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계와 장금용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시 세거 성씨.
인동장씨(仁同張氏)는 고려의 개국원훈(開國元勳)인 태사공(太師公) 장정필(張貞弼)을 도시조(都始祖)로 하지만 종파간 의견 일치는 보지 못하였다. 현재 인동장씨는 장계(張桂)와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여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직제학계의 시조 장계는 장정필의 14세손이며, 1305년(충렬왕 31)에 국학진사(國學進士) 권지도평의록사(權知都評議錄事) 동진사(同進士)에 등과하였고,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거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랐으며,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을 지냈고 옥산군에 봉해졌다. 인동현의 남쪽 발영전(拔英田)에 터를 잡았다. 그리하여 인동을 본관으로 정하였다. 옥산(玉山)은 인동의 별호이다. 장계의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성곡동 발영전에 있다. 2세손 장보(張俌), 3세손 장용서(張龍瑞), 6세손 장자원(張自遠)으로 이어진다.
상장군계 시조 장금용은 고려조에서 삼중대광신호위장군(三重大匡神虎衛將軍)을 지냈다. 후손들이 옥산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옥산으로 하여 천년을 이어온 오랜 씨족이다. 조선 말기 옥산이 인동으로 개칭되자 관향을 인동으로 고쳤으나 그대로 옥산을 본관으로 하는 후손도 있다. 장금용의 묘소는 구미시 인의동에 있다. 14세손 장보(張俌)의 자손들은 인동·성주 등지에 살다가 18세 이후로는 예산·진주·하동·원주·상주·무안·은진·공주·서천 등지에 살고 있다. 고려조의 인물로는 장선(張善)·장안세(張安世)·장중양(張仲陽) 등이 있고, 조선시대에는 정승 1명, 왕비 1명, 문과급제자 55명을 배출하였다.
인동장씨의 세거지는 여러 곳이다.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남산마을) 일대는 장여헌의 출생지이자 거주지로 그의 후손들인 남산파가 세거했다. 전성기에 100여 호였으나 진평·임동 구획 정리 사업으로 분산되어 지금은 20여 호가 거주하고 있다. 구미시 오태동과 칠곡군 석적면 중리에도 장여헌의 후손 일부가 살고 있다. 오태동은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이 태어난 곳이며, 그의 조부와 아버지는 관찰사와 판서를 지냈다. 구미시 황상동에는 죽정(竹亭) 장잠(張潛)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인동장씨 유명인]
조선 시대의 유명 인물로는 인조 때 팔도도원수 및 병조판서를 역임했으며 이괄의난을 평정하여 진무일등공신에 책록되었던 장만(張晩)은 보국숭록대부에 올라 옥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문무를 겸비한 뛰어난 지략으로 북변방어와 신흥 청국세력에 대한 정치와 외교에 눈부신 활약을 하였다.
한편 인조반정에 증산 현령으로 공을 세워 옥산군에 봉해졌던 장돈(張暾)은 병자호란 때 안주성에서 좌영장(左營將)개천군수로서 호병(胡兵)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여 영돈령부사에 추증되었으며, 장사진(張士珍)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위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한쪽 팔을 잘렸으나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다가 순절하여, 성주 등지에서 의병으로 활약했던 장봉한(張鳳翰), 상주 판관으로 전사한 장홍한(張鴻翰) 등과 함께 명망을 떨쳤다
덕령부윤 장안세(張安世)의 후손으로서 대성리학자이자 영남학파의 거두였던 문강공(文康公)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선생은 당세에 문명을 떨쳤던 퇴계 이황 선생의 학맥(學脈)이자 한강 정구(鄭逑) 선생의 문인(門人)이자 조카 사위이다.
문강공 여헌 장현광 선생은 1595년(선조 28) 학행으로 천거되어 나이 42세에 보은현감이 되었는데 약 21일간 관직에 있다가 사임하고 물러난 후 형조좌랑, 순천 郡守, 이조참판, 대사헌, 공조판서 등 20여 차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오직 독서와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그밖의 인물로는 이인좌의난에 훈공을 세우고 훈련대장을 역임한 장붕익(張鵬翼)과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장태소(張泰紹), 숙종 때 우승지와 대사간을 거쳐 부제학을 지내고 명신으로 이름났던 장응일(張應一), 병자호란 때 인동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장경우(張慶遇), 형조판서에 올랐던 장석룡(張錫龍) 등이 유명했다.
구한말에 와서는 장태수(張泰秀)가 한일합방의 울분으로 비분단식(悲憤斷食) 끝에 순국하여 이름을 떨쳤고, 근대에 와서는 대한매일신보주필을 지낸 장지연(張志淵)과 국문학자 장지영(張志暎), 민주당을 조직하여 부통령에 당선되었던 운석 장면(張勉)이 대표적이고, 조국광복운동을 주도했고 국무총리를 지냈던 창랑 장택상(張澤相) 등이 인동 장씨를 더욱 빛냈다
현대의 유명인물로는 연예계로는 배우 장근석, 가수 장윤정, 장우혁, 2PM의 장우영, 인피니트의 장동우, 비스트의 장현승 등이 있고, 운동선수로는 역도선수 장미란이 있다.
[참고문헌] |
• 『구미시지』(구미문화원, 2005). 위키백과 |