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책에 싣지 못한 이야기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Camino de Santiago. 일명 ‘까미노’)’을 걸으면서 이 인야는,
주체할 수 없이 밀려왔던 영감으로 자기 자신을 여지없이 그림과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두 달간 걸으면서 했던 결과물이 의외로 많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결국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자료로 책을 내게 되는 일과 이어진다.
그런데 자료들이 너무 많다 보니 출판사에서는 당연히 선별을 해서 책을 냈는데,
이 인야의 입장에서는, 똑 같은 정성으로 준비했던 원고임에도 책에 실리지 못한 글들이 많아 여간 아까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 몇 년 뒤, 한 포털 사이트를 이용한 인터넷 까페 ‘화가 이 인야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개설하면서, 그 안에 독립된 창 ‘책에 실리지 못한 이야기’를 만들어, 그 원고들을 사이버 세상에 소개하게 되었는데,
이 대목에서는 그 글들을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책 한 권이 넘을 정도로 양이 많아 여기에(1장) 다 실을 수가 없어서, 그 글 뭉치에서도 다시 한 번 추려 뽑아낸 것들만을 실어야 할 것 같다.’하면서 이 인야는,
‘그나저나 그 길을 걸으면서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아서 그토록 많은 글을 써댔는지......’하면서 그 자료를 옮겨왔다.
#공식 알베르게(Albergue,숙소)에서의 첫날 밤# ( 2001 . 6 . 20)
“최소한 남자와 여자 방은 분리시켜야 되는 것 아닙니까?”
나는 이 숙소 1층 입구에 있던 '안내'에 가서 자원 봉사자인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따지듯 말했다.
“?....”
그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니, 조금 전에 내 침대 바로 옆자리에 독일 부인 두 명이 와서 짐을 풀어놓고 나갔는데, 어떻게 남자와 여자가, 그것도 난생 처음 보는 외국인끼리 같은 방, 그것도 바로 옆자리에서 잠을 자라는 거냐구요?”
시종 불만어린 목소리로 말을 하는 나에게,
“아니, 지금 뭐라고 하는 거예요? 당신의 자리가 불편하면 오늘은 우리 숙소에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다른 비어있는 침대로 옮겨가서 잘 수는 있겠지만... 방을 분리하라니,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예요?” 여자 역시, 눈이 휘둥그레진 상태로 말을 했다.
그러니 나도 더 이상은 목청을 높일 수만은 없어서,
“내 말은, 어떻게 남자와 여자가 같은 방에.. 그 것도 바로 옆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자라는 거냐구요......” 여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단호한 태도에 살짝 누그러진 어투로 말을 하자,
그제야 그녀는 살짝 웃음을 짓기는 했다.
그런데 그 웃음은 나를 약간은 비웃는 것 같기도 했지만, 정말 어이가 없다는 투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당신은, 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처음 걷는 건가요?” 하고 물었다.
“예...”
“그럼, 어디까지 갈 건데요?”
“물론, 산티아고까지 갈 생각인데요......”
“ 그런 사람이 어떻게...... 아무튼, 몰라서 하는 말 같은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하고, 그녀는 나를 더 이상 상대조차 하지 않겠다는 듯, 쓰던 서류에 볼펜을 긋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나는,
“예?” 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더니,
“곧 익숙해질 거예요. 아니, 이 시스템에 익숙해져야만 산티아고까지 갈 수 있을 겁니다. 이 길의 숙소는 다 그러니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자못 단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래도 어떻게 처음 보는 여자와 남자가 붙어있는 침대에...”하고 혼잣말처럼 더듬거리는 나를 다시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녀는,
“이 길의 숙소는 다 이런 식이라니까요!” 하기에,
그 쯤에서의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어서, 그렇지만 여전히 투덜거리며 침대 방으로 올라왔다.
그 전에 내가 유럽의 다른 나라들을 여행도 했지만, 그래서 제법 많은 유스호스텔에 묵어보기도 했지만... 어디건 최소한 남녀의 방은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숙소는 난생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불평을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런 뒤, 아무튼 나는 침대를 다른 구석 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자리를 잡았었지만, 내 쪽에서 자리를 옮겼던 것이다.
그렇게 하룻밤을 잤다. 그 키만 큰 게 아닌 덩치 또한 커다랗기까지 한 독일 여자 둘하고 같은 방에서......
사실 첫날인 어젯밤에는 사설 알베르게에서 잤기 때문에(그런데 거기도 모든 침대가 붙어 있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잤지만,
첫 번째로 거친 공공 알베르게가 있는 ‘하까(Jaca)’ 시의 숙소에서 일어난 일이다. #
‘그랬었지. 그 말도 안 될 것 같았던 그 길에서의 숙소 시스템이 나에겐 커다란 충격이기까지 했는데, 그래서 나에겐 너무나도 강한 느낌이었기에 이런 글까지 썼었는데, 첫 번 그리고 두 번째 개정판을 낼 때에도 출판사 측에서는 이 글을 책에 실어주지 않아서, 나중에 겨우 '인터넷 까페'에 소개했던 글인데......' 하면서 이 인야는, '그래서 내가 이 글들을 내팽개치고 건너 뛸 수가 없어서 이런 자리를 만들었던 거지.' 하면서 다음으로 넘어갔다.
#바람의 통로(El Paso del Viento)# (6 . 21)
태양이, 그 작열하던 태양이 힘을 잃어가면서, 열기로 후끈했던 바람이 조금 상쾌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마을 성당 그림자의 그늘은 길게 자리잡았고 마을 길엔 해의 흔적이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다.
산 아래로 멀리 누런 황금빛 밀밭과 그 너머 병풍처럼 둘러싼 녹색 산들, 그리고 또 그 뒤 잔설에 덮힌 피레네의 고봉이 보이는 한 산등성이에 자리잡은 조그만 마을.
그 '아레스(Arres)' 마을에도 땅거미가 지면서는 신비감마저 감돌고 있는 순간이다.
나는 마을의 바람맞이 입구에 나와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이제 이 길을 걷기 시작한지 사흘째.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때때로 아무도 없는 산길이나 들판을 걷고 있는데,
만약 이 길을 걷지 않았더라면, 결코 지구상에 이런 마을이 있을 지는 꿈에서조차 모를, 그런 조그만 산마을에 와 멀거니 앉아 있는 것이다.
습기가 없는 담백한 바람은 마치 내 심신의 불순물을 다 앗아가며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피레네 산맥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골짜기를 거쳐 다시 산을 타고 이 마을로 쏜살같이 들이닥치는데, 다시 능선을 타고 내려갈 그 바람이 모이는 길목에 앉아있다 보니, 내가 그 바람을 온통 다 맞고있는 듯하다.
그래선지 내 무겁던 몸도 어느새 그 무게를 다 잃어 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중세 때부터 지어졌다는 돌집들 사이로 뻥 뚫린 이 마을의 입구를 '바람의 통로'라고 이름지어 보았다.
스페인 말로, '엘 빠소 델 비엔또 (El Paso del Viento)'.
매우 그럴싸한 아름다운 이름이라는 생각이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
그곳에 앉아, 나는 무한한 평화와 자유, 그리고 머리 속에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무념(無念)을 느낀다.
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편안함, 그리고 내 육체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 야릇하기까지 한 쾌감......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한 과정이자 행운은 아닐까?
왜 걷냐고?
누가 오라거나 떠밀며 가라는 이가 없었는데도, 근 1 년을 마음에 담아두고 힘들게 준비하여 굳이 스페인까지 와서 왜 혼자 산길을, 숲길을, 자갈길을, 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을 걸어가느냐고?
...... 모른다.
지금까지 사흘을 걸어오면서 수수께끼를 풀어보듯 버릇처럼 생각해보았지만, 모르겠다.
아마 산티아고에 닿을 때까지 계속 생각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생각 뿐이다.
아니, 꼬치꼬치 따져 묻는다면 다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을 테지만, 지금 나에게 그런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차라리 일부러라도 그런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나 할까?
다만, 지금 같은 무념의 상태를 느끼기 위함이 아닐까......#
#아, 인생...# (6 . 23)
오늘도 더운 땡볕 속을 걷다가 산모퉁이 나무 아래에 자리를 펴고 잠깐 누웠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아, 천국이 따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쉬고......
자유였습니다.
거칠 것 없는 자유가 내 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의 이 자유는 내가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또 다른 그 무엇인가를 맛보게 합니다. 아니면 격이 한 수 높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느낌이라고, 감히 말해봅니다.
이따금, 내가 옛날에 태어났다면 김삿갓 같은 사람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께 그런 얘길 했다가 크게 혼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어머니의 꾸지람이 야속하기만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어머니의 그 마음을 알 것만 같은 나이인데, 나의 어머니는 이 세상에 안 계십니다.
내가 자식이 있다 해도, 그래서 그 자식이 김삿갓 같은 사람이 되겠다는 말을 나에게 했다면... 아마 나도 펄쩍 뛰면서, 내 자식이 마음을 고쳐먹도록 온갖 노력을 다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고 지금의 나는, 다는 아니라 해도 의심의 여지없이 얼마만큼은 김삿갓의 그런 모습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운명을 알면서 가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모르는 상태로도 그 정해진 길을 향해 조금씩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요?
아, 나는 왜 그런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모릅니다. 어릴 적부터 왜 늘 지도책을 보며 어딘가 떠나는 것을 동경해 왔는지 모릅니다.
정말 모를 일입니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일, 그 주어진 생에 무슨 일을 하고 가는지......
그 많은 사람들, 다 다른 사람들, 그 중의 나, 내 자신마저도 잘 모르는 나......
아, 우리네 인생은 모를 일투성이입니다. #
#물집#
낙관주의자가 된다는 것 역시 아름다운 일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길을 걷다보니 이 상황에선 낙천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훨씬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아름답다'는 인삿말로 소리를 치며 프랑스인 미셸과 헤어지고 들어오니, 핀란드인 올리(Olli)씨가 나에게 다가오며 '오늘 꽤나 힘들었을 거'라고 위로하듯 말했다.
자기 부부만 아무 문제없이 일찍 도착해서 편히 쉬고 있던 것이 미안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글쎄 그것보다는, 내가 몇 시간씩 길을 잃고 헤매다 도착한 것에 대한 길을 걷는 동료로써의 안쓰러움이 느껴져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제 다 지난 일인데 뭐 어쩌겠냐'며, 나는 어깨를 움쑥 울렸다가 내리고 말았는데,
내가 절뚝거리는 것을 보자, 그는 나에게 다가오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샌달을 벗으며 그에게 내 발에 물집이 잡힌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는 서슴없이 '자기가 치료해주겠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아니, 이 길에선 사람들이 왜 내 발에 이리 관심을 갖는다지?('아레스' 마을에서 내 발을 씻겨준 것을 포함해)'
순간적으로 나는 놀라면서, '굳이 그럴 것까지는 필요 없다'고 거절했다.
그런데 그는 빙그레 웃으며, 자기가 비록 닥터는 아니지만, 전에 학교에서 근무했었는데 학생들을 치료해주는 일을 한 경험이 많다며 아무 걱정 말라는 것이다. 그러더니 자기 침대에서 무슨 조그만 가방을 하나 가져왔는데, 그 안에는 기본적인 의약품과 기구들이 꽉 차 있었다. 한눈에 봐도(내가 보기엔) 전문가나 가지고 다닐 법한 물건들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학생들을 데리고 야영과 행군을 한 경험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그런 일을 도맡아 해왔다던 것이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내 발을 그에게 맡겼다.
허기야 나는 스스로 내 몸에 바늘로 찌르는 일 같은 걸 잘할 사람이 아니다. 엄살도 심하고 겁도 많고......
그런데 그런 일을 그가 알아서 해 주겠다는데, 어찌 아니 고마울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이 길을 걸으려면 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임을, 나는 익히 듣고 또 알아가고 있던 터라.
능숙한 솜씨로 그는 내 물집을 터트리더니 진물을 잘 닦아내고 소독을 한 뒤 무슨 약을 바르고, 피부 같은 질감의 반창고까지를 붙여주었다.
어찌 보면 마치 내가 발에 물이 잡히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서 나를 치료해주려고 기다려왔다는 듯이 내가 무리한 행보로 물이 잡힌 바로 그 날, 그는 같은 숙소에서 머무는 인연으로 내 발을 멋진 솜씨로 치료해준 것이다.
이건 재수가 좋다기 보다는, 희한한 인연이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 길을 걸으면서 다른 사람들에 의해 내 발은 축복을 받고, 치료도 받게 된 사실이 우연으로 치기엔 뭔가 깊은 뜻이 숨겨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는, 뭔가 밝은 한 줄기 빛이 나를 비춰주는 것 같아 마음이 포근하고 또 가벼워지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내 물집은 이틀 후 흔적만 남기고 말끔히 치유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 물집을 치료해준 올리씨(부부)와는 '뿌엔떼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 도착할 때까지 며칠 동안 같은 알베르게에 머무는 인연이 이어졌다. 더구나 '띠에바스(Tiebas)'알베르게에선 그들 부부와 나 셋이서 자기도 했는데, 내가 숨어서 몰래 그런 소재로 드로잉을 하다가 그들에게 들켰는데(?), 그들이 그 도로잉을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런 인연으로 그 뒤로도 몇 년 동안 우리는 메일을 주고 받았다.)
‘아무리 시간과 힘을 아끼자고 했지만, 이 대목에서는 그 그림(드로잉)을 참고로 첨부하고 싶구나!' 하면서 이 인야는, 자료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결국 '산티아고 가는 길 그림 이미지'에서 그 그림을 찾아왔다. A4 백지에 샤프펜슬로만 그린 흑백 드로잉인데, 어찌 보면 만화 같기도 하지만 아주 재미있게 그려진 세 사람의 포즈가 여전히 그에게 미소를 짓게 하고 있었다.
#어느 양치기 청년의 눈동자# (6 . 27)
한 조그만 마을을 벗어나니 역시 아름다운 구릉지대가 펼쳐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렇게 평화로운 풍경 속을 걸어간다는 현실이 가슴 벅차 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들길을 걷다가 한 순간, 노란 화살표가 보이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다른 순례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지가 상당히 오래 전 같았다. 게다가 어제 길을 잃어 몇 시간씩이나 고생을 했던 나는, 덜컥 겁까지 났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니, 저 멀리 밀 추수가 끝난 들판에 양떼가 보였고, 그 양떼들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양을 모는 양치기가 있을 게 분명한지라... 그들이 가까워지기를 기다리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다가 웬만한 거리가 되자 나는,
"어이!"하고 한국말로 소리를 질렀다.
(스페인 말로는 '오이가 : Oiga(여보세요)'였고, 나는 그 말도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나에게선 한국말이 튀어 나왔던 것이다.)
그러자 그 쪽에서도 뭔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내쪽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보면, 양을 모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이거나 나이가 든 사람들이었는데, 이 사람은 스물이 갓 넘었음직한 애띤 얼굴의 청년이었다.
"이 쪽이... '산티아고 가는 길'이 맞나요?" 하고 물었더니,
그는 밝은 얼굴로 맞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마치, 아무도 없던 들판에서 자기를 찾아준 한 이방인에게 고맙다거나 반갑다는 표정이었다. 게다가 뜻하지 않은 동양인 순례자의 모습을 보고는, 호기심마저 가득 담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순간, 나는 어서 빨리 이 자리를 피하자는 생각이 들어,
"대단히 감사합니다.(무차스 그라시아스(Muchas Gracias)!" 인삿말을 남기고는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내가 갑자기 그랬던 이유는, 아직 순진한 시골 청년의 눈빛이 갑자기 내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눈빛은, 어쩐지 지금의 나처럼 어딘가로 자유롭게 떠나고 싶다는 부러움을 가득 담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정말, 그럴 지도 모를 일이었다. 개 두 마리에 양떼를 몰고서, 그가 가는 곳이란 그저 이 근처의 들판을 뱅뱅 도는 지루한 일상일 테니까.
사실 난 그가 내 쪽으로 다가올 때까지만 해도, 그의 양을 모는 모습을 사진으로라도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그에게 그런 식의 자극을 주지는 말자는 생각이 스쳐, 바삐 그리고 냉랭하게 돌아서고 말았던 것이다.
아니, 그 맑은 눈망울에 갑자기 미안함마저 느껴져서, 어서 빨리 그 앞에서 사라져버리자고 발걸음까지 서둘렀던 것이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는 사람(나그네)을 바라보는 일상의 청년......
그건, 내 지난 날(청소년 시절)의 모습이었다.
어릴 적부터도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던 나는, 시골로 행상을 다니시던 어머니가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던 고향의 기차역에서... 늘... 떠나는 사람들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곤 했었다.
그런 생각까지가 겹쳐지면서 갑자기 내 가슴 한 곳이 쿵! 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바로, 그런 생각마저 해서는 안 된다며, 그런 감상에서 도망치려고 일부러 큰 소리로 아무 노래나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엄-마아-야 누우 - 나야 ~
하필이면 그런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후딱 노래를 바꿔 부르기로 했는데, 이어서 나온 노래도,
산 - 넘어 넘어 도올 - 고 돌아...
그 노래도 아닐 것 같아 바로 그만 둘 수밖에 없었는데,
아, 나도 모를 일이었다.
왜, 그런 조금은 서글픈 노래들만 저절로 불려지는지...... #
#사람의 향기# ( 6 . 28 )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1990) 바르셀로나에 살 때, 나는 스페인어 학원에서 일본인 친구 하나를 사귀었다.
'홋카이도' 출신인 그(T)는 아직도 바르셀로나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데, 일본인 관광객을 위한 가이드 일을 하고 있다.
이 길을 걷기 며칠 전에 나는 바르셀로나에 있었고, 그와 만나 저녁 식사를 하기도 했는데,
그 자리에서 이 일본인 친구도 '산티아고 가는 길'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는 이미 이 길의 안내 책자 몇 권을 사 놓고 연구까지 하고 있다고 하더니,
그 며칠 뒤에 일본에서 유명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이 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답사한 후 글을 써서 한 잡지에 발표하기 위해 스페인에 오는데, 그 친구가 그 작가를 안내하기로 계획이 짜여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그 길에 대한 공부라도 하고 있던 참에, 한국인 친구인 나도 그 길을 떠나기 위해 한국에서 도착했다는 것이라,
우리는 서로 그 우연에 대해 놀라면서도 흥미로워 했고, 또 서로의 정보를 주고받기도 했었다.
그리고 서로의 날짜를 계산해 보니, 내가 '빰쁠로나(Pamplona)'를 지날 때 그 역시 그 즈음에 그 지역에 있게 될 거라고 하기에, 서로가 연락을 해서 현지에서 얼굴이나 한 번 보기로 사전 약속도 해놓았다.
아무튼 나는 내 일정에 맞춰 그 보다 먼저 바르셀로나를 떠나와 이미 '아라곤 코스'를 마치고 ‘프랑스 코스’를 시작하기 위해 빰쁠로나를 거쳐 '론세스발예스(Roncesvalles)'로 가는 길인데,
그 친구 역시 지금은 스페인 기사가 딸린 차 한대를 렌트해서 그 작가와(다른 사진작가까지를 포함) 차를 타고 일주일 이내에 '산티아고(Santiago)'까지 가는 여정으로 빰쁠로나에 있다고 해서,
약속한 대로 우리는 얼굴이라도 잠깐 보려고 빰쁠로나 대성당 정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본인 친구는 오후 2시 15분에 대성당 오른편 길에서 나타났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어? 이제 완전한 순례자 모습이네!” 하면서 반가워했다.
그런데 그는 혼자였는데, 다른 일행은 지금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들도 곧 이 대성당으로 올 것이고 사진도 찍고 필요한 자료를 수집한 다음 바로 '산티아고' 방향으로 떠날 거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나에게 하얀 봉투 하나를 건네기에, 직감적으로 그 게 돈이란 걸 감지하면서 나는,
“이 게 무슨 뜻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는,
이 먼 길을 가려면 돈이 많이 필요할 텐데(전에 내가 바르셀로나에 살 때부터 우리는 서로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급한 일이 생길 때를 위해 쓰라고 준비해 두었다며 받으라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그 돈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또,
현재 관광안내를 하는 자기도 이 길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자기는 아직 이 길을 걷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길을 끝내고 자기에게 내 경험을 얘기해주는 것만으로도, 자기에게는 좋은 장사 밑천이 될 거라면서,
이 길에 대한 내 산 경험을 공유하자는 뜻이기도 하니, 공짜로 주는 돈은 아니라면서 그 봉투를 나에게 억지로 떠맡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받으라 커니 안 받겠다 커니... 실랑이를 하다가 나는 그 돈을 받기로 했다.
우리는 그 전에 바르셀로나에 살 때도, 서로가 그랬던 친구 사이였기 때문이고, 그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얼마 뒤에 다른 일본인 두 명도 나타났다.
나는 일본에서 유명한 작가와 사진가라는 그들에게 반가운 마음으로 목례를 했다.
그런데 그들의 태도가 뭔가 이상했다. 그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냉랭했고, 도도했고 불손하기까지 했다.
유명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거만함이었을까? 아니면, 우월의식(?)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미 아라곤 코스를 걸어오느라 시커멓게 그을려 꾀죄죄한 내 모습을 보며, 그런 추레한 사람을 상대하기 싫어 던진 멸시의 시선이었을까......
최소한 내 친구는 식당을 나오면서 그들에게, 한국인 친구(나)를 만나러 먼저 나간다는 말을 했을 터였다. 그렇다면 그들 역시 최소한 같은 동양 사람으로서 이런 길에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워서, 인간적으로 간단한 인사 몇 마디 쯤은 나눌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웃는 얼굴로 친근미 정도는 보여줄 수 있을 텐데,
그들은 말 한 마디 없이 그저 형식적인 눈인사만을 던진 채, 그것도 인간적이거나 겸손함은 전혀 없이 건방기(?)를 떨며, 잘은 모르겠지만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양 대성당 주위를 돌면서 사진을 찍고 뭔가를 적는 등 자신들의 일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내 친구도 그들을 안내해야했기 때문에, 내가 먼저 그에게 어서 가서 일을 하라며 헤어지긴 했는데......
글쎄, 내가 그들에게 뭔가 불평할 이유나 권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이보슈 들! 지금은 당신들이 일본에서 저명한 작가와 뭐, 그런 사람들이라고는 하지만, 혹시 아슈? 나중에 당신들은 '나'라는 사람을 이렇게 만났음에도, 당신들의 오만과 무지(?)로 인해 사람 취급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지? 인생은 모르는 것이랍니다. 더구나 당신들이 알고 싶어 하는 이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는 사람을 대할 때 그렇게 오만 방자해선 안 되는 것이고, 또 당신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한 사람(나)과 만나는 그 소중했을 인연이거나 기억마저도 지우려했던 걸 후회할지?
당신들의 그런 무식하고 무례한 행동을 내 쪽에서 불평할 그 어떤 이유나 권리도 없겠소만, 인간으로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과히 아름다운 일은 아닐 것 같소. 굳이 당신들의 예정에도 없던 친절을 베풀어달라는 구걸은 아니고, 내가 그럴 사람도 아니오만, 그래도 사람으로서 최소한 어떤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건 당신들에게도 그다지 손해될 건 없는 일 아니겠소? 이건 세상 사는 진리겠소만,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하고, '웃는 낯에 침을 뱉지 못한다'는데, 모르긴 해도 당신네 나라도 그런 속담이거나 격언 정도는 있을 것 같은데, 굳이 그런 모습을 보일 필요 있겠소? 더구나 여기선, 당신네나 나나 피차 똑 같은 나그네의 입장인데...... 나, 역시 당신네 같은 사람에겐 전혀 관심 없소. 무슨 글을 써서 당신네 나라 사람들에게 읽게할 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독자들이 불쌍하오. 그들은 당신이 아주 멋진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겠소? 원래 당신 같은 사람들이 '사탕발림'은 참 잘 할 테니 말이오.
아무튼, '사람의 향기'거나 인간적인 매력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유명하고 훌륭한 일본의 작가여! 스페인 구경 잘 하고 돌아가시길! 하- 하- 하- ' 하면서,
나는 길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툴툴 털며, 론세스발예스로 가기위해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
#피레네 산맥의 한 산 꼭대기에서# ( 6 . 29 )
프랑스에서 보면, 스페인 내에서의 이 '산티아고 가는 길'은 두 곳의 피레네 산맥을 지나 한 곳인 '뿌엔떼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서 Y자 모양으로 합쳐진다. 그런 다음 목적지인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난다.
물론 유럽의 그 어디서거나, 아니 동양인 우리나라에서라도 출발하여 그 목적지를 산티아고로 정한다면 바로 '산티아고 가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길이긴 하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유럽에서도 그 어떤 곳에서부터 출발하더라도, 스페인의 산티아고까지 가면 바로 '산티아고 가는 길'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곳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스페인 땅으로 들어올 때,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하는데 그러다 보면 이 두 코스 중 하나를 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이랄 수 있는 피레네 산맥을 중심으로 보면, 지형적으로 남쪽에 있는 '아라곤(Aragon)' 지방의 '솜뽀르뜨(Somport)'를 지나 '뿌엔떼 라 레이나(Puente la Reina)'까지를 '아라곤 코스'라 부르고, 이 피레네 산맥 저쪽에 있는(지금 나는 프랑스에 있음) '론세스발예스(Roncesvalles)'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부터 시작하여 '나바라(Navarra)'지방을 지나 아라곤 코스와 합쳐지는 뿌엔떼 라 레이나를 거쳐 산티아고까지의 먼 길을 '프랑스코스'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는 오늘 '프랑스코스(Camino Frances)'를 시작했다.
물론, 이미 약 1주일 넘게 걸어 '아라곤 코스'를 끝냈고, 이제 프랑스코스를 시작하여 산티아고까지 죽 가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페인 자체 내의 론세스발예스에서부터 걷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코스가 아주 아름답다고들 해서, 나는 어제 일부러 국경을 넘어 프랑스까지 와서 하룻밤을 자고, 오늘 아침에 다시 스페인 쪽을 향해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피레네 산맥
피레네 산맥의 높은 산길을 넘어 가다보니 경치가 하도 좋아서, 그냥 걷기만 하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길을 벗어나 나 혼자 사방이 확 트인 한 산의 꼭대기에 올라와 앉아있는 것이다.
멀리서 보기에는 그저 잔디에 덮여있는 둥글둥글한 동산같이 완만하고 부드러운 봉우리로 보이지만,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오르기엔 무척 힘도 들고 생각보다 훨씬 가파른 산이었다.
여기서 보면 지중해 쪽으로 뻗어나간 아라곤 지방의 피레네의 산들은 뾰족하고도 훨씬 험하고 높게 보인다.
그래서 한편으로 보면 알피니스트가 아니면 쉽게 오르지 못할 산세 같은데, 여기 프랑스의 국경도시 '생 장 삐에 드 뽀르 (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스페인 '론세스발예스(Roncesvalles)'로 넘어가는 이 산악 코스는, 계곡으로는 굵은 나무들이 많았지만 정작 능선에서 정상까지는 잔디에 덮여있는 부드러울 것 같은 산들이 이어져 있다.
그 산의 능선을 따라 굽이굽이 휘도는 길이라 걷기에도 참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물론 산을 오르는 데는 힘이 들지만, 일단 한 번 오른 뒤에는 동산의 오솔길 같은 느낌이 들만큼 부드럽고 얌전하기만 하다. 그런 산에는 양이나 소, 말 같은 가축들이 풀을 뜯고있는 매우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림 같은 풍경이다.
그래서 산티아고 가는 길의 그 많은 코스들 중 이 길이 가장 아름답다고도 하나 보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 산을 오르면서 보니 그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게다가 오늘은 시원한 바람이 서늘하게 느껴지고 지금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는 눈부시게 맑은 날씨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코스를 생략하고, 산 너머에 있는 '론세스발예스'에서부터 출발한다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조금 전 이 꼭대기에 혼자 오르면서 하늘을 바라보니,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에 모터보트가 하얀 물살을 가르며 지나가는 것처럼 제트기 한 대가 하얀 꼬리를 남기고 날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이 너른 하늘에 단 한 점의 구름도 없다보니 깨끗하고 시원하긴 한데, 한 편으론 오히려 살벌하다는 느낌도 든다.
사방으로 보이는 구릉 같은 산봉우리 아래로 구불구불 길들이 나 있고, 그 녹색의 공간 속의 하얀 점들의 무리는 양떼다.
그리고 저 희미하도록 먼 곳엔 프랑스 사람들이, 반대쪽의 또 희미한 곳에는 스페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산풍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줄기 세찬 바람이 불어와 그늘을 만들어주던 내 챙 넓은 모자를 날려버렸다. 그래서 모자를 주우려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데, 뭔가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여서 반사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커다란 매 한 마리가 날렵한 모습으로 내 머리 위를 날아가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아, 저 매는, 여기서는 낮게 보일지라도, 저 아래서 보면 굉장히 높은 하늘을 날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는 생각을 했는데, 또,
'만약 내가 좀 더 작은 동물이었다면, 저 날아가는 매의 발톱에 채여 있을 지도 모르겠는데? 그렇다면 매의 발톱에 채여 유유히 날면서, 이 높고 너른 산들을 한 눈에 감상할 수도 있을 텐데......' 하는 터무니없는 상상도 해 보았다.
그러면서 보니, 내가 걸어왔던 뒤쪽의 저 산등성이의 휘휘 구부러진 길엔 점으로 보이는 물체들이 띄엄띄엄 보이는데, 그 것들은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이 따가운 한 낮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바야흐로 유럽에 바캉스철이 시작된 것이다.
누구 오라는 이 없어도 사람들은 저렇게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이 산길을 묵묵히 걷고있다.
왜일까?
그나저나 이렇게 마냥 산꼭대기에 앉아 있어도 한 세월 다 가겠다......
게다가 이 아름다운 산에서 내려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러나 나는 길을 떠나야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날을 걸어야 할지 모르는 나그네다.
'그래, 저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 속에 섞이자. 그래야 오늘 밤도 잠을 잘 수 있을 테니까......' 하면서 나는 다시 배낭을 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