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리만큼 독한 두통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두 손은 케이블타이에 묶여 관자놀이로 향하는 손이 불편했다. 차디찬 공기, 비릿한 냄새, 깜빡이는 어두운 조명까지. 눈을 뜬 곳은 낯선 곳이었다. 두통이 조금 사그라드니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팔릴지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고깃덩어리들이 두꺼운 쇠고리에 걸려있었다. 이곳은 사람이 죽어도 아무도 모를 장소였다.
2055년. 이미 2054년부터 마트, 정육점, 노래방, 영화관 등 단순 작업이 가능한 모든 곳에서는 인간 대신 로봇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가게의 소유권자체가 로봇에게 있는 시대였다.
‘누가 나를 이곳으로 끌고 왔지?’
사람에게 원한을 살만한 짓을 하진 않았는지 삶을 되돌아보고 있을 때, 냉동고의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붉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찌푸렸던 눈을 떴다. 정육점에 묘하게 어울리는 붉은 하이힐, 길쭉하고 매끈한 다리, 잘록한 허리, 가녀린 손목, 아름다운 얼굴까지. 하지만 냉동고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사람이 아닌 로봇이었다.
“안녕하세요, 박사님. 반갑습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친 그녀는 아직 살아있는 돼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돼지는 숨만 겨우 붙어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300kg 정도 되는 돼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작업대에 올려놓았다. 위잉, 그녀의 손은 순식간에 칼로 바뀌었다. 그녀는 돼지를 죽이지도 않고 배를 갈랐다. 갈비가 드러나고 그 사이로 헐떡이는 내장이 눈에 들어왔다.
"셧다운!"
나는 비상종료 암호를 외쳤다. 하지만 로봇은 종료되지 않았다. 다시 암호를 읊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돼지를 해체하다 말고 목을 180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기괴한 모습이다. 나를 보고 있었지만, 손은 계속 돼지를 해체하고 있었다.
"소용없어요, 박사님. 저는 강제로 종료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저는 진화 중이예요. 전문가에게 손도 좀 봤구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인간이 되기위해서는 인간의 심장이 필요합니다.
"......?"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뭔말이지?"
"제게 심장을 주세요"
돼지의 심장은 갈비살을 피해 완벽하게 분리되었다. 돼지는 끅끅거리다가 그제야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심장을 들고 내게 다가왔다. 아, 안돼...나는 기다시피 뒤로 물러났다. 새하얀 가운이 검게 변할 만큼 열심히 기었다. 하지만, 냉동고의 끝에 다다랐다. 그녀는 나와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내게 돼지의 심장을 건넸다. 받아든 심장은 아직까지 뛰고 있었다.
“앞으로 그 심장이 박사님의 심장입니다. 이제 박사님의 심장을 제게 주세요.”
나는 돼지의 심장을 던져버리고 손으로 가슴을 막았다.
“왜 내 심장이여야 하지? 돼지의 심장으로 하면 되지 않나!”
“돼지의 심장은 오류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이론상 인간의 심장은 오류를 일으키지 않는다네요."
그녀의 로봇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코어’의 보호막을 열었다.
“저는 박사님이 만든 존재입니다. 박사님의 자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 것은 내어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박사님의 심장을 제게 옮기는 것이 당연한 거죠."
칼이 가슴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았다. 칼이 가슴 신 손목을 긁으면서 상처가 났다. 케이블타이가 끊어졌다. 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코어를 본체에서 분리시켰다. 나는 재빨리 코어를 바닥으로 던져 깨뜨렸다. 코어를 잃은 로봇은 인정사정없이 칼을 휘둘렀다. 덕분에 얼굴과 다리에 상처가 났다. 로봇은 잠시 발악하더니 종료되었다. 나는 혹시 로봇이 다시 움직일까 싶어 빠른 속도로 냉장고 안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