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합회 서장(간화선 특강)
제1강 - 4부(2012.10.15.)
大慧禪師行狀. 曾侍郎問書附.
二十六年十月에 詔移梅陽이라가 不久에 復其形服하고
放還이러니 十一月에 詔住阿育王寺하다 二十八年에 降旨하야
令師로 再住徑山寺하야 大弘圓悟宗旨할새
道法之盛이 冠于當世하야 衆至二千餘人이라
辛巳春에 退居明月堂이러니 明年壬午(高宗三十二年)에
上이 賜號曰大慧禪師라하다
孝宗隆興元年癸未에 仍居明月堂이러니 一夕은 衆見一星이
落於寺西에 流光이 赫然이라 師가 尋示徵疾이라가
八月九日에 謂衆曰吾가 翌日殆行이라하더니
是夕五鼓에 手書遺表하고 幷囑後事한대 有僧了賢이 請偈어늘
師乃大書曰 生也祗麽요 死也祗麽어늘 有偈無偈에
是甚麽熟고하시고 怡然而逝하니 世壽는 七十有五요
坐夏는 五十有八이라
15년 귀양살이 하고
二十六年十月에 詔移梅陽(조이매양)이라가, 조칙으로,
정치적인 상황이 바뀌어졌으니까요. 또 그런 음모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런 것도 백일하에 다 드러났고요. 그래서 조칙으로써 매양에다가 옮겼습니다.
梅陽이라는 땅에 옮겼다.
不久(불구)에, 오래지 아니함에
復其形服(복기형복)하고, 그 形服을 회복했어요.
다시 가사도 주고 말하자면 도첩도 다시주고, 이렇게 해서
放還(방환)이러니, 돌아오게 됐다. 면해서 돌아오게 됐다.
十一月에 詔住阿育王寺(조주아육왕사)하다.
조칙으로, 임금의 명령으로 阿育王寺에 머물게 한다. 그렇습니다. 아육왕사 주지가 됐어요. 얼마 전에도 아육왕사에 갔다 왔는데요. 갈 때마다 참 대혜스님 생각이 나고, 또 한때는 경산사도 갔었어요. 경산사도 한국에서 그렇게 멀지 아니한 곳에 대혜선사가 사시던 경산사가 있습니다. 아육왕사에, 임금이 거기에서 주지하라고 해서, 가서
二十八年에 降旨(강지)하야, 28년에 降旨.
말하자면 임금의 교지가 내려서
令師로 再住徑山寺(영사재주경산사)하야,
경산사에 재차 거기 가서 머물게 했다. 모두 멀리 떨어지지 아니한 곳입니다. 경산사ㆍ아육왕사ㆍ천광사. 그러면서
大弘圓悟宗旨(대홍원오종지)할새.
원오 극근선사의 종지를 크게 드날렸을세.
道法之盛(도법지성)이 冠于當世(관우당세)하야,
當世에 으뜸이었다. 冠. 이것 뭡니까? 머리에 쓰는 관입니다.
“제일이라.” 하는 그런 뜻인데 당시에 제일가는 법석이 이루어졌었다.
衆至二千餘人(중지이천여인)이라. 대중들이 2000여명이나 모였어요.
하~ 참 그쯤 되면 할 만하지요? 2000명이라는 대중이 모여가지고 그저 스님만 바라보고, 스님 법문만 그저 귀담아 들으려고 하고 열심히 서로서로 정진하려고 했다고 하는 그런 총림의 분위기를 한번 그려보세요. 얼마나 근사한가?
辛巳春(신사춘)에, 신사 년 봄에
退居明月堂(퇴거명월당)이러니, 명월당에 물러서 계시게 됐는데
明年壬午(명년임오)[高宗三十二年]에, 다음해 임오에
上이 賜號曰大慧禪師(사호왈대혜선사)라하다.
임금이 호를 내렸는데 大慧禪師라고 이렇게 호를 내렸다.
孝宗隆興元年癸未(효종융흥원년계미)에
仍居明月堂(잉거명월당)이러니, 명월당에 살게 됐는데
一夕(일석)은, 하룻날 저녁에
衆見一星(중견일성)이, 대중들이 보니 별 하나가
落於寺西(낙어사서)에, 경산사 서쪽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어요.
流光이 赫然(류광혁연)이라.
말하자면 흐르는 빛이 아주 확연히 빛나더라.
師가 尋示徵疾(심시위질)이라가, 곧, 尋 = 곧 바로 徵疾 = 조그마한 병을, 아프다고 하는 것을 보이다가
八月九日에 謂衆曰(위중왈), 대중에게 말하기를
吾가 翌日殆行(오익일태행)이라하더니,
내가 내일 비로소 가겠다. 라고 했다. 그리고
是夕五鼓(시석오고)에, 저녁 五鼓가 되니 = 5경이지요?
手書遺表(수서유표)하고, 손수 遺表를 썼다.
이것은 천자의 부름을 받고, 천자의 보호를 받고, 또 천자가 그냥 2000명 대중이 먹을 것, 생활할 것 막 보내줬잖아요. 천자가 귀양살이에서 풀어나게 했고, 그리고 천자가 경산사에 머물게 했고, 그런 정도의 위치였습니다. 그러니까 遺表라고 하는 말은 천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입니다. 손수 남기는 편지를, 마지막 남기는 글을 遺라고 하잖아요. 遺表를 쓰고
幷囑後事(병촉후사)한대, 아울러 後事. 뒷사람들에게 이렇게ㆍ이렇게 공부하고, 사찰을 어떻게 관리해라 하는 그런 부촉하는데,
有僧了賢(유승료현)이, 요현이라는 어떤 스님이
請偈(청게)어늘, 게송을 청하니, 곧 열반에 드시는데 스님이 가만히 있으니까 “臨終偈하나 남기십시오.” 사람 지금 죽을 판인데 임종게 남기라고 다그치는 겁니다. 절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혜스님이 이랬네요. 하도 귀찮게 다그치니까
師乃大書曰(사내대서왈),
크게 썼다는 소리가, 신경질 났습니다. 사께서 크게 써서 말하기를
生也祗麽(생야지마)요, 사는 것도 그냥 그렇고 = 祗麽 = 그냥 이 대로이고
死也祗麽(사야지마)어늘, 죽는 것도 또한 그냥 그렇다. 祗麽라고 하는 말은 그렇습니다. 그냥 그 대로ㆍ이 대로, 현재 이 대로. 어제 살아왔던 그 모습 그대로ㆍ작년에 살아왔던 그 모습 그대로. 현재도 그렇게ㆍ내일도 그냥 그렇게 살아요. 그런데
有偈無偈(유게무게)에 是甚麽熱(시삼마열)고하시고?
임종게가 있든, 임종게가 없든 뭘 그렇게 열을 내느냐? 뭘 그렇게 안달을 하느냐? 熱자가 그런 뜻입니다.
이 보십시오. 신경질 나서 그냥 썼습니다. 이것은 임종게가 아닙니다.
요현이라는 사람이 하도 다그치니까 냅다 그냥 써 준 겁니다.
生也祗麽 死也祗麽 有偈無偈 是甚麽熱. 뭘 그렇게 다그치느냐?
熱자는 그런 뜻입니다. 고 하시고
怡然而逝(이연이서)하니, 편안히 열반에 드시니
世壽는 七十有五(세수70유오)요, 75세이고
坐夏는 五十有八(좌하50유8)이라. 58년간 안거를 했다.
上이 痛悼不已하시고 賜諡曰普覺이라하며 塔曰普光이라하다
今擧生號死諡云大慧普覺者는 揀南岳讓和尙이 亦號大慧故也라
有語錄八十卷이 隨大藏流行하고 爲法嗣者가 九十四人也러라
上이 痛悼不已(통도불이)하시고, 천자가 슬피 울면서, 마지않으시고
賜諡曰普覺(사시왈보각)이라하며, 賜諡 = 시호를 내리기를 普覺이라고,
大慧普覺禪師書. 그러지요.
塔曰普光(탑왈보광)이라하다. 탑 이름은 또 普光이라고, 보광지탑이라고 하더라. 이렇게 했다는 것이지요.
今擧生號死諡云大慧普覺者(금거생호사익운대혜보각자)는,
지금은 살았을 때 호하고, 돌아가신 이후 시호하고 합해가지고 대혜보각이라고 한 것은
揀南岳讓和尙이 亦號大慧故也(간남악양화상역호대혜고야)라.
남악양 화상의 호가 또한 대혜인 까닭에 그것을 가린 것이다.
有語錄八十卷(유어록80권)이, 80권 어록이 있습니다.
隨大藏流行(수대장류행)하고,
대장경을 따라서 유행하고, 대장경 속에 들어있습니다.
爲法嗣者(위법사자)가, 법을 이은 사람 = 法嗣者.
九十四人也(94인야)러라. 법을 이은 사람이 94인이나 됐다. 깨달아서 법을 이은 사람이 94인이나 됐다. 이런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禪에 대한 내용도 읽고, 禪門에 대한 특색도 좀 맛을 봤고, 또는 대혜스님의 일생. 어떻게 사셨나 하는 것을 간략하지만 소개가 됐습니다. 행장으로써 이런 내용을 대혜스님에 대해서 사전 상식으로 알 필요가 있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大慧普覺禪師書 上卷.
이것이 원래 상하권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도 편집을 하면서 상하로 나눴습니다. 上卷ㆍ下卷. 대개 대혜스님께서 답장하는 내용. 선지식이 답장하는 내용이 들을만한 것이 있고, 우리가 배울 것이 있지요. 그런데 처사들이, 거사들이 질문하는 내용이 뭐 그렇게 여기다 올릴만하겠습니까? 그런데 대표로 한 세편, 네 편쯤 되는 그 질문하는 편지가 있습니다. 많은 답장 속에서 질문하는 편지가 여기 있는데요. 세속인으로써 불법에 귀의해서 한번 제대로 공부해 보고자 하는 사람의 그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보면
答 曾侍郎 天遊 問書附
開가 頃在長沙하야 得圓悟老師書호니 稱公호대
晩歲相從이나 所得이 甚是奇偉라하야늘 念之再三이
今八年矣이로대 常恨未獲親聞緖餘하야 惟切景仰하노이다.
答 曾侍郎 天遊 問書附(답증시랑천유문서부)
증시랑에게 답하는 내용이 저~ 밑에까지 있는데, 天遊라고 하는 말은 이 사람 이름입니다. 侍郎이라고 하는 말은 벼슬 이름이고요. 曾은 성이고 그렇습니다. 이름이 또 開(개)입니다. 선문에 開자가 있는데 曾開 章(장) 그래요. 증시랑하고 주고받은 편지내용을 한 마디로 하면 曾開 章. 그랬습니다. 첫 글자 曾하고 합해가지고요.
曾 = 성ㆍ侍郎 = 벼슬ㆍ天遊 = 이름. 問書附라고 하는 말이 그 말입니다. “묻는 편지도 여기다가 붙여 놨다ㆍ묻는 편지도 참고로 이렇게 붙여 놨다.” 저~ 뒤에 가면 이 참정 問書附가 있습니다. 이 참정이라는 사람이 묻는 편지도 거기 포함시킨 그런 것이 몇 장 있습니다. 석 장인가 넉 장이 있습니다.
開-頃在長沙(개경재장사)하야, 이것은 증시랑이 묻는 편지입니다.
대혜스님 편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開가 = 저가, 지난날 = 頃. 장사라고 하는 땅에 있으면서 得圓悟老師書(득원오노사서)호니, 원오노사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 속에
稱公(칭공)호대, 공을 칭찬하기를 = 대혜스님을 칭찬하기를
晩歲相從(만세상종)이나, 늦은 나이에 서로 만났지만, -36세엔가 만났지요. 늦게 만난 셈이지요. 출가를 열여섯 살엔가 했는데 원오스님하고 만나기를 30대 중반에 만났으니까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所得이 甚是奇偉(소득심시기위)라하야늘, 그 사람이 공부에 대해서 얻은 바가 것이 매우 기특하고 위대하다ㆍ대단한 공부다. 이런 소개를 했더라는 것입니다. 증시랑에게다가 원오스님이, 당신 제자를 그렇게 칭찬했는데, 그래서 한번 만나뵈야지ㆍ만나뵈야지 하면서
念之再三(념지재삼)이, 생각하는 것이 두 번 생각하고ㆍ세 번 생각하고,
再三이라는 말은 수시로 생각했다 이 말입니다.
수시로 생각한 것이 今八年矣(금8년의)이로대,
지금 그 편지를 받고 ‘스님 한 번 친견해야지’ 수시로 생각하는 것이 8년이나 됐습니다. 그러면서
常恨未獲親聞緖餘(상한미획친문서여)하야
惟切景仰(유절경앙)하노이다. 항상 한을 하고 있습니다.
親聞緖餘 = 친히 緖餘를 듣지 못한 것을 한을 하고 있습니다.
緖餘 = 꼬리 끝ㆍ나누는 말ㆍ치지래기ㆍ가르침. 스님의 종지를 거량하는 그런 아주 큰 법문은 감히 엄두도 못 내고, 다른 사람들 다 가르치고 남은 치지래기 같은 그런 가르침. 아주 겸손해서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것을 서여라고 그래요. 惟切景仰하노이다. 오직 간절히 우러러 보고 있습니다.
某自幼年으로 發心하야 參禮知識하야 扣聞此事러니
弱冠之後에 卽爲婚官所役의 用工夫不純하야 因循至今老矣로대
未有所聞하야 常自愧嘆하노이다. 然而立志發願은
實不在淺淺知見之間이라 以爲不悟則已어니와
悟則須直到古人親證處하야사 方爲大休歇之地일가하노이다.
此心은 雖未嘗一念退屈이나 自覺工夫終未純一하니
可謂志願大而力量小也로소이다.
某自幼年(모자유년)으로, 某 = 저가 幼年 = 어려서부터
發心(발심)하야, 발심해서
參禮知識(참례지식)하야, 선지식을 참례해서
扣問此事(구문차사)러니, 이 일에 대해서 묻고ㆍ듣고 해서
扣 = 묻는다. 問 = 듣는다. 묻기도 하고ㆍ듣기도 하고 그렇게 이해도 많이 했다. 그리고
弱冠之後(약관지후)에, 그러다가
卽爲婚宦(즉위혼환)의, 곧 婚宦. 혼인도 하고ㆍ벼슬살이도 하고, 가정도 꾸려야지 벼슬살이도 해야지 직장에도 나가야지 거기에
所役(소역)하야, 부리는 바가 되어서
用工夫不純(용공부불순)하야, 공부를 함이 不純했다.
“밤 되면 純一 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공부가 순일했다. 참 좋은 말인데요. 여기는 공부가 순일하지 못했다.
因循至今老矣(인순지금노의)로대, 因循 = 그럭저럭.
그럭저럭 벌써 늙음에 이르렀습니다.
未有所聞(미유소문)하야, 아직 스님의 법문을 들은바가 있지 못해서
常自愧歎(상자괴탄)하노이다. 항상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탄식만 합니다.
然而立志發願(연이입지발원)은, 그러나 뜻을 세우고 원을 발하는 것.
立志發願. 좋은 말입니다.
立志發願은 實不在淺淺知見之間(실부재천천지견지간)이라.
실로 얕고 얕은 知見사이에 있지 않습니다. “내 뜻은 크다.” 말입니다.
비록 스님의 법문은 못 들었지만 제 원력은 아주 큽니다.
以爲不悟則已(이위불오즉이)어니와, 깨닫지 못하면 그만두겠지만
悟則(오즉), 깨닫는다면
須直到(수직도), 바로 이른다.
古人親證處(고인친증처)하야사, 古人들이 친히 증득한 그곳.
옛 선지식들이 깨달은 바로 그 경지에 친히 이르러야
方爲大休歇之地(방위대휴헐지지)일까하노이다.
바야흐로, 비로소 크게 제가 쉴 곳을 삼을까 합니다. 크게 쉴 곳을 삼을까 해요. 그래 옛날 조사스님들이 깨달은 그런 경지에 제가 이르러야 저의 소원도 풀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此心(차심)은 雖末嘗一念退屈(수미상일념퇴굴)이나,
이 마음은, 이러한 마음은 비록 일찍이 一念도 退屈하지 아니해서,
一念도 거기에서 물러선 바가 없습니다. 아직도 그 꿈은 그대로다 이겁니다. 그러나
自覺工夫終未純一(자각공부종미순일)하니,
스스로 느끼는 것은, 공부가 마침내 순일하지 못해요. 여기 純一이 나오네요. 마침내 아직도 순일하지 못해요. 공부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 그러니
可謂志願大而力量小也(가위지원대이역량소야)로소이다.
가위 이것을 일러서 志願大而力量小. 이것은 옛 부터 있는 말입니다.
志願大而力量小 = 뜻과 원은 크나 역량은 작다. 이것은 이 사람만 쓰는 말이 아니라 옛사람들이 다 쓰는 소리지요. 그래서 可謂 그랬습니다.
可謂志願大而力量小也로소이다.
向者에 痛懇圓悟老師호니 老師示以法語六段하사대
其初는 直示此事하시고
後擧雲門趙州放下著 須彌山 兩則因緣하사 令下鈍工하사대
常自擧覺하라 久久하면 必有入處라하신 老婆心切이 如此언만은
其奈鈍滯太甚이릿가 今幸私家에 塵緣을 都畢하고
閑居無他事하니 政在痛自鞭策하야 以償初志언만은
第恨未得親炙 敎誨耳이로소이다.
一生敗闕을 己一一呈似호니 必能洞照此心하시리니
望委曲提警하소서 日用에 當如何做工夫하야사
庶幾不涉佗塗하고 徑與本地로 相契也리닛고 如此說話도
敗闕이 亦不少언만은 但方投誠이라 自難隱逃니 良可愍也라
至扣하노이다.
向自(향자)에 痛懇圓悟老師(통간원오노사)호니,
지난날 원오노사에게 통절히 간청했다. 그랬습니다. 아주 간절하게ㆍ간절하게 법문을 부탁하고 또 들었다. 그랬는데
老師가, 노사께서 = 원오노사께서
示以法語六段(시이법어육단)하사대, 法語六段 = 법어 여섯 가지. 이런 뜻입니다. 법어 여섯 가지를 보였다. 이 여섯 가지는 정확하게 무엇무엇 인지 증시랑만 알아요.
其初는 直示此事(기초직시차사)하시고,
그 처음에는 바로 이 일을 보이시고, 此事는 뭐지요? 本分事(본분사).
本分事입니다. 이 此事라는 말도 분분합니다. 본분사입니다.
선가에서는, 선불교에서는 此事하면 무조건 본분사입니다. 본분사의 정확한 뜻은 또 달리 말하면 “생사해탈” 이라고도 할 수 있고, “깨달음” 이라고도 할 수 있고 그렇습니다. 여기는 중생제도 아닙니다. 중생제도 하고는 관계없습니다. 여기서는 무조건 자기 깨달은 것을 본분사 라고 그래요.
본분사의 문제. 그것을 보이시고, 그것은 참선의 어떤 당위성이지요. 참선은 왜 하는가? 바로 “본분사를 위한 것이다ㆍ깨닫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말 할 수가 있습니다.
後擧雲門趙州放下着須彌山兩則因緣
(후거운문조주방하착수미산양칙인연)하사, 그랬습니다.
본분사이야기를 끝내고, 그 본분사를 제대로 해마치려면 “화두를 들어야 된다.” 이렇게 말하겠지요. 그래서 화두를 소개한 것입니다.
운문스님의 수미산과 조주스님의 방하착, 雲門趙州放下着須彌山. 그랬습니다.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와서 물었어요.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아니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放下着하라. 내려놓아라. 한 물건도 가져 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내려놓으란 말입니까? 내려놓기 싫으면 가지고 가거라. 그랬습니다. 이 조주라고 하는 선지식이 보기에는 그 사람이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아니했다고 하지만, 너무나도 많은 짐을 지고 있습니다. 온갖 사량 분별과 번뇌 망상의 짐을 꽉 지고 있습니다. 뭐 손에 아무것도 안 들었다고 그것이 안 가져온 것이 됩니까? 말이 됩니까? 禪의 차원. 아니 그냥 일반 불교의 차원에서도 그런 것은 다 짐작하고 서로 아는 내용 아닙니까? 그 다음에
須彌山이라고 하는 것은, 수미산. 이것이 다 공안이고, 화둔데요.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아니했을 때 어떻습니까? 허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랬습니다. 수미산이니라. 수미산이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산이지요.
수미산처럼 많다.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아니했는데 무슨 허물이 수미산처럼 많으냐? 이 또한 하나의 문제입니다. 선불교에서는 이런 것들이 因緣이라고 그래요. 일반교학에서 인연이라는 말하고는 전혀 다르지요. 전혀 다른 것은 아닙니다만, 그 용도는 아주 다릅니다. 이 내용ㆍ이 이야기ㆍ이 줄거리를 인연이라고 그래요. 선불교의 표현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교학적인 의미에서나 이것이 벌써 다르잖아요. 수미산이라고 하는 인연ㆍ방하착이라고 하는 그 인연. 억지로 갖다 붙이면 물론 같습니다만, 아무튼 이런 것을, 화두 하나를 인연이다. 이렇게 표현한다고 그랬습니다.
令下鈍工(령하둔공)하사대, 그런 것을 소개를 받았어요.
원오스님한테 소개를 받고 鈍工 = 둔한공부. 둔한공부를 하게했다 = 令下.
내리게 했다는 것은 하게했다 이 말입니다. 자기 자신을 겸손해서 鈍工이라고하는 것입니다. 둔한공부를 하게했다.
常自擧覺(상자거각)하라. 항상 스스로 擧覺하라.
擧覺. 화두 드는 것을 거각이라 그랬습니다. 화두를 제의하는 것ㆍ화두를 챙기는 것. 그러니까 어째서 수미산이라고 했는가? 어째서 방하착이라고 했는가? ‘방하착ㆍ방하착...’ 이렇게 그 의심을 상기시키는 일. 화두 드는 일. 그것가지고...
久久(구구)하면, 오래하면
必有入處(필유입처)라하신, 반드시 들어갈 곳이 있다. 라고 하신
老婆心切(노파심절)이, 노파심의 그 간절함이
如此(여차)언만은, 이와 같았는데
其奈鈍滯太甚(기내둔체태심)이릿가? 둔하고 꽉 막힌 것이 너무 심함을 어찌할까? 내 자신의 공부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今幸私家(금행사가)에 塵緣을 都畢(진연도필)하고,
지금 사사로운 우리 집의 나의 일에 다행히, 지금 다행히 私家에 온갖 인연들. 세상 인연들을 都畢 = 다 마쳐버리고
閑居無他事(한거무타사)하니,
한가하게 居해서, 아무 다른 일이 없습니다.
政在痛自鞭策(정재통자편책)하야,
결정코 鞭策. 아주 채찍질. 스스로 채찍질을 아주 심하게 해서 = 痛自 = 자기 자신을 鞭策을 아주 심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以償初志(이상초지)언만은, 初志. 처음 뜻을 갚으려고 한다.
처음에 志願大而力量小. 뜻과 원은 컸다면 그래서
古人親證處라. 옛날 조사스님들이 깨달은 그 경지에 나도 반드시 이르고야 말겠다 하는 그것이 初志입니다. 그 뜻에 보답하려고 하건만
第恨未得親炙敎誨耳(제한미득친자교회이)로소이다.
다만, 다만 第자입니다. 다만 한탄하는 것은, 한 하는 것은 아직도 親炙敎誨. 바로 친히 가르쳐 주는 것. 친히 가르쳐 주는 것을 얻지 못한 것을 한탄할 뿐입니다. 한스러워합니다.
一生敗闕(일생패궐)을 已一一呈似(이일일정사)호니,
일생동안 허물을, 일생동안 살아온 인생사.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지요.
직장생활 했다ㆍ결혼했다. 이런저런 간단하긴 하지만, 아무튼 시간을 거슬러 가면 상당한 지위입니다. 장관급이에요. 지금 장관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옛날 중국천하. 중국천하에서 장관급이라면 정말 엄청난 벼슬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一生敗闕을, 자기가 살아온 것을 낱낱이 들어 바쳐서
必能洞照此心(필능통조차심)하시리니,
반드시 능히 내 이 마음을, 이 공부에 대한 간절한 이 마음을 훤출히 다 비춰볼 것입니다.
望委曲提警(망위곡제경)하소서. 바라노니 委曲. 자세히 이끌어서 좀 경책해 주십시오.
日用에 當如何做工夫(당여하주공부)하야사,
일상에 마땅히 어떻게 공부를 지어야 됩니까? 공부를 어떻게 해야
庶機不涉他塗(서기불섭타도)하고, 庶機他塗에 들어가지 않고, 전혀 타도에 들어가지 않고, 庶幾는 이런 뜻입니다.
徑與本地(경여본지)로 相契也(상계야)리닛고?
바로 本地로부터 = 본지풍광 = 본래의 면목 = 본분사를 바로 계합할 수 있겠습니까? 서로 계합할 수 있겠습니까? 本分事를 바로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本分事 = 본지풍광 = 본래면목 = 本地. 이것 전부 같은 뜻입니다.
서로 계합할 수 있겠습니까?
如此說話(여차설화)도, 이와 같은 이야기도
敗闕(패궐)이 亦不少(역불소)언만은, 허물이 또한 적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사실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但方投誠(단방투성)이라. 다만 비로소 제 성의를 던지는 것입니다.
성의를 다 하는 일입니다.
自難隱逃(자난은도)니, 제가 스님의 제자가 되고 싶어서, 제 살아온 일을 소개 하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말이지요.
良可愍也(양가민야)라, 진실로 가히 제가 생각해 봐도 좀 불쌍한 일입니다. 측은한 일입니다.
至扣(지구)하노이다. 지극히 묻습니다. 이렇게 했습니다.
이것이 묻는 편지입니다.
세속에 살면서 진정으로 선불교. 이 본분사. 깨달음에 대해서 그 당시 선불교가 정말 천하를 뒤 덮을 당시, 송나라 때 천하 모든 지성인들은 불교를 모르면, 특히 선불교, 거기서도 또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하면 큰 소리 치지 못했던 그런 사회 환경을 생각해 볼 때, 그런 것을 머리로 가만히 생각해 보고, 이 사람이 대혜스님께 이러한 편지를 보낸 것.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참 좋은 세월이었습니다.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너무 좋은 세월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도 그 당시 살았겠지요만, 참 좋은 세월이었다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불교의 탄생과 종류. 우리의 불교 2000 수100년의 그런 역사 속에서의 걸어온 현상들을 대강 짚어보았고, 전래되어오는 실정. 그리고 대혜스님의 법맥. 역사 적으로 서장이라는 책은 무엇이며, 선불교의 진정한 정신은 무엇이인가? 그것은 선의 8대 정신으로 정의할 수가 있다. 이러한 것을 서론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선문과 경전의 특색. 또 선지와 교지의 특색. 이런 것들도 좀 살펴보았고요. 무엇보다도 대혜스님의 행장을 우리가 자세하게 봄으로 해서 대혜스님의 머리에 연꽃이 올라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증시랑이 묻는 편지를 통해서 그 당시 사대부들의 그야말로 “내 노라” 하는 사대부들의 불교에 대한 신심이 어느 정도였는가? 이 한 장만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을 할 수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것은 옛날이야기지만 부러움을 금치 못합니다.
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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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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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志發願은 實不在淺淺知見之間이라..입지발원은 실로 얕고 얕은 知見사이에 있지 않습니다. (비록 스님의 법문은 못 들었지만 제 원력은 아주 큽니다) 釋대원성 님! 수고 하셨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_()()()_ 侍郞이 벼슬이름 인지도 모르고...![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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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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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하나하나 배워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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