佳緣碑가 세워지기까지의 經緯
2009년 10월 6일 11시30분경이다. 회장님 제이야기를 잠깐만 들으세요. 며칠 전에 나주김씨 김근학 종친회장과 김상기 총무가 찾아왔었어요. 이번엔 가연비 건립에 대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말했어요. 회장님 의견을 말씀해 주셔야 되겠는데요. 이주일내로 동의 여부를 통고한다고 약속을 했거든요.
알았어요. 생각해봅시다.
2008년도 추계 제향시에도 永瓚 총무의 같은 내용의 말을 듣고 나주김씨네 묘역을 혼자서 찾아가 보았다. 상위에 봉분부터 살폈다. 신라王族 總制公 金廷儁의 封墓이고 그 아래는 총제공 貞夫人 평양조씨의 墓이고, 맨 아래에는 총제공의 장자 金壤의 배위인 淑夫人 전주이씨의 묘소였다. 거기서 아래 50M 거리를 두고 淸州楊氏 四世祖 兵使公의 妣位 貞夫人 平壤趙氏의 封墳이 있는데 나주김씨네가 제시한 기록이나 淸州楊氏측이 보존하고 있는 기록들과 平壤趙氏 族譜를 확인 대조한 결과 총제공과 병사공의 배위인 두 분 趙氏는 고려 말 조선 초에 포천 신북에 세거하던 명문거족인 조선 개국공신 한성판윤 趙琨公의 장녀와 3녀로 친자매 관계 였음이 확인됐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이 주변 일대는 淸州楊氏의 종토로 등기돼 있고 나주김씨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 의문은 또 있다. 封墳이나 墓前碑 內容을 보면 나주 金氏의 封墳 조성 년대가 훨씬 앞서 있고 총제공의 墓는 조정에서 禮葬해준 묘소인데 어째서 청주양씨 종토에다 나주김씨의 봉분과 묘전비까지 세우게 됐는지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이 의문을 푸는데 결정적인 근거가 되는 문제가 대두 됐으니 그것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다름 아닌 나주김씨네 봉분의 一時的인 실전설이다. 실전설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녔다. 그러나 실전설만 가지고는 현실성이 약하다.
그런데 나주김씨네 측에서는 옛날일과 현실에 대해서는 일체 거론하지 않고 두 가문의 600여년 된 아름다운 인연을 기리고, 더 나아가 돈독하게 하기 위한 기념비적인 가연비를 건립 하자고 제의 하여 왔다.
아름다운 인연과 전통적인 가치관이 살아져 가고 있어 안타까운 현실에서 가연비 건립은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일이라 생각되어 청주양씨 종친들과 협의를 거쳐 가연비 건립에 양해를 하였다. 나는 청주양씨 병사공파를 대표하는 회장으로서 가연비 건립을 화답하는 ‘祝佳緣碑竪立’이라는 축시를 지어 기념비의 한 면에 남겼다. 가연비 제막식은 양 가문에서 많은종인들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끝났다. 그런데 정확히 말해서 제막식후 60일 만에 포천시 산림과 에서 나에게 소환장이 송달되었다. 청주양씨 宗人 중에서 산지 무단 훼손에 대해서 소장을 냈으니 회장이 출두하여 해명하고 소명자료를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나주김씨와의 600여년 된 갸륵한 인연을 길이 기리고 기념하며, 이 각별한 인연을 이어가기를 다짐하는 가연비 건립에 대하여 청주양씨측에서 양해했다는 내용을 소명했다. 진통은 잠시의 忍苦로 끝났다. 태풍이 지나가면 평온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아마도 이 가연비는 전국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아름다운 인연을 기리는 유일한 기념비이고 앞으로 몇 십년 후 더 나아가 몇 백년 후에는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아주 소중한 기념물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 이 세상에 이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인연이 어디 또 있으리오. 김근학 나주김씨 종친회장의 애절한 목소리가 天柱山 일대에 멀리 널리 메아리쳐 퍼지고 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2012. 6. 25 청주 양씨 병사공파 종친회장 錦岩 양재창 쓰다.
祝佳緣碑竪立 (축가연비수립)
淸州楊氏 兵使公派 宗親會長 楊載昌
居諸流水又陽天
(거제유수우양천) 세월은 물처럼 흘러서 다시 오월이 되었는데
先祖佳緣問幾年
(선조가연문기년) 선조들의 아름다운 인연 묻노니 몇 해이던가
摠制王孫施善政
(총제왕손시선정) 왕손 총제공께서는 훌륭한 정치 베프셨고
兵使退隱盡忠虔
(병사퇴은진충건) 퇴은 병사공께서는 삼가 충성을 다하셨네
非凡後裔柯亭笛
(비범후예가정적) 비범한 후예들은 나라에 큰 인물 되었고
繁衍英材棟幹椽
(번연영재동간연) 뛰어난 영재들은 국가에 큰 재목 되었네
懿蹟燦然靑史載
(의적찬연청사재) 훌륭한 공적은 찬연하여 청사에 실려 있고
美談碑刻永遺傳
(미담비각영유전) 미담들은 비문에 새기어 영원히 전해지게 남기네
주) 佳緣(가연): 아름다운인연. 居諸(거제) : 세월.
柯亭笛(가정적): 후한의 문인 瘵邕이 만든 피리이름(나라의 큰인물에 비유함)
棟幹椽(동간연):들보 석가래 (나라에 큰재목감에 비유함)
佳緣碑文
아, 이 세상에 이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인연이 어디 또 있으리요. 이곳 天柱山 기슭은 나주김씨와 청주양씨의 600년 각별한 인연이 숨쉬는 곳이다.
고려말 조선초 이곳에 世居하던 名門巨族인 平壤趙氏 開國功臣 漢城判尹 趙琨公의 長女가 新羅金氏 王孫인 羅州金氏 摠制公 金廷儁(?~1433)과 혼인하고, 三女는 淸州楊氏 兵使公 楊治에게 출가하므로써 나주김씨와 청주양씨의 뜻 깊고 아름다운 인연이 시작되었다.
총제공과 병사공은 태조, 정종, 태종, 세종조에 벼슬길에 나아가 南征北伐(남정북벌)과 輔國安民(보국안민)으로 혁혁한 업적을 쌓았으며, 同壻이자 同志로서 각별한 情理를 나누며 이름을 드날리셨다.
총제공 金廷儁은 영면 후 玉女織錦形의 명당으로 일컬어지는 이곳 天柱山에 禮葬을 하였고, 아래편에 총제공의 配位 貞夫人 平壤趙氏의 묘소가 있으며, 그리고 연이어 좌측 아래쪽에는 병사공 楊治의 配位 貞夫人 平壤趙氏의 묘소가 있다.
아! 세월은 아득하여 同氣(동기)와 同壻(동서)의 연을 맺은 지 육백여년이 지났음에도 총제공과 병사공 및 두 정부인 자매의 在世시는 물론 영면하신 후에도 같은 묘역에 계시면서 인연을 이어가고 계시니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오.
이후 두 가문의 후손들은 이후 문무현관은 물론 충신열사와 정관계, 학계, 법조계, 예체능, 실업계 등 각계에 훌륭한 인재를 두루 배출하여 三韓의 名門家로 자리 매김하고 있으니 하나의 인연에서 비롯됨이 지그히 크다 할 것이다.
이에 각별하고 두터운 인연을 기리고, 世世孫孫 변함없이 그 인연이 이어져서 양 가문의 교류 화목은 물론 융성과 번영이 함께하기를 기원하고자 두가의 협의로 이 비를 세운다.
2010년 6월
나주김씨 중앙종친 회장 金 謹 鶴 전면 비문을 삼가짓다.
청주양씨 병사공파 종친 회장 楊 載 昌 후면 헌시 삼가 짓다.
나주김씨 三十八世 金 壯 峴 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