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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 수목원
지식위주의 암기교육보다 탐구와 사고력을 기르는 체험교육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실천은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 뉴질랜드에선 물의 특징을 조사하는 방법으로 하루살이 같은 물벌레가 있으면 수질은 매우 양호한 상태이고, 거머리나 다슬기 같은 생물이 있으면 보통 수준이며, 파리나 모기의 애벌레, 물 지렁이가 발견되면 더러운 물이라는 사실을 습득시킨다고 한다.
과학탐구정신을 길러주고 물, 공기, 땅 같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릴 때부터 갖도록 하는 체험교육이다. 또한 인근 산에 나무를 심고 자녀들의 이름이 붙은 나무에 집에서 만든 퇴비를 주는 등 애정도 쏟는다. 자연스럽게 환경 친화 의식을 심어주는 교육이 학교와 사회, 가정에서 삼위일체가 되어 지도한다.
순수한 자연의 나라라고 부르는 뉴질랜드에 와보니 산은 푸르고 깨끗한 강은 옥색이나 비취색깔을 띠었으며 감탄사가 날 정도로 보이는 곳마다 깨끗한 청정지역이었다.
깨끗한 환경은 최대의 외화획득으로도 보답을 하는 것 같다. 뉴질랜드 북 섬에서 대표할 수 있는 최상의 삼림욕장으로 알려진 레드우드 수목원을 찾아갔다. 이 숲은 로토루아 지방의회가 관리하며 쭉쭉 곧게 뻗은 나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시원했다. 수목원 입구에 발을 옮기는 순간부터 상쾌해지며 머리가 맑아졌다. 영화 ‘쥐라기 공원’과 ‘반지의 제왕’에 촬영장소이기도 하다. 입구에서부터 하늘을 찌를 듯 하는 키가 큰 나무들이 우리 일행을 말없이 지켜보니 우리는 위축되기도 했다.
이곳의 삼림욕장에는 레드우드라는 나무가 주종을 이루었다. 레드우드는 원산지가 북아메리카(미국)라고 하며 크기는 50m에서 100m 정도 자라며 낙우송과(落羽松科), 소나무 목, 측백나무 과의 식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라고 한다. 레드우두는 붉은색을 띠는 나무로 목재는 단단하고 재질이 좋아 가구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또한, 불에 잘 타지도 않고 잘 썩지도 않는 최고의 장점을 가졌다. 레드우드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뉴질랜드 병사들을 추모하는 의미로 미국 캘리포니아 산 나무를 심었는데 이 나무들을 육종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처럼 울창한 수목원이 되었다.
레드우드 수목원에 들어가니 여러 코스의 산책길이 있었다. 소요시간은 짧게는 약 40분에서 2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코스였다. 산책길을 걷다 보면 나뭇잎이 땅에 떨어져 양탄자를 깔아놓은 것처럼 푹신푹신했다.
산책길을 따라가면 거목의 레드우드사이에 고사릿과 식물들이 많이 보였다. 고사리나무는 고목처럼 큰 나무였는데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고사리와는 달랐다. 그리고 고사리 잎을 그린 조형물들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이곳의 고사리는 뉴질랜드의 상징물처럼 신성하게 여기기도 했다.
원주민들은 마오리 족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조상 대대로 이 땅을 지키며 자연과 함께 살아왔다. 그들은 말은 있어도 글이 없는 세상을 살았으며 미래에 대한 욕심 없이 그날그날을 만족하며 살았다. 풍우한서(風雨寒暑)를 피할 장소를 짓는 데 사용할 재료가 고사리였다. 고사리는 여러 해 자라면서 속은 비어있고 가장자리에 섬유질로 되어있는 커다란 목질이어서 훌륭한 건축 재료로 이용하였기 때문에 대대로 고사리를 신성하게 생각해온 것 같다.
지금은 세계가 한 지붕이어서 지구촌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뉴질랜드에서도 마오리족의 얼굴 모양을 보면 코와 피부색도 조금씩 달라 보이고 마치 동양이나 서양 사람처럼 여러 민족처럼 보였다. 어느 곳이나 단일민족은 보기 힘들어지고 다민족 시대가 된 것 같다.
여행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서 참 좋다. 뉴질랜드의 청정한 환경에서 더욱 청정지역을 보존하기 위해 공항에서부터 철저한 위생관리를 하는 것을 보았다. 환경을 오염시킨 생산 공장도 없고, 더욱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는 철저하게 단속한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세제류 까지도 사용하지 말도록 철저하게 홍보한다. 그리고 과일이나 채소류도 휴대하여 입국할 수 없다. 만약 몰래 가져오다 발각되면 많은 벌금을 부과한다.
뉴질랜드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산품에는 어떠한 농약도 살포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어느 곳에든지 식품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유기농식품천국이다. 뉴질랜드가 ‘낙원’이라 불리는 것은 정부와 기업, 그리고 시민들이 삼위일체가 되어 노력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도 산과 강이 많다. 무려 국토의 약 70%가 산이다. 그 넓은 산지에 속성수이면서도 목질이 좋은 경제림으로 개종한다면, 훗날 우리 후손에게 사랑받는 국토로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목질 좋은 나무를 많이 심어놓으면 풍수해 조절 뿐 아니라 산소를 내뿜는 산소공장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처럼 황사나 미세먼지가 많은 곳에선 특히 수목이 울창해야 한다. 한번 심어놓은 좋은 나무는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적인 가치가 크다. 청정한 지역이 되면 국민들은 스스로 면역성도 길러지고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어 행복지수와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다.
아크로돔 농장
인천에서 약 12시간을 비행하여 뉴질랜드 북 섬에 있는 오클랜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의 규모 면에선 인천공항에 비교할 수 없는 작은 규모였지만 관광객의 휴대품 검사에서는 까다롭기 말할 수 없었다. 특히 농산품 중에서도 과일류는 물론 우리가 마시는 물조차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 의심이가는 관광객에는 가방 속을 전수 검사하여 농산물의 병충해를 미리 예방하는 것 같았다.
깨끗한 푸른 산과 드넓은 목장을 연상하는 뉴질랜드는 면적이 271,000km² 이기에 한국보다 약 3배나 크다. 드넓은 면적에 인구는 부산보다 적은 수가 살아가고 있기에 고속도로나 시가지에서도 관광하는 사람을 제외하곤 사람 보기가 쉽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어느 곳을 가거나 높은 산에 하얀 눈이 덮여있는 만년설이었다. 산과 산 사이에 옥색이나 비취색을 띠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감탄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버스를 타고 가도 가도 끝없이 보이는 것은 푸른 잔디밭과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와 양의 목장이었다. 지나다 보면 가끔씩 말을 사육하는 곳도 보였다. 많은 골프장도 보였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모두 파란 들판으로 골퍼들이 찾아와 주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여행도중 날씨의 변화가 많았다. 뉴질랜드는 일 년에 사계절이 있고 하루에도 사계절처럼 날씨변화가 있었다. 아침엔 맑은 날씨였으나 차를 타고 몇 시간 달리다보면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고 비가 오는 경우도 있었다. 푸른 초지 위에 많은 양들은 날씨가 좋을 땐 모두 머리를 땅에 데고 풀을 뜯고 있었다. 하지만 비가 내릴 땐 풀을 먹는 것도 중지하고 비를 온통 온몸으로 맞으며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양들에겐 고통의 시간이었다.
이곳은 양과 소 그리고 알카프와 말까지도 축사는 없다. 비가 오거나, 춥거나 강렬한 햇빛이 비쳐도 그대로 적응해야만 했다. 오히려 면역력도 키우고 육질 좋은 고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해가 비취고 비가 개면 모두가 머리를 땅에 대고 풀을 뜯는다. 애써 뜯어먹는 풀은 좋은 양젖을 생산할 것이고, 질 좋은 양모와 맛있는 고기를 생산할 것을 생각하면 양은 사람만을 위해 태어난 것 같다.
뉴질랜드를 생각하면 나는 양을 떠올려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뉴질랜드의 양모를 이용한 침구류가 있어서이다. 양모는 이불뿐만 아니라 따뜻한 보온성과 광택 때문에 과거부터 천연섬유로 인기가 많다. 내 사는 아파트에서도 장롱을 지키든 두꺼운 솜이불도 아낌없이 버릴 때가 있다. 화학섬유에 싫증 난 사람이 이제는 점차 천연섬유이며 보온성이 뛰어난 양모에 에 눈을 돌리고 있어 인기는 날로 높아질 것이다.
뉴질랜드의 인구가 약 430만 명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양들의 수는 대략 6,000만 마리라니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양이 사는 양의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엔 만년설이 보이는 국립공원이 많고 이름 모를 새들도 많았다. 많은 들짐승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사람주위에서 서성이었다. 날짐승도 자연과 함께 사람들의 친근한 가족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과 자연의 친화가 되는 것은 마음을 안정하게 할 것 같았다.
뉴질랜드의 전형적인 농장 모습을 재현한 곳이라는 아그로돔 농장을 찾아 갔다. 그 곳에는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을 통하여 보았던 양털 깎는 모습도 시범을 보였다. 농장에는 매일 찾아오는 관광객을 위해 양털 깎기 쇼와 양젖 짜기 쇼를 주기적으로 보여주었다.
양들의 쇼에 활동하는 양의 종류는 19종이고, 이곳에서도 많은 양이 한 마리의 양몰이 개에 순응하는 양이었다. 역시 양은 말 그대로 순한 양 이었다. 농장 한편에 마련된 넓은 초지에는 많은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양몰이 개가 나타나서 목장주인의 뜻에 따라 양들을 모는 것을 보았다.
순한 양이라지만 비가 올 때 양들의 모습은 모두 떨어져 홀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는 듯 했다. 추운 겨울엔 양들이 함께 붙어있으면 따뜻해서 좋을 것 같은데 양들은 각각 홀로 있다고 한다. 하지만 더운 여름이 되면 모두 함께 모여 있다고 하니 내 생각으론 순한 양인지, 고집이 세고 성질 고약한 양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양털을 깎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40초 정도 소요되었다. 초가을 날씨라 털을 깎이었어도 몸이 홀가분해서인지 깡충거리는 모습이 가벼워 보였다. 젖을 짜는 양들도 부푼 젖을 짜고 나면 한편 가쁜 한 모습이었다. 어쩌면 양들도 사람과 공생 공영하며 살아가도록 숙명적인 것 같다.
와이토모 석회동굴
불과 일 세기 전만 해도 전기를 보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책이라도 보려면 석유를 이용한 등잔불이라도 켤 수 있다면 다행이었으나 그마저도 어려운 시절엔 반딧불이를 이용한 경우도 있었다하니 이를 두고 ‘형설의 공’이라는 고사성어도 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6.25 전쟁을 맞았다. 가고 싶던 학교는 기한도 없이 갈 수 없게 되었으며 보이는 것은 가족을 잃고 허덕이는 사람과, 해어진 옷을 입고 정신없이 허둥대는 피난민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해가지고 사방이 컴컴해지면 장난감도 없고 놀이기구마저 없던 시절이라 숲속 주위에서 반짝이는 반딧불이를 손으로 잽싸게 덮치며 놀았던 기억도 있다. 달도 없어 오징어먹물같이 어두운 밤이 되면 온 하늘엔 반짝이며 빛나는 것은 별이요, 주위에서 반짝이는 것은 반딧불이었다. 지금은 환경이 파괴되어 우리 주위에서 사라진지 오래된 반딧불이를 뉴질랜드 와이토모 석회동굴에서 감명 깊게 보았다.
외이토모는 마오리어로서 ‘구멍을 따라 흐르는 물’을 의미하는 말이다. 와이토모의 석회동굴은 뉴질랜드 북 섬에 있는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동굴로 들어가 보면 밑에서 강물처럼 흐르는 물길도 감동을 주었지만, 석회동굴의 천정에서 반짝이는 반딧불이를 보면 밤하늘에 촘촘히 떠 있는 수많은 은하수를 보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석회동굴엔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말없이 참고 견디며 자라난 종유석과 종유석에서 어쩌다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맞으며 자란 여러 모양의 석순을 보게 된다. 동굴 위쪽에서 거꾸로 매달리며 자라는 종유석이 몇 천 년 또는 몇 천만 년 이상을 불평도 없이 묵묵히 한자리에서만 미동도 없이 기다리다가 아주 조금씩 자란다고 하니 그만큼 종유석이 커지는 것은 유구한 세월이 흘렀음을 나타낸 것이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에 미량의 석회성분을 간직하며 밑에서 위로자라는 석순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일까? 그리고 종유석과 석순이 계속 자라면 극적으로 맞나 서로 이어져서 기둥처럼 되는 아름다운 석주는 살아있는 조각물이었다.
석회동굴을 찾아갈 땐 안내원으로부터 비가 온 뒤에 찾아가면 동굴 안에 물이 차서 답사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일행은 세계 8대 불가사의한 석회동굴을 보지 못할까 봐 초조하기도 했지만 다행이 답사하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대자연의 고요한 품속에 우리는 불청객으로 슬며시 들어온 기분이었다. 자연을 파괴하거나 동굴에 사는 생물에 지장을 주는 소리나 흡연 등은 스스로 삼가 하였다. 일행들은 입구서부터 말을 하지 않고 숨을 죽이며 머리를 숙이고 안내원의 지시에 따랐다. 반딧불이의 생육환경에 지장을 주는 사진촬영도 금하였다. 안내원을 따라 물길 주위를 조용히 들어가니 몸짓으로 배에 타도록 안내했다.
배는 안내원이 밧줄을 당김으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컴컴하고 아무소리도 없는 동굴엔 고요함과 신비로움뿐 이었다. 동굴천정엔 은하수 같은 수많은 반딧불이 환상적으로 반짝이며 우리 일행과 눈을 맞췄다.
다른 석회동굴에서도 여러 모양의 종유석은 볼 수 있었지만 이곳의 반딧불이는 ‘세계 8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로’ 선정된 곳이어서 경이로움이 더했다. 반딧불이는 우리주변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곤충이다. 반딧불이는 딱정벌레를 통틀어 말하며 개똥벌레라고도 한다. 몸길이가 7mm-18mm로 전 세계적으로 1,700여 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엔 7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는 산업사회가 발전하면서 지구 각 곳에 환경오염이 심해지고 있다. 날로 사람들이 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생태계가 파괴되면 모든 생물이 살아남기 어려운 것인데 반딧불이 같은 미물들은 더욱 생존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도 아직까진 인구밀도가 적고 드넓은 강과 산, 그리고 바다로 에워싸인 뉴질랜드는 듣기보다 훨씬 아름다운 청정지역이어서 지구의 보석이라는 생각이 들어 계속 청정지역으로 보전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주 작으며 별로 이동도 없이 어두컴컴한 석회동굴에서만 생을 이어가는 반딧불이는 살아가는 습성도 별스러웠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반딧불이는 꽁무니가 반짝반짝하는 불빛을 발광하는 반딧불이로 생육 기간은 겨우 보름(15일) 정도 밖에 살지 못하는 곤충이다. 그러면서도 태어날 때부터 몸에 “루시페린”이라는 물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 “루시페린”이 산소를 만나면 형광 불빛이 난다. 하지만 와이토모 석회동굴엔 ‘아라크노캄파 루미노사’(거미 같은 빛을 발하는 유충)라는 곤충이 먹이를 유인하기 위해 머리카락처럼 섬유질을 길게 늘어뜨린다. 벌래를 유인하여 잡아먹기 위해 빛을 뿜어내다가 먹이가 끈적끈적한 실에 걸리면 이를 끌어올려 잡아먹는다. 이처럼 희귀한 반딧불이는 뉴질랜드에서만 서식하는데 사람들의 접근으로 점점 개체수가 적어진다니 멸종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일반적인 반딧불이의 꽁무니에서 빛을 내는 것은 짝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모든 동물이 종족을 이어나가기 위한 행동에는 강한 맹수에서부터 미물의 곤충까지도 종족번식을 위한 구애행동은 비슷한 것 같다.
반딧불이의 일생은 짧은 생으로 마감한다. 수컷은 구애 활동을 하고 짝짓기를 마치자마자 숲 에 사는 사마귀나 강물의 연어처럼 처절하게도 생을 마감한다. 암컷도 수백 개의 알을 낳고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고 하니 찰나에 왔다 살아지는 순환의 여정을 보면서 나는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마운트 쿡 트래킹
영화 ‘반지의 제왕’의 촬영지로 알려진 ‘아오라키 마운트 쿡’은 뉴질랜드를 탐험한 영국해군 장교 ‘제임스 쿡’ 이름에서 유래했다. 마운트 쿡은 트래킹 코스로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4시간 정도로 돌아볼 수 있도록 코스가 다양했다.
퀸스타운에서 크라이스트처치로 가는 도중에 ‘마운트 쿡’을 들렸다. 트래킹 코스를 1시간 30분을 고려했기에 아름답고 빙원이 있는 최고봉을 답사하지 못하고 멀찍이 바라만 보고 와버린 것이 못내 아쉽기도 했다. 뉴질랜드에서 3,000m 이상 되는 높은 산이 20개 중 19개가 마운트 쿡 국립공원에 있다. 만년설 옆에 또 다른 산이 포개지고 또 포개져 신비로움을 더한 곳이다.
마운트 쿡으로 향하는 길엔 옥색 빛을 띠는 푸카키 호수가 옆을 지나고 있다. 호수 색 만큼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산 정상에는 마운트 쿡의 만년설은 신비와 고요함이 우리의 일행을 정숙하라고 타이르는 것 같았다.
우리가 찾은 시기는 늦가을과 겨울 사이의 계절이라 영하의 온도는 아니지만, 공기 중에 습도가 높아져 체감온도는 영하이하의 온도처럼 낮았다.
빙하 물이 만들어 내는 에메랄드빛 푸카키 호수는 남반구의 알프스라 부르는 마운트 쿡 아래에 있다. 아름다운 산세에 취하고 만년설로 하얀 옷을 입은 마운트 쿡은 신성한 기운이 감도는 곳처럼 보였다. 국립공원 전체면적의 40%가 빙하로 흘러가는 강이라니 관광명소로 이름이 나서 많은 사람이 찾아올 것 같았다.
한발 한발 쿡으로 다가가니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마운트 쿡의 느낌은 달랐다. 마오리 원주민의 언어로 ‘아오라키 마운트 쿡’은 ‘구름을 콕 찌르는’ 또는 ‘구름을 뚫는’ 다는 말처럼 ‘마운트 쿡’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었다. 다양한 트래킹 코스가 있고 오솔길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에 취해 걷다보면 준비 없이 깊은 산에 오르게 되어 매년 20건-30건의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는 곳이다.
우리가 잠시 머물었던 시간에도 여러 차례 구름이 산 정상과 허리를 내보이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안개와 구름으로 산을 감추기도 했다. 산 정상이 잠시 비칠 땐 뾰쪽뾰쪽한 산봉우리마다 녹지 않은 눈이 만들어 내는 산의 위엄을 보면서 산마다 산신령이라도 있는 듯 근엄하게 보였다.
만년설은 끊임없이 빙하가 녹아내려 푸카키 호수에 합세했다. 호수의 하류에선 옥색 빛을 띠었으나 마운트 쿡 산 아래에선 빙원이 녹아 흐를 땐 회색빛이었다. 빙하수들은 모두 호수의 상류에 합수하였다. 순수한 천연빙하로 이루어진 푸카키 호수와 테카포 호수 등 큰 산이 많은 뉴질랜드엔 계곡도 많고 빙하호도 많았다.
빙하호의 아름다움은 특유의 청색을 띠게 된다. 빙하로부터 흘러들어온 미세한 바위입자가 물과 혼합할 땐 우유 빛이지만 하류에선 청색을 띤다. 마운트 쿡은 뉴질랜드에서는 제일 높은 봉이다. 해발 3,754m인 아오라키 마운트 쿡은 해발 3,764m이었다가 1991년 11월에 지진으로 정상이 붕괴하여 10m 정도 낮아진 것이다.
뉴질랜드는 산과 강이 아름답지만 신은 복을 한 번에 모두 주지는 않은 것 같다. 2011년 2월 22일 뉴질랜드의 제 2의 도시인 클라이스트 처치에 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교량이나 성당은 말할 것도 없고 시내의 큰 건물도 많이 파괴되었으며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재산피해만도 약 120억 $이었으며 2010년에도 60억 $의 재산 피해가 있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의 민간인명구조대가 지진현장에 투입하여 헌신하기도 했다.
마운트 쿡에서 다음날 새벽 호주를 가기위해 공항이 있는 크라이스트처치로 이동했다. 지금도 4년 전 발생했던 처참한 지진피해를 그대로 보는 듯했다. 올해도 5월 초에 두 번이나 지진이 일어났다. 하지만 건물 안의 물건이 떨어질 정도였고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은 계속 불안할 것이고 타국에서 이민을 왔던 사람 중에는 다른 나라로 또다시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크라이스트처치엔 큰 규모의 건물에는 지금까지도 보수공사를 하는 건물도 보였고, 균열이 심한 건물을 군데군데에서 볼 수 있었다. 시내의 어느 곳에서나 건물 사이의 넓은 공터들이 많았다. 이 같은 공터는 지진으로 건물이 폭삭 주저앉아 나대지 상태로 있는 곳이었다. 피해는 순간에 일어나고 복구의 시간은 많이 걸렸다.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는 아니지만, 일본이나 인도네시아, 네팔이나 중국처럼 지진의 큰 피해는 아직 없다. 지하자원이 없다지만 오밀조밀한 강과 산야 그리고 인적자원이 많은 우리나라가 복 받은 나라인성 싶다.
유황의 도시 로토루아
인천에서 해가질 무렵에 탑승한 비행기는 다음날 아침에 착륙한 곳은 뉴질랜드 북 섬인 오클랜드 공항이었다. 밤새 비행기 안의 좁은 공간에서 고된 비행이었지만 착륙과 동시에 안내원은 우리 일행을 학창시절 수학여행처럼 강행하였다. 온천의 도시이며 마오리족 문화가 잘 보존되고 관광산업도 활성화되어있는 로토루아에 도착했다.
뉴질랜드 원주민의 민속촌 테푸이아를 둘러보면서 마오리족의 전통가옥 구조를 보았다. 고사리나무로 얽어지는 가옥과 하나의 원목으로 건조한 카누를 보면서 원주민의 풍습을 어느 정도 이해하였다. 로토루아는 인구 약 66,000명 중에서 약 5,000 여명의 원주민들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마오리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중심지라고 한다.
로토루아는 볼 것이 많았다. 시내의 관광지만 둘러보아도 1일로는 모자란다고 했다. 우리는 와카레와레와와 오키드 정원을 둘러보았다. 산책 나온 사람들은 가족같이 보이는 사람으로 정원을 산책하거나 볼링(뉴질랜드식 볼링)이나 부메랑을 던지며 즐기고 있는 사람은 가족처럼 보였다. 공원에 심어진 나무들은 한국에서 볼 수 없을 만큼 거목이거나 특이한 형태의 나무도 많았다. 뉴질랜드 북 섬에는 화산재로 이루어졌으며 양질의 토질에 강우량이 많고 혹독한 추위가 없기에 나무가 자라기에 거목이 많은 성 싶었다.
가는 곳마다 숲이 많은 산과 파란목초지가 무척 아름다웠다. 특히 하루에도 몇 번씩 솟구치는 간헐천과 뿌연 증기가 가득한 온천호수는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고 놓아 줄줄 몰랐다. 진흙 열탕에서는 팥죽처럼 끓어오르는 진흙을 보니 지구의 내부엔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뜨거운 용암의 세계가 있음을 상기시켰다.
로토루아는 아름답다는 뉴질랜드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에 11번 조사에서 6번이나 아름다운 곳으로 선정된 곳이다. 사람과 자연이 일체가 된 듯한 로토루아 외곽에는 오염이 없는 청정지역이었다. 시내에 들어서니 곳곳에서 유황의 독특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르네상스의 장식적 요소를 고딕 양식에 접목시킨 튜더양식 건축물인 시청은 높지 않은 아담한 목조건물이었다.
저녁 시간에는 호텔에서 진행되는 마오리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전통 민속 쇼인 하카 춤이 여행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마오리족이 두 눈을 부릅뜨고 혀를 길게 내밀면서 추는 하카춤은 이색적이어서 흥미로웠다. ‘홍이’라는 마오리족의 전통으로 코를 서로 맞대게하는 코인사도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볼거리였다. 저녁식사는 이곳의 독특한 유황가스를 함유하는 뜨거운 지열을 이용하여 음식을 요리하는 항이라는 정통 요리도 맛보았다.
저녁시간에는 호텔에서 진행되는 마오리 전통 공연에서 마오리 원주민이 춤을 출 때 자주 혀 놀림을 하였다. 혀를 잘 내두를수록 능력 있는 남자라고 했다. 어느 곳이나 공동체에서 흥이 나고 마음을 단합하는 춤과 노래는 이곳에서도 같았다.
관광하려면 언제나 체력이 뒷받침해야 한다. 즐겁고 새로운 볼거리로 여행객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다보니 오후가 되면 내 몸에선 피곤하다는 신호가 들렸다. 안내원은 나의 몸 상태를 짐작이라도 한 듯 우리를 폴리네시안 온천으로 안내하여 수영복 차림으로 남녀 혼탕의 온천욕을 즐기니 여독은 저절로 풀렸다.
온천욕을 해서인지 잠을 깊이 잤다.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눈이 시릴 만큼 하늘은 푸르렀다. 난 한국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사면이 바다이고 넓은 들엔 푸른 잔디와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많았다. 그러기에 청정국가란 말이 나온 것 같다. 가슴을 열어주는 맑은 공기가 깃털처럼 날 날려 보낼 것 같았다. 맑고 깨끗한 자연에서 내가 함께 어울릴 수 있다니 기쁨은 더했던 것 같다.
인천에서 출발한 날은 5월 29일이다. 한국과는 계절이 반대인 뉴질랜드는 늦가을에 해당하는 계절이다. 공원이나 산에 보이는 나뭇잎이 낙엽으로 흩어지기도 했다. 봄철에 돋아나는 희망찬 연두색의 나뭇잎과는 사뭇 다르게 낙엽은 어느 곳에서나 스산한 기분이다.
많은 볼거리 중에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오염되지 않고 ‘깨끗한 자연’ 이었다. 시내에서 숲이 보이고 아름다운 옥색이나 비취색을 띠는 호수가 펼쳐지는 그림 같은 곳엔 보석처럼 박혀있는 숲 속에 그림 같은 집이 우리가 사는 아파트와는 다르게 좋아 보였다.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뉴질랜드는 하늘이 점지한 곳처럼 좋아보였다. 대양주로서 섬나라이고 사계절이 우리나라처럼 뚜렷하지 않았다. 과일과 목축업이 발전했고, 땅은 넓은데 인구는 적으니 복지시설이 잘된 살기 좋은 나라였다. 우리나라처럼 지식위주의 경쟁의식이 없고 서로 배려하는 수준 높은 국민 의식을 갖는 듯 했다. 양모 같은 질 좋은 천연섬유를 소재로 의류를 제조하지만 디자인의 수준은 한국보다 한 수준 아래인성 싶었다.
우리도 삼면이 바다이고 산이 많다. 지금부터라도 국민이 합심한다면 빠른 시일에 우리도 훨씬 아름다운 청정국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피오르드(Fiord) 국립공원
뉴질랜드의 퀸스타운을 어두운 새벽에 출발하여 300km나 되는 먼 거리인 밀포드 사운드의 절경을 보기위해 버스는 달렸다.
서던 알프스 산기슭을 따라 밀포드 로드로 들어서니 남 섬 여행의 하일라이트인 피오르드 국립공원이 눈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피오르드 공원에는 14개의 피오르드(Fiord)와 내륙의 5개 빙하호(테아나무, 마나포리, 모노와이, 하우로코, 포테리데이)가 있어 뉴질랜드에서 최대로 큰 공원이다.
피오르드 랜드를 보기위해선 대부분 밀포드 로드를 이용한다. 밀포드 로드는 ‘테 아나우’에서 ‘밀포드 사운드’까지 120km를 말한다. 버스로 이동하면서 U자형 빙하침식곡에 빙하성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고원평야인 ‘에글린턴 벨리’와 산속의 작은 호수에 설산이 반사되어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는 ‘미러 레이크’(거울호수)도 이색적이었다. 1935년에 수작업으로 만들기 시작하여 1954년에 완공된 1,219m의 호머터널은 색다른 경관이었다. 지금의 좋은 기계기술을 이용한다면 그 정도 터널은 쉬운 공정일 것이다. 하지만 오래전에 사람이 정과 망치를 사용하여 수작업으로 완성한 터널이라니 사람들의 수고로움이 몸에 와 닿는 것 같았다.
호머터널을 빠져나오면 꼬불꼬불한 길이 계속 내리막길이 많았다. 산허리를 휘어 감고 도는 차도 옆에는 크고 작은 여러 모양의 빙하침식공이 ‘밀포드 사운드’까지 이어졌다.
빙하성 유수의 퇴적평야와 융빙수 폭포, 그리고 빙하 침식지형을 보니 일 만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묵묵히 자연에 순응한 걸작을 우리에게 처음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이곳만의 아름다운 절경을 보면서 드라이브 하는 것은 환상적인 코스였다.
지구는 어느 곳이나 환경오염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온실가스로 인한 이상기후와 오존층 파괴로 피부암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제는 환경을 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현실이다.
뉴질랜드를 ‘지구에서 마지막 청정국가’라고 부른다. 숲의 천국이며 수많은 원시림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청정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이다.
6월 5일은 세계환경의 날이다. 환경의 날엔 숲이 많은 뉴질랜드에서도 나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더욱 깨끗한 청정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식목행사를 한다.
반지의 제왕, 아바타, 쥐라기 공원 등과 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빽빽한 원시림은 모두 뉴질랜드에서 촬영된 것이다. 수천 년을 이어온 뉴질랜드 원시림을 따라 여행을 하면 미세먼지에 뒤덮인 대도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피오르드 랜드’는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완벽한 예술 같은 곳이다. 밀포드 사운드로 유명한 남 섬의 피오르드 랜드 국립공원은 800년이 넘은 나무들로 가득한 태고의 원시림을 볼 수 있다. 또한, 산봉우리엔 만년설이 지붕처럼 덮여있고 파란 하늘과 맑은 강물을 보는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피오르드 랜드 국립공원은 너도밤나무와 포도카프 상록수가 울창하게 원시림을 이루고 있어 태고의 자연도 체험할 수 있다.
밀포드 사운드에서 유람선을 타고 선상에서 제공하는 부페식을 맛보면서 빙하가 만들어낸 U자형 빙하곡과 아름다운 산은 절경 중의 절경이었다. 그리고 만년설에서 녹아 흐르는 여러 줄기의 시원스런 폭포와 바위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물개들은 이 지방의 특색 있는 볼거리였다.
‘테 아나우’ 호수는 344km²로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며 남 섬에서는 제일 큰 호수이다. 높이가 1,301m인 ‘킴벌리’산이 사자 같기도 하려니와 만년설이 쌓여있어 아름다움을 더했다. 만년설에서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많은 물줄기의 폭포들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했다. 폭포 중에서도 ‘스털링’폭포는 영국 군함 함장 이름에서 비롯했다는데 어찌나 시원스럽게 쏟아지는지 여행객은 옷을 젖는 것도 잊고 물을 맞기도 했다. 다른 편에선 뉴질랜드 총독 보웬의 부인 이름에서 비롯한 보웬 폭포도 160m 높이에서 떨어지면서 융빙수 폭포가 웅장한 소리를 내며 낙하하는 물보라에 여행객은 모두 감탄을 했다.
‘밀포드 사운드’에서 해안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코스에서 1시간 50분 동안 관광객은 많은 절경을 보면서 벌어진 입을 다물 지 못했다. 수없이 많은 폭포수와 만년설, 그리고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자연이 만들어낸 빙하침식 지형은 비경 중의 비경이었다.
아름다운 퀸스타운 (Queens town)지역
인천공항에서 해질 무렵 출발한 비행기는 뉴질랜드 오클랜드공항을 아침에 도착하였다. 맨 먼저 반딧불 동굴을 답사하고 와이토모와 유황의 도시라 알려진 로토투아에서 레드우드 산림욕과 폴리네시안 온천욕을 즐겼다. 저녁엔 마오리 민속 쇼를 관람하면서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지열을 이용한 항이 음식도 맛보았다. 다음날 테푸이아 마오리 민속촌을 방문하고 아그로돔 농장에서 양털 깎기 쇼를 관람한 뒤 트랙터에 탑승하여 농장투어를 마쳤다.
곧이어 로토투아에서 3km 떨어진 ‘농고타하 산자락에 위치한 스카이라인 곤돌라를 탑승하니 로토루아 시내와 아름다운 호수를 조망하였다. 뉴질랜드 북 섬 여행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남 섬을 가기위해 공항에서 가까운 오클랜드로 향했다. 오클랜드는 뉴질랜드 최대도시이며 인천에서 북 섬을 올 때도, 남 섬을 갈 때도 이 곳 공항을 이용했다.
뉴질랜드의 북 섬은 화산섬이며 평야가 많고 아열대성 기후이다. 남 섬은 빙하의 땅으로 산지가 많으며 온대성 기후에 속한다. 계절은 한국과는 반대여서 6월엔 이곳은 초겨울에 해당했다. 날씨변화가 크다는 말을 듣고 공항에서부터 좀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을 했다.
오클랜드 공항에서 남 섬에 있는 퀸스타운을 가는 데는 뉴질랜드 국내선을 이용 했다. 하늘에서 본 산지와 초원이 한눈에 들어오고 만년설 규모도 대단했다. 소요시간은 약 1시간 50분 이었으니 같은 나라이면서도 인천에서 일본가는 것 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인천에서 이용했던 대한항공과는 서비스와 부대시설이 비교가 안될 만큼 수준에 못 미쳤다.
뉴질랜드 남 섬에서 최고로 아름답다는 퀸스타운에 도착했다. 인구는 약 3만 명으로 작은 도시라지만 여행 일번지가 된 것은 19세기 때 골드러시로 많은 사람이 왕래했고 북적였던 곳이다. 차츰 광산에서는 경재성이 떨어지고 금이 고갈되면서 한산한 고장이 되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퀸스타운의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활용하여 뉴질랜드의 제일가는 관광지로 탄생시키는데 힘을 모았다. 지도자 몇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도시의 발전계획을 잘 세운 공일 것이다.
퀸스타운은 와카티프 호수 북쪽 연안의 퀸스타운만을 중심으로 조성된 아름다운 도시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시가지를 조성하였으며 주택은 우리나라처럼 콘크리트 주택이 아닌 2층 이하의 목조주택이었다. 어느 곳에서 보아도 모두 아름다운 자연에 펼쳐진 그림 같은 집이었다.
퀸스타운의 지명은 도시의 아름답기가 빅토리아 여왕에 버금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지인들은 노년을 아름다운 곳에서 여유롭게 보내기위해 찾고 있지만 관광객들은 광활한 자연 속에서 짜릿한 스릴 넘치는 엑티비티(ACTIVITY)와 피오르로 유명한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관문 같은 곳이라 일 년 내내 관광객이 줄을 잇는다.
자연을 그대로 두고 인공은 최소화 하려는 것이 뉴질랜드 시민의 정신인 것 같다. 평지에선 도로가 끝없이 일직선을 이루고, 산이나 강 옆에선 꼬불꼬불한 2차선의 도로가 자연과 어울려져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다. 산책길을 따라가면 흔한 나무 한 구루도 베지 않으려는 배려가 여러 곳에서 감지 할 수 있다. 고목들이 쓰러져도 그대로 방치하여 그 자리에서 다른 생물이 자라는 모습도 좋아보였다.
호수와 하늘 그리고 산과 계곡 등 발길 닿는 곳마다 스키와 골프, 카누나 요트 그리고 래프팅 등 놀 거리와 즐길 거리,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이곳엔 그야말로 모험의 메카인 것 같다.
스카이라인 곤돌라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서면 보석같이 아름다운 ‘와카티푸’ 호수가 둘러싼 우람한 산맥과 드넓은 평원에서 양떼가 풀을 뜯는 풍경,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강과 마을 등 퀸스타운 전체를 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퀸스타운은 번지점프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카와라우 다리에서 1988년에 세계최초로 번지점프(43m)를 상업화 시킨 곳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작은 마을이지만 연간 약 13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집주변에는 오가는 현지인들은 보이지 않고 길거리의 모든 사람은 관광객으로만 보였다.
뉴질랜드 퀸스타운도 처음부터 아름다웠던 곳은 아니다. 빙하의 땅으로 조성된 황무지를 비옥하고 생산성이 높은 농장으로 만드는 것은 처음 이주했던 이주민의 피땀 흘린 노력이다.
계획적인 도시개발과 경재적인 가치가 없는 기존의 관목림을 제거하고 인공으로 조성된 초지를 조성하여 목축으로 이용하였다. 초지대 옆에는 아름드리 큰 나무들은 인공으로 조림한 외래종 나무들이다. 모두 앞을 보며 합심 한만큼 비래하여 후손들은 번영을 누리는 것 같다.
북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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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 송천 샘, 언제 좋은 호주와 뉴질랜드 여행 다녀 오셨네요.
좋은 기행문과 사진 잘 보았습니다
저도 가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앞으로 회원을 위한 많은 발자취 부탁합니다. 건강하시길...
오늘에서야 댓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댓글을 남기신 님이 누구신지를 알길이 없어 아쉽습니다.
아뭏던 보아주신분이 계셔서 흐믓합니다. 앞으로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배 병 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