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장 1절~24절
아담의 원죄,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
갑자기 교활한 뱀이 무대에 나타납니다. 여기서 이 뱀은 최초의 부부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의의를 제기합니다. 그러자 이 부부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는 선택을 합니다. 이 선택은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의도적인 반역행위로서 모든 피조물에게 무시무시한 부정적인 결과들을 초래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는 무질서가 찾아옵니다 이전에 하나님이 세우신 모든 조화로운 관계는 파괴됩니다. 이제 이 세상에는 매우 혼란스러운 결과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1절~24절
창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매우 간략한 소개와 더불어 말을 할 줄 아는 뱀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이 뱀의 기원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도 없으며, 단순히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교활했다고 언급됩니다. 비록 결과적으로 뱀이 하나님의 대적자로 묘사되지만 진정한 본성과 관련해서, 뱀은 맨 처음에는 다소 모호하게 소개됩니다. '동산 모든 나무에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는 질문을 통해서, 뱀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뱀은 단순히 하나님이 지시한 것을 오해한 것인가? 이와 같은 방법으로 뱀이 여자에게 교묘하게 접근하는 것 표현됩니다.
또한 주목할만한 점으로서, 여자에게 말을 걸 때 뱀은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여호와'라는 고유한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그 대신 '엘로힘'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점도 동산에서 뱀이 등장하는 데에는 위험요인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맨 처음 뱀이 하는 말에는 아무런 속임수가 없는 것처럼 여기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반박합니다 이것은 뱀의 동기와 목적을 그대로 명백하게 드러내줍니다(1절).
선악과와 관련하여, 여자의 답변은 대체로 2:16~17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을 올바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라고 말하면서 여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스스로 덧붙입니다. 이 두 가지 차이점에 근거하면, 이미 이 단계에서 여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인간이 고칠 수도 있다는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 보입니다(2~3절).
뱀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선악과를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제시합니다. 곧 뱀은 그 열매를 먹으면 최초의 부부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뱀의 말에 들어 있는 모순을 간파해야 합니다. 뱀과는 다르게 최초의 부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 점에서 그들은 이미 하나님과 비슷한 존재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뱀을 포함하여 모든 짐승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뱀의 말을 따름으로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신뢰를 배반합니다.
이 행위는 단순히 불순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입니다. 최초의 부부는 하나님을 대신에서 이 땅을 다스리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왕이신 하나님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하나인 뱀에게 순종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 뱀이 이 부부에게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점은 옳다는 주장이 때때로 제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상 아담은 구백삼실살까지 살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그들의 눈은 밝아졌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라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뱀은 진리의 일부만을 말합니다. 많은 것을 약속하지만 뱀은 단지 적은 것만 해 줍니다. 사실상 그들의 눈은 밝아졌습니다. 그들은 무엇인가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뿐입니다. 그들은 경험을 통해서 선과 악을 분별합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죄의식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사악함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비록 육신을 지닌 채 계속 살아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또한 거룩한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 납니다. 이와 같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생명 나무로부터 멀어진 채 그들은 죽음의 영역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에덴동산 밖에서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이 의도하시던 삶이 아니라, 오히려 영적인 죽음입니다(4~5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에덴동산의 다른 모든 나무들과 마찬가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2:9)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뱀은 여자가 먹도록 허락된 나무들의 열매에 만족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오직 이 나무에만 자기의 욕망을 집중하게 합니다. 선악과는 분명히 여자를 매혹시켰을 것입니다. 그 나무는 사람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 기초한 것이 아닙니다.
'여자가...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메', 아담도 틀림없이 자신의 아내와 함께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금지하신 열매라는 것을 알면서도 먹었습니다.
이 행위는 아담이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거역하는 죄를 범행했다는 것을 가리켜 줍니다. 아담은 동산과 여인을 돌보고 '지키라'(2:15)는 하나님이 부여해주신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여인은 하나님이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2:18, 20)로서 지으신 존재였던 것입니다. 아담의 죄는 무시무시한 결과들을 초래했습니다. 곧 인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상태에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담의 죄는 모든 종류의 죄를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신체적, 영적 죽음이 임하게 되었습니다(6절).
선악과를 먹는 것은 최초의 부부에게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좋은 상태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벌거벗은 줄을 알자 그들은 부끄러워하여 무화과나무 잎을 엮고 몸의 일부를 가립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자, 그들은 나무 사이에 숨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것과 관련해서 하나님은 질문을 제기하십니다. 그러자 남자는 여자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그리고 여자는 뱀에게 책임을 지음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내가 어디 있느냐', 이 절에서 아담은 '그 남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 남자'와 '너'는 히브리어에서 단수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먼저 아담을 마주 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일어난 결과에 대해서 아담에게 우선적인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십니다. 왜냐하면 타락이전에 하나님이 확립해주신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아담은 대표자(또는 '머리')이기 때문입니다(7~9절).
하나님은 뱀과 관련된 문제를 먼저 처리하십니다. 1절에서 뱀은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하다'고 언급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뱀이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았다고 선언하십니다. 여자를 꾀었기 때문에 뱀은 이제부터 모욕을 받을 것입니다. 뱀이 배로 다니고, 흙을 먹을 것이라는 말을 통해서, 이 점은 문자적으로 또한 비유적으로 표현됩니다. 또한 여자를 속였기 때문에 뱀은 여자와 지속적으로 적대 관계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곧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은 계속해서 서로 반목하고 대립할 것입니다(14~15절).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이 저주를 단순히 인간과 뱀 사이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적대감을 묘사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이15절은 미래에 올 여자의 후손이 뱀을 물리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뱀의 머리가 상하게 된다는 표현을 통해서 뱀이 궁극적으로 패배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 암시됩니다. 그것은 하와의 후손이 발꿈치를 상하게 된다는 것보다 훨씬 치명적인 것입니다. 이것에 근거에서 3:15절은 첫 번째 '복음선포'라고 불려 왔습니다. 이 해석은 여기서 뱀이 단순한 뱀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가리킨다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뱀은 말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고 또한 몹시 나쁜 생각을 지어내기 때문입니다.
이 3장에서 뱀이 사탄이라고 분명하게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뱀을 사탄으로 추론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계시록 12:9 및 20:2에서 사도 요한도 옛 뱀을 사탄이라고 명백하게 언급합니다. 창 4:25에서, 셋이 태어나는 것과 더불어, 여자의 후손이라는 주제는 다시 한 번 다루어집니다. 결과적으로 창세기의 나머지 부분은 셋의 후손이라는 오직 한 계보만 추적하고 있습니다. 셋의 후손으로부터 마침내 한 왕이 태어날 것입니다. 그 왕을 통해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자의 후손"(단수)과 "그의"라는 표현에 근거해서, 많은 학자들은 이 표현이 어떤 특별한 후손을 가리킨다고 해석합니다. 신구약 성경의 전체 구조에서 살펴볼 때 이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됩니다. 신약 성경에 의하면 비록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지만 예수님은 부활과 승천을 통해 궁극적으로 사탄을 물리쳤다고 분명하게 언급됩니다(히 2:14; 요일 3:8). (15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와에게 벌을 내리십니다. 곧 하와는 '고통'(히 '이차본')을 통해서 아이를 낳게 될 것입니다. 이 벌은 여인이 지닌 고유한 특성의 한가운데를 세게 내려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와는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이 말은 결혼 관계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에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과 관련하여 끊임없는 갈등이 되게 된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줍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에, 하나님은 남편에게 가정의 역할을 부여하셨습니다. 또한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돕고 보완하는 관계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죄로 말미암아 이제 이 질서는 몹시 뒤틀어지고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무질서한 욕망을 품을 것입니다. 반면에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려고 할 것입니다. 여기서 '원하고' 번역된 히브리어 명사 '테슈카'(욕망, 갈망)는 구약 성경에서 오직 이곳과 창세기 4:7 및 아 7:10에만 나타납니다. 창세기 4:7에서는 죄가 "너를 원하냐" (곧 죄가 가인을 지배하려고 하지만), 반면에 가인은 반드시 죄를 다스려야만 한다고 언급됩니다.
가인은 죄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고 아벨을 쳐 죽입니다(4:8).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을 거스린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 말미암아 그들의 관계에는 불행한 결과가 지속적으로 미칠 것입니다. (1) 하와는 아담을 거스르고자하는 잘못된 '욕망'을 품고, 그를 지배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결혼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아담에게 부여하신 지도자의 지위를 뒤바꾸려고하는 것입니다. (2) 또한 아담도 타락 이전에 하나님이 주신 지도자의 역할을 포기할 것입니다. 아담은 그의 아내를 이끌고 돌보며 보호하는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아담은 자신의 잘못되고 뒤틀어진 욕망으로 하와를 지배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거슬려서 나타난 가장 비극적인 결과 가운데 하나는 결혼 생활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에 서로에게 해가 되는 갈등과 싸움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로 오염된 성품에서 비롯되는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그들 각자에게 주신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16절).
이 절들에서는 아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판 가운데는 땅의 흙으로 지 음을 받은 아담과 땅에 대한 앞으로의 관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지시하신 나무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에, 아담은 앞으로 음식을 먹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해야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먹을것을 풍부하게 공급하셨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심판은 하나님이 아담의 행위를 찬성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반영합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의 풍요로움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 대신 아담은 땀을 흘리며 땅을 경작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벌은 일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아담이 일할 때 뒤따르는 수고와 고통과 좌절감입니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17절), 가시덤블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18절)는 표현은 땅이 이제 더 이상 에덴동산에서 볼 수 있던 것만큼 풍요롭게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 심판은 이제 인간과 피조 세계의 조화로운 관계가 깨어졌다는 것을 강조합니다(17~19절).
나아가 아담의 몸은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곧 아담은 죽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원래의 창조 질서에서 이와 같이 개획되어 있던 것은 아닙니다(참조, 롬 5:12). 따라서 성경에 의하면 피조물은 인간의 죄의 결과물로부터 해방되는 때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이르면 피조 세계는 더 이상 형벌로 고통당하는 장소가 아닐 것입니다.
장차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화롭게 된다면 새롭고 완전하게 변화된 피조세계를 온전히 다스릴 것입니다(참조, 롬 8:19 피조물의 고대 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19절).
창세기 3:14~19에서 하나님은 뱀과 여자와 남자를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곧바로 3:20~21에서 소망이 담겨있는 두 가지 메시지가 언급됩니다. 첫째 아담은 자신의 아내를 하와라고 부릅니다. 하와는 '생명' 또는 '생명을 주는 자'를 의미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이 부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십니다. 최초의 부부는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들이 발가 벗은것을 부끄러워 합니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은 자신이 지으신 이들을 하나님이 여전히 돌보신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히시는데에는 짐승의 죽음이 필요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사건이 다음 두 가지와 평행을 이룬다고 이해합니다. (1) 후대의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서 짐승의 회생제물을 통한 속죄 제도를 확립하실 것입니다. (2)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의 회생제물로 하나님에게 드릴 것입니다(20~21절).
최초의 부부인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 납니다. 죄의 본성을 지닌 상태로 아담과 하와가 영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십니다. 생명나무는 어느 정도 어떤 사람의 도덕적인 상태를 확인해주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그리스로 믿고 끝까지 신실하게 따르는 성도들에게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한다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창세기 2:15에 의하면,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돌보고 지키게 하려고 아담을 그곳에 두셨습니다.
이제 아담은 에덴동산 밖에서 땅을 일궈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그룹들이 에덴동산의 생명 나무에 이르는 모든 길을 지키게 하십니다. 자신들을 속이고자 하는 뱀의 꼬임에 넘어가서 최초의 부부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으로서 에덴동산을 지키라는 제사장의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성소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자 그들은 제사장의 지위를 잃어버렸습니다. 에덴동산 동쪽에 서 있던 그룹들은 나중에 성막과 성전에서도 장식됩니다. 성막과 성전에서 그룹들은 기구나 구조물의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거나 새겨지거나 수놓아 졌습니다(22~24절).
죄와 사망을 이긴 그리스도의 승리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하나님의 정하심에 따라 아담은 그를 뒤따라온 인류를 대표했고 따라서 아담의 죄는 모든 인간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그리스도는 자신에게 속하게 될 모든 이들을 대표했고 그리스도의 순종은 모든 신자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몸을 변화시켜 새롭고 썩지 않는 존재에 알맞은 몸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현재의 부패할 수 있는 몸과 미래의 불멸의 몸 사이에 불연속성은 썩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제 부활할 몸은 더 이상 물리적 부패나 노화에 종속되지 않는 몸이 될것입니다. '욕된 것....영광', 이 단어들은 외적인 육체적 외양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부활한 몸은 육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매력적일 것입니다.
44절에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육의', 이 헬라어 단어는 명사 '푸쉬게'의 형용사형인 '푸쉬카코스'로 번역되었고 '생명' 또는 '살아 있는 존재'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육의 몸'과 '영의 몸' 사이에 대조는 한시적으로 살아 있는 것과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존재하는 것 사이와 대조됩니다.
바울은 창 2:7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이 아담을 흙에서 창조하셨고 호흡으로 생기를 불어넣으셨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에게 신령한 몸, 바울이 말하는 '영의 몸'은 비물질적인 몸이 아니라 성령으로 생기와 능력을 얻는 몸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