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는 최남수 지음의 『양손잡이 경제』을 같이 읽었습니다.
갈수록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전 세계적인 고물가 상황, 미국의 연방준비제도가 단행한 큰 폭의 금리 인상, 세계 경제침체, 이런 요인들이 우리나라의 경제 전망을 어둡게 합니다. 정부는 2023년 한국경제가 1.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정부가 경제정책방향 등을 통해 2% 미만의 성장률을 제시한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그만큼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는 큰 어려움에 봉착한 것입니다.
사실 한국 경제는 위기 이전부터 경제침체와 양극화 심화, 이 두 가지 문제에 동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경기를 되살리면서도 불평등도 완화해야 하는, 즉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과제를 더 선명하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데는 개방적, 실용적, 융합적 고민이 필요합니다. 성장과 시장만을 중시하거나 평등에만 방점을 둔 단선적 실행방안으로는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하게 됩니다.
지금은 성장과 분배 모두에 문제가 생긴 상태이고 앞으로 대응을 잘못하면 이 문제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남수 지음의 『양손잡이 경제』는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다시 성장에 불을 지피는 ‘오른손 경제관’과 골고루 잘 사는 삶을 지향하는 ‘왼손 경제관’이 조화를 이루며 경제 전체의 체질을 건강하게 변화시켜나가는 ‘양손잡이 경제’의 유연한 시선이 지금 필요한 때라고 말합니다.
이 때의 ‘양손잡이 경제’는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필요하다면 보수(오른손)와 진보(왼손)의 정책을 적절하게 혼용해서 쓸 줄 아는 개방성, 유연성, 실용성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에 대한 현재 상황과 이슈들을 살펴보며 경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문제에 대한 해법도 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1장 양손잡이 경제가 답이다!
한국 경제의 현황 및 전망
한국 경제는 GDP 대비 수출 비율이 40%에 달해 수출이 기침을 하면 경제 전반이 몸살을 앓는 수출의존 경제 구조입니다. 게다가 전체 수출 중 대중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8년 기준 26.8%에 이릅니다. 전체 수출의 4분의 1 이상이 ‘중국행’이어서 결국 전체 경제의 진로가 중국 경제의 상황에 따라 좌우되고 있어 장기화가 우려됩니다. 여기에 중국 경제는 코로나 위기 이전부터 미국의 무역 보복으로 대미 수출이 줄어들면서 성장률이 떨어져 한국의 수출도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미ㆍ중 패권 경쟁으로 양국 경제가 서로 등을 돌리는 디커플링이 진행된다면 우리 경제는 더 어려운 처지를 맞게 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보복 조치 이후 기술과 부품 등 중간재의 수입대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주로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하는 우리나라로선 이래저래 대중국 수출 전망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대외여건의 악화가 설상가상으로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이 약화하고 있는 시점에 겹치면서 경제의 시계를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001년~2005년에만 해도 5.0~5.2%였지만 내림세를 지속해 2019년~2020년에는 2.5~2.6%에 그치고 있습니다. 생산성이 정체돼있는 가운데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투자도 둔화한 데 따른 것입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런 요인들이 앞으로도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잠재성장률은 2021년~2025년에는 2% 초반, 그리고 이후에는 1%로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제로 경제 성장 시대’가 올 것으로 보는 전망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경제 전망은 그 수치의 정확성을 떠나 우리 경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어려운 국면에 들어설 수도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미ㆍ중 패권 다툼이 계속돼 수출환경이 불리해지는 가운데 중국의 기술 추격도 거의 막바지 단계에 있는 데다 잠재성장률마저 내리막 길이기 때문입니다. 몇 년 사이에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면서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도 완화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도 일본경제가 겪었던 ‘잃어버린 시간’ 같은 블랙홀로 빠져들어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우리나라에 10년 정도의 시간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근 서울대 교수 등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인 초고령 사회가 되는 시기가 2026년으로 추산되는 점, 중국이 10년 안에 제조 강국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들어 한국에 주어진 시간이 10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기간 안에 잠재성장률을 3%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이 교수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경제가 직면한 어려움은 1997년의 외환위기와 같은 ‘검은 백조’는 아닙니다. 당시는 갑작스러운 위기에 전 국민이 합심해 조기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위기는 ‘회색 코뿔소’의 성격이 강합니다.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자칫 대책 마련을 소홀히하면 회색 코뿔소처럼 달려올 수 있는 위험이 앞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딱 한 번밖에 기회가 없다는 각오로 경제의 체질과 ‘경제하려는 의지’를 강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해답은 실용적인 양손잡이 경제
균형 있는 경제 성장, 적정한 소득분배, 경제 민주화 등이 헌법이 지향하는 한국 경제의 가치이자 목표입니다. 성장과 경제 민주화의 조화라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도움이 된다면 진영의 이념보다는 국민 입장에서 선택하는 유연성이 요구됩니다. 더구나 지금은 경제 성장과 분배 모두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입니다. 일방적으로 시장만 선택하던가 아니면 분배만 중시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는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를 풀어나갈 수가 없습니다. 특히 한국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40%인 소규모 개방 경제입니다. 수출을 많이 한다고 하는 중국(19.6%), 인도(19.2%), 일본(16.3%)의 수출 의존도의 배를 넘는 수준입니다. 게다가 글로벌 시장은 무한경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업들이 국제무대에서 잘 뛸 수 있도록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과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분배, 노동, 소비자를 희생시켜서도 안 됩니다. 무엇보다 양극화 심화가 소득과 자산은 물론 기회와 건강, 수명의 불평등 문제로까지 비화하고 있는 현실은 엄중합니다. 이제 경제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고 성장과 분배, 기업과 노동을 조화시키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양손잡이 경제’를 그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지금은 성장과 분배 모두에 문제가 생긴 상태이고 앞으로 대응을 잘못하면 이 문제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다시 성장에 불을 지피는 ‘오른손 경제관’과 골고루 잘 사는 삶을 지향하는 ‘왼손 경제관’이 조화를 이루며 경제 전체의 체질을 건강하게 변화시켜나가는 ‘양손잡이 경제’의 유연한 시선이 필요한 때입니다. 신자유주의에서 시장 근본주의가 가져오는 폐해를, 또 ‘유러피안 드림’에서 지나친 복지가 가져오는 정부 실패를 본 만큼 정부와 시장의 영역을 적절하게 조화시키는 ‘혼합형 사고’가 필요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나
‘시장이 절대적으로 옳다’ 또는 ‘정부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근본주의적 사고는 무의미하며 위험합니다. 현실은 상대적 차이만 있을 뿐 시장과 정부 개입의 혼합, 즉 양손잡이 경제였습니다. 경제가 어려워 재정 지출을 늘리려고 하면 시장 논리를 앞세워 이를 비판한다거나 또는 대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얘기하면 친기업, 반개혁으로 비판하는 이분법적 시각은 진영 논리일 뿐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풀어가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현실은 실용적인 해법을 요구하고 있는데 경제가 경직된 진영 논리에 발이 묶여 서는 안 됩니다.
한국 경제가 성장률을 다시 올리면서 양극화도 완화해가야 하는 중대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지금부터는 노사가 서로를 포용하는 협력적 관계를 다지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한국 경제를 ‘경제공동체’로 보고 노사가 서로를 ‘공동체의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노사 모두가 노력해야 하며 정부가 이를 위한 여건을 조성해줘야 합니다. 무엇보다 저성장 탈출과 새로운 도약을 위한 새로운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져야 합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치열한 글로벌 경쟁 대열에서 뒤로 쳐지지 않고 선두권을 유지하려면 산업 현장의 평화, 즉 협력적 노사 관계가 필수적입니다.
대기업들은 소규모 개방 경제인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수출 확대 등을 통해 성장을 주도하고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큰 기여를 해온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과정에서 정경유착, 비리,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 거래 등으로 반기업 정서를 조성한 장본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공과 과가 다 있는 것입니다. 잘한 것에 대해서는 잘한 대로 인정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법을 어기는 잘못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엄격하게 처벌하고 필요한 개혁은 개혁대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대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제 바꿔야 합니다. 글로벌 무대를 누비는 대기업들이 잘 해줘야 경제도 살고, 중소기업도 살고, 일자리도 생겨납니다. 반기업 정서를 해소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대기업들이 국민의 응원을 받는 대표선수로 자리매김을 했으면 합니다.
정리하면 정부, 정치, 기업 모두 기업이 경제활동을 하는 법인체의 영역 안에 머물며 성장과 일자리 창출, 분배에 기여하는 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합니다.
한국 경제를 어렵게 하는 요인들
현재 국제기관들이 한국 경제에 대해 내리는 평가를 보면 한국 경제가 가진 실력은 괜찮은 편입니다. 2018년 기준 명목 GDP로 본 경제의 규모는 1조 6,200억 달러(전 세계의 1.66%)로 세계 12위에 올랐습니다. WEF가 평가하는 2019년 국가경쟁력은 우리나라가 세계 141개국 가운데 13위로 상위권입니다. 2019년 세계혁신지수에서는 고소득 국가 중 11위로 양호한 성적을 나타냈습니다. 특히 블룸버그 혁신 지수는 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1위를 유지했습니다. 또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평가한 ‘2020 세계경쟁력’ 순위는 63개국 중 23위입니다.
하지만 개별 평가항목을 들여다보면 한국 경제의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가 잘 드러납니다. WEF의 국가경쟁력 평가항목별 순위를 중국과 비교해보면, 전반적 경쟁력 순위는 한국이 13위로 중국의 28위보다 높습니다. 그러나 세부 항목을 보면 정부와 금융, 창업 경쟁력에서 중국에 열세입니다. 특히 중국이 한국보다 크게 앞서는 부분은 정부규제 부담(한국 97위, 중국 9위), 벤처캐피털 가용성(한국 51위, 중국 13위), 창업비용(한국 97위, 중국 9위), 기업가 리스크에 대한 태도(한국 88위, 중국 31위) 등입니다. 규제와 창업 등 경제의 역동성 항목에서 중국보다 순위가 크게 낮다는 것은 미래의 경쟁력에 걸림돌이 되는 요인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부문에서는 부분적인 미조정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을 바꾸는 파괴적 혁신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한국 경제 내부 상황을 들여다보면 미래를 어둡게 하는 적지 않은 구조적 위기 요인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먼저 경제 체력의 약화를 들 수 있습니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실제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로 인한 인구증가 둔화(또는 감소)와 고령 인구의 급증이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당장 2020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선 데 이어 총인구도 2028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할 것으로 통계청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생산성이 정체된 가운데 불확실성이 높아짐에 따라 기업투자가 위축된 것도 잠재성장률을 하락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저출산에는 육아와 자녀 교육비 부담 등이 원인이지만 고령화도 큰 이유입니다. 즉 자신의 노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녀 양육의 무게감이 큰 것입니다. 고부담 고복지 등 방식을 써서라도 고령 인구에 대한 복지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도 잘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저출산은 정부만 풀어가는 대책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인구는 기업에 있어 노동 인력은 물론 소비자 규모의 문제입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 문제야 로봇 도입 등 자동화로 풀 수 있겠지만 절대 시장 규모가 크게 줄어들면 기업도 큰 위기를 맞이할 것입니다. 정부에만 맡기지 말고 기업도 출산에 대해 파격적인 인세티브를 줘야 합니다. 저출산은 정부와 기업이 같이 풀어나가야 합니다. 이와 함께 중장기적으로 볼 때는 세계 주요 국가들이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이민자 확보 경쟁을 벌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미래를 길게 내다보는 대응 방안도 마련돼야 합니다.
또한 대외 여건의 불투명성에 대해서도 유념해 봐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의 확전을 피하기 위해 일시 휴전을 했지만, 코로나19 책임 문제와 기술 패권 전쟁 등을 둘러싸고 마찰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제조2025’를 통해 부품 등 중간재의 수입 대체를 강력하게 추진해온 중국은 이번 미국의 보복을 계기로 대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중간재의 국내 수급 방안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달성하는 기간이 대폭 단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의 이같은 움직임은 미ㆍ중 무역마찰 못지않게 한국 경제에 큰 위기 요인입니다. 국내 기업들이 중국에 수출하는 품목들이 대부분 부품 등 중간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수출 포트폴리오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시급합니다. 지역적으로는 중국, 품목별로는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큰 상황입니다. 수출선을 중국 이외의 지역으로 다변화하고 대표적인 수출 품목들도 다양화해야 합니다. 중국 시장과 반도체에 과도하게 기대는 구조로는 한국 경제의 안정적인 운항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이와 함께 중국 수출 품목도 내수를 겨냥한 상품과 서비스의 비중을 높여나가야 합니다. 여기에다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개선하면서 내수 기반을 강화해 수출 의존도를 하향 조정하는 정책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제2장 미·중 패권 경쟁, 대충돌로 가는가
미국에 위협적인 중국
미국이 플라자합의로 일본의 기세를 꺾었던 1985년 당시 일본의 명목 GDP는 미국의 32% 수준이었습니다. 이 비율은 1995년에 71.3%까지 상승한 후 내림세로 돌아섰습니다. 현재 일본의 경제 규모는 미국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10년 정도는 경쟁력으로 버티다가 경제가 활력을 잃으면서 미국의 상대가 되지 않는 수준으로 밀려난 셈입니다.
중국의 경우는 금융위기가 일어난 2008년에 GDP가 미국의 31% 수준에 그쳤습니다. 이 비율이 2019년에는 66%로 배 이상 수준으로 상승했습니다. 미국의 GDP는 21조 4,280억 달러, 중국은 14조 1,400억 달러로 격차도 7조 3천억 달러였으니 4조 달러 가까이 격차가 축소됐습니다. 일본의 GDP가 미국에 71%까지 따라붙었다가 미국의 공세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는데 중국의 대미 GDP 비율이 이 경계선에 근접한 것입니다. 이 수치로도 미국이 중국에 대해 공세의 수위를 높이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격차가 위험 수위에 다다른 만큼 더 좁혀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198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의 국방비 증가율이 매년 두 자릿수에 달하면서 2040년을 전후해서 중국의 국방비가 미국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일대일로’ 참여국을 늘려나가고, ‘제조 2025’를 통해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첨단 제조업 강국이 되겠다며 ‘중국몽’의 깃발을 들자 미국이 ‘중국 경보’를 강력하게 발동한 것입니다.
2017년 기준으로 볼 때 세계 최대 수출국은 중국(2조 2,630억 달러)이고 2위 국가는 미국(1조 5,470억 달러)입니다. 수출 의존도(GDP 대비 수출액의 비율)는 중국이 20.04%로 미국의 12.6%보다 높습니다. 그만큼 중국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입니다. 수입의 경우는 미국이 1위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2조 4,090억 달러의 상품을 해외에서 사들입니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2위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이번 미ㆍ중 무역마찰의 표면적 이유는 미국의 대규모 대중 무역적자입니다.
2018년에 미국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5,395억 달러에 달한 데 비해 대중 수출은 1,203억 달러에 그쳤습니다. 수출이 수입의 22% 정도에 그친 결과 사상 최대 규모인 4,192억 달러의 적자가 중국과의 무역에서 났습니다. 2018년에 미국은 전체 무역적자 규모가 역사 상 최대치인 8,910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 중 절반가량이 중국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더 심각한 사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중 무역적자 폭이 눈덩이 불어나듯 증가해 왔다는 점입니다. 만성적인 적자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높은 소비 탓에 투자보다 저축이 부족해 그만큼 수출보다 수입이 큰 무역적자 구조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축과 투자의 불균형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대규모 무역적자라는 미국 경제의 만성적인 질병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달러화는 기본적으로 국제 금융거래와 결제의 중심이 되는 기축통화입니다. 그동안 중국이 자국 통화인 위안화의 국제화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위안화는 미국 달러화에 경쟁이 되지 못합니다. 2019년 1분기 현재 세계 각국이 보유한 외환 중 미 달러화는 6조 7,400억 달러로 61.8%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위안화의 비중은 2%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또 세계 외환시장 거래의 90%가 달러로 이뤄지고 있고, 석유 결제 통화도 미 달러화입니다. 돈은 실물 경제의 혈맥입니다. 세계 경제의 패권을 장악해온 미국의 힘은 돈의 흐름을 좌우하고 있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여기에다 미국은 날개를 하나 더 달았습니다. 셰일 석유를 대량으로 생산하게 되면서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에 올랐습니다. 산유국 하면 중동을 떠올리던 시대는 미국의 ‘셰일 혁명’으로 끝이 났습니다. 2018년 기준 국가별 세계 산유량 점유율을 보면 미국이 16.2%로 1위이고 이어서 사우디아라비아(13.0%), 러시아(12.1%)의 순입니다. 중국은 4%에 그치고 있습니다. 미국은 석유를 자급자족하고도 남아 수출하는 나라가 된 데 비해 중국은 석유를 외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국력에서 미국이 우위인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거센 추격으로 미국의 우위가 흔들리면서 미국이 ‘미래의 우세’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입니다. 두 나라의 한판 대결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
미국과 중국은 현재 글로벌 패권을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중국의 진군을 막기 위해 미국이 강력한 방어전에 들어간 형국입니다. 미국은 일차적으로는 대규모 대중 무역적자를 이유로 유례없는 고율 관세라는 창을 빼 들었습니다. 이어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화웨이의 발목을 잡아두면서 중국의 미국 기술 절취, 미국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압박, 허술한 지적 재산권 보호 등에 대해 거세게 문제를 제기하고 관련 제도와 관행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사이버 기술 스파이 활동에 대해 미국은 더는 인내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입니다. 뉴스위크의 보도를 보면 중국의 스파이 활동으로 미국 기업들은 연간 3,000억 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습니다. FBI는 중국이 미국의 군사 및 기업 비밀을 훔치기 위해 3만 명의 군인과 15만 명의 민간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특히 대부분의 차세대 기술이 군사적으로 이용 가능해 기술 패권을 놓치면 군사적 우위도 무너질 것으로 보고 중국의 기술 추격을 막는 데 총력전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도 미ㆍ중 무역전쟁은 결국 경제ㆍ기술 전쟁과 전략ㆍ군비 경쟁으로, 더 나아가 이념 경쟁으로까지 확산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전면적인 힘겨루기인 것입니다.
G1을 향한 중국의 걸림돌
2018년 기준 중국의 GDP는 13조 3천억 달러입니다. 미국과는 7조 달러 이상의 격차가 있습니다. 중국이 미국 경제를 따라잡는 시기를 결정하는 요인은 중국경제의 성장 속도(명목 기준)와 환율입니다. 환율은 위안화로 표시된 중국 GDP를 달러화로 환산하게 해주는 변수이고 명목 성장률은 중국경제가 미국을 추격하는 속도입니다. 2012~2018년의 기간 중 미국의 평균 명목 성장률은 4.1%, 중국은 9.3%였습니다. 미국의 견제로 성장률 둔화, 고령화 및 부채 문제 등 중국 경제 내부적인 문제를 감안하여 중국경제의 성장 속도를 5.3%로 하향 조정하면 미국 경제가 중국경제에 잡히는 시기는 2054~2062년으로 나옵니다(아래 표 참조). 따라서 중국경제가 명목치 기준으로 미국 경제를 추월하는 시점은 3, 40년 후가 됩니다.
미국이 중국 견제의 고삐를 바짝 죄는 가운데 중국경제가 안고 있는 ‘아킬레스건’도 중국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와 저출산, 그리고 부채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먼저 중국의 고령화 속도는 우려할만한 수준입니다. 총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18년의 12%에서 2050년에는 33%로 상승할 전망입니다. 전체 인구 가운데 중간 나이인 중위 연령도 2050년에는 56세로 상승해 미국의 44세를 크게 웃돌아 경제 활력이 위축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다 과거에 실시한 ‘한 자녀 정책의 여진’ 탓에 출산율이 크게 떨어져 중국의 총인구는 2029년에 14억 4천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줄어들 것으로 중국사회과학원이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누려온 ‘인구보너스’가 사라지고 인구 감소가 경제 성장을 지체시키는 ‘인구오너스’의 시대로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금융위기 이후 많이 풀린 돈 때문에 크게 불어난 부채도 중국경제의 골칫거리입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중국의 부채 총액이 GDP의 255.7%에 이르고 이 중 기업부채 비율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높은 160.3%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부채 규모도 규모지만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빨랐고 특히 수익을 내지 못하는 ‘좀비’ 국영기업의 부채가 중국경제에 ‘뜨거운 감자’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빚으로 경기를 부추기는 게 어려워진 상황에서 부실채권이 늘어나면 가뜩이나 감속 중인 중국 경제의 성장 속도를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는 시기는 미국의 끈질긴 견제와 중국 내부의 구조적 문제로 생각보다 더 늦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짚어볼 문제는 설사 경제 규모에서 미국을 추월한다고 해도 중국이 명실상부한 세계의 정상 국가, 즉 G1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미국이 현재 G1인 것은 경제의 덩치가 크기 때문인 것만은 아닙니다. 민주적 가치 등을 존중하는 리더십인 소프트 파워를 미국은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국가든 하드파워와 소프트 파워가 조화를 이룰 때 글로벌 1위 국가로서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이 소프트 파워를 갖추지 못하면 글로벌 무대에서 리더십을 인정받지 못하는 ‘덩치만 큰 나라’에 머물 수 있습니다.
요동칠 세계 경제 판도
중국을 2위에 묶어두기 위해 미국에서 중국으로 가는 부품과 기술의 흐름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미국. 이번 기회에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자고 작정하고 나선 중국. 두 나라의 ‘강 대 강’ 대결에는 크게 두 가지의 시선이 존재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결별해 각각의 블록을 만드는 ‘디커플링’이 이뤄질 것으로 보는 의견과 두 나라 경제가 워낙 밀접하게 얽혀있어 디커플링은 불가능하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디커플링 시나리오의 근거는 이렇습니다. 이번 마찰을 통해 미국은 중국에 기술과 소프트웨어는 더 이상 무역의 대상이 아니라 패권의 문제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줬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은 국가안보에 민감한 부문에 대한 중국의 투자를 크게 제한하고 있고, 인공지능과 5G 등 전략적으로 중요도가 높은 산업에서는 미국의 우위를 지키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중국은 앞으로 필요한 기술과 부품 등을 국내에서 개발하거나 다른 안전한 국가에서 확보하는 식으로 미국 주도의 공급체인망에서 빠져나오려 할 것입니다. 기술주권을 다지는 게 국가 경제의 안위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됐기 때문입니다.
디커플링이 가시화되면 세계 경제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세계무역기구 WTO 체제 출범 이후 미국 주도의 단일 시장을 유지해왔던 세계 경제가 ‘미국 블록’과 ‘중국 블록’ 두 개로 갈라져서입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나라들은 미국과 중국 중 한 나라를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몰리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과 독일 같이 중국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경제의 기본 틀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위기를 맞게 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의 수출 시장을 크게 축소되는 게 불가피할 것입니다.
디커플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세계 각국이 글로벌 공급체인 안에서 부품과 제품을 사고팔며 밀접하게 얽혀있어서입니다. 각국이 서로 공급 체인으로 맞물려 있는데 미국 블록과 중국 블록으로 이등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어떤 의견이 정답일까. 후자의 견해가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중국은 충분히 시간을 두고 대미 의존을 줄이면서 단계적으로 미국 주도의 공급 체인에서 빠져나가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현재 세계 경제의 구도와 디커플링의 중간 어디쯤으로 세계 경제 판도가 이동해 갈 가능성이 큽니다. 그 지점이 어디든 WTO 체제하의 ‘세계 단일 시장’ 구조는 취약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은 중국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취해온 이 구조를 개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에 맞서 중국도 개도국과 저개발국에 대한 자금 제공 등을 통해 자국의 영향력이 강한 블록을 만들어 갈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중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대체 수출시장을 찾든지 내수 비중을 높이든지 경제 구조를 대수술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미ㆍ중 마찰이 장기화하는 시기에 수출의 25%를 중국에 의존하는 편중 구조는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이 몸살을 앓으면 한국 경제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동남아, 인도는 물론 중장기적으로 아프리카 지역도 잘 지켜보면서 수출시장을 다변화해 대중 의존도를 낮춰 나가야 하는 일이 한국 경제의 과제로 주어져 있습니다.
제3장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깃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부각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은 기본적으로 인력을 고용하고 자본재 등에 투자해서 시장이 필요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에 따른 기업의 목적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습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이른바 ‘관리 자본주의’가 가동되고 있을 때만 해도 기업은 정부, 노조와 협력해 이익을 내면서도 근로자들에게 고용 안정을 보장하는 것 등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부터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신자유주의의 깃발을 들면서 기업의 목적은 주주 가치, 즉 기업 주인의 부를 극대화하는 쪽으로 집중됐습니다. 이에 따라 기업은 분기마다 시장의 기대치를 상회하는 이익을 내는 데 총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렇게 기업이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양극화 및 불평등 심화, 환경 오염 등 커다란 부작용이 누적돼왔습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유럽에서도 주식시장의 압력이 세진 결과 비정규직이 많이 늘어나는 등 고용 관행에 변화가 생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최근 해외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이슈가 ‘고장난 자본주의를 개혁하는 문제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 더 가디언 등의 미디어가 제기하고 있는 자본주의 문제의 핵심은 기업들에 단기이익 극대화를 압박하는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자본주의를 망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주가를 끌어 올리기 위해 투자도 늦추고 임금도 억제하는 등 많은 문제를 일으켜 왔다는 것입니다.
단기적 이익을 중시하는 기업 경영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대기업의 CEO들이 의미 있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영향력 있는 미국 CEO 181명의 모임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은 2019년 8월 주주 우선주의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이례적인 선언을 했습니다. BRT는 1978년 이래 ‘기업지배구조의 원칙’에 대해 정기적으로 발표해왔는데 1997년 이후 발표된 원칙은 기업은 기본적으로 주주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주주 우선주의였습니다. 주가를 최대한 올리고,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주들에게 ‘현금선물’을 하는 게 기업의 목적으로 간주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BRT는 이번에 새로 발표한 기업지배구조 원칙에서 기업의 목적은 고객, 근로자, 거래기업, 지역사회, 주주 등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봉사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기업이 중시해야 할 이해관계자 중 주주의 순위가 맨 뒤로 밀렸고, 주주에게는 ‘장기적 가치’를 창출하는 게 기업의 목적이라고 밝혀 단기이익을 배제했다는 점입니다. 2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의 기본틀이 돼온 주주우선주의에 대해 CEO들이 종지부를 찍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선언한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CEO들은 그동안 기관투자가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아웃소싱이나 감원을 하고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주들에게 현금을 뿌려왔습니다. 이는 기업의 미래를 희생시키는 조치였습니다. CEO들이 이 같은 문제를 절감하고 주주 우선주의의 종언을 내건 것은 중요한 변화입니다.
문제는 글로벌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주주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주장했다고 해도 이게 실제 변화로 연결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글로벌 무대에서 공론화돼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선행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클라우스 슈밥 WEF 회장은 최근 새로운 다보스 선언의 주제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채택했습니다. 슈밥은 주주자본주의가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는 법인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조직임을 잊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결과 기업이 실물 경제에서 점점 괴리돼 주주자본주의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렇듯 해외에서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이 이슈가 제기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멀지 않아 자본주의의 진로 수정 문제가 글로벌 무대에서 공론화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한국 사회도 이 이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습니다. 이제 한국 사회도 한국 자본주의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놓고 심도 있는 고민과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미국의 재계가 먼저 들고나온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양손잡이 경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업 스스로가 ‘오른손’인 주주 가치와 ‘왼손’인 이해관계자 가치를 조화시키려 노력하는 경영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정부와 기업, 학계는 해외의 논의 추이를 주시하면서 기업의 목적을 재검토함으로써 사회의 공동선과 같이 호흡하는 기업의 새로운 모습을 모색하는 일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양손잡이 경제’와 ‘양손잡이 경영’은 양극화 및 불평등을 완화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건강한 경제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더 심한 불평등이 온다
취리히대학의 니르 자이모비치 교수와 브리티시 콜롬비아대학의 헨리 슈 교수는 ‘자동화와 다른 형태의 IT가 중산층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최근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기술 발달에 따라 노동시장에서 ‘일자리의 분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임금 수준을 기준으로 근로자들을 줄을 세운다면 양쪽 끝에 있는 저임금 근로자와 고임금 근로자의 고용은 늘어나고 있는 데 비해 ‘중간 수준 임금’ 근로자들이 집중적으로 자동화의 영향을 받아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먼저 고임금 일자리는 경영, 전문직, 기술직 등으로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자리여서, 그리고 저임금 일자리는 다른 사람을 돌본다거나 직접 손을 써서 하는 일이어서 기계가 대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에 비해 중간 수준 임금 일자리는 잘 정의된 지침과 절차에 따라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일상적인 일이어서 자동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고임금 일자리는 자산운용 전문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이고, 저임금 일자리는 간병인 등으로 직업의 성격상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기 어려운 일자리입니다. 이에 비해 기계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중간 수준 임금 일자리는 비서, 행정 보조, 사무원, 여행사 직원, 데이터 입력 요원 등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일을 하는 자리입니다. 실제로 2002년~2017년의 기간 동안 고임금 일자리는 14.2%, 저임금 일자리는 10.4% 늘어난 데 비해 중간 임금 일자리는 13.5%가 감소했습니다. 문제는 중간 수준 임금 일자리가 전체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정도라는 데 있습니다. 작지 않은 비중의 근로자가 기계에 밀려 일터를 떠난 것입니다. 앞으로 AI 등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기계가 차지하는 일자리는 고임금과 저임금 일자리로도 확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양극화 심화가 글로벌 경제의 가장 큰 문제 중하나로 떠오른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계의 인간 대체’는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됩니다. 그 이유는 중산층의 일자리가 자동화로부터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과학기술의 발달은 신기술의 혜택을 받는 일부 기업과 전문가들에게 더욱 큰 소득과 자산을 집중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4차산업혁명은 거부할 수 없는 기술 발달의 큰 흐름입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정부와 기업들이 합심해 기술 강국으로 치고 나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나가야 합니다. 소비자 관점에서 볼 때도 정보통신과학기술의 발달은 아주 편리한 세상을 열어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 자신의 일자리가 없어지거나 소득이 줄어든다면 기술이 가져올 미래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수도 있습니다. 근로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아마존고나 아이다스의 신발 제조 공장. 금융권에서 쏟아져나오는 실직자의 행렬을 보면, 또 인간보다 똑똑해질 인공지능의 미래를 보면 대량 실업에 대한 우려가 단지 우려에 그치지 않고 현실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더 큰 불평등이 다가올 미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이에 따라 기술 발달을 사회경제적 공동체를 깨트리지 않아야 하는 필요성과 조화시키고 뒤처지는 사람들을 포용하며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합니다.
공유경제의 변질
공유경제는 물품이나 서비스를 여럿이 공유해서 쓰면 자원 낭비도 줄이고 효율성도 높일 수 있으니 금상첨화라고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랬던 공유경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공유’라는 간판을 내건 대표적 기업들이 실적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공유’가 정말 ‘공유’인지에 대해 회의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 예로 우버를 들 수 있습니다. 곪아있는 우버의 문제는 증시 상장을 앞두고 표면화됐습니다. 상장을 이틀 앞둔 2019년 5월 8일, 뉴욕과 런던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우버 운전사들이 고객의 주문을 받는 앱을 끄고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경영진은 수십억 달러를 벌고, 운전기사는 빈곤층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다’라는 플래카드는 우버 기사들이 직면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우버 기사들은 자신들을 정규직 직원으로 인정하고,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며, 유급 휴가와 병가 등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들은 비정규직원에 최저임금조차도 못 받고 있고, 휴가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우버가 공식적으로 밝힌 사업모델은 차량 공유입니다. 자신이 가진 차량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플랫폼이 역할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사업모델이 알려진 것과 전혀 다릅니다.
우버 기사들은 대부분 자신이 차량을 이용할 때 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거나 차량을 사용하지 않을 때 임대하는 게 아닙니다. 우버만을 위해 일하는 전업 근로자입니다. 자신의 차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이 일을 하기 위해 새로 차를 사거나 우버의 권유로 차량을 임대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실제로 우버가 기사들에게 딜러를 소개해주면서 차랑 임대를 부추기고 임대료는 임금에서 공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주택을 공유한다는 에어비앤비는 자신의 주택을 타인에게 공유하는 사례도 적지 않지만, 아예 주택이나 오피스텔 등을 대량으로 매입해 ‘공유’를 사업으로 하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집값이 상승하거나 기존 임차인이 퇴거당해 주거 불안정이 생기는 등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습니다. 결국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공유경제 기업이 아닙니다. 공급자와 사용자를 중개해주고 중간에서 수수료를 떼어가는 플랫폼 사업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저임금 일용 플랫폼 근로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새라 케슬러는 저서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에서 그 실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버는 2014년 5월에 기사들이 뉴욕에서 9만 달러 이상을 번다고 광고했다. 하지만 우버 기사의 허를 찌르는 계산을 넣지 않았다. 기름 값, 보험료, 차 할부금 등이다. 이것을 우버 기사가 자비로 부담한다” “평균적으로 볼 때 휴스턴의 (우버)기사는 시간당 10.75달러, 디트로이트에서는 7.77달러를 버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월마트의 2016년 풀타임 평균 시급보다 조금 떨어지는 수준이다”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은 월마트 근로자들과 달리 우버 기사들은 건강보험과 실업급여 등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곡된 공유경제가 대규모로 비정규직 일용 근로자들을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간판은 ‘공유’이지만 실제론 단순 일자리 중개업을 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부담해왔던 각종 위험이 근로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산업은행은 “이전에는 회사에 소속되어 고정 급료, 보험, 복지와 휴가 등을 누리던 근로자들이 공유경제가 도입되면서 오히려 개인사업자가 되어 수익이 불안정해지는 문제가 생겼다”고 진단합니다. 인공지능 등 과학 기술의 발달이 일자리 자체를 줄이고 있다면 이른바 ‘공유경제’라는 신종 산업은 일자리의 질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현재 시장에 존재하는 일부 공유경제는 ‘공유’도 아니고 ‘혁신’도 아닙니다. 공유경제 전문가인 에이프릴 린은 한 인터뷰에서 “긱 이코노미(일용직 경제)는 공유경제가 아니다. 공유경제는 공동체 지향적이어야 한다. 하루하루 사람을 채용해 쓰다가 일이 끝나면 모든 관계가 끝나는 일용직 경제는 공유란 브랜드를 붙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미국과 유럽지역에서 우버 기사처럼 일하는 ‘독립근로자’는 2016년 기준으로 전체 생산가능인구의 20~30%를 차지하는 것으로 맥킨지의 조사 결과 나타났습니다. 1억 6,200만 명 규모입니다. 이중 ‘독립 근로’가 주 수입원인 사람은 7,200만 명 수준입니다. 나머지는 부업으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독립근로자의 비중과 절대 규모는 현재 더 증가했을 것으로 추산되며 향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현재의 ‘공유경제’ 기업은 일용직 근로자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 결과 고용 불안을 유발함은 물론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를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이들 근로자의 법적 지위를 보장해 소득과 고용의 안정을 확보해주는 방안이 앞으로 각국에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공유경제 논의는 활발합니다. 가장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차량 공유 이슈입니다. 차량 공유라는 서비스와 택시 운전기사들의 ‘생존권’이 충돌하고 있어서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버의 한국 진출은 무산됐습니다. 이를 놓고 규제 때문에 혁신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공유도 아니고 일용직 근로자만 양산하는 데다 성공적 사업모델도 아닌 우버의 한국 진출을 왜 허용해야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카카오가 택시회사를 인수하는 것처럼 혁신과 택시 운전기사들의 생존권을 조화시키면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 적절해 보입니다. 새로운 상품이라고 무조건 ‘혁신’의 라벨을 붙이지 말고 그 신상품이 번영과 실질 소득 증가를 가져올 잠재력이 있는지를 잘 판단해야 합니다. 우버 같은 변종 사업모델을 들여와 양극화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당초 취지에 맞게 소유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다른 사람과 공유함으로써 과잉 소비와 자원의 낭비를 막고 효율성을 높이는, 특히 공동체성을 지향하는 참된 공유경제가 도입되고 육성되는 게 맞게 보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책은 제1장 양손잡이 경제가 답, 제2장 미·중 패권 경쟁, 제3장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핵심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앞으로는 기존의 사업 강화만이 아닌 장기적 성장을 위한 시대적 변화를 담아 지속적 혁신을 이루어 가는 것이 경제와 기업, 개인에까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변화하는 세상에 적절히 잘 대처할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하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