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부락 및 지명
◇ 사곡리(사곡, 사창골)
·대사창, 소사창, 산신대이, 가마바위, 각시바위, 매상고개(매발재), 범바위,
비득재, 사창터, 삼거리고개, 상골재, 솔티, 승지바위, 신랑바위, 실키는구렁,
웃작골, 치매골,
사곡리
저희 동네는 금성면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1.8km에 남, 서, 북에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쌓여있고, 동쪽이 확트여 금수산에 힘찬 아침해가 떠오르는 것을 한눈에 볼수있는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자연 부락으로는 대사창과, 소창이 있으며 농사를 전업으로하는 전형적인 농촌입니다.
정월초에는 길일을 택하여 주민들의 안녕과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서낭당제를 올리고 있으며 동네 위에는 약 700년된 둘레 약 8m 높이 40m의 거목 은행나무가 마을을 지켜주고 있으며 옛성인들이 영정을 모셔놓은 병산영당이 있어 기회가 되신다면 어린이에게도 산교육장이 될수있는 우리마을을 한번 찾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을연혁
본래 청풍군 북면의 지역으로서, 조선 시대 사창(社倉)이 있었으므로 사창골 또는 사곡(社谷)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사곡리라 하여 금수면(錦繡面)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금성면에 편입됨. 1980년 제천시 시승격으로 제원군 금성면 사곡리가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으로 금성면 사곡리가 됨.
마을유래
제천에서 서남쪽으로 약 16km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매우사양진 곳으로 동쪽으로는 금수산이 위치하고 남쪽으로는 문내산 서로는 호암산이 있다. 북에는 신랑바위가 있고 서에는 각시바위 바위형국이 여인들이 많아서 빨래하는 형국처럼 생겨서 각시바위라 한다.
사곡영당【사당】병산-영당(屛山影堂) 금병골에 있던 사당. 1947년 덕산면 용화리에 창건하여 주자(朱子)와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의 영정을 봉안하고,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 회당(晦堂) 윤응선(尹膺善)을 추배하였는데, 1951년8 청풍면 장선리에 옮겼다가 직당 신현국 학재 이원복 해산재 양재명 양암 류지혁을 추배함.1994년 5월 10일 금성 산척간 도로이설로 금성면 활산리 산401번지로 옮겨지움. 산 지번으로 활산리이나 금성면 사곡리 마을과 가까이 있음. 건물구조는 목조초가 삼간, 측면 2간의 맛배집인데 토석 혼축 담장을 함.
마을비
사곡리는 어조시 청풍군 북면 사창리에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제천군 금성면 사곡리로 조정되었고 제천에서 서남쪽으로 약 16km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매우사양진 곳으로 동쪽으로는 금수산이 위치하고 남쪽으로는 문내산 서로는 호암산이 있다.
북에는 신랑바위가 있고 서에는 각시바위 바위형국이 여인들이 많아서 빨래하는 형국처럼 생겨서 각시바위라 한다.
자랑으로는 사곡리소재 400번지내에 지금으로부터 약700년전에 신재한 웅장한 은행나무가 서있다.
1982년11월 16일짜로 군지정 보호목으로 이군에서는 보기드문 거목으로 알려지고있다.
서쪽에 위치한 산골재에는 산골이 채취대는대 일명 자연등이라하여 골절치료에 많은 도움을주는 산골이 소량 채취된다
신랑바위,각시바위
제천시 금성면 사곡리는 옛날에 나라의 쌀을 보관하던 사창(社倉)이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이 동쪽에 있는 마을을 소사창 서쪽에 있는 마을을 대사창이라 한다.
사창(사곡리)은 봉양면과 이웃하고있어 서북쪽에 있는 솔티재를 넘으면 봉양면 삼거리 솔티로 빠지게 된다. 이 재를 사곡리 쪽에서 넘다보면 길 양쪽에 바위가 하나씩 서로 마주 서있는데 서쪽인 사곡리 쪽에 있는 바위를 신랑바위라 하고 동쪽인 봉양땅에서 있는 바위를 각시바위라 한다. 이 바위의 모양을 보면 마치 각시바위가 신랑바위에게 절을 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옛날 옛적의 이야기다. 사곡리에 사는 한 총각이 이웃 봉양에 사는 한 처녀와 혼인을 했다. 신랑과 신부는 금술좋게 행복한 나날을 살아갔다. 그런데 어느날 각시의 친정에서 좋지않은 소식이 날아왔다. 각시의 친정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중하다는 것이다. 각시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부랴부랴 봉양땅인 친정으로 달려갔다. 각시의 친정 어머니는 각시의 정성어린 간호에도 불구하고 결국 세상을 떠났고 각시는 삼년상을 치르게 됐다. 그렇게 금슬좋던 신랑과 각시는 어쩔 수 없이 서로 떨어져 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지척이 천리라는 얘기는 이를 두고 한 말 같다. 신랑과 각시는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밤이면 밤마다 서로를 그리워 하며 님이 계신 산을 바라다 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렇게 서로를 그리워 하며 날마다 눈물로 지새던 신랑과 각시는 그리움에 지쳐 어느새 돌로 변했다. 각시는 신랑이 그리워 읍을 하는 모습을 한 채 굳어 버렸으며 신랑은 그것을 애처롭게 저으기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굳어 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바위를 신랑바위, 각시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사곡리 (소사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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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 마을에도 이렇게 많은 사연들이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