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부터 새롭게 시작한 한자 수업.
첫 교재는 『추구推句』로 정했어요. 추구의 뜻은 ‘모을 추’ 자에 ‘귀절 구’ 자로
여러 옛글에서 좋은 귀절을 뽑아 모아 놓은 책이라는 뜻이예요.
그 중에서도 특히 『추구推句』에 많이 뽑힌 글들은
이 세상을 이루는 자연의 질서와 그 감상을 노래하는 구절이 많답니다.
『추구推句』를 선택한 이유에는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부와도 연결되기 때문도 있지요.
『추구推句』의 또 다른 특징은 모든 글들이 5언 절구의 한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5언 절구란, 한 행에 5 글자의 한자가 한 문장의 의미를 이루고, 그런 문장이 4줄 이어져서
전체적인 주제를 구성하는 한시의 형식을 뜻해요.
『추구推句』에 처음 등장하는 句를 살펴볼까요?
天高日月明(천고일월명)이요: 하늘이 높으니 해와 달이 밝고,
地厚草木生(지후초목생)이라: 땅이 두터우니 풀과 나무 자란다.
月出天開眼(월출천개안)이요: 달이 나오니 하늘이 눈을 뜬 것이고,
山高地擧頭(산고지거두)라: 산이 높으니 땅이 머리를 든 것이다.
5언 절구가 어떤 건지 바로 아시겠죠?
하지만 진짜 한시에는 각 구 마다 기승전결의 의미 전개가 이루어지고,
1, 2, 4구의 마지막 글자는 소리를 맞추는 압운과 같은 관습이 있지만,
『추구推句』에 있는 글들은 아이들 교육용으로 편집된 것이라 그런 한시의 규칙을 엄격히 지키지는 않습니다.
다만, 잘 보면 1, 2구와 3, 4구가 대구를 이루어,
같은 위치에 있는 글자들이 문장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天高日月明(천고일월명)에서 天高에 해당하는 글자가 2구에서는 地厚로
天과 地, 高와 厚가 각각 문법상 비슷한 범주로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日月(주부)/明(술부)과 草木/生도 마찬가지구요.
이렇듯 대구를 이루는 문장 구조를 계속 접하다 보면, 한 글자 한 글자 한자를 익히는 것뿐만 아니라
한문 문장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해석될 수 있는지 감각을 익힐 수 있답니다.
天高/日月/明(천고일월명): 하늘이 높으니 / 해와 달이 / 밝고 (2/2/1)
地厚/草木/生(지후초목생): 땅이 두터우니 / 풀과 나무 / 자란다. (2/2/1)
月出/天/開眼(월출/천/개안): 달이 나오니 / 하늘이 / 눈을 뜬 것이고, (2/1/2)
山高/地/擧頭(산고/지/거두): 산이 높으니 / 땅이 / 머리를 든 것이다. (2/1/2)
이렇게 보면 1, 2구가 형식을 같이 하고 3, 4구가 형식을 같이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2구가 단순히 자연의 생동을 노래한다면 3, 4구는 비유가 쓰이고 있어 제법 시적인 맛도 느껴지지 않나요?
月出天開眼(월출천개안)을 설명하며 어느 맑고 어두운 밤 보름달만 떠 있는 하늘을 보고
마치 표범이 눈을 뜨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꼈던 경험을 말해주었어요.
그런데 다음 시간에 공책을 덮고 '월출천개안'의 뜻을 풀어보라고 했더니,
"하늘에 표범이 눈을 떴다."라고 얘기한 웃픈(?) 일화도 있었답니다. ㅎㅎ
『추구推句』의 1부에는 이런 5언 절구의 시가 총 9개가 있는데요.
한자를 다 외워 쓰지는 않더라도, 한자를 보고 음과 뜻을 말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공부했습니다.
봄 학기가 끝날 때는 9개의 시를 한자만 제시해 놓고 음과 뜻을 적어보는 것으로 익힌 것을 갈무리 했습니다.
또 들기 방학 과제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직접 한시를 지어보고, 그에 어울리는 그림도 그려보았어요.
함께 감상해 보실까요?
해석과 함께 감흥을 댓글로 달아주셔도 좋습니다.. ^_^
여름 학기 『추구推句』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입니다.
다음 시화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