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추억의 무협영화
요즘 영화계에 <와호장룡(臥虎藏龍)>의 인기가 대단하다. ‘왕도려’의 무협소설
을 ‘이안’ 감독이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서정적인 화면으로 잡아낸 이 무협영화
는 <동방불패(東方不敗)>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 관객들의 외면을 받아
점차 시들해 지고 있는 무협영화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어려서부터 무협영화라면 광적으로 좋아했던 나도 이 <와호장룡>을 보고는 왠지
모르게 예전의 무협영화들이 다시 보고 싶어 근처의 비디오가게를 서성거리게 되
었다. 하나 최근 몇 년 동안에 나온 무협영화 중 볼만한 것은 거의 극소수에 불
과하고, 게다가 하나같이 너무 SF적인 면만을 강조하여 무협본연의 맛을 찾아보
기란 불가능한 작품들뿐이었다.
'인간은 과거를 먹고 사는 동물'이라는 누구의 말처럼, 지금은 볼 수 없는 예전
의 그 시절에 보았던 그 영화들이 새삼 기억에 남는 것은 나 혼자만의 감회는 아
닐 것이다. 나와 함께 무협영화를 보았던 동년배의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
다 보면 그들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과거 기억의 편린들을 그리워하며 '다른 건
몰라도 무협영화만큼은 옛날이 좋았지...'라는 말들을 떠들게 된다.
과연 그랬을까?
간혹 아주 어렵게 구한 예전의 무협 비디오를 설레이는 마음으로 다시 보다보면,
그 엉성한 무술 장면과 앞뒤의 연결이 끊어지는 스토리 전개, 그리고 어설픈 카
메라 워크에 실망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다시 또 예전의 그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 어느 구석진 비디오가게를 뒤지고 다니는 나를 발견하고는
실소를 터뜨리기도 하는 것이다.
예전(여기서 말하는 예전이란 80년대 이전을 말한다)에 보았던 무협영화들 중 지
금도 뇌리에 기억되고 다시 보고 싶은 추억의 영화들을 되새겨 보고자 한 것도
바로 이런 마음에서였다.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들 중 몇몇은
마스터필름의 존재유무조차 확인되지 않아서 영원히 보지 못할 것도 있고, 또 몇
몇은 지금 보면 기억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크나큰 실망을 맛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기회가 닿는다면 반드시 보고 싶은 작품들이다.
물론 순전히 내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여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에 사실과는 다
른 점이 있을지 모르나, 그 점에 대해서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
1. 유성호접검(流星蝴蝶劍).
몇 년전에 나온 <신(新)유성호접검>이 아니라 1970년대에 상영된 영화를 말한다.
내 연배에 무협을 좋아했던 사람들을 모아놓고 다시 보고 싶은 예전의 무협영화
를 한 작품만 말하라고 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이
작품을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유명하고, 그만큼 잘 만들었으며, 그만큼 많은 사
람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 작품이다. ‘불후(不朽)의 명작(名作)’이란 바로 이
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원저는 익히 알려진대로 동명의 소설인 ‘고룡(古龍)’의 <유성호접검>이다. 대
체로 잘된 작품일수록 영화화하여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만은 원작 못
지 않은, 평가에 따라서는 오히려 원작보다 더욱 뛰어난 부분을 간직하고 있다.
그 복잡하고 묘사하기 힘든 원작의 스토리를 너무도 잘 각색했을 뿐 아니라, 원
작이 가지지 못한 영화 특유의 박진감과 볼거리를 많이 선사하여 보는 사람의 마
음을 사로잡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대체적인 스토리전개는 원작이 인간의 심리묘사에 치중한 반면 영화는 관객의 의
표를 찌르는 반전에 중점을 두어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다. 원작이 고룡의 소설답
게 싸움 장면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이 적절하게 섞여 있
어 더욱 흥미로웠다.
주인공인 맹성혼(孟星魂) 역에는 종화(宗華), 율향천(律香川)역은 악화(岳華),
그리고 비운의 살수 엽상(葉翔) 역에는 당대 최고의 미남배우였던 능운(凌雲)이
맞아서 살아 있는 듯한 생생한 인물묘사를 했다. 손옥백(孫玉伯) 역의 배우도 상
당한 명연을 했는데, 아쉽게도 이름을 알지 못한다. 손옥백을 지키는 살수인 한
당(寒唐)역은 과거의 최고배우중 한 사람이었던 나열(羅烈)이 맞아서 열연을 했
는데, 그를 죽일 때 율향천이 사용했던 특수한 조립병기는 당시 장안의 화제였
다.
율향천이 손옥백을 암습할 때 사용한 칠성침(七星針)과, 손옥백이 지하 뇌옥의
밀실에서 칠성침을 몸에서 빼내에 상처를 치료하는 장면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아주 잠깐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퇴락한 살수인 엽상 역을 했던 능운의 연기도
잊혀지지 않는다. 국내 무협소설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퇴락한 살수를
그처럼 멋지게 표현한 배우는 그 외에는 없을 것이다. 손옥백의 딸인 소접(小蝶)
도 잠깐 등장하는데, 그녀 또한 소설과는 다른 차분하면서도 슬픔을 간직한 미녀
역을 무리없이 소화해 내었다.
아무튼 영화 <유성호접검>은 원작이 가지고 있는 복잡하고 비감한 맛을 잘 살린
데다 원작이 가지지 못한 박진감과 짜임새를 잘 곁들여 당시에 보기 힘든 압도적
인 재미를 선사한 ‘무협영화의 마스터피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원산지인 홍콩에서조차 마스터필름을 분실하여 이제는 다시 구경하기도
힘든 작품이 되었지만, 그 작품이 가져다 준 흥분과 재미는 영원히 나의 뇌리 속
에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2. 결투자적 생명(決鬪者的生命)
이 작품은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고 비디오로만 출시된 것이다. 예전에는 그래도
오래된 비디오가게의 구석에서 간혹 눈에 띄었는데, 요새는 아예 구경할 수가 없
다.
주인공은 절름발이 여검사인 ‘누추향(婁秋香)’. 등장인물의 이름만 들어도 고
룡의 작품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작품 곳곳에 고룡 특유의 코드가 널려 있다.
누추향 역은 ‘장령(張玲)’이 맡았는데, 그녀는 예전의 중국무협영화에 나오는
여배우들 중 가장 특이한 존재였다. 커다란 두 눈에 약간 통통한 양쪽 뺨을 가진
그녀는 중국무협에 가장 어울리는 마스크를 가졌을 뿐 아니라 무술 실력도 상당
해서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무협영화에 나오는 여배우들이 대체
로 그림 속의 꽃과 같은 장식으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반해, 그녀는 영화의 중심
인물이 되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상당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 이 영화에
서도 그녀는 끝까지 미소 한 번 짓지 않고 무뚝뚝하고 무표정하게 강호를 행보하
는 누추향의 모습을 잘 연기하여 보는 이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겨주고 있
다.
남자 주연은 당대 최고의 미남배우인 ‘능운(凌雲)’이 맡았는데, 그는 ‘전붕
(田鵬)’이 나타나기 전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던 배우였다.
중간 중간의 사소한 듯한 에피소드에 고룡 특유의 남녀 사이의 애증이 잘 드러나
있고, 결말에 나타난 의외의 반전 또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짐승 옷가죽을 입고 한쪽 다리를 절룩거린 채로 강호사대고수를 하나씩 찾아다니
며 비무살해하는 신비의 여고수 누추향. 그녀의 최종 목표는 사대고수중의 제일
인자인 연무쌍(燕無雙)으로, 연무쌍은 강호 제일의 신비인이어서 제비(燕)조각을
신표로 삼는 다는 것 외에는 누구도 진정한 정체를 알지 못하는 인물이다.
누추향은 연무쌍을 찾는 그 과정에 우연히 별 볼 일 없는 뜨내기 사기꾼을 만나
게 되는데...
3. 삼인의 명포교(원제:三大名捕會京師)
예전의 중국무협영화를 지금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그 우스
꽝스러운 격투씬이다. 현란한 특수촬영이나 정교한 카메라트릭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볼만한 장면이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엉성하고 답답하며 심지어 유치하
기조차한 장면들이 대부분이어서 보는 사람의 김을 빼놓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 <삼인의 명포교>는 오래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싸움씬이 지금 보아도
상당히 그럴 듯하다. 물론 특수촬영은 아예 눈을 씻고 보아도 없고, 카메라트릭
도 당시대의 영화와 비교해서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지만, 강호의 고수들을 일도
양단해 버리는 주인공의 솜씨가 워낙 특출난데다 그 카리스마가 강렬해서 짜릿한
느낌마저 선사한다. 처음에 마치 마카로니 웨스턴영화의 무법자가 등장하는 것처
럼 멋진 기타소리와 함께 주인공이 등장할 때만해도 실소가 나올 정도이나 뒤이
어 한 칼에 한 명씩 단숨에 다섯 명의 고수들을 살해하는 주인공의 솜씨는 지금
보아도 제법 그럴 듯하다.
최근의 무협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씬인 격투중의 회전동작을 허공에서 잡은 컷
도 이 영화에서 처음 보았다. 비록 정면 위가 아닌 비스듬한 각도에서의 촬영이
었지만, 무척 생동감있고 멋있는 화면을 보여준다.
스토리는 비교적 간단해서, 강호를 혈풍에 휩싸이게 하는 ‘마두(魔兜)’라는 살
수단체를 제거하기 위해 황궁에서 파견된 ‘남북신포(南北神捕)’가 중간에 만난
신비의 살수 ‘흑랑(黑狼)’의 도움으로 ‘마두’를 없앤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드러난 ‘흑랑’의 정체는 충분히 예상된 것이기는 해도 상당한 재미를 선사한
다.
물론 빠르게 날아다니는 사람을 불꽃으로 묘사해 놓은 점등 여러 군데 실소를 터
뜨릴 만한 장면도 있지만, ‘흑랑’이 나오는 장면들은 거의 예외없이 모두 멋있
게 처리되었다. 신비로 점철된 ‘마두’의 주인의 정체가 조금 억지스럽고, 중간
중간에 영화가 잘려나간 곳이 너무 많아 스토리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아
쉽지만, 스타일(Style)로서의 무협영화라는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흑랑’ 역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였던 '전붕(田鵬)'이 맡았는데, ‘전붕’
은 아마도 예전 무협영화배우들 중 가장 미남자가 아닐까 한다. 혜성같이 나타나
서 그때까지 ‘능운’이 차지하고 있던 최고배우의 자리를 빼앗은 기린아였다.
옛날 무협영화 중 '전붕'이나 '능운'이 나오는 영화는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재
미를 지니고 있다.
이 영화에서 전붕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데, 제일 마지막에
“당신은 벙어리냐?”는 물음에 “아니.”라는 유일한 대사를 남기고 사라진다.
대사 외울 일 없어서 촬영은 정말 편하게 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킬킬거린
적도 있었다.
여주인공이자 남북신포중의 여인인 냉추상(冷秋霜) 역은 ‘장령(張玲)’이 맡았
는데, 그녀 특유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대대로 살수집안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포별리(鮑別離)가 가문의 재건을 위해
무리한 청부를 맡다가 결국 비장한 최후(그래봤자 단 일초만에...)를 당하는 장
면이 꽤 오래 뇌리에 남는다. 중간중간에 국내무협만화에서 보았던 눈에 익은 장
면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도 조금은 이색적이다.
4. 철수무정(鐵手無情)
이 작품은 ‘능운’과 ‘전붕’ 이전에 최고의 무협영화배우였던 ‘왕우(王羽)’
와 쌍벽을 이루던 ‘나열(羅烈)’의 최고걸작이다. ‘나열’은 당시만 해도 이
작품 외에 몇몇 작품을 흥행성공시켜 성가를 높였으나, 이후 별다른 후속작을 내
지 못하고 조연급으로 물러나 두고두고 아쉬움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로례
’라는 중국식 발음으로 더 유명했으며, 젊었을 때는 무척 정의롭고 사나이다운
얼굴이었으나 중년이 넘어서는 악당 배역만 자꾸 맡아서인지 얼굴도 젊은 시절과
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여주인공은 당시 홍콩 최고의 여배우였던 ‘이청(李靑)’이 맡았는데, 그녀 또한
‘리칭’이라는 중국식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배우인데, 이 영화에서는 장님으로 나온다.
우연히 강호를 암약하는 신비의 살수집단을 추적하던 주인공이 그들의 암습에 치
명적인 부상을 입고 도망 다니는 중, 우연히 한 여인의 손에 구출된다. 그녀는
깊은 산중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었는데, 앞이 보이지 않은 장님이었다.
나중에 로례는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이 찾던 살수집단의 우두머리임을 알게 되
고, 그녀의 아버지 또한 로례가 자신을 쫓는 인물임을 알고 죽이려 한다. 두 사
람은 그녀를 사이에 두고 서로 잡아 먹을 듯 노려보나, 아무 것도 모르는 그녀는
두 사람을 소개시키며 행복해 한다. 결국 두 사람은 그녀 앞에서는 모르는 사이
인 척 인사를 나누고 밖에 나가 결투를 벌인다...
본 지가 너무 오래된 영화라서 세세한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초옥에서 일
어난 위의 장면은 무협영화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야릇한 느낌을 준 명장면이었
다. 이외에도 살수잡단의 고수 하나가 비가 내리는 날에 기름먹인 우산을 쓰고
사당 안으로 들어가다 자신을 암습하려는 십여명의 고수를 우산을 이용해 살상하
는 장면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5. 절대영웅(絶對英雄)
이 작품도 비디오로만 출시된 것이다. 1985년쯤 우연히 비디오로 보았는데, 순전
히 ‘고룡(古龍)원작’ 이라는 자켓의 문구 때문이었다. 내용전개는 지극히 고룡
적이어서, 음모와 배신으로 점철된 강호인들의 삶과 야망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은 당시 국내에 ‘깡따위’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했던 '강대위(姜大衛)'.
그는 한때 천하무쌍의 고수였으나 지금은 결혼하여 무림에서 은거한 반혼객(返魂
客)이다. 그의 별호 반혼객은 사람의 혼을 빼앗았다가 다시 돌려놓을 정도로 그
의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그 반혼객의 유일한 친구는 역시 당대 최고의 고수중 하나인 고한성(古寒星). 고
한성의 갑작스런 죽음을 캐기 위해 반혼객은 은거지에서 다시 강호로 뛰쳐나온
다. 그리고 그로부터 벌어지는 온갖 기이한 사건들과 신비한 살수집단 냉혈십이
성(冷血十二星)과의 싸움...
거듭되는 음모와 살인, 반전의 스토리는 제법 뛰어나다.
여주인공이 상당한 미모와 분위기를 자랑하는데, 특이한 것은 그녀가 주인공과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무림의 풍류공자와 연관된다는 것이다. 강호인
들(중국인들)이 생각하는 풍류(風流)의 전형이 무엇인지를 대충이나마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곳곳에 있다. 개인적으로 그 풍류공자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자신과 하룻밤을 동침한 여인이라면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고, 결국 여인을 위해
서 스스로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는 사나이...
결말부분을 보면 결국 정의가 승리하는데도 왠지 모르게 씁쓸하고 아릿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도 고룡의 냄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회에 계속-
다시 보고 싶은 추억의 무협영화
제 2회
5. 절대영웅(絶對英雄)
이 작품도 비디오로만 출시된 것이다. 1985년쯤 우연히 비디오로 보았는데, 순전
히 ‘고룡(古龍)원작’ 이라는 자켓의 문구 때문이었다. 내용전개는 지극히 고룡
적이어서, 음모와 배신으로 점철된 강호인들의 삶과 야망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은 당시 국내에 ‘깡따위’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했던 '강대위(姜大衛)'.
그는 한때 천하무쌍의 고수였으나 지금은 결혼하여 무림에서 은거한 반혼객(返魂
客)이다. 그의 별호 반혼객은 사람의 혼을 빼앗았다가 다시 돌려놓을 정도로 그
의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그 반혼객의 유일한 친구는 역시 당대 최고의 고수중 하나인 고한성(古寒星). 고
한성의 갑작스런 죽음을 캐기 위해 반혼객은 은거지에서 다시 강호로 뛰쳐나온
다. 그리고 그로부터 벌어지는 온갖 기이한 사건들과 신비한 살수집단 냉혈십이
성(冷血十二星)과의 싸움...
거듭되는 음모와 살인, 반전의 스토리는 제법 뛰어나다.
여주인공이 상당한 미모와 분위기를 자랑하는데, 특이한 것은 그녀가 주인공과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무림의 풍류공자와 연관된다는 것이다. 강호인
들(중국인들)이 생각하는 풍류(風流)의 전형이 무엇인지를 대충이나마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곳곳에 있다. 개인적으로 그 풍류공자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자신과 하룻밤을 동침한 여인이라면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고, 결국 여인을 위해
서 스스로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는 사나이...
결말부분을 보면 결국 정의가 승리하는데도 왠지 모르게 씁쓸하고 아릿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도 고룡의 냄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 월야도(月夜刀, 일명 月夜斬)
‘고룡 원저’에 ‘능운’이 주인공이라는 자켓 문구만 보고 무조건 빌려 본 작
품이다. 그리고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월야도는 주인공의 별호이자, 주인공이 사용하는 도법(刀法)의 이름이었다. 그는
달 밝은 밤에만 나타나 고수들을 살해하는 무서운 인물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와 똑같은 도법을 사용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이른바 가짜 월야도가 나타난 것이
다.
몇 가지 사건을 거치면서 마침내 가짜 월야도와 마주친 진짜 월야도 능운. 그는
가짜 월야도가 자신이 사부에게서 무공을 배울 때 근처의 바위 뒤에서 무공을 훔
쳐 배운 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의 도법은 로수(路數)도 똑같고, 실력도
엇비슷하다.
보름달이 밝은 밤에 두 사람은 결투를 약속하고, 결투 전날 월야도 능운은 홀로
대장간을 찾아간다...
결말의 의외성에 손뼉을 치게 되고, 고수들과의 싸움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단순
히 무공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7. 백인도장(百忍道場)
이 작품은 세 가지 면에서 옛날 무협영화 중 독보적이다. 첫째는 주인공이 이미
오래 전에 은거했던 나이 육십세가 넘은 전대의 마두(魔頭)라는 것이고, 둘째는
그 주인공이 강호를 혈세하다 천하무림인들의 합공을 받고 죽는 파격적인 스토리
를 지녔다는 것이고, 셋째로 그 주인공이 비록 어슬프게나마 어검술(御劒術)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온다는 것이다.
육십 세가 넘은 노마두이지만, 워낙 무공이 강해서 주인공의 외모는 이십대 중반
의 준미한 청년모습이다. 그는 자신의 사형인 천하제일마(天下第一魔)가 무림의
삼성(三聖)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복수를 위해 은거지에서 뛰쳐나온 것
이다. 그는 삼성의 후계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살해하고, 삼성의 행방을 캐묻
는다.
그 과정의 비정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냉혈하기 그지 없던 그도 우연히 어느 문파에서 장문인의 딸을 보고 첫 눈에 호
감을 느끼나, 그녀에게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 젊은 녀석이 혈겁을 당한 문
파의 복수를 위해 자신에게 덤벼들었을 때, 이 노마두는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
둔다. 이유는 단 하나, 그녀가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 결국 그 때문에 종적을 발각 당해 무림인들의 합공에 빠지게 된다. 뭇 고수
들을 쓰러뜨리며 피곤에 지친 그의 앞에 마지막으로 나타난 무림삼성. 노마두는
어검술을 사용해 그들을 쓰러뜨리려 하나 그 순간 무림삼성의 마지막 합공을 당
해내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스토리 자체가 예전의 무협영화로는 지극히 파격적인데다, 사람을 죽이는 장면도
당시 영화로는 드물게 유혈낭자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였다. 나도 국
민학생 때와 중학생 때 두 번이나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볼 때마다 재미있
어서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사실 지금 다시 본다면 격투장면이 많이 어설플게 뻔하지만, 그 파격적인 스토리
와 내용전개는 여전히 흥미로울 것이다. 살인과 복수 밖에 모르는 주인공이 어린
소녀에게 첫사랑을 느끼고 갈등을 하다가 결국은 헛점을 보여 죽는 장면은 예민
한 사춘기 시절의 나를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검술이라고 해봐야 허공을 날으며 검을 양 손으로 번갈아 잡는 것에 불과했지
만(그렇게 놓고 보면 신검합일(身劍合一)이란 표현이 더 어울릴 지도...^^). 아
무튼 몇몇 장면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아쉬운 것은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은 물론이고 감독이 누구인지도 전혀 모른
다는 점이다.
8. 외팔이 씨리즈(원제: 獨臂刀)
‘외팔이’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왕우(王羽)’다. 지금의 무협영화팬들
에게는 흑사회(黑社會)의 보스로, 혹은 무협영화 제작자로 가끔 까메오 출현하는
배우 정도로 인식될테지만, 3-40대 혹은 그 이전의 세대들에게 ‘왕우’는 무협
영화의 모든 것이었다.
그는 처음 검술영화로 출발하여 한껏 성가를 높이다가 영화 촬영 도중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암흑가의 세력다툼 중 당한 부상이라는 말도 있다), 그 뒤로는 검술
영화를 하지 않고 손발을 쓰는 쿵푸영화에만 출현했다.
그 검술영화의 최고봉이 바로 <외팔이 씨리즈>이다.
<외팔이 씨리즈>가 몇 개나 되는지는 나도 모른다. 단지 내가 알고 있는 씨리즈
는 모두 세 개다.
<외팔이(獨臂刀)>, <돌아온 외팔이>, <외팔이와 맹협(盲俠)>.
이것외에 <외팔이권왕>이라던지 하는 것들도 있지만, 왕우가 등장하기는 해도 정
통 외팔이 영화는 아니다. 왕우의 <외팔이 씨리즈>는 철저한 검술영화이며, 부러
진 반토막 칼이 그 상징이나 마찬가지이다.
위 세 편의 씨리즈를 모두 보았는데도, 머리 속에 조금이나마 기억에 남는 것은
<돌아온 외팔이> 뿐이었다. 국민학교 6학년 시절에 이 영화를 보려고 동네 영화
관에서 한 시간 넘게 줄을 섰다가 ‘미성년자 관람불가’ 때문에 돌아서야만 했
던 피눈물나는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음날 아버지를 끌고 가서 기필코
영화를 보았다.
이미 강호의 모든 은원을 종결하고 은거한 왕우. 하나 무림에 거대한 세력이 나
타나면서 한 줄기 혈풍이 몰아친다. 사람들은 은거한 왕우만이 그 혈풍을 막을
수 있다며 그의 재출도를 강요하지만 왕우는 끝내 거절한다. 결국 그의 재출도를
사정하며 스스로 팔을 자른 한 열혈청년과, 왕우의 재출도를 막기 위해 그의 아
내를 납치한 거대 세력의 흉계 때문에 왕우는 다시 칼을 잡는다.
잊을 수 없는 대나무 숲에서의 격전...(허공으로 붕 떠오른 왕우가 허공을 한 바
퀴 선회하며 칼을 휘두르자 거대한 대나무 숲이 우수수 베어지며 숨어 있던 암습
자가 쓰러지는 광경의 압도감이란...)
온갖 기이한 병기들의 등장, 그리고 한쪽 입술이 약간 올라가서 비정해 보이는
얼굴에 고독한 표정을 지닌 왕우의 모습...
전성기의 왕우 영화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왕우에게서 풍기는 독특한 매
력에 빠져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왕우는 흰색 옷이 너무 잘 어울려서 나
중에 무협소설을 읽을 때도 ‘백의검객(白衣劍客)’이란 글자가 나오면 왕우의
얼굴이 떠오를 정도였다. 왕우의 검술 영화는 <외팔이 씨리즈>가 워낙 유명하지
만, 이 외에도 <대자객(大刺客)>, <종횡천하(縱橫天下)>등도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다.
<대자객>은 춘추전국시대의 자객인 섭정의 이야기를 영화화 한 것으로, 암살에
실패하고 처참하게 죽은 왕우의 시신을 저잣거리에 놓았더니 왕우의 누나가 그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하다가 자살하는 마지막 장면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종횡천하>는 1973년 중학교 1학년 때 본 영화인데, 여인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러브스토리와 왕우의 매력이 결합하여 강한 인상을 준 작품이었다. 하지만 몇 년
전에 비디오로 다시 보니 역시나 싸움장면이 어설프고 진행이 너무 완만해서 조
금 답답한 느낌을 받았다.
9. 십삼인의 무사
이 영화는 ‘강대위(姜大衛)’주연으로, 주인공의 비극적인 죽음 때문에 당시 많
은 무협영화팬들을 울렸던 걸작이다. 너무 오래되어 세세한 스토리는 잘 기억나
지 않으나, 작은 나라를 지키는 열세명의 무사와 그들 사이의 암투를 그린 작품
이다.
그 열 세명의 무사들은 왕의 양자들로, 그들이 단합하여 나라를 지키자 어느 장
군도 그 나라를 함락시킬 수 없다. 결국 그 장군은 금은보화를 사용하여 열세명
의 무사들 중 몇 명을 매수하고, 매수에 넘어간 그들은 십삼인의 무사들 중 다른
몇 명을 제거한다.
강대위는 그들 중 제일 막내무사이나 무공은 제일 강하고, 왕의 신임 또한 가장
두터웠다. 그는 배반자들의 정체를 밝혀내나 여인을 구하려다 그들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하고, 나중에 진실을 알아차린 왕은 배반자들을 처형한다.
기억나는 장면은 오체분시(五體分屍)형을 당하는 장면인데, 사람의 양 팔과 양
다리를 네 마리의 말에 각기 따로 묶고 팔과 다리의 관절 사이를 칼로 자른 다음
말들을 움직여서 사람을 처형하는 끔찍한 것이었다.
이 영화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 구조와 강대위의 개인적인 매력, 그리고 그의 비
극적인 죽음이 잘 어우러진 좋은 작품이다.
10. 생사결(生死決)
이 영화는 비교적 최근 것이라 보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일본 최고의 무사가 일본 무술의 우수함을 자랑하려고 중원 무림에 도전장을 내
밀고, 중원 무림의 최고수와 자웅을 겨룬다는 내용인데, 1980년대에 나온 검술
영화중에서는 가장 잘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일본 무사 역에 서소강(徐小强), 중국제일고수 역에 유송인(劉松仁). 그리고 닌
자 역에 고웅(高雄)이며, 감독은 정소동(程小東)이다.
스토리는 다분히 공상적이지만, 내용전개나 격투장면은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처
음에 소림사에서 장문인과 대화하던 유송인이 갑작스런 닌자들의 습격을 받고 앉
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밖으로 날아가는 장면이라던지, 닌자들의 특이한 술법, 중
원제일장주(中原第一莊主)의 딸인 여장남자의 등장은 상당히 참신하다.
물론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일본무사로 분한 서소강의 열연이다. 서소강은 이 영화
에서 제법 여러번 옷을 갈아 입는데, 하나같이 멋있고 강렬해서 사무라이 복장이
원래 저렇게 멋있나하는 감탄을 할 정도였다. 특히 서소강과 유송인의 바닷가 절
벽에서 싸움신은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답게 화려하면서도 자극적이어서 보는 이
의 시선을 송두리째 빼앗고 만다.
이 영화 이후에 서소강 나오는 영화를 많이 구해다녔는데, 한참 후에 ‘촉산(蜀
山)’에서 단역으로 잠깐 출연한 것외에는 별다른 작품을 볼 수 없어 아쉬운 입
맛을 다시기도 했다.
위에 열거한 작품들 외에도 영웅탑(英雄塔)을 소재로 벌어지는 <무림천하(武林天
下)>,
초류향을 연상케 하는 '전붕'주연의 멋진 영화 <비취호리(翡翠狐狸)>,
음모가 난무하는 강호의 세계를 그럴 듯하게 그린 <풍령중적도성(風翎中的刀聲)
>,
송나라의 충신가문인 양가(楊家)의 열세명 과부들이 서하(西夏)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감동적인 이야기인 <십사인(十四人)의 여걸(女傑)> 등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명화들일 것이다.
이 영화들을 지금 다시 보면 싸움 장면이 조금 어설프고 유치할지 몰라도 한 자
루 칼을 의지하며 험난한 강호의 풍운(風雲)을 헤쳐나가는 무인(武人)들의 삶을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오래된 비디오가게를 들어선다. 그리고는 다시
실망과 희망이 뒤섞인 묘한 한숨을 내쉬며 가게를 나오는 것이다. 이 작품들을
아직도 찾지 못했다는 서운함과, 그래서 이 작품을 다시 보고 실망하는 일이 벌
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야릇한 흡족함을 가슴에 안고서...
용대운(csr777@hitel.net)
첫댓글 용노사께서 이런 글도 쓰신적이 있군요....
저도 예전에 저 글을 보고 꼭 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아직도 다 못봤네요
본게 없네요 --;; 찿아서 함 바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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