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신학- 역사와 방법
구약신학의 역사와 방법은 신학적 관점에서 순서에 따라 강조점을 논의하였고, 그의 주관적 개관이 성서의 기본내용을 파악하며 신학적 차이를 탐구하는데 도움이 되며, 성서신학을 탐구하기 위한 길잡이로서 천지창조와 인류의 범죄에 대한 심판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와 하나님과 성품, 하나님의 백성에 관하여 구약과 신약의 연관성을 통일된 주제로 전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구약은 중요한 사건들과 인간의 흥망성쇠와 인류의 심판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 하늘나라로 인도할 것을 약속하면서도 미래만의 삶을 거절하되, 본래의 삶 속에 있는 고통을 보여주므로 악한 자는 심판하고 압제받는 자에게는 사랑의 창조주 되심을 믿게 하므로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만물 위에 충만하며 권능과 선하심으로 조화를 이루어 가고 계심을 알게 하신다.
그러나 동시에 역사적 장애와 문학적 장애와 신학적 장애와 학문적인 장애가 어려움으로 직면하게 된다. 구약의 전문가들은 구약의 역사와 내용 그리고 신학의 해석하는 방법에 서로 동의하지 않기에 혼란도 오지만, 이 난해함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문학작품으로 분석하며 예수그리스도라는 한 주제를 가지고 이스라엘의 역사의 흐름을 보면 구약신학의 내용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1. 구약신학연구의 개관
구약신학이 구약 본문 그 자체 안에서 어떻게 성장, 발전했는가를 살피는 일은 구약신학 연구의 중요한 부분이다.
사상이 어떻게 시작하여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신학의 변천사는 신학을 연구하는 해석자들에게 남겨진 임무이지만 너무 세밀하게 하는 것 또한 이 책의 목적에서 벗어난다. 하여튼 구약은 신약기자들의 성서였다.
신구약의 관계성을 연구하기 전에 먼저 구약을 살펴보고 신학적 내용을 소화하면 전문적인 지식과 해석은 구약신학을 연구하는데 더 많은 진전을 준다.
구약신학의 연구를 위한 중요한 사항은 초대교회 교부들, 중세의 주석가들, 종교 개혁가들의 이해를 살피는 일인데 성서신학의 다양성을 강조한 브레바드 차일즈는 성서신학에 수반된 부요함을, 요한 칼빈, 마틴루터는 신구약의 연결된 신학적 문헌으로 해석함으로서 교회역사의 주목할 만한 표본이 되었다, 구약신학의 다른 해석으로는 칼빈의 「기독교강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구약이 신학적 구조를 제공할 뿐이라 한다.
둘째 구약신학자들은 역사적 자료에 관심을 쏟았다 본문이 본문 그 자체가 결코 의미하지 않는 바를 뜻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으며, 이러한 강조는 성 어거스틴을 꼽을 수 있다며 풍유적 해석 방법을 깨뜨려 버린다, 그러나 성서의 저자들은 구체적인 역사적 정황 속에서도 참 백성들을 위해 성서를 기록 했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계속 말하며 성서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세째 구약신학자들은 구약의 메시지를 교회와 연결시키려 했다. 어떤 이들은 어떻게 신약과 자연스럽게 연결 되는지를 제시한다.
2, 구약신학의 시작을 가블러에서 벨 하우젠까지(1787~1878)
가블러(J.P.Gabler)는 성서신학의 기원은 성서 그 차체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교의신학과 조직신학은 적정한 구별과 구체적인 목표를 말하며, 성서신학이 조직신학(교의학)아래 종속에서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서신학의 목적은 성서 기자들이 실제로 믿었던 바를 설명한 것이요. 교의신학은 이전부터 존재해 오던 사상들을 계속 유지시켜 나가는 것이다. 합리주의자였던 가블러는 모든 “선” 이해적 신앙 상식을 제거하려 했다. 가블러의 장점은 성서신학의 강점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그의 이론들이 성서자료를 하나님, 인간, 그리스도의 연구로 구분한 조지 로렌츠 바우어에게 영향을 끼쳤다. 바우어의 합리주의적 작품은 구약의 이적들을 신화로 해석하며, 성경 신학의 저자인 카이저는 가블러는 바우어의 합리주의적 이론을 더욱 강화하여 구약종교는 여러 종교 중의 한 종교에 불과하다고 주장을 한다.
윌헬름 드 베테는 「기독교 교의학 서론」에서 전통주의와 합리주의의 연결고리를 모색하려했다. “신화는 모든 신성한 것들과 하나님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는 시적인 표현방식이 된다”고 주장했다.
칸트의 영향을 받은 동료 프라이스의 훈련으로 드베테는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과 종교적 감성을 불어넣어 준다고 믿었다. 신적 영감이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이룬다고 한 드베테는 칸트의 이분법을 피하려 했스며 또한 의미를 역사적 분석에 두려고 했다.
윌헬름 바트케는 『성서신학: 구약 성서의 종교』는 철학적 방법을 추구하는 순수한 합리주의를 떠나 구약신학에 접근했고, 그의 동료 조지 헤겔은 역사가 사상과 행동의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발전해 가는 연속과정으로, 행동과 사상(正)이 반동(反)을 일으켜 높은 단계에 이를 때 일어난다고 한다. 헤겔의 이론은 구약종교가 진화 과정처럼 점차 복잡하게 발전함을 말하고 있다. 헤겔은 이러한 역사의 변증법 속에서 의미를 찾았기 때문에 보편적 원리를 서로 분리하려는 합리주의자들의 견해를 거절했다.
바트케는 헤겔의 역사 이해에 기초한 구체적인 해석학적 방법론에 충실했기 때문에 그는 이스라엘 종교가 모세 언약의 유일신 사상으로부터 시작했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이스라엘 종교는 자연종교에서 진화의 과정을 거쳐 유일신 종교로발전 했다고 한다. 성서신학은 수년이 지나는 동안 독자들은 바트케의 견해를 사용하지 않았다. 구약은 적어도 성서신학을 정당화 시켜주는 최소한의 기여를 했지만 기껏해야 보편적 사상이나 영감된 종교적 감성의 적절한 원천에 불과했다.
1829년 자유주의적 해석에 대한 보수주의의 반동은 헹스텐 버의 「구약의 기독론」을 내면서 非전통주의자들을 비판했다, 그의 제자 헤이버닉은 성서의 사상이 역사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성서는 역사 속에서 태어났고 선포 되었다고 주장 했다.
그는 또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그 절정에 도달 할 때까지 점차적으로 들어 나게 됨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는 수세기에 거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 수단이 된다.
호프만은 헤이버닉 역사관과 구원을 공유했다. 예언과 성취에서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기록이라고 주장하여 “구속사”란 말을 처음 취급했다.
구속사 신학의 주창자는 구스타브 웰러로 「구약신학 입문」, 「구약신학」은 큰 영향을 미쳤다. 역사와 신학은 상호 신중하게 연결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역사는 구원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구원은 역사 속에서 펼쳐진다. 성서는 하나님의 계시이며 계시의 과정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속에 나타난다.
3. 역사주의의 지배(1878~1920년)
벨하우젠은 「고대 이스라엘 역사서론」에서 성서와 관련된 모든 연구들을 교대로 소개한다. 그의 재능은 초기 학자들의 연구를 알기 쉽게 하나로 통일시키는 능력이 여실히 들어났다. 덴탄은 벨하우젠을 명석하고 설득력이 있으며 부드럽고 유머스러운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벤하우젠의 해석은 신학분야를 단숨에 흽쓸어 버렸다. 그 당시 그의 사상에 반대하는 자들은 극소수의 독일 신학자들뿐이었다. 그 외에 다른 신학자들과 영국, 미국의 구약신학을 지배하게 되었다
토이는 벨하우젠과 유사한 해석의 이유로 남침례교 신학교수직을 박탈당하는 일도 있었다. 신학자들은 구약 본문 자체에 집중하면서 이스라엘 종교의 역사를 재구성 하기 시작했다. 슐츠는 구약과 신약 사이에 통일성이 있다고 믿었으며 지상의 하나님 나라라는 단일 주체에 초점을 맞추면서 통일성을 연구하였다.
그 누구도 구약신학의 지식을 거치지 않으면 신약신학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의 작품을 두 부분으로 구분하여 이스라엘 종교 및 그 세계관의 진화 과정과 하나님과 세상 “인류와 죄” 와 같은 조직신학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슐즈의 강조는 성경의 통일된 요소와 구원사를 강조했던 초기 보수주의자들의 견해와 입장을 나란히 한다. 또한 미래의 연구를 위해 하나의 전례를 남겨준다.
-----두번째 주 과제------------
4. 구약신학의 재출현(1920~1960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간타락의 도덕적 심각성을 보여 주는 때였다 수십만 명의 군인들이 희생되었고 파괴적인 무기를 사용한 국가들이 자행한 학살로 많은 나라가 피해를 입었다. 이 때에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역사적으로만 공부하기는 충분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온 세계가 지상 통치자보다 거룩한 통치자에게 순종해야 함을 배웠다. 고대의 본문들이 고통받는 현대의 회중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가를 고민한 스위스 사벤빌의 목사인 칼 바르트(Karl Barth)는 신학이 성서의 하나님 계시를 거듭 강조했고 1919년 초판된 "로마서주석“은 신학이 성서와 교회로 되돌아가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해겔의 역사적 철학 이론들을 자신의 해석에 적용시켰고 「교회 교의학」을 변증법적 신학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시기에 쓰여진 첫 번째 구약신학 작품은 현존하는 역사개념을 수정하는 역사와 신학을 균형 지으려는 노력을 반영해 준다. 쾌니히의 구약신학은 어떻게 역사적 해석이 신학적 반추를 가져다주는지를 노력했음이 보인다. 재 부흥위한 문은 열어주었지만 “역사 대 신학”이라는 논쟁이 얼마동안 계속 되었다. 아이스펠트(O.Eissfeldt)는 성서의 역사적, 신학적 해석은 반드시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50년대 초 성서신학 운동과 구약신학에 대한 저술들이 어떤 주요 지점에서 서로 교차하게 되었다. 이 작품들은 광범위한 아이히로트 사상을 지속시켰다. 라이트는 「그 환경과 대조를 이루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종교의 유일성을 말하고 있으며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단일주제가 구약 신학을 요약해 준다고 제안했다.
에드몽 야콥(E.Jacob)은 ‘하나님의 현존’과 ‘하나님의 활동’이라는 주제가 다른 그 어떤 주제보다도 크게 우리의 관심을 끌게 한다. 그는 구약신학에서 라이트가 강조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지지했다. 게하르트 폰라드(G.Von Rad)의 「구약신학」은 역사 속의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믿었다.
1920년에서 1960년까지 구약신학의 흐름은 1787~1878년 동안 일어나 구약시학의 흐름과 다소 흡사하다 신학자들은 구약신학이 역사에 기초해야하며 조직신학으로부터 독자적으로 분리되어 구약 그 자체의 증거를 드러낼 뿐 아니라 성서신학 및 조직신학과의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5. 다양성에로의 성숙(1960~1993년)
1960년대 치열한 학문적 공방전이 벌어졌던 세계대전 이후 소강국면을 보이다가 70~80년대에 보수주의 신학의 상황 속에서 방향의 전환이 모색되어 격렬한 토론이 전개되기 시작되었다.
영(E.J.Young)이 「현대구약신학연구」에서 성서교리의 통일성에 대한 보수적 해석 속에서 그것에 기초한 작품들의 겹핍된 점들을 지적했다.
패인(J.Barton Payne)은 「구약신학」에서 성서신학의 역사적 성격과 구속사적 성격 사이에 발생하는 모든 이슈들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는 보수주의 구약신학이 비평적 학문에 대한 뚜렸한 대안을 제공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라이트는 ‘구약과 신학’에서 초기와 마찬가지로 후기사상의 배경이 되는 역사문서가 아니라 현재의 삶과 신앙의 위해 중요한 정경으로서 구약을 연구할 때 주어질 결과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 당시 젊은 신학자들에 의해 주도된 신학 사상들이 자신의 사상과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 브레바드 차일즈(Brevard Childs)의 『위기에 처한 성서신학』에 구약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때가 왔다고 선언하며, 참된 성서신학을 위해 계속해서 성서의 통일성을 추구하려 했다.
* 해리슨(R.K.Harrison)의 『구약서론』에 보수주의 구약 신학자들에게 커다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그는 고대 자료들, 역사 철학자들, 고고학적 연구들을 살펴본 후 진화론적 이스라엘 역사관과 드 배데, 바드케, 벨하우젠의 오경 저작설을 거부했다.
* 침멀리(W.Zimmerli)의 「구약신학개론」, 이스라엘 신앙과 행위들은 하나님 그의 이름은 야웨이다. 오직 한분이심을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 포러(G.Fohrer)의 「구약성서의 기본신학구조」에서 성서 신학 운동이 20년 동안 해 왔던 것보다 훨신 더 교회를 위한 구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맥켄지(J.Mckenzie)의 「구약신학」, 카이저(Walter Kaiser)의 「구약신학을 향하여」, 테린(Samuel Terrien)의 「인식하기 힘든 임재」 하나님의 임재라는 실제는 성서 신앙의 중심에 서 있다. 그는 카이저와 같이 동시대 신학의 위기가 권위의 문제와 관련 되었고 성서의 지속적 권위가 의미론적 해석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클레멘츠(Ronold Clements)의 「구약신학: 하나의 새로운 접근」, 짤막한 책에서 신선한 접근 방식을 소개하기로 약속한 뒤 그것을 어느 정도 실현 시켰다 그는 신학적 반영을 위한 정경의 가치를 강조한 차일즈와 샌더스의 이론을 환영했다.
* 베스트만(Klaus Westermann)의 하나님의 사역을 분석할 때 전통적인 주제가 부각되었다.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출하신 하나님의 구원은 주(Lord)가 구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단일 주제적 접근으로부터 벗어나 정경의 구조를 채택함으로하나님의 사역을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결 론
가블러의 공식논평 후 200년이 훨신 지나오면서 합리주의에서 역사주의로 가는 길을 열어 주었고 원리들이 변천되면서도 구약신학자들은 구약신학이 고대세계의 역사적 상황과 연결되는데 동의했다. 어떤 학자들은 자신들의 해석을 총헤 구약 그 자체를 강조하거나 또는 유대 사상을 결부시키고 있지만 대부분의 구약 신학자들은 그들이 내린 결론이 구약신학을 보조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구약신학연구를 ‘신학’이 ‘하나님에 대한 학문’이므로 하나님의 본성과 사역에 대해 배우고 창조세계와 연관됨을 살펴야 한다. 구약이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바를 하나님의 응집된 전체로서 표현하고 하나님을 연구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구약신학은 역사적 기초를 가져야 하고, 구약자체의 선언을 설명해야 하고, 구약과 신약과의 연관성을 설명해야 하고, 하나님의 본성과 의지에 대한 것은 진술해야 하고, 하나님은 분명한 행동을 명령하신다는 가르침의 규범을 발견해야 한다.
구약신학 연구를 위한 하나의 방법론(정경적 접근을 위한 구체적인 원리들)에서
구약신학은 히브리정경을 연구해야 하며, 신학적 초점을 하나님의 현존과 경배에 강조해야 하며, 유일신론의 강조를 역사적으로 입증된 중심주제로 사용하고, 정경적 접근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 구약신학 연구를 위한 하나의 방법론 : 기본원리들
지금까지 진술해 온 바와 같이 구약 신학을 특징지어 주었던 몇 가지 원리들이 있다. 구약신학은 역사적 기초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구약 그 자체를 설명해야 하며 구약 신학이 기독교 신학의 일부가 될 때 구약과 신약의 연관성에 대하여 설명해야 하고 구약신학이 성서신학을 이루기 위해 신약과 연합하면서 조직 신학자들이 범주와 주제들로 구분 시킬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주아야 한다.
구약신학은 하나님의 본성과 의지에 대하여 구약이 말하는 바를 진술하면서 진리에 대한 설명을 넘어 행동에 대한 규정으로 옮겨 갈 것이다.
다른 유사 작품들과 공통적으로 견지하는 개념들
구약 신학은 반드시 하나의 뚜렸하고도 논리적인 형식으로 표현되어야 하고 또한 다양성 속에 통일성을 보여주며 난해한 사상들이 숨겨져서는 안된다.
이 책은 세밀한 연구, 적용 및 논쟁을 거쳐 현재까지 지나 온 복음주의 기독교인에 의해 쓰여졌다.
# 구약 신학 연구를 위한 하나님의 방법론 : 정경적인 접근을 위한 구체적인 원리들
성서신학에 기여하려는 구약신학은 히브리 정경을 연구해야만 한다.
신약이 신적 계시로 언급하고 (눅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 성경이 바로 히브리 정경이기 때문이다. 정경의 순서를 따르는 것은 구약의 역사적 맥락을 독자들에게 남겨준다.
순서주체를 채택하는 방법에 최근 몇몇 학자들은 꺼리고 있지만 구약의 핵심적인 주제는 유일하시고 규범되시며, 신학적 역사적 초점이 되시는 한분 하나님의 현존과 경배에 강조를 둔다. 이와같이 근본적인 개념은 하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