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이 서예인지라 내 일상에 서예가 빠질 수 없다. 주 2회 화,목은 서실에 상주하고, 금요일은 문화센터에서 수강생들과 수업하는 날이다. 연령층이 다양하지만 수업에 집중하는 그시간 만큼은 나이를 불문하고 세대를 아우른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들도 성품이 요즘 보기 드문 양반이신 분들도 함께 어우러져 글 속에는 그분들의 일생이 체화되어 붓글로 표현되는 시간이다.
그중에 가장 연세가 많은 어르신은 매번 일찍 강의실 문을 열고 벼루와 깔판을 각자의 자리에 펴놓고 혹여 책상 줄이 비뚤어져 있으면 반듯하게 줄을 맞춰 수업준비를 하신다.
내 일 아니면 관심을 안 두는 요즘 세상에 후배와 선생을 위한 배려와 사랑이 몸에 밴 분이다.
책상 위에는 언제나 따뜻한 차가 준비되어 있다. 어르신이 준비해 놓은 차라서 더 따뜻하다고 너스레를 떤다. 수강생들은 강좌가 있는 금요일이 기다려진다고 한다. 한결같이 결석을 하지 않는 이상 열심히 숙제를 해온다.
나는 이런 열정을 가진 분들에게 30분 수업을 더 연장해서 열과 성을 다해 수업에 임한다. 오후반까지 종일 서서 수업을 하다보면 지칠법도 한데 강의실에 있는 동안은 잠시도 내 손놀림은 쉬지 않는다. 이러다 좀 힘들면 당떨어지는 시간이라며 잠깐 휴식 시간을 갖기도 한다.
애정을 담아 적묵으로 일주일 동안 공부해 온 숙제를 한 자 한 자 분석하며 체크한다. 검은 바탕에 적묵 체크로 인해 이끼 낀 바위 틈에 잎 보다 먼저 꽃을 피운 진달래처럼 화선지에 유혈이 낭자해 글을 쓴 화선지는 꽃밭으로 변하기 일쑤다. 체본 보다 이 유혈이 낭자한 지적이 오늘 여러분이 강의실에 온 목적이다. 특강이라 생각하라며 주문을 한다. 그러다 간혹 내 욕심이 과해 내 눈높이로 체크를 심하게 했나 하는 생각을 하다 멈칫할 때도 있다.
그중에는 선생 체본을 밑에다 놓고 그대로 따라쓰기를 해 온, 정확하지 않으면 넘어가지를 못하는 인간복사기도 있다.
그 분 때문에 수업시간은 늘 박장대소다. 글 속에 그분의 성품이 읽혀져 웃음을 자아낸다. 처음에 서예에 입문했을 때 얼마나 적응하겠나 했는데 내 예상을 깨고 강의실에 처음 왔을 때 보다 그 무표정했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애정 반 칭찬 반으로 즐겁게 수업을 시작한다. 그러면 되는 거다. 이처럼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가 꼭 하나쯤 있어야 한다.
공허와 우울은 늘 우리 일상에서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 친구하지 않으려면 뭔가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 잘 놀 줄을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잘 못 써도 잘 써도 그 글은 대한민국의 하나뿐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자신만의 글이라며 자부심을 갖고 즐거운 글쓰기를 권면한다.
글은 그 사람의 성품을 읽을 수 있다. 유일무이한 그 사람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하나 밖에 없는 붓글이며 예술이다. 누구도 흉내를 낼 수 없다.
22년에 수강자 명단을 받아드니 남자 이름이 있다. 남자 분인가 했더니 여성 분이다. 예전엔 딸부잣집에서 아들 바라는 마음으로 남자 이름을 짓기도하고 마칠종자를 이름에 넣기도 했다. 종민님은 그동안 성실하게 글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전 시간에 서예작품이 중간중간에 삽화로 들어간 2019년에 출간한 수필집 '붓질 20년' 한 권을 건넸다.
집에 귀가하자마자 단숨에 읽어내려갔다고 했다. 오랜만에 편지 쓰듯 쑥스럽게 써 본 글이라며 슬며시 웃음을 건넸다. 연령을 묻지 않았지만 독후감을 읽고보니 나와 비슷한 연배인가보다. 서예수업을 하면서도 어르신들께 내 생의 자서전 한 권 쯤 남겨보라고 가끔 말을 건네기도 한다. 어떤 분은 7~80년대 고향의 정서와 자신들이 접해 본 추억을 소환시켜주어 고맙다며 딸이 빚은 예쁜 도자기 한 점을 가져오기도 했다.
서예와 문학, 한 손엔 붓을 들고, 한 손엔 펜을 들고 양 어깨 기우뚱기우뚱 휘청이기 일쑤다. 일상 속 내게 주어진 달란트를 풀어쓰느라 고독한 시간을 속끓이며 보낸다. 척박한 땅에 내 생의 가늘디 가는 나만의 뿌리예술이 자리잡기를 희망하며 .
첫댓글 서예강좌를 이끌고 계시군요~ 존경의 마음이 읽히는 감상문 잘 읽었습니다. 부지런히 살고 계시는 선생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다재다능한 송향님,
매사에 멋진 모습 보여주는 그 능력이 감동을 줍니다.
하고 싶은 일 한가지라도 즐겁게 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인데 서예와 문학에서 앞자리를 차지하고
낭송으로 편지쓰기로 실력을 인정받으며,
여러 모임을 이끌어가면서 봉사하고 이종민 여사 같은 좋은 제자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송향님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성실보다 강한 건 없다고 합니다.
매끄러운솜씨로 자신감 넘치는 삶을 살고 있는 송향님,
그 빛과 향기 곳곳에 널리 퍼지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