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서화와 벗하며
최무순
나는 일생토록 서화(書畵)만을 정도(正道)로 여기며, 과욕없이 살아온 것이 큰 보람과 긍지로 생각된다. 고교시절 안동에서 서화개인전을 열었고,
대학에서는 저명교수(金容元, 藍丁朴魯壽)의 사사(師事)로 한국화를 익혔으며, 공군사병 복무중에공군본부 주관으로 한글학회와 한국일보 후원의 서예개인전을 한국신문회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으니, 이는 KBS TV 보도의 효과가 컸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공군의 지원과 협조로 기미독립선언문 10폭병풍 100여 점을 제작하여 국내외 저명인사에게 증정한바 있는데, 로버트 S 맥나마라 미 국방장관,
그리고 죤 P 맥코넬 미 공군참모총장에게도 기증되었으며, 쿠엔 카오 키 월남공화국 수상에게 증정된바 있을뿐아니라, 국내 고위 인사에게 독립선언문 병풍과 애국혼이 담겨진 족자를 널리 증정하기도 했다.
또한 덕수궁 돌담 곁의 국립공보관 화랑에서 개최된 개인전에 한학자 임창순(靑溟 任昌淳)옹이 참관해 주었고, 언론인 송지영(宋志英)선생은 독수일치(獨樹一幟)의 명구(名句) 한편을 초서로 서첩에
남겨 주었다.
조달청 공무원과 대림산업에 장기근속중에는 바쁜 직무 탓으로 취향의 서화를 접어야했던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공사직(公私職)에서 물러나자 마자, 미술대학 유명교수(郭錫孫 미협 이사장 출신)로부터 문인화를 사사받았고,
원로문인 몇분의 등단 권유에 따라 문단에 참여,
한국문인협회 청송지부 회장으로 선임되어 지금껏, 문학단체에 동참하고 있으나, 글 짓는 재주가 미흡한 터라,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젊은시절의 서화창작이나 노령의 문단참여는 천만다행스런 소일거리라 생각된다.
반세기전 안동에서 개최된, 첫 서화전을 선비고을 시인(虛度 申淳卓)답게 축시 한편을 영남일보에 실었는데, 그 시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4월의 화원(花園)
봄은 왔다/또 4월도 왔다/혁명의 피 번졌던 거리 황폐 하나마/잔디 잎 푸르러 꽃은 새로핀다/여기
내일을 약속하는 찬란한 시선 속에/영원을 꽃피운
이 화원에도/예향은 가슴마다 누리 누리 번져나고/
왕희지의 못다한 신화가 소복이 내리는/그렇게 부드러운 붓과 붓의 향연/5천년 한결 같이 울어온 종
소리가/머흐는 바로 이곳/4월의 혼이 화석된 분신들의/사이에서 흙 냄새와 인정을/기름삼아 타는 내
고장은/항상 미덥기만 하다/어느 곳에든 토하고야
말애/띤 이야기들은 산처럼/묵중한 자세로 오늘 기어코 쏟아 버렸구나/아 진정 눈부신 향연이여/황무지를 갈아 내는 힘찬 외침은/더 없는 내일을 위하여 발돋음 한다/봄은 왔다 또 4월도 왔다.
아울러 공군본부 주관, 한국신문회관에서의 서예개인전에 공군참모총장께서 각개인사에게 보낸 초청장 내용을 회고해 보노라면,
초청장/화신을 전하는 훈풍이 대지를 포근히 감싸주는 신춘가절을 맞아, 삼가 존당의 강녕하심을 앙축하옵니다/금반 평소에 당 군에서 무실역행해온
최무순 군이 수양의 일도로서 틈틈이 닦아온 서예를 바탕으로 얻은 소품을 가지고, 개인전을 갖게 되었아오니, 바쁘신중에서도 최 군의 정진에 일조를
베푸시는 높은 뜻에서 참관의 영광을 기대하는 바
입니다.
1967년 4월 15일
공군참모총장 공군중장 장 지 량
* 최무순 약력
* 서초문인협회 부회장 (현)
* 한국문인협회 청송지부 회장역임
* 수필집 : 준령넘고 나루건너, 외3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