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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종주 낙동강 자전거길
#2 경천대에서 화천서원 왕복 종주
2016년 6월 7일(화) 날씨 : 맑음 기온 : 섭씨 20~30도 구간 거리 : 73km
거리 : 경천대-(3.5km)-상풍교-(14.9km)-풍지교-(12.2km)-구담교-(5.9km)-화천서원
경천대 08:30–낙동강 데크 09:00–상풍교 09:20–영풍교 09:37–삼수정 10:35–풍지교 10:54 –구담교 11:42–화천서원 12:10–옥연정사 12:15–광덕교 12:26-풍지교 14:07-영풍교 15:15-예천 체육공원 15:37-경천교 16:55
<경천대 안내판>
연휴를 보내고 맞는 특별한 날이다.
남들이 쉬지 않을 때 휴가와 같은 쉼이 있다는 것은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만이 누리는 혜택이다.
개교기념일이라고 해서 연휴와 함께 즐거움이 배가 된다.
이른 아침 상주로 향하는 도로에는 비가 뿌린다. 일기예보에 상주지역에는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길을 나섰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가랑비는 어색하다.
그렇지만 백두대간 화령을 넘으면서 비는 그쳤다.
우리 산줄기가 형성한 오묘한 자연의 신비는 오롯이 산꾼만이 가질 수 있는 특이함인지 모른다.
경천대 주차장에서 라이딩 준비를 마치고 경천대와 무우정으로 향한다.
선명한 국토종주 자전거길 안내 표지판을 따라 무작정 들이 밀었지만 다시 뒤돌아 나오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안동행 자전거길은 입구에서 북쪽으로 언덕을 넘어야 했다.
경천대와 무우정의 고즈넉한 풍광과 숲의 아름다움을 맛보고 이내 고개를 넘으니 잘 만들어진 데크 길이 지그재그로 낙동강으로 향한다.
<우담의 鳳山曲(봉산곡)>
# 조선 청백리 1호 안성(安省)의 題詠尙州(제영상주) -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상주에 와서
二十年前奉使還 (이십년전봉사환) 이십년 만에 관찰사의 명을 받들고 돌아왔더니
閭閰城郭古商山 (여국성곽고상산) 고을과 성곽은 변함없는 옛 상산(현재 상주)이로다.
街童共道新觀察 (가동공도신관찰) 거리의 아이들은 새 관찰사를 함께 따라 다니고
邑老皆稱舊判官 (읍노개칭구판관) 고을의 노인들은 모두들 옛 판관을 칭송하는구나.
細雨斜風吹醉帽 (세우사풍취취모) 빗겨 부는 가랑비는 취객의 모자를 적셔주고
落花飛絮惹征鞍 (낙화비서야정안) 흩날리는 버들개지 나그네의 말안장에 엉기어 드는구나.
紛紜來往憑誰說 (분운래왕빙수설) 사람들은 어지러이 오고가는데 누구를 잡고 이야기하랴.
露滿庭中獨依欄 (로만정중독의란) 밤이슬 내리는 뜰 안에서 홀로 난간에 기대여 서있노라. / 경천대 시비에서
# 우담의 鳳山曲(봉산곡) 가사의 일부 / 세 왕자와 함께 청에 볼모로 가기 전
가노라 옥주봉(玉柱峯)아, 잘 있거라 경천대(擎天臺)야,
요양만리(遼陽萬里) 길이 멀다야 얼마 멀며,
북관 일주년(北館一周年)이 오래다 하랴마는
상봉산(翔鳳山) 별건곤(別乾坤)을 처음에 들어올 제
노련(魯連)의 분(憤)을 계워 진세(塵世)를 아주 싣고
발 없이 동 솟 한 개 전나귀 실어내어
추풍석경사(秋風石經斜)의 와룡강(臥龍江) 찾아와서
천주봉암혈하(天柱峯巖穴下)에 모옥수간(茅屋數間) 지어두고
/ 경천대 시판에서
# 우담의 自天臺(자천대)
奇巖斗起自成臺(기암두기자성대) 기이한 바위 우뚝 솟아 저절로 대(臺)를 이루니
翠壁東西碧水回(취벽동서벽수회) 푸른 절벽 동서에 시퍼런 강물이 감돌아가네.
矗矗豈容人力築(촉촉기용인력축) 저 우뚝우뚝한 돌을 어찌 인력으로 쌓았겠는가!
層層應是化工裁(층층응시화공재) 층층의 저 돌은 아마도 하늘이 만든 것일 거야.
雲收玉柱珠簾捲(운수옥주주렴권) 구름이 옥주봉에 걷히니 주렴을 거둔 듯하고
日射丹崖畵障開(일사단애화장개) 햇빛 붉은 언덕에 쪼여 그림장 막 열어 놓은 듯하네.
最愛高標千百尺(최애고표천백척) 제일 멋 있구나 높이 우뚝한 천백 척은
直擎天闕任無頹(직경천궐임무퇴) 바로 하늘을 받들어 무너짐 없음을 맡겼네.
<경천대>
* 경천대와 무우정
낙동강변에 위치한 경천대는 태백산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 1,300여리 물길중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는 “낙동강 제1경”의 칭송을 받아 온 곳으로 하늘이 만들었다 하여 일명 자천대(自天臺)로 불린다.
경천대와 낙동강물을 마시고 하늘로 솟구치는 학을 떠올리게 하는 천주봉, 기암절벽과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감상하며 쉴 수 있는 울창한 노송 숲과 전망대가 있다.
조선 인조15년(1637) 당대의 석학 우담 채득기 선생이 은거하며 학문을 닦던 무우정(舞雩亭)과 경천대비, 임란의 명장 정기룡장군의 용마전설과 말먹이 통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명승지와 유적지를 만날 수 있다.
무우정은 경천대(擎天臺) 절벽 옆의 조그마한 정자이다. 병자호란 후 소현세자, 봉림대군, 인평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갈 때 호위 한 우담 채득기(雩潭 蔡得沂)가 훗날 모든 관직을 마다하고 은거하던 곳이다.
우담의 집터와 사용하던 세 개의 돌그릇과 정상 바위틈에 우담이 세운 비석이 있는데 돌그릇은 연을 기른 연분(蓮盆), 세수를 하던 관분(盥盆), 약물을 제조하던 약분(藥盆)이고, 비석의 “大明天地 崇禎日月”의 뜻은 임진왜란 때 우리를 도운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키고 오랑케인 청나라의 원수를 갚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경천대는 하늘이 스스로 만들었다고 일명 자천대(自天臺)라 부른 절경이다!
경천대 앞 벌판을 휘감는 물길은 안동의 하회마을과 예천의 회룡포와 함께 낙동강의 3회(三回)라 불린다.
<무우정>
<무우정 현판과 경천대를 읊은 시>
우담 채득기 선생의 낙향의 향기를 느끼며 저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 1,300리의 긴 흐름을 따라 페달을 밟는다.
길은 탄탄대로여서 아침의 선선함과 흐린 날씨 덕분에 속도를 붙게 한다.
낙동강 주변은 그야말로 평야지대이다. 갖가지 채소와 과일 그리고 벼농사를 짓는 풍광이 평화롭다.
<낙동강>
잘 정리된 낙동강길은 많은 직업적인 낚시꾼들이 텐트를 치고 고기잡기에 여념이 없다.
어쩌면 4대강 정비작업에서 가장 시급하고 홍수조절이 어려웠던 문제를 잘 풀어낸 낙동강 정비사업이라고 생각된다.
4대강에서 조령으로 갈라지는 상강교가 나타나고 인증센터가 보인다.
낙동강길은 다리를 건너고 조령은 직진하여 강을 따라 계속된다.
낙동강길은 상강교 건너에서 경천교까지도 연결되어 강의 양안을 돌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상풍교>
상강교를 지나면 자전거길은 예천 체육공원을 따라 신나게 달린다.
건너편에는 아담한 숲과 정자가 보이는데 주변 경관이 무척 아름답다.
강가에는 역시 많은 강태공들이 낚시를 즐기는 모습이 특이하다.
영풍교에서 조령쪽으로 길이 나 있는데 주변 풍광과 평야지대의 풍성함이 한 눈에 다가온다.
동네 어르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길을 잡았는데 하염없이 둑을 따라 달리다가 갈림길을 놓쳤다.
다시 길을 뒤돌아와서 논 가운데 자전거길을 찾아 마을쪽으로 달린다.
<영풍교>
<낙동강 쌍절암 생태 숲 안내판>
대등산을 돌아 관세암 표지석이 있는 정자 쉼터에서 잠시 쉬며 간식을 먹는다.
주변에 삼강주막이 있는데 데크로 낙동강을 따라 걸을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삼강주막은 낙동강과 내성천 그리고 금천이 만나는 지점에 나루터가 있었는데 보부상들이 숙식처로 이용되던 곳이다.
근처에 회룡포가 있고, 예천의 아름다운 정자들이 내성천을 따라 즐비하다.
* 삼강주막 : 삼강주막은 삼강나루의 나들이객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된 건물이다.
1900년경에 지은 이 주막은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구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구한 역사와 함께한 유옥연 주모할머니가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나면서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가 2007년도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나들이객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관세암 표지석>
<삼강주막 쪽 낙동강>
<자전거길 안내도>
<삼수정>
낙동강을 따라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할 무렵 조그마한 산등성이에 큰 나무가 보이고 아담한 정자가 나타난다.
삼수정이다.
사방이 탁 트인 삼수정은 정귀령의 호를 따서 붙인 것이다.
관리 상태가 썩 좋지 않은 정자는 의외로 품위가 있고, 세월이 한참 지난 고목과 함께 제법 멋진 풍광을 지녔다.
노송이 가지가 부러지고 잎이 마르고 있어 안타까움을 준다.
쉬지 않고 달린 아내를 좇아 정신없이 페달을 밟아 함께 풍지교를 지난다.
* 삼수정(三樹亭)
‘낙동강 맑고 넓어 멀리까지 통해 아득한데 우리 선조 여기 지령에 점지하셨네.
자연에서 성정 길러 평소의 조행을 편안히 하셨고 당시 이름 추천되어 조정을 밟으셨네.
어느 해 마악에 묘소 드려졌을까 높은 산 우러러 보며 선조의 정신 생각하네.
어찌해야 선조의 사업을 넓힐 수 있어 세 그루 회화나무 다시 심고 삼수당 현판 새겨두게 될지‘
삼수(三樹) 정귀령(鄭龜齡)의 후손 병촉제 정지집이 읊은 ‘삼수정원운’에 나온 글귀이다.
예기에 ‘조상의 선행이 있는데도 자손들이 알아 본 받지 못함은 자손들이 현명치 못함이요, 알면서도 전하지 않음은 자손이 어질지 못한 탓이다.’라고 하였다.
예천군 풍양면 청곡리에 있는 삼수정(三樹亭)은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인물 삼수 정귀령이 1430년경에 세운 정자이다.
낙동강이 굽어 도는 강변을 따라가다가 보면 별곡(別谷)이란 마을이 있다.
그 마을 산등성이에 세워진 정자는 사방이 탁 트인 경관으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물을 내려다보고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몇 차례 중건하였는데, 1829년 경상감사 정기선이 중건하였고, 그 후 몇 차례 이전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09년경 옛터에 다시 세웠다고 기록이 전한다.
<삼수정>
<풍지교>
<망초대가 하얗게 핀 낙동강>
<구담교>
구담교를 지나니 강가에 근사한 정자가 쉼터로 제격이다.
주변 풍광이 너무 좋고 낙동강에서 고기 잡는 아이들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신발을 벗고 누워서 한참을 쉰다.
이제 광덕교까지는 멀지 않다.
오전에 습한 기운이 많은 땀을 흘리게 하더니 햇살이 나오며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그 동안 재미와 속도감에 즐거움이 더했던 라이딩이 오늘은 완전히 지루함과 땀과의 전쟁으로 힘이 든다.
특히 시멘트 자전거길은 피로를 가중시키는데 바람도 전혀 없어 페달을 밟기가 힘들다.
<구담교 옆 정자 쉼터에서 본 낙동강 간이보 모습>
<광덕교 근처 농촌 모습>
지난 번 다녀온 광덕교를 지나 둥그렇게 커브를 도니 화천서원 입구에 당도했다.
화천서원으로 자전거를 타고 향하여 서원과 옥연정사를 관람하려 했으나 개방되지 않아 주변만 살펴 보았다.
서애 류성룡이 징비록을 썼다는 옥연정사는 마당 한가운데 오래된 노송이 아름다운 자태로 멋있는데 밖에서 겨우 눈팅만 했다.
다행히 서애가 쓴 시비를 볼 수 있음에 다행이다.
<화천서원>
*화천서원 : 유운룡(柳雲龍)의 학덕을 기려서 유림들이 현 위치에 세운 서원이다.
유운룡(柳雲龍)이 1601년(선조 34) 향년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185년 만인 1786년(정조 10)에 건립하여 9월에 유운룡(柳雲龍)의 위패를 봉안하고 1803(순조3년)에는 제자인 김윤안(金允安)과 종손자(從孫子)인 유원지(柳元之)을 배향시켜 100여 년 이상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내오다가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에 의해 강당과 주사만 남기고 훼철되었다.
<화천서원>
<옥연정사>
*옥연정사 : 유성룡(柳成龍)이 『징비록(懲毖錄)』(국보 제132호)을 집필한 곳으로 그의 만년에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회마을의 화천(花川) 북쪽 부용대(芙蓉臺) 동쪽 강가에 자리 잡고 있어, 나룻배로 마을을 드나들게 되어 있다.
<옥연정사 서애 류성룡 시>
<하회마을>
옥연정사를 나오면 하회마을이 강 건너로 보인다.
돛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부용대와 하회마을을 오가는 관광객들이 많다.
지난 번 반기문 사무총장이 다녀갔다는데 정치에 따른 말들도 많고, 예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다녀가 유명해 졌다.
*하회마을 : 민속적 전통과 건축물을 잘 보존한 풍산 류씨(柳氏)의 집성촌이다.
1984년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 경북 양동 마을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는 등재 결의안을 통해 이들 마을의 주거 건축물과, 정자, 서원 등의 전통 건축물, 그리고 전통적 주거 문화가 조선 시대의 사회 구조와 독특한 유교적 양반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하회 마을은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성씨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독특한 문화를 이어 온 독특한 곳이다.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독특한 지형을 갖고 있다.
‘하회(河回)’라는 이름도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아 흐른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풍수지리학적으로 길지(吉地)라고 전한다.
<화천서원>
<광덕교>
<광덕 송림>
<자전거길에는 낙동강하구둑 330km, 안동댐 55km 라고 적혀 있다>
경천대에서 화천서원으로 오는 노정은 지루하고 힘들었는데 돌아가는 길은 바람을 등지고 달려서인지 편하고 수월했다.
특히 구담교 근처 식당에서 냉면으로 점심을 들며 쉬어서인지 넉넉한 마음으로 영풍교에 도달했다.
중간에 풍지교 근처에서 의자에 등을 대고 오수를 즐겼는데 피로가 확 풀렸다.
가끔씩 라이딩 동호인들이 삼삼오오 무더위를 뚫고 낙동강을 달리는 모습이 동질성을 느껴 좋았다.
<쉼터에서 다리의 피로를 푼다>
<자전거 수리점 안내판>
<풍지교>
<영풍교>
<예천 체육공원>
예천 체육공원에서 쉬는 동안 서울에서 온 나이 지긋한 멋쟁이 라이더를 만났다.
낙동강 종주를 마치고 안동댐 인증소를 다녀오는 중이라고 하는데 홀로 국토종주하는 노정에 감탄한다.
특히 차량으로 자전거를 옮기지 않고 버스와 기차로 다닌다니 놀랍다.
상풍교를 지나 상주터미널에서 서울로 가는 길이라는데 노익장이 대단하다.
건강을 유지하며 국토종주를 하고 라이딩의 삼매경에 빠진 그의 자태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마지막 경천대 오르막을 자전거를 끌고 넘으니 상주박물관 매점이 반긴다.
시원한 건강음료를 들고,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세수하며 땀을 씻어낸다.
긴 75km 대장정을 무사히 마쳐서인지 흐믓한 마음이 상쾌하다.
귀로에 경천교와 상주 자전거박물관을 들렀으나 문이 닫혀 다음에 관람하기로 한다.
상주가 이처럼 농토가 기름지고 평야지대로 곡식이 잘 되었으니 경주와 더불어 경상도의 이름으로 거명될만하다.
상주를 아우른 낙동강 자전거 종주가 이젠 제법 본 궤도에 든 느낌이다.
다음 구미보까지의 낙동강 모습이 궁금해진다.
뿌듯한 마음으로 상주를 지나 대전으로 힘차게 차를 몬다.
<예천 낙동강 체육공원>
<경천대 오르는 데크>
*상주보 : 상주보(尙州洑)는 경상북도 상주시 중동면과 도남동에 있는 낙동강의 보로서 4대강 정비 사업 과정에서 부설되었다.
<경천교>
Too Many Years - Michael Lee Tho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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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열정이대단하십니다 글 그림잘보고 갑니다
영화 스캔들의 옥연정사
위험씬 단골배경 부용대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하회마을 전경...
로즈마리님과 동행 하셔서 부러워요
저도 좋은 사람 생기면 션한 가을날 함께
하이킹 하고 싶어지는 코스예요
청산님 그림 좋아요~~~ㅎㅎ
두분 멋지게 사십니다.
몹씨 부럽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