다. 레호이를 거치면 정식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결혼을 공인 받는 것이 되며, 배우자의 부모를 어머니 아버지로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요즈음과 달리 부모의 승낙 없이 자의로 상대방을 만날 수는 없었다. 레호이가 끝나면 신랑측에서는 중매인을 통하거나 직접 신부집에 가서 혼인 날짜를 정하는데 베트남의 대부분 가정이 음력을 따라 길일을 택한다. 하지만, 20세기말에 이르러 혼인 날짜는 음력에 구애받지 않고 주말을 택하는 경향이 늘고 있는데, 이는 거리가 먼 곳에 살거나 직장에 다니는 친척, 친구들을 많이 참석할 수 있게 하여 결혼을 축하할 수 있도록 배려하려는 목적에서이다.
예물은 신부 측에서 요구한 예물이 있으면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 신부가 사용할 예복, 귀걸이, 반지는 반드시 예물로 준비하여야하고 차(茶), 술, 쩌우까우 역시 빠지면 안 되는 필수 예물이다. 그 외에도 반짜이(banh trai), 쌀, 돼지고기, 현금도 가지고 간다. 이 지참금을 띠엔동(tien dong-錢銅)이라고 부르는 지역이 있고, 띠엔 쩌(tien cho)라고 부르는 지역이 있다. 띠엔 동(tien dong-錢銅)이라는 부르는 것은 아마 옛날에 화폐가 없던 시절 동(銅)으로 구매 활동을 하였기 때문으로 띠엔 동(tien dong-錢銅)으로 부르며, 예전에는 놋쇠나 은, 아연이 아닌 반드시 동(Dong-銅)으로 지참금을 지불하였기 때문으로 본다. 아마도 오늘날 베트남의 화폐 단위가 동(Dong)으로 된 연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겠다. 또한 띠엔 쩌(tien cho)로 부르는 것은 말 그대로 신부집 권속들을 대접하기 위한 식품 구입 비용으로 쓰거나, 신부측이 결혼식에 필요한 혼수용품을 사라고 건네주는 혼수 구입비용을 직설적으로 쉽게 "띠엔 쩌(tien cho)" 즉, '시장보는 돈'으로 부르는 것이며, 중부 베트남의 꽝아이(Quang Ngai)지방에서는 이 돈을 띠엔 낫(tien nat)으로 부르는데, 번역하면 각종 혼수 용품을 사기 위해 "쪼개지는, 흩어지는 돈"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다. 레 르읔 저우(Le Ruoc Dau)-결혼식
레 르읔 저우(Le Ruoc Dau)는 레부뀌(Le Vu Quy-于歸禮)라고도 하며 이는 신부가 신랑집으로 돌아온다는 의미이다. 육례 가운데 턴잉(Than Nghinh-親迎)에 해당하며 혼례의 마지막 예에 해당한다.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신부를 맞이하여 데리고 오는 예를 이르는데, 신랑은 예물로 바인짜이(banh trai), 혼수의복, 보석 등 예물, 술, 차(茶), 쩌우까우등 성대한 예물을 신부 집에 가지고 가서 신부 조상의 반터(ban tho-祭臺床)에 예(家先禮-le gia tien)를 표하고, 신부 부모에게 신부를 낳아 길러준 은혜에 감사하다는 예를 표하고 신부를 데리고 오는 것으로써 혼례는 막을 내린다. 일반적으로 반터(ban tho-祭臺床)에는 4번의 고두(叩頭)례와 두 손을 모아 1번 읍(揖)을 하며, 신부 부모에 대한 예는 2번의 고두(叩頭)례와 1번 읍(揖)을 한다. 신부를 맞으러 가는 행렬의 인도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고,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나이 많은 어른이 선도하며, 때로는 자식 복이 많은 어른이 선도하는 데 이는 신랑 신부가 자식 많이 낳고 다복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이다. 이 어른이 혼례를 주관하는 주혼(主婚) 역활을 담당하며, 뒤를 이어 신랑측 집안 사람들이 따르고 신랑은 신랑 들러리 사이에서 따라간다. 신랑은 술과 싱싱한 쩌우까우를 담은 예물 쟁반을 들고 따르며, 신랑 뒤에는 기타 예물 쟁반을 든 행렬이 끝으로 신랑 측 친척들이 뒤를 잇는다. 신랑이 들고 가는 예물 쟁반에는 4 조각(또는 짝수)의 쩌우까우, 몇 개(반드시 짝수로)의 작은 잔과 붉은 술이 담겨진 술병을 가지고 간다. 신부집 문 앞에 다다르면 도착하였음을 알리는 폭죽을 터뜨린다. 신랑은 들고 온 예물 쟁반을 뒤따라오는 들러리에게 행렬에 넘겨주거나 신랑측 어른 대표에게 인계하고 신부집 앞에 서있으면 신부측 대표가 맞이하면서 신랑이 도착하였음을 알린다. 이때 신랑이 신부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저호앙다오(Gio Hoang Dao-黃道吉時)"라 하여 택일뿐 만 아니라 택시(擇時)까지 되어야 신부측 집에 들어갈 수가 있으며, 택하여진 길시(吉時)보다 일찍 도착하였으면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이 때 신부측에서도 기쁨과 신랑측의 내도를 환영하는 폭죽을 터트리기도 한다. 신부를 데리고 나오기 전 신부집에서 행하는 의식 절차가 있는데 우선 신랑 측은 가져온 예물을 신부 조상의 제대상(祭臺床)-북부 지방에서는 즈으엉 터(Giuong Tho), 남부 지방에서는 반터(ban Tho)라고 함-위에 올려놓는다. 예물이 제대상 위에 진열이 되면 신랑측 주혼(主婚)자가 예물을 가져온 상자를 열고 덮어온 붉은 보자기를 들어내고 인사말을 한다. 인사말이 끝나면 신부측 조상을 모신 제대상에 향(nen huong)을 피운다. 이 결혼식에 향을 피우는 사람은 아무나 향을 피우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신부의 아버지, 신부의 오빠나 남동생이 향을 피워야 한다. 만약 신부의 오빠나 남동생이 향을 피우면 신랑측에서는 향대(香代)라고 하여 약간의 돈을 주어야 한다. 향이 피워지면 신랑은 4번 고두(叩頭)례와 1번 읍(揖)을 하고 이어서 신부가 따라서 예를 올리는 데, 요즈음에는 신랑 신부가 동시에 조상에 대한 예를 올린다. 조상에 대한 예가 끝나면 이어서 신부가 부모에게 2번의 고두(叩頭)례와 1번의 읍(揖)을 함으로써 신랑은 자신의 신부를 낳아 주시고 양육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신부 또한 행복한 결혼을 성사될 수 있도록 키워주신 부모에 감사의 예를 표한다. 최근에 와서는 신부의 부모가 절 받기를 사양을 하여 생략되기도 한다. 이때, 신부 부모는 보통 새 사위에게 돈이나 금ㆍ은으로 된 예물을 주어서 살림에 보태어 살도록 한다. 시집가는 딸에게도 별도의 장신구 예물을 주기도 하는 데, 이는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꼭 필요할 때 위급할 때 쓰라는 의미에서이다. 신부 부모에 대한 예가 끝나면 신부 가문의 몇몇 다른 조상 제대상에 예를 올리는데 어느 지역에서는 신부 집안의 몇몇 조상 제대상에 예를 올리고 나서 신부 부모에게 예를 올리는 지역도 있다. 모든 예가 끝나면 신부집에서 신랑 측을 위해서 연회를 베푼다. 오늘날 남부 지방에서는 신랑 신부가 나란히 각 테이블을 돌면서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참석한 하객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고, 얼굴을 익히며, 하객들은 그 때에 테이블마다 결혼 축의금을 모아 직접 신랑 신부에게 건네주면서 덕담을 나눈다. 신랑집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저호앙다오(Gio Hoan Dao-黃道吉時)까지 기다리며, 신부는 의복을 단정히 하고 화장과 각종 장신구로 한껏 치장을 한다. 신부측에서는 수명의 친척과 신부 들러리들이 신부를 따라 신랑집으로 가는데 신부 들러리는 신랑 들러리와 마찬가지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들이 들러리로 선정된다. 이는 미혼의 신랑 들러리들에게 미혼의 아가씨들을 소개 또는 대면할 기회를 준다는 의미가 있다. 신부가 주혼자(主婚者)의 인도로 신랑집으로 출발하기 전 다시금 폭죽을 터트리며, 신부 어머니는 딸을 방으로 불러 주의 사항을 전달하고 약간의 돈과 9가지의 봉의침(縫依鍼)을 건네준다. 또한, 이 봉의침의 사용 방법을 일러준다. 이 봉의침은 머리핀, 비녀, 브로치 등과 같은 것으로 특별히 유용한 것이다. 이는 첫날 밤 신랑이 어떤 발작 증세로 경련을 일으켜 복상사하거나 위험한 경우에 봉의침을 이용 응급 조치함으로써 갑자기 마비된 신경을 자극 피를 유통시켜 소생시키는 데 쓰인다. 한편, 신랑집에서는 신부를 데리고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며 대문 문지방 앞에 화로(火爐)를 피워 놓는다. 문지방을 넘을 때 신부는 이 화로 위를 밟고 지나가야 한다. 화로를 밟고 지나가는 풍습은 지나갈 때 불꽃이 신부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악령을 다 태워 없애고 지금까지 신부에게 독설을 퍼부었거나 흉을 보았던 사람들의 악담을 태워 없애 버린다는 풍습에 따른 것이다. 신부가 도착하면 신랑 어머니는 집안에서 사용중인 보이 단지(binh voi)를 들고 잠시 이웃집으로 건너간다. 이는 집안 살림 권한을 새로이 부임한 내상(內相)에게 모두 이양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보이 단지(binh voi)는 가정 살림살이의 기본 재산을 의미하며, 보이 단지(binh voi)를 인계 받으면 신부는 이제 시댁 살림을 도맡아 꾸려나가야 할 책임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풍습도 현재는 사라져가고 있는 풍습중의 하나로서 이제는 보이 단지(binh voi)를 이웃으로 잠시 가져갔다가 되가지고 오는 풍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풍습이 되었다. 반터(ban tho-祭臺床) 앞에서 신부가 신랑 조상의 대한 예(家先禮-le gia tien)가 끝나면, 신랑 어머니는 가져갔던 보이 단지(binh voi)를 들고 이웃에서 다시 돌아오며, 이 때 신부는 시부모에게 비로소 예를 올린다. 한국의 폐백(幣帛)드리는 예, 즉 현구례(見舅禮)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 계시면 신랑 부모에 앞서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먼저 예를 올린다. 신랑 집안 어른들에게 인사를 올릴 때 어른들은 대개 살림 밑천에 쓰라고 돈을 건네주거나 장신구를 신부에게 선물한다. 신랑의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 이모 등에 인사가 끝나면 신랑의 누이나 동생이 가까운 집안으로 안내하여 친척 조상 반터(ban tho-祭臺床)에 가서 예를 올리려 다니는 데, 이때 신부 들러리들도 따라 다닌다. 가까운 이웃의 친척 조상 반터에 예를 올리기 전 떼떠홍(te to hong-紅絲祭)을 올리는 풍습도 있는데 이는 반터 앞에서 백년가약을 맺게 해준 혼인의 신 응엣 라오(Nguyet Lao) 또는 옹떠(Ong To-絲神)에 감사의 제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떼떠홍(te to hong-紅絲祭)에는 제문을 읽고, 신혼 부부를 도와 행복하게 살게해 달라고 기원한다. 또한, 쩌우까우의 기원이 된 주인공 떤 (Tan)과 랑(Lang) 형제와 떤(Tan)의 부인에 대한 형제애와 부부애를 기리며, 신랑과 신부는 각각 고두례 4번과 1번의 읍(揖)을 한다. 그리고 나서 신랑 신부는 반터(ban tho-祭臺床) 위에 진설하였던 술 한 잔을 반 씩 나눠 마시고, 또한 쩌우까우를 반 씩 나눠 먹는다. 이는 이제부터 부부가 일심동체가 되어 검은머리가 백발이 되고 이가 다 빠지도록 서로 아끼며 사랑한다는 약속인 셈이다. 한편, 신혼 첫 날 밤에 부부가 신방에 들어오면 신랑은 떼떠홍(te to hong-紅絲祭)에 썼던 술 한 잔을 신부와 같이 나눠 마시고, 쩌우까우 역시 나눠 먹는다. 그리고 신부가 먼저 신랑에게 2번 고두례를 하면 신랑은 답례로 신부에게 3번 읍(揖)을 한다. 이는 서로에게 존경의 뜻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레헙껀(le hop can)인데, 한국의 합근례와 방합례(房合禮)의 혼합형이라 할 수 있겠다. 결혼식이 끝난 이틀 뒤 신혼부부는 약간의 예물을 가지고 신부의 부모를 찾아 인사를 올리는데 이를 레판바이(le phan bai) 또는 레라이맛(le lai mat)라고 한다. 이는 한국의 근친(覲親)에 해당한다. 예전에는 이를 니히(nhi hy-二喜:回門)라고 불렀다. 만약 신랑의 집이 멀어서 2일 안에 신부의 친정을 방문할 수 없다면 4일 후에 찾아 인사하여도 무방하며 이를 뜨히(tu hy-四喜)라고 부른다. 레판바이(le phan bai) 때의 예물은 신부 지방의 습속에 따라 준비한다.
Ⅳ.땅 례(Tang Le-喪禮)
세상에 모든 일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마련이다.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생물은 삶이 있고 죽음이 있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출생과 죽음은 일생의 통과 의례 가운데 시작과 끝에 있는 가장 중요한 의례이다. 상례의 의례적 특징은 일생 의례 가운데 가장 마지막 의례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다른 의례들은 통과 의례를 거치는 당사자가 어느 정도 의례의 주체 노릇을 하는 것이 예사이나 상례는 이 세상에서 삶을 마감하는 순간부터 이루어지는 의례이므로 당사자가 의례를 주체적으로 수행할 수 없고 살아남은 사람들에 의해 치러진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자신의 명(命)에 못 죽고 사고로 죽는 것을 복이 없거나 액운이 끼었다고 하는데 룩끅(luc cuc-六極)중의 하나로 간주하여 아주 불길하게 여기었다.
1. 럼 쭝(Lam Chung-臨終)
생명의 출생은 잉태를 확인하는 순간 예사 사람들도 비교적 정확하게 그 출산 예정일을 잡을 수 있지만, 죽음은 전문의조차 임종 날짜를 미리 예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암이나 백혈병 환자와 같이 사망을 확실하게 예견하는 경우에도 그 구체적인 사망일을 미리부터 정확하게 잡기는 어렵다. 죽음은 순서도 없고 예기치도 않게 찾아오나 자연스런 상황에서는 노환이나 질병으로 인해 찾아오는 것이므로, 어느 정도의 인지가 가능하다. 환자의 건강 상태나 병의 종류, 증세, 앓는 정도가 죽음을 예감하게 하는 자료가 되는데, 환자의 병이 점점 깊어지고 증세가 악화되어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임종할 차비를 하고 집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머리를 동쪽으로 하여 누인다. 예를 들면 집의 안방이나 본 채의 중앙이나 죽음을 맞이하기에 올바른 곳에 환자를 눕히는데 이를 찐쩜(chinh tram-正寢)이라고 한다. [예서]에서는 이를 천거정침(薦居正寢)이라고 한다. 이 때가 되면, 객지에 나가있는 자식들과 가까운 가족들에게 사정을 알려서 급히 모이게 한다. 임종때가 되면 자식들은 환자의 손발을 잡고 숨이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는데 이를 럼쭝(lam chung-臨終)이라고 한 다. 임종 때에 환자가 유언을 하게 되면 이를 족보, 가례, 가훈에 기록을 하여 그 뜻을 받들도록 하는데 임종때 남기는 말을 지응언(di ngon-遺言), 또는 지쭉(di chuc-遺屬)이라고 한다. 유언에는 재산 분배 방법, 기타 오랫동안 숨겨져 왔던 것들을 자식들에게 밝힌다. 오늘날에는 유언을 음성으로 남기기 위하여 보통 녹음을 하기도 하며, 유언은 향후 자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의 깊게 듣는다. 옛 풍습에는 유언을 남길 때에 자손들이 혹시 환자에게 스스로 작명한 뗀 투이(ten thuy-追贈名)가 있는지를 묻는데, 뗀 투이(ten thuy)를 뗀헴(ten hem)또는 뗀 꿍껌(ten cung com)이라고도 하며 상식(上食)을 올릴 때 부르는 이름이다. 환자의 상태가 위중하여 뗀 투이(ten thuy-追贈名)를 말할 수 없을 때에는 자손들이 찾거나 이름을 지어 의식을 회복하게 될 때 본인에게 알려 확인시켜 준다. 과거에는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어 의식이 오락가락하게 되면 자식들이 환자의 의복을 새 옷으로 갈아 입혔으나, 오늘날에는 환자가 사망 후 옷을 갈아 입히고 술이나 알코올로 닦아주는데 이는 위생처리의 의미 외에 다른 뜻은 없다. 환자가 잠잠해 지면 임종자는 얇은 솜이나 향(香)불을 환자의 콧구멍 앞에 대어 사망을 확인한다. 솜이나 향(香)의 연기가 움직임이 없으면 사망한 것이다. 사망이 확인되면 간병자는 즉시 젓가락 한 짝을 이빨 사이에 물리는데, 이는 판함(Phan ham-飯含)예를 위하여 상하의 이가 서로 물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나이든 분들 중에는 자신의 죽음을 대비하여 장지를 마련하고 수의, 관을 마련해 놓는 사람들이 있다. 이와 같이 후일(後日)에 쓰기 위해 미리 장만해 놓는 물건들을 꼬 허우(co hau), 꼬터(co tho), 또는 꼬아오꽌(co ao quan)이라고 한다. 터(Tho-壽)는 사후에 관속에서 평안히 오래 누어 있으라는 의미가 있을뿐더러 관마다 'Th -壽'라는 글씨를 새겨 넣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관에 사용되는 관은 대개 노인들이 직접 선정하기도 하는데, 방떰(Vang tam)나무는 재질이 귀하고 지하 땅속에는 습기가 있어 나무가 썩기 쉬우나 이 나무는 잘 썩지 않아 시신 보존에 유리하여 선호되는 나무이다. 수의나 관이 준비되면 죽음을 맞이하는 채비의 일부가 끝난 것이고 다음에는 가정마다 다르지만 부유한 집안에서는 지관(thay dia ly)에 의뢰하여 장지를 선정하고 지관의 지시에 따라 생전에 묘를 만들어 둔다. 이를 싱펀(sinh phan-生墳)이라 한다. 수의, 관, 생분(生墳)등은 모두 남ㆍ녀 부부를 위하여 쌍(雙)으로 만든다. 꼬터(co tho)는 통상 제대상 밑에 보관한다. 임종자는 반드시 환자의 정확한 사망 시각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이는 베트남 사람들의 풍습에 따라 점장이로 하여금 사망일시가 후손들에게 어떤 악영항은 없는지 또는 길시(吉時)에 사망하였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으로, 만약 사망시간이 흉시(凶時)라면 귀신을 물리치기 위하여 사찰의 스님들에게 부적(bua)을 구하여 관에 붙이거나 달팽이를 묘지 4방에 묻어 액운을 피하고자 한다. 옛 베트남 풍속에 따르면 환자의 사망에 즈음하여 다음과 같은 순서로 장례 준비가 진행된다.
1) 투이 히에우(Thuy hieu-追贈名/諡號)
투이 히에우(Thuy hieu-追贈名/諡號)는 뗀 투이(ten thuy-追贈名)나 뗀 히에우(ten hieu-諡號)를 말한다. 투이 히에우(Thuy hieu-追贈名/諡號)는 상식을 올릴 때 부르기 때문에 서둘러 작명하여야 한다. 뗀 히에우(ten hieu-諡號)는 사망자의 생존시 성격, 덕성, 공훈에 따라 죽은 다음에 받는 호(號)이다. 응웬(Nguyen-阮) 왕조에는 관직에 따라 시호를 내리는 일정한 규정이 있었다. 예를 들면 남자에게는 쯕(Truc-直), 여자에게는 뜨(Tu-慈)를 붙여 쯕이(Truc Y), 또는 뜨 뉴(Tu Nhu)로 작명한다.
2) 쭉 코앙(Chuc khoang-屬紘)
사망 시간을 확실히 알기 위하여 환자의 콧구멍 앞에 솜이나 향불을 갖다 대어 사망 시간을 확인하는 것을 쭉 코앙(chuc khoang-屬紘)이라고 한다. 솜이나 향불을 갖다 대어 움직임이 전혀 없다면 사망한 것이다. 사망이 확인되면 손으로 망자의 얼굴을 내리 쓰다듬어서 눈을 감기고 팔다리를 곧게 펴준다.
3) 키엣 씨(Khiet xi)
판함(phan ham-飯含)예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상하 치아 사이에 젖가락을 끼워서 서로 간격이 붙지 않도록 하는 것을 키엣 씨(khiet xi)라고 한다.
4) 하 띡(Ha tich)
하띡(ha tich)은 땅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망자를 돗자리 위에 잠시동안 눕힌 후 다시 침상위로 모시는 것을 말하는데, 이 풍습은 땅의 생기(生氣)로 생명이 망자가 다시 소생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사람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생각과 망자에게 음양(陰陽)의 기(氣)를 충분히 불어넣어 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망자를 침상에 다시 누인 후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으로 잘 덮어놓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돗자리로 덮거나, 얼굴을 종이로 덮기도 한다. 이는 별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어린 자식이나 손자, 친척들로 하여금 망자의 얼굴을 가림으로써 슬픔을 더하지 않게 하려는 의미에 불과하다. 또한 개나 고양이가 지나가다가 시신에 해를 입히지 않도록 하는 의미가 있다.
5) 푹 혼(Phuc hon-皐復)
푹혼(phuc hon-皐復)이란 망자가 평소에 입던 옷을 들고 지붕 위에 올라가서 북쪽을 향하여 망자의 이름을 3번 외치는 것을 말한다. 지붕위로 올라 갈 때는 집 앞쪽으로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지붕 뒤쪽으로 내려와서는 망자의 옷을 망자의 배 위에 덮어두는데, 이는 영혼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뜻이다. 푹혼(phuc hon-皐復)이란 주검을 떠나는 영혼을 불러다가 다시 살아나도록 하기 위한 의례이다.
6) 티엣 혼 바익(Thiet hon bach-設魂帛)
환자가 마지막 숨을 멈추기 전 가족들은 7자 짜리(2.8m) 흰 색의 비단을 가슴 위에 올려놓는데 이는 환자의 마지막 숨을 비단 천에 받는다는 뜻으로 환자가 사망하면 이 비단 천으로 머리, 팔, 다리 등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망자 위에 놓는데, 입관시 망자의 상징으로 이 혼백(魂帛)을 제단이나 영좌(靈座)에 놓는데, 오늘날에는 망자의 초상화 또는 가장 최근에 찍은 사진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7) 목 죽(Moc duc-沐浴)
목죽(moc duc)은 망자를 깨끗한 물이나 향수로 씻기는 것을 말하는데, 망자가 남자면 남자가, 여자면 여자가 목욕을 시키는데, 아버지는 아들이, 어머니는 딸이 목욕을 시킨다. 목죽(moc duc)을 시키기 위한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소형 칼 1개
사각형 천 1장
실
머리 빗
숟가락 1개
흙 약간
5香水 1 그릇
주검을 목욕시킬 준비가 되면 천을 5香水에 담가 적신 다음 얼굴, 몸을 닦아내고, 빗으로 머리를 빗기고, 실로 머리를 다시 묶는다. 손발까지 다 씻기고 나면 칼로 손발톱을 깎아주는데, 깎고 나면 잘 포장을 해서 발톱은 발 밑에, 손톱은 손 밑에 놓아 입관할 때에 같이 넣을 수 있도록 한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습(襲)을 담당하는 일은 망자의 남녀를 구분치 않고 장의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하고 망자가 여자인 경우, 얼굴에 분과 루즈를 발라 화장(化粧)을 시키기도 한다.
8) 타이 이 푹(Thay y phuc-襲衣)
타이 이 푹(thay y phuc-襲衣)은 주검의 목욕이 끝나고 나서 준비해 둔 수의를 입히는 것을 말한다. 수의는 반드시 새 것으로 입힌다. 수의를 살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집에서는 수의를 집에서 직접 만들기도 한다. 지방에 따라 수의를 입힐 때 관직에 있었던 사람은 관복(官服)을 입히거나, 살아 있을 때 가장 즐겨 입던 옷을 수의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9) 판 함(Phan ham-飯含)
판함(phan ham-飯含)은 응엄응옥(ngam ngoc-含玉)이라고도 하는데, 접시에 담은 깨끗이 씻은 찹쌀과 윤이 나게 닦은 동전 3개를 상주가 망자의 오른쪽에 서서 이빨 사이에 끼어 두었던 젓가락을 비집어 빼내고, 숟가락으로 세 번 대서 찹쌀과 동전을 망자의 입에 넣는 것을 판함(phan ham-飯含)이라 한다. 예전에 부유한 집에서는 판함시에 동전 대신 금으로 만든 동전 형태의 것 또는 진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첫 번째 판함은 주검의 입 오른쪽에, 두 번째 판함은 왼쪽에, 세 번째 판함은 입 중앙에 떠 넣는다. 판함시 마다 매번 찹쌀이나 진주 3개와 동전 한 개를 입에 떠 넣는다. 찹쌀은 망자가 저승까지 가는 동안 먹을 식량이고, 동전은 가는 길에 목이 마르면 음료수 사먹을 돈이다. 요즈음에는 판함을 예전처럼 시행하지 않고 한 번으로 판함을 마치는 경우도 있고, 동전이 없으면 지폐로 대신하기도 하고, 가난한 가정에서는 동전 대신 차(茶)를 대신 입에 넣어주어 저승길 가는 길에 목이 마를 경우 해갈하도록 차(茶)를 대신 사용하기도 한다. 판함이 끝나면 소렴(tieu liem-小殮), 대렴(dai liem-大殮)이 있고, 대소렴이 끝나면 입관 절차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2. 장례 절차
베트남 사회는 중국 문화의 영향을 심대하게 받아온 연유로 장례 의식 또한 중국의 의례를 근본으로 하여 베트남 사회와 전통에 맞게 변화를 거듭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장례 절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주상(主喪)의 선정
주상(主喪)은 맏아들이 맡되 맏아들이 사망하였을 시는 장손자가 주상이 된다. 장손자가 마땅치 않을 때는 망자의 아들 중에서 주상을 정하고 여자 주상은 망자의 부인이나, 망자의 부인이 없을 시는 맏아들의 부인이 담당하여 주상은 모든 장례 절차의 의식을 주관하고 여자 주상은 장례의 각종 경비의 출납을 담당한다.
2) 호상(護喪)의 선정
초상을 당하면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해 놓고 있었다 하더라도 지켜야 될 의례 준비와 연락, 산역 준비 등으로 몹시 바쁘고 예에 어긋나지 않게 절차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아 호상(nguoi ho le)을 세운다. 호상은 대개 상주의 친척 가운데 상례(喪禮)에 밝은 분이거나 이웃 사람들 가운데 장례 절차에 밝은 분을 호상으로 세운다. 호상은 상주를 도와 장례 일체를 관장하는데 효율적인 진행을 위한 적임의 사람을 선정 다음과 같은 역할 분담을 시킨다.
가. 뜨엉레(tuong le-相禮) : 장례 의식 지휘, 결정
나. 호땅(ho tang) : 뜨엉레의 보좌역으로 조문객 접대 담당 - 사빈(司賓) 역할
다. 뜨트(tu thu-司書) : 부고장 작성 및 통지, 부의금 기록, 조문객 기록, 각종 조문 작성
라. 뜨화(tu hoa-司貨) : 장례식의 각종 경비의 지출 기록을 담당
3) 까오 포(Cao pho-訃告)
사람이 죽으면 뜨트(tu thu-司書)가 부고장을 작성 인편으로 집집마다 일가 친척, 친구들에게 고지를 한다. 옛날에는 신문이나, 인쇄소가 없었기에 초상난 사실을 고지하기 위하여서는 부고장을 손으로 직접 써서 인편으로 직접 통지하여야 하였다. 부고장에는 망자의 이름, 나이, 장례, 시간, 장지를 분명히 기록하여야 하며, 상주의 지칭은 아버지가 사망하였을 때는 꼬뜨(co tu -孤子), 어머니가 사망하였을 때는 니뜨(ni tu), 부모 모두가 사망하였을 경우에는 꼬 아이 뜨(co ai tu-孤哀子)라고 해야 한다.
4) 레 팟 목(Le phat moc-罰木禮)
입관하기 전에 레팟목(le phat moc-罰木禮)을 하는데 이는 오래 전에 미리 준비해둔 관(棺)이든지 또는 새로 구입한 관(棺)이든지 간에 관(棺)에 귀신이 붙었다 하여 귀신을 쫓아내는 의식을 레팟목((Le phat moc)이라 한다. 레팟목은 반드시 무당이 시행하는데 무당은 향불을 손에 잡고, 주문을 외고, 칼 위에 부적을 붙이고 그 칼로 관을 위, 아래, 옆 3군데를 칼자국을 내어 귀신을 쫓는다. 이를 레팟목(le phat moc-罰木禮)이라 한다.
5) 녑 꽌(Nhap quan-入棺)
입관 전에는 컴리엠(kham liem-衾殮)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컴리엠은 가능한 빨리 진행하는 것이 좋다. 시신은 24시간이 지나면 부패되기 시작하고 냄새가 나기 때문에 서둘러 실시하는 것이 좋다. 대개 컴리엠과 입관 시각은 무당이나 점쟁이가 좋은 시각을 정해 시행한다. 컴리엠에는 소렴(小殮), 대렴(大殮)이 있는데 시신을 옷과 이불로 싸는 것을 이른다. 염이 끝나면 입관을 한다. 입관이 끝나면 이제 린 끄우(linh cuu-靈柩)라고 부른다. 영구는 집의 중앙에 머리 쪽이 남쪽을 향하게 놓으며, 입관할 때에는 남좌(男左) 여우(女右)로 관의 좌우측에 서며, 시신을 싼 천의 네 귀퉁이를 들어 관(棺)안으로 살며시 놓는다. 근래에 와서는 시신을 자손이나 유가족들이 직접 입관하기도 한다. 영구가 정 위치에 안치되면 밥 1사발, 삶은 달걀 1개를 대나무 젓가락 두 짝 사이에 밥 한 사발, 삶은 달걀 한 개를 놓은 상을 영구 위에 올리는데, 이를 껌봉(com bong-供飯)이라 한다. 저승사자를 위한 한국의 사자 밥에 해당한다. 대나무 젓가락은 껍질을 벗기지 않고, 각각 사이를 벌려 놓은 것은 저승사자가 데리러 왔을 때, 젓가락을 한 짝씩 떼어놓아 밥을 먹기 힘들게 만들어 천천히 먹게 함으로써 망자의 영혼을 빨리 못 데리고 가게 하려는 유가족들의 간절한 심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6) 티엣 링 상(Thiet linh sang-設靈床)
티엣 링 상(thiet linh sang-設靈床)은 영위(靈位)를 모시는 것을 놓으며, 영상(靈床)위에는 생존시와 같이 각종 침구(모기장, 이불, 베개 등)을 올려놓아 망자의 혼이 들어와 쉬도록 하자는 것인데 오늘날에는 영상 위에 각종 침구류를 올려놓는 풍습은 사라지고 없다. 예전에는 집이 좁아 영상을 놓을 곳이 없는 경우 영좌(linh toa-靈座)를 대신 설치하는 것을 말한다. 영좌(linh toa-靈座)란 혼백이 앉은 의자를 말하는 데, 요즈음은 혼백을 쓰지 않고 대개 영정(사진)을 사용하거나 망자의 생존시 직위, 이름, 추증명등을 쓴 종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턴쭈(than chu-神主)라고 한다.
7) 티엣 밍 띵(Thiet minh tinh-設銘旌)
밍띵(minh tinh-銘旌)은 대나무 장대에 붉은 비단 또는 천을 달아 흰 글씨로 망자의 생존시 관직, 이름을 쓴 깃발이다. 이 밍띵(minh tinh-銘旌)은 관직이 3품 이상이면 9자, 5품 이상이면 8자, 6품 이하이면 7자로 밍띵의 길이를 제한하였다.
8) 레 타인 푹(Le thanh phuc-成服禮)
레 타인 푹(le thanh phuc-成服禮)은 상복으로 갈아입는 것으로 장례의 시작을 의미한다. 영좌(靈座)를 설치한 즉시 성복례를 치르는 데 예전에는 사람이 죽은지 4일째 되는 날 성복례를 올리고 장례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 때까지는 차마 부모가 죽었다고 생각할 수 없어서 상복을 못 입고 4일째가 되어야 상복을 입고 장례를 시작하였다. 오늘날에는 입관 즉시 보통 상복으로 갈아입는다. 상복은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증손자, 형제 자매까지 상복을 입는다. 대개 레 타인 푹(le thanh phuc-成服禮)은 무당이 주관하는데 마땅치 않으면 맏 상주가 상복을 나눠주거나 영구에 읍을 하고 각자 상복을 들고 갈아입는다.
3. 안 땅(An Tang-安葬)
안땅(an tang-安葬)은 똥쭝(tong chung-送終)이라고도 하는데, 영구를 땅에 묻는 것으로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쭈엔 끄우(Chuyen cuu-遷柩) / 레 이엣 또(Le yet to)
2). 까오 턴 다오 로(Cao than dao lo-告神道路)
3). 응이 쯔으엉 담 땅(Nghi truong dam tang-葬禮儀仗)
4). 프엉 뚜우옹 전 드엉 찌 후엣(Phuong tuong dan duong tri huyet)
5). 냐 짬 바 레 데 턴 쭈(Nha tram va le de Than chu)
6). 레 하 후엣(Le hat-下穴禮)
7). 레 타인 펀((Le thanh phan-成墳祭))
8). 레 판 콕(Le phan khoc-反哭禮)
9). 떼 응우(Te ngu-虞祭)
1) 쭈엔 끄우(Chuyen cuu-遷柩) / 레 이엣 또(Le yet to)
쭈엔 끄우(chuyen cuu-遷柩)는 안장하기 전 몇 시간 혹 반나절, 아침 일찍 또는 전날 밤에 천구례를 올리는 데, 이는 영구를 조상을 모신 사당에 고별 인사를 올리는 것을 이른다. 집이 좁아 영구를 모시고 출입하기가 어려우면 혼백만 사당에 들고 가서 조상신에 고하는 예를 말한다.
2) 까오 턴 다오 로(Cao than dao lo-告神道路)
안장하기 위하여 영구를 옮기는 날을 팟젼(phat dan-發靷)날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발인의 뜻으로 팟 전(phat dan)을, 오늘날에는 드어 담(dua dam)을 쓴다. 영구가 출발전 까오 턴 다오로(Cao than dao lo-告神道路)예를 올리는데, 이는 장지로 가는 동안 아무 일없이 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도로신(道路神)에게 고하는 것으로 오늘날에는 까오 다오로(cao dao lo-告道路)라고 한다. 이때 제물은 3가지를 올리는데 삶은 돼지고기는 땅위를 달리는 생물의 상징으로, 삶은 달걀은 공중을 나는 생물의 상징으로, 삶은 게 또는 새우는 물을 헤엄치는 생물의 상징으로 쓰인다. 제례가 끝나면 모든 제물은 주변의 사람들 몫이다.
3) 응이 쯔으엉 담 땅(Nghi truong dam tang-葬禮儀仗)
영구를 땅에 묻는 절차는 아주 복잡하며, 안장 준비 사항은 다음과 같다.
가. 프엉 뜨엉(Phuong tuong-方相)
프엉 뜨엉(phuong tuong)이란 종이로 만든 흉악한 면모에 무기를 들고 묘지의 사방을 지키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 프엉 뜨엉(phuong tuong)이 영구의 길을 인도해 나간다.
나. 꺼 단 찌이에우(Co dan trieu)
꺼 단 찌이에우(co dan trieu)는 기(旗)에 두 글자를 쓴 것으로 여자의 경우 찐 투언(trinh thuan-貞順)을, 남자인 경우는 쭝 띤(trung tin-忠信)을 쓴다.
다. 테 끼(The ky-彩旗)
테끼(the ky-彩旗)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영구차나 상여를 보았을 때 남자의 영구인지 여자의 영구인지 즉시 분별할 수 있도록 영좌 앞에 높이 들고 있는 기(旗)를 말한다. 테끼(the ky-彩旗)에는 흰 천에 4글자를 반드시 쓰며, 남자의 경우 호 선 번 암(ho son van am-虎山雲暗), 여자의 경우 지 링 번 메(di linh van me-山靈雲迷)를 쓴다.
라. 밍 키(Minh khi-冥器)
밍키(minh khi-冥器)는 종이로 만든 각종 물건으로 돈, 금, 은, 집, 의복 등 망자가 저 세상에서 쓸 용구를 말한다.
마. 밍 띵(Minh tinh-銘旌)
밍띵(minh tinh:銘旌)은 망자의 이력을 간략히 적은 것으로, 4M 이상의 붉은 색 비단이나 천에 반드시 흰 글씨로 망자의 성명, 관직, 시호 등을 기재한다.
바. 흐으엉 안(Huong an-香案)
흐으엉 안(Huong an:香案) 위에는 향불, 촛불, 꽃병, 제물은 삼생(三生)으로 돼지, 염소, 닭고기를 쓰고 떡과 과일을 진설한다.
사. 링 싸(Linh xa)
영구차 위에는 혼백이나 영정을 놓는다.
아. 꺼 꽁 보(Co cong bo-公布旗)
꺼꽁보(co cong bo-公布旗)는 상여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3개의 흰 깃발로 운구하는 사람들이 길의 높낮이, 구불구불한 정도를 미리 알 수 있도록 운구차나 상여 옆과 앞에서 길을 인도한다.
자. 다이 즈(Dai du-大輿)
다이 즈(dai du-大輿)는 상여로서 영구를 운반하는 수단을 말한다.
4) 프엉 뚜우옹 전 드엉 찌 후엣(Phuong tuong dan doung tri huyet)
프엉 뜨엉(Phuong tuong-方相)은 대개 5명으로 구성되는데 4명은 동서남북을 지키는 장수역을 맡고, 1명은 호신(虎神)역을 맡는다. 이들은 귀신을 쫓는 역할을 한다. 묘를 팔 때는 먼저 호신(虎神)이 혈심(穴心)에 내려가서 사방을 점검하고, 그 동안 4명의 프엉 뜨엉(方相)은 묘자리 주의를 돌며 춤을 추고 축문을 외우면서 귀신을 쫓는다. 축문이 끝나면 즉시 5명의 프엉 뜨엉(方相)은 각각 다른 길로 집에 돌아와서는 옷을 갈아입고 얼굴을 씻는다. 이는 쫓겨난 귀신들이 합심해서 복수를 할까 두려워 각기 다른 길로 돌아와서는 옷을 갈아입고 얼굴을 씻는 것이다.
5) 냐 짬 바 레 데 턴 쭈(Nha tram va le than chu)
이는 영구를 운반하면서 집에서 장지까지 거리가 멀면 중도에 운구를 하는 상여꾼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운구 도중 적당한 장소에 대나무와 장막으로 간이 제청을 꾸미고 분향하고 제례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6) 레 하 후엣(Le ha huyet-下穴禮)
하관(下棺) 장소에 이르면 레 하 후엣(le ha huyet-下穴禮) 이라고 하는 하관제를 올린다. 이는 지신(地神)에 망자를 안장할 수 있게 허가해 줄 것을 기원하는 제사이다. 하관제가 끝나면 지관이 정해준 길시를 기다려 하관을 한다. 명정은 잠시 관을 덮었다가 북쪽에 가져가서 태워버리기도 하고 같이 묻어버리기도 한다. 예전에는 망자가 복이 많고 장수한 사람이면 어린이들에게 복을 가져다준다고 하여 부족으로 쓰기 위해 서로 찢어가려고 소란을 피우기도 하였다. 하관이 끝나면 자식, 친지, 친구들이 흙을 한 삽씩 또는 한 줌씩 덮어 고인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표시한다.
7) 레 타인 펀(Le thanh phan-成墳祭)
하관이 끝나고 봉분이 만들어지면 묘 앞에서 레 타인 펀(le thanh phan-成墳祭)를 지낸다. 레 타인 펀(le thanh phan-成墳祭)은 하관을 마치고 고인이 지하에서 평안히 계시도록 위령하는 뜻의 제사이다. 이 때부터는 망자에 대하여 4번의 고두례와 1번의 읍을 한다. 이는 영구가 집에 있을 때 두 번의 고두례를 하는 것과는 달리 레 타인 펀(le thanh phan-成墳祭)부터 망자에 대한 예우로 절하는 것이다.
8) 레 판 콕(Le phan khoc-反哭禮)
레 판 콕(le phan khoc-反哭禮)은 장례가 끝난 뒤 상주 이하가 요여(腰輿)를 모시고 귀가하여 영좌(靈座)에 신주를 모시게 되었음을 고하는 예이다.
9) 떼 응우(Te ngu-虞祭)
떼 응우(te ngu-虞祭)는 장례 후 3일간 지내는 제사를 말하며 다음과 같은 삼우(三虞)가 있다.
서 응우(So ngu-初虞) : 장례를 지낸날 지내는 첫 번째 제사이다.
따이 응우(Tai ngu-再虞) : 장례 다음날 지내는 제사이다.
땀 응우(Tam ngu-三虞) : 장례일을 포함 3일째 되는 날 지내는 제사이다.
떼 응우(te ngu-虞祭)의 목적은 망자의 혼백이 저 세상에서 편안히 잠들도록 하기 위한 제사이다. 오늘날에는 떼 응우는 지내지 않는다. 예전에는 장례 후 3일간 매일 오후에 산소에 다녀왔으나. 요즈음에는 대개 장례 후 3일째 되는 날 가까운 일가 친척과 친구들만 산소를 찾는다. 장례 후 4일째부터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만 산소를 찾으며 100일째까지는 하루 1-2회 상식(上食)을 올리며, 지역에 따라서는 3년간 상식을 올려야 장례가 완전히 끝나는 지방도 있다.
Ⅴ. 떼 례(Te Le-祭禮)
사람이 죽으면 자손이나 친족, 친지가 장례를 지내고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기념하는 것이 제사이다. 장례 후 49일, 즉, 쭝텃(chung that-終七)이나 또는 뜨끄우(tu cuu-四九)라고 하는데, 이것이 지나면 다음과 같은 제례를 지내야 한다.
1. 레 똣 콕(Le tot khoc-卒哭禮)
장례 후 100일이 되면, 자손들이 더 이상 곡을 하지 않으며 매일 1-2회 올리던 상식(上食)도 올리지 않는다.
2. 띠에우 뜨엉(Tieu tuong-小祥)
사망 후 1년이 지나면 띠에우 뜨엉(tieu tuong-小祥)을 지낸다. 이는 첫 번째 1 주기 제사가 된다. 띠에우 뜨엉(tieu tuong-小祥)이 끝나면 일상의 상복은 입지만, 장례에 사용하였던 모자, 지팡이 등은 버린다. 그리고 망자를 위해 만들었던 각종 종이 제품은 태워 버린다.
3. 다이 뜨엉(Dai tuong-大祥)
사망한지 2년만에 다이 뜨엉(dai tuong-大祥)을 지낸다. 다이 뜨엉(dai tuong-大祥)이 끝나면 상복을 벗고 이후 매년 기일에 제사를 지낸다. 띠에우 뜨엉(tieu tuong-小祥)때 처럼 장례에 사용하였던 각종 장의 용품을 완전히 태워 버린다. 다이 뜨엉(dai tuong-大祥)때에는 다른 제사와는 때와 달리 제사후 친척과 이웃 사람들을 초청 커다란 연회를 베푸는 데, 이는 장례시 이웃에 진 빚을 갚는 의미가 있고, 다이 뜨엉(dai tuong-大祥) 전까지는 망자의 영혼이 집에서 같이 지냈으나 이제 완전히 저 세상으로 가게 됨에 따라 일 년에 한 번씩 기일에나 뵙게되어 크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매년 기일에 지내는 제사를 꿍껌(cung com), 깟끼(cat ky), 또는 조끼(gio ky)라고도 한다.
4. 떼 담(Te dam)
다이 뜨엉(dai tuong)을 지낸후 3개월 후 길일을 택하여 떼담(te dam)를 지낸다. 떼담(te dam)후에는 완전히 탈상(脫喪)을 하는 것이며, 이를 레쯔푹(le tru phuc) 또는 만땅(man tang)이라고도 하며, 뜻은 이제 상복을 벗는다는 의미이다.
띠에우 뜨엉(tieu tuong-小祥)과 다이 뜨엉(dai tuong-大祥)이 끝나면 망자를 위해 종이로 만들었던 밍키(minh khi-冥器), 즉, 각종 생활용품, 의복, 이불, 접시, 그릇, 집, 배, 차, 오리, 닭, T.V, 냉장고, 카셋트 라디오 등을 저 세상에서도 생존시와 똑같이 쓰도록 태워버리는 풍습이 있는데 이를 돗 마(dot ma)라고 한다. 돗 마(dot ma)시에는 태울 물건들을 모두 묘 앞에 가지고 와서 스님을 모시고 독경을 하고 예를 올리고 나서 태운다.
Ⅵ. 맺음말
지금까지 살펴 본 베트남의 통과 의례는 과거 북속시대의 영향으로 중국 문화로부터 기원하여 발전된 4가지 관혼상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러한 가정의례는 베트남 토착민 그리고 소수민족들의 고유 문화와 접목되면서 중국 고유 의례와는 달리 약간씩 변천되어 왔다. 더욱이, 과학의 발달, 사회제도의 변천과 종교의 영향으로 원초적인 과거의 의례 모습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지방마다 개별 민족마다 고유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어 베트남 전체를 가름하는 혼례, 상례, 제례에 대한 정해진 의례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의 의례에 관한 책이 베트남에 소개되면서 베트남 현실에 맞게 적용되다 보니 중국의 의례를 골간으로 한 베트남형 의례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설화를 기원으로 한 부부애의 상징으로 예물의 필수품 쩌우까우의 등장이 그러하고 신부가 시댁에 처음 도착할 때에 화로를 문지방에 놓아 밟고 들어오게 함으로써 화로불의 힘으로 악령을 태워버리고자 하는 다분히 주술적인 풍습, 시어머니가 '보이'단지를 들고 이웃에 잠시 피신하였다가 되돌아오는 풍습은 원시 신앙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풍습이다. 중요한 절차마다 반터에 예를 올리고 의례를 진행하는 것은 조상 숭배가 신앙에 가까울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이러한 조상 숭배에 대한 정신은 다음의 고사성어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즉, "꺼이 꼬 꼬이, 느읔 꼬 응우온-cay co coi, nuoc co nguon:뿌리 없이 나무 없고, 샘 없이 물 없다"라든지, "우옹 느읔 녀 응우온-uong nuoc nho nguon:飮水思源)이라는 고사성어에서 우리는 베트남 사람들의 조상 숭배에 대한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즉, 뿌리가 있어야 나무가 있고 샘이 있어야 물이 있듯이 조상이 있음으로 해서 '나'가 존재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바로 베트남 사람들의 기저에 깔려 있는 조상에 대한 숭배정신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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