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차로프 (러시아 소설가, 기행작가)
러시아의 사회변화를 극적으로 표현했고 러시아 문학에서 손꼽히는 생생하고 인상깊은 등장인물을 창출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1834년 모스크바대학을 졸업하고, 30년 가까이 재무관리와 검열관으로 일했다. 1852~55년에 러시아 해군제독의 비서로 일본까지 항해한 일은 평온한 그의 삶에서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으며 〈프리깃함 팔라다호 Fregat Pallada〉(1858)에 잘 묘사되어 있다.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는 크게 하품을 했다. 선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상륙을 준비했지만 그는 조금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아바쿰 신부가 다가와 물었다. “자네는?”
대꾸조차 생략하고 싶었지만 언제나 호기심으로 가득한 이 신부에게만은 그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곤차로프는 해변을 바라보며 대화의 주제를 넌지시 바꿨다. “멘쉬코프호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 봅니다.”
아바쿰 신부가 그의 어깨를 두터운 손으로 감쌌다.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그럼 배에 머무르게나. 나는 선원들과 함께 새로운 땅에 발을 디뎌봐야 하겠네.”
곤차로프는 아바쿰 신부가 보트에 오르는 것을 심드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보트는 순식간에 해변에 닿았다. 허름한 오두막 서너 채가 눈에 들어왔다. 문이 열렸다. 흰옷으로 몸을 감싼 남자 서넛이 밖으로 나왔다. 집 앞을 지나던 여자는 한달음에 내륙에 조성된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남자들이 몽둥이를 들고 몰려들었다. 선원들이 총을 꺼내들었다. 그들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바쿰 신부가 한자로 무엇인가를 쓴 후 그들에게 보였다. 효과가 있었다. 남자들은 아바쿰 신부를 향해 큰 소리로 무엇인가를 말했다. 아바쿰 신부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바쿰 신부가 다시 무엇인가를 써보였다. 남자들은 바다를 가리키며 고개를 내저었다. 다시 무언가를 써보였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바쿰 신부가 선원들에게 손짓을 했다. 선원들이 총을 들고 다가서자 남자들은 혼비백산해 달아났다. 곤차로프는 탄성도 경멸도 아닌 단음절의 소리를 내뱉으며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 후 아바쿰 신부가 조선인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들이 쓴 괴상한 모자가 곤차로프의 마음을 움직였다. 모자라기보다는 우산에 더 가까웠다. 꼭대기는 머리통을 겨우 덮을 만큼 좁은데 테두리는 직경 1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다. 실용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비효율의 극치였다. 곤차로프는 그 모자를 쓴 흰 수염 노인을 붙잡고 모자에 대해 더 캐묻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는 초면의 상대를 당황하게 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할 만큼 교양 없는 인간은 아니었다. 대신 그는 노인의 얼굴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조선인은 그 생김새에 있어 중국인, 일본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곤차로프는 얼마 전 읽었던 <삼국통람도설>의 일절을 기억해냈다. ‘조선인들은 키가 크고 중국인, 일본인들보다 체격이 훨씬 더 다부지다. 조선인은 일본인보다 두 배나 더 많이 먹는 것이 분명하다. 조선인들은 교활하고, 게으르고, 고집이 세며, 노력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부지不知
저자의 탁월한 관찰력에 내심 감탄하고 있는 순간 노인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노인의 눈빛은 의외로 형형했다. 곤차로프는 자신도 모르게 그 시선을 피했다. 아바쿰 신부가 노인에게 무엇인가를 써서 보여주었다. 또 다른 통역관인 고시케비치가 동석한 선장을 위해 러시아어로 통역했다. “우리는 귀국과 교역을 하고 싶습니다.”
노인은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그러고는 자기 앞에 놓인 럼주를 단숨에 비웠다. 독주를 마셨음에도 노인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곤차로프는 팔짱을 끼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차림새는 허름했지만 노인은 범접하기 힘든 기품을 지녔다. 의례적인 인사말이 오고간 뒤 아바쿰 신부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채소, 생선, 닭 등을 가져오면 럼주나 삼베로 바꿔 드리겠습니다.”
노인은 아바쿰 신부가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독특한 리듬감 때문에 꼭 구슬픈 노래 소리처럼 들렸다. 노인은 붓을 들어 빠르게 무엇인가를 썼다. 고시케비치가 동시에 통역했다. “귀중한 닭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지금껏 쌓아온 노인의 인상이 단번에 허물어졌다. 거짓말이었다. 곤차로프는 해변 오두막에 닭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노인이 갑자기 곤차로프의 손을 꽉 잡았다. 아바쿰 신부와 눈길이 마주쳤다. 손을 빼지 말라는 뜻이었다. 노인의 손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아바쿰 신부가 웃으며 또 다른 문장을 썼다. “식량을 얻고 싶습니다. 그냥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물물교환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노인은 곤차로프의 손을 놓아준 후 이번에는 느리게 문장을 썼다. “부지不知. 모릅니다.”
적절한 답변은 아니었다. 어떠한 요청에 대한 답변은 좋습니다, 혹은 싫습니다, 여야 했다. ‘모른다니? 도대체 뭘 모른다는 건가?’ 곤차로프가 답변을 곱씹는 순간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를 빠져나가던 노인이 돌연 발걸음을 멈춰 곤차로프 쪽을 쳐다보았다. 곤차로프는 그 시선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노인이 보고 있는 것은 벽에 걸린 그리스도의 성상이었다. 곤차로프가 대답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노인은 성상을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는 일행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다음 날 곤차로프는 아바쿰 신부와 함께 마을을 살펴보았다. 마을 풍경은 그가 상상했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길은 좁고 더러웠다. 짚으로 덮여 있는 집들은 당장 무너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기했다. 무엇보다도 곤차로프를 짜증나게 만들었던 것은 엉성하게 쌓은 돌담이었다. 곤차로프는 유구에서 보았던 꼼꼼하고 반듯했던 돌담을 떠올렸다. 유구인들은 조선인들처럼 무능했지만 그들에겐 예술적인 솜씨가 있었다. 조선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야만에서 벗어나지 못한 생활은 그렇다 쳐도 개선의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곤차로프가 슬며시 돌담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무렵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지금껏 멀찌감치 서서 지켜보고 있던 조선 청년 하나가 곤차로프의 옷자락을 갑자기 잡아당긴 것이다. 짜증이 난 곤차로프는 청년의 팔을 주먹으로 서너 대 때렸다. 청년은 비명을 지르고는 다른 조선인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조선인들 몇 명이 커다란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선원들이 겨누는 총에 그들은 이내 돌멩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바쿰 신부가 곤차로프에게 물었다. “배로 돌아가겠나?”
곤차로프가 웃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조금 더 둘러보겠습니다.”
곤차로프는 마을을 더 살펴보았다. 길지 않은 탐색을 통해 그는 노인이 어제 썼던 문장, 즉 부지라는 문장의 뜻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지, 그것은 당신들은 조선인들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조선인들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경작지는 형편없이 부족했고, 산에서는 성한 나무 한 그루 찾기 힘들었다. 물물교환을 하고 싶어도 그들에겐 교환할 물건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해변으로 나오자 노인 몇 명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다. 어제 보았던 노인이 곤차로프를 향해 손짓을 했다. 곤차로프는 아바쿰 신부를 따라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곤차로프 일행이 자리에 앉자 노인은 얼마 동안 머물 것인지를 물었다. 아바쿰 신부가 며칠 동안 머물 것이라고 답하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말없이 해변에 정박한 배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무엇인가를 빠르게 적어 아바쿰 신부에게 보여주었다. 아바쿰 신부의 안색이 달라진 것을 본 곤차로프가 노인이 적은 문장의 의미를 물었다. “우리는 세상 사정에 너무도 어둡습니다.”
『두시언해』와 모자
아바쿰 신부가 다시 무엇인가를 써서 노인에게 보여주었지만 노인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노인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곤차로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바쿰 신부도 함께 일어났다. 그 순간 다시 눈을 뜬 노인이 종이에다 무엇인가를 재빠르게 썼다 바로 구겨버렸다. 곤차로프는 배에 돌아온 뒤 노인이 쓴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아바쿰 신부가 해변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두보라는 중국 시인이 쓴 시일세.”
나라 깨어져도 산하는 그대로(國破山河在)
성에 봄 들어 초목 깊어라(城春草木深)
시절에 느껴 꽃도 눈물을 쏟고(感時花濺淚)
이별을 한하여 새도 놀란다.(恨別鳥驚心)**
다음날 곤차로프는 선원들과 함께 해변에 누워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햇살은 따사로웠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았다. 조선인들 한 무리가 멀찌감치 서서 지켜보고 있었지만 이제 그들은 더 이상 경계의 대상이 아니었다. 곤차로프는 몸을 일으켜 조선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에 조선의 이미지가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되어 떠올랐다. ‘불쌍한 조선인들!’
조선인들은 문명이란 것을 접하지도 못한 미개인들이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갓난아기와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면 그것은 이들에게 아직 희망이 있다는 뜻이었다. 유럽인들의 우월한 문명이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주입된다면 빠르게 바뀔 것이므로. 곤차로프는 자신의 결론이 만족스러운 듯 입가에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바로 그 순간 선원 하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빨리 보트에 타세요!”
곤차로프는 날아오는 돌멩이를 간신히 피했다. 선원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조선인의 비명이 들리고 돌멩이 세례가 멈췄다. 보트에 올라탄 후에야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쓰러진 조선인 남자 하나를 다른 조선인들이 둘러쌌다. 그들은 사람의 소리도, 짐승의 울부짖음도 아닌 이상한 선율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곤차로프는 테이블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답답했던 속이 단숨에 뚫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귓가를 스쳐지나간 돌멩이의 감촉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긴 여행의 끝자락에 자칫 크게 다칠 뻔했다는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미개한 어린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은 정말 지루한 일이로군.’
돌멩이로 총에 맞서다니 조선인들은 정말 어린 아이들이었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은 다 자란 어른이 할 행동이 못 되었다. 곤차로프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며 커피를 음미했다. 고시케비치가 다가와 그에게 조선인의 모자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어제 방문했던 노인이 사과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건 뭔가?”
“비서관님께 드리는 선물이랍니다. 『분류두공부시언해』라, 아하 중국 시인 두보의 시 모음집이로군요.”
곤차로프는 고개를 갸웃했다. 노인은 왜 곤차로프에게 이러한 것들을 준 것일까? 고시케비치가 모자를 쓰며 깔깔거렸다. “도대체 이걸 뭐에 쓴답니까? 벽에 걸어놓으면 좀 괜찮으려나?”
고시케비치가 모자를 걸자 벽 하나가 가득 찼다. 곤차로프가 고개를 젓자 고시케비치는 모자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곤차로프는 책을 한번 펼쳤다 곧바로 덮었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무의미한 미개인의 언어였다. 그는 자신의 노트를 꺼냈다.
조선인과 함께 있는 것은 지루하다. 오밀조밀한 오두막과 주변의 경작지, 모두가 입고 있는 흰색의 폭넓은 가운, 스페이드 에이스를 닮은 넓은 광대뼈와 코, 말 털같이 덥수룩한 수염, 벌어진 입과 흐리멍덩한 눈초리, 시를 쓰고는 길게 늘어 빼며 읽는 모습. 이 땅에 오랫동안 멈춰있을 이유라곤 하나 찾아볼 수 없다.
글쓰기를 마친 곤차로프는 크게 하품을 했다. 그의 머릿속에 노인이 썼던 짧은 문장이 떠올랐다. 부지. 그는 고개를 저어 그 문장을 지우고는 그대로 테이블에 머리를 기대어 잠을 청했다.
『두시언해杜詩諺解』 해설
두보는 조선인이 유독 편애한 시인이었다. 1799년 두보와 육유의 시 각 500편씩을 뽑아 편찬한 『두륙천선杜陸千選』에서 정조는 두보의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한다.
“『시경』 이후에 나온 시 중에서 『시경』의 대지大旨를 충분히 표출한 시를 차례로 꼽아 보았더니, 오직 두보와 육유의 시만이 그에 가까웠다...... 그래서 마침내 두보와 육유의 근체시近體詩 천 수를 뽑아 엮어서 『두륙천선』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니 재주의 유무를 떠나서 이 선집을 읽는 이는 비록 도道에 적중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도에서 멀지는 않을 것이다.”
정조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조선의 임금들은 두보의 시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원제목이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인 『두시언해』는 1481년 최초로 간행되었고, 1632년 두 번째로 간행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언해본에 대한 선비들의 독특한(?) 견해다. 두 번째 간행된 언해본에는 장유가 서문을 썼다. 그중 일부를 인용한다.
“시는 마음속으로 이해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니 주해注解 따위를 낼 필요가 있겠는가. 주해도 낼 일이 없는데, 더구나 방언方言으로 번역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견식見識이 뛰어난 자의 입장에서 논한다면야 물론 이 말이 당연하다 하겠지만, 배우는 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마음속으로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을 경우 어찌 주해를 보지 않을 수 있겠으며, 또 주해를 보아도 시원하게 풀리지 않을 경우 어떻게 번역물을 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 점이 바로 『두시언해』가 시가詩家에 공이 있게 된 이유라고 하겠다.”
박학다식한 선비 이덕무는『양엽기盎葉記』에 『두시언해』의 발간 과정을 정리해 놓았는데, 그의 견해는 장유의 것보다 더욱 흥미롭다.
“우리나라의 벽루僻陋한 말로써 두보杜甫의 심오深奧한 시를 풀이하였으니, 그 명물名物과 음운音韻이 서로 어긋나고 부합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제 수백 년이 지나 그 방언方言의 변화 과정을 상고할 수 있게 하니, 이 또한 문헌상으로 하나의 보탬이 될 만하다.”
그런데 왜 노인은 낯선 러시아인에게 평생 보듬었을 『두시언해』를 건넸을까? 나는 모르겠다不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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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저명한 작가인 곤차로프(1812-1891)는 1854년 4월 2일 팔라다호를 타고 해밀턴(지금의 거문도)에 도착해 6일 동안 머물렀다. 1852년 10월 러시아를 출발한 팔라다호는 런던, 홍콩, 싱가포르, 나가사키, 유구, 마닐라 등을 경유해 거문도에 도착했다. 곤차로프는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전함 팔라다호』를 집필하는데 그중에 조선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박천홍이 지은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현실문화연구)를 통해 곤차로프 여행에 대한 지식을 얻었으며 심지은이 편역한 『러시아인, 조선을 거닐다』(한국학술정보>를 참조했다.
** 요시까와 코오지로오 등이 짓고 심경호가 번역한 『당시 읽기』(창작과비평사>에서 「춘망春望」의 일부를 인용했다.
- 설흔(『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공저)』,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 저자)
* 출처 : 기획회의 290호(2011년 2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