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장 조병묵(62)씨는 솟대를 보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늦게나마 이 세상의 가장 큰 사랑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솟대 만들기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그의 삶 전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떤 특정한 물건이 어느 순간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 기억이 있습니까? 솟대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 영원한 동반자가 되어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우체국장 조병묵씨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27년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청원군 강외면에 사설 강외우체국을 운영하고 있는 조병묵씨는 1996년 공주박물관에 갔다 우연히 솟대를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솟대예술가가 되었습니다. 물론 우연히 보게 된 솟대였지만 그 순간 솟대에 투영된 기억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솟대를 보며, 정한수를 떠놓고 자식의 건강과 장래를 간절히 빌던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 것은 솟대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솟대에 비친 어머님의 모습
솟대는 하늘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인간의 소망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물로 우리 민족의 얼을 담고 있는 우리고유의 민속예술품입니다. 조병묵씨는 그런 염원의 표상인 솟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8년 전부터 만들기 시작한 솟대는 어느 사이 일천여점에 이르고 있고 그의 솟대 만들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솟대가 지닌 소망이나 염원 등의 의미 안에 그는 자신만의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모정(母情)에 대한 보답입니다. “휘영청 달 밝은 밤에 자식이 잠들고 나면 그 달빛 내리는 장독대 위에 달랑 물 한 사발, 정한수 떠놓고 두 손 모아 비시던 어머니의 모습…” 솟대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시울이 희미하게 붉어집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은 나이와는 별개인가 봅니다.
“처음 본 건 아니지만 8여 년 전 공주에서 본 솟대에선 희안하게도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이는 거여.” 솟대에 투영된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그는 집에 돌아와서 무작정 뒷산에 올라 나무를 골라 와선 솟대를 만들었습니다.
처음 만든 솟대는 초라하고 형편없는 것이었지만 그 모습에서도 어머니의 모습은 보였습니다. 그 이후 그는 어머니가 그리워질 때면 솟대를 만들었습니다.
현대판 안테나인 솟대
조병묵씨는 이전에는 솟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장승 옆에 세워져 있는 민속공예품 정도로만 생각했지 솟대가 지닌 의미에 대해선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솟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그는 자연스레 솟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솟대의 유래라든가, 의미라든가 하는 기본적인 것은 당연하고 이후 솟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솟대의 정신이라는 것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솟대는 현대판 안테나여. 사람이 바라는 소망과 꿈과 같은, 뭐 그런 것들의 염원들을 하늘로 이어주는 것이거든. 내겐 어머니와 나를 이어주는 안테나고.”
그는 솟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전통문화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 솟대를 만들면서 그는 솟대 만들 나무를 되도록이면 좋고, 예쁜 것들을 골랐습니다. 그러다 솟대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하게 되면서부터 그는 되도록이면 산 속에서 버림받아 썩어가고 있는 못생긴 나무들을 이용해 만들었습니다.
“이걸(솟대) 만들기 시작하고 정신이랄까! 우리의 전통문화가 자꾸만 사라져 가는 모습을 이전엔 알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더라구. 하지만 그 소중함을 이젠 알았고, 그걸 지키고 싶었어.”
썩어가고 있는 못생긴 나무들이 버림받는 건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란 말입니다. 우리의 전통문화 역시 그런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는 솟대로 버림받고 잊혀져 가는 우리전통을 되살리고 싶어 합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님께 보내는 편지
솟대는 우리전통문화를 되살려야겠다는 마음을 그에게 갖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개인의 소망을 담아 그는 솟대를 만듭니다. 솟대는 그와 어머니를 이어주는 매개물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여전히 이어지는 것, 그것이 그의 소망입니다.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자식을 위해 비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를 죽는 그날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만이 그가 이제라도 할 수 있는 효의 전부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전통문화를 살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 허나 그에 앞서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먼저 생각하고 싶으이. 그게 어머니 살아생전 하지 못한 효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기니까…”
그는 말을 하면서도 내내 솟대를 보고 있었습니다. 솟대 안에서 어머니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솟대를 만드는 과정에 모든 정성을 다 쏟습니다. 솟대는 지상엔 안계시지만 하늘에는 계신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솟대는 그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인 셈입니다.
‘그렇게도 자식 걱정만 하시며 고생만 하셨던 어머니, 어머니 살아 계실 땐 당신의 사랑이 그렇게도 큰지 몰랐는데 이제 어머니 나이를 넘고 나서야 그 큰 사랑을 알게 됐네요. 하늘에서 보셨겠지만, 저 참 열심히 살았어요. 그리고 성공한 인생은 아니더라도 부끄러운 인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어머니가 그 때 정한수 한 그릇에 빌던 자식 걱정을 하느님이 들어준 것이라 생각해요. 때가 되면 뵙겠지만 그래도 그때까진 계속 이렇게 어머니께 편지 쓸께요.’ 그의 솟대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자연스레 그가 쓰는 편지마저 읽게 되는 듯합니다.
솟대를 만드는 영원한 젊은이
그에겐 불만이 하나 있습니다. 솟대예술가로 조금씩 알려지면서 생긴 별칭 때문입니다. 그를 흔히 ‘솟대할아버지’라고 부르는데, 그는 그게 불만인 겁니다. “환갑도 지나고 손자들도 있으니 할아버지라 불리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불만이야.” 하며 말하는 그의 표정은 마치 토라진 아이와 같습니다.
늙고 젊음을 구분 짓는 것이 나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 잣대는 애매하기만 합니다. 아이에서 청소년, 젊은이, 아저씨, 할아버지라 불리게 되는 시기적 구분은 정말 애매하니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젊음과 늙음의 잣대를 열정과 정열에 둡니다.
“‘내가 얼마만큼 이 일에 열심인가!’ 또, ‘얼마만큼 노력하고 있는가!’로 (늙고 젊음을) 판단해야 하지 않겠어?” 그의 말은 자신이 요즘 젊은이와 비교해도 열정이나 정열에 있어 전혀 뒤지는 바가 없다는 항변입니다.
20년이 넘는 교직생활과 10여 년 넘게 하고 있는 우체국 일을 하면서 그는 이미 두 권의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솟대예술가로써의 그는 솟대문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전시회를 열고, 솟대박물관을 만들고 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한 그의 열정과 정열은 분명 젊은이들의 그것 이상이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이렇게 시골 조그만 우체국에서 일하고 있지만 나는 만족하네. 맑은 공기가 있고, 좋은 사람들이 있고…. 더구나 내겐 솟대가 있으니 말야.” 더 이상 욕심이 없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시골에서 욕심 없이 삶을 살아가면서도 결코 열정과 정열만은 놓지 않으며 솟대를 만드는 젊은이(?)의 소박한 꿈-솟대문화를 알리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래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