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팬들에게 휘트니 휴스턴의 지난 17년간의 활약상은 여러 각도에서 비춰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2002년 12월 9일을 기해, 이제 대중이 자신을 영혼을 담아 노래할 줄 아는 가수로 봐주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이런 그녀의 의지는, "전 그저 휘트니 휴스턴이란 사람이랍니다."라는 의미심장한 앨범 타이틀인 [Just Whitney]에 잘 드러나 있다. 침묵을 깨고, 베스트 앨범 이후 약 2년 7개월만에 발표하는 신작을 통해 음악계의 전면에 복귀하려는 그녀의 행보를 주목해 보자.
1963년 8월 9일, 미국 뉴저지의 이스트 오렌지에서 태어난 휘트니 휴스턴. 그녀의 탄생 배경에는 유명 가수들의 백 보컬리스트이자 가스펠 싱어였던 어머니 시시 휴스턴, 사촌 언니인 디온 워윅 그리고 자신의 대모 아레사 프랭클린이 있지 않던가? 이런 영향들로 인해, 꼬마 휘트니의 유년 시절 일과는 매일 교회에서 가스펠을 노래하던 것이었다고 한다.
여덟살이 되던 해, 휘트니는 오빠들의 장난으로 금속 옷걸이 갈고리 부분이 목 안으로 들어가는 사고를 당해 목젖을 조금 잘라내어야 했다. 다행히도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었기에, 11살이 되던 해부터 장래 희망을 가수로 삼기에 이른다. 그녀의 가수 데뷔를 위한 노력은, 급기야 19살이 되던 1983년 필생의 파트너인 [아리스타] 레코드의 클라이브 데이비스를 통해 이루어졌다. 첫 TV 출연이었던 미국의 공영 방송 [PBS]의 [The Merv Griffin Show]에서 그녀는 다이애나 로스의 ''Home''을 완벽하게 소화했고, 이 공연은 고급스러운 목소리를 가진 ''새로운 스타 탄생'' 의 서막을 알리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이제 휘트니 휴스턴은 과거의 대형 여성 가수들의 계보를 이어 가고 있는 아티스트의 위치에 올라있다. 동시에, 현존하는 여가수들에게는 음악 및 마케팅 면에서의 교과서적인 존재로 우뚝 서며,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적인 하나의 언어로 승화시켰다.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목소리의 소유자''란 호칭, 이는 그녀에게 늘 따라붙는 최고의 찬사 중 하나다.
Milestone of Whitney Houston''s Musical Career
그녀의 음악 경력은 스탠더드 팝과 R&B의 절충을 보여줬던 초기 앨범들과, 이후에 발매했던 영화 사운드트랙, 그리고 4집 앨범과 히트곡 모음집까지 총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Pt. 1:Rising Star, Continuing Her Success (From 1985 To 1991)
데뷔 앨범 [Whitney Houston]은 발렌타인 데이인 1985년 2월 14일 발매되었다. 앨범에 수록된 10곡은 모두 순수 팝/R&B의 분위기를 담고 있었으며, 이는 춘추전국시대와도 같던 당시 팝계의 틈새 시장을 제대로 본 클라이브의 상업적 감각에서 기인된 것이었다.
타이틀 곡으로는 R&B 발라드의 열기를 담은 ''You Give Good Love''이 간택되었다. 사실 이 곡을 선택한 배경에는 먼저 흑인 청자들부터 공략을 해야 한다는 음반사의 입김이 있었다. 그러나 이 곡은 크로스 오버 히트를 기록하며 싱글 차트 3위까지 진출하였고, 그녀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수행했다. 이후 ''Saving All My Love For You(''85년 9월)''를 필두로 한, ''How Will I Know(''86년 2월), ''Greatest Love Of All(''86년 5월)'' 의 연속적인 1위 행진, 그리고 생애 최초의 [그래미]상 트로피와 각종 시상식에서의 수상이 이어졌다. 흑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이것이 바로 그녀를 지칭하던 언론의 표현이다.
가수에게 있어서 2년차 징크스를 벗어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녀와 측근들은 첫 번째 월드 투어이던 [The Greatest Love Tour] 도중 틈틈이 곡을 수집하며 레코딩 작업을 병행했고, 휘트니는 앨범의 완성도를 위해 같은 곡일지라도 수십번의 레코딩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타이트한 스케줄 속에서 탄생한 앨범이 바로 1987년 7월발매된 2집 [Whitney] 이며,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첫 싱글로 정상에 오른 ''I Wanna Dance With Somebody(Who Loves Me)''(''87년 6월)''의 인기는 마치 스피커를 뚫어버릴 듯한 파워 발라드 ''Didn''t We Almost Have It All(''87년 9월)''로 이어졌다. 이어 역동적인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와 샤우트 창법이 인상적이던 ''So Emotional''(''88년 1월)과 여백이 느껴지던 발라드 ''Where Do Broken Hearts Go''(''88년 4월)을 차례로 정상에 올려놓으며, 휘트니는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앨범 발매 직후 바로 가진 두 번째 월드 투어인 ''Moment Of Truth''의 매진 사례, 서울 올림픽 당시 미국 NBC가 자체적으로 방송한 북미용 주제가 ''One Moment In Time''의 히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화려하게 시작한 휘트니의 음악 인생 1부는, ''이보다 더 성공적''일 수 없었다. 어떤 가수도 기록하지 못했던 7곡의 연속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및 약 4,200만 장의 전 세계 앨범 판매고. 하지만 1, 2집의 히트 이후 세인들 사이에서 오르내리던 그녀에 대한 엇갈린 평가는, 3년간 거둬들인 음악적 성과들에 있어 옥의 티였다.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로 백인 취향의 노래만을 부른다.''라는 찬사와 비난. 물론 앨범에는 소울의 느낌을 담은 곡들이 있었지만, 단적으로 휘트니와 더불어 1980년대 후반을 풍미한 여가수 애니타 베이커 (Anita Baker)의 음악보다 덜 검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모든 전략은 그녀의 경력을 지속시키기 위한 측근들의 전술이었기에, 이제 휘트니는 자신만의 음악적 역량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3집인 [I''m Your Baby Tonight]에서 당시의 히트 제조기였던 엘 에이 리드(L.A Reid)와 베이비페이스의 합작을 선택했고, 전체적으로 좀 더 흑인 음악 다운 색채를 앨범에 담아내기에 이른다. 이런 그녀의 노력은 동명 타이틀인 첫 싱글 및 ''휘트니''표 발라드로 차트 정상에 오른 ''All The Man That I Need(''91년 2월)'', ''Miracle'' 등의 히트 곡들을 배출하였고,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R&B 앨범 차트의 정상에 오르는 성과를 낳으며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흑인 계층의 지지를 받는데 성공했다. 3집 활동 중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는, 립 싱크다 아니다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1991년의 [슈퍼보울] 결승전에서의 미국 국가 공연이다. 휘트니의 열창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며, 후에 상업용 싱글로 발매되어 싱글 차트 20위까지 오르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랩 음악이 본격적인 조명을 받던 시기인지라 앨범 판매고는 상대적으로 부진하게 보였고, 덩달아 고심 끝에 택한 그녀의 시도마저 평가절하되는 비운을 맛보게 된다.
Pt. 2: Settling Down The New Heights A-List Actress, Whitney (From 1992 To 1997)
3집의 월드 투어를 끝내고, 휘트니는 케빈 코스트너와 영화 [보디가드]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휘트니와 그녀의 측근들은 사운드트랙 앨범을 상업적인 최고의 것으로 기획하였고 그 결과 이 앨범은 휘트니 휴스턴이란 가수를 언급할 때마다 함께 떠오르는 대형 히트곡들을 배출했으며 실제로 ''I Will Always Love You'' 와 ''I''m Every Woman'' 그리고 ''I Have Nothing''이 싱글 차트 안에 동시에 머물러 있기도 했다. 이렇듯 그녀는 실로 엄청난 파장을 음악 및 영화계에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런 성공은 비평가들에게 새로운 비판거리를 제공한 셈이었고 그녀의 음악성을 성토하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즉, 휘트니가 라이브 공연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진정한 본향으로의 회귀가 레코딩 상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었던 것이다.
결혼과 출산을 통해 인생의 기쁨을 누리던 그녀지만 혹사로 인해 성대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휘트니는 음악 인생의 적신호를 맞이했다. 아울러 영화계에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두 번째 영화 [사랑을 기다리며(Waiting To Exhale)]의 사운드트랙에는 불참을 선언했으나 레코드사 및 영화 제작사의 종용으로 결국 그해 8월 세 곡의 신곡을 녹음했다. 첫 싱글 ''Exhale(Shoop Shoop)''에서 느껴지듯 특유의 폭포수 같은 창법을 자제하고 좀 더 깊이가 느껴지는 새로운 가창 형태를 선보였다는 점이 괄목할 만한 변화의 일면이라 하겠다.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천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시시 와이넌스와의 감동적인 듀엣 ''Count On Me'', 그리고 ''Why Does It Hurt So Bad''의 히트가 이어졌다.
예전부터 나돌던 각종 루머와 남편과의 불화설은, 휘트니를 언론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리게 했다. 하지만 일련의 소문들을 뒤로 한 채, 그녀는 세 번째 영화 [목사의 아내(The Preacher''s Wife)]와 사운드트랙을 공개하기에 이른다. 영화상에서 울려퍼지던 ''I Believe In You And Me''와 ''I Love The Lord''같은 곡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휘트니는 드디어 그녀의 음악적 뿌리인 가스펠과 영화에 어울리는 레퍼토리들로 앨범 전체를 꾸몄고, 그 결과 이 작품은 가스펠 음악계 사상 가장 높은 판매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어 1997년에 미국 [ABC-TV]에서 방영된 영화 [신데렐라]의 성공을 통해, 그녀는 또 한번 팔방미인다운 역량을 과시하기도 했다.
Pt.3:Becoming The Soul Singer, Keep Struggling With Rumors(From 1998 To 2001)
해는 어느덧 1998년으로 접어들었고 휘트니는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참신한 사운드를 들려준 [My Love Is Your Love] 앨범으로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현존하는 R&B 음악을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한 4집은 원래 히트곡 모음집으로 꾸며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신곡들이 마음에 든 클라이브 데이비스와 휘트니는 급히 방향을 선회하였고 덕분에 신보 홍보기간은 짧을 수 밖에. 이에 앨범은 부진한 첫 주 판매고를 기록하게 되었으며, 기대를 모았던 머라이어 캐리와의 듀엣 ''When You Believe''마저 미국 내에서 기대만큼 큰 반응을 불러모으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후 히트한 ''Heartbreak Hotel'', ''It''s Not Right But It''s Okay'', ''My Love Is Your Love'', ''I Learned From The Best'' 와 같은 싱글들은 변화된 그녀의 음악을 대중에게 제대로 인식시킴과 동시에 꾸준한 음반 판매를 가능케 해주었고, [VH1 디바스 라이브 1999]의 성공과 미주 지역 및 유럽 투어의 매진사례가 이어졌다.
그러나, 2000년 1월 그녀는 하와이 공항에서 짐을 부리던 중, 핸드백 안 소설책에 담겨있던 약 15g 정도의 마리화나가 문제가 되어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정작 본인은 영문도 모르는 일이라며 가방을 놔둔채 비행기에 탑승했고, 며칠 뒤 뉴욕에서 있었던 로이 존스의 권투 시합에서 ''God Bless America''를 열창했다. 본격적인 매체와의 줄다리기는 휘트니가 컨디션 조절을 이유로 그 해의 오스카상 공연에 불참키로 하면서 시작되었다. 언론의 집중 포화 속에서 그녀는 4월에 열린 [아리스타] 레코드 창립 25주년 기념 공연과 5월의 히트곡 모음집과 같은 음악적인 소식만을 대중에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뉴욕 데일리 뉴스]같은 유명한 매체에서조차 날조된 콘서트 리뷰를 게재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 수사 중이던 마리화나 관련 사건은 2001년 2월, 하와이 경찰당국이 이를 기각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판결에 따르면 휘트니의 마약 테스트가 음성으로 밝혀졌으며 약물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의사의 소견서도 접수되었다고했다. 향후 3개월간 다른 문제가 없어 그녀의범죄기록에서 이를 삭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뒤를 이었다.
그 해 6월 휘트니는 [BET] 음악상의 공로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으며, 8월에는 거액의 계약을 [아리스타]와 다시 체결하기에 이른다. 언론들도 잠시 그녀에 대한 공격의 고삐를 늦추는 듯 비춰졌다. 그러나 9월 초 열린 마이클 잭슨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에서 보여준 활기찬 무대 대신, 그들은 전보다 조금 더 야윈 몸 상태의 휘트니를 파헤치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그저 911 테러 사건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1991년의 애국가 싱글을 재발매하는 것과 발라드 모음집 [Love, Whitney]를 공개하는 것으로 말 많던 2001년을 마무리 지었을 뿐. 한편 휘트니는 12월 4일 미국 ABC의 여성 앵커 다이앤 소여와의 [프라임 타임 인터뷰]에서 위의 사건들에 대해 속 시원히 밝힐 예정이라고 한다.
더욱 내실을 기한 ''휘트니 휴스턴'' 표 Pop / Street R&B의 완성 [Just Whitney]
올해 1월, 휘트니는 새 앨범에 실릴 곡들을 고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어 3월엔 녹음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을 공개함으로써 근황에 목말라 하던 팬들을 기쁘게 해주기도 했다. 지난 5월 열린 [디바스 라스 베이거스] 공연에, 그녀는 메리 제이 블라이지의 ''Rainy Dayz'' 부분에 출연을 함으로써 8개월만에 처음으로 대중에게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7월 9일 뉴욕 [WBLS-FM]의 웬디 윌리엄스를 통해, 첫 싱글 ''Whatchulookinat'' 음원이 누출되기에 이른다. 언론을 향한 비난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한 이 곡에 대해 [빌보드] 및 [EW]에서는 신랄한 비평을 가했다. 그래서 이 반응으로 말미암아 음반사와 휘트니가 발매 스케줄을 미루면서까지 완벽을 기한 앨범이 바로 [Just Whitney]다. 그녀는 전작의 참신함을 이어가되 좀 더 편안하면서도 세련된 팝/R&B 사운드의 수록곡들을 앨범에 담았고 장기인 고음역대의 힘있는 목소리와 더욱 다양해진 보컬의 기교를 맘껏 뽐내고 있다.
''트렌디 R&B/소울의 휘트니화''는, 앨범의 백미 ''Things You Say''를 통해 여실히 감지된다. 미시 엘리어트와 떠오르는 샛별 트위트(Tweet)의 공동 작품으로, ''6-''70년대 고전 소울의 분위기와 그녀의 그윽한 보컬이 어우러진 수작이다. 두 번째 싱글 커트곡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중독성 만점 그루브로의 초대 ''One Of Those Days''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 곡은 케빈 브리그스의 작품으로, 아이슬리 브러더스(The Isley Brothers)의 1983년 히트곡 ''Between The Sheets''를 절묘하게 샘플링 했다. 묵직한 베이스 라인이 인상적인 ''Dear John Letter'', 트로이 테일러(Troy Taylor: 보이즈 투 멘, 자니 길 등의 프로듀서)가 선사한, 동양적인 R&B 선율과 휘트니의 열창이 돋보이는 ''Unashamed''도 필청 트랙이다.
역시 지난 앨범과 같이 젊은 계층을 공략하려는 휘트니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이는 먼저 앨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있는 ''Whatchulookinat''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남편 바비 브라운과 신예 프로듀서인 무하매드 투 지(Muhammad 2G)가 작업한 평범한 댄스곡이다. ''과연 이 노래가 휘트니의 것인가?'' 하는 반응들이 있을 정도로, 그녀는 너무도 평이한 창법으로 쉽게 곡을 소화하고 있기에 상반된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는 곡 자체보다 메시지를 부각시키려는 계산된 그녀의 의도였을지도? 피 디디의 손길이 닿은 리믹스 버전은 원곡의 분위기와는 다른 통통 튀는 힙 합 리듬을 차용했다. 바비 브라운은 이 밖에도 미드 템포 R&B 잼 넘버 ''My Love''를 ''부부 듀엣''으로 녹음하기도 했다. 토니 브랙스턴과 호흡을 맞췄던 테디 비숍(Teddy Bishop), 고풍스러운 R&B 발라드로 이름을 얻은 고든 챔버스(Gordon Chambers)가 휘트니의 앨범에 참여했다. 아울러데스티니스 차일드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롭 푸사리(Rob Fusari)의 터치가 가미된 ''Love That Man''은, 마치 1집의 ''How Will I Know''를 연상시키는 틴 팝 스타일의 흥겨운 트랙이다.
지난 6월 경 베이비페이스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그녀의 목소리는 소름끼칠 정도로 탁월하다."고 했다. 그의 자신감 넘친 발언을 담은 산물이 바로 다음에 열거될 세 곡이다. 걸 그룹 엑스케이프(Xscape) 출신의 캔디(Kandi)와 베이비페이스의 공동 작품인 파워 발라드 ''Tell Me No''. 그녀의 포효하는 듯한 고음 가창과 일렉트릭 기타 연주의 갈무리는 사뭇 비장미마저 들 정도다. 항간에 떠돌던 소문과 달리 기타 세션에 참여한 인물은 카를로스 산타나가 아니라 마이클 톰슨(Michael Thompson)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70년대를 풍미한 작곡가 캐롤 베이어 세이거(Carol Bayer Sager)가 참여한 서정적 팝 발라드 ''On My Own''의 포근함과 소박함은, 1977년 데비 분이 불러 히트시킨 팝 고전 ''You Light Up My Life''로 이어지고, ''리메이크의 달인'' 휘트니가 유독 이 곡에서만큼은 오리지널 코드 그대로 불러주고 있음이 특이하다. 그러나 흡사 라이브 실황에서 따온 듯한 보컬 애드 리브를 선보이며 독창적인 해석을 가미하고 있긴 하다. 베이비페이스의 동물적인 히트 감각은 위의 곡들에서 빛을 발하고 있으며, 상업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인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가사와 함께, 쉽고 대중적인 곡들을 한껏 담은 앨범 [Just Whitney]. 몰지각한 사람들로 인해 마스터링도 되지 않은 음원이 인터넷상에 유포되긴 했지만, 그녀는 상업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지난 여름을 바쁘게 보냈다. MP3 공개로 인해 신곡을 녹음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었지만, 결국 이를 제외한 리스트로 발매가 되어 이를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상당할 듯 싶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녀가 자신의 음악적인 자질마저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시선을 딛고 공개하는 것이 아니던가. 곡 수의 많고 적음을 논하기 전에,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려는 휘트니의 모습을 주시해 보자. 아티스트로서의 능력을 검증 받을 임무를 부여받은 본 작을 통해, 그녀가 왕성한 활동을 펼쳐주기를, 그리고 부진했던 대형 스타들의 행보에도 보탬이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