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정희는 동생들을 돌보며 집안 살림을 맡아서 해 나간다.
엄마 아빠가 새벽같이 나가시고 나면 동생들과 모든 살림은 모두 정희의 몫이 되고 있다.
정희는 다른 동생들보다 바로 밑의 동생인 정우가 걱정이다.
학교에도 다니지 않고 거의 집에도 들어오지 않는 정우다.
어쩌다 집에 들어오면 하루 종일 잠을 잔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정우는 부스스 일어나 간단하게 세수를 한다.
“정우야!
또 어디 나가려고 해?“
정우는 대답을 하지 않고 누나의 얼굴만 바라본다.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면 안 되겠니?”
“밥 줘!”
누나의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밥을 찾는다.
정희는 더 이상 말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밥을 차려준다.
정희는 거의 매일 저녁을 하기 전에 부모님이 장사를 하는 곳으로 간다.
동생들의 반찬을 해 주기 위해서 가게에서 반찬거리를 가져오거나 엄마가 사 주시는 생선 등을 가져와서 저녁을 하곤 한다.
“정우야!
엄마 아빠가 고생하시는 것을 생각해서라도 무언가를 하면 어떻겠어?
공부하기 싫으면 기술을 배운다던지...........“
“그딴거 모두 하기 싫어!
괜히 나한테 잔소리 하려고 들지 마!“
정우는 누나의 잔소리를 피하기라도 하듯 수저를 놓자마자 집을 나간다.
그런 정우를 말리지 못하고 멀거니 바라보는 정희다.
어떤 말로도 정우의 마음을 잡을 수가 없음을 느낀다.
워낙에 말이 없는 동생이다.
묻는 말 이외에는 하루 종일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정우다.
어디를 돌아다니는지 아무리 물어봐도 입을 열지 않는다.
정희는 엄마 아빠에게 가져다드리려고 밥과 반찬을 담는다.
“언니!
엄만테 나도 가!“
정희가 하는 것을 말없이 보던 정선이가 따라가려고 한다.
“정선이도 엄마한테 가고 싶어?”
“응!
나도 델꼬 가!“
여섯 살 막내 동생 정선이다.
“그래, 언니가 데리고 갈게!
정길이는 숙제하면서 형아들하고 있을 수 있지?“
”응!“
별관심이 없다는 듯 누나를 바라보지 않고 대답을 하는 여덟 살짜리 정길이는 숙제를 하느라 고개도 들지 않는다.
동생들을 모두 저녁을 먹이고 나서 언제나 그렇듯이 엄마 아빠의 늦은 저녁을 마련해서 가지고 나간다.
밤늦은 시간까지 장사를 하시는 엄마 아빠의 저녁을 거의 매일 나르고 있는 정희는 한손으로는 정선이의 손을 잡고 한손으로 물건을 잡고 걷는다.
시장까지의 거리는 멀지는 않지만 버스정류장 두어 정거장이 넘는 거리다.
그 거리를 정희는 거의 매일 두 번씩 걸어서 다닌다.
한창 바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정희가 도착한다.
“엄마!”
정선이는 엄마를 보고 엄마를 부르며 품에 안긴다.
“우리 정선이도 나왔구나?”
김영아 역시 정선이를 품에 꼭 안아준다.
“정우는 집에 있냐?”
유영기는 딸을 보자 정우부터 묻는다.
“밥을 먹고 나갔어요.”
“쯧 쯧 쯧, 참으로 한심한 녀석이야!
뭐가 되려고 그러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유영기는 혀를 차며 깊은 한숨을 내 쉰다.
맏아들 생각을 하기만 하면 절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오면서 이맛살부터 찌푸려지는 것이다.
“정희아부지!
시장하신데 어서 밥 잡수세요.“
김영아는 딸의 손에 들려진 보퉁이를 받아 펼친다.
별다른 반찬이 있을 리가 없다.
김치와 고등어구이 그리고 찌개가 있을 뿐이다.
이제 딸의 음식솜씨는 제법 먹을만하다.
매일 사 먹는 음식 값이 만만치 않은 그들은 아침이면 밥을 해서 가지고 나와 아침과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저녁이면 딸아이가 이렇게 가져오는 것으로 저녁을 먹곤 한다.
이제 바쁜 시간이 지나서 부부는 앉아서 함께 밥을 먹는다.
그사이 정희는 손님에게 물건을 팔곤 한다.
“엄마, 나 과자 먹고 시퍼!”
정선이 곁에서 칭얼거린다.
“그래, 갈 때 돈을 줄 테니까 언니하고 집에 가면서 사 먹어!”
금방 정선이의 얼굴은 환해진다.
김영아는 앞치마에 손을 넣어 돈을 꺼내어 정희에게 준다.
“애들 과자라도 사 들고 들어가라!
동생들 숙제 다 했는지 잘 살피고 잠들기 전에 꼭 씻기는 것을 잊지 말고.“
“네!”
“어서 들어가 봐!”
정희는 그릇들을 챙겨서 보자기에 싸고 정선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한다.
“언니!
나 빵 먹을래!“
“그럴래?
그럼 우리 빵을 사가지고 갈까?“
정희는 시장 입구에 있는 빵집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동생들이 많기에 비싸고 고급스러운 빵을 살 엄두는 나지 않는다.
팥이 들어가 있는 팥빵으로 동생들의 수만큼만 산다.
잠들기 전에 하나씩만 먹이면 된다는 생각이다.
정희 역시 아끼고 절약하는 것이 몸에 배여 있다.
무엇이든지 아껴야한다는 생각이 젖어 있는 것이다.
정희는 공부에 대한 목마름을 느끼지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가 없다.
엄마 아빠가 고생하시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슴 속 깊이 누르고 또 누른다.
지금 자신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엄마를 대신해서 집안 살림을 하고 동생들을 보살피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가슴 밑바닥에서는 초조함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
이대로 다른 사람들보다 나태한 삶을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그것이 딱히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대로는 자신의 삶이 희망과 앞날이 없다는 생각뿐이다.
정희는 한가한 시간이면 책을 보곤 하지만 제대로 읽을 책도 살수가 없다.
집안 살림을 한다고는 하지만 돈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생활이다.
필요한 모든 것들은 엄마가 모두 구입해 주시기에 정희가 돈을 써야 할 곳도 쓸 수 있는 기회도 없다.
그저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동생들 돌보는 것이 정희가 할 수 있는 일의 모든 것이다.
책을 산다고 돈을 달래지도 못하는 정희다.
학교도 다니지 않는 자신이 무슨 책을 산다고 할 것인가?
밑으로 줄줄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동생들이다.
정우를 제외하고 정만이 정원이 정민이 그리고 막내 남동생인 정길이까지 학교를 다니고 있다.
정만이는 공부를 무척이나 열심히 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공부를 하느라 밖에 나가지도 않는 정만이다.
책상이 없어도 밥상을 놓고 쪼그리고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는 정만이를 볼 때마다 정희는 마음이 안타깝다.
돈도 없지만 책상을 들여놓을 수 있는 방이 아니다.
정원이와 정민이는 숙제를 다 해 놓고 나면 밖에 나가놀기를 좋아하고 정길이 역시 공부보다는 놀기를 좋아하는 성품이라는 생각을 한다.
동생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나면 벗어 놓은 빨래를 한다.
집안일이라고 해야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빨래를 해서 널고 방 두 칸을 청소하고 나면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다.
정희는 자신도 무언가를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거리를 배회한다.
무료하고 답답한 생활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다.
어딘가 취직을 하려고 해도 동생들의 뒷바라지 때문에 할 수도 없지만 아직 나이가 되지도 않았다
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늘 갈망하고 있는 정희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배워야 할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면 자신이 어떤 것을 잘 할 수가 있는 것인지도 알지를 못하고 있는 정희다.
정희는 시간이 나기만 하면 거리를 배회한다.
서울 지리도 익히고 싶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열여덟 살의 정희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방을 들고 학교에 다니고 있는 여자 아이들을 볼 때면 늘 부럽고 자신의 초라함을 발견하곤 한다.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싶은 정희의 열망은 더욱 어린 정희의 가슴을 삭막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희는 자신의 그런 마음을 겉으로 들어 내 놓지를 않는다.
하루하루가 정희에게는 암담한 나날일 뿐이다.
정희는 입맛을 잃어간다.
그러나 유영기나 김영아는 돈을 벌기에 바빠 그런 딸의 모습을 미처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나 마음의 여유가 없다.
새벽이면 일어나 새벽시장으로 물건을 받으러 가고 장사준비를 하느라 바쁜 그들 부부는 자식들이 아프지 않고 자라주는 것만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장사하는 일에만 모든 신경을 다 쏟는다.
두 부부가 손을 맞추어 열심히 해 나가는 장사는 그런대로 이제 자리가 잡혀가고 부부는 억척스럽게 일을 해 나간다.
시골에서보다 살아가는 재미가 있다.
일을 하는 만큼 돈을 손에 쥔다는 재미도 있지만 아이들의 배에 쪼르륵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밥을 먹여줄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부부의 마음에 흡족함을 주고 있는 것이다.
장사를 하는 간간히 시간이 나면 시장을 돌며 싸구려 옷가지지만 아이들의 옷을 사서 입힐 수 있다는 것 또한 부부의 행복이다.
시골에서는 감히 꿈도 꾸어보지 못하던 삶이다.
이제 돈을 부지런히 모아서 방이 한 개 더 있는 조금은 넓은 집을 얻을 생각을 하며 악착스럽게 돈을 모아가는 부부다.
정희와 한 방에서 쓰는 부부의 생활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다 큰 딸 자식이다.
곁에 딸자식을 눕혀놓고 부부의 성생활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다.
유영기는 아내를 안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불편하다.
아직도 정력이 넘치는 유영기로서는 참으로 참기 힘든 나날들이다.
그렇다고 딸을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작은 방에 사내아이들 다섯이서 쓰고 있으니 딸 둘을 따로 쓰게 할 수 있는 방을 마련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억척스럽게 돈을 모은다.
하루라도 빨리 그런 집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부부의 정이 유달리 좋은 그들은 매일 밤이 괴롭고 힘들다.
마음 놓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시급히 필요한 부부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큰아들도 문제지만 정희도 문제네요 수고하셨습니다
60년대 우리의 삶 모습을 보는것 같아 마음이 마냥 아프네요.
볕들날 곧 오겠지요.
옛날 김래성 작가가 쓴 '쌍무지개 뜨는 언덕'이란 책이 있었죠?
이런게 막 떠오릅니다
^*^
감사합니다^^
야간에 공부하는 학교가 있을듯하네요.
늘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늘 사람 냄새가 나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사랑의 묘약은 새로운 방이 필요해...
우리도 옛날에 단칸방에서 그렇게 살았는데 참 아득한 옛날 이네요 ~~~~~~~^*^
좋은글 감사합니다.
조금씩 살림살이가 늘어나네요
방두개에서 조그만 가게터에다 트럭에다
욕심을 조금 더내서 방 세개짜리로
큰 아들이 정신차려서 공부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지 .....
사는것이 참으로 막막하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어보이네요!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예전에는 맏 딸의 책임감은 참 대견스러웠어요~ㅎㅎㅎ
즐감요^^
감사
즐감
영기야 아이들 더낳아서
축구선수단을만드려고그러냐.
인제 이야기이지 일단 짤러라
서울 생활에 잘 적응하네요.
고된 생활이겠지요?
즐감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