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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성전건립 당시 조감도 -
응암동 성당의 발자취
본당 설립일:1968년 9월 23일
주보성인 : 성모성심
응암동 성당은 서울대교구 중서울지역 3지구(소재지:은평구 응암3동 338-2)에 속해 있는 성당이다.
응암동본당의 설립은 1960년경부터 수색성당 관할내에 속하여 성당을 다니며 신앙생활에 불편함과 어려움이 많아 뜻이 있는 응암동 관할 신자들이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만들면서 부터이다.
1968년에 이르러 성임옥 빅토리아 여사로 부터 충암 학원 후문 근처 (응암동 247-21호)에 대지 185평을 기증받아 천막 공사를 하고 당시에 용산 성당 주임신부로 계시다 휴양중이시던 김윤상 베네딕도 신부를 신자 이광렬, 이충근, 석옥건 등이 신부님께 찾아가 간청 드려 미사집전을 허락받아 1968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응암동 성당 첫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이로써 1968년 9월 3일 김윤상 베네딕도 신부를 응암동 본당 초대 신부로 발령하게 되고, 10월 23일 교구청으로부터 본당설정을 정식 승인 받게 되었다.
이렇게 본당으로 정식 승인을 받아 천막성당에서 시작을 하였지만 초창기 신자 783명 에서 1968년 말경에는 1,430명에 이르렀다. 본당 신자의 증가로 천막성당이 왜소함을 느낄 때 쯤 유재국 바실리오 신부가 1969년 4월 20일 응암동 본당에 부임하여 그해 현재 본당이 있는 응암동 338-2번지에 부지를 마련해서 콘셋트 성당을 세우고, 본당 창설이래 5월 10일 두 번째로 23명에 대한 세례식이 있었으며, 9월 18일 본당 최초로 레지오 마리애 ‘바뇌의 성모’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었다.
응암동 (구)성당이 착공된 것은 1970년 1월 15일 3대 주임신부 고명철 신부가 부임하고, 4월 26일 본당 신축공사를 위한 착공식을 가졌다. 1971년 4대 주임신부로 차인현 신부 부임 1년 9개월 만에 1972년 10월 22일 2년 6개월 여의 힘겨운 공사 끝에 성전을 완공, 노기남 대주교를 모시고 축성식을 가졌으며, 본당 두 번째 견진성사(112명)를 함께 가졌다.
1978년 본당설립 10주년을 맞아 본당에서는 78년을 ‘본당 쇄신의 해’로 정하고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본당의 활성화에 주력하여 본당 설정 10주년 기념행사를 시작으로 새 성모자상 제막 및 기념식 과 기념 음악회를 개최 하였다.
1979년은 교구 사목목표 (‘복음적 교회상 정립의 해’)에 맞춰서 본당에서도 반성하는 교회, 배우는 교회, 정의를 실천하는 교회, 기도하는 교회 의 사목목표를 정하여 실천하였다.
이에 부응하여 1980년에 본당에 청년성가대와 어머니성가대가 발족하여 청년성가대는 1회 발표회까지 가졌다.
1988년 박기주 미카엘 신부 재임 당시 응암동 성당은 새성전 건립계획에 따라 구 성전을 철거하게 되어 2월 28일(주일)을 끝으로 구 성전에서의 미사를 마치게 되었다.
새 성전이 건립되는 동안 (구)응암3동 동사무소 근방 하천부지 (구)신양극장(현재 응암동 427-113번지) 건너편 150m 지점에 임시 비닐 성당을 지어 88년 3월부터 이곳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었으며, 하천부지에서의 사용 기한이 구청과 약속한 기일이 되어 두 번째로 현재 서부병원 뒤 주차장을 얻어 두 번째 임시 비닐 성당을 지어 약 3개월여를 머물다 9월 28일 새성전 지하 1층으로 옮기게 되었다. 응암동 신자들의 성모성심 대축제 한마당 잔치 와 또 성전건립을 위한 바자회를 통해 수익금을 마련하는 등 새 성전건립을 위한 노력을 통하여 마침내 1991년 10월 27일 故 김수환 추기경님을 모시고 현재의 모습으로 성전 봉헌식을 갖고 지금에 이르렀다.
응암동 성당은 봉헌식 이후에도 1996년 10월에 녹번동 성당(신자 1,273명)을 1998년 9월에 신사동 성당(신자 1,207명)을 그리고 2000년 11월에 홍은동 성당(신자 860명)을 분가시켰다.
또한 2004년 태풍 루사로 인한 현 성전 지붕 파손으로 그해 4월에 보수공사를 시작하여 지붕을 동판으로 교체하였다.
<응암동성당 관할구역 변천>
응암동성당 관할구역은 수색성당에서 처음 본당 분가할 당시 공문상에 응암동과 북가좌동 증산2교에서 시계공장까지의 북쪽이라고 되어있었으나 시계공장이 없어지면서부터 경계가 불분명해져서 북가좌동 남쪽까지 응암동 성당 관할구역으로 편입되어 북가좌동 남쪽 일부가 수색 성당과 가좌동 성당, 응암동 성당 3개 본당의 관할구역이 중복되어 있었다. 또한 응암동 쪽으로는 녹번동 성당을 분가 시키면서 응암1동 지역이 응암동 성당 과 녹번동 성당이 중복된 부분도 있었다. 2011년 교구에서 각 본당관할구역 정비 작업에 의거하여 본당에서도 경계구역을 파악하던 중 응암동성당 처음 관할 경계인 시계공장의 위치를 알게 되었는데 시계공장은 현재 북가좌동 두산 위브아파트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는 지역주민 (김명환 氏 - 현재 북가좌동 330-14호 거주) 의 증언을 토대로 확실한 관할구역 경계를 찾았다. 따라서 2011년도 응암동 성당 현재 관할구역은 응암1동 109번지~118번지, 738번지(해태아파트) 와 응암2동, 응암3동, 북가좌동 일부 (증산2교에서 북가좌동 두산 위브 아파트를 잇는 도로를 경계로 북쪽) 가 응암동 성당 관할 구역으로 재 확인 되었다.
<2011년 10/10 현재 응암동 신자 및 세대수>
- 응암동성당 신자 수 : 5,194명 <남 : 2,121 , 여 : 3,073>
- 세대 수 : 2,078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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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9월 현재의 본당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