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은사 입구의 매표소를 지나 성삼 재를 향한다. '하늘아래 첫 동네' 심원(深源)을 찾아간다. 이름만으로도 깊은 원림 심산유곡이다. 100여년 전 이곳으로 들어온 이들이 화전을 일구어 밭을 갈아 약초와 산나물, 토종꿀 채취로 살아왔다.
20여년 전만 해도 인근 산에서 산죽을 베다가 호랑이를 목격했다고도 하고 10 여 년 전에는 곰을 보았다는 주민의 얘기에 공감이 간다. 깊은 골, 짙은 숲, 야생동물의 천국이 아니겠는가. 하늘아래 첫동네 마을(해발 850m)은 노고단 일주도로를 지나야한다.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은 짙은 수림사이로 반듯한 일주도로가 나있고 아름다운 벚꽃 길로 지정된 풍경도로다. 오심재 휴게소를 지나 뱀처럼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려가는 스릴도 재미있다. 눈앞에는 지리산의 넓은 시야가 아름답게 담긴다. 포근함과 안락함을 품어주는 지리산에서 바라보니 계곡 깊숙이 꼭꼭 숨듯 자리 잡은 몇몇 가구들이 보인다. 주민들은 부업으로 민박과 음식점을 운영하고 산나물 채취와 꿀벌,고로쇠 판매를 주업으로 살아간다. 꽃피는 춘삼월이라지만 아직도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 계곡마다 눈 이부자리를 덮고 있다. 상류, 하류, 숲 오솔길 까지 눈덩어리들로 가득하다. 봄철에 밟아보는 눈 밟는 소리가 그만이다.
순수함과 고요함이 조금은 퇴색됐지만 비경이요, 천혜의 명승지인 골골에 자리 잡은 산골마을의 고적함이 그나마 위안이다. 바람도 공기도 무척 깨끗하고 계곡의 물 역시 수정같이 맑다. 마한의 피난 도성 터가 있었다는 달궁 마을에서부터 시작해 이곳을 거쳐 10여분 지나면 심원계곡에서 가장 크고 깊기로 유명한 용소가 있다. 달궁 계곡에 이어 쟁기소, 쟁반소, 수천마리의 두꺼비가 모여 울었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두꺼비소, 온갖 형상의 기암들이 전시장을 이룬듯한 이 일대는 심원계곡의 절경지다. 쟁기 소에서 500여m 더 거슬러 가면 반야봉 서북능선 자락과 만복대 사이를 지나는 전남과 전북의 경계지점에 이른다.
심원마을에서 노고단까지는 대략 2시간∼2시간 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고자 찾아드는 곳. 물론 필요하다. 생활의 새로운 활력을 충전시키는 여가이기 때문이다. 이곳 마을 주민들의 생업에 이익을 주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외지인들이 남기고 간 흔적 뒤에 남는 자연의 상처가 매우 깊다. 그 상처를 고스란이 현지인들에게 떠맡기는 외지인의 실례가 이들의 마음을 광팍하게 만든다.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보호할 줄 아는 자만이 아름다운 인격을 남긴다고 한다. 아직 태고 그대로인 지리산 원림의 비경은 고스란히 남아있는 때 묻지 않은 절경, 심원계곡도 외지인들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천하의 절경을 마다않고 내어준다.
칠선계곡, 문수계곡과 더불어 지리산의 3대 계곡으로 손꼽힌다는 심원계곡. 계곡과 반석 사이로 떨어지는 옥류(玉流). 영봉과 원림과 옥류의 청곡(淸曲)이 실로 신선 유곡이다.
음지라 고로쇠 물도 다른 지역 보다 늦게 채취된다. 산등성이 여기저기에는 꿀벌통 들이 널려있다. 노오란 황금빛으로 가득히 고인 꿀들. 마을 이장님이 손으로 푹 넣어 손바닥만한 꿀 집을 성큼 내어준다. 벌들이 화난 듯 근방을 사납게 오가며 방해를 하지만 꿀을 한 움큼 받아 쥐고 보니 벌들의 행패도 두렵지 않다. 엎드려 열심히 꿀을 먹고 있자니 온 세상이 황금빛이다.
주변 볼거리
-달궁(達宮)
마한, 진한, 변한이 부족국가를 이루고 있던 삼한시대. 부족 간에 큰 전쟁이 일어났는데 마한 군에 쫓기던 진한 왕이 전쟁을 피해 문무백관과 궁녀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오랫동안 피난생활을 했다. 그때 임시 도성이 있었던 자리를 달궁이라 이름 지었다. 진한왕은 서쪽 10리밖의 영에 정장군, 동쪽 20리밖의 영마루에 황장군, 남쪽 20리밖의 산령에는 성이 다른 3명의 장군, 북쪽 30리 밖의 높은 산령에는 8명의 젊은 장군을 배치해 외적의 침공을 막아냈다. 그래서 정령재, 황령재, 성삼재, 팔랑재라 전하고 있지만 달궁은 아쉽게도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산수유마을
2월 중순 하나 둘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해 4월 중순까지 은은하고 아련한 노란빛으로 물든 산수유. 몸과 마음도 섬진강까지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고 만다. 지리산 온천 지구에서 위쪽으로 노랗게 물든 풍경. 이곳이 바로 상위마을, 즉 산수유 마을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능성 구씨 세거지 표석이 눈에 띤다. 500여 년 전 정유재란 당시 이곳으로 피난해 온 능성 구씨가 홍씨가와 결혼해 현재의 부락을 이루고 있다. 상위마을은 구씨의 집성촌이며 13대 후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 초입에 능성구씨 세거지라는 비석이 있으며 하위마을에는 홍씨 제각이 있다. 구씨들은 홍씨 성과 결혼을 피하고 있다. 이 마을이 산수유 마을로 애칭을 얻게 된 것은 500여 년 전. 중국 산동성에서 이곳으로 시집온 처녀가 처음 가져와서 심었다고 한다. 산동이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 했다고 하나 정확한 문헌은 없다. 허나 중국 산동(山東)도 역시 산수유 주산지라는 점을 볼 때 일맥상통하다. 노란 꽃잎 산수유는 4월 10일경에 지고 10월 하순부터 11월에는 열매가 빨갛게 익는다.
마을을 둘러싼 돌담길, 꽃길도 흐트러짐이 없다. 지리산을 휘돌아 흐르는 맑은 계곡물도 한 몫 해준다. 마을을 안고 있는 산자락에 실안개가 피어 오르는 날이면 이곳은 한 폭의 동양화가 되는 풍경 마을이다. 마을 윗길로 오르면 30-40년 된 굵직한 산수유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돌담길 마다 풍성한 풍경들이 환하게 열린다.
먹을거리
-산동면 할매된장국집
지리산 온천랜드 입구에 있는 할매된장국집(783-6931). 들어서는 순간 맛있게 익은 구수한 된장냄새가 입맛을 다시게 한다. 순수 국산 콩 만을 엄선해 사용한다는 주인장 ‘김종부’씨는 모든 재료를 찾아 직접 장에 다닐 정도다. 그의 부인 소미숙 여사의 오랜 노하우에서 나오는 된장국, 청국장 맛은 입안에 넣으면 혀까지 말려 들어간다. 장을 띄울때 자식을 보살피듯 잠자리까지 함께 해나가는 그 철저함이 바로 그러한 맛을 내는게 아닌가싶다. 음식 맛은 정성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진/ 1.'하늘아래 첫 동네'란 표지판이 눈길을 끄는 심원계곡의 심원마을.춘삼월이지만 깊은 산골인 관계로 계곡 음지마다 잔설이 남아있다.
2.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본 심원마을. 빙 두른 산곡안 옥상에 민박을 한다는 간판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