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신부님
박화선
제주 한림읍 금악리에는 ‘성 이시돌 목장’이 자리 잡고 있다. 드넓은 목초지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와 말, 아치형 지붕의 노란 테시폰 건축물은 마치 유럽 어느 명소에 와있는 듯 착각을 일으킨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미 포토존으로 알려진 곳이며, 수제 아이스크림이 맛있다는 사실도 이번 여행에서 알았다. 세상사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를 여행지에서 깨닫는다.
친정 동생과 우리 부부는 도울기획 김상우 사장님의 준비로 4박 5일 제주 여행을 떠났다. 이번 여행의 포인트는 그동안 다녀보지 못했던 곳을 돌아보는 거였다. 마침 사장님 누나 - ‘글라라 수녀님’이 성이시돌 복지의원에 원장으로 계시기에 그곳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렀다. 숙소 큰 창으로 보이는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경이 우리를 향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토요일 오전, 글라라 수녀님은 바쁜 일정을 뒤로 미루고 넓디넓은 목장 주변 여러 시설을 기꺼이 안내해 주셨다. 처음 들른 성이시돌 센터에서 나는 푸른 눈의 한 외국인 신부와 마주했다.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한국이름 ‘임피제’ 선교사는 아일랜드 태생으로 1954년 스물여섯에 제주 한림성당에 부임 받았다. 외국인 신부가 바라본 제주도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달리 제주 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초라했다. 한국전쟁 직후의 제주도는 가난했고 살기 어려웠다. 전쟁뿐만 아니라 4.3 사건으로 주민들 대부분이 가족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있을 때였다. 이를 본 맥그린치 신부는 한평생 제주도민을 위해 살겠노라 다짐을 하게 된다.
그 시작이 인천에서 가져온 새끼를 밴 돼지 한 마리였다. 이 암퇘지가 훗날 지역을 먹여 살리는 목축업의 기반이 된다. 가난을 구제하기 위해 신용협동조합을 만들고 4H를 조직하며 주민의 인간다운 삶을 고민했다. 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수군거리며 구경만 하던 이들도 신부를 따르며 나라에서 하지 못했던 목초재배까지 성공해 낸다. 그에게 주어진 최우선 소명은 신자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거였다. 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길이 더 급해 성경 대신 삽을 들었다. 돼지 신부님이란 애칭까지 얻은 그는 가축은행을 통해 사료와 가축을 나누고 농기계 수리, 집 짓는 방법을 알려주며 주민들의 자립을 도왔다. 인고의 노력 끝에 그들은 한라산 중산간 지역 쓸모없는 땅을 기름진 목초지로 만들었고, 성인 ‘이시도르’ 이름을 따서 <성 이시돌 목장>이라 불렀다.
수의학을 전공한 그는 제주 여성들의 취약한 일자리를 고뇌해 오다 고향의 양털로 옷 만드는 일을 떠올렸다. 마을 사람들은 양을 길렀다가 번번이 실패했다며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이에 굴하지 않고 아일랜드 가족의 도움으로 사들인 면양들은 기름진 목초지에서 무럭무럭 잘 자랐다. 그는 직조기술을 지원받아 한림수직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고 여성들의 안전한 일자리를 마련하였다. 여기서 만들어진 고급 스웨터는 타임지에도 소개된 바 있다.
당시 한림에는 변변한 의료시설이 없었다. 지역민의 복지를 고민하던 그는 의사면허가 있는 수녀를 원장으로 모셔와 이시돌 병원을 개원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치료비를 받지 않았고 후에는 요양원과 호스피스 병동으로 전환하였다. 삶의 끝자락에 선 가난한 이웃의 안식을 도우며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권리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교육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사회보장을 몸소 해냈던 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반세기가 훨씬 넘는 긴긴 시간을 제주에 고스란히 쏟아부은 맥그린치 신부는 2018년 봄, 그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던 이곳에서 눈을 감는다.
전시관을 나와 맥그린치 신부의 손길이 닿았던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소담하게 지어진 병원 종사자들의 붉은 벽돌집 곳곳을 돌아봐도 한치 소홀함이 없었다. 담장 사이에 핀 이름 모를 풀꽃이 떠난 주인을 기다리듯 하염없다. 근처 목장에는 어서 먹이를 달라며 보채는 새끼 양들의 표정이 그저 천진스럽기만 하다. 잘 꾸며진 성지 순례길 새미 은총의 동산을 지나, 수녀님은 그가 영면해 든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영상에서 봐서였을까. 비석에 새겨진 신부님의 온화한 모습이 낯설지가 않았다. 성클라라 수도원이 바라다보이는 양지바른 묘역은 척박한 땅에서 흘렸던 그의 땀과 기도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고 평범했다. 묘비석에 새겨진 대한민국 명예국민증이 그의 한없는 사랑과 헌신에 보상인 것 같아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오월의 햇살을 뒤로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려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산새 소리가 돼지 신부님 음성인 듯 반갑다. 보석의 섬 제주에서 나는 아름다운 향기의 또 다른 보석을 만났다.
* 도서 ‘푸른 눈의 돼지 신부’ 참조- 제주 맥그린치 신부 기념사업회
-바쁜 시간을 쪼개어 목장 주변 안내와 맥그린치 신부님을 알게 해주신 성이시돌 복지의원 ‘김 예수의 글라라 수녀님’께 감사드린다.
첫댓글 영상물과 도서를 참고 했어요.
이래도 되는걸까 고민도 되지만
돼지 신부님의 공로를 알리고 싶었어요.
저의 생각은 줄이고 그분의 업적 위주로 써봤어요.
아침에 글 잘 읽었습니다.
제주를 공사로 여러 번 갔었지만
맥그린치 신부님 이야기는
초엽님의 글을 통해 처음 알게
됩니다.
특별한 여행을 이렇게 섬세하고
유연한 필치로 글로 남기시니
과연 수필 작가이십니다.
김동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이른 시간 짬 내어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도서의 내용을 많이 활용해 쓴 거라
민망하지만... 한편이 아쉽기에
은근슬쩍 올립니다.
삼봉님~~
칭찬 감사합니다.
푸른눈의 이방인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름다운 제주
우리는 잠시 망중한을 즐기는 여행지로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고귀한 희생과 봉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었군요
이 아침이 경건해 집니다
그쵸~~저도 이런 스토리를 듣고
먹먹했어요.
한 사람의 영향력이 이렇게 크다는것을.
배우고 커다란 울림을 받았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