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자기(ceramics)는 크게 도기(또는 토기라고도 함/earthenware)와 자기(또는 사기라고 함/porcelain)로 나뉘어 집니다.
도기는 진흙(clay)을 사용하여 낮은 온도 (600~1200도)에서 굽고, 그렇게 어려운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전 세계 어느 나라나 도기를 만들 줄 알았습니다. 요새도 인도 시골을 가보면, 노천에서 진흙으로 구운 찻잔과 그릇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도기는 약간 낮은 온도에서 굽고 색깔도 흙빛이 돌고, 물을 부어놓으면 흙물이 조금씩 배어 나옵니다. 우리 나라 신라나 가야 무덤에서 나오는 토기들을 생가하시면 됩니다.
러시아나 남미, 중동지방에서도 토기를 쓰다가 이보다 조금 더 높은 온도에서 굽고 색을 입힌 그릇을 썼는데, 그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도기이지만 서양에서는 이런 도자기를 earthenware와 구별해서 stoneware (돌같이 단단해진 그릇)라고 부릅니다.
자기는 가장 발달된 도자기 형태로 요즘 우리가 쓰고 있는 하얀 그릇들이 모두 자기입니다. 영어로는 porcelain. 이 자기를 만들어서 쓸 수 있는 나라는 1000~1600년까지 약 600년 동안 중국, 베트남, 한국 뿐이었습니다.
일본은 1592~1598년 임진왜란 때 한국 도공 (사실 도공은 일본말이고 우리는 사기장/자기장 이라고 불렀습니다.) 들을 잡아 가서 1600년 이후부터 자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당시 일본과 무역을 하던 네덜란드, 포루투칼 등을 통해 하얀 바탕에 아름답게 채색한 자기들이 유럽에 수입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Japonism열풍이 일어납니다.
결국 일본에 끌려간 한국의 자기장들이 "자기의 세계화"를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자기는 진흙에 자토(일종의 돌가루, 영어로는 kaolin)라는 성분을 섞어서 125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야 하고, 노천에서 구울 수 없고, 특별한 가마와 유약(glaze) 등이 필요합니다. 또 자기는 단단하고 맑고 흰 빛이 나며 아름답습니다.그래서 당시 자기를 생산한다는 것은 오늘날 핵무기를 소유하는 것고 같은 첨단&극비 기술이었고, 중국, 일본의 자기가 유럽인들에게 큰 열망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1700년대에 이르면 일본에서 자기를 수입하던 유럽인들이 실험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자기의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독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차례로 자기를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clay에 소 뼈를 갈아 넣어 단단하게 만든 "bone china" (본차이나)등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이 때부터 자기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면서 오늘날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식기도 자기입니다. 지금도 유럽시장이 "산업화된" 자기 시장을 많이 리드하고 있지만, 자기 생산의 산업화 이전에 "예숲품"으로서 자기를 만들었던 나라는 한중일 (그리고 베트남 등 동남아 몇 곳)이었고, 중국이 자기의 최대 생산국이었다면, 한국의 최고 명품 자기의 생산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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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자 (13~14세기)
청자는 세계에서 중국과 한국만이 잠시 동안 (중국에서는 송나라,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에)만 만들어 낸 "특이한"자기입니다. 청자는 "자기"의 일종이면서도, 흰빛이 아니라 푸른 빛입니다. 이것은 청자를 만들 때 철분(iron)이 소량 함유된 흙을 써서 이 철분이 산화되는 과정에서 그런 오묘한 푸른 빛이 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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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청자
중국 청자에 비해 훨씬 맑고 고요하며 깊이가 있다
청자는 중국에서 먼저 만들었던 것 같은데, 중국에서는 순청자 (무늬없는 청자)만을 만들었고, 이 청자를 상감청자 (자토, 백토를 넣어 검은색 흰색 무늬가 나도록 만든 청자)는 한국에만 있는 고려청자만의 특성이고, 진사청자(진사는 붉은 빛이 나는 염료, Leeum의 진사연화문청자가 대표적)는 한국이 중국보다 200년 앞서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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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진사연화문청자 (리움 박물관 소장)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중국은 명나라때 이르면 백자, 말 그대로 white porcelain이 생산되기 시작하는데, 이 때는 공장생산이 아니었기 때문에 각 지역의 흙이라든지 굽는 온도, 또 유약에 따라 흰색이라도, 어떤 것은 약간 푸른 흰색, 우유빛 흰색, 투명한 흰색등 약간의 차이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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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백자주자 (호림 박물관)
어쨋든 도자기의 대량생산시대로 접어든 18세기 이후의 도자기들은 별로 예술품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세계 고미술품 시장에서 한국>중국>일본 도자기 순으로 가격이 매겨진다고 합니다. 한국 도자기는 중국 도자기 보다 수가 적어 희소성이 있고, 또 더 예술적입니다.
W. B. Honey라는 영국 도예가가 1950년에 <중국 및 극동아시아의 도자기>라는 책을 쓰면서 중국/한국/일본 도자기를 소개했는데, 한국 도자기 파트 서문에 다음과 같이 글을 썼습니다. 한국전쟁 때였기 때문에 당시 한국의 위상은 아주 초라했습니다만, 그래도 이 사람은 한국 도자기의 우수성을 알아보고, "한국 도자기는 독창적일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만들어졌던 어떤 도자기보다 우아하며 청아하다. 한국 도자기는 도자기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덕성을 갖추고 있다"며 극찬했습니다.
도자기의 피부, 유약의 신비’ 편에서 유약은 도자기 표면에 발린 유리질을 말하며 이 유약은 불을 때던 중 장작의 재가 기물에 앉아 녹는 것을 보고 중국인이 발견했고, 그 뒤 유약은 비약적으로 발전 했으며,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들어온 유약 기법을 더욱 발전시켜 비색(翡色) 청자를 빚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유약을 만드는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동서양이 다릅니다. 먼저 유약을 만드는 방법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도자기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동양(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도자기를 자연의 일부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도자기를 만드는 원료를 자연계에서 존재하는 천연소재를 사용하여 오랜 경험을 통한 사기장의 예술적 감각을 통해 도자기가 완성하였습니다.
유 약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산에 있는 돌(장석 또는 규석 혹은 도석)을 찾아 이것을 물레방아나 연자방아로 분쇄해 식목의 불에 태운 재를 섞어 유약을 만들었고, 불을 땔때도 산에서 구한 나무를 말려서 장작으로 만들어 불을 때 도자기를 빚었습니다.
그 중 우리나라의 유약 만드는 방법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또 다른 방법이 있었습니다.(마지막 부분 참조)
우리나라 도자기는 형태 자체도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단순하게 보였으나 자연미를 최대한 살린 편안한 도자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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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분청철화장군병 - 아타카 콜렉션(중) 중국분체묘금태첩발라문병 - 대북 고궁 박물관(우) 일본 백자색회육각면취병 - 산토리 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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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양에서는 도자기가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서양에서는 18세기 전까지는 동양의 도자기는 금보다 더 비쌌고,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당시 유럽은 마치 중세에 연금술사가 금을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것처럼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서양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700년경부터 도기가 아닌 도자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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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0년 마이센에서 제작한 꽃병. 출처 - 유혹하는 유럽도자기 /김재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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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년에 독일 마이센요에서 한 연금술사가 처음으로 백자를 만듭니다. 그러나 이 백자는 동양의 단단한 경질 자기가 아닌 연질 자기였습니다.
그 뒤 1760년 잉글랜드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화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이때 도자기 유약의 화학적 연구가 시작됩니다.
그리하여 천연의 원료를 화학적으로 분석하여 특정성분을 유출 분리하여 순도를 높인 원료를 사용하여 유약을 조합하는 방법이 발견됩니다. 이것이 인공원료 즉 화학원료 유약의 시작입니다.
이때부터 서양은 개성이 없고 똑같은 도자기를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갖게 됩니다. 이 기술이 다시 동양으로 수입된 것이 바로 현대의 요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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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조선 청화 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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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타카 콜렉션 |
동양의 전통 유약은 자연 친화적이나 유약의 재료가 되는 천연물질의 상태(예-나무의 성장 환경에 따라 재의 성분 물질의 비율이 달라짐)에 따라 사기장의 의도와 다른 도자기가 탄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획일적인 대량생산에는 아주 불리하나 작품 하나하나의 예술적 가치는 뛰어납니다.
동서양의 도자기에 대한 인식을 간단히 요약하면 동양은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면 서양은 도자기를 과학적 결과 물로 바라봅니다.
결론적으로 동양의 유약은 돌과 나무재 즉, 천연재료의 결합이고, 서양의 유약은 광물과 광물을 화학적으로 처리하여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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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청화백자 보상당초문화백자 -아타카콜렉션 -> 1994년 크리스티 경매장 원화로 50억 상당 세계 2위의 금액으로 낙찰(우)백자 청화운용문호 - 중앙 박물관 소장-> 이것과 비슷한 것이 1996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원화로 110억 상당으로 낙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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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도자기의 예술적 가치를 경제적으로 평가하면, 세계의 고미술 시장에서는(소더비, 크리스티 경매) 한국의 옛 도자기가 최고 비싸고, 그 다음으로 중국, 일본 그리고 유럽의 도자기 순입니다.
이것은 획일적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서양의 도자기 보다 자연 친화적인 동양의 도자기가 예술적 가치가 더 있다는 말입니다.
앞 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옛날 우리나라의 유약 만드는 방법은 중국, 일본과는 달랐습니다. 물론 중국과 일본처럼 돌(장석, 도석)을 물레방아로 분쇄해 재를 섞어 유약을 만들었습니다만, 그것 보다는 물토라는 천연물질에 재를 섞은 것이 우리나라의 옛 도자기의 유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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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토 – 수토, 수을토라고도 불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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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물토는 무엇일까요?
옛 문헌에는 水土, 水乙土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석, 석회석, 규석 등이 주성분으로 손으로 만지면 딱딱한 돌덩어리가 부드러운 가루처럼 분쇄됩니다. 이 가루를 물에 타면 미숫가루처럼 그대로 풀어집니다.
이 물토 중 산화철이 함유되어 붉은 빛을 띤 물토는 청자유약에, 산화철 함유량이 적고 흰색을 띠는 것은 분청이나 백자 유약으로 사용했다고 추정됩니다.
그 리고 이 물토를 도자기 태토에 섞어주면 완성된 도자기가 단단하게 되므로 태토에 섞기도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물토에 융재인 나무 재 대신 광물질 융재인 활석이나 석회석을 섞기도 했습니다. (분원도자기의 사금파리성분 분석결과) 그리고 우리 전통유에는 물토유 외에 여러 다양한 유약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조상들 사용한 물토, 나무재 그리고 약토등 천연물질을 자연에서 구해 정성으로 유약을 사용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유약을 만들까요?
우리나라 전통유를 근원으로 하여 유약을 만들어 옛 우리 도자의 화려한 영광을 되찾으려는 사기장도 많으나, 간단하고 편한 서양식 유약 제조 방법으로 유약을 만드는 사기장도 많습니다.
그리고 도자기를 가르치는 대학이나 학원에서는 한국적 유약 만드는 기법보다는 서양적 유약 만드는 기법만을 가르치다 보니 우리의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전통유약은 점점 우리나라 도자 문화에서 멀리 떨어지고 있습니다.
온고지신(溫故之新)이라 하지 않았던가?
옛것을 알고 새것을 배워야지 새것(서양식 유약)을 알고 우리의 옛 (한국전통유)을 안다면 16세기까지 세계 최고의 도예 왕국이었던 우리나라의 옛 영광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