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은 시간에 돌아와 새벽 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드는 통에, 오늘은 7시나 되어서야 일어났습니다.
오늘보니 호텔앞에 제법 큰 시장건물이 있는것 같은데 둘러 볼 기회가 없습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9시에 호텔을 출발, 20분 정도 걸리는 비림 박물관 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비림 박물관은 한나라 때부터의 각종 비석 1807개를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마치 비석이 숲을 이루고 있다하여
비림이라고 하였으며, 예술적 가치가 있는 명비(名碑)들이 많이 보존되고 있어 서예에 조예가 있는 이들에게 특히 관심이
가는 곳입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 제일 먼저 보게되는 '경운종'은 당대 예종 경운 연간에 만들어져 경운종이라 불리우며, 6톤 무게의
청동으로 주물 되었습니다.
몸체에는 학, 용, 봉황, 맹수의 머리, 채색구름 등이 도안된 아름다운 모양으로 중국에서는 '천하제일종' 이라 합니다.
해마다 중국 CCTV에서 울리는 새해의 종소리가 바로 이 경운종의 소리입니다.
제1 전시실 내의 비석들은 주역, 성서, 시경 등의 12개의 경전을 새긴 것으로, 이것들은 옛 선비들의 필독전서로서 지금의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당대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해 학자들이 베껴쓰는 과정에 틀린 글자가 많았기에 이를
비석에 새겨 범본으로 사용한 것이라 합니다.
제2, 제3 전시실의 당대 유명한 서예가들의 비석들을 안목없는 까막눈으로 순식간에 훝어 보고, 즉석에서 탁본 뜨는 모습은
흥미로와 계속 지켜보고 싶었지만 서둘러 대는 통에 사진 한장 얼른 찍고, 이곳에서 약 50분 정도 걸리는 화청지로 향합니다.
화청지는 춘추시대의 서시, 전한시대의 왕소군, 삼국사기의 초선과 더불어 중국 고대 4대 미인의 하나인 양귀비와 현종이
사랑을 나누던 장소로 유명한 곳입니다.
무려 삼천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이곳은 43도의 온천수가 풍부하여 역대 황제들의 별궁 으로 쓰였으며, 지금도
변함없이 따끈한 온천물이 솟아나고 있어 관광과 더불어 온천욕도 할수 있습니다.
입구로 들어서면 아홉마리의 용머리에서 물을 뿜어내는 '구룡탕'이 보이고, 이곳에 중국 미술대학교 교수가 조각했다는
양귀비 조각상이 서있습니다. 이곳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양귀비와 현종이 즐겨 목욕했다는 연화탕과 해상탕
(해당화 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의 건물이 있습니다.
그 외에 이세민이 사용하던 노천의 성진탕, 태자가 쓰던 태자탕, 궁녀들이 사용하던 상식탕 등이 있습니다.
이곳은 지금 화청지의 건물들을 압도할만한 커다란 온천장을 짓느라 한창 어수선합니다.
전통양식으로 이제 거의 완공상태에 이른 이곳이 정비되면 온천장의 크기에 가려 오히려 화청지의 면모가 외소해 보이지
않을까........... 화청지 바로 앞의 식당에서 중국식 점심을 먹은 후 진시황릉과 병바용갱으로 향했습니다.
서안에서 35.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진시황릉은 기원전 246년부터 208년까지, 무려 36년에 걸쳐 70만명을 동원하여
건설한 능묘로서, 1987년 진시황릉은 병마용과 더불어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개인 무덤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합니다.
거대한 산과 같은 진시황릉의 봉분은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발굴이 불가능하여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 뿐 다른 볼거리는
별로 없습니다.
진시황릉에서 얼마 멀지않은 곳에 있는 병마용은, 1974년 3월 섬서성의 양씨성의 세 농민이 마을 사람들의 결정에 따라
자신들이 대대로 살아온 마을 남쪽에 우물을 파기 시작하던 중 발견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1976년, 1980년에 걸쳐 발굴되었으며 발굴 순서에 따라 1호갱, 2호갱, 3호갱으로 명명되었습니다.
병마용은 고대 군대 편성과 같이 전체 3군으로, 3호갱의 지휘부, 1호갱은 오른쪽에 있는 우군, 2호갱은 왼쪽에 있는
좌군으로 배치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병마용은 원래 건설할 때보다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7천여건의 병마용과
검, 창, 극, 긴 창, 쇠뇌, 화살촉 등 총 수량이 무려 3만여 점에 달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하니, 발굴이 끝나는 시점의 그
어마 어마한 수의 유물들을 어찌 보관할까.........
유구한 역사를 지닌 서안은 지하에 묻혀있을 유물들 때문에 지하도나 지하철 시설을 하지 못하며, "벼락부자가 되려면 땅을
파라"는 말까지 있다고 합니다.
어제 오늘 맑은 날씨에 많은 유적들을 둘러보며 기대 이상의 일정이었지만 문제는 내일부터 입니다.
서안은 원래 개인날이 많고 강수량이 아주 적은 지역으로 도로의 물빠짐 하수시설조차 없으며. 반대로 장가계는 정확히
이틀에 한번 꼴로 비가오고 3일 연속 비 않오는 날이 계속되면 이변에 속한다는데, 가이드에 의하면 오늘 장가계의 날씨는
맑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내일은 ..........................?
개운치 못한 마음으로 오후 8시 30분 국내선 CZ6983 장가계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비림 입구, 비림의 상징인 동인문.
입구를 들어서서 비림 박물관으로 가는 길
비정 (碑亭)
경운종 - 중국에서는 '천하제일종'이라고 하며, 해마다 새해에 중국CCTV 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바로 이 종소리입니다
석태효경 - 당나라 현종황제가 친필로 효경을 적어 새기게 한 것입니다.
'효경'은 공자와 그의 제자인 증자가 나눈 효에 대한 문답을 적은 경서입니다.
현판은 임측서의 글씨 - 청나라때 아편을 싣고 온 영국의 배를 태워 아편전쟁을 부른 임칙서가 아편전쟁이 화친으로
돌아서자 전쟁도발자로 몰려 유배길에 오르게 됩니다. 임칙서는 유배에서 풀려 돌아오는 길에 나머지 점 하나를 쓰겠다고
했으나 오는 길에 병사하여 끝내 碑자에 점 하나를 찍지 못한채 남아있습니다.
비림 박물관 입구
명필들의 글씨들이 새겨져 있는 비석들을 모아놓은 곳.
이 비석들에 새겨진 것들은 명문 필체로 옛 교과서의 역할을 한 문장들입니다.
좁은 장소에 상당히 많은 비석들이 꽉 들어차 있어 사진찍는 실력의 한계가 이것뿐입니다.
비석에 직접 탁본을 뜨고 있습니다
탁본 뜬 것으로 족자를 만들어 팔고있습니다.
12간지의 돌석상들. 벽면에 중국화의 그림을 전시, 판매하고 있습니다.
석각 예술실의 불상 - 비림에는 비석들뿐 아니라 돌 조각품들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돌 작품들 하나 하나가 모두 훌륭해 보이나 이곳엔 왠지 관람객이 보이지 않습니다.
당 고조의 무덤앞에 놓여있던 코뿔소 석상 - 석상의 무게는 10여톤에 이르러 능앞에 세워 놓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동물 석상중 가장 큽니다
돌조각 답지않게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강인한 근육과, 용맹스러우면서도 유연한 저 자세 !
팜플렛이나 책자에서 실려있는 작품이며 특별히 유리관 속에 보관한 것이 꽤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 같으나 알수가 없다.
앞에 붙어있는 팻말로 보아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 것같으나 전혀 사람이 없어 모른척 찍었습니다.
멋진 작품들인 것 같은데 왜 사람들이 이곳은 보지를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첫댓글 양귀비 석고상을 거부감 들지 않는 각도에서 잘 찍으셨네요. '귀비지'라는 사진 바로 밑에 있는 누각사진은 양귀비가 바람결에 머리를 말리던 곳입니다. 서안을 충분히 돌아 보셨으니 훗날 실크로드 탐방시에는 돈황부터 시작하셔도 되겠네요.
고선생님! 안녕하시지요? 반갑습니다. 아직 중국 여행사진도 다 정리를 못했는데, 제주도를 가게 되어 오늘에서야 cafe에 들어왔습니다. 화청지의 담장이 덩굴로 덮여있던 멋진 회랑이 그런 곳이었섰군요.사진 찍느라 설명을 놓친곳도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