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파즈처럼》은 한국현대수필 100년 100인선집 제11번째이다. 2023년 3월 수필미학의 신인 공모전에 당선, 등단 후 수필집 《그게 바로 사랑이야》, 《청산도를 그리며》, 《혼자 걷는 길》, 《서해의 일출》, 그리고 암투병기 《봉선화 붉게 피다》 작가 김국현의 2023년 작품이다. 저자인 문학평론가 김국현은 ‘일흔이 다 되어가는 세월’이라 적고 황옥(黃玉)이라 불리는 토파즈(산스크리트어로 불 또는 홍해의 토파지오스섬에서 나는 보석)를 닮고 싶다 하였다(2024.3.13 김국현 칼럼).
《토파즈처럼》 은 작가가 날마다 찾고 벼려낸 해학적 비평들을 차려입었다. 1부 「나답게 살기」에는 ‘바람길’, ‘공원 벤치에서’, ‘입장료’, ‘나답게 살기’, ‘미쳐야 미친다’. ‘그곳’, ‘가지 않은 길’이 있다. ‘나답게 살기’ 처음부터 수필공부를 하자 조르지는 않았다. 다만 따라나선 이를 끌고 비 내린 아침 풍경속을 조용히 걸어간다. 시선이 머물다 흩어지길 몇 번째, 길 가 건물 간판을 헤아리다 우체국 소포 선물을 보내보는 소소한 행복도 오랜만에 함께 한 시간이었다. 작디작은 공원 한켠은 평소 어둑해서 잘 찾지 않았었다. 산책길에 만난 노부부의 다정함을 만나 기쁨이 싹이 튼다. 매일, 매 순간을 만들어가는 느린 걸음의 나를 이제부터 소중히 여겨보라 속삭이는 듯도 하다. 기어이 만원버스에 올라타 물끄러미 정거장의 패찰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보니, 수필 수업장까지 따라오고 말았다.
2부 「버스킹에 빠지다」엔 ‘개나리’, ‘눈물맛’, ‘버스킹에 빠지다’, ‘코로나 단상’, ‘오감의 역설’, ‘고향집 마당’, ‘꽃잎 속에 잠든 여인’. 한평생을 사는 사람들과 닮아 있기에 ‘우리 곁을 지키는 가장 흔한 나무’ 개나리가 피기를 기다렸다. 노랑나비가 개나리에 앉은 모습에서 온통 노랗게 물든 봄을 발견했다. 봄 꽃의 전령사라 사랑받는 개나리가 꽃피기까지, 다시 다음해 꽃피우기까지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10여년의 암투병기라 적지 않았지만, 개나리를 다시 만나기까지, 아슬아슬한 기대로, 비록 조금은 흐트러질망정 약속처럼 꿋꿋이 피어날 개나리를 만을 때의 기쁨이 엿보인다. 삶은 연습이 없다고 했다. 각자의 어려움들, 각양각색의 어려움을 딛고 무사히 살아낸 우리들의 노력이 고마워 눈물지어졌다.
3부 「아름다운 승부」에는 ‘아름다운 승부’, ‘바람개비’, ‘상한 갈대’, ‘번제’, ‘어느 출판기념회’, ‘책의 여행’, ‘옹이를 삭히며’가 있다. ‘아름다운 승부’는 테레사 수녀의 기도처럼, 우리 중 누군가가 괴롭힌다해도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와같이 살고자 한 작가의 기도에 경건한 찬사를 함께 덧그렸었다.
4부 「타인의 방」은 ‘외갓집 이야기’, ‘피아노’, ‘아내의 등’, ‘지하철에서 생긴 일’, ‘타인의 방’, ‘아버지의 유산’, ‘응급실 풍경’. 4부에서 작가는 몸과 마음의 방을 떠나 유형한다. 어머니의 친정집, 추석날 방문한 큰아들 집, 아내와의 집에서의 시간, 지하철, 그리고 다른 타인의 방으로 옮겨다닌다. 타인에 속한 방은 투병 중 죽음을 맞는 준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깝든 멀든 이 세상 떠날 때 내 모습도 같을 텐데, 그때 타인의 방에 남겨질 수 있는 나에 대한 기억들은 지금 이 순간에 달려있다.
5부 「산수화 속으로」는 ‘가시’, ‘산수화 속으로’, ‘내이름은 산천어’, ‘연꽃 세상’, ‘리어카의 추억’, ‘야간수업’, ‘토파즈처럼’. 6부 「떠난자와 남은 자」에는 ‘아우라지’, ‘서해의 일출’, ‘발트의 길’, ‘다산 초당’에서, ‘억새의 노래’, ‘나의 귀향’, ‘떠난 자와 남은 자’까지이다. 그것들은 토파즈의 겉멋이 아닌 오래 닳아 녹진해진 내면을 닮고자 한 삶의 지혜까지 담아내어 한층 멋스럽다. 부조리한 사회라 배척해 온 젊은 시절을 기억 속에 되살려보자. 나의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에게 얼마나 정성스럽게 나누려 노력하였었나? 결코 동조하진 싫다는 오기로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따라가 본다. 무난하면서 잘 정돈된 작가의 걸음들은 강요하지 않는데, 조였다 느슨해지는 속도감을 따라가는 재미에 정중한 독자가 되어 있었다.
작가가 토파즈를 여러 가지 이유로 선택한 것과 같이, 우리 각자에게도 그만큼 가슴 뜨겁게 바라온 무엇이 있는가 질문을 되돌려본다. 마음과 몸을 다해 꼭 가져보고 싶었던 것은 크거나 작거나 어린사람이나 나이든 사람들 모두에게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얻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지금도 달리고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살아가는 목표까지 가는 길은 분명한 기준이 있는가 하는 새로운 질문 하나가 다시 생겼다.
목표라고 여겼었는데 겉 표지를 훑고 집어던지거나, 모아두지는 않았던가?
p.162.
“나는 어느덧 그 둘을 나룻배에 함께 태우고 바다가 바라보이는 남쪽을 향해 노를 젓는 뱃사공이 되어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어도 좋다. 기회가 닿으면 꼭 보석이 아니어도 좋은, 소중한 것을 찾아온 노력이 알차게 쌓여질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매 걸음, ‘선택의 기준’만은 일관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조금씩만 적게 헤매면 기쁠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작가만큼 만족감으로 채워지기를 기대한다. 하나만 더 허락된다면, 그것이 나의 가족, 친구, 일상 속 만나는 이들에게 나눌 수 있는 보석같은 마음이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경주 반월성, 꽃 물들다/ 사진 서강>
- 2기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水月 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