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색을 통해 본 이미지 중심 해석의 가능성
정중호 교수
I. 서론
성서를 읽어 갈 때 성서에 기록된 문자를 통해서 여러 가지 이미지를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상상을 통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그리 선명하지 않고 또 대부분 흑백 이미지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왜 다양한 색채가 떠오르지 않을까? 어떤 색이 나타나느냐에 따라 분위기도 달라지고 의미도 다를 수 있는데…
우리 주위를 둘러보자. 갑자기 색채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흑백으로만 보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아마도 유령의 거리를 걷는 느낌이 들것이다. 성서를 읽을 때도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성서를 읽으면서 흑백 이미지만 떠올린다면 성서의 세계는 유령의 세계처럼 멀고 먼 세계가 될 것이고 그 메시지는 우리의 폐부에 닿지 못하는 무기력한 메시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만일 성서를 읽으면서 색채를 주의깊게 관찰하여, 떠오르는 이미지에 색을 되살릴 수 있다면 성서의 이미지가 보다 더 생생하고 의미있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서해석에 있어서 색채를 하나의 해석의 단서로 활용할 뿐 아니라 색채를 해석의 중심부에 위치시킬 수 있는 가능성까지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다양한 색채 가운데서 붉은 색이라는 요소가 성서본문을 해석할 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피면서 색채를 중심한 이미지 중심해석의 가능성을 탐구하는데 있다.
본 논문의 첫 부분에서는 성서에 나타나는 다양한 색채에 대해서 살피면서 그 특징과 의미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다음 단계는 시야를 좁혀서 붉은 색에 초점을 맞추고 붉은 색채가 주도하는 본문을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에는 색채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하는 이미지 중심 해석의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점검하여 타진하게 될 것이다.
II. 색채에 담긴 상징성
구약에 나타나는 색채는 그 종류가 그리 다양하지 않다. 고대 이스라엘의 색채에 대한 표현은 자연과 연관되어 있으며 표현된 색채의 수도 불과 몇 가지에 국한되어 있다. 흰색은 눈이나 양털의 색채며 검은 색은 밤의 색채다. 파란색은 하늘의 색채며, 빨간색은 피의 색채임과 동시에 불의 색채이기도 하다.
또한 색채는 상징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왜냐하면 특정 색채는 자연의 특정 존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염색기술이 발달되어 있지 않고 염색하는 것에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색채가 독특한 옷은 부자나 권력층에서만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따라서 채색옷은 부자와 권력의 상징이 되었으며, 다양하고 화려한 색채를 내 뿜는 보석종류도 특권층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물론 보석은 값비싸다는 요인도 있지만 그 화려한 색채를 무시할 수 없다. 제사장은 가슴에 달고 다니는 다양한 색채의 보석들을 통해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표현한다(출 28:15-21). 또한 하늘 도성의 아름다움과 권위도 다양한 색채를 내 뿜는 보석으로 표현되어 있다(사 54:11-12; 계 21:10, 18-21).
흰 색은 하나님의 구원을 상징하며 동시에 흰 색은 천상의 존재들이 입는 옷의 색으로 청결의 상징이기도 하다(사 1:18; 단 7:9; 막 16:5; 계 3:4). 흰색은 구약보다 오히려 신약에 더 많이 나타난다. 변화산상에 나타난 예수의 옷은 “빛과 같이 희었다”(마 17:2)리고 하며 광채가 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즉 흰색은 밝은 빛을 가리키는 색으로 볼 수 있다. 계시록에 나타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모두 광채가 나는 흰 색으로 되어 있다. 또한 구원의 상징으로 흰옷을 입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도 계시록에 나타난다(계 3:4; 6:11; 7:14). 한편 흰색과 대조를 이루는 검은 색은 어두움과 흑암의 색상이며 무질서와 혼돈(chaos)의 색상이다. 또한 검은 색은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이 있다(습1:15; 욜 2:2; 시 18:9).
푸른색은 하늘의 색채이다. 어릴 때 그레용 통에 담긴 푸른 색 크레용을 ‘하늘색’이라 부르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단순히 하늘색이라 보지 않고 ‘궁창의 색’ 즉 신의 영역인 하늘과 인간의 영역인 지상을 나누는 경계선의 색채로 이해하였다. 또한 제사장의 의복에도 푸른색이 주도적인 색채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제사장이 하나님의 영역인 성전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위치하여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즉 경계선 상에 위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법궤를 지성소에서 인도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법궤를 덮는 덮개는 푸른색이다. 뿐 만 아니라 성막에 있는 진설대와 금촛대 등의 성막기구를 옮길 때도 푸른색의 덮개를 사용한다. 푸른색을 사용하는 이유는 푸른색이 경계선의 색채로서 하나님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분리시켜 주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거룩성을 보호하는 색채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성을 침범하여 화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주색은 제왕의 색채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고대 세계에서 자주색을 내기 위해서는 염색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색채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왕이나 고위 관료만로 한정될 수 밖에 없다(단 7:5, 16, 29; 계 17:4; 18:16). 이 색채는 십자가에서 처형하기 전 예수를 왕이라 부르면서 조롱할 때 입힌 옷의 색채이기도 하다(요 19:2, 5). 자주색이 왕의 색채이며 능력의 상징이기 때문에 이동식 번제단을 옮길 때 그 위에 자주색을 덮개를 사용한다.
본 논문에서 집중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색채는 붉은 색이다. 붉은 색은 피의 색이며 포도즙의 색채다. 성막을 덮을 때는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출 25:5)을 반드시 덮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희생제물의 피와 관련이 있다. 특히 죄 문제를 해결하는 제사인 정화제사(속죄제)와 배상제사(속건제)의 피와 관련이 있다. 즉 희생제물의 피가 성막을 청결하게 하고 정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에 피와 관련된 붉은 색 또한 성막을 청결하게 유지시키려는 의지를 담은 색깔로 볼 수 있는 것이다(히 9:19-22). 반대로 붉은 색이 죄와 관련이 있는 색채로도 알려져 있다(사 1:18). 죄악의 상징인 바벨론이 붉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계시록에 나타난다(계 17:3-6).
붉은 색을 나타내는 또 다른 자연의 색은 불꽃이다. 타오르는 불꽃은 태양과 연관이 있고 밝게 비추는 빛의 역할을 담당하며 사물을 태우는 기능이 있지만 여기서는 색채에 한정해서 고찰해 볼 것이다. 붉은 색을 가리키는 ???이라는 단어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빈번하게 나타나는 단어가 불이라는 단어이다. 구약에는 불(??)이라는 단어가 380회 나타난다. 왜 이렇게 불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타날까? 타오르는 불꽃은 움직이는 빨강이며 빛을 발한다. 정지된 붉은 색 자체도 강렬한 색채이지만 움직이는 붉은 색은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이러한 효과적인 미디어를 제사장이나 예언자나 지혜자가 놓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색채가 어우러지는 무지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히브리어에는 무지개라는 단어가 따로 없고 전쟁무기인 활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즉 무지개는 하늘에 걸린 활이라는 뜻이다. 홍수로 심판한 후 하나님은 노아에게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증거로 무지개를 주셨다. 이 때 무지개를 하나님은 “나의 활”이라 묘사하고 있다(창 9:13). 즉 하나님은 무사같이 활을 들고 화살을 쏘아 지상의 죄인들을 심판한 후 활을 하늘에 걸어 둔 것이 바로 무지개인 것이다. 이 때 무지개는 하나님의 자비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무지개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계약(Covenant of Grace)을 상징하는 색채로 그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창 9:8-13).
구약에서 무지개의 영롱함과 아름다운 색채를 주목한 본문은 에스겔에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현현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 신비한 광채가 비치는 모습을 무지개같다고 묘사한 것이다(겔 1:28). 무지개의 색채가 하나님과 천상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은 요한 계시록에 잘 나타나 있다(계 4:3; 10:1). 즉 무지개의 색채가 너무도 아름답고 신기하여 지상의 색깔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무지개는 신적인 색(divine colors)이었다.
III. 색채의 위력
비렌(F. Birren)은 색채의 영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색채에는 호소력 있고 감정적이며 심령적인 요소가 있다. 모든 면에서 생기를 불러일으키고 신비로운 힘을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살펴볼 때 빨강과 그 밖의 따뜻한 색이 자극할 때는 혈압. 맥박, 호흡이 증가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녹색과 파랑은 생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를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또한 색채기호가 갈색, 회색, 검정, 흰색과 같은 무채색으로 바뀌는 것은 정신적인 고뇌를 나타내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색채의 영향력에 대한 실험도 잇따르고 있다. 뉴 햄프셔 식물 생리학 연구소에서 실험한 바에 의하면 적색등의 강도를 높혔을 때 모든 조명 가운데 최대의 산출량을 나타냈다고 한다.
심지어 약을 제조하는 경우에도 색채의 영향력을 고려하게 된다. 1세기경 켈서스(Aurelius Cornelius Celsus)는 의학에 관한 책을 저술하였는데 약은 색을 염두에 두고 처방해야 된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거의 모든 빨간색의 고약은 환자의 상처를 보다 빨리 아물게 한다”라고 기록하였다. 또한 노랑색의 연고는 “수면을 유도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는데 작용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색채에 대한 정서적 반응을 살펴보면 개인의 과거경험, 개인이 소속한 사회의 문화적 배경, 또는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나타나게 됨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색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소위 따뜻한 색이 어떤 사람에게는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흥분시키는 작용을 한다.
비록 색채의 영향력이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어떤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정한 색채에 대해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극심한 사회일 경우 붉은 색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산당을 연상시키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색채가 국제적으로 보편적인 언어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도 있다. 국제안전위원회에서 승인한 안전색법전에는 붉은 색이 불조심, 화재경보상자. 소방수화재용 급수전 등 불과 관련이 있는 것에 사용되도록 되어 있다. 사회적으로 색의 규범이 마련된 것이다.
색채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노아의 홍수 후에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위 “노아 계약”을 보증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의지이지만 그러한 마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다름아닌 색채의 오묘한 조화인 무지개였다는 사실이다(창 9:8-13). 특이한 것은 무지개가 하나님으로 하여금 계약을 기억나게 할 수 있는 신비한 효력이 있는 이미지처럼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창 9:12-17).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창 9:16)
현대 교회에는 멀티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예배를 드리고 신앙교육을 실시한다. 이 때 색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비효율적이며 많은 것이 상실되고 심지어는 내용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영상으로 예배를 드릴 때 메시지와 색채의 여러 요소들이 적절히 상응하지 않으면 메시지 전달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또한 영상성서를 개발할 때에도 색채의 영향력을 염두에 두고 이미지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IV. 해석의 열쇠 -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는 본문들
1. 붉은 옷에 배어있는 해석의 단서들 (사 63:1-6)
1절부터 주도하는 이미지는 붉은 색의 이미지다. 에돔, 보스라, 홍의(crimsoned clothes) 등 세 단어 모두 붉은 색의 이미지를 강화시키고 강렬하게 클로즈업 시키고 있다. ‘에돔(???)’은 ‘붉다’는 뜻의 단어 ‘아돔(???)’(2절)에서 파생된 단어로 사해 동남 지역의 붉은 바위들에서 유래된 국가명칭이다. 따라서 ‘에돔’이라는 단어자체가 붉은 색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언어유희의 요소가 있는 것이다.
‘보스라’는 에돔의 중요 도시로서 에돔과 평행을 이루는 단어이다. 그런데 이 단어도 붉은 색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보스라’, 즉 정확하게 음역하면 ‘바츠라(????)’인데 이 단어는 “포도를 수확하다”라는 의미의 ‘바차르(???)’에서 파생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포도즙의 색깔이 붉은 색이며 포도를 수확해서 즙을 짜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의 옷은 붉게 물들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 단어는 붉은 색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유다 노동자들이 에돔에 건너가 포도원에서 일하다가 유다로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성문에 있던 파수꾼이 이러한 사람들을 검문하여 성 안으로 들여 보내는 일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포도수확을 하다가 돌아오는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포도물이 튀어 붉게 물든 옷을 입고 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었다. 따라서 옷이 붉은 것은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번 경우는 특이한 면이 있어 파수꾼이 거듭 질문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포도원 노동자같지 않은 면모를 보았기 때문이다. “화려한 의복”이라 번역한 구절의 의미는 위엄과 신분을 상징하는 옷을 가리킨다. 즉 무사이면 장군의 복장을, 관리이면 관복을 입은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큰 능력으로 행진하는 자”라고 번역한 구절은 “무장을 하고 구부리고 있는 자”로 번역할 수도 있다. 즉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장군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화려한 의복으로 그리고 큰 능력으로 행진하는 자”는 전신무장을 한 장군의 복장으로 성문 앞에 나타난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파수꾼으로서는 수상하다고 여길 수 밖에 없는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대답도 무사다운 대답을 하고 있다; “바로 나다. 나는 의로운 가운데 말하며 구원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1b절). 자신이 정당하며 힘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이 수상한 사람의 옷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이다. 포도원 노동자같은 복장도 아닌데 어떻게 옷이 붉게 물들어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2절에 “어찌하여 네 옷이 붉으며 포도주 틀을 밟은 사람 같은가?”라는 질문은 파수꾼으로서는 당연한 질문을 한 것이다. 두 번 째 질문(2절) 역시 붉은 색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무사 혹은 장군의 이미지는 명확한데 붉은 색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즉 붉은 색의 이미지를 한 번 더 강조하면서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리고 “포도주 틀을 밟은 사람”(2b절)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첨가하여 3절 이하의 이미지를 선도하고 있다.
3절에서 6절까지는 성문 앞에서 수상한 사람이 대답하는 내용이 나열되어 있다. 대답하는 말 전체를 살펴볼 때 이 내용은 에돔을 심판한 하나님의 대답임을 알 수 있으며 ‘붉은 색’의 이미지를 계속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에돔을 심판한 것을 이야기할 때 “내가 홀로 포도주 틀을 밟았으며”(3a절)라는 표현을 맨 먼저 사용하고 있다. 붉은 색의 이미지와 더불어 포도주를 밟아 으깨는 작업의 이미지를 동시에 사용하여 전체 내용을 포도수확하는 이미지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는 장면이 나타나는데 이 때 취한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만민’이다(6c절). 포도주를 마시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만민’들의 모습이 결론부분을 장식한다.
붉은 색의 수수께끼는, 포도즙이라는 이미지에서 피 즉 ‘선혈(???)’이라는 단어로 그 이미지가 연결되면서 시원하게 풀려진다(3c, 6c절). 동시에 포도즙 틀을 밟는 이미지는 “만민을 밟는” 이미지로 연결되면서 그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3b, 6a절). 유사한 이미지를 연결시켜 심도 깊은 의미를 캐내는 방법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 연결고리는 ‘붉은 색’의 이미지와 ‘밟다’라는 행동의 이미지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선혈이 낭자한 모습은 바로 죄인들에게 복수하는 하나님의 모습이요(4절)이요, “그들의 선혈을 땅에 쏟았도다”(6c절)는 구절에서 그 처참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밟다’라는 이미지를 표현할 때 사용된 단어가 각각 다르다. 2b절과 3a절은 동일한 이미지를 사용한 질문과 즉각적인 대답이기에 동일한 단어 ???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밟다’라는 의미를 평행법을 사용하여 반복시키고 있는 3b절의 경우는 ???와 ???를 평행시키고 있다. 마지막 절인 6a절의 경우는 또 다른 단어 ???를 사용하고 있다.
‘분노(??)’ 혹은 이 단어와 평행되는 단어인 ‘분한(???)’이라는 단어도 붉은 색과 무관하지 않다. 분노 가운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단어는 3b절과 6a-b절에서 평행하여 사용되고 있으며 ‘분한’은 5b절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붉은 색과 더불어 자주 사용되는 단어는 ‘옷(???)’이라는 단어이다. 1절에 ‘홍의’와 ‘(화려한) 의복’ 그리고 2절의 붉은 ‘옷’과 3절에 선혈이 뿌려진 ‘옷’이 그들이다. 다만 1절의 ‘(화려한 ) 의복’이라 할 때는 ????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옷들은 모두 붉은 옷이다. 붉은 색 이미지를 운반하고 등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바로 옷이다. 그러나 옷은 도입부분을 장식할 뿐 내용이 깊어갈 수록 옷의 이미지는 배후로 밀려가고 피를 중심한 붉은 색 이미지가 장면을 압도하고 있다. 특히 6절에는 옷 대신에 땅이 붉은 피를 받아 붉게 물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땅에 스며들어 배어있는 붉은 색 이미지의 모습이다.
붉은 색 이미지는 하나님의 단독행위와 연결되어 있다. 3절에 ‘홀로’ 포도주 틀을 밟았다는 이야기와 5절에 “도와 주는 이가 없도다”에서 하나님의 단독행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단독행위는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 자신을 ‘붙들었다(???)’라는 표현을 통해서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붉은 색 이미지는 6절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분노 가운데 얼굴이 붉게 달아 오른 하나님이 포도주로 인해 붉게 취한 만민들을 밟아 그 붉은 피가 땅에 쏟아지는 장면이 바로 절정에 도달한 붉은 색 이미지의 장면이다. 이제는 옷이 붉게 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과 땅 모두가 붉게 물드는 붉은 세상이 나타난 것이다. 죄인에게는 붉은 색 이미지가 심판과 형벌의 이미지이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구원의 능력을 보여주며 구속의 해를 성취시키는 이미지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에게도 붉은 색 이미지는 구원과 구속의 이미지로 부각되는 것이다.
2. 날아가는 붉은 색 (레 14:4-7)
<본문 사역>
4. 제사장은 정결하게될 사람을 위해 정결한 산 새 두 마리와 삼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를 가져오도록 명령하여야 한다.
5. 제사장은 한 마리의 새를 질그릇 안에서, 살아있는 물 위에서 잡도록 명령하여야 한다.
6. 살아있는 새를 취하여 삼목과 홍색실과 우슬초와 함께 살아있는 물 위에서 잡은 새의 피에 적셔야 한다.
7. 그는 악성피부병으로부터 정결하게 될 사람에게 일곱 번 뿌려야 한다. 그가 그를 정결하게 한 다음 산 새를 들판에 보내어야 한다.
산 새를 들판으로 보내는 의식은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광야에 보내어 죽게 하는 의식과 비슷하다(레위기 16장). 즉 이스라엘의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가는 아사셀의 염소와 같이, 산 새는 악성피부병자의 부정을 흡수하여 들판으로 날아가 부정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산 새 정결 의식을 위해서 준비할 것은 정결한 산 새 두 마리와 삼목과 홍색실과 우슬초와 질그릇이다. “삼목(ceder)”이 붉은 색깔의 나무일 경우 이 나무를 택한 이유도 피의 색깔 즉 생명의 색깔이기에 선정된 것이라 설명할 수 있다. “홍색실” 역시 생명의 색깔인 붉은 색이기에 선정된 것이다. 4절에서부터 붉은 색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5절에는 질그룻 안에서 새를 잡는 광경이 나타난다. 원래 새의 피는 ‘조족지혈(
:
=
��’이라는 문구에서도 나타나듯이 그 양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피는 피이며 붉은 피가 떨어지는 광경과, 질그릇에 담긴 물에 붉은 피가 떨어져 물이 붉은 색으로 변하는 광경이 나타난다. 이 경우 물을 준비하는 것은 새 피의 양이 적기 때문에 피를 물에 떨어뜨려 피의 양을 늘이기 위한 것이다.
6절에는 피로 붉게 된 핏물을 우슬초로 다른 산 새에 뿌리고 붉은 삼목과 홍색실에도 그 핏물을 뿌린다. 모두를 붉게 만드는 것이다. 삼목과 홍색실은 붉은 색깔로 피의 색깔을 더욱 진하게 만들고 우슬초는 피를 머금어 뿌리는 도구로 사용된다.
7절에는 사람에게도 그 핏물을 뿌린다. 악성피부병으로부터 정결하게 될 사람에게 그 핏물을 뿌려 사람을 붉게 만든다. 일곱 번 뿌리는 것은 충분하고 완전하게 뿌린다는 의미가 있으며 동시에 사람을 상당히 붉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그리고 붉은 핏물을 바른 붉은 새는 들판으로 날아간다.
산 새 의식의 과정을 살펴볼 때 계속해서 붉은 색이 나타나며 붉은 색이 확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지막에는 움직일 수 있는 사람과 날아가는 새를 붉은 색으로 칠하여 “움직이는 붉은 색”으로 만들어 동영상(���의 강도를 높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이렇게 붉은 색이 산 새 의식에서 강조되는가? 악성피부병자는 병이 나아서 이제 진 밖(죽음의 영역)에서 진 안(생명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단계에 있으며 이 의식은 이러한 영역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의식인 것이다. 부정한 영역에서 정결한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정결의식이라 볼 수 있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생명’이라는 요소이다. 그리고 이 생명의 세력이 죽음의 세력을 압도하고 정결의 세력이 부정의 세력을 압도하는 이미지가 나타나야 한다. 산 새 의식은 바로 이러한 이미지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살아있는 새”와 “살아있는 물” 그리고 생명을 가리키는 “피” 등 세 가지 모두가 생명에 충만해 있는 것들이다. 더구나 피는 생명인데 피를 상징하며 피 빛인 붉은 색이 이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켜 주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붉은 피”의 능력을 볼 수 있도록 사람에게 핏물을 뿌리고, 산 새에게 핏물을 뿌려 멀리 날아가게 한다. 그리고 이 의식은 진 밖에서 즉 성전 밖에서 거행되는 대중적인 의식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대중적인 효과를 노리고 있으며 교육적이며 심리적인 효과를 목표로 한 것이다.
3. 하타아트 재로 변한 붉은 피(민 19:1-10)
붉은 암소를 불태워 재로 만드는 의식이 민수기 19장에 나타난다. 이 때 이 재는 하타아트(???? 정화제물)가 된다(민 19:9). 하타아트 재를 만드는 목적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깨끗게 하는 물을 만드는데”(민 19:9) 사용하기 위함이다. 특별히 시체를 만져 부정하게 된 사람에게 이 물을 뿌려 정화시킨다.
이 하타아트 재를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붉은 암소를 제사장이 잡아 그 피를 회막 앞을 향해 일곱 번 뿌린다. 이렇게 피를 뿌림으로 붉은 암소는 거룩하게 되며 하타아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암소를 불태우는데 삼목(cedar)과 우슬초와 홍색실을 넣어 함께 태운다. 이 때 암소 전체를 모두 태우는데 피와 가죽과 고기와 똥까지 함께 태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재는 하타아트로서 부정한 사람을 정화시키는데 사용할 수 있다.
이 재를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유독히 붉은 색이 많이 나타난다. 우선 붉은 암소를 택하고, 붉은 색깔의 실을 넣고, 삼목 즉 붉은 색의 나무를 선별하여 우슬초와 함께 태운다. 물론 붉은 암소의 붉은 피도 같이 태운다. 2절의 붉은 암소를 끌어 오는 장면, 3절에 붉은 암소를 도살하는 장면, 4절에 피를 회막 앞에 일곱 번 뿌리는 장면, 5절에 붉게 타오르는 불로 태우라는 명령, 6절에 붉은 나무와 붉은 실을 붉게 타오르는 불 속에 던지는 장면 등은 모두 붉은 색으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붉은 암소의 등장에서 시작하여 피를 뿌리고 그 다음 붉게 타오르는 불길로 그 절정을 이루는 모습의 변화는 붉은 색이 점층적으로 강화되고 확대되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왜 이렇게 붉은 색을 많이 포함시키고 강조하는 것일까? 붉은 색은 피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하타아트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제물의 피이다. 그 피가 성전을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붉은 암소를 태워 재를 만드는 이 하타아트 재는 액체인 피가 아니라 재로 변한 피이다. 따라서 피를 강조하고 확대시키는 의미에서 각종 붉은 색이 동원되는 것이다.
사실 ‘붉은(????)’이라는 형용사는 “붉은 암소”(2절)에 한 번 밖에 사용되지 않았지만, 하타아트 재를 만드는 과정을 이미지로 재현시켜 본다면 의식이 진행되는 과정 전체가 붉은 색으로 물들어있고 점층적으로 확대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9절에서 ‘하타아트(????)’ 재라는 선언이 나타나기 전에 벌써 이 의식에서 ‘붉은 색’ 즉 ‘피의 색’을 충분히 보여 주었고 이 의식이 ‘피’를 중요시 하는 의식이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이 의식의 특이한 점은 이 의식이 “진 바깥”(3절)에서 거행되는 것과 하타아트 재를 보관하는 곳도 “진 바깥”(9절)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하타아트 의식이기에 암소를 제사장에게 끌고 와서 의식이 진행되고 제사장이 이 의식을 집전하지만 일반적인 하타아트와는 사뭇 색다른 점이 있다. 즉 나중에 이 재를 뿌려 정화시키는 사람이 제사장이 아닌 일반 평민인 “정한 자”(18절)라는 점이다.
하타아트 재가 진 바깥에 보관되어 있고 평민이 그 재를 뿌릴 수 있다는 것은 이 의식이 상당히 대중적이고, 평민들이 쉽게 그리고 간단하게 그 재를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붉은 색을 특히 강조한 것은 다분히 교육적이며 심리적인 효과를 겨냥한 것이다. 즉 그 재가 하타아트 임을 알리고 그 재의 의식적인 능력이 강하다는 점을 붉은 색 이미지를 통해 알리고 각인 시킨 것이다.
4. 붉은 물의 수수께끼(왕하 3:21-24), 붉은 피로 변한 이집트의 물 (출 7:14-25)
이스라엘 군대가 모압을 공격했을 때 모압 백성들 중 어린 소년까지 총동원되어 방어선(아마도 사해 동남쪽에 있는 와디 세렛)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 때 그들 앞에 있던 강물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물이 붉게된 원인을 두가지 들 수 있는데, 첫째 떠오르는 태양빛에 의해 물들 수 있고, 둘째 상류의 붉은 흙이 씼겨 내려와 강물의 색이 변할 수 있다. 그 강물이 어떻게 붉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모압 사람들이 이 붉은 물을 피라고 착각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착각으로 인해 모압사람들은 패전하게 되었다. 이 전쟁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과 그 주위 나라들의 백성들이 붉은 색을 피와 연관시켜 생각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점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이집트의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재앙이 있었다. 재앙과 심판의 현장을 묘사하는 색채로 붉은 색보다 더 효과적인 색채도 드물다. 붉은 색은 이처럼 생명과 죽음의 양면성을 모두 나타내는 색인 것이다.
V. 움직이는 붉은 색 - 타오르는 불꽃 이미지
우선 하나님과 불과의 연관을 살펴보자. 신현현(theophany)의 경우 불이 등장하는 예가 많다. 신명기의 경우 하나님은 불 가운데 강림하시며 불 가운데서 말씀하신다(신 4:12, 15, 33, 36; 5:4, 22-26; 10:4)는 점을 특히 강조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건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불 가운데 현현한 사건이다(출 19:18). 한편 하나님은 횃불이 되어 나타나며(창 15:17), 불꽃에 쌓인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 말씀하신다(출 3: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시는데 밤중에는 불기둥이 되어 선두에서 인도하신다(출 13:21; 14:24; 민 9:15; 14:14; 신 1:33; 시 78:14). 또한 야훼는 불수레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왕하 2:11). 야훼와 불과의 관련성은 “야훼는 삼키는 불이시요”(신 4:24)라는 직접적인 언급에서 가장 뚜렷이 알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야훼가 불 가운데 있지 않다는 언급이 나타나는데(왕상 19:11-12) 이러한 언급은 야훼와 불과의 연관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세미한 음성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또 다른 면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야훼 제사의식의 경우 대부분 불과 관련이 있다. 번제단의 불은 계속 타올라야 한다(레 6:2, 5) 번제단에서 전부 혹은 일부를 태워서 드리는 것이 제사의 일반적인 형식이다. 낮에는 제단 위에 연기가 구름같이 올라가고(구름기둥) 밤에는 제단 위에 붉은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불기둥)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지각하게 되는 것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묘사하는 것과 제사의식의 모습이 비슷함을 발견할 수 있다.
1. 신명기와 불의 하나님
출애굽기에서 묘사된 시내산 야훼 현현사건에서는 불에 관한 언급이 두 번 밖에 나타나지 않는다(출 19:18; 24:17). 오히려 짙은 구름(출 19:16; 20:21; 24:15, 16a, 16b; 24:18; 34;5 )과 연기(출 19:18a, 18b; 출 20:18)가 강조되고 있다. 회막이 완성되었을 때 “낮에는 야훼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구름 가운데 불이 있음을 진행하는 모든 곳에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았다”(출 40:38)고 기록하고 있다. 불은 있으나 “구름 가운데 불”이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신명기에서는 동일한 시내산 전승에 대해 이야기할 때 불을 여러번 강조하고 있다. 신명기에 나타나는 시내산 전승은 붉은 불빛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신 4:11-12; 5:4-5; 5:22-27).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는 전승만을 살펴보면, 마치 출애굽기가 흑백TV화면이라면 신명기는 컬러TV를 보는 듯하다.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것일까?
출애굽기에는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보았다고 두 번이나 기록되어 있다(출 24:10, 11). 비록 백성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고 하나님을 볼려고 할 경우 죽을 수 밖에 없다고 하였지만(출 19:21)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신명기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없었고 음성만 들을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신 4:12, 15). 그리고 신명기에서는 시내산의 불을 강조하였고 그 불이 하나님의 형상을 대신하는 이미지로 나타나있다. 다시 말하면 신명기에서는 말씀의 소리와 타오르는 불꽃을 강조하였고 이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2. 심판의 불
하나님이 죄인에게 불을 보내어 심판하는 장면은 구약 여러 곳에 나타난다. 아모스의 경우 하나님이 이스라엘 주위의 여러 나라들을 심판할 때 불로 심판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암1:4-14; 2:2, 5). 소돔과 고모라 성을 심판할 때도 불로 심판하였다(창 19:24). 불은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붉은 불꽃이 타오르고 화염에 휩싸인 장면은 재앙의 장면이며 심판의 현장이다. 재앙의 불길이 보여주는 색채와 피흘리며 죽어가는 선혈이 낭자한 장면은 동일한 붉은 색 이미지로 유사한 메시지를 전해 준다.
VI. 색채도 번역이 필요한가?
전통적으로 한국의 색채는 “오색 영롱하다”에 포함되어 있는 하양, 검정, 빨강, 파랑, 노랑 등의 오방색이다. 오색은 궁궐과 사찰의 단청에 사용되었으며 어린이와 여인들이 입는 색동옷에도 오방색이 사용되었다. 이 가운데서도 흰색은 ‘백의민족(x y
;)’이라는 단어에서도 발견할 수 있듯이 보편화된 색이었지만 빨강은 특별한 색채였다. 붉은 마음, 즉 일편단심( ��M�은 특별한 마음이며, 특별히 충성스럽고 정절있는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한국에서는 붉은색 혹은 빨간색이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좌우 이념 대립이 심했던 시절에는 빨간색은 특별한 의미를 나타내었다.
…빨간색이 나타난다. 좌우 대립에 오랫동안 시달린 이 땅의 국민들에게 공포를 주는 색깔. 혐오와 모욕, 저주의 상징. 그러나 이 색깔은 분노의 색깔이기도 하다. 창희의 라이터와 불의 빛깔. 그 색채는 특히 최씨가 뒤집어쓴 붉은 페인트에서 가장 강렬한 느낌을 드러내며, 창희가 불을 지른 방앗간의 불, 성민이 응시하는 이글 거리는 잉걸불에서도 위험스럽게 나타난다.
붉은 색은 타오르는 불꽃의 색이라는 점과 피의 색이라는 점은 한국에서도 통할 수 있는 공통적인 면이다. 그러나 포도즙의 색채라는 점은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면이다. 또한 붉은 색이 피의 색이라 하더라도 그 뉘앙스는 다르다. 붉은 색이 희생제물의 피라는 개념과 붉은 색이 죄악의 상징이라는 개념은 생소한 개념이다. 중국의 결혼식장에는 온통 붉은 색으로 치장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도 붉은 색은 긍정적인 개념으로 자리잡혀 있다.
성서에 나타나는 이미지 가운데 붉은 색 이미지를 한국에 전달할 때 붉은 색에 대한 한국의 전통적인 감정과 정서를 감안하여 전달하여야 한다. 그리고 시대적 상황과 문화적 변천을 고려하여 색채의 강약과 사용 범위를 조절하여야 한다. 특히 서양을 거쳐서 수입된 성서 그림 이미지 혹은 다른 영상자료를 활용할 때 성서의 내용이 왜곡되지 않도록 색채의 종류와 강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VII. 결론
본 논문에서는 이미지 가운데 색채의 상징성과 영향력을 고찰하면서 성서에 나타나는 “붉은 색 이미지”를 중점적으로 분석하였다. 붉은 색은 피의 색이며 포도즙의 색상이다. 따라서 붉은 색은 희생제사와 밀접히 연관된 색이다. 또한 붉은 색은 타오르는 불꽃의 색채이기도 하다. 불꽃 이미지는 움직이는 붉은 색으로 강력한 이미지이다. 따라서 성서에는 불꽃 이미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붉은 색 이미지가 주도적 이미지인 본문은 우선 포도즙의 색채 이미지와 피의 색채 이미지를 중첩시키면서 점층적으로 붉은 색 이미지를 고조시킨 본문을 들 수 있다(사 63:1-6). 이 본문은 붉은 색 이미지를 활용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능력을 부각시킨 예언자의 예언인 것이다.
두 번 째 본문은 악성피부병자가 완쾌되어 공동체에 다시 복귀하는 절차 가운데 산 새 정결의식에 관한 본문인데(레 14:4-7), 본문 전체에 붉은 색이 확산되면서 마지막에는 붉은 새가 날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세 번째 중요한 본문은 붉은 암소를 태워 하타아트 재를 만드는 의식으로(민 19:1-10) 의식 전체에 붉은 색에 물들어 있음을 알 수 있고 점층적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수수께끼같은 붉은 강물에 대한 이미지(왕하 3:21-24)와 재앙으로 인해 붉은 피로 변한 이집트의 물 사건을 들 수 있다(출 7:14-25).
타오르는 불꽃 이미지는 붉은 색이 움직이는 동영상 이미지이다. 불 가운데 강림하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신 4:12, 15, 33, 36; 5:4, 22-26; 10:4)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또한 하나님은 불기둥으로 혹은 불수레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왕하 2:11; 출 13:21). 붉은 색 불꽃 이미지는 심판의 불에서(암 1:4-14), 그리고 신명기에 나타나는 시내산 전승(신 5:22-27) 등에서 강조되어 있다.
성서에 나타나는 이미지 가운데 붉은 색 이미지를 한국에 전달할 때 “번역 과정”이 필요하다. 즉 붉은 색에 대한 한국의 전통적인 감정과 정서를 감안하고 시대적 상황과 문화적 변천을 고려하여 전달하여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멀티미디어 시대의 흐름 속에 이미지는 더욱 강조되고 있고 색채는 그 흐름의 핵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색채를 중심으로 성서해석을 시도하는 새로운 작업은 당면과제에 속하며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첫댓글 성경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관점에 성경에 근거한 미학적 트레이닝이 이루어지면 좋을듯 해서.. 올려놓아요. 특히 민지에게 새로운 인스퍼레이션을 주게 되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