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오도선방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제1부 에세이 스크랩 낙숫물 한 방울이 대리석을 뚫는다
眞明 추천 2 조회 385 09.03.02 22:09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낙숫물 한 방울이 

         대리석을 뚫는다]


                              황 전


초등학교 졸업을 며칠 앞두었지만 우리 반에서 중학교에

갈 수 없는 형편을 가진 학생은 오직 나 혼자 뿐이었습니다.

나는 중학교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있었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고아원에서는 몇 십 명이 초등학교를 졸업해도,

다른 고아원에서 운영하는 중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고작 두 명 아니면 세 명뿐이었습니다. 

고아들이 이 세 명 중에 끼어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지요.


우리 반 담임선생님께서는 그런 걸 아셨는지

아니면 하루 종일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내가 안 되어 보였는지, 어디서 사진기를 빌려와서

사진을 한 장 찍어 주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후에,

어느 명문 중학교에 원서를 넣어 두었으니

시험을 잘 보라면서 등을 두드려 주었습니다.

어차피 중학교에 합격을 해도

중학교에 갈 수 없음을 아는 나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시험을 보아서 그런지 시험문제들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한 과목의 시험을 끝내고 밖으로 나와 보면

항상 내가 제일 먼저 나와 있었습니다.

내가 제일 먼저 밖으로 나오면

운동장 주변에 서성이던 많은 학부모들의 긴장된 시선들이 일제히 나에게 꽂히는 것을 느끼면서,

시험이 끝났다는 벨소리가 울릴 때까지의  몇 십 분의 그 긴장된 적막함이 나는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나 혼자만이 긴장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적막한 긴장 속에서 몸과 마음이

움츠려들고 있었지만, 오직 나 혼자만이 진정 자유스러웠던 것입니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중학교에 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웃고 울며 떠들고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습니다.

나는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서운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고아원에서 할 일이 없어서 그냥 나온 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수석합격자 명단이 따로 있어서 혹시나 하고 보았더니,

세 명의 합격자 속에

내 이름이 들어 있었습니다. 

잠시 후 방송에서 내 이름이 호명 되어 교장실로 가게

되었습니다. 


교장실로 가기 위해서 처음으로 중학교 현관문을 열고

복도를 밟는데 왠지 감개가 무량하였습니다. 

마치 중학생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교장실로 들어가니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교장선생님이

책상 위에 있는 나의 입학서류를 보고 계셨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나와 입학서류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의아한 눈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학생은 집이 어디인가?”

“저, 00고아원입니다.”

“고아원? 아니, 고아원에서는 이 명문 중학교에 입학을 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예, 우리 선생님께서 기왕이면 명문 중학교에 가서 부담 없이 시험이라도 한번 쳐 보라고해서 시험을 본 것 뿐입니다.”

“그래! 그러면 합격은 했지만, 중학교에는 다니지 못한다.

그 말이지?”

“예.” 

“어쨌든 시험에 합격은 했으니까, 합격통지서를 받아라.”

만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 입학원서를 다른 서랍에 넣어 두는 교장 선생님을 보면서 나는 교장실을 나왔습니다. 

교장실을 나와 긴 복도를 지나오는데

현관문 위에 기다란 액자가 하나 걸려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다가가 보니 누군가 붓글씨로 힘차게 써내려간 글씨였습니다. 액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낙숫물 한 방울이 굳은 대리석을 뚫는다.’


뜻은 잘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나의 앞길을 열어줄 하나의 메시지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그 후 3년이 지나서야 그 뜻을 조금 알게 되었는데

스스로 알기를

‘오직 한 우물만 파라.’

는 뜻으로 해석 되었습니다. 


나의 방랑자적인 밑바닥 생활이 한 우물을 팔 수 없도록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해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후 청년이 되어 시와 문학, 철학을 나름대로 공부를 하면서 ‘낙숫물 한 방울이 굳은 대리석을 뚫는다.’의 해석도

변했습니다. 무엇이든 그 상황에 따라 가는 모양이었습니다.  이 시절에는 ‘오직 한 우물만 파라’에서 ‘오직, 사랑과 그리움만이 굳은 마음을 녹인다.’라는

해석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상으로 많은 시와 소설을 쓰면서 습작기간을 보냈습니다.

출가를 해서 어느 정도 수행이 깊어지자,

중학교 입학시절에 들었던 화두 ‘낙수 물 한 방울이 굳은 대리석을 뚫는다.’를 다시 참구해 보니 눈이 번쩍 뜨이면서 새로운 안목이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낙숫물 한 방울이 굳은 대리석을 뚫는다.’

이 화두를 무려 30년 만에 이 글을 쓰면서 풀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려서 글을 쓸 수가 없을 정도이지만, 환희와 기쁨을 겨우 진정시키면서 글을 마무리 하고 싶어서 계속 썼습니다.

‘낙수 물 한 방울이 굳은 대리석을 뚫는다.’

이 도리는,

불교에서 말하는 ‘무위행위’ 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무위행위란 

오직 無心속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무위행위


낙수 물도 무심하고

굳은 대리석도 무심하니,


뚫은 것은 무엇이고

뚫어진 것은 무엇인가?


멈춰버린 시간 속에

천년의 흔적조차

무심의 미소가...


 
다음검색
댓글
  • 09.04.06 13:24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10.02.06 14:11

    멈춰버린 시간속에 천년의 흔적조차 무심의 미소가.....무위행위...굽신

  • 10.05.23 22:03

    감사합니다

  • 10.09.19 14:08

    _()()()_

  • 12.12.17 20:11

    감사합니다 ()()()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