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주인공은 붓을 든 필자 자신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날 그날에 있었던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수필에 임하던 태도도 있지만, 작가 자신이 살아온 기나긴 나날을 반추해 보고 싶은 때도 있다. 특히나 자신의 외부에서 일어난 사회의 일보다 어떤 사건이 펼쳐질 때마다 자신의 내부에서 펼쳐지는 풍경을 반추해 보기도 한다. 이는 자신이 갇혀 있는 외면, 즉 사회와 얽힌 사건을 소재로 사연을 펼치기도 하지만 현대로 넘어올수록 자신의 내면, 즉 자신의 마음속이란 거대한 집에서 일어나는 풍경을 그리는 모더니즘을 중요시 여긴다. 물론 이 시점에서 수필이란 작품 속에서 말하는 시적 화자와 작품 밖에서 반추하는 작가 자신과는 분리가 되어 소설과 수필의 구분이 서지 않는 면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 본 지도강사가 선정한 꽃다발의 기법은 거의 소설에 가깝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대에서의 수필은 소설과 유사한 기법을 쓰고 있다. 다만, 수필이란 작품 속에서 펼쳐진 사건들이 작가의 지난 시절의 사실적인 경험체 안에서의 분신이란 점이 소설 속의 사건들이 허구라는 측면과 대조가 됨으로써 수필 고유의 직접적인 자기 반성적인 교육작용으로서 의의가 있다. 언남고 이버들 학생은 이런 면에서 자신이 겪었던 일을 소설의 기법으로 꽃다발이란 수필로 승화시켰다. 수필을 쓰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던 학생들이나 소설로 입문하고픈 학생들은 이 작품을 통해서 수필과 소설을 짓는 법을 터득해 보도록 합시다. 아랫 작품을 읽을 때 이버들 학생의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 속의 경로를 따라가면서 이버들 학생이 겪은 일들과 내면의 심리적 변화과정과 갈등양상을 살펴봄으로써 작품의 소재이자 제제로 설정된 제목인 꽃다발을 통해 무슨 이야기(주제)를 하려고 했는지 주요특징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첫째,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이버들 학생 자신입니다. 이는 소설로 말하면 1인칭 주인공 시점에 해당하여 자신의 내면 깊숙이에서 솟는 생각과 마음을 관찰하면서 자기 자신과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둘째, 이 작품의 소재는 꽃다발입니다. 이 꽃다발은 처음에 친구로 만난 남자 친구가 준 생일 선물로서 이 꽃다발은 나와 남자와의 심리적, 사회적, 애정적 관계를 복잡하게 얽혀가는 매개체로서 제목이자 주제를 형상화해 가는데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셋째, 이 작품의 주인공은 남자 친구를 만난 오늘부터 시간적 흐름에 따라 공간적인 여정을 갖는데 처음엔 <커피숍 안>(A)[1단락부터 5단락까지]-<영화관>(B)-<술집>(C)-<술집 밖>(D)-<버스 안>(E)- 이처럼 장소적으로 이동하면서 내면적으로는 A( )-B( )-C( )-D( )-E( )-F 주인공의 내면 풍경 속에서 삶의 이, 사랑의 의미, 가치관의 문제, 일상생활의 반성 등 자기 자신의 삶의 의미를 깨닫고 정신적으로 성숙해 나가는 수필의 진면목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작품은 이버들 학생의 신변적인 데이트 경험의 기행을 토대로 수필의 소재(제재)를 찾고 이버들 학생인 나와 만난 남자와 그 동안 만났던 추억과 현재 진행되는 일을 통해서 <만남과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해 나간 1인칭 주인공의 실화적 소설적 기법으로 수필을 멋드러지게 형상화해 낸 것입니다. 그러면 각 부분별로 이 버들 학생의 심리적 풍경의 세세한 면을 분석해 보도록 합시다. ------------------------------------------------------------------------------------------
[1단락] 티 하나 없이 깨끗한 유리벽 저편, 나는 말끄러미 밖을 내다본다. 소리를 끝까지 죽여 놓은 텔레비전 화면처럼 기묘하게 적막하다. 패션 카탈로그에서 뛰어나온 듯한 모습의 아가씨 하나가 지나간다. 커피숍 바로 앞의 신호등에선 엄마 손을 잡은 아이가 울고 있다. 나는 무심히 사람들의 움직임을 쫓으며 박제된 소리를 듣는다. 눈으로 듣는 소리. 귀에선 음악이 한창이다.-조지 윈스턴? 커피숍 분위기하고는 잘 어울리는 듯싶지만 너무 흔한 곡이다. 그리고 난 뉴에이지 풍의 음악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1단락 해설] 언남고 이 버들 학생인 나는 지금, 수필을 쓰는 지금이 아니라, 과거의 그 순간의 시점에서의 지금. 즉. 커피숍이란 조그만 공간 안에서 유리벽 저편 밖으로 시선을 던진 채 유리벽 안으로 자신의 눈이란 창 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장명은 한 마디로 <적막>한 분위기인 그림입니다. 눈이란 창의 화면을 켰던 마음이 이젠 귀의 문을 열자 커피숍 안에서 자신의 귀의 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뉴에이지(신새대)풍의 음악이 펼쳐진다 합니다. 이 버들 학생의 내면의 집에 앉아 있는 <나·청소년인 나란 자아이자 주체인 영혼>는 이런 신 세대풍의 음악이 좋지 않다 합니다. **여기서 우리 예비 문예창작 연습자들은 일단 내 속의 영혼이 사는 몸집 안과 내 몸집을 둘러싼 공간인 커피숍과 커피숍 밖을 둘러싸고 있는 거리의 환경으로 분리하고 종합하는 시선의 길을 깊이 있고 다양하게 살펴보는 이 버들 학생을 본받아서 각자가 실지로 연습해 보아야 합니다. 2단락] "많이 기다렸어?" 지우씨. 미남은 아니지만 호감이 가는 용모이다. 유복하게 자라난 청년의 이미지.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은 반반한 이마라든가, 부드러운 눈썹의 곡선이라든가-따뜻하고 낙천적인 사람들 특유의 눈동자다. 2단락 해설] 이 버들 학생이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둘러싼 풍경을 관찰하고 있는 분위기를 깨는 대화 " 많이 기다렸어?"라는 누군가가 나타납니다. 우리 독자들은 누굴까 하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갑작스런 장면처리 기술이기도 합니다. 그 누군가를 설명하는 사람은 바로 수필 속의 수필가인 이버들 학생입니다. 이 버들 학생이 예전에 평가한 누군가는 <이름은 지우, 용모는 호감이 가는 형,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란 인상, 구체적으로 넓지도 좁지도 않은 이마, 부드러운 눈썹 등> 전체적으로 인물의 외면을 통해서 볼 때 내면적으로 따뜻하고 낙천적인 성격을 살필 수 있는 눈동자를 들여다 보았다고 언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 우리 숙명의 예비 문사들은 이렇게 언어로 사람의 내면적인 모습을 그리기 위해 외면적인 인상으로 묘사하는 능력을 습작해야 함을 절실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는 어떤 종류의 글이라도 기본적으로 묘사하는 능력은 기초적으로 습득해야 할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3단락] "조금" 나는 레모네이드를 입으로 가져간다. 얼음이 많이 녹아 흐릿한 맛이다. 레모네이드를 탁자에 내려놓늩데 별안간 눈앞이 화려하다. 붉고, 붉고, 또 붉은 장미꽃. 어리어리한 안개꽃 따위는 없이 장미만 선명하게 강조되어 있다. 심플하고 세련된 꽃다발이다. 3단락 해설] 이 버들 학생은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심리를 독자에게 보내주기도 합니다. <레모네이들의 맛이 흐릿하다>는 표현을 통해서이지요. 이는 작은 문장으로 나타난 행동은 전체적인 주제와 연관되어야 함을 알아챈다면 주인공의 하나하나의 행동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역시 <심플한 꽃다발>은 통해서 우리 독자들은 이 버들 학생이 만나고 있는 지우씨의 성격이 단순하단 것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수필이나 소설의 한 장면에서 펼쳐지는 행동이나 어떤 선물(물건)속에 그 사람과 보이지 않게 연결된 특징을 살펴볼 수 있게 언어의 묘사력은 적확해야 할 것임을 또한 유념해야 합니다. [4단락] "생일 축하! 열아홉 송이는 아니지만." 며칠 전 전화 통화에, 나 토요일이 귀빠진 날인데 뭐 안 해 줄 거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4단락 해설] 만화나 텔레비젼 화면에서 펼쳐지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언어로 이렇게 단 두 줄로 표현해서 <독자들로 하며금 많은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간략한 언어로 장면처리 기법>도 터득해야 할 것입니다. [5단락] "지우 씨…" 나는 무지무지 감동한 척한다. 호들갑스럽게 장미꽃을 받아 들고, 깊숙이 코를 박아 향기를 맡아보고, 가슴에 안아 보고. 그러고 보니 오늘이 진짜 내 생일이다. 문득 가슴이 찌르르 울린다. 정말 기대 못했다. 집에서 미역국은커녕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뛰쳐나왔는데. 5단락 해설] 이 장면에서 독자는 이 버들 학생의 행동을 의아히 생각할 것입니다. 아니면 여기에서 이 버들 학생만의 가면의식(겉과 속이 다르게 사는 모습)을 보고 조금은 남자친구인 지우가 불쌍함과 동시에 이 버들 학생이 나쁘다는 가치판단을 할 것입니다. 사건은 이렇듯 어떤 한 사람의 마음의 무게중심이 진리의 한 가운데(이 세상의 진실은 없을까요? 이런 거창한 문제는 철학적으로 분분한 여러 견해들이 있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양심과 감정과 지혜가 있으므로 살아가는 동안 양심의 종소리(목탁소리)를 듣는 순간의 반열(내적으로 자연스럽게 뛸 정도로 솟는 기쁨과 행복을 죽는 날까지 누린다면 더 이상 죽음의 너머의 세상에 관심둘 시간과 여건이 없겠지요)에 서 있지 않을 때 발생하기 시작해서 어마어마한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점에서 결국은 <보통 사람은 어쩌면 자신의 욕망에 속거나 남을 속이면서 살아가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문학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문학의 효용성도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결국은 문학은 태초부터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인해서 발생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어떻게는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함이 또한 문학의 참 의의일 것입니다. [6단락] "어디 갈까?" 그의 물음. 상당히 의외이다. 이제까지는 늘, 커피숍에서 잠깐 만날 뿐이었는데, 시간도 이른 편이다. 겨우 네 시. 어쩐지 불안해진다. 누군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지 않을까 하는-나는 탁자 아래에서 손을 말아쥔다. 싫다. 누구든 만나고 싶지 않다. "영화 보러 가…" 어두워질 때까지 얼굴 드러내지 않고 어둠 속에 숨을 수 있는 곳. 나는 영화관을 택한다. 사람들 가득한 길거리, 빈틈없이 내리쬐는 햇살 속에 어질머리가 난다. 저 햇살에 물방울처럼 증발해 버릴 것만 같아, 지우 씨 옆에 바싹 붙는다. 서로 마음 통한 연인들처럼. 6단락 해설] 이 단락에서 우리 독자는 이 버들 학생이 과거에 어느 커피숍에서 겪었던 시간은 4시란 것을 알 수 있다. 토요일인지 아니면 일요일인 것은 18세인 학생신분임을 통해서 추측할 수도 있다. 그리고 불과 1단락부터 5단락까지 진행된 시간은 4시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몇 분이 안 된 시간적 마다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 독자들은 이 버들 학생의 남자 친구가 어디로 가자고 하니까 <불안함>을 느낌을 직접 듣거나 손을 말아쥐는 행동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내면의 소리<싫다 싫다. 고등학생의 신분으로서 대학생과 데이트를 하는 걸 친구들이 본다면 모범적으로 어릴 때부터 가정이나 학교에서 배운 사회적인 윤리와 규범의식으로 인해서 심리적 불안감으로 진정한 내면 깊숙이에서 살고 있는 영혼의 양심의 소리임>을 우리들은 관조해야 할 것입니다. [7단락] 하나 사실은, 이번이 겨우 네 번째 만남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두 달 전 pc통신에서였지만, "생각보다 어려 보이는데--" 첫 만남, 지우 씨는 내게 어려 보인다고 했다. 난 만날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내가 쳐 보낸 말들 중에 어디가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 나 원래는 열여덟 살이에요, 하고 말할 생각은 없었다. "학교는 어디…?" 지우 씨는 내가 대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대학 생활을 꾸며 낼 자신은 없었기에, "나, 재수 중이야." 그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언뜻 비치었다. 나는 이어 말했다. "예능계 쪽이거든…재수하고 있다곤 하지만 대학을 꼭 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작곡을 하고 있어." "작곡이라고?" "클래식이 아니라면, 대중음악?" "글쌔, 모든 음악은 다 동등하다는 생각이니까…. 좋아하는 건 클래식과 메탈 쪽이고. 한다면 장르 파괴적인 음악이 되겠지만 아직은 실력이 부족해." 7단락 해설] 이 단락에서 이 버들 학생은 대학생인 지우씨를 만난 경위(통로)가 PC통신이라는 정보를 독자에게 주고 있습니다. ** 여기에서 이 버들 학생은 수필을 쓰면서 과거(수필을 쓰는 현재의 시점에서 4번째 만나는 과거)속의 과거(수필을 쓰는 현재의 시점에서 지우씨와 첫 번째 만나는 과거)속의 과거(채팅방에서의 낯선 지우씨와의 대화)의 시간과 공간 속(결국 현재 자신의 뇌 속에 기억된 기억들)으로 되돌아가서 자신의 언행을 돌아보고 있는 장면을 엿볼 수가 있을 겁니다. 그런 결과 이 버들 학생이 간접적으로 지우씨를 만난 것은 젊은이들의 탈출구인 채팅방임을 알 수가 있고 여기에서 무심코 나이를 속여 대화의 끈이 연결되었고 다시금 현실적으로 커피숍에서 만나는 인연으로까지 엮어짐을 반추해 보는 장면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버들 학생인 나와 지우씨가 처음 커피숍에서 만나 한 대화의 주요 내용은 서로간 자신에 대한 현재의 위치(나는 재수생, 지우는 대학생)와 취미(나는 클래식 및 헤비메탈과 파괴적인 음악)임을 과거(4번째 만나는 현재)에서 과거 속의 과거(1번째 만나 대화하는 장면)을 회상하는 장면입니다. **결국 여기에서 소설의 기법은 과거 속의 과거 속의 예전의 나란 존재의 말과 행동과 의식을 역추적해서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글쓰기의 순간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추억 속으로 여행을 하는 기쁨을 실감할 수 있는 문학생활임을 다시 한 번 독자들은 자각할 것입니다. [8단락] ……페이드아웃. 눈앞의 스크린에서는 페이드인이다. 무릎 위에 지우 씨가 준 장미 꽃다발이 놓여 있다. 영화관 의자에 나를 구겨넣고 미성년자 관람 불가의 영화를 본달. 별안간 성마른 웃음이 밀려나와 입술을 깨물어 참는다. 학교에서의 나를 생각한다. 먼지가 묻어 있는 얌전하고 밋밋한 구두코와 단정하게 접힌 흰 양말, 무릎을 살짝 덮는 치마길이와 늘 이름표가 달려 있는 앞주머니, 맨 윗단추까지 잠긴 블라우스. 나는 책걸상이나 교탁처럼, 사물함처럼 교실에 놓여 있을 뿐이다.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나는 범생이다. 입 속으로 되뇌이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웃기 시작한다. 소리를 죽여 가며 키득키득-마침 영화에서 우스운 장면이 나온 듯 싶다. 파도처럼 지나가는 웃음소리. 나도 같이 웃는다. 그러나 내 웃음은 금방 풀이 죽는다. 주위에서는 한참 요란하다. 점점 더 높아 가는 웃음소리, 질식시킬 것처럼 짓쳐드는 웃음소리. 그 웃음을 타고 휘리릭, 눈앞에 스케치북이 스친다. 표지에 백설공주 그림이 그려진, 초등학교 저학년용 스케치북. 8단락 해설] 과거 속의 과거에서 다시 되돌아온 이 버들 학생은 과거 속의 현재인 영화관으로 의식이 돌아옵니다. 그리고는 극장에서 펼쳐지는 영화의 스크린으로 의식의 눈이 펼쳐진다. 그러면서 머리 속으로는 다시금 < 학교에서 평소에 펼쳐지는 장면(영상)을 떠올립니다. 이는 미성년자가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인 영화관에서 비로소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이란 학생들의 배움의 공간인 교실을 밖에서 제대로 비춰 보는 것>입니다. ** 결국 우리 문인들은 <현재의 나의 머리 속에는 어마어마한 현재 내가 앉아 있는 시공간과 따로 동떨어져 있는 낯선 시간과 공간의 상상과 생각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겁니다. 그만큼 평소에 단순히 살아가는 사람의 의식의 공간을 여려 동네로 여행 할 수 있는 문학의 가치는 실로 크다고 할 수가 있음을 깨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이 버들 학생은 미성년자 가 출입할 수 없는 외딴 시공간 안에서 평소의 자신의 학교생활 안을 되돌아 보니 자조적인 웃음이 나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영화의 스크린에 새겨진 초등학교 저학년요 스케치북. 이 스케치북이 연상작용을 일으켜 다음 단락에서는 초등학교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봅니다. ** 결국 문학은 원숭이 똥구멍을 빨개-란 말을 통해서 빨간 사과의 세계로 이동하고- 사과는 맛있어 이런 식으로 연상(상상의 시공간)속으로 달려가 그 속에서 펼쳐지는 어떤 인물의 외면과 내면의 세계를 그리면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과정인 것입니다. [9단락] 초등학교 2학년 때, 아이들 손에서 손으로 날아 다니는 스케치북을 쫓아 넘어질 듯 달리는 내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새로운 놀이에 정신없이 탐닉한 그들이다. 그리고 그 놀이의 장난감은 언제나 나다. 스케치북이 땅에 떨어진다. 종이가 뜯겨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아이들의 득의양양한 표정 앞에 내가 있다. 나는 몸을 굽혀 스케치북을 줍는다. 싫다. 아아, 싫다. 스케치북에 묻은 학교 운동장의 모래를 징그러운 벌레라도 되는 것처럼 털어 내며 중얼거린다. 없어져 버리고 싶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단지 어디론가 꺼져 버리고 싶다는-아예 세상에서 내 모습을 지워 버리고 싶다는-다른 아이들은 전학 와서 잘도 어울리던데, 나는 왜 그러지 못했던 걸까. 9단락 해설] 9단락에서 우리는 이 버들 학생의 깊은 과거를 살펴 볼 수가 있습니다. 결국 체면이라도 걸면 초등학생으로 되돌아가 본 과거 속의 또 다른 과거인 어린 시절의 상처를 되돌아볼 수가 있듯이 이 버들 학생의 초등학교때의 상처라면 상처가 있습니다. 이는 바로 초등학교때 새 학교로 전학을 왔는데 아이들이 일부러 이 버들 학생엑 굴욕을 느낄 만한 장난을 쳐서 내심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추억을 바로 영화속에 펼쳐지는 또 다른 공간과 겹쳐지는 자신 만의 또다른 추억을 통해서 <현재 고등학생으로 미성숙한 나로서는 내면에서 솟는 <죽고 싶다>란 가짜 콤프랙스의 목소리가 이 버들 학생을 지배하고 있는 걸 보고 있을까요? 바로 이 시점입니다. 글을 쓰는 펜은 진정한 나란 누구인가를 찾는 싸움. 분명 죽고 싶다라고 말하는 존재는 진짜가 아니고 가짜임을 우리는 알아야 하고, 여기에서 과거를 되돌아봄으로 인해서 그 동안 그 과거들의 상처들의 노예로 지금까지 살아온 나는 아닌가 하는 반성으로 자신을 바로 직시해야 참 자기를 찾는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는 문학의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너무도 고통스런 작업이지만 이 단계를 뛰어넘어야 진짜로 어른(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본 지도 강사 중촌은 이 시점에서 이 버들 학생은 아직 자신의 상처를 볼 뿐이지 다스리지 못하는 나이를 속이지 못한다고 단언합니다. 다음 단락을 보면 알 수 있으 것입니다. [10단락] 나는 허리를 펴 상체를 세웠다가 다시 의자에 나를 끼워 맞춘다. 영화관 의자는 비좁다. 시선을 스크린에 고정시킨다. 영화는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옆자리의 지우 씨를 흘끗 쳐다본다. 잔뜩 열중한 모습. 나도 영화에 푹 빠진 모습을 연출하려다가, 무릎 위에 놓여 있던 꽃다발이 굴러 떨어졌다는 걸 알아차린다. 앞 의자와 내 다리 사이에 빠진 장미꽃을 주우려 몸을 굽히다가 엉겁결에 발로 차내어 버린다. 옆쪽ㄷ으로 굴러가 줍기가 영 고약하게 생겼다. 나는 지우 씨에게 상체를 기울이고 속삭인다. "꽃다발 좀 주워 줘. 떨어졌어." 지우 씨는 나처럼 실수하지 않고 수월하게 꽃다발을 주워 내게 건네준다. 스크린의 희미한 빛에 기대어 꽃다발을 들여다본다. 꽃 몇 송이가 조금 찌그러진 듯하다. 무심결에 손을 뻗어 바로잡으려다가 그만둔다. 무릎 위에 꽃다발을 올려놓고 지우 씨의 옆얼굴을 다시 쳐다본다. 그를 좋아한다. 지나가는 말로 알려 준 생일을 기억해서 장미 꽃다발을 선물해 주는 남자. 낭만적이고, 아주 박식하지는 않아도 웬만큼은 알고 있고-토니 매칼파인은 몰라도 잉위 맘스턴은 알고 있다-그리고 무엇보다 남을 배려해 주는 사람이다. 대체 내 어디가 마음에 들었는지 불가사의할 정도이다. 그에게 내가 했던 말을 잠깐 떠올려본다. Pc통신에서, 첫 만남에서,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에서 내가 했던 말을. 한 이야기라곤 음악이나 문학 이야기뿐인데, 그리고……. 10단락 해설] 이 단락에서 이 버들 학생은 대학생인 지우씨가 선물한 꽃다발이 떨어진 것을 보고 <<<엉겁결(((무의식으로 잠재한 상처들)))>>>에 발로 차 내버리는 행동을 합니다. 이는 내면(((무의식))) 깊숙이 <<사랑결핍증=초등학교 전학 왔을 때 아이들한테 받았던 상처들>>의 추동적인 행동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지우씨가 진짜로 자신을 사랑하는지 떠보듯 다음의 지우씨의 행동을 유도합니다. <여자의 사랑 확인증이라고 할까요?> "꽃다발 좀 주워 줘. 떨어졌어"라고 말하자 지우는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주워줍니다. 이런 행동을 보고 이 버들 학생은 <그를 좋아한다. 지나가는 말로 알려 준 생일을 기억해서 장미 꽃다발을 선물해 주는 남자. 낭만적이고 아주 박식하지는 않지만 웬만큼은 알고 있고........무엇보다 남을 배려해 주는 사람>으로 예찬하면서 순간, < >안에 이상이 들어있는 이 버들 학생의 마음의 문이 열려 지우씨를 받아들입니다. 이는 사랑의 위대성을 다시금 실감(증명)하는 장면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 초등학교 때만의 이 버들 학생의 상처로 지금 이상한 행동을 할까요?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 봅시다. [11단락] 두 번째 만남에서였다. 어쩌다가 문학 얘기가 나오고, 유미리 쪽으로 화제가 옮아갔다. 유미리의 소설의 테마는 가족. 나는 말했다. "난 사생아야.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난 아빠가 돌아가신 줄 알았지만-호적에 넣는 것도 1년을 사정했다고 하더라구. 물론 난 아들이 아니었으니까 본기에 들어가는 영광 따위는 누려 보지 못했지." "아……." 지우 씨는 할말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일기예보를 보니까 내일 비가 온 대, 라고 말한 표정으로 그를 살폈다. "놀랐어? 이런 얘기 해서." "아, 아니……." 그는 자꾸 뭔가를 말하려 하다가는 굳어져 버렸다. 나는 명랑하게, "왜 그래? 이건 그냥 흔한 이야기일 뿐이야--" 지우 씨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아 참, 신촌에 라이브 카페 새로 생긴 데가 있다던데……." 가벼운 어조였지만 꾸민 티가 드러나는 날이었다. "아…… 미안해. 오늘 집에 일찍 들어가 봐야 해." 그날, 그는 처음으로 날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이제 들어가라. 전화하고." "지우 씨도." "아 그리고 아까 네 얘기……." 그는 잠깐 말을 끊고 내 손을 살짝 쥐었다. "집안 사정에 너무 신경쓰지 말고. 알았지?" 그때, 그가 격려하듯 잡아 주었던 그 손길의 다사로움을 기억한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안온함을 다시 떠올렬 본다. 적당히 은밀하고, 적당히 감미로운. 그러나 채 음미하기도 전에 눈꺼풀 사이로 찌르는 듯한 빛살이 일렁거리며 날 현실로 끌어 낸다. 11단락 해설] 다시금 과거 속의 과거인 두 번째 만남에서 이야기 화제인 유미리의 소설로 대화의 문을 열다가 "난 사생아야.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난 아빠가 돌아가신 줄 알았지만-호적에 넣는 것도 1년을 사정했다고 하더라구. 물론 난 아들이 아니었으니까 본가에 들어가는 영광 따위는 누려 보지 못했지만-호적에 넣는 것도 1년을 사정했다고 하더라구. 물론 난 아들이 아니었으니까 본가에 들어가는 영광 따위는 누려 보지 못했지."란 태어날 때부터 뭔가 잘못된 깊고도 깊은 상처를 선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가족사적인 집안 사정(환경의 문제)으로 인해 이 버들 학생의 내면에도 상처가 자리잡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지우는 손을 꼭 잡아주면서 이 버들 학생의 고통을 사랑으로 보듬어 주었습니다. [12단락] 갑작스런 점등. 검어진 스크린. 일어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둘러보다가, 깜짝 놀란다.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닿아 온 탓이다. "……영화 어땠어?" 지우 씨구나. 나는 놀란 게 창피해진다. "영화? 응……재미있었어." "그래? 난 별로던데." 흠칫 놀라는 바람에 또 떨어뜨린 꽃다발을 지우 씨가 주워 준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처럼 오른팔로 안아 들지만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아름답고 향기롭지만 망가지지 않도록 신경를 써야 한다. 사람들 속에 섞여 영화관 계단을 내려오며 지우 씨는 내게 영화에 대한 감상을 뭐라구뭐라구 얘기한다. 후반부로 가면 긴장이 떨어진다고. "난 잘 모르겠어. 작막을 하나도 안 읽었거든." "뭐?" "난 원래 영화 볼 때 자막 안 봐. 영상이 마음에 든다 싶으면 나중에 비디오로 빌려서 그땐 제대로 자막까지 보지." 사실은 텔레비전을 볼 때도 드라마는 보지 않는다. CF나 뮤직비디오만 찾아 보고, 가끔 소리를 끝까지 줄인 뉴스를 본다. 아나운서의 입만 벙긋거리고 무슨무슨 정상회담, 누구 누구 탈당 같은 자막만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어디 어디의 수질오염 심각, 불법 심야 퇴폐영업 등등. 12단락 해설] 사랑의 힘은 여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걸까요? 이 단락에 오면 이 버들 학생은 과거(영화관에서의)속의 과거(첫번째 만남에서의)에서의 그 손을 잡아주었을 당시의 따듯한 안온함(고향)을 떠올립니다. 그리고는 지우가 어깨에 손을 얹는 순간 다시금 현재로 돌아온다. 13단락 해설] [11]단락을 지나온 현재의 이버들 학생은 과거 속의 이 버들 학생은 아직도 자신의 상처의 실체를 못 보니 무슨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과거 속의 현재는 질풍노도의 시기인 고등학교 3학년생. 내면으로는 보이지 않는 고통이 있고 한편으로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데이트를 할 때가 아닌데 그것도 속이면서 대학생을 만나고 있는 자신이 싫어서일까요? 지우는 영화가 어땠냐고 물어보지만 형식으로 재미있다고 말합니다. 한편으론 누구난 느끼는 사회적 병든 부분인 <수질 오명, 불법 심야 퇴폐영업> 등의 복합적인 문제로 혼란한 사회인으로 접어들기에 한편으론 두려운 고 3의 기간이 정답이 아닐까요? 다시금 본격적인 생일축하의 장소인 카페에서의 장면을 통해 이 버들 학생의 고 3인 내면의 풍경을 살펴봅시다. [13단락] 밖에는 희뿌연 어둠이 고르게 내려 있다. 촘촘히 박힌 네온사인은 벌써부터 점멸하기 시작한다. 나는 지우 씨를 지하에 있는 카페로 내려간다. 이런 곳은 처음이지만,ㅓ 별로 낯설지는 않다. 단지 텔레비전에 나왔던 것만큼 인테리어가 훌륭하지 못한 것이 흠이다. 한쪽 벽면에 크게 박힌 스크린이 인상적이다. 스크린에서 흘러 나온 파란빛이 카페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음악은 록인 듯하고, 스크린의 영상과는 무관한 것 같다. 스크린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푸른빛에 물든 지우 씨의 얼굴. 붉은 장미꽃이 보랏빛으로 타오른다. 13단락 해설] 들어가자 마자 독자들이 카페 안의 풍경을 살필 수 있도록 언어로 묘사한 부분입니다. [14단락] 가슴이 뛰어 시선을 내렸다가 카페 안을 휘-둘러본다. 저쪽 구석, 담배 연기에 가리운 얼굴이 앳되어 보인다. 꽤 진한 화장이지만--그리고 이쪽에도.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데도 아까보다 더 세차게 가슴이 뛴다. 나 역시 화장으로 나이를 가렸다. 날라리. 낮엔 범생이, 밤엔 날라리라. 진부하다. 눈에 띄지 않고, 말이 없고, 수업 시간에 가끔 자기도 하고, 하루에 한 번씩 매점도 갔다 오는--범생이라기에도 너무 평범한 나다. 14단락 해설]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들어온 이상 가슴이 뛰는 내면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평범한 일반 고등학생과 다를 바 없는 이 버들 학생이었음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15단락] 친구는, 같이 다니는 아이들 두서넛. 하는 이야기는 시험 이야기나 학원 이야기. 초등학교 2학년 때 전학온 후 몇 년을 겉돌다가 겨우 6학년이 되어서야 아이들 사이로 파고들 수가 있었다. 철저하게 같은 행동, 철저하게 같은 이야기로. 거죽의 나야 무슨 이야기를 한들, 누구와 어울린들 무슨 상관이랴. 점심을 같이 먹는 친구, 체육 시간에 같이 나가는 친구, 매점에 같이 가는 친구. 어쩌다 가면이 벗겨지면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외계의 언어들을 그들은 이해 못하였고, 나는 내 유령의 영혼을 씁쓸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5단락 해설] 다시금 초등학교 시절을 되돌아 보는 자기 자신을 분석하는 단락입니다. 즉, 초등학교 2학년 때에 전학을 와서 초등학교 6학녀에 들어서야 학교에 적응을 했다는 자신의 심적 고통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4년이란 기간 동안 이 버들 학생은 외로움의 공간 속에서 탈출해서 <철저하게 같은 행동, 철저하게 같은 이야기, 점심을 같이 먹기, 체육 시간에 친구와 같이 나가기, 매점에 친구와 같이 가기를 진정으로 혼자있고 싶은 자기와 반대되는 가면을 쓰고 성격을 개조했다>는 부분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자신이 타고난 <<외로움의 실체>>를 완전히 벗을 수가 있었을까요? 죽음을 넘어서 영원한 해탈의 경지로 들어가려고 수행한 성철 스님은 철저하게 고독해 봐야 한다고 했고, 문학으로 위대한 사람으로 성장한 문인들도 다들 철저히 자기 자신만의 외로움과 싸워서 승리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문학의 중요한 소재인 외로움이 등장함을 문학을 하는 우리 숙명인들은 깊이 숙지해야 합니다. 외로움을 극복하면 참자유인으로 더이 상의 외로움 대신에 역설적으로 무한한 기쁨이 오는데 이 버들 학생은 벌써 그 수준까지 올 수 있을까요? 다음 단락을 지켜 봅시다. [16단락] 가끔 평범한 우정에 진실로 행복하다가도 느닷없이 다가드는 예감--나는 영원히 혼자이리라고.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만 그들은 절대 나를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아무리 사랑해도 결국은 남일 뿐이리라고. 16단락 해설] 다시금 가면을 벗으면 <나는 영원히 혼자이리라고.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만 그들은 절대 나를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아무리 사랑해도 결국은 남일 뿐이리라고.>라는 생의 근본적인 물음으로 자기의 존재에 대한 탐구로의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17단락] "……실래?" 지우 씨 목소리. "뭐라구? 미안해. 잘 듣지 않았는데." "뭐 마실 거냐구." "응? 레모네이드……." "칵테일은?" "나 술 못 마셔……." 지우 씨는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칵테일 이름을 댄다. "술 못 마신다니까!" "칵테일이 술이니?" "……갈래,"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휙 스친다. 17단락 해설] 지우씨와 겉으로 일상적인 대화를 합니다. 그러나 역시 내면으로 <나란 혼자인데 누굴 또 만나고 있는가?>란 철학적인 물음으로 가득차 있는 이 버들 학생은 현실적으로 고 3인만큼, 그것도 신분에 맞지 않는 카페에 들어온 이상 술을 마시라는 지우의 권유에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가치판단이 지극히 정상적인 학생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여기에서 본 지도 강사가 잠시 끼어 들어도 될까요? 수백만의 시공간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때는 엉뚱한 시공간에 갇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나 일이나 상황에 갇히면 다름아닌 지옥이자 감옥이자 무덤인 것입니다. 그만큼 내 생활의 공간인 참 자유롭고 행복이 샘 솟는 시공간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이런 세상은 다름 아닌 마음속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무한한 욕망의 존재이므로 욕망은 한 없이 채워도 바깥 세상에선 참 자유를 찾지 못하겠지요. 물론 기본적으로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사람으로서 살 수가 있다는 대전제는 부정해서는 안 되지요. 그렇지 않으면 동물 이하의 존재로 떨어지니까요. [18단락] "너무 늦었어……." 지우 씨는 정색을 한다. "앉아 봐. 오늘 생일이잖아. 그리고 이제 겨우 일곱 시라구." 어느 새 칵테일 두 잔이 앞에 놓였다. 오른켠에 장미의 선명한 빛깔, 그리고 자그마한 생일 케이크-성냥개비 두 개를 이은 것 같은 양초 열아홉 개. 퍽이나 낭만적인 풍경이다. 지우 씨가 상체를 숙여 라이터로 불을 붙이기 시작한다. 불을 붙일 땨마다, 양초의 불그림자가 그의 얼굴에서 일렁인다. 오렌지빛 불빛이 몰두해 있는 그의 얼굴을 밝힌다. 무슨 경건한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 같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까지 엄숙하게 했을까.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 자그마한 케이크는 열아홉 개나 되는 촛불에 휩싸여, 아예 큰 양초 하나가 되어 버린 듯하다. 까페에서 틀어 주는 생일 축하곡이 울리고, 나는 자꾸자꾸 목이 메인다. 그는 정말로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것일까. 18단락 해설] 다시금 이 버들 학생의 외면에 펼쳐진 생일축하의 장면을 묘사한 부분입니다. 누구나가 태어난 날을 축하하는 생일날에 그저 기뻐해야 행복한 삶을 사는 정도일지 모르지만, 이 버들 학생은 자신의 내면은 복잡하여 괴로운데 그렇게도 자기(이 버들 학생)을 좋아하는 단순한 지우(대학생)는 <무엇이 그를 그렇게까지 엄숙하게 했을까>라고 물어봅니다. 그리고는 생일축하를 해주는 지우로 인해서 한편으론 행복해하지만, <그는 정말로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것일까>라고 <<<사랑이란 무엇일까>>>라는 화두로 다시금 의문을 품습니다. 청빈 강의--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누려라. 이보다 따른 진리는 없다란 말입니다. 문학은 자칫 죽는 날까지 생의 의문을 품는 작업이라 할 수가 있는데 문학을 한 사람 치고 행복하게 살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행복은 그대로 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문학을 잠못 하는 사람은 요절하기 일수고 몸에 병을 불러오기 일수고 평생 고생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문학을 통해 생을 즐기는 법을 터득해야지, 문학을 통해 죽음의 길을 걸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문학은 그만큼 가시밭길을 걸으면서 삶의 진리를 찾으러 걷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19단락] 나는 턱을 괴고 타오르는 열아홉 개의 촛불을 바라본다. 핑크색, 연두색, 노란색의 양초. 케이크에 촛농이 굴러 떨어진다. 휜 케이크에 말라붙은 화려한 눈물 방울들. 지우 씨가 내 시선을 붙잡으며, "촛불 안 꺼?" 끄기는 꺼야겠지. 고개를 숙여 입을 가까이 갖다 대고, 후-후- 몇 번을 불었는데도 양초 몇 개가 끈질기게 남아 있다. 나는 일부러 남겨 둔 척, "나머지는 지우 씨가 꺼 줄래?" 지우 씨의 입김이 나머지 촛불을 쓸어 버리자 스크린에서 흘러 나온 빛이 다시 차오른다. 꽤 현란한 빛깔이다. 뮤직 비디오. 아름다운 영상이고, 노래는 발라드 계열이다. "생일 축하해……." 노래가 조용한 탓인지 낮은 목소리인데도 똑똑하게 건너온다. 그의 표정이 진지하다. 내 시선을 계속 붙들어 두려 한다. "우리, 사귀자. 정식으로." PC통신에서도 그는 꼭 이런 말은 쳐 보냈다. 우리, 만나자. 친구 하면 잘 맞을 것 같아. 그 말을 너무 쉽게 받아들였던가. 친구 사이의 솔직담백한 우정도 부담스러운데, 연인이라니. "칱구라더니?" "네가 좋다. 마음에 들어." "지우 씨 취미 되게 독특하구나?" 그가 미세하게 긴장한다. "좀 특이한 걸 좋아하는 것 같애, 지우 씨는." 나는 무심한 척 칵테일이 담긴 술잔을 손가락 끝으로 내리긋는다. "그런 게 아니야……." 지우 씨의 말꼬리를 잘라먹듯 턱을 번쩍 치켜 들곤, "친구 중에 인도에 간 애가 있어." "……" "찾아가 볼까 생각중이야." "뭐……?" "아니면 작곡 공부를 머리 터지게 해 보던가." 그의 얼굴의 음영이 더 짙어진다. 나는 말 마디마디를 똑똑 부러트리듯이, "아마 계속 집에 없게 될 거야. 그러니 삐삐, 전화, 편지 일체 하지 말아 줘." "무슨……뜻이지?" "말 그대로야." "……혹시, 사귀자는 말 때문에?" 19단락 해설] 이 버들 학생은 다시금 촛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금 여성의 심리적 특성일까요? "나머지는 지우 씨가 꺼 줄래?"라고 지우씨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려는 애교를 부린다고 할까요? 지우씨는 모든 남성은 여자를 정복하려고 한다는 듯이 "우리, 사귀자. 정식으로"라고 친구사이에서 연인 사이로 진전하려 합니다. 그러나 아직 고등학생인 의식의 틀로서는 성인들의 영역과는 장벽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버들 학생은 당연히 사양을 합니다. 그때마다 지우를 관찰하는 이 버들 학생의 섬세한 감수성과 관찰력은 미울만치 예리하고 뛰어납니다. 그리고는 실망하는 지우를 달랠 겸 아니면 감옥같은 카페에서 나올 수 있는 대화의 창구를 엽니다. 그러나 지우(남자)의 감수성은 그렇게 무디지만 않습니다. "… 혹시, 사귀자는 말 때문에?"라는 말로 되묻지요. " [20단락] 나는 침묵한다. 발라드가 끝난 짧은 순간, 완벽한 정적, 예리한 흉기를 품은 정적. 지우 씨가 입을 여는데 마악 곡이 새로 시작된다. 헤비메탈 중에서도 가장 시끄러운 장르의 노래인 듯. 그는 무얼 열심히 말하는데 음악에 가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어쩌면 내 귀가 받아들이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겐 그의 호감이 버겁다. 사랑해요 좋아요 말해서 어쩌자는 건가. 사소한 말 한마다, 가벼운 행동으로도 상처입고 자그마한 호의로도 세상 온갖 것이 환해지는 그런 감정의 변덕은 내게 너무 피곤한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연연해하다가도 서로 헤어질 때에는 사랑했다는 말 한마디만 남길 뿐이고, 그 말은 그대로 지독한 아픔이 되었다가 아련해져 버린다.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채. 어차피 급히 이어 붙인, 오래 가지 못할 가면을 빌어 만난 그. 이제 돌아가야 한다.; 더 마음 주기 전에. 돌아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학교로, 학원으로, 집으로, 일상의 가면 속으로. 지우 씨 앞에서의 가면은 벗어 버리고, 평범한 열여덟 살 여고생으로. 나는 음악에 엉기어 있는 그의 말을 집어 내려 귀를 기울인다. 그는, 지우 씨는 진지하다……. "……이상하게 관심이 끌려. 특이한 걸 좋아ㅗ한다고? 네 말이 맞는지도 몰라. 어쨌든 너에 대해 알고 싶어. 좋아하고 있고."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앞으로 연락 같은 건 말아 줘." 왜? 라고 묻는 그의 눈빛, 나는 외면하고 일어선다. 안녕. 꽝꽝 울리는 헤비메탈에 내 발자국 소리를 새겨 넣으며 까페를 빠져나온다. 20단락 해설] 이 버들 학생은 침묵합니다. 그리고 새로이 변화된 분위기에 따라 헤비메탈 장르의 노래가 나옵니다. 음악의 공간영역(나라, 세계)으로 호감이 더 가는 이 버들 학생은 지우의 말소리의 공간영역(나라, 세계)으로 빠져든 이 버들 학생은 지우의 호감이 감당이 안 될 미성숙한 학생인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통의 고등학생들보다 더욱 성숙했기에 이 글을 썼듯이 다음과 같이 사랑과 말과 행동보다 감정의 변덕에 대해 질문합니다 <사랑해요 좋아요 말해서 어쩌자는 건가. 사소한 말 한마디, 가벼운 행동으로도 상처입고 자그마한 호의로도 세상 온갖 것이 환해지는 그런 감정의 변덕은 내게 피곤한 일이다라고>말입니다. 그리고는 사랑의 대한 세게관도 <서로가 연연해하다가도 서로 헤어질 때에는 사랑했다는 말 한마디만 남길 뿐이고, 그 말은 그대로 지독한 아픔이 되었다가 아련해져 버린다.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채.>라고 마치 벌써부터 인생을 다 살았다는 듯이 관념적으로는 말합니다. 그리고는 이제 자신의 본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학교로, 집으로, 일상의 가면 속으로. 지우 씨 앞에서의 가면은 벗어 버리고, 평범한 열여덟 살 여고생으로.>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무작정 좋으면 목숨 다 바쳐서 사랑한다고 하려는 지우를 포기하고 카페를 탈출하는 장면입니다. [21단락] 또각또각, 또각또각-까페의 문을 밀치고 나오니 완연한 정적이다. 검은 밤. 네온사인에 얼룩진 밤. 숨어들고 싶어도 희게 더럽혀진 어둠은 나를 받아 주지 않는다. 그래도 조각난 어둠 속에 얼굴을 숨기고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걷는다. 어디선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밤의 내음. 음습한 바람이 내 몸을 한 바퀴 감싸돌고, 내 가슴에 물기를 떨궈 놓는다. 뭐지, 이 축축한 느낌은? 익숙치 않은 감정이다. 그러나 무시하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계속 걷는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이지러진 밤의 얼굴. 나는 버스 정류장의 표지판을 올려다보며, 몇 번을 타야 하는지 헤아린다. 21단락 해설] 그러나 그래도 자신의 감정을 속일 수가 없을까요? 사랑이란 자신도 모르게 축축한 느낌으로 시작되는 것일까요? 익숙치 않은 감정을 선보일까요? 그러나 강인한 의지로 환영의 순간을 벗어나려는 이 버들 학생의 내면의 혼란함이 밖의 어두운 풍경인 <검은 밤. 네온사인에 얼룩진 밤. 숨어들고 싶어도 희게 더럽혀진 어둠은 나를 받아 주짖 않는다. 그래도 조각난 어둠 속에 얼굴을 숨기고 버스 정류잔 쪽으로 걷는자. 어디선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밤의내음. 음습한 바람이 내 몸을 한 바퀴 감싸돌고, 내 가슴에 물기를 떨귀 놓는다. 뭐지, 이 축축한 느낌은? 익숙치 않은 감정이다. 그러나 무시하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계속 걷는 다>라는 장면은 언어로써 내면의 감정풍경을 적확하게 펼치는 장면인 것입니다. [22단락] 그런데, 별안간. "여기 있었구나. 한참 찾았어!" 오래도록 뛰어다닌 것처럼 가쁜 숨소리. 어둠 위에 뚜렷이 양각된 그의……. 나는 가만히 눈을 깜빡거린다. 낯설다.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꽃다발," 그가 숨차게 들고 뛰어왔을 당미 꽃다발을 내게 안긴다. 나는 얼결에 두고 나왔던 꽃다발을 받아 안는다. 지나가는 차의 헤드라이트에 일그러진 장미꽃 몇 개가 드러난다. 차츰차츰 정신이 돌아온다.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지우 씨. 나를 쫓아온 거야. "대체 왜 그러는 거지?" 뒤집으면 사귀자는 소리다. 이대로 헤어질 수 없다는--내 어디가 마음에 들어서? 나는 장미꽃 사이에 얼굴을 묻고 숨을 들이쉰다. 진한 향기가 나른하게 폐를 찌르고, 애써 무시한 물기 어린 느낌을 건드린다. 아름답지만 망가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나는 고개를 번쩍 쳐들고, "나 말이야."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눈이 시리다. "나 말이야, 사실은 열여덟 살이야. 오늘은 만 열일곱 생일이구." 내게 장미꽃을 안기느라 엉거주춤 공중에 머물러 있던 그의 손이 풀썩 아래로 떨어진다. 어둠에 가리어 그의 얼굴은 제대로 볼 수 없다. 나는 마침 달려온 버스에 오른다.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는 모른다. 창 너머로, 점점 멀어지는 그.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 지우 씨. 난 스무 살도 아니고 사생아 운운한 것도 모두 거짓말이었어. 그건 전날 읽은 소설의 내용이었다구. 우리 집은 아빠 엄마 다 계시는 보통의 집과 다를 게 하나도 없어. 그리고 인도에 간 친구 따위 있지도 않아. 다만 음악 얘기는…… 작곡을 한다는, 하고 싶다는 얘기만은 사실이었어. 그 얘기만은. 22단락 해설] 지우는 다시금 이 버들 학생을 따라온 장면입니다. 지우는 둘만의 순수한 사랑의 등가물이자 상징인 <꽃다발>을 다시금 이 버들 학생에게 건네 줍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버들 학생은 지우가 싫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듯이 다시금 꽃다발을 받습니다. 이는 <나는 장미꽃 사이에 얼굴을 묻고 숨을 들이쉰다. 진한 향기가 나른하게 폐를 찌르고, 애써 무시한 물기 어린 느낌을 건드린다. 아름답지만 망가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라는 마음속의 고백은 현실적인 장벽에 억눌려 진실한 사랑을 포기하는 장면으로 기어코 인간 본연의 마음인 양심을 회복하는 <진실고백>의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면 이 버들 학생이 쓴 이 작품은 엄연한 수필이 아니라 완전히 본 지도강사를 속인 소설임이 확실합니다. 사실은 이 버들 학생은 열일곱 살이라고 고백하고는 버스를 탑니다. 그러나 버스 안에서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 지우 씨. 난 스무 살도 아니고 사생아 운운한 것도 모두 거짓말이었어. 그건 전날 읽은 소설의 내 었다구. 우리 집은 아빠 엄마 다 계시는 보통의 집과 다를 게 하나도 없어. 그리고 인도에 간 친구 따위 있지도 않아. 다만 음악 얘기는…… 작곡을 한다는, 하고 싶다는 얘기만은 사실이었어. 그 얘기만은> 이 잘못을 뉘우치는 내면의 고백을 통해서 본 본 지강사박수필은 이 버들 학생이 수필이 아니라 소설을 썼다고 보아야 하는 이유는 만일 이 작품이 수필이라면 수필로서의 본 면목을 속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겉과 속이 다른 이 버들 학생이 뒤늦게서야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실지로 이 버들 학생은 당선 소감문에서 [ 내게 이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처음 소식 들을 때만 해도 기쁘기만 했는데, 지금은 너무 부담스럽다. 내 안을 채우고 있는 허영심 같은 것들, 내가 과연 진실된 글을 쓰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 그 동안 헛된 욕심에 사로잡혀 거짓말만 늘어놓은 게 아닌가 하는…….]이라고 전 국민 앞에서 <꽃다발>이란 작품은 내면의 진실한 소리인 수필이 아니라 <거짓 수필>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눈치챌 정도면 수필의 진실성을 볼 줄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다음의 수상소감인[이제부터는 내가 정말 깨달은 것, 진실된 것만 쓰도록 노력해야겠다. 난 아직 진실된 게 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잘 알짇 못하면서 글을 쓴다고 나댄 게 너무 후회스럽다. 소설은 내 유일한 구원이었다.]라는 수강소감을 보았을 때 본 지도강사 박수필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다면 이 학생의 글은 누가 써 주었나? 수필을 소설로 썼다니? 했는데, 세상에 이 작품의 장르는 애초부터 수필이 아니라 소설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본 지도강사가 수필이라고 믿고서 지금까지 해설해온 결과 수필로 보이다가 결국에는 소설로 보인 결과 수필과 1인칭 소설의 근본적인 차이인 거짓과 사실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본 지도강사도 오로지 진실과 솔직만을 배워온 터라 허구와 거짓이란 개념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소설을 이해하지도 쓰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본 지도 강사는 소설은 한 편도 못 씊 영혼의 소유자인 걸 터극했지만 우리 문사들은 이 지점에서 난 수필로 갈래, 아니면 난 소설로 갈 수 있어-어차피 인생은 소설같은 일이 발생하기에 하고 수필과 수설로 나뉘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23단락] 나는 어딘지 모를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검은 밤에 나를 맡긴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만 강렬한 곳, 축축한 바람이 자꾸 날을 세운다. 그 날에 찔린 것처럼, 가슴 한복판이 아리다. 힘들여 치워 놓았던 기묘한 감저이이 엄습해 온다. 그가 안겼던 장미꽃을 내려다본다. 장미…… 붉은 장미꽃. 이게…… 무슨 느낌이지. 나는 자문해 본다. 그를 정말 좋아하고 있었나. 나는 순간 당황한다. 내 감정에 배신당한 기분이다. 그러나……그러나. 처음부터 가면을 빌어 만난 그, 차라리 이게 낫다. 잘못이라면 좀 더 일찍 그만두지 못한 데에 있달까. 그저 아주 조금 아플 뿐인 것이다……아주 조금. 한잠 자고 일어나면 깨끗해질 가벼운 감기 정도일 뿐. 미안해……미안해요. 나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리며, 바람에 젖은 길바닥 위에 꽃다발을 떨구었다. 23단락 해설] 이제부터 수필이 아니라 소설로 접어든 우리는 나란 소설 속의 주인공의 내면풍경을 다시 살펴 봅시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나는 지우씨가 안겨주었던 장미꽃을 내려다봅니다. 그러면서 <장미……붉은 장미꽃. 이게 무슨 느낌이지>하고 자문해 봅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그릴 정말 좋아하고 있었나?>라고 묻습니다. 결국 <사랑>이란 감정의 실체를 되묻고 있는 장면입니다. 결국 고 3학생의 실제 사랑에 대한 경험이 없고 짝사랑 차원에서나 간접적인 경험으로나 사랑의 감정을 경험한 이 버들 학생소설가가 설정한 나란 소설 속의 1인칭 주인공 화자는 <도덕적으로 학생의 신분으로서 그저 아주 조금 아플 뿐인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고 술회하면서 자신의 본 자리로 되돌아감을 알 수가 있습니다.
----------------------------------------------------------------------------------------- 본 지도교사 박수필은 수필 창작에 소설 기법의 도입을 주장하면서 수필로 쓰여진 줄 알았던 꽃다발의 작품을 <22>단락에서야 소설임을 밝혀 내었다. 그만큼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글이 쓰여질 경우는 수필과 소설의 차이점을 반결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수필이나 소설이 다 자신의 자신을 반성한다는 측면에서 교훈적인 의미가 있음을 공통적으로 가지는 문학의 성질이다. 더구나, 고등학교 3학년인 이 버들 학생이 자신의 실제경험이 아닌 가상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잠시 재수생이 된 자신으로 치환하여 대학생인 남자 지우를 만나고서 자신의 내적인 상처들의 원인을 찾으며 사랑의 필요함을 느끼면서도 끝내 고등학교 학생의 세계로 되돌아가고 마는 안일주의 소설로 귀결되는 소설을 썼다고 결론 지으면서 처음에 수필로 보니 수필로 보였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앞 뒤가 맞지 않는 고백을 듣고서야 소설임을 자각할 때 애초에 학교에서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이 형성된 본 지도강사 박수필은 대학교대에서야 허구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었는데서 수필과 소설의 차이점을 찾아낸 바, 이번 이 수필같은 소설을 통해서 숙명의 예비 문인들은 진실한 소리는 소설보다 수필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을 거라고 보면서 어디까지가 수필이 될 수가 있고 어디서부터 소설이 될 수 있는지 질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